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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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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간에 강성태는 웃는 일이 많아졌다. 채벌장에서는 지하조직의 움직임이 활발하였다. 십여명의 농민들이 소와 달구지를 끌고 산판에서 내려왔다. 복방아 어머니의 아들인 상덕이도 내려왔다. 그는 조직으로부터 마을청년들을 교양하고 규합할 임무를 받았다. 그들이 부락으로 돌아와 농사일에 달라붙자 동네에서 공사에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져 씨붙임준비를 서둘렀다. 그러자 공사는 차츰 열이 식어지고 산판에서 내려와야 할 원목도 내려오지 않았다. 백지주는 사태를 바로잡아보려고 산판을 오르내리며 감독들을 달궈대고 인부들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지만 형편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원목은 내려오지 않았고 인부들은 열성껏 일하지 않았다. 마을에서도 농민들은 지주의 강박에 말로만 응하는척하면서 공사장에 나가지 않았으며 설사 나간다 해도 모여앉아서는 씨뿌릴 걱정들을 하고 지주가 골탕먹은 이야기들을 펼치였다. 마을에는 야학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협화회 야학이라는 간판을 걸고 내용상으로는 농민들의 눈을 띄우는 계몽운동을 벌리고있었다. 지세경이 저녁마다 농민들을 가르치고있었는데 그는 비록 조직의 성원은 아니였으나 농민들을 계급적으로 각성시킬만한 지식과 의식수준을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게다가 김정숙동지께서 많은 힘을 돌려 지세경이와의 사업을 진행하고계시였다. 어느날 강성태는 밤늦게 야학에서 돌아온 김정숙동지께 기쁨을 금치 못하며 이야기하였다. 《도천리사람들은 당대로 지주에게 빼앗기고 바치고 그러면서도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지요. 지주앞에서 권리를 주장하고 정당성을 론하던가 하는것은 생각도 못했고 간혹 지주집마당에 떨군 제 물건도 어려워 함부로 집을념을 못했으며 아이들이 연을 띄우다가 나무가지에 걸려도 그것이 지주의 뜰안이기만 하면 다시 찾아내지 못하는 물건인줄로 알았습니다. 한데 지주한테 빼앗겼던 소를 찾아왔고 그것도 권용산이 아니라 그집 아낙네가 찾았다고 마을사람들은 모두 환성입니다. 공사판에서도 야학방에서도 마실방에서도 모두들 그 이야기들입니다.》 《그럴거예요. 마을에서 제일 연약하고 무던하던 춘옥이가 소를 다시 찾았으니 왜 안그러겠어요. 게다가 산판에 갔던 사람들도 돌아오고있지, 돌아와도 그냥 돌아오고있는것이 아니라 기세당당해서 돌아오니 사람들의 기분이 들썽해지지 않을수 없는거지요. 이제는 누구도 지주한테 호락호락 굽혀들지 않을것입니다. 마을사람들은 지금 자기들에게 힘이 있다는것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실은 이것이 제일 중요하지요.》 《그렇습니다. 모두 지주를 조롱하고 활기에 넘쳤습니다. 이 모양으로 기세가 오르기만 하면 놈들의 강박도 어지간해서는 먹어들어가지 않을것입니다. 그러니 조직의 활동에 얼마나 유리한 조건이 마련되였습니까.》 김정숙동지께는 소리없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얼굴은 눈에 띄게 상하셨지만 눈의 정기만은 언제나 령롱하고 밝은 빛을 발산하고있었다. 