회상기

 

걸음걸음 이끌어주시여

리 치 호

 

항일무장투쟁시기 사령부통신원이였던 나는 종종 통신수단이나 통신기재를 제대로 리용할수 없었던 당시에 사령부통신을 어떻게 보장했는가 하는 질문을 받군 한다.

사실 그때 사령부통신을 원만히 보장한다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였다. 대체로 걸어서 통신임무를 수행하군 하였는데 하루이틀도 아닌 그 길에는 별의별 일이 다 생기군 하였다.

하루종일 걸어도 해빛 한쪼각 볼수 없는 천고의 수림바다를 가다가 길을 헛갈릴 때도 있었고 곰이나 산돼지무리를 만나 애를 먹을 때도 있었다. 또한 몇길이나 되는 눈무지에 빠져 한나절씩이나 고생하다가 겨우 헤여나오는 때도 있었고 한발자욱만 헛디디면 아예 수렁에 묻히고마는 흔들레판을 극복해야 하는 때도 많았다.

뭐니뭐니해도 제일 급한것은 적들과 불의에 맞다드는 때였다.

개별적으로 싸다니는 놈들의 특무를 만나도 그렇고 적들의 무리와 맞다들려도 그것을 능동적으로 극복한다는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였다.

놈들과 접전을 벌리다가 피값을 하고 죽기는 쉬웠다.

그런데 통신원은 사령부의 통신을 보장하지 못하고서는 죽을 권리가 없었다.

그밖에도 곤난한것은 이루 헤아릴수가 없었다.

언제나 혼자서 다녀야 하니 고독하기가 이를데 없고 예상못했던 정황으로 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하고 제때에 통신을 보장하자니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목에서 겨불내가 나도록 달리기만 해야 하는 등 어려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사령부통신원은 바로 그러한 모든 정황과 곤난을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하며 죽기보다 더한 고비를 넘기며 임무를 수행해야만 하였다.

아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걸음걸음 이끌어주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그 어렵고도 책임적인 임무를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했을것이다.

내가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한지 한해가 조금 지났던 1937년 10월말의 어느날이였다.

그때 우리 중대장이였던 오중흡동지가 나를 부르더니 의미있게 웃으며 빨리 사령부로 가라는것이였다.

내가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어 주춤거리는데 중대장이 아마 좋은 일이 있을거라고 하면서 등을 떠미는것이였다.

(무슨 일일가? 사령관동지께서 왜 나를 갑자기 부르실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급히 사령부귀틀집으로 갔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 인사를 올리니 몇몇 지휘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왔구만, 어서 여기 와서 좀 앉으시오.》라고 말씀하시며 옆에 놓여있던 통나무의자를 가리키시였다.

얼마 안있어 지휘관들이 다 나가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까지 서있는 나를 끄당겨 자리에 앉으라고 하시고는 자신께서도 마주 앉으시여 환하게 웃으시는 안색으로 그간 혁명군생활에 대하여 하나하나 물어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다정하신 물으심을 받으니 순간에 서러웠던 지난날과 수령님품속에서 지나온 보람찬 한해가 한데 어울려 떠오르면서 눈굽이 뜨거워났다.

9살에 량부모를 다 여의고 남의 집 머슴살이로 20살나이를 먹으며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막힌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긴 그날로부터 나의 생활은 꿈속에서나 그려보던 별천지의 생활과 같은 보람차고 행복한 날들로 이어졌다.

그날들에 받아안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을 나는 평생토록 잊을수 없다.

행군도중에 조금만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여도 내 배낭을 벗기여 자신의 어깨에 걸머지고 걸으시던 위대한 수령님,

옹근 한페지에 주먹만 한 글씨 몇자로 채운 나의 학습장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대원들에게 글을 크게 쓰는 사람이 속이 큰 사람이라고 두둔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웅심깊은 사랑은 날이 갈수록 나의 마음속에 더 깊이 파고든다.

또한 내가 머슴살이로 굳어진 습성으로 하여 동무들과 잘 섭쓸리지 못하고 항상 말없이 한쪽구석을 찾는것을 아시고는 따로 부르시여 혁명가는 항상 쾌활하고 락천적으로 생활해야 한다고 하시며 몸소 혁명가요도 배워주시고 오락회때는 함께 2중창도 불러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보살피심을 생각하면 지금도 저절로 눈시울이 젖어온다.

