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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의 나날 전 봉 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따라 손에 총을 들고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던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그 나날에 있었던 일들은 지금도 나의 머리속에 생생이 떠오른다. 1934년 겨울, 북만일대에는 례년에 드문 많은 눈이 내렸다. 쓰빠상디의 골짜기는 온통 눈사태에 묻히여 두세길을 넘는 이깔나무가 웃초리만 보일 정도였다. 부대는 도보로 행동하기가 참으로 곤난하게 되였다. 대오가 자유자재로 신속히 기동할수 없게 되자 우리는 모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다. 하루도 쉬임없이 더 많은 원쑤를 쳐부셔야 하겠는데 어떻게 한곳에 박혀있겠는가. 적개심에 불타는 대원들은 생눈속을 헤치면서라도 적을 맞받아나가서 때리자고 일치하게 일어섰다. 유격전술상 신속한 기동은 가장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지휘부에서는 심중한 연구와 토의를 거듭하였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라도 조성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적을 잡아야만 하였다. 그러던중 드디여 지휘부에서는 전체 성원들이 스키를 타고 행동할수 있도록 속히 준비할것을 명령하였다. 이 조치는 대원들을 크게 고무하였다. 깊은 눈이 쌓인 우로 스키를 타고 달린다면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온갖 전술을 배합하여 적들을 수세에 빠뜨리게 하고 놈들을 롱락하면서 격파할수 있을것이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스키가 없었다. 이리하여 우리앞에는 자신의 손으로 스키를 만들고 또 그것을 타고 능란하게 행동할수 있도록 훈련할 과업이 제기되였던것이다. 당시 내가 속한 중대에는 강원도에서 온 황해수동무만이 스키를 타본 경험이 있었다. 그가 스키제작사업과 훈련에 누구보다 앞장을 서게 되였다. 우리는 근거지인민들속에서 몇개의 목수도구를 얻어가지고 쓰빠상디치기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중국인 몇사람이 사는 귀틀집부근에 막을 치고 스키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였다. 근거지인민들이 지성껏 모아준 목수도구는 몇개 되지 않았고 그나마 낡은것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일이 있든지 스키를 만들어 타고서야만 원쑤를 칠수 있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해나갔다. 살을 에이는듯 한 눈보라가 앞을 가리고 혹한이 뼈속깊이 파고드는 심산속에서 눈무지속을 헤쳐가며 우리는 들메나무를 찍어왔다. 그것으로 스키감을 만들자는것이였다. 처음에는 가까운 곳에 들메나무가 있었으나 점차로 먼곳에 가서 찍어와야 하였다. 그리고 변변치 못한 도구마저 불과 몇개 안되였기때문에 우리는 밤을 밝히며 교대로 나무를 깎았다. 목수일에 서툴고 피로가 엄습해왔으나 우리는 일을 하루라도 앞당길수록 더 많은 적을 잡을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손을 다그쳤고 피로를 이겨냈다. 들메나무널을 휘는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칫하면 금이 가거나 부러졌다. 눈무지속을 헤치며 찍어다가 오랜 시간 공들여 깍고 다듬어 만든 스키감이 부러질 때는 참으로 안타까왔다. 그럴수록 우리는 용기를 잃지 않고 나무를 더 찍어오고 더 빨리 그것을 다듬어 작업을 진척시켰다.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고 기재도구도 충분치 못한 조건에서 우리가 스키를 만들어낸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혁명과업수행을 위해서는 우리에게 없는것, 부족한 모든것을 자기자신의 힘과 지혜로 해결하면서 싸워나가자는 열화같은 혁명정신이 우리들로 하여금 스키제작에서 성공하게 하였다. 얼마후 전체 성원들이 탈수 있는 스키가 마련되였다. 고대하던 훈련이 시작되였다. 황해수동무가 스키를 타는 법을 초보적으로 설명해주고 시범적으로 먼저 타보인 다음 모두들 평지에서 타기 시작하였다. 막상 스키를 타고 일어서니 보던것과는 달리 힘들었다. 