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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속에 태여난 7련대 4중대 한 천 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7련대 4중대라고 하면 싸움도 잘하고 규률도 강하고 부대관리에서도 알뜰하기로 소문난 조선인민혁명군의 첫 모범중대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견결히 옹호보위하여 이 땅우에 수령결사옹위의 빛나는 전통을 마련해준 사령부의 제1결사대로 세상에 알려진 유명한 중대였다. 하기에 지난 시기 사람들은 제나름으로 7련대 4중대는 특별히 선발된 사람들로 꾸려진 대오였을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항일의 7련대 4중대는 결코 선발된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였다. 한때 버림받은 사람들, 그것도 《민생단》으로 혁명의 대렬밖으로 밀려날번 했던 사람들을 기본으로 하여 무어진 대오가 7련대 4중대였으며 그들이 바로 나의 혁명군생활 첫 시기의 전우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이끄시는 부대에 입대하여 내가 혁명군생활의 첫 자욱을 내디딘것은 1936년 3월말 마안산에서 30리가량 떨어져있는 산간마을에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고 오신 혁명군대원들은 열댓명밖에 되지 않았다. 최금산 등 전령병 2명에 오백룡을 포함한 10명가량의 호위성원들 그리고 후에 정치위원이 된 김산호와 《대통령감》, 이들이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사령관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대원들과 같이 보초도 서시고 밥짓는 일에도 참가하시였다. 나는 왜 인원이 이렇게 적을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쩐지 허전한 감도 없지 않았다. 어느새 나의 이런 속마음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우리 조선인민혁명군부대가 남북만주 곳곳에 있다고, 이제 마안산에 나가면 더 큰 부대를 뭇게 된다고 말씀해주시였다. 그리고 전령병 최금산이며 《대통령감》이라 부르는 아바이도 친형제처럼 나를 따뜻이 대해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남호두회의방침도 해설해주고 이제 마안산에서 뭇게 될 새 사단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도 알게 되고 우리 혁명의 전도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리해하게 되였다. 력사적인 남호두회의를 끝마치시고 청구자밀영과 미혼진을 거쳐 백두산지구진출을 단행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마안산에서 큼직한 새 사단을 하나 꾸려가지고 백두산을 타고앉아 본때있는 싸움판을 벌리실 웅대한 구상을 펼치고계시였다. 그 새 사단으로 말하면 군사활동을 하면서도 백두산에 나가 국내도처에 당조직망도 확대하고 조국광복회나 여러가지 반일조직을 통하여 전민을 반일항전에 집결하고 령도해나가야 할 정치군대로서 모든 부대들의 앞장에 선구자적역할을 수행해야 할 주력사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주력사단에 바로 《조선혁명의 기관차》라는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시였다. 그런것만큼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혁명의 기관차역할을 담당수행하여야 할 그 주력부대, 새 사단을 어떤 방식으로 꾸리실가 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지휘간부들과 대원들의 깊은 관심사로 되였다. 오래전부터 무장을 들고 일제를 반대하여 싸워온 조중군정일군들은 대체로 항일련군 각 부대들에 흩어져있는 조선청년들을 모조리 불러다가 대집단군을 편성해가지고 백두산으로 나가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개중에는 2군관하의 여러 부대들에서 끌끌한 유격대원들만을 특별히 따로 선발하여 주력부대를 꾸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새 사단의 지위로 보아 일리가 있는 제안들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존부대들은 그대로 두고 무송땅에서 활동하고있다는 2련대를 모체로 하고 여기에 북만일대와 국내의 우수한 청년들을 받아들여 새로운 주력부대를 꾸리기로 결심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령부의 의도를 받들고 각 방면으로 떠나가는 부대들에 북만원정과정에 그처럼 공들여 키운 수백명의 원정대원들까지 다 떼여주고 얼마 안되는 인원만 데리시고 마안산으로 향하시였던것이다. 최금산이도 나에게 이제 조금만 더 나가면 2련대를 만나게 된다고, 그러면 그들을 모체로 하여 인차 새 사단을 꾸리게 된다고 하면서 2련대에 대해 자기가 아는껏 이야기해주었다. 2련대로 말하면 독립련대로 활동할 때부터 싸움을 잘하는 부대로 소문난 순수한 조선인부대들중의 하나였다. 