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기

 

사무장 장아바이

지 병 학

 

항일무장투쟁시기 함께 싸우던 동지의 한사람인 장아바이는 나에게 잊을수 없는 많은 추억을 남겨놓았다.

나이가 마흔대여섯 되였으므로 우리는 늘 그를 《장아바이》혹은 《사무장아바이》라고 존칭삼아 불러왔다.

유격대에서 사무장이라고 하면 오늘 인민군대의 사관장격이다.

장아바이는 책임성이 강한 중대의 살림군이였으며 대원들의 친근한 맏형이였다.

1937년, 우리 독립려단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압록강연안으로 진출하던 간고한 행군과정에 나는 장아바이가 있는 중대의 정치지도원으로 파견되여 그를 처음 만나게 되였다.

지금도 조용히 눈을 감으면 늙수그레한 얼굴에 항상 인자한 표정을 담고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거뭇거뭇한 수염터, 약간 우묵진 서글서글한 눈, 무게있는 걸음걸이, 쾌활한 웃음소리 …

그는 중대의 살림살이를 알뜰히 꾸리기 위하여 밤잠을 모르고 애썼다.

그는 언제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나 중대의 물질생활형편을 환히 꿰들고있었다.

대원들은 배낭에 쌀이 얼마나 남아있으며, 누구의 옷이 낡았으며, 누가 몸이 편치 않은가. 지어는 어느 대원이 무슨 음식을 특별히 좋아하는가 하는것까지 구체적으로 알고있었다.

중대장은 물질생활보장을 위하여 그에게 2명의 대원을 붙여주었었다. 그러나 그는 중대의 취사도구를 항상 누구보다도 많이 메고다녔다. 대원들이 그를 도와주려고 하면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이것은 내 혁명임무요. 자기앞에 맡겨진 혁명과업은 자기가 끝까지 수행해야지 누가 대신해주겠소.》

어느날 새벽녘에 행군하던 중대가 휴식할 때 나는 장아바이의 곁에서 쪽잠이 들었다가 그가 잠꼬대를 하는 바람에 놀라서 깬 일이 있다.

그때 그는 대원들의 식사를 보장해야겠는데 쌀이 없다고 하면서 꿈결에서까지 걱정을 하는것이였다.

장아바이는 이처럼 자기 직무에 대한 책임성이 강한 사람이였다. 바로 이 책임성으로 그는 중대살림을 꾸려나갔으며 지휘관들을 방조하였던것이다.

그는 식량이 부족하면 앞으로의 행군과 전투를 예견하여 죽을 쑤어 먹자거나 혹은 식량공작대를 파견할데 대하여 중대장에게 제기하였으며 적정이 어려운 환경에서는 자신이 식량공작에 나가기도 하였다.

우리가 몽강현 금가툰 남쪽에 당도하였을 때도 벌써 며칠째 식량이 떨어졌었다.

당시의 지방형편은 유격대가 식량을 구하기 매우 어렵게 되여있었다.

일제는 유격대와 인민들간의 련계를 끊어버리려고 갖은 악랄한 술책을 다 썼던것이다. 놈들은 인민들을 강제로 집단부락에 몰아넣고 성밖으로의 출입을 엄격히 단속하였으며 강제로 특무임무를 맡긴 사람외에는 성밖에 나가서 살지 못하게 하였다. 때문에 성밖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은 할수 없이 형식상으로나마 특무임무를 받고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부락에 내려가 인민들과 련계를 취하고 식량을 구해온다는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나 장아바이는 이 복잡하고 어려운 정황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한몸을 희생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중대에 식량을 공급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지휘관들은 젊은 대원을 파견하려고 하였으나 장아바이는 극력 자기가 가야 한다고 제기하여 2명의 대원을 데리고 집단부락근처의 한 목재소로 떠나갔다.

직업이 없이 떠도는 사람으로 가장한 장아바이는 련사흘동안 목재소에 묵으면서 그곳 사람들과 면목을 익혀 친근해진 다음 그들속에서 선전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일제놈들과 자본가놈들때문에 목재소사람들이 피땀을 흘려 일하고도 몸에는 누데기같은 옷을 걸치고 굶주리며 인간다운 생활을 못한다고 줄곧 이야기하였다.

마침내 그들도 자기들의 가련한 처지에 대하여 참을수 없는 울분을 터뜨리게 되였다.

장아바이는 사흘째 되는 날에 자기 정체를 밝히였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이때 장아바이는 침착하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일제놈들과 그 주구놈들의 착취와 억압밑에서 시달리고있다.

우리 항일유격대는 당신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일제놈들을 반대하여 싸운다, 나는 당신들이 목재소에 나와 일하지 않으면 밥벌이를 할수 없기때문에 부득이 놈들에게 유격대활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겉으로나마 약속하고 나와있다는것도 알고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일제의 개노릇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 겉으로는 어떻게 보이든지 진심으로는 우리를 지지하고 도와준다면 당신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러자 속이 조마조마하여 앉아있던 사람들이 숨을 내쉬고 장아바이의 곁에 다가앉으며 유격대야말로 참으로 자기들의 심정을 알아주는 좋은 사람들이라고 감개무량해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무엇이든 요구하면 힘자라는껏 도와드리겠다고 팔을 걷고 나서는것이였다.

