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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날씨는 그렇지 않아도 씨붙임에 등달아난 아낙네의 가슴을 못견디게 지지였다. 삽짝을 밀고 행길에 나선 춘옥이는 잔등을 비치는 유난히 따뜻한 봄볕을 느끼자 황황히 걸음을 옮겨 이웃집 담모퉁이를 재빨리 지나갔다.

하늘이 요즘만치만 말끔히 개여 매일 볕을 쏟아붓는다면 지금은 푸른색보다 검은색이 더 많은 뚝이며 밭들이 수일안으로 일제히 파랗게 물들고 묵은 수초의 누런 이파리들이 깔린 작은 늪가에서는 개구리들이 갈갈 소리를 지르면서 울어댈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군들은 밤을 밝혀 밭갈이준비를 서두르고 해뜨기전부터 이슬이 떨어진 들길로 남정네들, 아낙네들, 아이들이 한데 섞여 떠들썩하며 씨앗중태며 연장들을 실은 달구지를 둘러싸고 밭으로 갔다.

해마다 봄은 이렇게 찾아오며 농사군들을 바쁘게 굴었으며 부락은 고달프고도 활기에 찬 로동의 소음으로 종일 들썩하였다.

춘옥이는 작년 이맘께 거름바리를 지고 움쩍움쩍 들로 나가는 남편의 뒤로 호미를 들고 총총히 따라 걸으면서 이따금 거름바리밑에서 무어라고 묻는 남편의 말에 대답하느라고 이슬묻은 잔디를 밟고 앞으로 나가던 때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올해는 바쁜 농사일을 자기에게 떠맡기고 남편은 채벌장으로 갔다.

혼자손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어먹을가?

게다가 지주는 소까지 뺏겠다고 벼르고있다. 소를 빼앗기는 날에는 온 가족이 한지에 나앉는거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춘옥은 제집 소로는 거름도 실어내지 못하고 향옥이네 소를 빌리러 가고있는것이였다.

그는 향옥이네 집으로 갔다.

해동전에 말쑥하게 이영을 갈아댄 집은 향옥이네 집밖에 없었다. 그래서 집은 먼데서도 인차 알렸다. 까치와 참새들이 이영꼽새우에 주런이 늘어앉아 벼짚에 묻은 벼알을 쪼아먹느라고 야단이였다.

향옥이 시집은 동네에서 부유하다고는 할수 없어도 밥술이나 먹는 집이였다. 자그마한 과수원도 있고 농번기에는 계절농군을 두셋씩 두고 농사를 지었다. 과부인 그의 시어머니가 무명낳이를 하고 행상도 하여 푼돈을 모아가지고는 변놓이를 하였다. 젊어 과부가 된 로친은 영악하고 린색하였으며 재산을 모으는데 일심전력을 다하였다.

그는 외며느리를 아껴 험한 일을 망탕 시키지 않아서 향옥이의 손은 처녀때나 다름없이 보동보동하였다. 그러나 며느리가 아직 태기가 없이 매츨한 몸으로 나다니는것을 못마땅해하였다.

여느 집과 달리 아들이 모모한 손님들을 달고 와서 술추렴을 하고 요즘에는 경찰서 아라가와대위라는 사람까지 나들고 하여 그때마다 늙은이는 정신을 차리고 향옥이의 거동을 살펴보군하였다.

향옥이는 아직도 제비같은 몸매에 얼굴에 검버섯 한꽃 돋지 않은 어여쁜 색시다. 그래서 늙은이는 저것이 아직 내 집 사람이 아니고나, 새파랗게 속이 살아서 청춘을 버리지 않고있으니… 하고 늘 개탄하면서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그러나 향옥이부부는 사이가 좋았다.

향옥이네 집 토방아래에서는 머리에 기름을 발라 빗어넘긴 멋쟁이 함석필이가 어디서 낡은 자전거 한대를 끌고와서 바퀴에 바람을 넣느라고 씩씩거리며 뽐프질을 하였다.

향옥이는 로친이 그토록 시새워하는 알른거리는 인조항라수건을 접어 머리에 착 삐뚜로 쓰고 잘록한 허리에 매화나무수가 새겨진 앞치마를 두르고 앉아 자전거바퀴를 잡아주고있었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인가 소곤소곤 주고받았는데 함석필이가 껄껄 소리내여 웃군하였다.

《좀 쉬염쉬염 하라요. 막 숨소리가 애처로와.》

향옥이가 고개를 젖히고 남편을 빤히 올려다보며 정이 스미게 말한다.

《당신이 좀 해볼라우. 그렇게 애처로우문.》

《내가 어떻게, 별 량반 다보지.》

향옥이는 샐쭉 웃었다. 함석필은 뽐프질을 멈추었다. 그리고 바퀴를 꾹꾹 눌러보더니 자전거에 훌쩍 올라탔다.

그는 종을 지릉지릉 울리면서 마당을 한바퀴 돌고 향옥이에게 무어라고 중얼중얼 외우더니 곧 길차비를 하고 삽짝밖을 나섰다.

