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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새벽부터 행길에는 장보러 가는 아낙네들과 나무달구지들이 띠염띠염 늘어섰다. 신파장은 도천리에서 왕복 륙십리나 되였으므로 일찍 서둘지 않으면 해꼴에 돌아설수 없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광주리에 수수자루를 놓아 이시고 분단이와 함께 집을 나서시였다. 도천리일대에서 혁명의 지반을 닦으시고 조직들을 내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곧 국내공작을 벌리시기 위해 장날을 리용하여 부녀회원들과 함께 신파에 들어갈것을 계획하시였던것이다.

동구밖의 황철나무아래에서 기다리던 부녀회원들이 반갑게 그이를 맞이했다.

《다들 왔구만요. 장감들은 용케도 마련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웃음을 짓고 아낙네들을 둘러보시였다.

새끼로 얽어놓은 광주리안에서 강아지가 낑낑거리고 닭이 푸드득푸드득 날개를 쳤다. 산나물광주리에서는 유난히 싱그러운 향기가 풍겼다. 귀밀쌀이나 솔광을 이고가는 부녀회원도 있었다.

사내처럼 성미가 걸걸한 복방아 어머니는 노끈으로 발목을 처맨 돼지새끼를 몰고나왔다.

칠팔명의 부녀회원들이 김정숙동지를 에워싸고 길을 떠났다. 모두 즐겁고 유쾌한 기분들이였다. 해가 뜨기전에 아낙네들은 단숨에 삼십리가까이 다그쳐 걸었다.

구름 한점 없이 개인 하늘은 거울처럼 맑았다. 산촌의 대기는 신선하고 해빛이 떨어지지 않은 눅눅한 검은 땅에서는 김이 피여오르고있었다.

어디나 봄의 훈기가 함뿍 어렸다. 산너머 불그레 피여오른 연자주빛 노을은 갈수록 점점 넓게 머리우로 번져간다.

그것은 봄하늘에 가득히 서리는 부드러운 운무의 장막이였다.

얼마나 걸었을가?…

앞을 엇비듬히 가로막았던 높은 산벼랑이 조금씩 옆으로 비켜나고 실개천이 흐르는 협착한 골짜기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자 크지 않은 강가의 버들숲사이로 밝은 해빛이 비쳐들었다. 눅눅하고 싱그러운 강바람이 불어왔다.

압록강이 눈앞에 다가온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구 뒤설레는 격동적인 감격을 안으시고 눈부신 해빛이 가닥가닥 스며든 버들숲 저편을 바라보시였다.

문득 번뜩이는 강의 흰 수면이 내려다보였다. 강물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으나 점점 넓어지는 강폭과 수만가닥의 해빛이 떨어진 압록강의 긴 물줄기가 드러났다.

《저게 압록강이라우.》

신분단이 슬며시 귀띔하였다.

가슴은 말 못할 환희와 격동속에 뛰여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보고싶던 조국인가? 얼마나 그리워마지않던 내 나라 내 땅인가!

헤아릴수 없는 감격과 뜨거운 격정에 목메이신 그이께서는 눈을 슴벅이시며 조국의 대안을 하염없이 바라보시였다.

강의 이쪽기슭은 강심이 검스레 깊어보이는 화강암의 경사면이고 강 저편은 마치 바다가의 백사장을 방불케 하는 하얀 조약돌이 깔린 밋밋한 흰 기슭이다. 거기서는 종아리를 걷어올린 사내애들이 반두를 들고 뛰여다니고 빨래하는 녀인들의 물방치소리가 싱싱하게 울려온다.

강기슭의 지치러진 낮은 방축너머에는 올망졸망한 시가의 작은 집들이 빽빽이 둘러앉고 간혹 가다 망루처럼 솟아오른 검스레한 건물이 보였다.

여섯살에 고향을 떠나 산설고 물설은 이역의 거친 들에 발을 들여놓은후 열다섯해만에 다시 밟아보게 되는 조국이다. 그새 어머니와 오빠, 올케와 동생을 다 잃고 혈혈단신으로 남아 피눈물을 삼키시며 광복의 수천리길을 걸어 오늘은 이 대안에 이르시였다. 감회도 깊고 추억도 많으며 비분강개한 심정도 금할수 없는 심정이시였다. 이 귀중한 조국을 찾기 위해 얼마나 간난신고속에서 우리가 살아왔는가? 입을것도 변변히 입지 못하고 먹을것도 변변히 먹지 못하고 조선혁명의 완성을 위해 우리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겪은 수고를 생각하면 눈물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그중에서도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싸워온 근간의 일들이 사무치게 떠오르시였다.