일제는 유격대와 인민들과의 사이에 쐐기를 박으려고 발악하였으나 장아바이는 국면을 완전히 뒤엎어놓았다.

장아바이는 그제야 비로소 식량문제를 내놓았다.

성안에 들어가 사흘분씩 타다먹는 조건에서 식량을 구하는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힘겨운 문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마를 맞대고 궁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치여 유격대를 도와주려고 애썼다. 드디여 그들은 집단부락안에서 성밖으로 나오는 거름마차속에 식량을 넣어가지고 놈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돌파하기로 하였다.

다음날 그들은 자기들이 먹을 식량을 타러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2중으로 선 보초놈들을 감쪽같이 속여넘기고 거름마차속에 넣어서 많은 식량을 사내왔다.

이리하여 장아바이는 끝내 식량을 구했을뿐아니라 금가툰일대의 세밀한 적정까지 알아가지고 부대의 숙영지로 무사히 돌아왔던것이다.

장아바이는 또한 량식이 떨어졌을 때에 락천적인 정신으로 대원들을 고무하고 그들의 사기를 높여주기도 하였다.

어느날 중대가 숙영지를 차지한 다음 나는 대원들을 돌아보려고 하였다. 그때 나는 한가지 걱정에 사로잡혀있었다. 오래간만에 숙영을 하는데 식량공작대가 돌아오지 않았었다. 계속되는 철야행군에 지칠대로 지친 대원들을 배불리 먹이고 푹 쉬게 하자던것이 그만 틀어지게 되였다. 숙영지에서의 휴식조직을 사무장과 미리 토의하였던 나는 식량공작대가 돌아오지 않아 장아바이가 지금 얼마나 안타까와할것인가 하고 생각하니 더욱 초조해졌다.

나는 그럴수록 대원들의 전투적사기를 고무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원들이 있는 한 초막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안에서는 대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것이 아닌가! 거기에서는 장아바이가 대원들가운데 올방자를 틀고앉아서 임진조국전쟁 당시 리순신장군이 왜적들을 통쾌하게 섬멸하던 이야기를 신이 나서 엮어내리고있었다.

왜적들에 대한 야유와 풍자가 섞인 그의 이야기가 어찌도 흥미있었는지 조선말을 잘 모르는 몇명의 중국동무들은 내가 들어서자 통역을 해달라고 매달리는것이였다.

한가지 이야기를 끝마친 장아바이는 대원들을 둘러보며 롱조로 이렇게 물었다.

《오늘 점심시간은 이렇게 지내보내게 되였소. 그래 배가 부르오?》

《예, 부릅니다!》

대원들은 이렇게 큰소리로 대답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어떤 대원들은 곱배기가 요구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더 하라고 야단이였다.

몇숟가락의 음식에 비길수 없는 크나큰 힘과 용기를 안겨주는 사무장의 혁명가다운 락천성은 대원들의 사기를 고무하였다.

유격대생활에서는 대원들의 배낭이 《량식창고》이기도 하다. 그런 조건에서 각자의 배낭에 있는 량식을 장악하고 지휘관의 의도에 맞게 조절하여 소비하며 랑비현상이 없도록 하는것이 중요하였다.

장아바이는 때때로 대원들의 배낭을 검열해보군 하였다.

그러다가 한번은 한 신입대원이 소금을 잘못 보관하여 많은 분량의 소금이 녹아 없어진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소금이 귀한줄을 모르는군!)

이렇게 생각한 장아바이는 행군하면서 그 대원에게 사람의 생활에서 소금이 없어서는 안된다는것을 여러가지 경험담을 통해서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소금을 보관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다음휴식때에 장아바이는 소금을 먼저 봇나무껍질로 싼 후 비옷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넣어 꽁꽁 동여매여 그 대원에게 주면서 습기가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것을 본받아 다른 신입대원들도 모두 소금을 더 잘 보관하게 되였다.

행군을 하건 휴식을 하건 장아바이는 항상 살림살이궁리를 하였다.

원래 여러 식솔을 거느리고 빈농으로 구차하게 살아온 그는 산나물과 버섯을 매우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휴식참이면 먹을수 있는 버섯과 산나물들을 수집하도록 하여 그것을 말려두었다가 급한 때를 에운 일이 많았다.

그는 늘 잎담배를 배낭에 넣고 다니면서 담배를 즐기는 대원들에게 요긴한 때에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 속담에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고 하였다.

장아바이가 대원들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들은 또 자기들의 사무장을 맏형처럼 더욱 존경하게 되였던것이다.

사무장 장아바이는 대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만큼 사업과 규률생활에서 요구성이 강했는데 그 엄격한 요구성은 그의 이신작칙과 밀접히 결부되여있었다.