함석필은 무슨 급한 용건이 있는 사람처럼 마주오는 사람조차 여겨 볼념을 않고 씽씽 베달을 밟고 행길쪽으로 냅다 달렸다.

춘옥은 울타리밖에서 잠간 망설이다가 열려진 삽짝안으로 들어갔다. 향옥이는 마주 달려나오며 반색하였다.

《이거 어쩐 일이가. 우리 집에 다 오구?》

《내가 왜? 장참 다니던 집인데?》

《그래두 요즘에야 어디 그랬던가. 구장누이하구만 단짝되여 돌아갔지.》

춘옥이는 너스레를 떨줄 모르는 녀자다.

그래서 향옥이의 푸념을 듣자 난처하여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

《너 요즘 나하구는 영 멀어지더라. 신파에 가자구 할 때 같이 갔더면 좋았을걸. 〈어머니날〉모임은 참 슬펐어. 너두 갔음 가슴에 흰꽃 달구 돌아가신 불쌍한 어머니를 생각할걸 그랬어. 인정많은 녀인들이 다 모였더구나. 저 지세경선생도 보이지 않겠니?》

《나야 어디 그런데 다닐 형편이 되였니?》

향옥이는 알겠다는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래 무슨 일루 왔니?》

향옥이는 곰살궂게 물었다. 춘옥이는 첫마디부터 소를 빌리러 왔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 그저 지나가던길에 살림이랑 어떻게 고소하게 하나 보러 왔다고 했다.

《말두말아.》

향옥이는 어여쁜 얼굴에 눈웃음을 짓고 코살을 찡그리며 말하였다.

《우리 주인이란건 게으름뱅이야. 옷입을 땐 입혀주어야 좋아하고 잠잘 때는 이불을 덮어달라는둥 그저 어린애들처럼 놀아. 난 우리 시어머니가 외아들이래서 곱게곱게 자래워 그러는줄 알고 처음엔 좀 뽀루퉁해졌지. 그런데 알고보니 그런게 아니야. 남편들이란건 애들처럼 응석부리기 좋아해. 이건 꼭 커다란 어린애야…》

향옥이의 눈에는 기쁨이 어려있어 새살림에 재미를 붙인 녀자의 행복을 가늠해볼수가 있었다. 그러나 춘옥이는 곧 당황하고 불안스러워하면서 초조한 빛을 나타내였다. 그는 향옥이와 그런 이야기를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것이다.

《춘옥아, 넌 왜 근심에 싸였니? 이상하구나.》 향옥이는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

《일이 있어 왔으문 말해라. 뭐 어려워할거 있니?》

《사실은 뭘 좀 부탁하자고…》

춘옥은 말끝을 흐리마리하였다.

《뭐게?》

《소를… 래일 거름을 실어내야겠는데…》

향옥이는 사뭇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춘옥이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너희 집 소는 어찌고?》

《지주어른이 채벌장에 보내라구 하는구나. 거름바리만 얹으면 뺏어가겠다고 하면서.》

향옥이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알겠다는듯 고개를 까닥였다.

《요즘엔 비상시국이니 그럴수밖에 없을거야. 우리 쥔이 그러는데 유격대가 쳐나오기전에 토성공사를 끝내야 한대. 그래서 소를 가진 집들에서는 선참 공사에 소를 내보내야 한다나. 우리 쥔이 맡은 십가에서는 소, 사람 할것없이 공사에 총출동이야.》

《그럼 너의 집 소도 공사에 나갔니?》

《그거야 맨 첨에 나갔지. 우리 쥔이 백주사어른한테서 선참으로 보내라는 령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너희네 십가에서는 공사에 태만한다구 백주사가 좋아하지 않는대. 구장누이두 그렇구…》

춘옥이는 사뭇 놀라움을 금치못하고 다그쳐물었다.

《구장누이가 어떻다구?》

《백주사어른은 토성공사를 다그치라고 하는데 구장누이는 사람들을 휘동해가지구 씨뿌릴 차비를 한다나. 옥탄이네,복방아네, 필순이네 씨뿌릴 차비는 구장누이가 도와준다구 하더구나.》

《그건 모르는 소리야. 녀자들끼리 품바꿈을 하느라고 어울려 일하는건데.》

향옥이는 모르겠다는듯 가볍게 머리를 흔들며 말하였다.

《아무튼 춘옥인 당국에서 하는 일을 고분고분 따라야 해. 경찰에서 불온분자를 잡아내라고 무슨 특별지시를 내렸대.

백주사는 우리 쥔이 경찰에 오르내릴 일이 많다고 하면서 재전거까지 공짜루 주지 않았겠니?》

춘옥이는 가슴이 캄캄하여 대답할 생각조차 잊고말았다. 향옥이의 말을 들으면 농사일은 젖혀놓고만 셈이다.

향옥이네같이 밥술이나 먹는 집은 몰라도 가난한 동리사람들은 보리부터 심어야 농량을 장만하고 가을까지 근근히 숨을 이어갈수 있는것이다.

