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기

 

원쑤들의 책동을 제때에 분쇄하였다

손 종 준

 

항일유격대원들은 어느때 어느곳에서나 원쑤에 대한 혁명적경각성을 높여야 합니다. 교활한 적들은 대병력을 동원하여 우리 항일유격대를 공격하는 한편 우리의 대렬안에 여러가지 교활한 방법으로 간첩, 암해분자들을 들여보내여 내부로부터 우리의 전투력을 해치려고 꾀하거나 우리 활동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책동하고있습니다.

우리 대렬안에 기여든 간첩 한놈은 총을 쏘며 달려드는 적 수백수천명보다 더 위험한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각성을 높이고 모든 사물현상을 평범하게만 보지 않고 계급적눈으로 예리하게 보고 정치적으로 판단한다면 아무리 교활하고 음흉한 간첩일지라도 우리는 그놈들의 정체를 제때에 발가놓을수 있는것입니다.

 이것은 1940년초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백석탄밀영에서 군정학습을 할 때 그이께서 갓 입대한 우리들에게 자주 강조하신 말씀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적간첩, 암해분자들과의 투쟁은 혁명대렬의 순결성을 보장하며 혁명투쟁과 전투를 성과있게 진행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러므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반간첩투쟁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의 하나로 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에 항상 충직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그이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일상적인 생활과 전투행동의 모든 과정에서 예리한 계급적눈과 정치적각성으로 반간첩투쟁을 끊임없이 함으로써 대오안에 기여든 적간첩, 암해분자들을 제때에 적발폭로하군 하였었다.

1940년초에 있은 일이다.

당시 일제는 중국에서 침략전쟁을 더욱 확대하는 한편 쏘만국경을 위협하면서 제놈들의 소위 《후방의 안전》을 기하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악랄한 《토벌》을 발악적으로 감행하였다.

적들은 군사적공세뿐아니라 혁명군을 내부로부터 허물어보려고 간첩, 암해분자들을 우리 대렬내에 잠입시키였다.

혁명군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속에 끼여들어오는 적간첩, 암해분자들을 제때에 식별하여낸다는것은 결코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니였다.

이해 2월 하순이라고 기억된다. 송화강류역 백석탄밀영에서 군정학습을 끝마친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혁명의 기치를 높이 추켜드신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하에 두만강연안으로 행군하였다.

입대한지 오래되지 않은 나에게 있어서는 처음으로 되는 먼거리행군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휘성원들에게서 행군준비정형에 대한 보고를 구체적으로 받으시고도 친히 중대에 나오시여 대원들이 배낭뒤에 예비신발을 처맨것까지 풀어보시면서 일일이 보살피시였다.

행군은 그이께서 예견하신대로 처음부터 힘들었다. 우리는 나무들도 쩡쩡 얼어터지는 추운 겨울에 허리까지 치는 생눈길을 헤치고 나아가야 했다. 수림속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더욱 어려웠다. 그때 우리는 걸어갔다기보다 눈속으로  헤염쳐가는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이께서는 하루에도 대오의 앞뒤를 몇번씩 다니시면서 힘들어하는 동무들을 부축하여주시면서 고무해주시였다.

대원들은 모두 그이의 어버이같은 보살피심을 받으며 국경지대에로 나간다는 흥분으로 하여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고 힘차게 걸어나갔다. 그러나 신입대원들에게는 이 행군이 고된것만은 사실이였다.

내가 속한 중대의 작식대책임자는 몸이 건장했었다. 그는 행군이 시작되자 어린 동무들의 장구류들을 빼앗다싶이하여 메다주기도 하고 숙영지에 도착하면 곧 하루의 행군에서 지친 대원들에게 공급할 더운 음식을 마련하느라고 분주히 돌아갔다. 그래서 동무들속에서는 그에 대한 평판이 좋았다.

이 작식대책임자는 우리가 백석탄밀영에서 군정학습하기 몇달전에 입대하였었다. 그는 지방에서 혁명투쟁을 하다가 놈들에게 체포되여 감옥생활을 하던중 탈옥하여 그길로 혁명군에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는 처음에 내가 속한 4중대 작식대원으로 배치되였었다. 나이도 있고 일상생활에서 아주 부지런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중대사무장이 전투에서 부상당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자 그가 작식대사업을 림시 책임지고 맡아보게 되였다.

