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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옥이는 오랜만에 입쌀밥을 지었다. 겨우내 달박에 넣어서 씨앗종자처럼 정히 간수해두었던 입쌀이다. 사람의 집에 왜 귀한 손님 치르게 될 때가 없겠느냐고 하면서 하얀 창호지에 꾸리고 베보자기에 싸고 다시 그것을 달박에 넣고 하여 옥보석같이 정성껏 간수해오던것을 오늘아침 털어내여 가마에 안친것이였다. 산에서 내려온 권용산이가 집이라고 꾸려놓고 살면서 공작원동지께 밥 한끼 지어드리지 못했다고 자꾸 외우는것이 가슴에 걸리여 오늘아침 아버지와 의논을 하고 흰밥을 지은것이다. 집안은 온통 명절같았다. 아버지는 새벽 일찍부터 마당을 쓸고 삽짝밖의 행길까지 깨끗이 쓸었으며 해볕에 잘 마른 장작가지를 골라서 부엌에 들였다. 《입쌀밥 짓는덴 솔검불보다 바싹 마른 장작이 좋느니라.》 아버지는 춘옥이가 아궁에 밀어넣은 솔검불을 말끔히 거두어내고 장작가지를 얼기설기 가려넣으면서 즐거워하였다. 춘옥이는 이남박에 쌀을 씻었다. 보리쌀처럼 이남박에 비비지 않고 손으로 주물러서 정성스레 씻었다. 젖빛처럼 뽀얀 뜨물이 우러나왔다. 춘옥은 뜨물을 여느때처럼 소물가마에 쏟아넣지 않고 따로 받아놓았다. 입쌀뜨물로 머리를 감으려고 생각한것이였다. 쌍별이와 지세경이도 들락거렸다. 쌍별이는 산나물바구니를 들고와서 부엌앞에 앉아 다듬었다. 지세경이는 김정숙동지께서 오셨나하여 들려가지고는 쌍별이의 눈짓을 받고 슬그머니 그의 옆에 다가와 나물을 같이 다듬었다. 《언니, 입쌀 익는 냄새가 참 구수해요.》 쌍별이는 이마에 드리운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면서 방싯 웃었다. 《그래.》 춘옥이도 마주 웃었다. 그는 물걸레를 깨끗이 짜가지고 달랑달랑 소리를 내며 끓고있는 밥가마옆을 자꾸 문다지고 밥가마 뚜껑도 닦았다. 그냥 입쌀밥이라고 하여 그런것이 아니다. 그윽하고 다정한 생각이 떠오르며 마음은 끝없이 살뜰한 정회에 휩싸인다. 온 부락치고도 자기가 받는 사랑은 유별난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다 나같이 아껴주시는지… 모두들 그렇다고 하였다. 참으로 세상에 드문분이다. 춘옥은 초조하게 밖을 내다보았다. 남편이 돌아와야 찬을 몇가지 더 만들겠는데 종무소식인것이다. 오늘아침에는 꼭 우리 집에 와서 조반을 들어야 한다고 두번세번 외웠는데 김정숙동지께서도 나타나지 않으시였다. 사람을 기다리는 일처럼 안타까운것이 없었다. 《장마당에 간 사람은 왜 지금토록 소식이 없느냐?》 비자루를 들고 뜰안을 돌아가던 늙은이가 부엌문앞으로 걸어오며 궁금한듯 물었다. 《하루밤 어디서 쉬고오는 모양이예요.》 《찬거리를 부탁받은 사람이 쉬고와?》 《글쎄요…》 춘옥은 참으로 궁금하였다. 아침나절에 김정숙동지를 모셔오려고 두번이나 갔는데 그때마다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강성태도 보이지 않았다. 신분단의 말에 의하면 밤중에 두분이 갑자기 나갔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춘옥이 모르고있는 사업이 어디서 벌어지고있는것이나 아닌지, 그래서 혹시 남편도 오지 못하고 신분단의 편에라도 보내줄수 있는 찬거리마저 보내주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아버님, 먼저 조반을 드시겠어요?》 《아서라, 기다리다 같이 먹어야지.》 《그래도 시장하실텐데요…》 《괜찮다. 먹지 않아도 즐겁구나. 구장누이가 우리 집에 와서 밥술을 들게 되구, 네 남편도 산에 갔다 얼마만에 왔느냐?》 춘옥은 얼굴을 붉히고 수줍게 웃었다. 늙은이는 방금 비질을 한 반반한 마당을 다시 뻑뻑 쓴다. 땅에 박힌 자갈도 파내서 손바닥에 담았다가 굴뚝담에 뚫린 쥐구멍에 쏟아넣었다. 늙은이의 머리는 하얗게 세였다. 그리고 이상하게 숱이 많아진것처럼 보이였다. 