자칫하면 옆으로 넘어지거나 두다리가 벌어져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물러앉기가 일쑤였다. 배낭도 총도 메지 않고 지팽이를 짚고 움직이는데도 쉽지 않았다. 온종일 눈무지속을 뒹굴다싶이 하면서 완강하게 훈련을 진행한 결과 점차 스키에 익숙해지면서 약간 경사진 곳을 유유히 내릴수 있게 되였다. 이렇게 준비된 토대우에서 며칠후 지휘부에서는 훈련장을 경사가 좀 급하고 통나무그루터기가 이따금 불쑥불쑥 머리를 쳐든 곳으로 옮기도록 했다. 새로 선택된 훈련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처럼 급한 경사지를 내리달리고 뛰여오르는것도 힘든 문제이겠지만 나무그루터기를 요리조리 피해나가려면 웬만한 기술을 가지고는 안될것 같다. 스키타는 기술을 훨씬 높여야겠다.) 대원들과 함께 훈련장을 돌아보던 중대장 리창식동무는 훈련장을 이런 곳으로 택한 지휘부의 의도와 앞으로의 훈련과업을 말하였다. 《…모든 훈련은 실전과 근사한 조건하에서 진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산악이 험하고 수림이 들어찬 곳에서 행동하기때문에 그와 똑같은 복잡한 지형조건에서 숙련되지 않고서는 적고 싸울수 없습니다. 때문에 지휘부에서는 동기전투에서 꼭 필요한 스키타기를 배우되 그의 훈련은 실전과 가장 근사한 조건에서 진행할것을 요구한것이요. 훈련장은 바로 원쑤를 족치는 전투장이라는 생각으로 속한 시일내에 전체가 스키선수로 됩시다. 자신있습니까?》 우리는 기세드높이 자신있다고 대답한 다음 경사지에서의 훈련에 진입하였다. 황해수동무가 경사지를 달릴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문제들을 말하고 시범동작을 보여주었다. 그는 눈보라를 뽀얗게 일으키며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경사지를 내리달렸다. 적들이 있는 곳으로 저렇게 쏜살같이 기습해 들어가면서 놈들을 족친다면 얼마나 통쾌할것인가! 나는 가슴이 부풀어오름을 느끼면서 련습에 착수하였다. 여기서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냥 넘어지는것이 아니라 일단 넘어지면 미끄러져 내려가고 그러다가 깊은 눈무지속에 푹 박히거나 눈속에 묻혀있는 나무그루터기에 걸려들군 하였다. 처음부터 아슬아슬한 경우를 겪고보니 다음번에는 좀 내려가기가 꺼렸다. 그러나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만한 난관을 두려워해서야 어떻게 탄우속을 뚫고 적진으로 돌입하겠는가! 훈련에서의 성과는 인차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다 초조한 심정이였다. 훈련이 하루이틀에 식은죽먹기로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맨주먹으로 스키를 만들기 시작한 때로부터 우리는 참으로 많은 정력을 들이고 땀을 흘렸는데 성과는 좀처럼 오르는것 같지 않아서 마음이 무겁기도 하였다. 하자고 결심해서 못해낸것이 무엇인가? 적수공권으로 일어나서 오늘과 같은 무장대오도 만들지 않았는가. 백번천번 하느라면 못할 일이 없을것이다. 더 이악하게 달라붙자. 우리는 이렇게 결심하고 나섰다. 훈련은 더욱 간고해지기 시작하였다. 넘어졌다가는 벌떡 일어나서 또 달리고 눈무지속에 빠져들어갔다가는 이를 악물고 헤쳐나와 마지막까지 내리달렸다. 목덜미와 소매에 눈가루가 들어차고 몸에서는 진땀이 나서 잔등이 푹 젖었다. 간신히 바닥까지 내려가면 기진하여 주저앉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면 훈련에 착수할 때 우리들이 다진 결의, 원쑤를 치러 나가지 못해서 애타하던 때를 생각하였으며 중대장이 훈련장에서 하던 말을 상기하였다. …훈련장은 바로 원쑤를 족치는 전투장과 같다. 전투장에 나선 전투원이 어떻게 힘들다고 주저앉을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런 생각끝에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나군 하였다. 내려가는것 못지 않게 올라가기도 힘들었다. 우리는 혁명가요를 부르며 산꼭대기를 향하여 한치한치 톺아올라가군 하였다. 이렇게 훈련에 열중하다보니 다리가 뻣뻣해지고 멍울이 들어서 움직이기조차 힘겹게 되였다. 그러나 그 어떤 육체적인 피로와 난관도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배우겠다는 들끓는 정신을 꺾을수는 없었다. 훈련을 계속하니 다리의 멍울은 저절로 풀렸다. 훈련은 다음단계로 넘어갔다. 그것은 배낭과 총을 메고 달리는 련습이였다. 중대장동무가 나와 함께 가지런히 달렸다. 