《얘, 그런데 보리를 심지 않으면 부락사람들이 뭘 먹고 살아가니?》

춘옥이는 향옥이의 거동이 너무 천연덕스럽고 태연한데 분이 치밀어 좀 랭정히 따져물었다.

《그렇다구 농사를 영 망치기까지야 하겠니. 지주어른은 공사도 하고 농사도 실수없이 지을 차비래. 하니까 남정들은 공사판에 동원하구 녀자들은 농사를 지으라는거야.》

《너는 통 농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같이 말하는구나. 남정들두 공사판에 보내, 소들두 채벌장에 보낸다지. 녀자들이 호미를 들구 땅을 뚜질가?》

향옥이는 이마살을 찌프렸다.

《춘옥아, 좀 진정하고 말하렴. 밭갈이때야 왜 소를 주지 않갔니. 거름만이래두 인력으루 나르라는거겠지. 괜히 지주하고 맞서가지고 봉변을 당하지 말아.》

《고마와. 난 네가 그렇게 딴녀자가 돼버린걸 몰랐구나.》

춘옥은 깜짝 놀라 따라나오는 향옥의 손을 뿌리치고 삽짝밖을 나섰다.

그때 어디선가 와짝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춘옥은 처음 그 소리를 무심히 들으면서 걸어갔다. 향옥이에 대한 분한 생각과 자기 처지에 대한 가긍하고 한스러운 생각이 북받쳤던것이다.

《언니, 춘옥언니!》

웬 녀자가 막 소리쳐 부르며 달려오고있었다.

그는 쌍별이였다. 금시 엎어질듯 막 덤벼치며 뛰여오는품이 하도 이상하여 춘옥은 멈춰섰다.

《너 왜 그러니 쌍별아?》

《지주가…》

쌍별이는 숨이 차서 다음말을 못했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고름 한쪽이 떨어져 저고리앞섶이 벌어져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짓이냐. 지주가 어쨌게?》

춘옥은 쌍별이의 저고리앞섶을 누가 볼세라 바삐 여며주면서 다그쳐 물었다.

《지주가 소를 뺏어가요.》

《무어?》

《소를 뺏어간단말이예요. 큰아버지가 소고삐를 잡구 끌려가구있어요.》

《아니?!》

춘옥은 금시 무릎이 꺾이는듯하여 땅에 풍덩 주저앉았다. 다음 순간 발딱 몸을 일으키고 죽을 힘을 다하여 냅다 달리였다. 쌍별이는 지세경에게 알리려고 가던길을 다그쳐갔다.

이웃에서 사람들이 하얗게 밀려나와있었다. 지주가 소고삐를 움켜잡은 로인의 손을 떼여버리느라고 닥치는대로 발길질을 하였다.

《주사님, 이러지 말아주시오. 소가 없으면 우리는 못사오. 잡아가겠으면 날 잡아가오.》

로인은 피와 땀에 뒤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처량하게 애원을 하면서 봉당에 딩굴었다.

춘옥이가 사람들을 헤치고 뛰여들었다. 소고삐를 가슴에 끌어안고 처참하게 딩굴고있는 아버지를 본 순간 춘옥은 억이 막혀 얼굴을 싸안았다.

《이게 무슨짓이예요. 어쩌면 이럴수 있어요?》

춘옥은 악이 치받쳐 지주놈의 가슴팍을 왈칵 밀쳤다. 아무리 녀자의 힘이래도 사생결단을 하고 달려드는 그 힘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움켜잡았던 소코뚜레를 놓치고 뒤걸음친 백가는 단장을 들고 춘옥의 잔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몇대에 단장은 부러지고 춘옥은 땅에 쓰러졌다.

백가는 다시금 소코뚜레를 잡았다.

《가자! 쌍것들같으니.》

백가는 소의 코등이 찢어지게 잡아끌었다. 소는 대가리를 쳐들고 다리를 이쪽저쪽으로 옮겨놓으며 영각을 질렀다.

《못가져가요.》

춘옥이가 뛰여일어나 지주의 앞을 막았다.

《이건 우리 소야요. 이태동안 뼈빠지게 기른 소야요. 무슨 렴치루 남의 집 소를 끌어가는거예요.》

춘옥은 소의 코등에서 지주를 떼내려고 그의 손목에 매달렸다. 지주는 안깐힘을 써서 춘옥을 뿌리쳤다. 춘옥은 울타리에 허리를 내동댕이치며 쓰러졌다. 그러나 다시금 뛰여일어나 팔목을 움켜잡았다.

《에익! 고현년, 마을의 어른도 몰라보고.》

백가는 번쩍 손을 높이 들어 춘옥의 머리채를 움켜잡더니 휘둘러대기 시작하였다. 춘옥의 가는 목이 휘청거리며 뚝뚝 뼈가 어기는 소리가 들렸다. 옥탄이와 방숙이가 비명을 지르면서 지주의 손에 매달렸다.

《주사님, 이러지 말어요.》

《한번만 용서해요. 주사님.》

아낙네들은 흑흑 느끼며 애원을 하였다.