그러나 마을의 일이 이렇게 잘돼가고 혁명정세가 좋아지고있는 이즈음에 김정숙동지의 심중은 전에없이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차있다는것을 강성태자신도 다는 알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히 마을사람들의 심중에서 일어나고있는 변화들을 살피시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시는것 같았으며 보다 광범하고 폭넓은 사업을 포치하고 밀고나가기 위해서만 온통 마음을 쓰시는것 같았던것이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적들이 꾸밀수 있는 모략과 공격으로부터 조직이 받을수 있는 피해에 대해 항상 주의깊이 생각하시였다. 사실 가와사끼가 강성태의 요구를 아무 이의도 없이 받아들였다는 말을 들으셨을 때 벌써 이자가 뒤에서 꾸밀수 있는 모략을 예감하시였다. 필경 적들은 마을사람들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면서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목을 조일수 있는 올가미를 만들고있을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그리고 이즈음에는 그것이 아주 성숙된 일로 추진되고있을것이라고 단정하시였다. 그렇기때문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지체없이 적의 기도를 알아내기 위한 투쟁을 벌리기로 결심하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이야기를 들은 강성태는 그것이 매우 심중하고 심각한 문제라는것을 알았다. 김정숙동지께는 강성태더러 경찰서장을 통해 놈들의 숨은 내막을 알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바로 오늘을 위해서 경찰서장과의 사업이 그동안 벌어진것이라고 하시였다. 《어떻습니까. 경찰서장을 통해서 무얼 좀 얻어낼수 있는 가능성이 보입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의미있게 물으시였다. 《가능합니다. 이미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서장은 아라가와하고 앙숙입니다. 놈들의 차별대우에 심한 불만을 느끼고있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가와사끼가 내려와서 비밀에 속하는 일은 아라가와하고만 의논을 하고 서장을 돌려놓는바람에 요즘 그의 심정은 아주 복잡합니다. 내내 사기를 잃고 우울해서 돌아갑니다.》 《그러면 그 점을 잘 리용해보세요. 일정하게 경계하면서 조심해서 일을 하십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못 긴장한 낯빛을 하시고 있을수 있는 여러가지 정황에 대해 말씀하시였다. 《걱정마십시오. 13도구면장과 세관장은 나와 작의형제를 무은 사람들이니 필요하면 그들을 발동해도 됩니다… 안심하십시오.》 이튿날 강성태는 경찰서장 능포산을 찾아 경찰서로 올라갔다. 능포산은 유리창에 봄볕이 스며드는 방안에서 노근한듯 시름없이 의자에 몸을 내맡기고있다가 반가이 강성태를 맞이하였다. 《강구장인가?》 《예, 서장님 안녕하셨소?》 강성태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호인다운 몸가짐으로 다가가 무랍없이 그의 맞은편에 의자 하나를 손수 들어다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아주 방심한듯한 눈길을 들어 서장을 은근히 굽어보았다. 능포산은 잠이 밀린 사람모양으로 눈덕이 좀 부석부석하고 아래턱이 처져있었다. 《요즘 몹시 바쁘신 모양이군요. 몸이랑 좀 돌보면서 일하시라구요.》 강성태는 심상히 입맛을 다시며 주머니에서 금박장식을 한 선물용《긴시》(고급담배) 한갑을 꺼내여 서장앞에 밀어놓았다. 《허, 이거 시절이 꽤 좋은걸.》 능포산은 손바닥으로 눈언저리를 문다지고 담배갑을 집었다. 《강구장은 언제 봐야 돈 잘 쓰고 놀음 잘 노는 사람이란말야.》 《서장님두, 소란한 세월에 돈이나 모아서 뭘하겠소. 좋은 친구를 사귀고 지내는 이상 더 좋은게 어데 있겠소.》 《그렇기야 하지.》 능포산은 《긴시》 한가치를 뽑아 입에 물고 성냥을 그어 길게 한모금 빨아들이면서 말하였다. 《그래 요즘 공사형편은 어떤가?》 《말이 아니지요. 