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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1
쭈룩쭈룩… 처마끝에서 락수물듣는 소리가 들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엌문을 지치고 밖을 내다보시였다. 초저녁까지도 별이 총총하던 하늘이 캄캄하게 흐리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시였다. 채벌을 끝낸 밋밋한 산등성이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걱정에 잠기시여 하늘을 향해 손을 펴시고 비를 받아보시였다. 후둑후둑 찬비방울이 손바닥에 떨어졌다. 인부들의 옷을 적시기에는 충분한 비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굴뚝모퉁이에 가져다놓은 우장과 삿갓, 헌마대쪼박들을 손더듬으로 안아 부엌에 날라들이시였다. 그리고 아궁에 장작을 지피시고 젖은채로 있는 우비들을 말리우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산판에 들어오신지는 며칠되시였다. 적들의 눈을 가리우기 위해 우선 그이께서는 권용산이를 통해 먼저 산판에 간 농군들이 구장에게 버선, 장갑 같은것을 요구하게 하고 그것을 구장이 부락에서 모아 누이동생에게 지워보내는 방법을 취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들어오신 이 합숙에는 요즘 산판채벌에 동원된 농군들외에 신파와 혜산, 갑산, 리원, 홍원 그리고 강원도, 평안도, 경상도 하는 먼데서 돈을 벌려고 찾아와서 무거운 고역을 치르는 눅거리 인부들이 있었다. 이들을 혁명화하는 문제는 당면한 산판투쟁을 벌리기 위한데서뿐만아니라 장차 신파를 비롯한 국내의 넓은 지역에 혁명의 씨앗을 뿌려나가는 전망적인 사업을 진행하는데서 의의가 크다고 그이께서는 생각하시였다. 그래서 여기에 큰힘을 넣을것을 계획하고계시였다. 지금 이 마가리에는 복순 어머니라고 부르는 녀인이 부엌일을 거들어주고있었다. 그는 리원에서 남편 면회를 왔다가 감독에게 발을 잡힌 아낙네였다. 그의 남편되는 사람은 채벌중에 통나무에 치여 운신 못하고 앓아누웠는데 감독은 병자가 외상으로 먹은 밥값을 물어야 사람을 내주겠다고 하면서 녀인을 잡아두고 부엌일을 시켰다. 산판사람들은 모두 이 녀인을 동정하고있었다. 앓는 사람도 앓는 사람이려니와 젖먹는 아이를 떼두고와서 매일 부른젖을 짜버리며 남편의 병시중과 인부들의 뒤바라지에 고역을 치르는 녀인을 무척 불쌍하게 여기고있었다. 복순 어머니가 아궁에서 장작개비 타는 소리를 듣고 벽을 짚으며 내려왔다. 밤새 병자의 간호에 시달리다 새벽녘에 곤드라진 녀인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일어나 부엌봉당에 내려서는 녀인을 부축하시였다. 《왜 벌써 일어나셨어요. 좀 쉬시지 않구, 예?》 《젖이 불어서 죽을 지경이예요.》 복순 어머니는 아궁앞에 쭈그리고 앉더니 저고리 앞자락을 헤치고 젖을 짜기 시작하였다. 녀인은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흘리며 안깐힘을 써서 젖을 짰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솟아나 젖과 함께 방울방울 떨어졌다. 동통도 동통이려니와 집에 두고온 젖먹이가 배고파 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기는 일이였다. 《아주머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세요, 앓는이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마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나직이 동정에 싸여 말씀하시였다. 《아지미, 난 이제 어떻게 살아요. 쥔두, 애기두 다 죽일것 같아요.》 녀인은 훌쩍훌쩍 소리를 내가며 울기 시작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의 가냘픈 어깨를 꼭 끌어안으시고 잠시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생각할수록 녀인의 정상이 가긍하시였다. 말로는 도저히 위로가 될수 없는 무서운 고통과 불행이 이 녀인을 송두리채 집어삼키려들고있는것이였다. 《마음을 굳게 가져야 해요, 어떻게 살아나갈 구멍이 열리겠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진정에 넘쳐 녀인을 위로하시였다. 《내가 어떻게 살아나가요. 내가 무슨 힘을 가지구 살아간단말이예요?》 《옆에 사람들이 있지 않아요. 아주머니를 깊이 동정하구들 있어요. 그러니 힘을 내야 해요. 아주머니가 지쳐 쓰러지면 앓는이도 맥을 추지 못해요. 어떻게 빨리 병자를 일떠세워가지구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요?》 