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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동지께서는 말 못할 기쁨을 가슴속에 누르시고 신분단이와 함께 나물을 캐시며 포대산골짜기로 들어가시였다. 며칠전 춘옥이랑 함께 부녀회결성모임을 가졌던 이끼돋은 바위를 지나 머루넝쿨의 검스레한 줄기들이 엉켜붙은 수림에 들어가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신분단이더러 나물을 뜯으며 망을 보라고 이르시고는 재빨리 분비숲속으로 사라지시였다. 해묵은 락엽과 풀덤불이 발밑에 부근부근 밟혔다. 길은 없고 나무가지들과 마른풀들이 빽빽이 얼크러진 진펄을 가로질러 등성이로 오르시였다. 해빛이 스며들지 않는 컴컴한 가문비숲으로 어느만큼 들어온 김정숙동지께서는 나무캐는 칼자루를 드시고 나무밑둥을 두드리시였다. 멀지 않은곳에서 산울림처럼 부딪쳐오는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조그마한 왕골중태를 어깨에 걸친 약초군차림의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그 사람을 보시자 순간 김정숙동지께서는 《중대장동지!》 하고 반갑게 웨치며 달려가시였다. 그는 뜻밖에도 경위중대장 리동학이였던것이다. 《정숙동무, 얼마나 수고하오?》 리동학은 숨이 차게 뛰여와 김정숙동지의 손을 꽉 잡고 한동안 말을 못하더니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이란 참 이상한 물건이거던. 헤여진지 한달도 못됐는데 몇해 꼬박 갈라져있은것처럼 정이 씌운단말이요.》 《고마와요. 저는 자나깨나 사령관동지와 동무들을 생각하였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쁨이 물결치는 눈으로 리동학을 바라보셨는데 그 눈을 마주 들여다보고있던 리동학은 그이께서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한량없는 그리움의 많고많은 사연이 아직 그 눈에 있으며 다시 입을 열면 끝을 모르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쏟아져나올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올랐다. 《이번에 사령관동지께서 나를 이곳에 련락을 보내시면서 공작사업도 공작사업이지만 정숙동무가 적후에서 어떻게 살고있는가? 몸이랑 축가지 않았는가 잘 보고오라고 말씀하셨소.》 《사령관동지께서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이 핑 고인 눈을 슴벅슴벅하시며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그런데 사령관동지께서는 건강하십니까? 부대는 지금 어디에 와있습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아주 건강하시여 조국진군작전을 펼치시고 계시오. 부대는 동강에 있소. 4월초에 사령관동지께서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동강밀영에 들어가 군정학습을 시작하였소. 참 정숙동무는 그새 부대의 활동정형을 모르고있었겠군.》 《예, 적의 신문들을 통해 토막소식들을 얻어들은것밖에 없습니다. 림강, 무송사이 도로에서 전투들이 많았더군요. 소탕하계선에서도 큰 싸움이 있었구요. 장백, 림강방면의 적들이 무송쪽으로 몰려드는것이 아닙니까?》 《옳게 알아맞혔소. 단두산목재소습격전투에 뒤이어 만강지구에서 호되게 얻어맞은 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가 장백지구로부터 무송현경안에 이동하였다는것을 간파하고 장백과 림강일대의 〈토벌〉무력을 무송쪽으로 들이밀었소.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송지구로 집결되는 적들을 그냥 두고는 조국진군준비를 원만히 할수 없고 신입대원들의 군정훈련도 잘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적들을 족쳐버릴 작전을 하셨소. 우선 사령관동지께서는 림강쪽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도로연변에서 맹렬히 족치시고 적의 〈토벌지휘부〉가 자리잡고있는 송수진방향으로 대담하게 육박하시였소.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을수 있다는 속담과 같이 〈토벌대〉놈들을 저들의 〈토벌〉기지에서 깡그리 없애버릴 용단을 내리신것이요. 