《고려홍군》이라고 하면 우리 동네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처창즈유격구를 최후까지 잘 방비고수하여 《불굴의 처창즈》라는 실화전설을 창조해낸 영웅들도 그들이였고 윤창범련대장이나 김락천련대정치위원은 두말할것도 없고 권영벽, 김주현, 오중흡, 김평 등 련대의 핵심성원들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키우신 훌륭한 군사정치일군들이였다. 구대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어느새 마안산에 가면 모든게 잘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으며 한시바삐 그곳으로 가고싶었다. 그런데 정작 마안산에 도착해보니 사정이 달라졌었다. 2련대가 자리잡고있으리라던 인삼포전머리의 귀틀집 두채는 텅 비여있었다. 사람이 거처한지 오래된듯 방안에는 싸늘한 기운만이 차있었다. 주변을 다 돌아보았으나 인적이 없었다. 어슬막에야 깊숙한 골짜기에서 자그마한 귀틀집을 한채 찾아냈는데 두명인가 세명인가 되는 사람들이 감자를 구워먹고있었다. 그중 한사람이 부랴부랴 몸가짐을 바로하고 위대한 수령님께 인사를 올리였다. 후에 알게 되였지만 그가 바로 1사 정치주임인 김홍범이라는 사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2련대는 어디 있습니까?》 《이달초에 교하쪽으로 원정을 가고 없습니다.》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다리맥이 쭉 빠지는것을 느끼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더니 2련대가 교하쪽으로 원정간 목적과 리유가 무엇인가, 언제쯤 돌아오겠다는 말도 없었는가고 물으시였다. 정치주임은 그 모든것을 잘 모르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제를 바꾸어 이렇게 물으시였다. 《다 원정가고 없으면 마안산에 남은건 동무들뿐이요? 동무들은 여기 남아서 뭘하고있소?》 《저 삼포밀영에 100여명이나 되는 〈민생단〉이 있습니다. 그자들을 감시하느라고 제가 남았지요.》 그러면서 지금 그들이 림강 마의하쪽으로 식량공작을 나가고 없다는것이였다. 그것은 천만뜻밖의 이야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슨 《민생단》이 그렇게 많다는건가, 식량공작을 나갈수 있는 정도라면 무슨 《민생단》이겠는가, 《민생단》이 확실하다는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정치주임은 자백서, 진술서, 심문조서 등 증빙문건들이 다 붙어있는자들이라고 하면서 컴컴한 방구석에서 큼직한 문서보따리를 끌어내는것이였다. 나는 그것을 보자 몸서리쳤다. 그런 요란한 문건이 다 붙어있으니 100여명이나 되는 그 사람들이 불원간에 군중심판을 받고 처형될것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였다. 이제껏 그처럼 황홀한 기대를 안고 찾아온 마안산은 우리를 이렇게 맞아주었다. 그처럼 신이 나서 나에게 이야기해주던 《대통령감》이나 최금산이도 입을 꾹 다물고 조심스레 위대한 수령님의 거동만을 살피는것이였다. 그런데 여기 마안산에서는 사람들의 상상을 뒤집어엎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곰팡이냄새가 물씬 풍기는 《민생단》문서보따리를 바라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산호동지에게 림강 마의하방향에 통신원을 띄워 《민생단》혐의자들을 다 데려오게 하라고 명령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민생단》문서보따리를 풀어놓으시고 한장한장 검토하기 시작하시였다. 그날밤을 꼬박 새우시고 다음날도 계속 뒤지고 또 뒤지시였다. 문서장들을 뒤져갈수록 위대한 수령님의 안색은 점점 더 흐려지시였다. 전령병들이 엇바꾸어가며 좀 쉬시라고, 마음을 진정하시라고 말씀드리였다. 아무 말씀도 없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침내 보시던 문서보따리를 탁 덮어버리시는것이였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마의하쪽에 가있던 《민생단》혐의자들이 삼포밀영귀틀집에 도착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체없이 정치주임을 데리고 그들을 찾아가시였다. 온기가 없는 귀틀집에는 람루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들이 꽉 차있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방안에 들어서시였는데도 인사를 올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머리를 푹 숙인채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을 측은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침묵을 깨뜨리시며 먼저 말씀하시였다. 《그동안 동무들의 고생이 막심했겠습니다.》 