녀인은 눈물을 훔치고 저고리앞섶을 여미더니 일어나 물동이를 들었다. 《그만두세요. 제가 길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을 만류하시였다. 《온밤 자지 않고 인부들의 옷이랑 빨았는데 물은 내가 길어요.》 《그러지 말래두요. 밖에 비가 와요. 단벌 적삼을 적시군 어떻게 하겠어요. 그렇지 않아두 젖몸살을 하는 판인데… 어제 캐온 약초뿌리나 좀 찧어요.》 녀인은 한동안 멍하니 그이를 쳐다보더니 군말없이 물동이를 내주고 절구에 약초를 찧기 시작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물동이를 끼시고 밖으로 나가시였다. 비는 여전히 한모양으로 쭈룩쭈룩 쏟아지고있었다. 미츠러운 경사지를 발더듬으로 내려가시며 등성이아래를 내려다보시였다. 안침진 골짜기에 얼마간 사이를 두고 두점의 불빛이 내비치고있었다. 하나는 감독놈의 합숙이고 다른 하나는 운재터 인부들의 마가리였다. 권용산은 요즘 운재터에 내려가 밤일을 하고 새벽에 합숙으로 돌아오군하였다. 인부들이 일나간 조용한 틈을 타서 사업하기 위하여 일부러 운재터 밤일을 하고있는것이였다. 권용산은 지금 산판에서 핵심을 장악하고 조직을 꾸려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고있었으나 어디에 어떻게 발을 붙이고 일을 해야 할지 통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다. 자칫하다가는 조직원이라는 정체가 드러나서 봉변만 당할것 같고 그러자니 자연 일을 해나갈수가 없었다. 산판에는 악질감독들과 로동자들속에 끼워넣은 렴탐군놈들이 눈을 밝히고 돌아가는통에 자칫 실수로 험한 모퉁이에 몰려들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채벌장에서 일을 해나가려면 속히 믿을만 한 사람들을 알아내여 군중지반을 형성하는것이 절박한 문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물을 길어가지고 돌아오시자 아낙네는 약초뿌리를 찧어가지고 병자가 누워있는 방안으로 올라갔다. 그때 《아앙!》하고 산판을 세차게 뒤흔들면서 싸이렌소리가 울려왔다. 백지주는 13도구 경찰서에 있는것과 같은 수동싸이렌을 사다가 감독놈들의 귀틀막에 걸어놓고 하루 여섯번 로동시간과 준비시간을 알려주게 하였다. 지금 저 소리는 인부들이 얼른 잠에서 깨여나서 찬물에 나가 세수를 하고 몸이랑 정신을 팽팽히 긴장시켜가지고 일차비를 하라는 신호다. 그러나 첫 싸이렌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인부들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밥가마를 긁는 주걱소리를 듣고 구수한 밥냄새며 된장국냄새를 맡아야 드디여 코를 벌름거리고 기지개를 켜면서 눈을 떠보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방에 올라가 방등에 불을 켜시였다. 창문에 불빛이라도 비치지 않으면 감독놈들이 달려들어 소동을 일으키기때문이였다. 사람들은 덮은것도 없이 빽빽이 다가붙어 가지각색 모양을 하고 누워있는데 전날의 엉켜붙은 피로에서 깨여나지 못하고있었다. 새벽추위에 허리를 까부러뜨리고 자는 사람, 코를 고는 사람, 활개짓하는 사람, 쇠다리같은 무거운 다리를 남의 허리에 얹은 사람… 그들은 모두 해볕에 새까맣게 타고 할쑥하게 여윈 얼굴에 맥없이 입버덩을 드러내고 성긴 이발사이로 가까스로 숨을 쉬여가면서 따스하게 더워오는 구들바닥 온기에 더 한층 처참하게 노그라져서 마치 수마전에 갇힌 사람들 모양으로 넋을 놓고 자고있었다. 그들은 하루 품삯이 40전인데 밥값만도 27전을 제하고 거기에 술, 담배값에 감독놈 괴이는 교제금을 몇푼 제하면 저축금이라 할만한것은 단 한푼도 남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은 수백리 먼길을 와서 로동판이라고 몸을 잠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수가 없고 빈손으로 가자 해도 려비조차 당할 재주가 없어 고향에서 굶어죽는 처자의 비침한 현상을 눈앞에 그려보면서도 어쩌지를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것이다. 이 하루하루, 살이 찢기고 뼈가 갈리우는것 같은 고통을 잊으려고 먹지말자고 그리도 강심했던 탁배기나마 가끔 얼근히들 마시고 륙자배기를 불러가면서 울적한 심사들을 달래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로동지옥, 인간지옥에서 고혈을 빨리며 마소와 같이 부림을 당하는 인부들을 보시면보실수록 억울하고 분한 생각을 금할수 없으시였고 이렇게 짓밟히고 학대받는 가난한 무산대중들이 계급의 눈을 뜨고 장군님따라 혁명의 길에 나설것을 생각하시면 끝없이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할길이 없으시였다. 