우리는 행군하다가 숙영지에 이르면 지친 피곤도 참고 그의 일손을 도와 물을 길어오기도 하고 나무도 해왔다. 그때마다 그는 우리 신입대원들을 보고 쉬라고 하면서 《혁명군생활이 마음먹은것보다도 힘들지?》하고 묻군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그가 신입대원들을 념려해서 하느라는 이 말을 두세번 듣게 되니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우리 조국을 찾는 혁명의 길이 힘들지 않고 쉽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가 갓 입대한 우리들에게 부질없이 이렇게 가끔 묻는것이 속으로 은근히 화가 나서 혁명군생활이 힘들지, 힘들지 하고 곱씹어 강조해서 어쩌자는건가, 누구를 떠보자는건가 하고 한마디 하고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참고 다시 생각하군 했었다.

(우리는 로대원들의 모범을 따라 하루빨리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무장하고 곤난속에서 자신을 더욱 단련해야 한다!)

어려운 행군은 계속되였다. 량식마저 떨어져 대원들은 끼니를 건느면서 행군을 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오직 사령관동지께서 구상하신 새 작전을 훌륭히 수행할 한마음으로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작식대책임자는 행군초기와는 달리 점차 자기 몸 하나도 이기지 못하여 점점 뒤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일부 동무들가운데서는 그가 어디 아픈 모양이라고도 했고 지방에서 혁명투쟁을 했다는 사람이 요만한 곤난에도 저렇게 맥을 추지 못하는가고도 했다.

나의 곁에서 걷던 송석동무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어디 편치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는 별로 아픈데는 없다고 대답하면서 어쩐지 송석동무가 항상 자기 곁에 있어 도와주었으면 하는 심정을 보이였다.

그의 심정을 리해한 송석동무는 자기에게 맡길수 있는 일은 맡기고 좀 쉬라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대원들과 같이 지친 걸음을 옮기던 그는 행군이 감옥생활을 할 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하면서 서글프게 웃는것이였다.

그때 그의 뒤에서 걸어가고있던 송석동무는 이 말을 무심히 듣고 지나지 않았다.

지금 걷고있는 행군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어떻게 자유없는 감옥생활과 대비해서 말할수 있을가?

감옥에서 놈들이 정치범에게 들이대는 《전기고문》, 《비행기고문》 등 여러가지 고문에서는 육체적고통도 심하겠지만 그보다도 원쑤들의 철쇄에 얽매여서 놈들과 싸우지 못하는 정신적고통이 더 심하고 그 고통이야말로 참기 어려울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 우리가 행군에서 겪는 곤난이야 원쑤를 치고 승리하기 위한 곤난이니 그것은 얼마든지 견디여낼수 있는것이 아닌가.

송석동무는 그가 한 말이 사상적으로 모호한데 대해서 여러가지로 생각되는 점이 있어 분대장 손태춘동무에게 자기의 의견을 말하였다.

그러자 분대장은 그에게 말 한마디라도 계급적립장에서 분석해보는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면서 지친 몸으로 행군하자니 힘드니까 그가 롱으로 그런 말도 한것이 아니겠는가고 하였다. 그리고 분대장은 사령관동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우리는 동지를 우선 믿고 도와주며 투쟁속에서 검열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물론 송석동무는 그런 원칙에서 작식대책임자를 대하고있었지만 그의 머리가 병들어있구나 하는 느낌만은 지울수 없었다.

해가 떨어지자 부대는 깊은 수림속으로 들어가 숙영하게 되였다. 송석동무와 나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작식대원들의 일손을 도와주었다.

작식대책임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송석동무가 물을 길어가지고 오다가 그가 2소대동무들과 같이 불을 쬐고있더라는것을 동무들에게 말하는것이였다.

작식대원들은 대원들의 배낭에서 털어낸 얼마 안되는 쌀로 흰죽을 쑤었다.

죽이 다 끓었을 때 그가 취사장에 나타났다. 그는 손을 썩썩 비비면서 화구앞으로 다가가 앉으며 누구에게라 없이 풀뿌리라도 좀 캐볼가 하여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캐지도 못하고 이제야 온다고 말하였다.

그의 말을 듣는 우리는 2소대에 있다가 오고는 왜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속이는것일가 하고 저마다 의문을 가지였었다.