동원실적은 날마다 떨어지구 게다가…》 강성태는 말을 끊고 진절머리가 난다는듯 머리를 흔들었다. 《강구장이 그래서야 되는가. 아무튼 공사야 내밀고보아야지.》 《허, 나한테 무슨 권한이 있다고 그러오. 도천리주인은 백지주인데… 아라가와대위는 현지에 내려오면 구장따위는 돌려놓고 백지주하구만 의논이지요. 그러니 나같은 존재야 서푼어치값에나 가오?》 능포산은 담배연기사이로 잠간 그를 묵묵히 지켜보고있더니 넌지시 물었다. 《그래 아라가와대위는 만나보았는가?》 《내가요? 곧장 서장님을 찾아오는길이지요.》 《아니 왜, 요즘 도천리일이야 지도관이 직접 하고있지 않는가?》 《하지만 나야 서장님을 찾아오지 지도관을 찾아가겠소.》 능포산은 약간 게면쩍은듯한 표정을 짓고 말없이 담배를 태우더니 시무룩이 미소를 지었다. 《강구장이 너무하는군. 아무리 그래도 지도관은 지도관답게 모셔야 하는거요. 앞으로 언행을 삼가하도록 하오.》 《그러지요.》 강성태는 섭섭하게 대꾸하였다. 그는 요즘 여느때없이 부산스레 들볶이고 소득없이 돌아치기만 하는통에 지치고 정력이 빠져버려서 이제는 누구의 권고나 다 그쯤해들어둔다는 방심한 태도를 내보였다. 이렇게 되면 자연 경찰서장의 직분을 생각해서라도 몇마디 충고가 있을것 같았는데 능포산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난 서장님에게 한가지 청을 드릴게 있어 들렸소.》 《무엇인데?》 능포산은 짐짓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강성태를 굽어보았다. 《저녁에 댁에 들리지요. 몇시에나 퇴근하오?》 《왜 강구장, 요즘 비상시국이요.》 《누가 그걸 몰라 하는 소리요? 서장님두 사람이 좀 달라졌구려.》 강성태는 쓸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능포산의 얼굴에는 이상야릇하고도 측은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문밖에까지 따라나오며 정 일이 있거든 저녁에 들리라고 하였다. 《장춘에서 우리 처제가 왔소. 녀학교에 다니는 애인데 학교를 그만두구 제 언니를 따라 이쪽 어디에 취직을 하겠다구 그러지 않소. 가만보니 실련을 당한 눈치야. 아무튼 좀 일찍 가도록 하겠소.》 서장실로 들어가려던 능포산은 자못 주의깊은 눈으로 긴 복도의 저쪽 끝을 바라보았다. 컴컴한 검은 복도 안쪽에선 꼴망태를 진 농민이 위생계 접수구에다 술병모가지를 드러내보이고있었다. 서장은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농민은 돼지를 잡으려고 도살신청서를 내려온 사람이였다. 돼지가죽을 벗기지 않고 물튀기를 하도록 승인받기 위해 위생계놈들에게 술병을 꺼내보이고있는것이였다. 접수구안에서는 위생계장놈의 긴 화상이 한쪽 눈을 째긋하고 내다보며 웃어대고있었다. 《요로시, 요로시. 돼지나 모깡이나 시켜라.》 계장놈은 일본말에 서툰 조선말을 섞어가며 연방 지껄였다. 《앞쁘로두 또 오라. 짜주짜주 모깡이나 시켜주마.》 앞으로도 술만 가져오면 가죽을 벗기지 않고 물튀를 하도록 승인한다는 말이였다. 농민은 도살신청서를 받아들고 접수구 유리에다 이마를 쪼으며 머리를 굽석하였다. 뒤이어 위생계장놈이 위생계수의사와 함께 도살장으로 술받아먹으러 가느라고 히히닥거리며 문밖을 나섰다. 《시마무라!》 능포산은 엄엄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위생계장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두 경관은 기착하고 부동자세로 서버렸다. 능포산은 천천히 그들앞으로 다가가더니 묻지도 않고 따귀를 힘껏 후려쳤다. 방금전 창문가에서 해빛에 나른해앉았을 때는 아무 기맥도 없어보였으나 일단 분노하자 그의 기상은 자못 무서웠다. 약간 네모진 거무스레한 턱은 힐난하듯 앞으로 불쑥 내밀려있는데 장미가 수북한 눈섭밑에서는 노한 눈이 번쩍거리고있었다. 가와사끼나 아라가와한테서 받은 수모를 그는 일본인 계장들에게 앙갚음하는것이였다. 한마디 말도 없이 오래동안 엄엄히 쏘아보고나서 능포산은 홱 몸을 돌리고 요란히 구두발소리를 울리면서 서장실로 들어갔다. 유리문이 창 소리를 내면서 닫기자 긴 복도에는 금시 유리쪼각이 산산이 부서져 쏟아지는것 같은 아츠러운 소음이 울렸다. 