《아니야, 이년을 죽여버려야 해. 비상시국에 함부로 맞서는 년은 죽여없애야 한다니까.》

끄뎅이를 잡히운 춘옥은 두팔을 벌리고 희뜩희뜩 목을 뒤집으며 돌아갔다. 저고리고름이 떨어지고 치마자락은 찢어져 한가닥이 발끝에 걸채였다. 신도 어디 갔는지 없어지고 맨발바람이였다.

이 순간 사람들을 헤집고 쌍별이와 지세경이 동시에 나타났다.

《아이구, 언니!》

쌍별이는 눈뜨고 볼수 없는 처참한 광경에 직면하자 풍덩 쓰러져 울기부터 하였다.

《아-》

지세경은 숨막힌듯 가슴을 누르고 멍청히 서있더니 지주의 멱살을 와락 움켜잡았다. 그의 온몸은 분노와 비분으로 화들화들 떨었다.

《당신도 인간인가! 량심을 가진 인간인가!》

그의 눈은 황황 타듯이 이글거렸다. 백가놈의 손에 잡힌 춘옥의 머리카락과 점점이 묻은 피자욱을 보자 지세경은 완연 리성을 잃고 몸부리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무서운 힘으로 지주의 멱살을 한껏 높이 들어올렸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내동댕이쳤다.

지주는 허리부러진 통나무처럼 쿵 하고 나자빠졌다.

《게 누가 없느냐, 호구조사를 나온 경찰들은 어디 갔느냐?》

지주는 봉당우로 벌렁벌렁 기여가면서 소리소리 내질렀다.

《네놈을 죽여버리겠다. 네놈을 없애버리겠다.》

지세경은 다시금 사나운 기상으로 육박하여 그의 멱살을 잡아들었다.

《네가 인간이냐. 너도 인간이란말인가.》

돌덩이처럼 꽉 굳어진 주먹이 지주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갔다.

《어이쿠!》

지주는 가슴을 움켜잡고 도랑창으로 딩굴었다.

《경찰은 어디 갔느냐? 저놈이 사람을 죽인다! 저놈을 묶어라!》

그 순간 복방아네 울바자모퉁이에 붙어서서 손에 땀을 쥐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강성태가 부리나케 뛰여들었다. 그는 또다시 지주에게 달려들려는 지세경의 멱살을 후려잡고 세차게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이놈, 동네어른을 이렇게 쳐굴리는 법이 어디 있어. 불온한놈같으니, 경찰에 잡혀가 감옥귀신이 되고싶은가 엉?》

그러면서도 불안한 눈초리로 도랑창에서 딩구는 지주가 아니라 저쪽 골목길을 더듬었다. 호구조사를 나온 경찰이 두려웠던것이다. 바로 이때 그 골목길에서 경찰이 칼을 절컥거리며 뛰여왔다.

강성태는 괴로운듯 입술을 깨물며 지세경의 멱살을 밀쳐버렸다. 사람들이 지세경이더러 몸을 피하라고 떠들었으나 지세경은 머리를 쳐들고 달려오는 경찰놈을 순순히 맞이하였다. 그의 얼굴에는 말할수 없는 애수와 비애가 깃들어있었다.

따라온 경찰이 지세경의 뺨을 후려치고 포승을 지웠다.

사람들이 마구 술렁거리며 끓어번졌다.

《죄없는 사람은 왜 잡아가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소!》

눈물을 떨어뜨리며 분해하는 녀인들을 향하여 강성태는 울분에 차서 웨쳤다.

《다들 헤쳐가지 못하겠소. 무슨 구경거리가 있다고 떠드는거요?》

강성태는 길바닥에 놓여나 느침을 흘리고있는 소고삐를 잡아쥐고 사람들속을 헤치며 앞으로 끌었다. 경찰이 보는 앞에서 구장으로서의 처신을 이렇게밖에 달리는 할수 없다고 강심을 먹은 강성태였다.

사람들은 더한층 소요를 일으키며 들끓었다.

《아니 구장까지 왜 저래요?》

《사람이 정말 무서워졌어. 인정사정두 없구.》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말소리를 듣자 강성태는 자연히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 소고삐가 미끄러져 나가는것을 의식하였다. 다리가 떨려서 자꾸 걸음을 헛짚었다.

그렇게 강심을 먹은 강성태였건만 뿌리가 절단당한 나무처럼 온몸이 중심을 잃고 뒤흔들리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어떻게 처신하는것이 옳은가? 소고삐를 당장 뿌리치고 사람들의 모멸을 면하는것이 옳은가? 아니다! 어려운 순간에 자칫 실수로 자기를 드러내여 무서운 후과를 미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강성태는 자기가 이 일에서 결코 물러설수가 없으며 이렇게밖에 달리는 도저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것을 더욱 똑똑히 의식하면할수록 안타깝고 사나와져가는 결기를 누를래야 누를수가 없어졌다.

《가자, 이놈의 소!》

강성태는 어떤 실수를 저지를지 모르는 자신을 다잡으려고 고삐로 소의 등줄기를 후려쳤다.

소는 꿈쩍 놀라 뛰여오르더니 모재비걸음을 치며 행길을 냅다 달려갔다.