하지만 방안에서는 침묵만이 흐를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이리로 오신것은 2련대 동무들을 만나서 새 부대를 꾸려가지고 백두산에 데리고나가 싸우기 위해서인데 정작 와보니 쓸모있다는 사람들은 다 교하쪽에 원정을 가버리고 남아있는것은 몹쓸 사람들뿐이라고 한다, 《민생단》혐의문서장들을 뒤져봐서는 어느 한사람도 《민생단》이 아닌 사람이 없다, 문서장만 보고 판단을 내릴수 없다고 생각하였다고 하시면서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제입으로 하는 말을 들어봐야 정확한 견해를 세울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동무들이 스스로 속심을 툭 털어놓고 얘기해보라. 두려워하지 말고 눈치를 보지도 말고 솔직하게 말해보라.》 하지만 입에 빗장을 지른듯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짚으시여 동무가 《민생단》에 든것이 사실인가고 한 대원에게 따져물으시니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실이라고 대답올리였다. 가정형편으로 보나 살아온 경로로 보아서나 도저히 《민생단》이 될수 없는 동무들까지 스스로 《민생단》이라고 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귀틀집에서 나오시여 오래도록 홀로 숲속을 거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색을 방해할가봐 전령병들도 먼 발치에서 그이를 뒤따랐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인가 결심하신듯 수림을 빠져나와 귀틀집으로 향하시였다. 이때였다. 나무뒤에서 한 녀대원이 불쑥 나서며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씀드리였다. 《장군님, 저는 〈민생단〉이 아닙니다! 저는〈민생단〉혐의를 받았던 사람과 결혼했다는 리유로 〈민생단〉으로 몰렸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남편도 자기도 그리고 장철구어머니도 《민생단》이 아니라고 단호히 부인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안색이 대번에 밝아지시였다. 나는 그제서야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제껏 안타까이 사색을 이어가시며 마침내 결심하신것이 바로 그들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체없이 그를 데리고 귀틀집으로 들어가시였다. 귀틀집안에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머리를 떨어뜨린채 움직이지 않고있는 《민생단》혐의자들을 둘러보시며 못내 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머리를 들라. 나는 동무들의 죄를 따지고 판결을 내리자고 온 사람이 아니다. 백두산에 나가 함께 싸울 전우들을 찾아온 사람이다.》 그러시고는 여기 있는 동무들은 모두 나의 전우로 될수 없는 친일역적들이며 반동들이라고 말하고있는데 나는 그 말을 믿을수 없다, 어디 한번 동무들 스스로가 말해보라, 과연 동무들이 일제를 위하여 여러해동안이나 일부러 사서 고생을 해왔는가, 과연 동무들이 음산한 만주광야 빙천설지에서 고생해온것은 일본의 개가 되여 자기 혈육들과 동지들을 해치기 위해서였는가고 그들의 심장에 호소하시였다. 그제야 한 동무가 오열을 터뜨리며 말했다. 《제가, 제가 어떻게… 왜놈의 개가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왜놈의 개가 아닙니다! 〈민생단〉이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웨치였다. 《저도 아닙니다!》 《저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눈물을 뿌리며 저마끔 한마디씩 하였다. 장내를 지켜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윽고 정치주임을 불러 《민생단》문서보따리를 가져다 불사를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정치주임은 펄쩍 뛰면서 법적문건을 태웠다간 큰변이 난다고 하더니 두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놀란것은 그만이 아니였다. 아직 《민생단》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는 하였지만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런 문건을 한번 읽고는 생사람을 그 자리에서 죽이는것을 몇번 본 일이 있었던 나는 그것을 태워버리고 후환이 없겠는지 하는 위구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용단인가 하는것을 나는 훨씬 후에야 알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후날 자신께서는 나 하나의 목숨을 바쳐 100여명을 구원할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해낼 결의에 넘쳐있었다고 그때를 회고하실 때 나는 그것을 더욱 절감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생단》문서보따리를 불사를 준비가 다되기를 기다리시며 동무들을 오늘 누가 《민생단》이고 누가 《민생단》이 아니라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가 오늘 동무들에게 명백히 선언할것은 지금 이 자리에는 《민생단》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동무들자신이 다 《민생단》이 아니라고 부인하였기때문이다, 나는 동무들이 한 그 말을 믿는다, 동무들은 이 시각부터 백지상태로 돌아가서 다 새로 출발한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동무들은 지금 다같이 인생의 백지를 나눠가지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모두가 새 출발하여 조국과 인민과 력사앞에 떳떳이 내놓을수 있는 투쟁행적을 그 백지장들에 적어놓게 되리라고 믿는다. 