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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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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동지께서는 버드나무가 늘어선 개울가 방축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오고계시였다. 17도구일대의 혁명조직들의 사업을 지도하시기 위하여 며칠동안 도천리를 떠나계시였다. 그 며칠사이에도 방축가 나무들은 진하게 물이 오르고 강아지들은 토실토실해졌으며 땅은 한결 더 부근부근해졌다. 그이께서 사령부를 떠나 이곳 공작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을 때는 산과 들에 눈이 하얗게 쌓이고 개울은 두터운 얼음장으로 뒤덮여있었는데 어느새 눈이 녹고 강이 풀렸으며 농민들은 들에 거름을 실어내고 동구밖의 버드나무 웃초리들은 연록색 혹은 적갈색으로 물들어 버들방천이 온통 푸르고 불그스름해졌다. 겨울로부터 봄으로 자연의 순환이 가져온 계절의 변화는 이해 따라 어쩐지 김정숙동지에게는 그것이 자연의 단순한 조화로만 보이지 않았으며 봄과 함께 조국땅에 약동할 혁명의 새 기운으로 느껴지시였다. 장군님께서 이 봄에 조국으로 나오신다! 이해에는 결코 산천도 무심하지 않으리라! 김정숙동지께서는 내내 그렇게 생각하시였다. 장군님께서 노하시면 백두산천지의 물도 일어서고 장군님께서 웃으시면 천지의 맑은 물에 미소가 비낀다는 전설도 있는데 장군님을 모시게 될 내 나라 내 강산에 어찌 신묘한 자연의 조화가 없으랴. 그러고보면 이해에는 여느때없이 봄이 일찍 시작되였다는 느낌이 확연해지시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방축아래 버들숲으로 다가가시여 버들강아지 하나를 따드시였다. 겨우내 어린 생명을 감싸안고 추위와 싸웠던 은백색보슴털들은 성글어지고 그사이로 약간 누르스름하고 붉은 줄무늬와 암갈색반점들이 찍힌 토실토실한 강아지몸뚱이가 드러나고있었다. 오래지 않아 버들강아지는 여물어 잔등이 터질것이고 이 방축일판은 희디흰 버들꽃의 운무에 휩싸이게 될것이였다. 문득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봄에 철기를 놓치지 않고 씨붙임을 하려고 조바심치는 농민의 심정과도 같이 시간을 놓치지 말고 혁명사업을 다그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토성공사가 벌어지고있는 부락우측 달구지길로 올라가시였다. 십여명의 남자들이 떼를 지어 연장들을 어깨에 둘러메고 혹은 삽과 괭이를 그냥 끌기도 하면서 와짝 떠들며 다가왔다. 그들은 모두 술내를 풍기면서 지나갔다. 차림새며 거동이며 말하는 품들이 도천리사람들같지 않았다. 딴부락에서 사람들을 끌어온 모양인가? 그럴수 있다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생각하시였다. 공사판주변에는 널판자로 대충 벽을 만들고 지붕에 풍천을 씌운 조그마한 매점같은것들이 생겨났다. 잘 단장한 녀자들이 매점앞에 나앉아 손에 턱을 고이고 공사장을 구경하는가 하면 졸기도 하였다. 보매 어디서 돈벌이를 온 사람들같았다. 공사장에는 난데없는 소철이 놓이고 딱장벌레같은 밀차가 왱왱 소리를 질러대면서 언덕배기로부터 쏜살같이 내리달리고있었다 일본놈기술자들이 들어있는 향옥이네 집 웃방에서는 축음기소리가 들렸다. 울바자 하나 넘어 인순이네 집 뜰안에서는 낯모를 남자들이 둘러서서 귀밀짚동가리를 헐어다 불을 피우고 거기다 달구지바퀴테를 굴러넣어 달구고있었다. 놈들이 도천리에 《안정촌》시범을 꾸리느라고 일심전력을 다하고있다는것이 알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야학방으로 가시였다. 마침 지세경이 하얀 널판에다 먹칠을 하고있었다. 쌍별이가 흑판한쪽귀를 붙잡고 세경이가 붓질을 하고있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따금 쌍별이가 웃고있었다. 흑판은 협화회야학을 한다고 하여 백지주가 목수를 불러다가 째워서 칠봉로인에게 지워가지고 온것이라고 하였다. 지세경은 꼭뒤가 조금 지치러진 학생모자를 쓰고 노란단추가 달린 까만 학생복앞자락을 헤쳐놓고있었는데 얼굴은 좀 여윈듯하고 키는 별로 껑충해졌으나 눈에는 영채가 돌고있었다. 약간 구부정한 어깨를 앞으로 숙이고 열성껏 먹칠을 하고있는 그는 자기가 뛰여든 이 환경에 자못 만족하여 성수가 나서 그 일을 하고있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지세경이와 야학의 출석정형이며 적들이 보내온 교재내용을 수정하는 문제며 야학할 때 적들에 대한 감시를 조직하는 문제 그리고 기타 일신상의 문제들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지세경이 야학으로 만족할수 없는 사람이였으나 야학에 정을 붙이고 그리고 자그마한 생활에서나마 기쁨을 찾으려고 진지하게 사심없는 노력을 기울이고있는것을 보시였을 때 자못 기쁨을 느끼시였다. 