백지주는 강성태의 뒤를 따라 단장을 휘두르면서 급히 따라갔다.

《더럽다, 얼마나 더러운가!》

지세경은 개탄하듯 중얼거리며 묶이운 팔을 허리아래로 드리우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는 경찰의 압송을 받는것이 아니라 마치 호젓이 들길을 걸어가듯 그렇게 구슬픈 표정을 띠우고 걸어가고있었다.

쌍별이가 눈물을 뿌리며 지세경을 따라갔다. 옥탄이, 방숙이를 비롯한 마을아낙네들, 아이들, 공사판에서 뛰여들어온 남정네들이 하얗게 밀려갔다.

바로 그 순간 채벌장으로 가셨던 김정숙동지께서 돌아오고계시였다. 마을어구에서 사람들의 커다랗게 뭉친 떼가 하얗게 밀려나올 때 처음은 그것이 공사장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인 모양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러나 차츰 소란하게 들레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들리고 마구 엉키며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모양을 보시게 되자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것을 간파하시고 넋없이 걸음을 다그치시였다. 다음순간 포승을 진 지세경이와 어푸러질듯 달음쳐오는 쌍별이가 보이시였다. 가슴이 철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높뛰며 마구 뒤엉키는듯 한 가슴을 가까스로 누르고 길섶에 비켜서시며 다가오는 지세경을 바라보시였다. 지세경은 김정숙동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한모양으로 고개를 높이 든채 먼앞쪽을 바라보며 걸어가고있었다. 그는 마치도 이 세상을 잊어버리고 딴 세계의 상념에 포로된 사람같이 보였다.

《언니!》

쌍별이가 김정숙동지를 알아보고 달려왔다.

그이께서는 쓰러지듯 비척거리는 쌍별이의 몸을 꽉 잡아 지탱해주시였다.

《어찌된 일이예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말두 말아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쌍별이는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설분을 토하였다.

방숙이가 옆에서 벌어진 사태를 알려주면서 세상에 이런 무도한 일이 없다고 떠들어대였다. 몇사람이 그의 말을 받아가지고 들썩하게 소란을 피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시 목이 타드는듯 한 갈증을 느끼고 간신히 물으시였다.

《봉녀 아지민 어떻게 됐어요. 아버님은 어떻게 되시고?…》

《모두 쓰러져 울고있어요. 소를 뺏기구, 매를 맞구… 구장이 어쩌면 그럴수 있어요.》

원한에 젖은 사람들의 눈이 그이를 향해 돌려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넋을 잃은듯 움직이지 못하고 한자리에 못박힌듯 서버리였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옳은가?

사람들은 갈수록 더욱 소란하고 들썩하게 떠들어대면서 지주를 욕하고 구장을 나무라고 거기에 구장누이까지 가끔씩 껴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동안 정을 주고 진정을 바쳤던 사람들에게서까지 나무람과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한다는것을 느끼시였다.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지 않을수 없는, 어쩌면 처음보다 더 힘들고 더 막막할수밖에 없는 그런 시련의 파도가 휘몰아치고있다는것을 똑똑히 의식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의문과 비난이 뒤엉킨 사람들의 흥분한 눈들을 더듬으시며 가까스로 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오시였다.

삽짝앞에서 서성거리고있던 신분단이 김정숙동지를 보자 먼저 부엌으로 뛰여들더니 뒤따라 들어서는 그이의 손을 와락 움켜잡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신분단은 눈물에 젖은 음성으로 말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이 없으시였다.

한참동안 그이의 바싹 마른 입술만 쳐다보던 신분단은 아궁앞에 쭈크리고 앉아 치마자락을 뒤집어잡고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신분단을 만류할 생각도,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없이 부뚜막을 짚고 힘들게 서계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엌문을 밀고 나오시였다. 삽짝밖을 나서시자 방숙의 친정아버지가 거름바리를 얹은 소를 때려 몰면서 정신없이 지나갔다. 토성공사에서 빠져 밭에 거름을 실어내다가 부락의 소식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돌아오고있는 모양이였다.

저쪽 골목에서는 웬 농민이 다급히 《와, 와》 소리를 지르면서 행길까지 끌고 나왔던 달구지를 돌려세우느라고 애를 쓰고있었다. 난벌에서 사람들이 쇠스랑이며 걸이대며 삽같은 연장들을 들고 혹은 그냥 잡아끌기도 하면서 부락으로 달려들어오고있었다. 서로 부르고 화답하고 가끔 악을 쓰기도 하는 목소리들이 갈수록 부락가까이에서 소란을 떨며 다가왔다. 모두 화를 당하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서두르고있는것이였다.

그것을 보시자 김정숙동지께서는 통분함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춘옥이네 집으로 가시였다. 삽짝은 떨어져 길바닥에 딩굴고 울바자 한쪽은 뭉텅 잘리워 그리로 드나든 사람들의 발자국이 보였으며 지게문, 부엌문, 외양간문 할것없이 문이라는 문은 죄다 내붙인채로 열려져있었다.

