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기
 

유격대간부양성기지

최 성 숙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늘 말하지만 간부가 모든것을 결정합니다. 간부가 없이는 아무 일도 할수 없습니다.》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혁명의 지휘성원인 간부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과학적으로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부육성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을 벌리실 때 제일 애로되는 문제의 하나가 준비된 간부들이 부족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부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당 및 공청, 반일부녀회를 비롯한 혁명조직들에서 조직생활을 통하여 우수한 일군들을 키워내시고 몸소 대원들을 전투마당으로 데리고 다니시며 그들을 유능한 지휘관으로 육성하시는 한편 군정간부훈련반을 비롯한 상설적인 교육기관들을 내오시고 간부들을 전망성있게 체계적으로 키우시였다.

나는 지금도 군정간부훈련반(후에 수영학교)에서 보낸 보람찬 나날을 잊을수 없다.

군정간부훈련반시절을 추억할 때면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그곳으로 떠나던 일과 철없이 눈물만 흘리던 남다른 사연이 먼저 떠오르군 한다.

이날의 나의 못난 정상을 두고 어버이수령님께서도 1982년 봄 항일의 옛 전사들을 만나주신 뜻깊은 자리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동무를 군정간부훈련반으로 보내던 일이 생각난다고, 그때 동무가 몹시도 눈물을 흘리였다고 뜨겁게 회고해주시였다.

그러면 어버이수령님께서 회고해주신 항일의 군정간부훈련반은 어떤 곳이였으며 이곳과 나의 눈물과는 어떤 연고가 있었는지…

60여년전의 못잊을 그날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1935년 초봄이였다. 그때 나는 건강이 악화되여 뒤틀라즈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었다.

그때로 말하면 어버이수령님께서 북만원정을 떠나신 후 온 유격구가 반《민생단》투쟁의 회오리속에 불신과 오해, 절망과 탄식, 공포의 분위기로 어수선하고 날마다 흉흉한 소문이 나돌던 때였다.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자기들의 더러운 정치적야욕을 실현해보려고 피눈이 되여 날뛰면서 반《민생단》 투쟁을 극좌적으로 벌려 견실한 조선혁명가들을 모해하고 살해하였다.

그리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 애지중지 애써 키우신 당 및 공청과 인민정권, 혁명군의 핵심골간들과 수많은 혁명가들이 무참히 희생되였으며 이 열파속에 우리 혁명은 엄중한 시련을 겪게 되였다.

내가 있던 왕청 2구당에서만도 구당일군들과 인민혁명정부 회장을 비롯한 핵심골간들이 모두 잘못되고 나혼자 남았다.

이런 식으로 끌끌한 간부들이 다 희생되면 장차 우리 혁명은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응어리로 맺혀 병보다도 더욱 심신을 괴롭혔다.

(북반원정을 가신 장군님께서는 왜 아직도 안오실가?)

어버이수령님을 안타까이 기다리며 꼬박 밝힌 밤이 그 얼마인지 모른다.

나만이 아니였다. 온 유격구가 하루빨리 어버이수령님께서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고있었다.

마침내 어버이수령님께서 돌아오시였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어버이수령님을 아직 만나뵙지 못한채 현당에서 오라는 지시를 받고 병원을 떠나게 되였다.

이제는 내 차례구나…

다시 소생할수 없는 마지막 길을 간다는 제나름의 추측을 하며 요영구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몹시 서글펐다.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16살부터 공청원으로, 지부, 구공청비서로, 구반일부녀회 책임자로 일하던 내가 《민생단》의 루명을 쓰고 억울한 모함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만이 앞섰다.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우리가 요영구어귀에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도끼질소리가 쩡쩡 울려왔다.

주위를 경계하며 골짜기로 내려갔던 련락원이 곧 올라오면서 나를 불렀다.

그를 따라 얼마간 내려가니 귀틀집 몇채가 나타났는데 서너명의 혁명군대원들이 마당에서 나무를 패고있었다.

서산으로 해가 갓 넘어간 하늘가에서 저녁노을이 곱게 불타고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옛말에서 나오는 그런 기적같은 일이 벌어질줄을 누가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우리들이 얼마간 마당 한쪽에서 서성거리고있는데 골짜기 아래쪽에서 우렁우렁한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오더니 글쎄 위대한 수령님께서 몇명의 대원들과 함께 올라오시는것이였다.

오매불망 사무치게 그리며 뵙고싶던 어버이수령님을 정작 이렇게 지척에서 만나뵙게 되자 나는 처음 한동안은 얼이 나간 사람처럼 멍청하니 서있었다.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나는 인사말도 올리지 못한채 깊숙이 머리숙여 인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차 나를 알아보시고 못내 반가와하시며 나의 두손을 잡아 이끄시여 통나무걸상에 앉혀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사이에 어떻게 지냈는가, 건강은 어떤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미 나의 건강상태며 겪고있는 고충에 대해서까지 상세히 다 알고계시였다.