부대는 송수진의 코앞인 소탕하계선에 나가 진을 치고있다가 달려드는 적들을 몽땅 족쳐버렸소. 사령관동지께서는 그후 동강밀영에 들어가시여 장백으로부터 무송지구에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총화하시고 서강밀영으로 나가시여 력사적인 조국진군방침을 제시하시였소.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번에 김정숙동무에게 서강회의방침을 전달하고 부대의 조국진군로정과 작전방향에 립각하여 사업을 추진시키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소.》 《잘 알았습니다. 중대장동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못내 감격과 흥분을 걷잡지 못하시면서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리동학은 저고리단추를 벗기고 가슴속에 소중히 품고온 소책자를 꺼내였다. 《회의에서 하신 장군님의 연설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령부비서처에서 등사로 밀어낸 아직 기름냄새가 그대로 풍기는 얄팍한 책자를 받아드시였다. 《대부대에 의한 국내진공작전으로 인민들에게 조국광복의 서광을 안겨주자.》 한자한자 눈으로 글자를 밟아가시며 연설제목을 소중히 읽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두손에 책자를 받쳐드신채 한동안 조용히 그것을 쓸어만지시였다. 이제 책을 번지면 글줄마다에서 분명히 울려나올것 같은 장군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눈에 선히 안겨오는 그이의 숭엄한 모습이며 회장에 차넘친 엄숙한 분위기며를 세세히 그려보시는것이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불현듯 지금 장군님을 모시고 회장에 앉아 그이의 연설을 듣고있는듯 하였으며 가슴은 행복감과 희열을 안고 높이 고동쳤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제가 부대를 떠날 때에도 곧 서강쪽으로 나가시여 대부대에 의한 조국진군방침을 토의하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부대가 위풍당당히 국내에 나타나기만 하여도 그것은 인민들에게 큰 고무로 될것이며 우리가 총을 몇방 쏘아도 인민들은 거기서 큰힘을 얻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주력부대의 조국진군에 발을 맞추어 국내에서 조국광복회 지하조직을 확대하는 사업을 맹렬히 전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김정숙동지의 목소리에는 기쁘고 즐거우며 행복한 마음속의 모든것이 깡그리 내비치고있었다. 《바로 그것이요. 장군님께서는 회의에서도 그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소. 지금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이 〈내선일체〉, 〈동조동근〉을 떠벌이면서 조선인민의 민족적자부심과 자주의식을 말살하려고 광분하고있는 때에 대부대가 국내에 나가 조선인민혁명군은 건재하며 일제와의 투쟁에서 계속 승리하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는것이 얼마나 의의있는 일인가? 하고 말씀하셨을 때 회장은 폭풍같은 박수로 들끓었소.》 《그랬을테지요. 왜 안그렇겠어요. 얼마나 기다리고기다리던 조국진군입니까? 정말 리해되여요. 회장이 어떠했을지… 그리구 선히 떠올라요. 모든게 아주 속속들이말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에 활짝 홍조를 띠우고 기뻐 어쩔줄 몰라하시면서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얼마나 똑똑하고 생생하며 확신있는 말씀이였던지 리동학은 장군님을 모시고 회의에 참석한 자신이 마치 영웅처럼 생각될 지경이였다. 그는 주력부대가 국내진공작전을 앞두고 동강밀영에서 군정학습을 하고있는 소식들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얼마전 신문에서 황구와 림강현 5도구방향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보도를 읽었는데 그건 어찌된 사연입니까?》 