앉아서 불을 쬐던 그는 한 작식대원에게 무엇을 끓이는가고 물었다. 죽을 쑤었다는 대답을 들은 그는 가마뚜껑을 열고 《쌀이 어디서 났소?》하고는 다 되였으면 검식을 하고 빨리 먹이자고 하면서 죽 한그릇을 퍼가지고 화구앞에 앉아서 게눈감추듯 퍼먹는것이였다.

이것을 본 우리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작식대사업을 책임진 사람이 검식을 한다고 하면서 한사람에게 반그릇씩도 못돌아갈 죽을 저렇게 한그릇이나 먼저 퍼내여 먹을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동무들을 생각한다면 점심식사도 하지 못하고 허리까지 빠지는 생눈판을 헤치고 온 그들에게 먼저 죽을 퍼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우리들의 머리속엔 백석탄밀영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었다.

어느날 저녁에 내가 송석동무와 같이 병실주변보초를 선 다음날 아침이였다. 작식대책임자는 저녁에 먹고 남은 떡을 남겨두었는데 밤사이에 모두 없어졌다고 하면서 보초병들을 덮어놓고 의심하였다.

사실 그때 우리는 먹을것이 조금만 생겨도 혼자 먹으려는 사람은 한 동무도 없었고 반드시 동무들과 같이 나누어먹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떡이 없어졌다고 하는 그의 말이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밤사이에 없어진것이 틀림없다고 계속 주장하므로 일부 동무들은 갓 입대한 보초병들중에서 누가 손을 댄것이 아니겠는가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보초를 선 우리도 혹시 누가 손을 댄것이나 아닌가 하며 눈치를 보았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밤에 같이 섰던 보초병들가운데는 있는것 같지 않았다.

아침식사를 하고났을 때 작식대책임자는 전체 동무들앞에서 자기자신만 생각하고 혁명전우들을 생각할줄 모르는 혁명가답지 못한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비판하였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는 그의 행동은 그때 그가 말한것과는 전혀 다르지 않는가?

지하투쟁도 했고 감옥생활도 하여 일정하게 혁명적시련을 겪었다는 사람이 말과 행동은 다르게 한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그날밤 사령부에서는 행군에서 피로해진 대원들에게 휴식할것을 명령하면서 일부 성원들로 식량공작을 떠나 보냈다.

다음날 한낮이 되였어도 식량공작에 나갔던 동무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더 기다릴수가 없어 눈을 헤집고 풀뿌리를 캐기 시작하였다. 봄도 아닌 겨울에 풀뿌리를 캔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우리가 언땅을 뒤집어가며 애써 풀뿌리 몇개를 캤을 때 식량공작에 나갔던 동무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화라즈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목재소(일제놈이 경영하였다.)를 습격하고 많은 식량을 로획하여 가지고왔다.

작식대원들은 행군에서 몹시 지친 동무들에게 푸짐히 먹일수 있게 가지고온 소고기를 다 삶을것을 작식대책임자에게 제의했다. 그러자 그는 상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이 없지 않소. 그러나 지금형편에서 예비를 조성하는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보오. 앞으로 우리는 이보다 더 어려운 곤난에 부닥칠수도 있지 않겠소. 좀 곤난하지만 예비를 조성하고 먹는것이 어떻겠소.》

그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많은 량심상가책을 받았다. 생기면 생긴대로 먹으려는 생각이 얼마나 짧은 생각이였는가를 뉘우쳤던것이다.

우리는 그의 말대로 예비를 남겨놓고 소고기를 삶았다.

식사준비가 다 되여서 우리들은 모두 식사를 하였다. 삶은 소고기를 먹고나서 송석동무가 들어갔던 눈이 대뜸 쑥 나오는것만 같다고 말하는 바람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송석동무는 밤이 이슥해서 보초를 섰다. 동무들은 모두 잠을 자고있었다. 우등불가는 조용하였다. 그런데 작식대사업을 책임진 동무만은 그때까지도 취사장에서 무엇을 하고있었다.