부엌에 내려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부들의 신발을 하나하나 만져보시고 밤새 누기있는 신들을 골라내여 아궁앞에 세워놓으시였다. 밖에서 철버덕거리는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권용산이 우장을 쓰고 들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일어나 물이 뚝뚝 흐르는 우장을 벗기시였다. 《원, 날씨두.》 권용산은 혀를 차며 저고리앞섶을 툭툭 털고 아궁앞에 앉았다. 뒤이어 몇사람이 따라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운재터에 밤일을 갔던 사람들이였다. 복방아 어머니의 아들인 상덕이라는 청년이 아궁앞에 느릅나무뿌리를 갖다놓았다. 《상덕이가 또 수고를 했구먼.》 권용산이가 턱에 맺힌 비방울을 털어버리며 혀를 찼다. 《수고랄게 뭐 있어요. 아주버니들이 더 수고하지요. 지문형님은 밤새 좀 어떤지 모르겠어요?》 상덕이가 어깨에서 젖은 마대짝을 벗으며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그냥 앓음소리를 내고있어요. 한잠도 눈을 붙이지 못하는것 같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년의 손에서 마대짝을 받아 부뚜막에 펴놓으면서 말씀하셨다. 《야단이군, 어떻게 병자를 구할 생각을 해야지 안되겠네.》 한 늙은 인부가 중얼거리며 근심에 눌리운 눈으로 아궁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비가 멎으면 들것에라두 담아들구 의원을 찾아가야 하지 않겠소?》 묵묵히 담배를 태우던 권용산이가 말을 꺼내였다. 《의원을 찾아가면 좋은줄이야 누가 모르는가? 치료비가 약차하다구 하니 그게 두려워 엄두를 못내고있지.》 늙은 인부가 무너지게 한숨을 쉬면서 아궁앞에 걸쳐놓은 느릅나무뿌리를 들고 껍질을 발그기 시작하였다. 《인부들에게서 한푼씩 거두면 어떨가요. 래일쯤은 밀린 삯전두 준다고 하는데.》 상덕이가 의견을 내놓았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닐세. 한두번두 아니구. 무슨 딴 방책이 있어야지 저러다간 사람을 죽이구말겠네.》 늙은 인부는 다시금 한숨을 쉬였다. 《제가 어디 가서 약 좀 구해보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 인부들을 둘러보며 말씀하셨다. 《한약이라두 몇첩 지어다 우선 급한 고비부터 넘기구 봐야겠어요. 정말 이러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요.》 늙은 인부는 어진 눈을 들어 한참동안 김정숙동지를 바라보았다. 《그만두시우. 아주머니가 어디 가 약을 구해오겠소. 부엌일을 도와주는것만두 고마운데.》 《앓는이가 불쌍해서 그러지요. 그냥 이러구있을순 없지 않아요.》 모두 무겁게 한숨들을 내쉬였다. 방안에서는 병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가끔 무엇인가 설분하는 복순 어머니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흘러왔다. 《생각할수록 억울한 일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 통절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복순 아버지가 누구때문에 이 지경이 되였나요. 감독놈이 미끄러운 벼랑길에 원목을 하산하라구 내몰아 성성한 육신을 으깨놓지 않았나요. 그러니 이 책임은 복순 아버지 당자가 질것이 아니라 마땅히 감독놈이 져야 하는거예요. 그런데 책임은커녕 앓는이의 밥값까지 빚으로 남겨놓고 복순 어머니마저 잡아두려고 하니 세상에 이런 억울한 노릇이 어디 있어요?》 《에익, 그 감독놈을 그저!》 상덕이가 주먹을 움켜쥐고 우들우들 떨면서 비분을 참지 못해하였다. 《생각하문사 든장대루 모조리 쳐죽일놈들이지. 그놈들의 등쌀에 병신이 돼 나앉은 사람이 한둘뿐인가. 억울하지, 억울해.》 늙은 인부는 고개를 들고 참담하게 머리를 흔들더니 다시금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앙-하고 두번째 싸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은 아궁앞에서 물러나 방으로 올라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걱으로 밥을 모으고 그릇을 부시였다. 인부들은 밥가마에 주걱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고 구수한 토장국냄새가 풍기자 하나 둘 눈을 떴다. 군입질을 하고 기지개를 켜기도 하고 밤새 문바람에 얼어든 사람은 오한을 떨기도 하면서 자리를 일어나서는 상이 놓일 중간을 비우고 량쪽으로 기다랗게 갈라져앉았다. 