춘옥은 토방아래 봉당에 쓰러진채 울고있었고 로인은 소가 누웠던 외양간바닥에 끊어진 소고삐를 잡고 엎드려 어깨를 떨고있었다. 아래방, 웃방, 부엌에는 닭들이 날아들어 복작거렸다.

《봉녀 아지미.》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이 꺽 막혀 말소리를 제대로 잇지 못하시면서 무슨 말씀인가 자신도 모르게 하시였다.

춘옥은 고개를 들었다. 눈물과 땀과 봉당먼지에 얼룩이 진 얼굴을 들고 넋없이 보더니 그제사 김정숙동지인줄 알고 새삼스레 놀라고 분하여 더욱 흑흑 느끼였다.

《세상이 어쩌면 그렇게도 모질어요? 어쩌면 이렇게도 아프게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는단말이예요. 우리 주인이 있으면 이렇게 되겠나요? 예? 원통해요. 우린 이제 어떻게 살아요. 못살아요. 우린 못살아요.》

춘옥은 몸부림치며 땅을 두드렸다. 낭자는 흩어지고 삼발같이 흩어진 머리가 그의 연약한 어깨를 휘감고 푸들푸들 떨었다. 그때 휑한 뜰안으로 몇명의 아낙네들이 밀려들어오더니 쓰러진 춘옥이를 부추겨안고 달래며 설분하였다.

《춘옥이, 우지 말아, 구장누이한테 동정을 받아서는 뭘 하겠니. 다 쓸데 없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아낙네가 복방아 어머니인것을 아시였다.

《그래 구장누인 보지 못했소. 그래 그 소가 구장 소요? 왜 남의 소를 끌고 가요? 사람이 그렇게 악한짓을 하면 못써요 못써, 하늘이 무섭지 않소?》

김정숙동지께서는 성난 아낙네의 얼굴을 넋없이 바라보셨다.

결심은 소용돌이치는 가슴속에서 익어가고있었다.

말로는 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는 움직여낼수 없다. 더는 믿으려고도 하지 않을것이다. 이제는 위험을 무릅쓰고 원쑤와 맞받아 나가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을수 없다.

침착하고도 단호하며 용수없이 돌진적인, 무섭게 고조된 기상이 그이의 온 얼굴에 줄달음치고있었다.

《내가 소를 찾아오겠어요.》

아낙네들은 놀라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뜰안을 걸어나가시는 그이를 바라보고있었다. 얼떠름하고도 분간할수 없으며 믿어야 할지 안믿어야 할지 그것마저도 알수 없어하는 그런 반신반의의 상태에서 아낙네들은 더러는 뜰안에 남고 더러는 울밖에까지 따라나오며 그이를 지켜보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숱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있는 가운데 지주집을 향해 침착히 걸음을 내딛고계시였다.

(이제는 놈들과 정면에서 대결하지 않을수 없다. 이번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문제는 혁명군중을 장악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되여있다. 단호히 육박하여 놈들을 꺼꾸러뜨리지 않는다면 인민들은 기세를 잃고 혁명은 난관에 처하게 될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침착하고도 용의주도한 걸음으로 지주집 뜰안으로 들어서시였다.

백지주는 마당 한가운데다 춘옥이네 소를 끌어내놓고 마루우에 비단방석을 깔고앉아 내려다보면서 숨을 헐떡헐떡하고있었다. 지주의 옆에는 강성태가 머리를 숙인채 담배만 태우고 앉아있었다. 지주 본댁네가 팔짱을 끼고 소둘레를 돌아가며 손가락으로 엉치살도 찔러보고 목덜미도 주물러보고 그러다가는 만족한듯 소의 귀밑을 척척 두드렸다.

《고것들이 멕이긴 아주 잘 멕였어. 이놈엣소를 멍청히 세워두지 말고 육고에 팔아요. 부역이니 뭐니하다 도루 뺏기지 말구.》

《어느놈이 감히 뺏는다고 그래. 부역동원을 태만하는 소는 죄다 끌어다 공출루 바칠테야.》

백가는 한손으로 욱신거리는 이마를 짚고 소리를 질렀다.

《공출이라니? 저 령감님이 미치지 않았어. 아까운놈엣소를 공출루 왜 바쳐.》

이렇게 종알거리던 지주녀편네는 중대문안으로 들어서시는 김정숙동지를 보더니 입을 비쭉하고 잦은 걸음을 치며 부엌문을 콩 닫고 들어가버렸다.

강성태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어찌된 일이냐?》

강성태는 입속말로 중얼거리고 전신을 가볍게 떨기 시작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곧은 걸음으로 강성태앞으로 다가오시여 백지주에게는 눈길도 돌리지 않고 말씀하셨다.

《오라버니는 어쩌면 그럴수 있어요. 남의 집 귀한 소를 강제로 뺏어오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강성태는 얼결에 소리쳤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듣지 못해요? 사람들과 그렇게 등지고 동네일을 어떻게 보겠어요? 나는 이 동네서 살지 못하겠어요. 소를 돌려주어요!》

백지주는 비단방석을 뽑아내치고 팔을 내저으면서 뛰여일어났다.