로인들이 숱이 많아지면 안된다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귀바퀴도 별로 두드러진것 같고 목이랑 성큼해보였으며 적삼등이 몸에 붙지 않고 후렁후렁해졌다. 팔을 내저으면 적삼자락이 가는 팔목에 휘감기며 너펄거린다. 옷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하지만 늙은이는 이 봄에 기력이 회복되여 눈정기가 맑아지고 구석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거미새끼까지 보인다고 한다. 기침을 깇던 도수도 뜸해졌다. 김정숙동지께서 방아간에 날아든 부엉이를 붙잡아서 곰을 해드리시더니 그것이 크게 효험을 보았다. 늙은이의 병때문에 그이께서 기울이신 정성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춘옥은 아궁안의 불을 여물가마쪽으로 돌려놓고 밥을 펐다. 반짝반짝하게 닦아놓은 놋바리에 세 그릇을 똑같이 퍼서 상을 차렸다. 아버지와 남편이 김정숙동지와 같이 상을 받으며 기뻐할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여 견딜수 없었다. 춘옥은 국을 뜨려다가 국자에 담긴 국을 다시 쏟아넣고 나물무치개만 접시에 담았다. 마늘알을 발가서 고추장에 박은것이 한접시, 한겨울 꽁꽁 싸두었던 주토빛 거북단지를 열고 장에 담근 깨잎을 꺼내여 또 한접시, 호박오가리, 무우오가리를 참깨기름에 볶아서 두접시, 농마가루를 조금 가져다 묵을 만들어 한접시… 춘옥은 정성껏 상을 차려서 베보자기를 덮어 가마목에 놓았다. 그리고 부엌에 내려가 숟갈을 닦았다. 《언니, 이러다 공작원형님이 떠나가시면 어떻게 살지요?》 쌍별이가 마치 춘옥이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듯이 물었다. 《응?》 춘옥이는 마치 꿈에서 깬듯이 쌍별이를 보았다. 《넌 어떻게 살려니?》 《난 따라갈래요!》 《따라가?》 《그럼…》 쌍별이는 춘옥이의 얼굴을 보다가 지세경의 얼굴을 보았다. 《반대야요?》 《아니, 왜 반대겠소. 찬성이지. 나도 가려오.》 춘옥이는 그들을 보면서 미소를 띠웠다. 《나두 가련다.》 《언니두요?》 《그렇지 않구.》 춘옥이는 싹싹 소리를 내면서 숟갈을 닦았다. 《아저씨랑 내버리구요?》 《아저씨가 뭐 큰사람이니?》 《그래두 언닌 가슴이 좀 알찌근할거예요.》 쌍별이는 생글거렸다. 《그렇지 않아두 내가 한번 그런 말 비쳤더랬다. 떠나실 땐 나두 함께 데려다달라구.》 《그러니 뭐래요?》 《안된다구 하더구나. 집도 없이 풀을 뜯어먹으면서 싸워야 하는데 봉녀 아지미가 거기 가서 어떻게 살아나가겠느냐고 하면서…》 쌍별이와 세경이는 놀란 얼굴을 들고 춘옥이를 지켜보았다. 《그래 난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니. 형님이 풀을 뜯어 잡술 땐 나두 풀을 먹구 형님이 눈속에서 주무실 땐 나두 그곁에서 자구 정 살아갈길이 막막할 땐 형님과 같이 죽든지 하겠다구. 난 하나두 무서울게 없다구 말했었다.》 《그러니 뭐래요?》 쌍별이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눈동자를 빛내였다. 《나를 꼭 그러안구 얼굴에 볼을 막 비비더구나. 그 마음이 고맙다구 이렇게 빨리 마음이 커진게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구… 형님은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더라. 나도 울었구나.》 춘옥은 손을 올려 눈시울을 더듬었다. 쌍별이는 마음이 설레여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나물을 만지작거렸다. 지세경은 나물을 더듬던 손을 오히려 멈추었다. 《얘 쌍별아.》 춘옥이가 의의있게 불렀다. 쌍별이가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면서 춘옥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수가 없었다. 《형님은 나더러 유격대에 가야만 싸울수 있는것이 아니라고 했었단다. 