세경에게서 기대할수 있는 앞날의 일이 벌써 어디선가 다가와 야학방 낮은 문턱밖에서 기다리고있는듯 한, 손을 내밀면 그것을 잡을수 있으실것만 같은 느낌이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야학방을 나서시여 어두워지는 호젓한 골목길을 걸으시면서 이제는 조직의 기초가 마련되고 핵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며 적이 기동하는 모든곳에서 우리 사람들이 사업하고있다는 기쁜 생각을 금치 못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제 도천리에서 적들의 토성공사와 포대축성을 파탄시키는 투쟁을 계속하면서 빨리 조직들을 뭇고 투쟁을 보다 조직적이고 규모있는 단계에로 발전시켜야 하겠다고 결심하시였다. 그리고 도천리의 투쟁에 장백현일대의 모든 조직들에서 기세와 보조를 맞추고 통일적인 행동을 하여 적의 력량을 분산시키고 적들로 하여금 중심을 잡을수 없게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이제는 도천리를 중심으로 한 장백현일대를 반일의 기치아래 튼튼히 묶어세우고 국내공작을 활발히 벌릴수 있는 기초가 확고히 마련되여가고있었다. 이날을 위해 얼마나 불타는 열망을 가슴에 지니고 매일매일을 긴장속에 살았던가! 신파지구에 들어가 벌사촌로동계급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군중들을 이끌어 혁명조직을 무은 다음에는 계속 랑림산줄기를 타고 국내 여러 방면으로 진출하여 조국광복회지하조직들을 급속히 확대해나갈것이였다. 조용히 생각을 무르익히시고 눈앞에 떠오르는 가지가지 일들을 그려보느라면 스스로도 눈물이 맺히는 일이였다. 일제의 군화바닥아래 짓밟힌 내 나라 내 인민을 해방하고 장군님 모시고 조국으로 가게 될 날은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그냥 머리속으로 새록새록 스며드시였다. 장군님께서 추켜드신 조국광복의 위대한 해발을 안고 국내의 광활한 지역에 얼마나 많은 그이의 전사들이 씨앗처럼 뿌려졌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령관동지의 지도에 새겨졌던 조국광복의 웅대한 구상을 안고 동지들이 떠나간 무수한 지점들을 항상 눈앞에 그려보시였다. 그러면 무수한 그 지점으로부터 시시각각 태동하며 줄기를 뻗고 가지를 치며 양양하게 솟아오르는 혁명의 세찬 기운을 느끼시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제 곧 착수하게 될 국내공작을 위하여 면밀한 료해를 진행하고계시였다. 이즘의 정치정세와 국내형편을 아시려고 신문과 잡지들을 구해다 읽으시였고 신파지구와 면한 랑림산맥일대, 개마고원, 부전고원, 장진고원, 랑림고원과 동해안의 지리며 이곳 주민들의 생활형편, 사상동향들을 우선 연구하시였다. 특히 일제의 북서지구개발과 관련하여 번창하고 소란해진 신파지구의 실태와 복잡한 주민구성을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바치시였다. 이날밤 신파에 건너갔던 강성태가 돌아왔다. 그는 요즘 적들이 신파일대안에 100m 혹은 50m에 하나씩 화점을 만들고 밤낮으로 완전무장한 경관들이 경비를 서고있는 사실이며 밤 12시가 되면 야간통행이 금지되고 음식점과 놀이터들에서 일체 가무가 중단되고있는 형편들에 대해 세세히 보고를 드렸다. 그리고 도강파출소에서는 여느때없이 검문단속이 심해지고 조금만 미타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어도 잡아가두고 뭇매를 안기며 헌병놈들이 이제는 수비대군인들만 아니라 일반 사민들에 대해서도 깐깐히 단속을 하고 주민가옥들을 수색하는 등 매일같이 소동을 벌리고있다고 하였다. 《게다가 그곳 주민상태가 여간 복잡하지 않습니다.》 강성태는 말을 계속하였다. 《읍거리주민의 절대다수는 장사군들과 수공업자들입니다. 여기에 국내 여러곳에서 산만하게 활동하다가 쫓겨온 사람들, 완고한 독립군들로 사상상태가 여간 복잡하지 않습니다.》 침착하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계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신파실정이 충분히 그럴수 있겠다고 긍정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제가 이곳 공작지로 떠나올 때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신파지구에 들어가면 아주 복잡한 인물들과 부딪치게 될것인데 그들과의 사업을 특히 잘하여 조국광복회기치아래 튼튼히 묶어세워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신파에는 지난날 조선공산당안에서 당파싸움을 하다가 밀려온 사람도 있을수 있고 로씨야 어느 변강의 촌락같은데 가서 제나름으로 혁명을 리해하고 온 사람도 있을수 있으며 종교인들, 민족주의자들, 독립군출신인물들 등 각이한 계층이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들모두를 단합시키는 어려운 사업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신파공작은 도천리공작과도 다른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해내야 합니다. 