《그것말이요?》 리동학은 금시 대답하려다 말고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눈여겨 세세히 굽어살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어딘지 모르게 가슴사무쳐있는듯 한 절박한 생각과 많은 의문의 표정들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오래 그이의 얼굴에 남아 지울수 없는 흔적을 새겨놓고있었다는것을 지금도 여실히 찾아볼수 있었다. 《사령부의 위치를 알지 못해 마음고생을 하였군.》 《예, 그냥 생각이 복잡했더랬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걸 그랬소. 장군님께서는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무송, 장백을 뚫고 압록강을 건너 일제의 국경경비의 요충지대인 혜산방면으로 진출하실것을 계획하시고 두개의 부대를 각각 안도와 화룡, 림강과 장백 일대의 압록강연안으로 진출시키시였소. 압록강, 두만강연안에 진출하는 부대들의 과업은 보다 광활한 지역에서 맹렬한 군사정치활동을 벌려 일제에게 큰 타격을 주는 동시에 장백지대에 집결된 적들을 분산약화시키고 국경경비진에 대혼란을 조성하며 주력부대의 국내진출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는데 있다고 하시였소. 사령관동지께서는 부대들을 떠나보내고 정세를 보시다가 이제는 림강과 안도, 화룡쪽에서 총소리를 울릴 때가 되였다고 생각하시고 곧 통신원들을 파견하시여 왜놈들을 치게 한것이요. 결국 사령관동지의 구상에 의해 전투가 시작된것이며 이렇게 되자 그이의 의도대로 무송일대의 적들이 림강과 안도, 화룡쪽으로 흩어지게 되였소.》 김정숙동지의 눈에는 이슬이 맺히였다. 사령관동지의 위대한 지략과 령활무쌍하고 신출귀몰한 전략전술의 세계가 눈앞에 훤히 떠오르는것 같으시였다. 《기뻐요. 정말,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까스로 눈물을 삼키시였다. 《그런데 중대장동무.》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하시다가 의문이 실린 눈길을 드시였다. 《뭐요?》 리동학은 반문하였다. 《림강과 안도방향으로 부대들이 갈라져갔다면 주력부대에는 어떤 동무들이 남았습니까? 혹시 사령관동지께서 7련대와 8련대, 경위중대의 끌끌한 핵심들을 뽑아 다른 부대들에 보내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참!) 리동학은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그것이야말로 김정숙동지께서 분명 마음을 놓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한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림강과 안도, 화룡방향에 나가 군사정치활동을 하려면 그곳 지형들도 잘 알고 군사정치활동경험이랑 많은 동무들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주력부대의 끌끌한 핵심들은 거의나 다 뽑아보내신것이였다. 그래서 주력부대에는 지난해와 금년초 장백지대에서 활동하면서 받아들인 신입대원들과 녀대원들, 소년대원들이 태반이였고 심지어 경위중대에는 어린 대원들이 많아 사령관동지께서 호위를 받느니보다 시중을 들고계시는 형편이다. 《뭐 거기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 마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 군정학습을 하고나면 모두 난다긴다 하는 신입대원들이 되고말텐데 사령관동지께서는 늘 사람들을 키우시여 다른 부대에 보내고 신입대원들을 주력부대에 받아 키우시지 않소. 그게 뭐 어제오늘에 있었던 일이라고 새삼스레 신경을 쓰면서 그러오?》 그렇게밖에 말할수 없는 경위중대장의 심정도 잘 아시겠고 부대의 형편이 어떤지도 대강 짐작이 가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가까이에서 돕지 못하는이상 사령관동지를 모시느라 지극히 애를 쓰고있을 동지들을 마음으로라도 도와야겠다고 생각되시여 흔연히 웃는 얼굴로 말씀하시였다. 《중대장동무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하긴 사령관동지를 가까이 모시고있는 동지들이 얼마나 생각들이 많겠습니까. 철구어머니랑 금숙동무랑 혜숙동무랑 전령병 봉길동무랑 모두 잘 있습니까?》 