《이사람들, 밖에 비가 내리네, 창살같은 소낙비가 아니구 그냥 장마때같은 진비가 한모양으로 내리는데 감독들이 그냥 쉬라구는 안할터이니 우장들을 잘 갖추고 몸에 탈 없이들 하게.》 권용산이 인부들을 둘러보며 말하였다. 사람들은 근심에 싸여 문앞으로 몰려가 머리를 한곳에 비비고 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수림의 륜곽이 어릿어릿하고 비줄기는 보이지 않는데 처마끝에서 락수물 듣는 소리며 솨-하고 락엽깔린 산판에 떨어져 일매지게 울리는 비소리가 소란하였다. 모두 단벌옷이고 그것을 적시면 밤새 오한에 떨것을 생각하여 근심들을 하는데 그래도 한쪽에서는 봄에 비가 와야 땅들이 가라앉고 씨붙임이 잘된다고 한담들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식기전에 더운 밥들을 드세요.》 김정숙동지께서 상냥하게 말씀하시였다. 사람들은 문앞에서 떨어져 술렁대며 자리에 앉았다. 통나무를 쪼개 만든 긴 식탁이 놓였다. 김이 문문나는 조밥그릇이 사람들의 손바닥에 둥둥 들리여 올라온다. 인부들은 조밥 한그릇에 산나물을 띄운 토장국들을 받았다. 거기에 산나물무치개와 도거리로 쪄서 올려놓은 대두박장이 놓여있었다. 모두 허천병난 사람같이 국물을 훌훌 들여마시고 구실구실 흩어지는 노란 조밥에다 대두박장을 한숟가락씩 퍼다가 비벼서 걸탐스레 삼켜버린다. 인부들은 요즘 밥맛, 국맛이 별맛이라고 하면서 김정숙동지를 칭찬하기도 한다. 그들은 산속깊이 들어와 노상 나무를 찍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이 봄에 산나물국이라고는 먹어보지 못했다. 김정숙동지께서 올라오시여 산나물을 뜯어다 국을 끓이고 무치개를 만들어 대접해서야 겨우 이해의 산나물맛을 보았으며 여느때와 다른 독특한 맛과 향취를 느껴보기도 하는것이였다. 그새 복순 어머니는 남편의 병시중때문에 언제 산나물같은데 정신을 팔 겨를이 없었으며 설사 있었다 해도 유격대의 작식대에서 이름이 높은 김정숙동지의 솜씨를 당할수는 없었을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부들의 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산나물을 뜯는데도 한겻을 바치시였다. 복순 어머니가 따라나서면 남편의 시중을 들라고 그냥 눌러앉히시고 산나물을 뜯어다 다듬고 삶아서 우리고 조리하는것까지도 거의 혼자 손으로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엌에서 식탁을 올려다보시며 국만이라도 더 들라고 연방 국을 떠 돌리시였다. 어떤 사람들은 두그릇, 어떤 사람들은 세그릇씩 받아다 훌훌 들여마신다. 그리하여 배가 부르고 속이 훈훈해지기도 한 사람들은 마라초를 한대씩 피워물고 종다리에 각반을 치든가 행전을 두르고 혹은 피나무껍질로 바지가랭이를 접어묶으며 한참동안 떠들며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는 신을 신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어제저녁 산판에서 돌아친 그 험상한 신이 아니고 깨끗이 흙을 털어버리고 끊어진 신끈이랑 잇고 깔창까지 말끔히 털어깐 전혀 딴모양의 신인것을 알고는 모두 감탄들을 하였다. 《이 아주머니 신셀 어떻게 갚나?》 《세상 돌아가다 사람다운 대접을 받아보는군.》 저마끔 한마디씩 치사들을 하고 기분이 좋아서 톱과 도끼, 바줄퉁구리를 둘러메였다. 그리고는 앓는 사람앞으로 와서 차례차례 얼굴을 들여다보고 어서 병을 털고 일어나 복순 어머니랑 같이 고향으로 가라고 고무하였다. 앓는 사람의 눈에서는 걷잡을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인부들도 다같이 마음이 산란하여 눈을 슴벅거리며 비뿌리는 밖으로 철버덕거리며 걸어나갔다.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고 갈길을 왜 왔던고… 문득 탄식과도 같이 흐득이는 비애에 찬 구슬픈 노래소리가 썰렁한 방안으로 날아들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옷과 연장중태, 담배쌈지, 목침같은것들이 한데 뒤엉켜 돌아가는 방안을 거두시다가 문득 손길을 멈추시고 그 처량한 노래소리를 들으시였다. 헤아릴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그이의 페부를 헤치고 스며들었다. (바로 이 사람들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 어질고 동정심에 충만된 순박한 마음들을 한데 묶어세우면 이것이 혁명으로 되지 않겠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밤일을 하려고 부엌에서 도끼를 갈고있는 권용산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시였다. 《제 생각에는 복순 어머니를 동정하면서 자연스레 뭉친 사람들의 마음을 옳게 이끌고 나가는것이 중요할것 같아요. 