나는 이 시각부터 동무들을 그토록 괴롭혀왔던 〈민생단〉혐의가 완전히 무효하다는것을 언명하는 동시에 동무들모두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대오에 들어섰다는것을 선포한다.》 그러시고는 그 저주로운 문서보따리를 쌓아놓은 무지에 불을 달게 하시였다. 마안산의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세찬 불길이 타올랐다. 순간 온 마당이 울음판으로 변하였다. 나는 《민생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여서 그들이 겪은 고충을 다 알수 없었다. 그러나 불에 타서 활활 흩날리는 《민생단》문서보따리앞에 쭈그리고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는 눈물의 바다를 보면서 이 세상 천하를 주고도 얻을수 없는 한없이 위대한 믿음의 바다에 잠겨 나도 목놓아 울고울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에 목이 메여 울었고 그이의 품속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된 그들의 전도를 축복해서 울었다. 다음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일부러 휴식겸 사냥을 조직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날 사냥에서 잡은 7~8마리나 되는 메돼지와 노루, 얼마 남지 않은 통강냉이와 밀가루로 저녁식사를 푸짐히 차리도록 하시고 만찬회뒤끝에는 오락회도 여시여 그들과 함께 춤도 추시고 노래도 부르시였다. 그리고 이어 그들로 대오를 편성하시였다. 그렇게 조직된것이 바로 7련대 4중대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이 얼마나 큰것이였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나는 물론 그들도 다는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몇명씩 조를 짜서 모두 자기 힘으로 싸울수 있는 준비를 하도록 그들을 적구로 파견하시였다. 물론 그때 그들의 무기는 변변치 않았다. 《민생단》혐의가 붙어 수인처럼 취급받다나니 그들에게는 막대기정도의 구실밖에 할수 없는 토퉁같은 무기와 누기차고 녹이 쓸어 못쓰게 된 서너발의 탄알밖에 차례지지 않았다. 이런 무장상태로 적과 맞서 싸운다는것은 승산이 없는 일이였다. 이제부터 한달사이에 총탄도 보충하고 총도 바꾸어 메고 오라, 총은 일본놈들에게 얼마든지 있다, 숲속에 엎디여있다가 적들이 지나갈 때 달려들어 총창으로 찌르기도 하고 총도 한방씩 쏘면서 적의 무기를 빼앗으라, 이것이 그들에게 맡겨진 첫 전투과업이였다. 금방까지 《민생단》딱지가 붙어 전투대렬에도 내세울수 없다던 그들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과 탄알을 그대로 휴대시킨채 적구로 보내시였으니 사실상 이것은 주력부대에 받아들인것에 못지 않은 또 하나의 큰 믿음이였다. 당시는 적아간에 특별한 계선이 따로 없었다. 고개 하나를 넘어가도 적이요, 강 하나를 건너가도 적이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적편으로 달아날수도 있었다. 부모처자들을 만나 따뜻한 구들에서 아무런 고생없이 편안히 살아갈수도 있었다. 그런데 전원모두가 총탄도 보충하고 총도 새것으로 바꾸어메고 지어 적의 기관총까지 빼앗아지고 그것도 한달이 아니라 보름만에 무사히 돌아왔다. 아무리 잡다사한 《허물》이 많다 해도 혁명을 하겠다는 그 하나의 생각이 그리도 소중하시여 한품에 꽉 껴안아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위대한 믿음이 그들모두를 따뜻한 온돌방이 아니라 설한풍 휩쓰는 산으로, 혁명의 품, 수령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는 생각에 나는 끓어넘치는 경모의 정을 안고 자꾸만 그이를 우러르고 또 우러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그들을 전투에 인입하시였다. 그것도 당장 전투에 참가시킨것이 아니라 한번 싸움을 해도 멋지게 해제끼도록 조준련습도 시키고 대렬훈련, 체육훈련도 충분히 하도록 하시였다. 워낙 싸움이라고 하면 앞자리를 양보할줄 모르던 펄펄 나는 싸움군들인지라 이쯤 되고보니 사기가 오를대로 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때에도 늘 4중대가 전투를 잘하여 모범이 되라고 하시며 그 긴박한 전투정황속에서도 중대를 보살피시고 이끌어주시였다. 중대가 조직되여 처음 진행한 무송-림강으로 통하는 도로매복전투를 비롯하여 송강하전투, 로령전투, 시난차전투 등 크고작은 전투들마다가 다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믿음과 보살피심속에서 승리로 결속된 빛나는 전투들이였다. 