위생계장과 수의사의 볼따구니에는 시뻘겋게 손가락자리가 돋아올랐다. 그들은 두덜거리면서 위생계로 들어가고 꼴망태를 진 농민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고말았다. 강성태는 흥미있는 광경을 목격하였다는 즐거운 생각을 품고 경찰서뜰안을 호기있게 걸어나왔다. 왜놈의 종자들이 창피를 당하거나 고생을 겪는것을 보면 그이상 고소한 일이 없었다. 강성태는 해꼴에 13도구면장과 세관장, 중국인촌장 등 작의형제패들을 방문하고 어슬막이 되여 일본인이 경영하는 시마끼상점에서 《백학》 두병, 《사뽀로삐루》 여라문병을 사서 꿍지였다. 그리고 청인이라고 부르는 중국인료리사에게 술안주를 주문하여 서장댁까지 나르도록 부탁하였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능포산은 강성태더러 찾아온 용건을 말하라고 거듭거듭 권고하였지만 한순배씩만 더 돌자 하면서 늦도록 입을 다물었다. 강성태는 속이 타는듯 술만 마시였다. 이윽고 그는 심중히 말을 꺼냈다. 《형님, 난 구장노릇을 그만둘 작정이요. 실은 그래서 찾아왔소.》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이 비상시국에 엉?》 능포산은 한손으로 술상머리를 잡고 시커먼 장미를 움씰움씰하면서 흘겨보았다. 《형님두 날 사귀여보아서 잘 아실터이지만 내가 이따위 구장아니문 해먹을노릇이 없을줄 아오. 이건 사람을 업신여겨두 분수가 있지 눈이 시여 못해먹겠단말이요. 명색이 구장이라구 해놓구서 상급에서 어쩌는지 아무 기동두 못차리구 멍청해있다가 봉변만 당하니 어느 시러베아들놈이 이따위 시라소니노릇을 할테요?》 《그따위 객적은 소린 말구 술이나 들게, 술맛 좋으면 살맛이 있는거야.》 능포산은 잔에 넘치도록 술을 부어 강성태의 입술에 갖다대였다. 《형님 고마와 이 한잔을 들겠소만 이 좌석두 마지막인줄 아우.》 《자네 정 이러긴가, 엉?》 취중에도 능포산의 목소리는 자못 엄엄했다. 《내가 무엇이 모자라서 아라가와나 백지주같은 사람앞에 모욕을 당하겠소. 구장을 해먹어두 혜산쪽에 넘어가 해먹을 작정이요. 그냥 훌쩍 떠나버리려다 형님정리를 생각해서 들렸소. 그런줄이나 아오.》 살가운 술친구 한사람 없어진다는바람에 능포산은 덜컥 겁이 났다. 《이보 강구장, 누군 좋아서 이노릇 하는줄 아오. 먹고살려니 할수없이 이노릇 하지.》 《형님이야 그래도 서장이 아니요?》 《서장이면 뭘하오. 내밑에 있는 지도관보구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형편인데. 오늘 보지 못했소. 겨우 위생계장따위하구나 해본단말이야. 그것도 도수가 잦아지면 아라가와한테서 반박이 오거던.》 강성태는 전혀 뜻밖의 사변에 부딪친듯 놀라와하였다. 《형님두 그렇소?》 능포산은 입이 쓰다는듯 대답을 안했다. 《난 형님이 그렇게 옹색한 형편인줄은 몰랐소. 한데 형님, 서장의 월급은 대체 얼마나 되오?》 강성태는 너무나 잘 알고있는 문제를 아닌보살하고 슬쩍 물었다. 《말이 아니요. 동생, 겨우 사십원이요.》 《사십원? 그럼 일본지도관은 얼마를 받소?》 《자그만치 이백사십원이지.》 《아니?…》 강성태는 그만 아연하여 머리를 내저었다. 《그게 어느 미친놈이 봉급을 메기지 않았소? 아무리 일본인이 득세하는 세상이기로 그럴수야 있소?》 《말 마오. 일본인 평경찰도 서장보다는 백원이 더 높아서 백사십원을 받는 형편이요.》 《참 더럽군, 예? 형님, 정말 더럽소. 그래두 용히 참구 견뎌내구려. 그러니 구장같은게 다 무엇이겠소.》 강성태는 개탄을 하고 한숨을 푸푸 내쉬며 연방 잔에 술을 부어 마셨다. 강성태의 돌발적인 행동에 주의가 미친 능포산은 이사람이 제 죽을노릇을 한다고 술잔을 꽉 덮고 만류하였다. 《놓소, 놓으라니까.》 강성태는 능포산의 손등에다 술병을 마구 기울이며 객기를 부렸다. 《강구장이 노했군, 노했어.》 능포산은 강성태의 손목을 움켜잡고 술병을 뺏어다 상밑에 밀어넣었다. 《자 이야기나 하다 가오. 내 술친구들중에서는 강구장만한 호남아가 없소.》 《말이 반찬이군. 그래 형님은 나를 믿소, 안믿소?》 《믿지, 믿지 않으면 술잔을 벌리구 일본사람들 시비를 할테요.》 《허.》 