《장군님!》

나는 수령님을 목메여 부르며 참고참아오던 오열을 끝내 터뜨리고야말았다.

《민생단》의 루명을 쓰고 모진 박해속에 고생하며 쌓이고쌓였던 괴로움과 서러움이 다심한 어머니품에 안긴 철부지 어린애마냥 울컥 치밀어올랐던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

내가 울음을 그치고 진정되기를 기다리시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무가 그동안 마음고생, 병고생을 하며 수고했다고 하시면서 나와 함께 일하다가 희생된 유격구안의 혁명동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더니 못내 갈리신 음성으로 아까운 동무들을 잃었다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면 이러시랴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들던 나는 그만 몹시도 수척해지고 병색이 짙은 그이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북만원정과정에 극도로 허약해지신 몸으로 반《민생단》투쟁의 미친 바람을 막아나서신 로고에 대해서는 미처 모르고있었다.

언제나 젊음과 건강이 넘치시던 전날의 그 모습은 찾을길 없고 오직 근엄한 표정과 사색의 빛이 어린 그이의 모습을 우러르니 제 설음에만 겨워 아랑곳없이 인사불성이였던 자신의 처사가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나에게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반《민생단》투쟁을 앙양에로 이끌어올릴데 대한 전략전술적문제가 토의된 다홍왜회의와 요영구회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신 다음에야 비로소 나는 수령님께서 단신으로 죄경모험주의자들과 맞서싸워 우리 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하신데 대하여 알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착되기 시작한 유격구형편에 대하여 알려주시면서 동무의 일도 이제는 다 처리됐으니 마음을 놓으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러지 않아도 내가 퇴원하면 공부를 시키려고 했는데 마침 잘되였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다른 생각을 마시오. 이제부터 동무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 군정간부훈련반을 조직하는데 나는 동무를 거기에 보내자고 합니다. 현당에도 그렇게 지시를 내려보냈습니다.

그것은 천만뜻밖의 말씀이였다.

이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돌아오시여 모든 일이 다 풀리였으니 그이의 지도를 받으며 희생된 동지들의 몫까지 합쳐 본때있게 일을 하여보자고 생각하고있는데, 더구나 지금 많은 간부들이 희생되여 제일 손이 딸릴 때인데 구반일부녀회책임자인 나를 군정간부훈련반에 보내시다니…

이런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있는 나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의 심정은 알만하다, 여기 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동무는 공부에 전력하는것이  더 중요하다, 앞으로 혁명군이 광활한 지대로 나가는데 그와 관련한 실무적조치들이 취해지게 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공부를 해야 합니다. 동무는 군정간부훈련반을 졸업하면 군대정치일군으로 들어와서 활동할수도 있습니다.

이제 유격구해산사업이 조직되는데 동무는 그렇게 알고 군정간부훈련반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시오.

그제야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여기서 지체하지 말고 저 앞고개를 넘어가라, 거기에 가면 동무들이 있다, 어둡기 전에 동무들이 있는데로 떠나라시며 나의 등을 떠밀어주시였다.

우리 혁명을 구원해주시고 평범한 전사의 운명까지 지켜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나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눈물속에 가까스로 발을 옮겨놓으며 길을 떠났다.

격정과 흐느낌속에 만나뵙고 뜨거운 사랑과 한없는 신임을 받아안고 그이의 바래움을 받으며 군정간부훈련반으로 떠나던 그날을 나는 영원히 잊을수 없다.

군정간부훈련반은 요영구 당수하자골짜기의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있었다.

거기에 가보니 군정간부훈련반 학생으로 선발되여 강의받을 준비를 하고있는 동무들이 수십명 있었는데 나는 그들을 보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최춘국, 류경수, 최봉호, 최인준동무들을 비롯하여 그 대부분이 유격대 초창기부터 혁명에 참가하여 중대, 소대들을 지휘하던 초급지휘성원들과 중견간부들이였다.

귀중한 혁명전우들이 《민생단》의 열파로 희생될 때 가슴을 쥐여뜯으며 통탄하던 그들 역시 이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셨으니 억울하게 희생된 전우들의 몫까지 맡아 한번 본때있게 일해보겠다고 하는 자기들을 왜 한가스레 공부하러 보내시는지 영문을 몰라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우리들의 의혹은 훈련반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교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차 풀리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장투쟁을 광활한 지대에로 넓혀나가야 할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유격구를 해산하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이미 유격구에서 운영하던 군정간부훈련반을 수영학교로 개편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도록 하시였다.

수영학교를 통하여 초급간부들을 빨리 육성하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각 부대들에 통신원을 보내시여 우수한 성원들을 학생으로 선발하여 보내도록 하시고 식량과 학용품을 비롯하여 학교운영에 필요한 준비들을 원만히 갖추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인차 학습을 시작할수 있었던것이다.