마음속으로는 많은 말을 하였지만 그 마음을 다 표현할수 없었던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물으시는대로 혁명군생활은 꿈속에서나 그려보던 생활이라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군생활을 귀중히 여기는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려고 불렀다고 하시였다.

나는 긴장하여 다음말씀을 기다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너그러운 안색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동무는 오늘부터 사령부통신원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였소.》라고 말씀하시였다.

너무도 상상외의 임무에 나는 그만 얼떨떨해졌다.

물론 사령부통신원은 소대장이나 중대장들처럼 대원을 거느린 지휘관은 아니였다.

그러나 사령부통신원은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직접 임무를 받아 수행하고 보고해야 하는 책임적이고도 가장 영예로운 임무를 수행하는 대원인것이다.

내가 자신도 모르게 커진 눈을 어디다 둘지 몰라 허둥거리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속마음을 알아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동무가 사령부통신원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리라고 믿소.》

그러시고는 사령부통신원의 임무와 그 중요성에 대하여 그리고 임무수행중에 나타날수 있는 정황과 처리방법에 대해서까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귀담아들으며 가슴속깊이에 새긴 나는 《사령관동지의 신임에 꼭 보답하겠습니다.》하고 굳게 맹세를 다지고 사령부귀틀집을 나섰다.

그 다음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첫 임무를 주시였다.

그때 내가 받은 사령부통신원으로서의 첫 임무는 반일부대에 들어가 공작하던 동무를 만나 데려오는것이였다.

얼핏 생각하면 사람을 데려오는것쯤이야 무슨 대수겠는가 하고 생각할수 있는데 그렇게만 생각할것도 아니다.

반일부대에 들어가 공작하는 동무를 데려와야 하는것만큼 그를 반일부대에서 의심하지 않게 만나는것이 문제였고 또 데려온 다음에도 의심을 받지 않도록 해야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첫 임무를 주시면서 복장을 어떻게 하고 갈 때는 어느 길로 가고 올 때는 어느 길로 오며 접선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가를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한치의 드팀도 없이 그대로 하여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 수령님께 보고드리였다.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며 통신원으로서의 첫 임무를 아주 훌륭히 수행했다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치하를 받고보니 혼자서 삭이기엔 흥분이 너무 커서 기쁨도 나누고 나를 사령부통신원으로 추천해준데 대한 인사도 할 생각으로 오중흡중대장을 찾아갔다.

그 기회에 입대하여 1년밖에 안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은 나를 어떻게 믿고 추천했는지 물어볼 생각도 하였다.

그런데 중대장이 없어서 하고싶은 이야기를 못하였다. 알고싶은것도 묻지 못하였다.

아무때든 꼭 만나서 가슴터놓고 말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런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였다.

그가 있을 때는 내가 임무를 받고 멀리 떠나게 되고 돌아와 잠간 사령부에 있는 사이에는 중대장이 자리를 뜨군 하였던것이다.

하기는 그후에는 내편에서 시간을 내지 못하였다.

말그대로 사령부의 신경인 통신원으로서 부단히 움직여야 했던 나는 좀처럼 시간을 낼수 없었던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새 임무를 받고 떠날 때마다 중대장처럼 위대한 수령님께 충실한 혁명전사가 되여 맡겨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리라고 결심을 다지며 그와 마음속으로 말을 나누군 하였다.

그런데 결심한대로 그렇게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그해 11월이였다.

마당거우에서 진행된 군정학습에 참가시키기 위하여 장백일대에서 활동하던 부대에 련락을 갔던 나는 그만 예정된 날자보다 2일간이나 늦어서 돌아왔다.

내가 갔다온 길은 1 000리가 넘었는데 기일은 7일간이였다.

정황을 고려하여 하루에 200리씩 걸어야 했다.

간단치 않은 임무였다.

그러나 나는 신들메를 든든히 조이고 길을 떠나 련사흘 200리씩 걸어서 목적지에 이르러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정확히 전달하였다.

그런데 오다가 그만 눈사태에 길이 막히여 에돌다가 길을 헛갈려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기일을 보장하지 못했다.

몇끼를 굶고 몸은 지칠대로 지쳤지만 2일간이나 지체한 나는 사령부귀틀집으로 선뜻 들어설수가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믿어주시며 중요한 임무를 맡겨주시였는데 기일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자책감으로 하여 문을 열기가 주저되였다.