마안산에서 새 사단이 조직되여 맹활약하고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한때 일부 편협한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거나 그들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따로 활동하던 소부대, 소조들이 산지사방에서 찾아왔다. 맨먼저 찾아온것이 화룡출신의 반일자위대원들이였다. 이어 처창즈부근에서 활동하던 김택환동무네 소부대도 찾아오고 오도양차부근 수림지대에서 활동하던 김주현동무네도 달려왔다. 림강일대에서 활동하던 리동학동무가 인솔하는 소부대도 찾아오고 새 사단안에 잠정적으로 존재했던 첫 녀성중대의 중대장이였던 박록금동무네가 찾아온것도 그무렵이였다. 마치도 내물들이 모여서 바다로 흘러들듯이 곳곳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찾아 새 사단으로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마안산에 와닿았을 때까지만 해도 겨우 열댓밖에 안되였던 대오가 동강에 이르러서는 수백명으로 불어났으며 녹쓴 탄알도 없어 탄띠에 나무총알을 끼워가지고 다니던 무장부대가 이제는 무송현성과 같은 큰 성시도 마음먹고 들이칠수 있는 힘있는 부대로 자라났다. 그때 우리 4중대 성원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싸움군들이였다. 중대에는 포수도 3명 있었는데 유명짜한 명포수인 1소대장앞에서는 살아지나는 짐승이 없었다. 메돼지가 산판으로 냅다 뛸 때에는 눈가루만 뽀얗게 흩날리는데 거기다 대고 어방 한방만 갈겨도 그것들이 턱턱 나자빠지군 하였다. 2소대에도 독립군출신의 그런 명포수가 있었고 3소대에서는 내가 포수였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강전투때에 수류탄던지기명수로 뽑아 적진에 파견하시여 그이께서 내놓으신 《화공전술》의 승리에 크게 기여한 김택룡동무는 나의 분대장이였고 리두수동무는 나의 소대장이였다. 무송현성전투때에 적을 단꺼번에 여섯이나 찔러눕혀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빨찌산《녀장군》이라는 별호와 함께 금반지표창을 받은 김확실동무도 우리 소대에 있었다. 더더구나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께서 그때 우리 소대에 계시였다. 때문에 우리앞에서는 적들이 언제나 혼비백산하였고 우리는 언제나 련전련승하엿다. 사령부경위중대가 조직되기 전까지 사령부호위도 7련대 4중대가, 주로는 우리 3소대가 맡아하였다. 고난의 행군에 못지 않은 무송원정의 나날에 걸음걸음 사선의 고비를 넘으며 피로써 사령부의 안전을 지켜 싸웠고 두도령전투, 쌍산자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서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여 육탄으로 사령부를 결사옹위한 사령부의 제1결사대로서의 7련대 4중대의 공적을 어찌 다 말할수 있겠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두도령전투총화에서 사령부의 안전을 위해 희생적으로 싸운 7련대 4중대의 전투공로를 높이 평가하시여 중대에 경기관총을 상으로 수여해주시였다. 돌이켜보면 7련대 4중대에 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은 참으로 각별하고 뜨거운것이였으며 끝이 없었다. 학습과 규률, 당생활과 부대관리 그 어디에나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데가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보살피심속에서 우리 7련대 4중대는 전투력에 있어서나 조직성에 있어서나 규률성에 있어서 그리고 중대관리와 물질문화수준 그 모든 면에 있어서 조선인민혁명군적으로 본보기중대로 되였으며 그것이 일반화되여 전 7련대가 모범련대로 되였다. 이에 대해서는 회상기 《항상 부대관리를 알뜰하게 하여》를 비롯하여 많은 회상기들과 책들에 나갔기때문에 구태여 적지 않는다. 정녕 한몸이 그대로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여 위대한 수령님을 결사옹위한 7련대의 영웅적투쟁, 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엄혹한 시련속에서도 변함없이 혁명의 사령부를 제1선에서 견결히 옹호보위한 7련대의 그 자랑찬 공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서 이룩된것이였다.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속에서 지지리도 압박받고 기를 못펴던 자기들을 따뜻한 사랑의 한품에 안아 믿어주시고 키워주시고 내세워주신 어버이이시기에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조선의 운명으로, 민족의 태양으로 그리도 높이 모시고 받들었으며 수령님의 안녕보장을 전사의 가장 숭고한 도덕의리로, 신성한 의무로 간주하고 어떤 역경속에서도 그이를 결사옹위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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