아버님과 남편과 함께 가정살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혁명의 길을 걸어나갈수 있다고 하시면서… 내가 여기서 마을녀성들을 한마음한뜻으로 뭉치게 하구 장군님을 받들어 잘 싸우게 한다면 총들고 유격대에서 싸우는것보다 못하지 않으니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우리 서로 언제 어디에 있든 혁명전에 굳게 나눈 이 약속을 잊지 말자구 하시지 않겠니. 그리고는 다시한번 나더러 다짐을 받으시더구나. 혁명은 힘든 일인데 이렇게 나눈 약속을 끝까지 지켜낼수 있느냐구.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참 언니두, 사람이 그런 약속을 어떻게 버려요. 그건 죽어도 못버릴거예요.》 쌍별이는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그렇지?》 춘옥이는 반색하며 기쁨에 넘친 밝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렇게 말했구나. 형님하구 나눈 약속이야 내가 어떻게 잊느냐구. 눈에 흙이 들어가두 그것만은 잊지 못하게 될거라 했었지. 그랬더니 형님은 내 손을 꼭 잡구 그냥 쓸어주시면서 〈봉녀 아지미가 이젠 혁명가가 되였군요.〉 하면서 기뻐 어쩔줄 몰라하더구나.》 《그것참 옛말같은 이야기로구나.》
웃방에서 늙은이가 장지문을 열어젖히면서 신명이 나 하였다. 지세경은 뜨거운 생각을 금치 못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모두가 김정숙동지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참으로 고결하고 뜨겁고 열렬한 심장을 지니신분이다. 지세경은 김정숙동지를 모셔오려고 이번에는 자기가 강성태의 집으로 찾아갔다. 거기서 만나지 못하고 다시 부락의 골목들을 돌다가 혹시나 하여 산판으로 오르는 벌로 나갔다. 그때 둔덕우로 한사람이 내달리고있었다. 지세경은 누구인지 처음은 알수가 없었다. 저쪽에서 먼저 알아보고 소리쳤다. 《자네 세경이 아닌가?》 경황없는 목소리의 임자가 강성태인것을 알자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사람…》 숨이 차서 뒤말을 잇지 못하는 강성태의 얼굴은 땀과 눈물에 젖어 온통 번들번들하였다. 《어찌된 일입니까? 무슨 일이 있었어요?》 지세경은 금시 가슴이 얼어드는듯 한 불행을 예감하며 강성태의 팔을 꽉 움켜잡았다. 《용산이가… 저 용산이말일세. 풀밭둔덕에서… 아, 이걸 어찌나!…》 강성태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권용산형님이 어찌 되였단말인가요?》
《잘못됐네. 어허허.》 강성태는 가슴을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그는 주먹으로 땅을 두드렸다. 지세경은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성태의 절통한 부르짖음도 귀에 덜맞쳐 수천의 벌떼가 날아드는것 같은 소리로 들렸다. 지세경은 청천벽력같은 이 사실이 도대체 어떻게 벌어졌다는것인지 리해할수가 없었다. 《함석필 그놈이 백지주한테 고발을 했네. 그래서 지주놈이 경찰 하나를 미행시켰는데 권용산이 그 사람이 그자를 때려눕히구 저도 총에 맞았다네. 아, 이걸 어쩌나? 춘옥이한테 이걸 어떻게 알려? 그런데 이사람, 백지주하구 함석필이 문젤세. 이놈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때에는 부락은 녹네.》 강성태는 벌떡 일어나 내달리기 시작했다. 춘옥이한테 알리러 가는 걸음이였다. 그 순간에 지세경은 정신이 뒤집혀졌다. (함석필, 네가 고발을 하다니, 아, 네가 고발을 해? 네가 무엇을 바라고 권용산을 죽였단말이냐. 내가 네놈을 죽여버릴테다. 네놈을 내 손으로 죽여버릴테다!) 지세경은 주먹을 틀어쥐고 정신없이 내달려 함석필네 삽짝을 걷어차고 뛰여들어갔다. 《함석필 나오라! 어서 나오라!》 