그들에게 계급적자각을 안겨주는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비록 단순한 동정뿐이지만 자기들의 처지로보아 누구보다 빨리 각성할 사람들입니다. 대담하게 이들과의 사업을 하는게 옳을것 같아요. 권용산동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두 차츰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공작원동지가 사람들과 가까이 어울려 지내면서 말도 걸어보고 마음도 주어보고 힘든 일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료해해보라고 하기에 좀 그래보았더니 모두 순박하고 량심이 곧은 사람들이라는걸 알게 되였습니다. 알고보면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고 사귈수록 좋은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시며 심중히 그의 말을 들으시였다. 《그게 중요합니다. 사람은 인상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사귀여보면서 진속을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믿을수 있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말고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자기자신처럼 믿고 진정을 다해 깨우쳐준다면 그들은 모두 우리를 따라오게 될것입니다.》 《예.》 권용산은 대답하고 이윽히 생각에 잠겨있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방법은 어떻게 하면 좋을가요? 무슨 목적을 하나 내걸구 깨우쳐주면 좋겠는데요?》 《그렇지요. 그게 좋습니다. 제 생각에는 복순 어머니에 대한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차츰 계급적인 자각을 가지도록 하는것이 좋을것 같구만요.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각성정도가 일정한 단계에 오르면 앓는 사람의 치료비를 요구하는 대중투쟁을 조직할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 군중을 단련하고 핵심을 키우면서 조직의 지반을 닦아나가십시오.》 《알겠습니다. 이젠 방향이 명백해졌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을 몇명 골라가지고 먼저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차츰 범위를 넓히면서 대중투쟁을 벌려나가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미더운 눈길로 숫돌에 도끼날을 붙이고있는 권용산을 바라보시였다. 매양 무슨 일이 제기될 때마다 지나칠 정도로 생각하고 의문을 달아보고 세세히 묻기도 하면서 심중히 결심을 무르익히지만 일단 마음이 정해지면 순박할 지경으로 깐깐히 그리고 착실히 일을 하는 권용산이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강성태와는 성미가 판판 달랐다. 강성태는 좀 호방하고 즉흥적이지만 권용산은 그와 정반대였다. 그래서 강성태를 대할 때는 늘 경쾌하고 홀가분한 걸음으로 가는듯 한 기분이라면 권용산이를 대할 때면 커다란 나무짐을 진 사람과 마주선듯 한 그런 기분이 드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들 두사람은 서로 각이한 측면에서 그이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였고 신뢰가 가는 동지들이였다. 《앞으로 도천리조직의 청년핵심들은 여기서 키워야 하겠습니다. 상덕이라는 청년을 특히 잘 돌보십시오. 의협심이 있고 결기도 있는 좋은 동무입니다. 어쩌면 어머니를 그렇게 닮았는지, 제가 애가 타던것을 생각하면 상덕동무를 무심히 대하지 못하겠어요.》 《사람이야 좋지요. 우리 마을에선 그중 똑똑한 청년입니다.》 권용산이 웃으면서 수긍하였다. 《그런것 같아요. 잘 이끌어주세요. 앞으로 청년조직의 핵심으로 될수 있게말이지요. 일을 다그쳐야겠어요. 놈들은 토성공사를 추진시키느라 미쳐날뜁니다. 빨리 사람들을 장악하고 조직을 결성하여야 산판채벌을 반대하고 토성공사를 지연파탄시키는 투쟁을 조직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권용산동지의 임무가 큽니다.》 권용산은 대답없이 그이의 말씀을 듣고있었다. 힘과 능력에 버거운 어려운 임무가 차례지고있다는, 갈수록 긴장되는 생각과 더불어 그것을 어김없이 해내야 하는 혁명가의 의무를 깊이깊이 통감하고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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