송석동무는 그가 무엇을 하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는 아침 일찌기 행군을 시작할 부대의 아침식사준비를 하는 모양이였다. 그는 여느때없이 다른 작식대원들은 재우고 자기 혼자서 서둘고있었다. 그런데 그의 행동에서 좀 이상하게 생각되는것은 쌀씻은 물과 고기씻은 물이라야 그리 많지도 않겠는데 어쩐지 그는 자주 취사장밖으로 소래를 들고나와 무엇인가 땅속에 묻어버리는것이였다. (혁명군에서는 숙영할 때 취사장에서 나는 쌀씻은 물이나 고기씻은 물은 땅속에 꼭 묻어버렸었다.)

밤 12시가 지나서야 그는 아침식사준비를 다 끝냈는지 병실로 들어가 자리에 눕는것이였다. 사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그저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에서 생나무 튀는 소리가 이따금 날뿐이였다.

얼마후 보초교대가 진행되였다. 송석동무는 보초를 교대하고 들어와서 우등불곁에 앉아 몸을 녹이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잠자는 동무들의 얼굴을 비치였다.

그런데 송석동무가 앉은 맞은켠에 누운 작식대책임자는 그때까지 잠들지 않고있었다.

몸을 녹이고 자리에 가서 누운 송석동무의 머리는 복잡하였다.

그가 왜 아직 잠을 자지 않고있을가? 아침식사를 보장하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하여 잠들지 못했을가, 그렇지 않으면?!…

송석동무는 보초서던 때의 의문으로 하여 쉬 잠들지 못하고있었다. 그런데 작식대책임자는 얼마후 잠들어버리였다.

보초를 서고 피곤했던 송석동무도 얼마후 잠들어버리였다. 송석동무가 깨여났을 때 작식대책임자는 벌써 다른 작식대원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다 해놓았었다.

중대장동지는 나에게 식사를 먼저 하고 보초를 교대하였다가 날이 밝자 부대가 숙영지를 떠나면 소대장동지와 함께 숙영지주위를 한바퀴 돌며 숙영했던 흔적을 없애고 부대를 따라설데 대한 임무를 주었다.

나는 취사장으로 가서 작식대책임자에게 보초교대를 나가기 위해 식사를 먼저 줄것을 말했다.

그러자 그는 여느때없이 자기가 직접 밥과 국을 떠주었다.

소대장동지와 같이 보초교대에 나가려고 할 때 송석동무가 와서 지난밤에 보초근무를 서면서 그의 행동에서 자기가 느낀것을 나에게 말해주고 좀 잘 살펴보라고 하였다.

내가 근무에 나가 얼마 안있어 날이 밝았다. 부대는 계획한 시간에 숙영지를 떠났다. 소대장동지는 천막을 쳤던 주위를 돌았고 나는 취사장주위를 돌았다.

나는 취사장주위를 돌며 적에게 사소한 흔적으로 될수 있는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찾아 메웠다. 그런데 가로누운 진대나무밑에 붉은색이 약간 스민 눈무지가 눈에 띄였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소고기 씻은 물을 버리고 묻어버린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발길로 눈무지속을 헤집었다. 그런데 그속에서는 놀랍게도 소고기덩어리가 여러개 나왔다.

 (아니, 이것은 중대가 먹지도 않고 예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겨놓은 소고기가 아닌가. 대오에 나쁜 놈이 기여들었구나! 어느 놈일가?!)

나는 급히 소대장동지를 불렀다. 소대장동지는 눈앞에 나타난것을 놓고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가 한곳이 아닐수 있으니 더 찾아가지고 빨리 부대를 따르자고 말하였다.

소대장동지의 말을 들은 나는 이러저러하게 작식대책임자에 대하여 생각되는 점이 있었다.

백석탄밀영에 있을 때 남겨두었던 떡이 밤사이에 없어졌다고 믿어지지도 않는 소리를 하면서 보초병들을 의심함으로써 혁명동지들간에 싸늘한 분위기가 돌게 했던 일, 갓 들어온 동무들에게 혁명군생활이 마음먹은것보다도 힘들지 하고 자주 물어 의견을 야기시킨 일, 행군이 간고해지자 누구보다 기진맥진해하며 행군이 감옥생활을 할 때보다도 힘들다고 말하여 동무들에게 의심을 받던 일, 2소대에 가서 놀고오고는 풀뿌리를 캐러 돌아다녔다고 속이여 작식대원들로부터 정체모를 사람이라고까지 제기해온 일, 그리고 바로 어제밤 취사장에서 일하고 밤늦게까지 잠들지 않고있었다는 사실 등등… 모든것을 련관시켜보면 작식대사업을 책임진 그가 한짓이 틀림없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배낭속에 소고기덩어리를 집어넣으면서 예비를 조성하여야 한다는 핑게로 대원들에게 먹이지 않고 이렇게 눈속에 파묻은 놈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우리는 숙영한 흔적을 없애면서 그놈이 세곳에나 파묻은 고기를 파내여 한짐씩 지고 부대뒤를 따랐다.