지세경은 숨이 턱에 닿아 소리쳤다. 지게문이 홱 열리더니 놀란 향옥이가 버선발로 뛰여나왔다. 《무슨 일이예요?》 《무슨 일이 뭐냐. 이 쌍것들. 네 남편은 어디 있어? 응 어디?》 지세경은 눈에 불을 달고 부르쥔 주먹을 공중에 내뻗치며 고함을 질렀다. 《산판에요. 저…》 향옥은 가슴이 떨려 지세경을 쳐다보며 뒤말을 아물구지 못했다. 항상 죄짓고 사는 마음인지라 벌써 가슴은 심상치 않은 예감으로 죄여들기 시작했다. 함석필은 지주가 가보라고 하여 오늘아침 자기가 양도받을 산판림지를 돌아보러 갔다. 그러나 향옥은 그 말을 할수가 없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예요. 우리 집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어요?》 《무슨 일이냐구? 이 살인자같은것들. 너희들이 작당하구 권용산을 죽였지. 지주의 끄나불. 치사한것들!》 지세경은 무엇인가 토방아래 딩굴고있는 몽둥이를 들어 허리동을 후려치려다가 그것이 함석필이 아니라 향옥이인것을 다시 깨닫고 기둥을 냅다 갈겼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온 집이 뒤흔들렸다. 그 순간에 향옥이는 풍덩 토방에 쓰러졌다. 《선생님, 말씀해요. 권용산아저씨를 죽이다니요? 우리 쥔이 어떻게 그 아저씨를 죽여요?》 향옥은 눈물을 뿌리며 지세경에게 매달리려 하였다. 지세경은 돌아섰다. 오늘은 기어이 이놈을 찾아내여 죽여버리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에 살아남지 않겠다. 지세경은 그렇게 단호히 결심하고 달려나갔다. 향옥은 버선발로 뒤따라갔다. 꿈만 같은 일이다. 함석필이 아무리 돈에 미쳤다기로서니 사람까지 죽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함석필이 진짜 사람을 죽였다면 자기도 똑같은 살인자이다. 이대로 치마를 꺼꾸로 뒤집어쓰고 강물에 몸을 던지기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춘옥이남편을 죽이고 춘옥이를 어떻게 보며 이 동리에서 낯짝을 들고 어떻게 살아가나? 향옥은 기를 쓰고 지세경을 따라갔다. 지세경은 눈물이 앞을 가려 길을 헛짚고는 도랑에도 딩굴고 밭이랑에도 걸채여 넘어지고 그랬다가는 손으로 땅을 허비며 일어섰다. 모자를 벗어 눈물을 씻고 하늘을 우러러 막막한 비애를 하소하며 딩굴고 일어서고 달리고 또 딩굴고 하는 지세경을 향옥은 눈뜨고 볼수가 없었다. 어느덧 그들은 수림에 잇닿은 들 한끝으로 달려갔다. 그때 방금 숲에서 불쑥 솟아나온듯이 함석필이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아, 너로구나!》 지세경은 그만 넋나간 소리로 부르짖었다. 다음순간 그의 커다란 육체는 단단히 뭉친 돌맹이처럼 응고되여가지고 함석필을 향해 날아들었다. 영문을 알수 없었던 함석필은 전혀 무방비상태에서 지세경의 갈구리같이 구부러든 손에 잡히우고말았다. 《이놈아, 네가 권용산을 죽였지. 이 살인자, 이 귀축같은 악마. 권용산을 내놓아, 권용산을 내놓아.》 그제사 함석필은 얼핏 진상을 깨달았다. 권용산의 뒤에 경찰을 붙였다는 말을 그는 지주에게서 들었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권용산이 죽었다면 이것은 함석필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함석필은 몸부림쳤다. 지세경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그야말로 죽을것 같았다. 그들은 부둥켜안고 풀밭속을 정신없이 고패치며 돌아갔다. 향옥은 입술이 피가 나게 깨물고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지세경은 함석필을 죽이려고 목줄띠를 누르고 함석필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 깔리고 일어서고 다시 깔리고 일어서고 하기를 수십번 반복하면서 그들은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렸다. 