학교에서는 정치학습도 하고 군사학습도 진행하였다.

우리가 배우게 될 학과목들과 교육내용을 보니 모두가 구미가 동하는것들이였다. 이 모든것을 배우고 나가면 능히 맡겨진 혁명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난 기간 유격구에서 적의 《토벌》이 심하여 이렇게 품을 놓고 공부할 사이가 없었던것만큼 이번기회에 한번 단단히 배워보리라 마음먹고 공부에 달라붙었다.

정치학습에서는 조선혁명의 성격과 임무를 비롯하여 혁명리론들과 군중정치사업방법 그리고 국제국내정세를 취급하였다.

군사학습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창조하신 유격전법들과 유격대상식 그리고 유격전의 원칙들, 유격구방위전투경험과 일반군사문제들을 가지고 리론과 동작을 배합하여 진행하였다.

학습을 통하여 우리들의 정치리론수준과 군사실무수준은 몰라보게 높아졌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히신 우리 혁명의 전략과 전술, 주체적혁명리론과 방법, 군중정치공작방법들을 배우면서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였다.

우리는 혁명원리를 체득할수록 지난날 제노라고 동분서주하며 뛰여다녔지만 모르는것이 많아 위대한 수령님의 뜻대로 일하지 못한 죄책감을 금할수 없었다.

나부터도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반일부녀회사업에 대한 가르치심을 여러차례 받았지만 수준이 낮아 수령님의 의도를 제대로 받아안을수 없었으며 그러다보니 그이께서 바라시는대로 일할수 없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를 현직에서 뚝 떼여 여기서 공부시킨 의도를 더욱 깊이 알게 되였다.

그러던 1935년 5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우리 학교를 찾으시여 학교지휘성원들을 만나주시고 수영학교운영과 관리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한 강력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구해산을 앞두고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처리하시느라고 몹시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 구역들에 파견원과 통신원들을 보내시여 유격구들의 해산사업이 편향없이 진행되도록 도와주게 하시면서 무시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결론을 주시고 대책을 세워주시는 한편 몸소 왕청 1구당과 십리평에 나가시여 적구로 나가는 인민들과 대중단체조직들의 사업을 지도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 속에서도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우리 학교사업을 지도해주시였던것이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수영학교운영의 중요성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정세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무장투쟁을 광활한 지대로 넓혀나가게 되는데 그러자면 유격전술과 전법에 정통하고 능란한 전투조직과 부대관리능력을 가진 지휘성원들이 많이 요구된다. 그리고 동북만의 항일련군부대들과 중국인반일부대와의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문제,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북부국경일대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의거하여 싸울수 있는 군중적지반을 형성하는 문제 등 수많은 일들이 나서는데 이 모든 전략적과업을 성과적으로 해결하자면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준비된 군정간부들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시면서 이미 중대, 소대들을 지휘하고 당 및 대중단체조직들에서 사업하다가 여기로 선발되여온 동무들은 자기들을 뚝 떼여서 공부시키는 깊은 의도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교의 규모와 학제, 취급하는 과목과 과정안, 교원들과 학생들의 선발배치문제, 수강생들의 일과생활과 후방사업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수영학교는 30~40명정도의 단기학제로서 유격구가 해산되면 부대와 함께 이동하면서 조선인민혁명군 초급군사정치일군양성을 기본으로 진행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교원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정치학습은 대체로 부대정치일군들이 맡아 진행하고 군사학습은 부대 군사일군들이 집행하도록 조직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습에서 취급할 내용도 밝혀주시였다.

정치학습에서는 우리 혁명의 주체적립장을 고수발전시켜나갈수 있게 혁명리론을 현실과 결부하여 체득시켜 견실한 혁명가로 키우는데 모를 박으며 반《민생단》투쟁의 좌경적편향을 바로잡고 그 후과를 청산하기 위한 문제도 취급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대내정치사업의 기본형식과 방법, 전투임무수행을 위한 정치사업방법도 배워주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군사학습에서는 유격구방위전투경험과 교훈, 1차북만원정에서 진행한 군사정치활동의 형식과 방법, 성과와 경험을 배워주며 중요하게는 광활한 지대에서 독자적으로 유격전을 벌려나갈수 있는 지휘관들을 키우는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이날에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에는 단순히 학생들의 일반 정치, 군사실무적자질을 높이는데만 그치지 않고 그들을 우리 혁명을 떠메고나갈 능력있는 혁명의 핵심지휘성원들로 키우시려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되새기면서 자신들에게 맡겨진 숭고한 임무와 높은 책임감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학습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우리는 우선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치신대로 반《민생단》투쟁이 극좌적으로 벌어지게 된 원인과 반혁명적본질, 이 투쟁에서 나타난 좌경적편향을 바로잡기 위한 과업과 방도에 대해 깊이 학습했다.