잊지 못할 만강과 동강밀영에서의 간고한 전투들, 지진처럼 세상을 잡아흔들어놓은 무송현성진공전투, 밤낮없이 진행된 압록강연안에서의 정치사업, 힘들고도 힘들었던 무송지구에로의 행군, 례년에 없는 백두산밀영의 눈사태와 되골령의 눈보라 그리고 조국으로 나가는 이해의 뜻깊은 설날을 산정에서 보내던 일, 어려운 식량난, 단련되지 못한 신입대원들을 업고 부축하시며 끝없는 행군을 이어가신 장군님…

추억은 끝없는 나래를 펼치고 생생하고도 눈물겨운 가지가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많고많은 나날에 있었던 잊지 못할 사변들, 력사의 순간에 새겨진 눈물겨운 사변들은 조국으로 나가는 디딤돌이였으며 오늘은 드디여 조선인민혁명군의 장성한 대오가 혁명의 선풍을 불러일으키며 조국으로의 진출을 눈앞에 두게 된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머금으시고 걸음을 내디디시였다.

문득 금숙이의 꿈이야기가 떠오르시였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가 꿈에서 보았다던 대안의 청바위벽을 찾아보게 되시였다. 어디든 그 청바위가 있을듯싶으시였다. 그리고 그우에 우거진 다복솔이며 조국의 대안을 빨갛게 물들인 진달래며가 다 있을것 같으시였다.

그러자 김정숙동지께서는 강의 둔덕에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부대의 긴 대오가 따라와 있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며 금숙이며 혜숙이, 리동학경위중대장과 전령병 주봉길이 함께 나란히 서있는것 같이 느껴져 곁을 돌아보시였다.

《금숙동무, 혜숙동무! … 내가 조국으로 왔어요. 동무들이 꿈에서도 잊지 못하던 조국으로 왔어요. 기뻐해요. 모두들 기뻐해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소리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기슭으로 다가가시였다.

강에는 줄배가 움직이고있었다. 머리에 수건을 동인 얼굴빛이 컴컴한 사공이 허리를 굽혔다폈다 하면서 배를 몰아오고있었다.

강우에 늘어진 끌줄은 배가 매달려오는데 따라 늘어지기도 하고 헹겨지기도 하면서 물우에서 꾸풀꾸풀 움직였다.

배에는 만주로 건너오는 이주민들이 타고있었다. 올망졸망한 바가지짝들이 데룽데룽 매달린 새까만 짐짝들속에 끼여앉아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짓눌린 시선들로 초점없이 황량한 이방의 산발을 바라보고있었다.

급한 물살을 맞는 배의 오른쪽 옆구리에서는 흰 물방울이 희끗희끗 튀여올랐다.

촘촘히 배전을 잡고앉은 사람들의 손들이 물바래에 젖어 번들거리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하염없이 그들을 바라보고계셨다. 자나깨나 보고싶던 그리운 조국의 기슭에 왔건만 일제에게 강탈당한 조국은 그이께 이주민들의 모습밖에 보여드리지 못했다.

이제 이들이 살길을 찾아가면 도대체 어디로 갈수 있으랴. 이들을 따뜻이 맞아주고 배불리 먹여줄 고장이 그 어디에 있단말인가? 어디 가나 낯설은 거친 땅, 거친 하늘이 그들을 푸접없이 맞아줄것이며 어디서나 일제와 지주에게 짓밟히고 강탈당하기는 고국땅이나 다름이 없을것이다.

정든 고향과 다정한 이웃들을 버리고 산설고 물설은 이 벽촌으로 건너올 때 우리 사람들은 여기에 무슨 행복이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것이다. 그들은 행복을 바라고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였다. 가난과 굶주림과 학대를 이기지 못해 강을 건넌 사람들이였다.