험한 준령을 헤쳐나가며 수시로 전투를 진행하는 가운데 특히 신입대원들은 새옷을 입어도 며칠 못가서 바지무릎이 해지군 하였다.

장아바이는 사무장으로서 어떤 간고한 환경속에서도 항상 대원들이 옷차림을 단정히 할것을 요구하였으며 자신의 옷차림부터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단련되지 못한 일부 신입대원들가운데는 피곤에 몰리여 옷차림에는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어느날 휴식하는 대원들을 돌아보던 장아바이는 한 신입대원이 무릎이 해졌는데도 피곤에 못이겨 쪽잠에 든것을 보았다. 장아바이는 그 대원을 깨워서 바지를 기워입으라고 요구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신입대원이며 행군과 전투에서 아직 단련이 부족하니 남보다 더욱 피곤하리라는것을 생각하고 곁에 가서 조용히 앉았다.

바늘과 실을 꺼낸 그는 잠든 대원이 깨여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해진 무릎을 기워놓았다. 마감으로 실을 끊으려고 할 때 그만 그 대원이 눈을 떴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하다가 사무장아바이가 제 바지무릎을 말끔히 기워놓은것을 알자 그 대원은 《아바이!》하며 목이 꽉 메여 다음말을 잇지 못하는것이였다.

장아바이는 빙그레 웃으며 《잠귀가 여간 밝지 않군!》하고 롱담을 하면서 그 대원에게 아직 시간이 있으니 더 쉬라고 한 다음 이렇게 타일러주었다.

《옷이 해지면 구멍이 작을 때 기워야지 그냥 두면 점점 더 커지오. 제때에 기워입으면 보기에도 좋고 옷을 더 오래 입을수 있지 않겠소. …매사에 결함이 생겨도 이와 마찬가지로 커지기 전에 고치는것이 아주 좋은 품성이요.》

아바이의 이 부드러운 말속에는 어머니의 사랑보다도 몇배나 더 강하고 뜨거운 정이 담겨있으며 또 그 말 한마디한마디는 어린 대원의 혁명적자각을 채찍질하며 키워주는 엄한 요구이기도 하였다.

그 다음부터 그 어린 대원의 규률생활이 얼마나 몰라보게 변하였는가는 여기서 더 말하지 않겠다.

명령이나 지시만 가지고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기 어렵다. 동지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각성시켜주려고 할 때 자신의 모범과 뜨거운 사랑으로 상대방의 심금을 울려준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힘을 나타내는것이다. 자각성에 기초한 우리 혁명대오의 강철같은 규률은 이렇게 강화되였다.

장아바이는 완강하고 굳센 의지와 생활력을 가지고 중대의 살림을 꾸렸으며 적과의 싸움에서는 항상 용감하고 대담하였다.

당시 류하현일대에서 조중인민의 극악한 원쑤인 악질위만군 고위장교 소본량이라는 놈을 요정낸 전투가 있은 때였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장아바이는 후방사업을 하였다.

아군의 매복에 감쪽같이 걸려든 놈들은 불의의 타격을 받아 총 한방 변변히 쏘아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손을 들고말았다.

이때 삼밭에서 후방보장을 하던 장아바이가 길가의 도랑으로 적 세놈이 벌렁벌렁 기여서 들어오는것을 발견하였다.

장아바이는 이때 수류탄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총을 쥔채 다른 한손에 감자만한 돌멩이를 수류탄처럼 움켜쥐고 길복판에 나서면서 《뻬뚱!》(꼼짝말라)하고 불호령을 질렀다.

놈들은 벽력같은 고함소리에 놀라 총을 놓고 도랑에서 기여나왔다.

장아바이는 총 3자루를 걷어메였다.

그는 포로한 놈들을 앞세우고 전투가 끝난 진지로 왔다.

이것을 본 대원들은 아바이가 웬일이냐고 놀라서 물었다.

그러자 장아바이는 손에 쥐였던 돌멩이를 대원들앞에 던지며 포로놈들을 보고 《돌멩이와 수류탄도 분간 못하는 놈들이 감히 유격대와 싸우자고 접어드는가, 어리석다!》하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면서 손을 내둘렀다.

승리한 전장에서 통쾌한 웃음이 터져올랐다.

장아바이는 장백현의 어느 화전막에 처자를 남겨두고 용약 입대하였었다.

사령관동지로부터 교양받고 단련된 그는 그후 그이의 명령을 받들고 독립려단에 와서 사업하게 되였던것이다.

그의 혁명가다운 생활기풍은 그가 언제 어디서나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대로 살며 싸우려고 이악하게 노력한 결과에 얻어진것이였다.

장기간에 걸친 간고한 행군에서 우리가 거둔 크나큰 승리가운데서는 장아바이의 숨은 공적이 적지 않다.

보이지 않는 모든 구석에서 말없이 중대의 살림을 꾸리고 중대의 전투승리를 받들어주던 장아바이!

나는 높은 존경과 잊을수 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어제날의 우리 사무장 장아바이를 자주 회상한다.

 

-> 이 도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적보호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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