앞장선 사람의 뒤에서 눈보라가 일어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커다란 나무그루터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피하려고 급히 몸을 기울였는데 등에 진 배낭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그만 휘청거리다가 넘어지고말았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중대장동무도 같은 경우에 부닥쳐 넘어졌다. 나는 넘어지는 순간 《총!》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총이 나무그루터기에 부딪치면 상하기마련이기때문이였다. 나는 눈무지에 뒹굴고 미끄러지면서도 총을 가슴에 꼭 부둥켜안고있었다. 그러나 내가 눈무지를 헤치고 일어섰을 때는 스키의 앞코가 뚝 부러져있었다. 훈련기재이며 동시에 전투기재인 스키에 대하여서는 총과 같이 관심을 돌리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 순간 뼈아픈 자책을 느꼈다. 부러진 스키를 메고 산꼭대기로 올라갈 때 중대장동무가 나의 곁으로 다가와서 《몸이 상한데는 없소?》하고 물었다. 다친데가 없다고 나직이 대답하면서 나는 함께 넘어졌던 그의 스키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흠 하나 없이 그대로 있었다. 《상한데가 없으니 다행이요. 좀 더 조심해서 련습해야겠소. …》 그런 다음 중대장동무는 황해수동무에게 지시하여 예비로 만들어둔 스키 한조를 나에게 주도록 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때 가서야 중대장동무가 손과 무릎에 상처를 입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는 자기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무기와 스키를 보호함으로써 흠 하나 가지 않게 하였던것이다. 부러진 스키를 손에 들고 서서 한쪽다리를 끌며 천천히 지휘부쪽으로 돌아가는 중대장동무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스키가 없으면 우리는 적을 잡으러 떠날수 없다. 그러니 스키는 총과 다름없는 전투기재이다. 총을 부러뜨린것과 다른점이 무엇인가? 중대장동무는 자기 몸이 상하면서까지도 무기와 전투기재를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는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지 않았는가!…) 황해수동무가 나에게 새 스키를 내주었으나 나는 그것을 선뜻 받을수가 없었다. 나는 중대장동무가 대원들앞에서 말없이 보여준 그 높은 훈련정신에 감동되였던것이다. (나도 그런 정신으로 훈련에 참가하자.) 그후부터 나는 훈련장에 나설 때마다 남보다 더 긴장하고 더 많은 땀을 흘리려고 노력하였다. 날이 갈수록 훈련의 성과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약 보름동안에 걸쳐 온갖 난관을 극복하며 정력적으로 훈련한 끝에 우리는 모두가 스키《명수》로 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1934~1935년 겨울에 보마정자, 서림자, 신흥동, 무원일대로 스키를 타고 기동하면서 수많은 우회, 포위, 기습전투들을 하였다. 한번은 로인구에서 전투한 일이 있었다. 말편자처럼 생긴 골안에 10여호의 민가가 자리잡고있는데 그곳에 주둔했던 우리는 적이 온다는 련락을 받고 재빨리 뒤산으로 올라갔다. 200여놈의 적들이 벌방으로부터 밀려오고있었다. 우리는 뒤산에 매복하였다가 집중사격으로 적을 타격한 다음 패주하는 적들을 추격하여 산릉선으로 스키를 타고 달려나갔다. 이 전투에서 우리는 수많은 적들을 살상하였다. 놈들은 눈무지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우리를 보고 기겁을 하며 쓰러지군 하였다. 매일과 같이 도처에서 통쾌한 섬멸전이 벌어졌다. 깊은 눈속에 묻히여 유격대가 《꼼짝을 못할것이다》라고 방심하던 놈들은 우리의 불의의 타격에 여지없이 녹아나군 하였다. 오늘 우리가 전투임무에 근거하여 전장에서 필요한것을 배우라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오직 우리의 힘으로 끝까지 적을 타승하고야말겠다는 각오밑에 모두다 전투훈련에 이악하게 달라붙어 일당백으로 준비된다면 그 어떤 조건과 환경속에서라도 언제든지 적들의 침공을 일격에 격파분쇄할수 있는 전투준비를 튼튼히 갖추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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