《잘 있소.》 리동학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음이 부산한듯 뒤짐을 지고 한참 왔다갔다 하였다. 《중대장동무, 제가 색실 몇토리를 구해가지고 왔는데 이번 가시면 혜숙동무에게 좀 전해주세요. 손수건에 수놓는거랑 군복에 장식을 하는거랑 아주 취미있어하는 동문데 반가와할겁니다.》 《그래 손이 여문 동무지.》 리동학의 기분은 어느만큼 밝아졌다. 《금숙동무하고도 무슨 약속을 한게 있지 않소?》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제가 아니고 금숙동무편에서였지요.》 《뭘 그 꿈이야기? 하긴 그건 부대에 짜하게 알려졌소. 남이 국내진공에 참가하는 기막힌 꿈을 꾸고있는데 정숙동무가 가슴앞에다 불을 피워주어 꿈을 깨게 하였다고.》 《그래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쁘고도 그리운 정을 안으시고 웃으시였다. 《참, 동지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겠어요. 처음은 막 견뎌내기가 조련찮았어요. 작식대동무들이 모두 얼마나 수고할가요? 이젠 산나물도 있고 작식걱정이 좀 덜어졌겠어요.》 《한결 나아졌지.》 리동학은 장군님께서 이해의 첫 봄나물을 뜯어가지고 작식대에 나타나신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것을 알면 또 마음을 쓰게 될지 모른다. 작식대가 들썽하게 일을 제끼고있다고 좀 대포를 놓을가? 그러나 그것도 못할노릇이였다. 《정숙동무, 이곳 공작지의 형편은 어떻소? 사령관동지께서는 정숙동무가 관동군사령부의 만만치 않은자들과 힘든 싸움을 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소.》 리동학은 자못 심중한 기색을 띠우고 김정숙동지의 옆에 와앉았다. 《뜻밖의 일에 부닥친 셈이지요. 관동군사령부에서 동변도의 치안공작을 담당한 가와사끼라는놈이 내려와서 국내신파지구와 면한 이 일대를 〈안민촌 모범부락〉으로 꾸릴 음모를 꾸미고있어요. 좁은 도천리바닥에서 백병전을 하게 된 형편이라 할가요. 솔직한 실정을 고백하면 저는 긴장이 이만저만 아니였다고 말해야겠어요. 지회장동지랑 권용산동지랑 저더러 공작지를 요방자나 탕성리 같은데 옮기는게 어떠냐는 의견까지 제기했어요. 적의 력량은 강한데 우리의 힘은 너무나 약하다고 생각한것이였지요. 사실 마을에 조직원이라고는 두사람밖에 없고 군중공작을 벌릴수 있는 토대마저 전혀 없는곳에서 빈손으로 적들과 대결하게 되였으니 왜 안그렇겠어요. 겁두 났을것이고 더구나 공작원의 신상에 무슨 변이 생기지 않을가 하여 마음을 놓지 못했을거예요. 그러나 이건 벌써 투쟁의 첫시기, 그러니까 한달 이전의 난관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때로부터 한달이 지난 지금에는 형편이 달라졌어요. 마을에는 반일부녀회같은 조직이 꾸려지고 〈협화회〉의 외피를 쓴 혁명야학이 운영되고있으며 놈들의 토성공사, 포대공사를 지연시키는 대중투쟁이 벌어지고있습니다. 일제와 지주의 학정에 머리를 들지 못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신심을 가지고 투쟁을 벌리게 되였어요. 공사에 강제동원되였던 농민들은 소를 끌고 돌아와 씨붙임준비들을 하고있고 산판채벌장에 갔던 사람들도 돌아오고있답니다. 놈들은 공사에 남자들을 죄다 동원하고 씨붙임은 녀자들과 아이들, 늙은이들로 하려고 하였지만 이게 파탄되기 시작한거예요. 이제는 놈들이 쉽게 이전처럼 사람들을 공사에 내몰지 못할거예요. 지금같아서는 놈들의 공사계획이 적어도 반년 내지 1년은 지연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이면 마을은 혁명촌으로 꾸려지게 될것이고 토성같은건 열겹백겹 둘러친다 해도 혁명사업에 아무런 난관도 없을것입니다. 단지 문제는 지금이라고 할수가 있어요. 혁명촌으로 꾸리기전에 토성을 둘러치면 조직을 꾸리는 사업도, 원군물자를 조직하는 사업도, 적정감시며 국내에 들어가는 공작원들을 안내하는 사업도 다 난관에 처하며 외부와의 상시적인 련락도 취할수 없게 됩니다. 가와사끼라는놈이 바로 이것을 노리고 토성공사를 빨리 다그치려 하고있는거예요. 그렇지만 벌써 적들의 계획은 뒤흔들리고 파산을 면치 못하게 되였어요. 우리는 도천리의 투쟁을 곧 장백현의 여러 농촌들에 확대할 결심이고 곧 국내신파지구에로 공작을 펼칠 계획입니다.》 《수고했소. 사령관동지께서 말씀을 들려주셔서 대략적인건 알고있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었소. 