우리 조선의 이주민들이 기다렸던것은 근면한 자기 로동을 팔아 죽물이나마 끼니를 넘기지 않고 영위할수 있는 생활, 주린 배를 풀뿌리로 달래는 한이 있어도 일본놈과 그 앞잡이들의 지긋지긋한 꼴이나마 보지 않으려는 념원, 불행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 민족이 지향할수 있었던 최저의 생활조건이였다. 그러나 가난과 굶주림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으며 일제의 마수는 그들의 뼈속까지 침습해들어갔다. 우리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얻은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잃은것은 실로 많았다. 나서자란 정든 산천, 선조의 백골이 묻혀있는 고국땅을 잃었으며 가깝고 귀중한 모든 사람들을 잃었다. 버리지 못할것을 버렸으며 잊지 못할것을 잊고 온 그들, 굶어죽고 맞아죽고 혹한속에서 얼어죽고… 아무런 방비도 없는 이주민들에게 죽음은 삶의 계선보다 언제나 가까이 다가있는것이다. 그러니 우리 이주민들이 어떻게 여기서 마음을 기탁하고 생명을 부지하며 살아간단말인가. 하건만 사람들은 끝없이 밀려오고있다. 고국에서 목숨을 연명하고 살아가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간고하였으면 아무 의지될것이 없는 이방의 이 가난한 벽촌으로 한정없이 밀려오고있을것인가? 일제에게 나라를 강탈당하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우리 조선의 현실이 어떠하며 조선의 민생고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끓어오르는 의분과 고통에 가슴을 태우시며 나루로 다가가시였다.

통나무를 짜개서 만든 발판우에는 장보러 가는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들어 붐비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녀회원들과 함께 기우뚱거리는 배칸에 올라서시였다. 헌마대짝을 씌워놓은 배머리에는 총을 무르팍에 세워잡은 경관이 앉아있었다. 그놈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배에 오르는 한사람한사람을 뚫어지게 샅샅이 살펴보고있었다. 이따금 손가락을 까불까불하며 사람들을 불러갔다.

배칸에서부터 심문과 검색이 시작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단이와 마주앉아 배밑으로 흘러가는 물살을 내려다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숱한 사람들이 앉은 배칸은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였다. 이따금 배전이 삐걱거리고 새끼로 얽어놓은 광주리안에서 강아지들이 낑낑거렸다. 강아지를 가지고가는 아주머니는 대가리를 한대씩 갈겨 광주리속에 쑤셔넣고 경관의 눈치를 살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소리를 질러 소란을 일으킬가봐 열성스레 잔등을 긁어주고있었다.

배는 천천히 조국의 대안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막을수 없이 밀려드는 후더운 격정에 어찌하실수 없어 문득 배전에서 손을 떨구어 물에 잠그시였다.

맑고 시원한 물살이 손끝에서 휘감기며 회오리친다. 주절주절 배밑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이랑을 지으며 넓게넓게 퍼져가는 물결… 수천가닥의 찬란한 반사광이 어리여 너울거리는 수면… 그속에 곰처럼 웅크리고 엎디여 펄펄 물거품을 일으키며 배를 따라 오는 흰 바위들…

무서운 강탈자의 군화바닥에 짓눌린 조국이건만 철쇄에 묶이지 않은 그이의 자유로운 넋은 다시금 아름다운 그 품을 그러안고 몸부림쳤다.

(조국이여, 우리가 왔다. 장군님의 사랑의 해빛을 안고 우리가 왔다. 피와 눈물과 한숨이 깃든 너의 가슴에서 불행을 쓸어버리고 혁명의 밝은 홰불을 들어올리려 우리가 왔다. 기뻐해다오. 힘껏 두팔을 벌려 이 딸을 안아다오!)

고요히 맑은 눈물이 어리신 그이의 안광에 조국의 산발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장마당으로 들어가시였다.

좁은 장마당은 벌써 사람들로 벅적거리고있었다. 남북으로 길게 트인 장마당의 복판에는 흰 천막을 치고 발판을 내여다 깐 고급음식점들이 들어앉은 그옆으로 쌀궤짝을 들고나온 미곡상들이 줄을 치고있었으며 지짐장사, 떡장사, 팥죽장사들이 오골오골 들어앉았다. 장마당 한쪽에는 무슨 상회, 무슨 상점 하는 간판을 내다걸고 화려한 난전을 펼쳐놓았는데 거기에는 번쩍거리는 비단필들과 울긋불긋한 색천들이 필필이 늘어져있었다.