신파지구의 로동자, 농민들속에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하는 사업을 선참 내밀면서 한편으로 국내공산주의자들, 민족주의자들과의 사업에도 힘을 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회장동지더러 신파에 가시면 영향력있는 큰 인물들을 좀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강성태는 이전에도 그러한 내용의 깨우침을 받았으나 다시금 말씀의 뜻이며 그 의의를 거의 새롭게 인식하는듯 한 느낌이였다. 《아무튼 공작원동지가 될수록 영향력이 큰 인물을 찾아보라고 하셨기에 그런 사람을 몇명 골랐습니다.》 《일이 힘들어도 영향력이 큰 인물이 필요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반갑게 그의 말을 받으시였다. 《우선 〈동아일보〉신파지국장 리풍우를 선발했습니다. 신파일판에서는 꽤 들썽한 인물입니다. 유지들속에서 인기가 있고 빈민들속에서도 인망이 높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적들도 그 사람의 존재를 허술히 대하지 않습니다. 그는 비교적 량심있는 지식인이고 자선가입니다. 신문에 쓰는 글을 보면 경향이 나쁘지 않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시며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시였다. 《그 사람은 이전부터 제가 좀 압니다. 신문구독자를 뫃느라고 도천리에도 몇번 넘어온적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우리 집에서 자고간적도 있구요. 명색이 구장이니까 이런 인물이 혹여 들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리구 그 사람은 유격대활동에도 자못 관심이 큰 사람입니다.》 《유격대활동에 관심이 크다구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드물게 보게 되는 의혹과 기대의 뜻을 동시에 나타내시였다. 《글쎄 그걸 어떻게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들리는 말에는 국경연안에서 유격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실리면 신문구독자가 늘고 유격대소식이 좀 뜸해지면 구독자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흥미있는 일이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웃음을 지으시였다. 《그런데 문제는 유격대에 대한 그 당자의 견해가 어떤지 그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한데 유격대에 대해서는 그리 나쁜 감정이 아닌것 같습니다. 신문에 쓰는 기사를 보면 유격대활동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고있습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요. 객관적으로 보도한다는 그것자체가 일종의 동정과 지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러게말입니다.》 강성태는 금시에 찬동과 호기심을 내보이였다. 《제가 이사람하고 한번 사업해보겠습니다. 용이치는 않은 인물이기는 하지만…》 항상 그러하듯 어느때나 어깨를 들이밀고 부담을 나누고싶어하는 진지한 태도에다가 자신심도 드러내면서 그는 말하였다. 《지회장동지 말고는 그와 공작을 진행할수 있는 다른분이 없을가요?》 강성태는 대답대신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자기가 실지로 그이를 도우려 하며 돕고싶어 애를 태우면서도 그럴만 한 능력을 구비하고있지 못한것을 언제나 괴롭게 생각하고있었다. 《다른 생각은 마십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못 심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지회장동지는 공작상 위치로 보아서 아무데나 쉽게 나타날 처지가 못됩니다. 지하공작에서는 언제나 만약의 경우라는것이 있지 않습니까? 지회장동지는 적들속에 들어간 유일한 조직성원인데 여러모로 조심을 하셔야지요. 밖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는것이 지회장동지의 임무입니다. 적들이 도천리에 혁명조직이 움직이지 않는가 하여 눈을 밝히고있는 이때 지회장동지는 더욱 숨은 사업을 하셔야 합니다.》 강성태는 조용히 손을 마주 비비면서 자주 이렇게 조급증에 사로잡혀 당치않게도 그이께 걱정을 안겨드리는 자신을 돌이키였다. 