머뭇거리며 사령부귀틀집으로 들어서려는데 전달장동무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말씀이 계셨다고 하며 먼저 언몸을 녹이고 피로를 풀도록 하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가 늦어지니 못내 걱정하시며 밤잠도 편히 주무시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죄송함으로 하여 밤새 뒤척인 나는 새벽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귀틀집에 들어섰다.

주저하며 들어서는 나를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느때와 같이 너그러우신 안색으로 반겨맞아주시며 추운데 고생이 많았겠다고, 밤새 피로를 좀 풀었는가고 다정히 물어주시였다.

기일이 늦어진데 대해서는 전혀 말씀이 없으시니 나는 더욱 송구하여 길을 헛갈려서 늦게 도착하였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줄 알았다고 하시며 이번에 찾은 교훈이 무엇인가고 물으시였다.

사실 나는 자책감은 크게 느끼고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길을 헛갈리지 않았을가 하는데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기때문에 제대로 답변을 드릴수 없었다.

내가 머뭇거리며 인차 대답을 올리지 못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통신임무를 원만히 수행하자면 우선 지형지물에 의거한 판단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골짜기는 몇개 지났고 물은 어느 쪽으로 흐르는가, 산봉우리는 몇개 있었으며 표적으로 될만 한 특이한 대상물은 없는가 등을 잘 살펴보며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그러면 자연재해나 정황이 생겨 일시 다른 길에 들어섰다가도 인차 길을 찾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내가 이번에 실수한것은 지형지물을 눈여겨 기억하지 않고 눈판우에 난 발자욱만 따라다녔기때문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사령부통신원의 임무를 맡겨주시며 말씀하시였던 주의사항을 상기시키면서 하나하나 또다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무리 바빠도 불은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연기가 보이지 않게 피워야 하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인가에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하시였다.

또한 사람들과 될수록 말을 걸지 말며 그들이 주는 음식을 함부로 먹지 말데 대해서도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언제나 적을 먼저 발견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러자면 지형지물뿐아니라 주변과 먼데를 예리하게 살펴야 하며 풀대들의 흔들림이나 산짐승과 날새들의 움직임도 분석해보아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통신문건의 보관에 대해서도 강조하시면서 문건은 배낭에 넣지 말고 몸에 든든히 차고 다녀야 위급한 정황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식량준비도 계절에 따라 그에 맞게 간편하게 꾸려가지고 다닐 방도들을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새길수록 통신원의 안전을 념려하여 고생을 덜어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이 가슴깊이 느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끝으로 사령부통신원의 임무에 대하여 다시금 말씀하시면서 사령부의 명령과 지시를 제때에 정확히 수행하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특별히 강조하시였다.

사령부통신원에게 있어서 사령부의 명령과 지시를 제때에 정확히 전달하고 돌아와 제 시간에 보고하는것보다 중요한것은 없다.

제때에 정확히 전달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 여부를 제시간에 사령부에 보고하는것 역시 같다.

사령부의 명령과 지시를 제때에 정확히 전달해야 해당한 단위들은 사령부의 명령과 지시대로 움직일수 있고 그 정형을 제때에 보고해야 사령부는 계획하였던 전략전술적의도를 실현할수 있기때문이다.

량자중의 어느 하나가 드티여도 사령부의 작전에 지장을 주게 되는것이다.

만일 사령부통신원들이 각 부대들에 가서 어느때까지 어디로 진출하여 어느 계선을 차지하라는 사령부의 명령을 제때에 정확히 전달하였다고 하여도 돌아와서 제때에 보고하지 못하면 사령부는 통일적인 지휘를 보장할수 없고 계획했던 작전적의도를 제대로 실현할수 없게 되는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이후에도 기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리군 하였다.

그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과 같이, 철없는 자식을 일깨워주는 아버지같이 차근차근 가르쳐주시며 걸음걸음 이끌어주시였다.

1938년 9월경이라고 기억된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부대가 림강현 모령을 지나 무송땅에 들어선 때였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몽강일대에서 활동하고있던 7련대에 가서 식량과 피복, 의약품 등을 얼마나 확보하였는가를 알아보고 미진된 량을 빠른 시일내에 마련할 지시를 전달할 과업을 주시였다.

그 임무도 나는 사흘이나 늦어져서 돌아와 보고하였다.

사흘동안 해 한번 뜨지 않고 줄곧 날이 흐린데다가 안개까지 자욱하니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워 나는 오도가도 못하고 앞이 트이기만을 기다렸다.

잘못하다가는 더 큰 랑패를 볼것 같아 조금만조금만 하며 기다린다는것이 그만 사흘이나 지났던것이다.