《구장누인 그게 무슨 소리요. 춘옥이 그년이 부역에는 태만하면서 거름을 실어낸다 어쩐다 하구 돌아가는게 보이지 않소? 명색이 구장누이가 아닌가?》

강성태는 한손으로 기둥을 잡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서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백지주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 않으시고 강성태만 바라보며 말씀하시였다.

《부역도 부역이지만 오라버니는 동네민심도 보아야지요. 씨붙임을 밀어두구 권용산아주버니가 산판에 올라가 나무를 찍구있는데 집에 소를 뺏어가면 사람들이 뭐라겠어요. 산판사람들이 이 일을 알면 가만히 있을것 같습니까?》

《구장누인 입이 열이래두 말을 못하오!》

백지주는 기가 나서 소리쳤다.

《춘옥이 그년이 공사판에 소를 보내지 않구 제집 거름부터 실어나를 차비를 하는게 누구때문인줄 아오. 여기에 구장누이가 끼여있단말요. 동네 가난뱅이들을 싸고돌면서 하는짓이 도대체 뭐요. 구장누이가 돼가지구 이래야 옳소, 엉?》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백지주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강성태에게 말씀하시였다.

《아낙네들이 농사지을 걱정을 하는게 뭐가 잘못된 일입니까. 씨붙임때가 바득바득 다가오는데 농사군이 돼가지고 씨붙임차비를 안한다면 그게 될 일이예요? 오라버님, 나는 오라버니를 믿고 이 동네에 살러 왔어요. 그래서 이웃두 사귀구 힘든 일이 생기면 도와두 주구 그러는거예요. 이웃을 등지구야 어떻게 삽니까? 그게 흠이라면 저는 이 동네서 살수 없는 사람이지요.》

《그게 무슨 소리냐. 그래 우리 집에서 떠나겠단말이냐?》

강성태는 격동적인 흥분을 드러내고 발을 구르면서 소리쳤다. 그는 이제야 그이께서 무슨 용단을 품으시고 뜻밖에 오셨는가를 알아차렸다.

《오라버니는 너무 사람들에게서 원망을 사구있어요. 이래서는 동네에서 구장노릇도 못합니다. 토성공사를 하구 <안민촌>을 꾸리려구 해두 동네 인심부터 사야 하지 않겠어요. 오라버니가 일을 잘못해서 부락이 복잡해지구 <안민촌>을 꾸리는데서도 지장이 생긴다면 이 책임이야 오라버니가 져야지 누가 질 사람이 있습니까? 소를 돌려주세요. 그러지 않으면 이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요. 오라버니가 돌려주지 못한다면 제손으로라도 소를 끌고 가야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돌아서시더니 곧장 걸어가 소의 고삐를 잡으시였다.

《구장누이, 정 이럴터이요? 엉? 이 무슨 회괴한짓이요?》

백지주는 금시 대청에서 굴러내릴듯이 발을 구르고 마루를 땅땅 울리면서 고함쳤다.

《저는 우리 오라버니가 동네 눈총을 받으면서 강제로 끌어온 소이기에 제손으로 가져가는겁니다. 소를 뺏을 생각이 있으면 제가 가져다놓은 다음에 다시 끌어오든지 하십시오. 저는 우리 오라버니가 동네 인심을 등지구 구장두 못하구 상부앞에서 책임을 지게 될 일이 두려워 소를 가져가는것이니 막을 생각을 마십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범접할수 없이 단호한 기세로 소고삐를 잡고 당당하게 마당을 걸어나가시였다.

백지주는 황급히 신을 찾아 신으면서 구장더러 소리쳤다.

《아니 구장, 저걸 보고 가만히 있소? 내 손으로 막아야 일이 옳겠소, 엥? 이걸 막지 못하겠소?》

《좀 가만히 있소. 이게 통 뭐가 뭔지 알수가 없소. 저 애 말두 허투루 들을건 아니란말이요. 부락에서 무슨 일이 나든가 산판에서 사변이 터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지오?》

강성태는 답답하게 뜰안을 내려다보며 참으로 갈피를 잡을수 없어 애타는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백지주는 선자리에서 야단만 때리며 다그쳐나갈 엄두를 못했다. 지주집 담장밖에 밀려왔던 사람들이 대문간으로 걸어나가는 소를 보고 너무 희한하여 와짝 끓어번지며 더러는 춘옥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춘옥이네 울타리밖에 이른 사람들은 다급히 소리쳤다.

《소가 와요. 춘옥형님, 아버님!》

《아니 뭐 소가 온다구?》

놀란것은 춘옥이만이 아니였다. 복방아 어머니, 옥탄이, 방숙이들이 놀라 삽짝밖으로 뛰여나갔다. 춘옥이는 아낙네들을 따라나가다가 정말로 멀리 골목길로 소가 오는것을 보자 돌아서서 늙은이에게로 달려왔다.