《누구를 보내면 좋겠습니까?》 《좋기는 지세경이가 좋을듯한데… 리풍우는 세경이의 학생때 스승이고 지금도 그들의 관계는 막역한 사이입니다… 지세경이가 혁명을 빨리 인식하면 리풍우와의 공작에 인입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성태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앞으로 리풍우와의 공작에 세경이를 내세우자는 의견에 동의하시였다. 《그러나 리풍우보다 좀 더 영향력이 큰 인물은 없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못 진지하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공작이 어렵다거나 일이 복잡해진다거나 하는 그런 우려를 개의치말고 한번 골라보십시오. 우리에게는 사실상 공작의 시간적여유가 없습니다. 장군님의 조국진군은 눈앞에 박두해오고있습니다. 일을 대담하고 과감히 밀고나가 신파지구의 복잡한 인물들을 짧은 시간내에 장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약간 높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눈빛도 조금 예리해지셨다. 강성태는 어지간히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리풍우에 짝지지 않은 큰 인물이 신파바닥에 있습니다. 그는 정장로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한때는 서울과 함흥 일판을 휩쓸고 다니면서 구국운동을 벌리던 로인입니다. 지금은 신파에서 혜신상점을 운영하면서 예수교인들의 장로노릇을 합니다. 그는 리풍우의 장인되는 사람인데 신파일판의 상인들과 교인들속에서 인망이 있습니다. 아마 리풍우와 정장로를 장악하기만 하면 읍내의 유지들과 모모한 인사들을 죄다 흡수할수 있는 가능성이 생길겁니다.》 《그래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뭇 반기시며 말씀하셨다. 《장로로인의 최근 동향은 어떻습니까? 민족적량심을 지니고사는 늙은입니까?》 《량심이 있습니다.》 강성태는 다소 성급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장로늙은이는 읍내의 교인들속에서 일본말 사용을 금지하며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도고한 자세를 취하고있습니다. 일본놈 관청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이 일본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법령이 내린지 몇달이 되여오지만 로인은 끄떡없습니다. 그래서 경찰의 압력을 받고있는 형편이랍니다. 상점에는 상품이 거지반 떨어져가는데 경찰이 방해를 놀아서 상품을 받아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과 상인들이 술렁술렁하는 모양입니다.》 김정숙동지의 눈에는 한순간 불꽃과도 같은 빛이 번쩍이시였다. 《그게 헛소문은 아니겠지요? 상점에는 들려보았습니까?》 《예, 매대가 휑뎅하게 비였습니다. 예전에는 비단필들이 번쩍이던 고급상점인데 지금은 베와 무명필들이 놓였습니다. 화려하게 성장을 한 신사숙녀들만 드나들던 상점에 지금은 가난한 촌사람들이 기웃거리고있습니다. 늙은이는 해종일 조는듯 한 모양을 하고 매대에 앉아있고 얼굴은 마늘쪽같이 여위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정숙동지의 가슴속에서는 억제할수 없는 기쁨이 피여오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지체없이 신파공작을 추진시켜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시였다. 그러자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역시 지세경이와의 공작이 빨리 진척되여야 하는것이였다. 지세경이를 통해 리풍우를 장악하고 리풍우를 통해 정장로를 장악한다면 일은 순조롭게 될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세경의 집에서 때때로 정장로의 상점물건을 도매로 넘겨다 팔고있는 조건에서 그 연줄을 밟아서 정장로에게 먼저 접근할수도 있는것이다. 어쨌든 이렇게나저렇게나 지세경의 위치가 중요하다는것을 그이께서는 새삼스레 통감하시였다. 《리풍우와 정장로를 장악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른편으로는 신파 벌사촌로동자들을 장악하는 일을 동시에 내밀어야 하겠습니다. 벌사촌은 신파지구로동계급의 핵심촌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권용산동지에게 알아보니 그곳 사람들은 계급구성도 좋고 사자밥을 등지고 일하는 사람들이라 의리도 남달리 강하다고 합니다. 권용산동지는 벌사촌에서 제일 인망이 높은 주창범이라는 사람과 가까운 사이라고 하는데 벌사촌공작은 권용산동지에게 맡겨야 할것 같습니다. 