나는 돌아와서 너무 면목이 없어 위대한 수령님께 처벌을 달라고 제기하였다.

사령부통신원으로 임명된지도 1년, 그 기간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은것만도 수십차례나 되는데 안개때문에 련 사흘 앉은자리에서 뭉갰다는게 나로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다고 하시며 몸소 나를 큰 나무가 서있는 곳으로 데리고가시였다.

그러시고는 영문을 몰라하는 나에게 나무를 자세히 보라고 하시고는 남쪽에는 가지가 많고 원대가 말라있으며 북쪽에는 나무에 버섯이나 이끼가 돋아있고 늘 젖어있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그것만 알았다면 사흘을 앉아뭉개지 않았을것이였다. 소경 막대기 짚고 가듯해도 자지 않고 쉬지 않고 방향을 잡아 걸었으면 아무리 안개가 자욱하여도 제 날자에 도착했을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음에는 나를 큰 바위옆으로 데리고가시여 손으로 바위를 짚으시며 남쪽은 해를 많이 보아 말라있고 북쪽은 해를 적게 받고 습기가 많아 푸르스름한 이끼가 덮인다고 설명해주시였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이 그런것도 몰랐는가 하고 웃을수도 있다.

부끄럽지만 그때까지 나는 그런 리치를 몰랐다.

9살때부터 눈을 비비며 물을 긷고 소여물을 끓여야 했으며 마당을 쓸고 풀을 베고 나무를 해와야 했던 머슴살이신세에 그런 리치를 알수 없었다.

낫놓고 기윽자도 모른다는 말이 우연치 않다.

글을 배우지 않고서 낫이 기윽자처럼 생겼는지 이응자처럼 생겼는지 알수 없는것이다.

머슴살이때는 몰랐다쳐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해서는 특히 사령부통신원인 나는 그것을 벌써 알았어야 했는데 몰랐기때문에 자책이 컸다.

그때에 나는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원만히 수행하자면 임무수행과 관련된 모든것을 깊이 알아야겠다는것을 절실히 느끼였다.

알지 못하면 아무리 충실하려고 해도 충실하게 일할수 없다는것이 오랜 생활과정을 통해 내가 깊이 새기게 된 교훈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북두칠성과 새별을 보고 방향을 판정하는 방법도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이후에도 임무를 주실 때마다 그리고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다음에 보고를 받으실 때마다 통신원의 임무를 원만히 수행하도록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군 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통신원들의 생활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어느해인가 설을 조금 앞둔 때였다.

내가 통신임무를 수행하고 밀영지에 돌아오니 김주현련대장이 반갑게 맞아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리를 뜨시면서 먼저 식사부터 시키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식탁으로 데리고가는것이였다.

식탁에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소고기국과 기장쌀밥이 푸짐히 차려져있었다.

내가 무슨 영문인가 하여 련대장을 바라보니 그는 별다르게 생각할것이 없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시기 전에 빨리 식사를 하고있다가 임무수행정형을 보고하라고 하는것이였다.

그 바람에 나는 수저를 들고 정말 맛나게 먹었다.

식사를 다하고 상을 치우니 이번에는 련대장이 사복한벌과 신발 한컬레를 내놓으며 내것이라고 하는것이였다.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아 나는 련대장에게 캐여물었다.

그제야 김주현련대장이 이런 사연을 말해주는것이였다.

내가 돌아오기 이틀전에 있은 습격전투에서 부대는 많은 전리품을 얻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리품을 돌아보시다가 련대장에게 내가 늘 단독임무를 수행하느라고 푸짐한 식탁에 마주앉는 때가 없다고 하시면서 소고기국에 기장쌀밥을 해서 차려주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천을 구해서 사복 한벌을 따로 지어주고 신발도 한컬레 구해주시오.

전번에 보니까 그의 옷 앞섶이 닳아지고 신발코숭이가 해여졌더구만.

군복을 입을 사이가 없이 늘 멀고 험한 길을 걸어다니는 그에게 미처 신발 한컬레, 옷 한벌 제대로 갖추어주지 못한것이 마음에 걸리오.