이제는 함석필이도 악에 치받쳤다. 그리하여 둘은 필사의 싸움을 벌렸다. 그러나 누구도 상대방을 누르지 못하였다. 그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똑같이 맥이 빠지고 허우적거렸으며 그 허우적거리는 자세로 붙안고 딩굴었다. 함석필은 어떻게든 지세경을 떼버리고 도망빼려 하였으나 지세경은 쉽사리 그를 손안에서 풀어주지 않았다. 어쩌다 함석필이 죽을 힘을 다 써서 뛰쳐나가면 지세경이 기를 쓰고 따라가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한동아리가 되여 엎치락뒤치락하였다. 《이놈아, 따라오지 말아, 따라오지 말아!》 함석필은 네발로 벌렁벌렁 기면서 눈물을 머금고 악에 받쳐 소리쳤다. 머리를 삼발처럼 헝클어뜨리고 눈에 피발이 선 지세경이 헐썩거리면서 추격하였다. 《따라갈테다. 네놈을 죽여버리고말테다. 놓아주지 않을테다. 죽여버리고말테다!》 지세경은 단내를 풍기며 그의 잔등을 타고 힘껏 눌렀다. 함석필은 배를 깔고 새초속에 딩굴었다. 함석필의 입에서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놈아.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네놈은 살인자다. 네놈은 권용산을 죽였다. 네놈은 살아가지 못한다. 살아가지 못해!》 함석필은 최후의 힘을 다해 지세경을 뿌리치고 빠져나갔다. 그러나 지세경은 완강히 턱을 내여민채 억세게 따라갔다. 눈은 움푹하게 패이고 볼은 훌쭉하게 꺼졌으며 머리카락은 코마루까지 흩어져내려 얼굴을 절반이나 덮어버렸다. 그것은 잡히면 갈기갈기 찢기울것 같은 자못 무시무시한 모습이였다. 함석필은 목이 타게 부르짖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나는 돈을 벌려고 했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나는 돈을 벌려고 했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무엇이?》 지세경은 펄쩍 정신을 차렸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돈을 벌려고 지주의 꾀임에… 나는 돈을 벌려고 했을뿐이다!》 《아!》 그 순간 지세경은 고통스레 머리를 움켜쥐였다. 《돈을 벌려고? 돈을 벌려고 권용산을 찔러바쳤단말이냐? 아, 이 인간쓰레기!》 지세경은 몸부림치며 부르짖었다. 《돈을 벌려고 사람을 죽이다니, 돈이 무엇이게 사람을 죽인단말이냐! 이 치사한놈! 돈이 그렇게 귀하거든 이것을 가져가라!》 지세경은 자기의 모자를 벗어 함석필의 얼굴에 던졌다. 《이것두 돈이다, 이것두 가져가라!》 지세경은 이번에는 저고리를 벗어 뿌렸다. 그리고 연거퍼 《이것두 돈이다. 이것두…》 하고 웨치며 넥타이, 와이샤쯔까지 와락와락 벗어 함석필의 앞가슴에 내던졌다. 지세경은 부르쥔 주먹을 허공높이 쳐들고 넋없이 돌아치며 《돈이 무엇이냐, 돈이 무엇이냐? 돈이 무엇이란말이냐!》 하고 부르짖더니 그 목소리에 온몸의 피를 쏟아버린듯 땅에 쓰러졌다. 지세경이 뿌려던지는 물건들을 정신없이 마구 받아안은 함석필은 그게 무엇인지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채 그냥 부둥키고 미친듯 마을을 향해 허둥지둥 달려갔다. 함석필보다 한발 앞서 뛰여들어온 향옥은 농짝을 열어젖히고 이 더럽고 추한 세계, 돈이 빚어낸 인간의 잔혹하고도 비렬한 세계를 저주하며 보따리를 꿍져들고 집을 뛰쳐나왔다. 이 세상에 얼마나 무섭고 타협할수 없는 인간들의 저주스러운 생활이 있는가를 너무도 절통하게 느낀 향옥은 될수록 그 생활과 빨리 멀어지려고 애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슬프고 애석하기 그지없는 자기의 옛 추억을 남겨두고 눈물을 뿌리며 내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