약장사, 사진쟁이, 환쟁이, 인형장사군들이 선소리를 치며 돌아가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녀회원들을 조용히 둘러보시며 장에서 물건을 살 때랑, 도강파출소를 지나갈 때랑 놈들의 단속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주의를 주셨다. 뒤에서 자전거소리가 째릉째릉 울렸다. 그이께서는 쌀자루를 잡으시고 옆으로 비켜서시였다. 커다란 참대광주리를 실은 자전거가 비뚝비뚝하면서 지나갔다.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려 뻘건 장딴지가 드러난 단단한 다리가 자전거 발받이를 힘껏 밟아대고있었다.

사방으로 열린 길목으로 한정없는 사람들의 흐름이 그냥 밀려들고있었다. 물고기자동차, 나무달구지, 자전거장사군, 거기에 무엇인가 이고지고 혹은 소나 돼지나 개를 끌고오는 사람들의 흐름이 골목을 메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녀회원들속에 끼여 나무장대쪽으로 가시였다.

후창쪽장마당은 잘사는 사람들이 찾아드는곳이므로 가난한 사람들은 얼씬도 못하는곳이였다.

《에익 숨이 탁탁 막힌다.》

분단은 나무장사군들이 몰켜있는 장마당 한쪽으로 걸어나와 쌀주머니를 내려놓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마의 땀을 훔치시고 머리를 매만지시며 새삼스레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편벽한 산골장마당치고는 너무도 복잡하고 소란한곳이다. 여기에는 주변의 몇십리 안팎 사람들만 아니라 몇백리 바깥 장사군들까지 모여들어 실컷 부산을 피우고있었다. 그것은 이 신파지구에 새로 번창하기 시작한 류벌목재업을 비롯하여 일제의 북선지구개발과 함께 신흥자본이 갑자기 불어나고 로동인부들이 급격히 장성한때문이였다.

그리하여 토착민들의 촌부락에 불과하였으며 어쩌다 열리는 장날에도 현대식 화페상업보다 물물교환이 더 성행하던 신파땅이 불시에 큰 도회의 상업가와도 흡사한 희한한 모습으로 변해버린것이였다.

면적으로 따진다면 벌방의 한개 읍거리보다 별로 더 크지 못한 협착한 거리지만 여기에 일본인, 중국인, 조선인, 백계로씨야인이 운영하는 상점만 해도 서른개나 되였다. 여기에 각종 료리점, 려관, 카페, 빠, 유곽까지 들어차서 가장 구질거리는 어두운 뒤골목에서까지 일본의 신식 류행가가 질탕치듯 울려나오고있었다.

거리가 이렇게 복잡한것만큼 이곳의 주민구성도 또한 복잡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료해하신바에 의하면 읍거리주민의 절대다수는 상인들과 수공업자들이며 여기에 국내 여러곳에서 산만하게 활동하다가 쫓겨온 공산주의운동자들, 민족주의자들, 종교인들 그리고 독립군출신의 인물들이 살고있었다.

게다가 신파지구는 일제군경들의 거대한 폭압기구가 들어앉은 무시무시한곳이기도 하였다.

일제는 신파읍에만도 각종 경찰서를 두고 수개의 강안포대를 구축하였으며 수비대, 헌병대, 도강파출소, 산림보호구, 영림서 등 수많은 폭압통치기구들을 들여앉혔다. 그리고 압록강대안에 100m 혹은 50m에 하나씩 영구화점과 사격좌지들을 설치하고 기관총을 배치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처럼 복잡하고 소란한곳에서 지하공작을 진행하게 된다고 생각하자 새삼스레 마음이 긴장되였으며 동시에 멀지않은 앞날 이 거리가 우리 수중에 장악되고 국내혁명활동의 강력한 기지로 꾸려지게 된다는것을 생각하시고는 끓어넘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시였다.

이날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녀회원들과 함께 신파읍내를 한바퀴 돌면서 적기관들의 위치를 정찰하시고 읍내 지형과 건물들을 익히시였다. 그리고 신파지구공작을 벌릴데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시였다. 예수교 정장로와 동아일보 신파지국장 리풍우를 장악하기 위해 곧 지세경을 그들에게 파견하며 벌사촌 주창범에게는 권용산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한편 리풍우의 양딸로 가있는 칠봉로인의 딸 참순에게도 영향을 주어 혁명의 길에 내세우며 장차 신파지구공작에서 한몫을 하게 해야 하겠다고 결심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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