사령관동지께서는 크게 기뻐하고계시오.》 리동학은 오래지 않은 나날에 그처럼 많은 일을 하신 김정숙동지의 정력적인 활동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사령부에도 필요한 사람이지만 적후공작에 더욱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시던 사령관동지의 믿음어린 말씀이 다시금 생각되였다. 《그런데 놈들의 기도는 어떻소?》 리동학은 자못 우려와 불안을 감추지 못하면서 물었다. 《그놈들이 아주 발악적으로, 횡포하게 나올 형편은 아니요?》 《어느만큼은 그렇기도 하겠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난관들을 이미 예견하신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놈들은 지금 동변도〈치안유지〉를 위한 〈특별대강〉이라는걸 만들어가지고 한쪽에선 집단부락을 건설하고 검문검색과 보갑조치를 강화하면서 다른쪽에서는 무슨 〈생활개선운동〉이니 〈지방적부업장려〉니 〈위안시설〉건설이니 〈생계의 보존〉이니 하는 정신공작을 들이대고있는거예요. 이것이 지난해 놈들이 꾸면낸 〈도문회담〉에 기초하여 만들어낸 〈특별대강〉이라는거예요. 가와사끼라는놈은 이 〈특별대강〉의 실현을 위해서 도천리에 〈모범촌〉을 건설하려고 시도한것입니다. 그런데 놈들의 계획은 파산에 직면하고있습니다. 토성공사도 잘 안되고 산판채벌도 잘 안되며 협화회 〈연사〉라는것들까지 내려와서 망신을 당하고말았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놈들이 더욱 발광할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우리는 어떤 난관이 가로놓인다 하더라도 박차고 나가 장군님의 의도대로 도천리를 중심으로 한 장백현일대를 혁명화할것이며 이 지대를 발판으로 국내공작을 줄기차게 벌려나갈것입니다. 벌써 그만한 기초는 마련되고있습니다. 도천리에는 이미 부녀회가 조직되여 움직이고있으며 며칠후에는 산판에서 〈반일청년동맹〉을 결성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도천리 청년들만 아니라 13도구, 요방자, 탕성리, 남강, 대호상 등지에서 온 장백일대의 청년들과 국내 여러곳에서 모여온 청년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국내와 장백일대에로 퍼져가는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혁명은 불원간 넓은 지역에서 타오를것이며 조국광복회지하조직망은 국내에까지 급속히 확대될것입니다. 중대장동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나는 믿겠소. 장군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바라시고계시오. 장군님께서는 김정숙동무가 이제 도천리에 발을 붙이고 신파지구에 지하조직을 꾸리게 되면 국내에 항일무장투쟁을 비롯한 전반적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릴수 있는 큰 혁명기지가 마련되는 셈이라고 하시면서 여간만 의의를 부여하시지 않으셨소.》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으로부터 적후임무를 받으실 때 이미 거듭하여 들으신 말씀이고 그렇게 목표를 내세우고 투쟁을 벌려오고계셨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어쩐지 투쟁의 방향과 방도들을 새롭게 접하고 새로이 깨우침을 받으며 새로운 결심과 신심마저 북받치는듯 한 그러한 감개에 취하시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돌아가시면 장군님께서 의도하시는 뜻을 가슴에 새기고 어떤 정황속에서나 주도권을 틀어쥐고 혁명사업을 해나가겠다고 말씀드려주십시오. 그리고 조국진군으로 분망하실 장군님께서 이곳일을 두고 너무 마음을 쓰지 말아달라고 여쭈어올리십시오. 저는 그저 장군님께서…》 《알겠소. 알겠소.》 다시금 목메여 말씀을 못하시는 그이를 보자 리동학은 거듭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정숙동무의 간절한 부탁을 보고드리겠소. 아무튼 몸조심하시오. 만만치 않은 적들과 맞서있으니… 사령관동지께서는 정숙동무가 일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몸도 건강하여 부대로 돌아온다면 그 이상 큰 기쁨이 없겠다고 하시였소.》