친부모의 사랑도 그렇게 다심하고 뜨겁지는 못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뜨겁고도 다심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통신임무를 수행하느라고 학습에 빠지기가 일쑤인 나를 념려하여 단독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사상적으로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하시며 친히 개별학습지도도 하여주셨고 당적분공수행정형도 알아보시고 잘 수행하도록 도와주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활과 투쟁의 걸음걸음을 손잡아 이끌어주시며 따뜻이 보살펴주셨기때문에 나는 언제 어디서나 외로움과 두려움을 몰랐고 어떤 역경속에서도 주저와 동요없이 수령님을 따라 혁명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올수 있었다.

언제인가 지하혁명조직책임자에게 련락을 갔다올 때였다.

약속된 지점에서 그를 만나고 돌아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적들과 불의에 맞다들게 되였다.

정황은 나에게 아주 불리하였다.

나는 혼자의 몸이고 적들은 많았는데 게다가 놈들이 나를 먼저 발견했기때문에 미처 손쓸 사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무작정 돌아서서 뛰였다.

그러자 놈들은 《투항하라!》, 《손만 들면 살려준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추격해왔다.

나를 생포하려고 생각했는지 총은 얼마 쏘지 않고 계속 검질기게 따라오기만 하였다.

그대로 계속 뛰기만 하다가는 얼마 못가서 놈들의 손에 잡힐 형편이였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놈들의 손에 잡힐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피값이라도 해야겠다는 비장한 생각을 가지고 놈들을 향해 맞불질을 하였다.

한놈두놈 너부러지는 놈들을 향해 총질을 하던 나는 어디선가 (너는 죽어선 안돼.)하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아 정신을 번쩍 차리였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이어 항상 나를 떠나보내며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무리 불리하고 위험한 정황에 부딪쳐도 절대로 죽을 생각부터 하지 말아야 하오. 동무는 부대의 신경인 통신원이라는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오.

목적지까지 무사히 갔다가 부대에 정확히 돌아오는것이 통신원의 임무요.

때문에 죽을 생각부터 하는것은 통신원의 임무를 스스로 저버리는것이나 다름이 없소.

나는 죽더라도 임무수행정형을 보고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의를 피뜩 살폈다.

빠져나갈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수림속에만 빠져들어가면 되겠는데 거기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까운 곳에 몸을 숨길만 한 곳이란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솟은 벼랑산뿐이였다.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우선 그곳으로 뛰여야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맞불질에 질겁한 놈들이 주춤하고 엎디여서 기회를 노리는 찰나에 와닥닥 일어나 바위산으로 뛰여갔다.

내가 뛰자 놈들이 또다시 소래기를 지르며 따라왔다.

바위들을 톺아서 꼭대기에 이르니 내려갈 길이 막혔다.

뒤에는 적이 따르고 앞에는 절벽이였다.

길이 막혔다는것을 안 놈들은 더욱 바싹 조여들면서 손들고 돌아서라고 소리쳤다.

더는 지체할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주먹을 부르쥐고 밑을 향해 내리뛰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내 몸은 락엽무지속에 잠겨있는것이였다.

나는 다행히도 벼랑밑의 락엽이 쌓여있는 틈새기에 떨어졌던것이다.

나를 따르던 놈들은 내가 벼랑에서 떨어진 후 아무 기척이 없으니 죽은줄 알고 그냥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나는 그밤으로 사령부에 도착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임무수행정형을 보고드렸다.

나의 보고를 상세히 듣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대견해하시며 말씀하시였다.

동무가 살아서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게 된것은 그 홈채기와 락엽무지때문이 아니라 혁명임무를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수행하려는 동무자신의 높은 각오와 책임감이 있었기때문이요.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가 희생적으로 임무를 수행했기때문에 사령부와 혁명조직과의 련계가 제때에 이루어지고 필요한 대책도 원만히 세울수 있게 되였다고 거듭 치하해주시였다.

그처럼 만족해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아뢰였다.

(저는 오직 사령관동지께서 가르쳐주신대로만 했을뿐입니다.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은 그대로 저의 걸음걸음을 밝히여주고 가리켜주는 라침판이고 리정표입니다.…)

나는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의 구체적인 지도와 세심한 사랑의 손길밑에서 백두의 험한 준령을 정든 집 뜨락을 거닐듯 넘고넘으며 사령부통신원의 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지휘관들과 대원들모두가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지도와 따뜻한 보살피심속에서 혁명가로, 투사로 성장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그 손길을 떠나서 항일의 로투사로, 혁명의 1세로 떠받들리우는 우리들의 자랑찬 투쟁경력이 있을수 없고 우리들의 보람찬 삶 그자체가 존재할수도 없었다는것이 내가 후대들에게 하고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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