이 학습을 통하여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예술과 혁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에 대하여 더욱 절감하게 되였으며 그이의 전사된 긍지와 자부심을 깊이 간직하게 되였다.

우리는 또한 반일민족통일전선문제, 반일부대와의 련합전선문제 등 대중적지반을 닦고 우리 혁명을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학습하였다.

우리들의 학습열의는 정치학습토론시간과 전술훈련시간에 더욱 눈에 뜨이게 나타났다.

지금도 인상깊이 남아있는것은 모두가 즐겨 참가하던 정치학습토론시간이다.

정치학습토론시간에는 교원이 그날 배운 내용가운데서 문제점을 제시하면 학생들이 책을 덮어놓고 지난 기간의 사업과 결부하여 토론하였다.

토론은 이미 앞에서 한 동무들의 주장을 지지 혹은 반박하며 진행했는데 자연히 론쟁식으로 번져가군 하여 참으로 볼만했다.

토론이 끝나면 교원이 매 토론에 대한 평가와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해명을 주는 식으로 결속하였다.

복습조직은 2~3명씩 자체로 하였는데 여름한철에는 밤에도 밖에다 우등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그날 배운 내용을 완전히 소화할 때까지 학습하였다.

전술강의시간에는 각이한 지형과 복잡한 정황속에서도 정황판단과 처리를 능숙히 하도록 숙련시킴으로써 학생들의 독자적인 부대지휘능력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이 시간에는 친솔부대에서 온 동무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북만원정을 갔다오는 과정에 알게 된 그이의 기묘한 전투조법과 각종 전술적문제들을 가지고 실지동작을 하면서 소개하여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원정기간 실지전투에서 창조하시고 활용하신 독창적이고 령활한 유격전법과 전술을 깊이 체득하게 되였다.

이밖에 수영학교에서는 사격훈련과 지형학, 대렬훈련, 체육훈련도 진행하였다.

그리고 북만원정시 진행한 유명한 《하모니카중주단》의 군중정치공작방법을 비롯하여 정치사업형식과 방법, 전투임무수행을 위한 정치선동사업방법에 대해서도 학습하였다.

실로 수영학교에서 배운 나날은 불과 얼마 안되는 짧은 기간이였지만 우리는 정말 많은것을 배우고 딴사람이 되였다.

우리들의 이 비약적성장은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는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의 어렵고 복잡한 환경속에서도 항상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학교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의 《토벌》이 아무리 심해도 모두가 공부에 전심할수 있도록 요영구골짜기의 막바지에 학교자리를 잡아주시였으며 정황이 불리하면 산속에 인차 피신하여 중단하지 않고 학습을 계속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 차례진 짧은 휴식도 미루시고 몸소 강의안도 작성해주시였으며 일부러 전투들을 조직하시여 학용품과 식량을 정상적으로 해결하여 우리에게 보내주시였다.

그때 처창즈유격구 같은데서는 제일 곤난한 봄철이라 풀뿌리와 뱀, 개구리까지 잡아먹으며 극심한 기아속에서 고생하고있었다.

사령부의 식량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병구완을 위해 대원들이 남겨두었던 얼마간의 좁쌀마저도 인민들에게 보내주시고 풀죽으로 끼니를 에우시면서도 우리를 위해서는 모든것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어버이수령님의 은정깊은 사랑과 배려를 받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공부를 더 직심스레 하였으며 식생활조직을 더욱 깐지게 하고 일과생활을 전투적으로, 락천적으로 조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주체적인 혁명리론과 전략전술을 확고한 신념으로 간직하고 그 어떤 정황도 능히 처리할수 있는 군사지휘관으로, 혁명적인 사업방법과 인민적인 사업작풍을 소유한 능력있는 정치일군으로 자라나게 되였다.

최춘국, 류경수, 최봉호동무들을 비롯하여 수영학교를 졸업한 많은 동무들이 그후 주력부대와 독립려단, 남북만의 항일련군부대들의 련대장, 려단장, 련대정치위원으로까지 파견되여 학교에서 배운대로 우리 혁명력량을 강화하고 항일무장투쟁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리는데서 한몫씩 하였다.

이는 오직 간부육성에 선차적의의를 부여하시고 예견성있게 간부양성기지들을 세우시여 복잡한 환경속에서도 빠른 시일에 군사정치간부들을 키워내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선견지명, 천재적예지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우리 인민은 자체의 민족간부를 가지고 무장투쟁을 벌려 조국을 광복할수 있었고 해방후 짧은 기간에 정규무력을 건설하고 미제의 무력침공을 격파할수 있었으며 우리 조국을 부강번영하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강국으로 일떠세울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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