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숙이시고 저고리앞섶을 만지작거리시였다. 가슴이 한없이 설레며 눈물이 맺히는것이였다. 《이젠 떠날 때가 되였군. 생활에서 불편한 점이랑 무엇을 도와줄 일은 없겠소?》 《없어요. 그런 걱정은 조금도 마십시오.》 《그래도 왜 바이 없기야 하겠소. 수백리를 걸어가 정숙동무를 만나고 오는 사람이 애로가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고 왔다면 사령관동지께서 나무람을 하실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정말로 상심한 표정을 하고있는 리동학을 이윽히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시였다. 《저에게 고통이 있다면 한가지예요. 사령관동지와 부대의 동지들이 모두 눈보라속에서 행군을 하며 숙영을 하고있는데 제가 더운 온돌방에서 더운 이불을 덮고 더운밥을 먹는다는 그것이예요. 밥술을 들면 도무지 밥을 넘길수가 없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숙이시더니 조용히 얼굴로 손을 가져가시였다. 《그게 무슨 소리요?》 리동학은 펄쩍 뛰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따금 〈정숙동무는 얼마나 간고한 투쟁을 벌리고있을가. 어려운 적후에서 발편잠 한잠 자보지 못하고…〉 하시면서 마음을 놓으시지 못하시오. 아무리 눈보라속이고 가랑잎을 깔아놓은 숙영지라 하더라도 동지들의 곁에 서면 달게 잘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만 두손에 얼굴을 묻으시고 어깨를 흔드시였다. 많은 눈물이 손가락사이에서 이슬처럼 돋아나와 치마자락에 떨어졌다. 리동학은 가슴이 뒤번져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눈을 슴벅슴벅하면서 나무들 주위를 왔다갔다 하였다. 새들이 우짖는 머리우에서 은실같은 해빛이 비쳐내리고있었다. 고개를 들면 새파란 하늘이 거울처럼 걸려있다. 그는 모자채양을 우로 올리고 유난히도 새파란 쪼각하늘을 바라보았다. 리동학은 참으로 행복하였다. 마치 자신이 겪는 일처럼 그렇게 기쁘고 행복하며 혁명하는 보람을 다시 느껴보는것이였다. 이윽고 리동학은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여느때없이 달라진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내가 떠나면서 하는 부탁인데 허투루 듣지 말고 몸조심을 해야겠소.》 《제가 뭐 어쨌다구요. 장군님 앞에서는 아무 말씀도 말어요.》 《아니, 해야겠소. 얼굴이 영 몰라보게 축이 갔는데도.》 《그럴수가 없는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보기까지 하시였다. 《손이랑 영 험해졌소. 부대에 있을 때는 아무리 굶주리고 행군이 고되고 시달림이 많아도 지금같지는 않았소. 오죽하면 얼굴이랑 손이랑 그 모양이 되였겠소?》 김정숙동지께서는 당황해하시였다. 《제가 정말 그래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여기 고생이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지 말아요. 처음은 여기 생소한곳에서 어떻게 발을 붙이나 걱정했었어요. 그러나 지내보니 그게 공연한 걱정이 아니였겠어요. 사람들의 가난한 살림을 보고 지주에게 업심을 받으며 고생하는걸 보니 제가 어린시절에 어머니며 오빠, 올케 그리구 기송이랑 함께 겪어온 생활같아 마음이 쓰이질 않겠어요. 게다가 마을사람들을 모두 혁명화하여 장군님의 전사로 키우겠다고 생각하니 밤깊도록 일을 도와주어도 힘든줄 모르겠더군요. 이젠 마을사람들과 친숙해지구 정이 들어버렸어요. 그래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이 들군해요. 이곳에서 공작을 마치고 떠나게 되면 마을의 정든 사람들과 어떻게 헤여지나 하구요. 부대를 생각하면 한달음에라도 달려가고싶고 여기 마을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기두 해요. 참 사람의 정이란 별난거예요.》 《아니, 그렇게 정이 들었단말이요?》 리동학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놀라와하였다. 《그렇지 않으문요. 우리가 압록강연안에 나가 정치공작을 할 때랑 생각해보지요. 