소대장동지는 나에게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교활하고 음흉한 적간첩들은 흠잡힐데 없이 행동하려고 애쓰나 이렇게 나타난다는것을 말해주었다.

소대장동지는 이날 행군을 시작하여 처음으로 휴식하는 부대에 도착하자바람으로 련대지휘부로 가서 숙영지에서 발견된 사실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보고하였다.

련대지휘부에서는 작식대책임을 쥔 그놈의 정체를 이미 알고있었다. 그리하여 확고한 단서를 쥔 부대에서는 즉시 그놈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그놈을 곧 사령부로 올려보냈다.

사령관동지앞에서 그놈은 백석탄밀영에 있을 때 두번이나 우물에 독약을 쳐서 내부를 혼란시켰던 일이며 행군과정에 책동한 일들에 대하여 모두 털어놓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놈에게서 필요한 자료들을 다 알아낸 후 처단할것을 지시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였다.

혁명적경각성은 벗과 원쑤를 갈라내는데서 표현되여야 합니다.

만약 동무들이 사소한것들이라고 해서 그저 스쳐보냈더라면 그놈을 제때에 발견하지 못하였을것입니다.

동무들은 이번의 사건에서 누구나 심중한 교훈을 찾고 사업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은 그이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혁명적경각성을 더한층 높였다.

그놈은 오랜 기간 일제특무기관에서 간첩훈련을 받고 우리 대오에 끼여들어온 적간첩이였다.

적들은 음흉한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놈을 감옥에서 탈출한 《애국자》로 가장시켜 혁명대오에 들여보냈던것이다.

그때 부대는 새로운 전투임무를 맡고 행군을 진행하던 도중이였기에 그의 신분을 철저히 확인해볼 시간적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찾아온 사람을 믿을수 없다고 대오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혁명군에 찾아온 사람을 떼버려 적들편에 넘기는것으로 될수 있었다.

그러므로 부대에서는 그의 정체는 알수 없었으나 그를 받아들여놓고 실천투쟁을 통하여 검열하기로 하고 혁명군에 받아들였던것이다.

이놈이 받고 들어온 임무는 혁명군에 오래동안 숨어있으면서 많은 비밀을 탐지하여 넘기는것이였고 적당한 시기, 적당한 장소에서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의 위치를 적에게 알림으로써 적들이 대대적인 력량으로 단숨에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소멸》케 하자는것이였다.

그런데 항상 예리한 계급적눈으로 사물현상을 통찰하는 혁명군대원들앞에서 제놈의 정체가 드러날 위험성이 보이자 이놈은 맡은 간첩임무를 빨리 실행하려고 서둘렀었다. 그리하여 부대가 행군에서 극도로 피로해지는것을 노리고있었는데 의외에도 소고기와 콩깨묵이 생기자 그것을 어떻게 하나 대원들에게 먹이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게 하고 기진맥진해졌을 때 사령부의 위치를 적에게 알려 《토벌》하게 하고 제놈은 도망치려고 꾀했던것이다.

백석탄밀영에서 군정학습할 때 밤사이에 떡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혁명동지들간에 불신임을 조성한것도 이놈의 암해책동의 하나였으며 갓 입대한 동무들에게 《친절》을 보이며 가까이한것은 떠보고 꾀이려 한 교활한 술책이였던것이다.

오늘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인 미제침략자들과 그 앞잡이 남조선괴뢰도당이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파괴암해책동을 벌리고있는 때 우리는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치신대로 혁명적경각성과 전투적긴장성을 한순간도 늦추지 말고 살며 행동하여 항일유격대원들이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한것처럼 원쑤들의 그 어떤 군사적도발이나 음흉한 파괴, 암해책동도 걸음마다 짓부시고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와 우리 혁명의 전취물을 목숨으로 사수하여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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