강성태는 허구프게 웃어버렸다. 《믿긴 뭘 믿는단말이요. 경찰에서 은근히 구장의 뒤를 캐보면서? 난 섭섭하오?》 능포산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강성태를 주시하였다. 《강구장은 그런 소리를 어디서 들었소?》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그만한 눈치를 모르겠소?》 능포산은 이윽히 강성태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울분을 담은듯한 강성태의 크고 움직이지 않는 눈이 능포산을 마주 살펴보았다. 능포산은 문득 한숨을 내쉬며 상밑에 밀어넣었던 술병을 꺼내여 강성태의 잔에 붓고 자기 잔에도 부었다. 《드오.》 《듭시다.》 그들은 한숨에 한잔씩 쭉 들이켰다. 능포산은 술잔을 손바닥에 움켜쥔채 카-하고 소리를 내더니 괴로운듯 머리를 저었다. 《내 한가지 물을테니 대답하겠소?》 능포산은 심중히 그루를 박으며 다짐부터 받았다. 《묻소. 다 대답할테니.》 《그래…》 능포산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무산서 왔다는 구장누이가 정말 사촌누이요?》 강성태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는 입을 열었으나 순식간에 목구멍이 말라들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걸 왜 묻소, 내 몇번이나 말해야 하겠소?》 강성태의 눈에서 섬광이 튀여나는것을 본 능포산은 손을 들어 휘휘 내저으며 그를 만류하였다. 《노여워 마오. 구장을 믿고 하는 말이니 백지주가 요즘두 구장누이에 대한 자료를 제공했소.》 강성태의 가슴은 답답한 나머지 사방으로부터 압박하는듯이 죄여들어 숨조차 쉴수 없이 되였다. 그는 말라드는 입술을 손바닥으로 가리우고 태연해지려고 애쓰면서 침착히 따져물었다. 《그래 지주가 올려보냈다는 자료는 뭐요. 그 애가 무슨 밀수입이라도 했단말이요?》 《그런건 아니구. 구장누이가 없는 사람들을 동정하구 도와주구 그런다는거요. 여간한 정성이 아니라는군. 그래서 동리사람들이 모두 구장누이한테 모여들었다면서?… 백지주는 마을의 모든 소요가 분명 구장누이로부터 시작되는거라구 보고있소. 그래서 가와사끼가 구장누이 신분을 캐보려구 무산에 경찰을 띄웠소.》 강성태는 주먹으로 술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정말 더럽소.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볼수가 있소? 동네사람들을 가까이하구 그들을 위해주라구한건 바로 나요. 내가 우리애한테 그렇게 시켰단말이요. 백지주가 동리인심을 죄다 잃고있는데 구장까지 잃어서야 〈안정촌〉을 어떻게 만드오. 그래서 한 노릇이 이렇게 거꾸로 뒤집힌단말이요? 좋소, 그렇다면 좋단말이요. 오늘밤으로 당장 구장을 벗어버릴테요!》 강성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능포산이 뛰여일어나서 그의 손목을 꽉 비틀어잡았다. 《왜 성급히 이러는가. 앉소!》 《놓소. 형님두 이제야 그 말을 하는걸 보니, 나를 의심스럽게 보았던게 틀림이 없소.》 강성태는 그냥 손을 나꾸채며 문밖을 나와 신을 찾아 신었다. 《강구장, 정 이러긴가, 응? 내가 강구장의 마음을 알아주면 되지 않소. 가와사끼대좌가 오면 강구장의 심정을 말해주겠단말이요.》 그러나 강성태는 그냥 능포산을 떼버리고 행길로 나왔다. 순간 강성태는 가슴속이 캄캄해졌다. 이제는 어찌하면 좋은가. 경찰이 무산현지에 가서 신분을 캐본다면 혹시 들장이라도 나지 않겠는가. 강성태는 마을을 향해 정신없이 다그쳐오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이 일은 권용산이와 의논해서 대책을 세워야지 혼자 생각으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주먹을 움켜쥐고 급히 돌아서서 내려온 길을 올리달리다가 저번에 춘옥이가 련락을 갔던 그 외통길에 접어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