마을에 들려 하루밤만 같이 지내면 서로 헤여지기 어려워 눈물을 흘리지 않았나요?》 《그랬지. 하지만 나는 정숙동무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렇지는 않았소.》 《남자들은 그저 언제나 대범한척하지요. 녀자들은 그렇지 않답니다.》 《모를 소리군.》 리동학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튼 여기야 공작지인데 고향집같기야 하겠소?》 《그건 함께 일을 못해보니 그래요. 중대장동무도 막상 겪어보면 그렇지 않다는걸 곧 느끼게 되여요. 우리 부녀회장동무네 집에 가서 부엌이랑, 작두칸이랑, 소여물가마랑, 외양간이랑 이것저것 살펴보면 별난 생각이 들어요. 허리를 상하셨던 그 집 아버님이 막대를 잡고 뜰안을 거니시고 소가 여물을 먹고 드러누워 푸푸 코김을 내뿜으면서 새김질을 하고, 부녀회장동무가 매일같이 만나는데도 사람을 기다렸다가 문을 열면 확 달려나와 매달리고… 이런걸 생각하면 어떻게 발이 떨어지겠나요. 살점을 떼두고 오는것 같을거예요. 다만 저에게 안타까운것은…》 김정숙동지께서는 문득 그 어떤 사무치는 생각에 젖어드신듯 잠시 말씀을 멈추시였다. 리동학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그이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다만 한가지 안타까운건 저의 힘과 능력이 모자라 사령관동지의 의도에 맞게 일을 해나가지 못하면 어쩌나, 혹시 제가 자칫 어떤 실수로 미처 눈을 돌리지 못하여 장군님의 조국진군길에 조약돌 하나라도 걸채이게 하면 어찌나 하는 생각뿐이예요. 그리구 여기 공작지구의 모든 조직원들을 어떻게 하면 자나깨나 장군님을 생각하고 장군님을 우러르며 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혁명을 하도록 하겠는가 오직 이 생각뿐이예요. 혁명을 한다고 다 혁명가인것은 아니지요. 십년 이십년, 아니 온 일생을 혁명가로 살았다 하더라도 장군님을 모실줄 모르는 사람이야 무슨 혁명가라고 할수가 있겠나요. 한사람을 키워도 그렇고 두사람을 키워도 그렇고 장군님의 전사로 키워야 혁명가의 임무를 다한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해놓은 일을 그지없이 돌이켜보게 되고 까닭없이 안타까와지고 잠도 오지 않는 그런 때가 많은거예요.》 《옳소, 그 말이 옳소!》 리동학은 눈을 슴벅이며 뜨겁게 외웠다. 그러자 문득 김정숙동지께서 부대를 떠나신 다음 처처에 구멍이 나고 그 구멍을 메꾸려고 애를 써보아도 도저히 어떻게 메울 방도가 없던것을 회상하였다. 그러자 이 순간 리동학은 그것이 단순한 일이 아니라 사령관동지를 받들고 모시는 그이의 높은 충정이였던것을 깨달았으며 그처럼 값높은 대가로 이루어진 그 자리를 누가 쉽사리 메꿀수 있었으랴싶은 목메이는 생각이 북받치는것이였다. 리동학은 향수와 같이 젖어오는 어떤 후회와 그리고 끝을 모르게 펼쳐진 푸른 전야를 굽어보며 희망이며 리상을 그려보는 순간의 그런 환희에 찬 감명을 동시에 느꼈다. 김정숙동무 그 이름과 더불어 기억하게 될 이곳 공작지에서 어떤 혁명가들이 자라나게 될것인가?… 그는 눈앞에 그려보았다. 땅에 어떤 씨앗이 떨어지는가에 따라 거기서는 서로 다른 곡식이 자라날것이다. 김정숙동무의것, 분명 그렇게밖에 말할수 없는 장군님의 충직한 전사들이 자라날것이다. 귀중하고 성스러우며 혁명가의 신념으로도 되여야 할 김정숙동무의 넋이 자라날것이다. 리동학의 눈앞에는 모든것이 유난히도 푸르게 보였다. 하늘도, 수림도, 강도… 그리고 광막한 공간에 들어찬 세상의 그 모든것은 참으로 밝고 빛나는 광채에 둘러싸여 신비한 세계에로 떠나고있는듯싶었다. 한낮이 조금 기울어 김정숙동지께서는 리동학을 멀리 바래워주시고 산을 내리시였다. 신분단은 숲에서 나오시는 김정숙동지를 보자 머리수건을 풀어 고쳐썼다. 그것은 안전하다는 신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뿐사뿐 가볍게 걸음을 옮기시며 강뚝으로 걸어오셨다. 《누이, 얼마나 캤소?》 신분단은 옆에 사람이 있으면 아주 그럴듯하게 들리리만큼 능청스럽게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옆구리에 끼였던 바구니를 조금 기울여보였다. 칼을 얹어놓은 바구니속은 약간 골숨하였다. 신분단은 히쭉 웃고 바구니속에 손을 쑥 넣었다. 련락원의 길량식으로 꾸려넣었던 보자기가 없다. 그러니 련락원을 만난것이다. 신분단의 눈은 기쁨으로 환하게 빛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