지회장동지 생각은 어떻습니까?》 《권용산이 하는 일이라면 달리 무슨 의견이 있을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야 마음으루 친구를 얻는 사람인데 그의 말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렇지 않아도 지금 조직원이 매우 부족한 형편에서 두세곱 어려운 임무를 맡고 힘든 고비를 헤쳐나가고있는 권용산에게 숨돌릴사이없이 신파 벌사촌을 장악하는 중요한 공작을 또 맡기지 않을수 없다고 생각하시자 그것때문에 오는 여러가지 번다한 상념과 괴로움으로부터 쉽게 헤여날수 없으시였다. 《투쟁은 이제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선것 같습니다. 야학도 잘 돼나가고있고 산판에서도 조직을 내올수 있는 핵심들이 장악되였습니다. 봉녀 아지미랑, 쌍별이랑, 얌전이 어머니랑 모두 나서서 녀성들을 교양하는 일도 잘해나가고있어요. 이제는 반일부녀회를 내오고 투쟁을 조직적으로 확대할수 있는 기초가 준비되였다고 보아집니다. 부녀회를 조직하면 누구에게 부녀회장사업을 맡길지 생각해보셨습니까?》 강성태는 아주 딱한 기색을 나타내였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했다는것은 아니였고 실은 두루 생각해보기도 하였으나 도천리에서 그의 눈에 성차보이는 녀성은 골라낼수 없었다. 《제가 한번 추천을 해볼가요?》 《어서 그러십시오.》 강성태는 제꺽 환영해나섰다. 《옛말에 부부오누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어쩐지 권용산동지를 생각하면 봉녀 아지미가 생각나고 봉녀 아지미를 생각하면 권용산동지가 생각되는구만요. 어쩌면 이분들은 이렇게도 고지식하고 의협심이 강할가? 그래서 때로는 그 순박성이 나쁜놈들에게 짓밟히지 않을수 없을가 하여 마음을 쓰게 되는 때도 있답니다. 그댁 아버님까지도 그지없이 어진분이더군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강성태는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공작원동지의 뜻을 알겠습니다. 저는 반대가 없습니다. 마을의 부녀회장으로 리춘옥동무를 선발합시다.》 《지회장동지두 찬성입니까? 우리는 권용산동지 의견을 묻지 못하고 결정하게 되는군요.》 《괜찮습니다. 언제면 그 사람의 동의를 얻게 될것 같습니까?》 《하긴 그렇기두 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감격스런 미소를 지으시며 더없이 만족해하시였다. 좋은 동지들에 대한 좋은 감정과 애착을 품고 그와 함께 그들에 대한 굳센 믿음을 간직한채 이렇게 결정짓고 나니 더없이 행복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앞으로 마을에 반일로인회가 조직되면 회장으로 춘옥이의 아버지인 리필섭로인을 선발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가지고계셨으나 아직 그것까지는 내비치지 않으시였다. 《이번에 17도구를 다녀오던길에 채벌장에 들려보았습니다. 권용산동지가 그새 일을 많이 하였더군요. 각성된 인부들은 복순 어머니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투쟁을 준비하고있습니다. 조만간에 파업이든지 항의든지 일어나고야말것입니다. 이 투쟁을 옳게 이끌어 조직의 기초를 마련하자고 합니다.》 《그것참!》 강성태는 감탄하였다. 빠르기도 하거니와 그 확실한 전망에 대하여 그는 락관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 몸소 산판을 다녀오시고 그후에도 여러번 사람을 보내여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고 복순 아버지 병을 고쳐주시겠다고 약까지 지어 올려보내시면서 숱한 노력을 기울여 드디여 오늘같은 결실을 보게 된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놈들이 도천리에다 〈안정촌〉시범을 꾸리려고 발광하고있는 형편에서 우리가 어떻게 일해나가는가에 따라 그것이 장백현전반에 주는 영향이 커집니다. 도천리에서 집단부락공사나 포대공사가 파탄되고 인민들에게 〈황국정신〉을 주입하려던 음모가 실패하면 장백현일대에서 놈들이 발붙일곳은 없어지게 됩니다. 결국 〈북부동변도치안공작대강〉이라는것이 여기서 종말을 보게 되고 동변도를 안전지대로 꾸려보려던 기도가 산산이 부서져나가게 되는것입니다. 그러니 도천리에서 일을 빨리 다그쳐나가는것이 중요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언제나 그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고있던 문제만이 아니라 이미 알고있으며 명백한 전망과 목적을 내다보고 추진하던 문제들도 그 의의와 중요성이 새롭게 느껴졌다. 지금도 강성태는 그러한 흥분과 새로운 느낌을 받아안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