《아버지, 아버지 소가 와요!》

춘옥이는 늙은이의 어깨를 끌어안고 흔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소가 온다니?》

《지주집에 끌려갔던 소가 온단말이예요.》

《그런 소리 말아라. 소가 온다니, 그건 꿈같은 소리다. 그놈집담장안에 들어가면 무쇠도 녹아나는판인데 이 애 그런 소리를 하느냐. 네가 실성했구나. 어이구.》

로인은 그저 춘옥이가 실성했다고만 생각하며 꺼칠한 두손으로 춘옥의 눈물에 범벅진 얼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춘옥은 숨이 막혀 말할수 없었다. 늙은이의 그 아픈 푸념이 그냥 가슴을 긁어내리며 설음을 북받치게 하는것이였다.

《아버지, 아버지 정말 소가 와요.》

춘옥은 방울방울 눈물을 쏟으면서 부르짖었다.

《그러지 말래두, 이 애, 마음을 진정하라는데두 그러누나. 이 애야, 지주가 끌어간 소가 어떻게 온다구 그러냐?》

로인은 고집스레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실성한것은 로인인듯싶었다.

춘옥은 그냥 안타깝고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해 흑흑 느끼며 늙은이의 어깨를 막 잡아흔들었다.

《아버지, 정신을 차려요. 구장누이가 지주한테서 소를 뺏어가지구 온대요.》

그제사 로인은 정신이 펀쩍 들었다.

《구장누이가, 구장누이가 소를 뺏어온단말이냐. 어디, 어디, 어디?…》

로인은 일어설념도 못하고 벌렁벌렁 외양간바닥을 기여나가더니 누렇게 소털이 묻은 문턱을 움켜잡고 머리를 들었다. 한동안 늙은이의 눈에는 소가 보이지 않았다. 뜰안으로 하얗게 밀려드는 사람들만 보였다. 온 부락이 발칵 뒤집혀 춘옥이네 마당으로 쓸어들고있었다. 반은 의심을 품고 반은 기뻐 어쩔줄 몰라하면서 한껏 소요를 일으키고있었다.

외양간, 재간, 굴뚝담모퉁이까지 꽉 들어차서 웅성거리고있었다.

《아버지, 저길 보아요. 저쪽을 보라요.》

늙은이는 춘옥이가 몸을 돌려주는쪽을 보았다. 터져나간 울바자사이로 소가 보였다.

구장누이가 소고삐를 잡고 한무리의 사람들속에 둘러싸인채 오고있는것이였다.

《그예 오는구나. 저게 내 소가 분명하구나!》

늙은이는 일어서려다가 문지방에 어깨를 부딪치며 넘어졌다.

춘옥이가 부축하려 했으나 늙은이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만둬라. 저게 내 소로구나. 내 힘으로 일어설테다. 이 애, 팔만을 부축해다구.》

그러나 춘옥이는 그냥 흐느끼며 로인의 온몸을 들어일으켜서야 가까스로 문턱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소가 들어설 자리를 내노라고 빽빽이 조이면서 옆으로 밀려났다. 소가 누런 잔등을 움씰거리며 마당안에 들어섰다.

그 순간 늙은이는 갑자기 장님처럼 앞이 보이지 않아 두손을 내저었다.

《이 애, 이게 어쩐 일이냐. 소가 왜 보이지 않느냐?》

늙은이는 눈물이 쏟아져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을 몰랐다. 뒤늦게야 눈물을 훔친 로인은 지축지축 발을 옮겨짚으며 소에게로 다가왔다.

이윽고 소와 늙은이가 마주서서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들은 알수 없는 사연을 주고 받는것 같았다. 소는 주둥이를 드리우고 《음메-음메》 하고 낮게 울음소리를 내였으며 늙은이는 장한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가 왔구나. 네가 령물이다. 내 집을 잊지 않고 찾아왔으니.》

늙은이는 이마를 가까이 마주대고 소의 푸른 눈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목을 끌어안았다. 꺼실꺼실한 손으로 목덜미며 귀밑을 척척 두드리고 입술기도 쓸어주며 어쩔줄 몰라한다. 소는 긴 혀바닥으로 늙은이의 주름잡힌 손을 핥았다.

늙은이는 눈을 슴벅슴벅하면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늙은이앞에 소를 내드리고 여느 사람이나 다름없이 아낙네들속에 싸여있는 김정숙동지를 드디여 찾아내였다.

《구장누이!》

늙은이는 목이 막혀 겨우 한마디 하였다. 사연은 가슴속에 차넘쳤으나 입을 열래야 열수가 없었고 입만 열면 눈물이 그냥 하염없이 쏟아져내리는것이였다.

《아버님, 얼마나 마음고생이 크셨습니까? 다시는 이 소를 뺏기지 마세요. 다시는… 누구도 소를 빼앗지 못하게 하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쁨의 눈물이 어린 안광으로 로인을 바라보시고 마을사람들을 둘러보셨다.

누군가 량쪽으로 다가와 그이의 손을 꼭 잡았다. 돌아보니 춘옥이와 복방아 어머니다.

《봉녀 아지미, 복방아 어머니!》

그들에게 두손을 내맡기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감격에 목이 메여 그리도 간절히 하고싶었던 마음속의 하많은 사연을 한마디도 번지지 못하시였다. 그러나 말씀없이도 그이의 진정을 그들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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