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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방아네 집에서 싸움이 붙었다!》 부락쪽에서 애들의 부르짖는 챙챙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머리우로 날아올랐다. 사람들은 골목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여기저기서 부르고 화답하고 고래고래 웨치기도 하고 달음질치기도 하면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의 떼가 밀려가기 시작하였다. 삽시에 부락은 온통 소란하게 끓어번지는 사람들의 갖가지 소음으로 가득찼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삐 걸음을 다그쳐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시였다. 복방아네 집 낮은 울타리밖에 사람들이 하얗게 매달려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다가서시자바람으로 발돋움을 하면서 뜰안을 보고있는 웬 늙은이에게 물으시였다. 늙은이는 입맛을 다시고 혀를 끌끌 차면서 돌아보지 않고 대꾸하였다. 《복방아 에미가 지주 마름하고 싸움을 벌렸소.》 《무슨 일로 싸움을 벌렸는가요?》 《복방아 에미가 장 며칠을 공사판에 나갔다가 오늘 보리밭에 거름을 낼려구 했는데 지주 마름이 와서 지주집 연자방아를 돌리라구 강박을 하는통에 싸움이 붙었소. 원 세상에, 아들 하나 있는걸 산판에 보내고 내인까지 연자방아를 돌리라구 하면 농사는 어느 하가에 짓노.》 그 순간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울바자 저쪽 허공중으로 사납게 내달아가는 넙적한 넉가래를 보시였다. 넉가래를 마주 향해 해빛에 번뜩거리는 걸이대가 불쑥 솟아올랐다. 연장들은 공중에서 탁탁 부딪치며 돌아갔다. 걸이대모가지에 너슬너슬 매달렸던 짚검부레기들이 흩날려 떨어지고 넉가래의 대가리가 지끈 소리를 내면서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놈의 두상태기!》 복방아 어머니의 영악하게 부르짖는 고함소리와 함께 시커먼 싸리비자루가 먼지를 날리면서 달려갔다. 《죽여라, 어서 죽여. 씨붙임을 못하게 할바엔 목숨까지도 가져가라!》 《네 목숨이 헝겊쪼각이냐? 이 쌍 험한년의 아낙네.》 마름의 악에 치받친 목소리와 함께 싸리비자루를 후려치는 걸이대의 아츠러운 쇠붙이소리가 챙챙 울려왔다. 《저 마름이 사람을 어쩌지 않겠소.》 누군가 혼겁한 소리로 웨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넋없이 울바자 한쪽모서리를 잡고 안을 들여다보시였다. 신도 신지 못한 복방아 어머니가 눈앞에서 핑핑 돌아가는 걸이대를 향해 기를 쓰고 싸리비자루를 휘둘러대고있었다. 처진 치마가 펄럭이고 비녀가 뽑혀진 머리는 흩어져 잔등에서 흩날렸다. 《죽여라. 사는게 귀치 않다. 아들을 뽑아가구 무엇이 모자라서 이 성화냐. 어서 죽여! 어서 죽여! 이놈의 두상태기.》 《죽이라면 죽여보자. 네깐년 하나쯤 요정내지 못할테냐?》 누런 호박단조끼를 입은 마름은 한발 두발 벋디디고 다가들면서 아낙네의 머리를 곧바로 견주고 걸이대를 핑핑 휘둘렀다. 《마름이 사람을 죽인다!》 사람들은 아츠럽게 비명을 지르면서 사방에서 고아댔다. 그 순간 김정숙동지께서는 삽짝을 활 열어젖히시고 마당으로 뛰여드시였다. 한달음으로 달려간 그이께서는 마름의 손에서 걸이대를 활 나꾸어채시고 격분에 차 부르짖으시였다. 《이게 무슨짓이예요. 녀자들을 이렇게 후려대는 법이 어디 있어요?》 하도 갑작스런 일이여서 마름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강마르고 날렵하게 생긴 마름은 좁은 하관에 어울리지 않게 큰눈을 디룩거리면서 김정숙동지를 쳐다보더니 그제야 정신을 수습하고 고함을 질렀다. 《구장누이가 돼가지고 이년의 편역을 들테요 엉? 구장은 〈안민촌〉건설을 위해 밤낮을 모르구 달려다니는데 구장누인 몹쓸년 편역을 들어야 옳겠소?》 《편역을 안들면 살인을 쳐야 옳겠나요. 나이 많으신 어른이 이 무슨 분별없는짓입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볍게 떨리는 목소리로 마름을 질책하시였다. 《좋아, 어디 그래보지.》 마름은 어금이를 앙다물고 노려보더니 반달음을 쳐 뜰안을 달려지나갔다. 《아주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땅에 쓰러져 울고있는 아낙네를 부축하시였다. 《놓아요!》 아낙네는 팔을 휘둘러 그이의 손을 뿌리쳐버리고 머리를 홱 치켜들었다. 《누가 구장누이 도움을 받겠대요? 가요. 고양이 쥐생각 말구 가란말이요. 아무려면 가재가 게편이지 망둥이 편일가? 시끄럽게 다가들지 말구 어서 가요.》 아낙네는 기가 나서 펄펄 날치였다. 순간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시였다. 아낙네의 설분하는 목소리도 그다음은 분명히 새겨들을수 없으시였다. 귀에는 그저 멍멍히 덧맞히는 소리만 들려오고 머리에선 식은땀이 흘렀으며 땅을 딛고 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였다. 복방아 어머니는 부엌문을 후려닫고 들어가버리였다. 울타리에 매달렸던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져 저마끔 흩어져갔다. 빈 뜰안에 혼자 남으신 그이께서는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힘들게 안깐힘을 써서 한걸음 옮기고 두걸음 옮기시면서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오시였다. 신분단은 뜰안에 들어서시는 그이를 보고 질겁을 하며 뛰쳐나가 부축해드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종일 꼼짝을 못하고 몸살을 앓으시였다. 절벽에서 굴러나 접질린 발은 부어오르고 신열로 머리가 욱신거리며 전신에 오한이 나는것이였다. 신분단은 아궁앞에 쭈그리고앉아 종일 돌을 달구어 그이의 발목을 찜질해드리였다. 동네에 나가 파뿌리와 귀한 돌배 한알을 구해다가 노루기름에 넣고 끓여 대접하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그이의 입맛을 돋궈드리려고 산나물을 조금 찧어넣고 떡을 빚었다. 강성태는 종일 공사장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을 들락거리였다. 신분단은 부락에 장정들이 시퍼렇게 살아있어가지고 칠봉로인 하나 도와주지 못해 그이더러 발목을 상하게 만들었다고 그냥 푸념을 늘어놓았다. 강성태는 대꾸 한마디 못하고 머리를 수그리고 앉아 안해의 청원을 듣고있었다. 그는 안해가 시키는대로 가만가만 절구에 떡쌀을 찧고 아궁에 불을 살라넣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산한 부엌의 공기를 느끼시였다. 모두 말없는가운데 안절부절 못하고 서두르며 간단없이 들락거리였다. 강성태는 나무를 패느라고 몇번이나 도끼를 들고 돌아갔으나 몇가치 패지 못하고 매번 도끼를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마당을 쓸려고 비자루를 들었다. 허둥거리는 손으로 그는 퇴지앞을 두번인가 세번인가 쓸었다. 가끔 부엌으로 들어와 미닫이사이에 소리없이 다가와서는 방안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였다. 신분단이 돌을 달구어들고 올라가 찜질을 하고 내려오면 안해를 붙들고 무엇인가 조용조용 물었다. 신분단은 성가스럽게 짜증을 내고 가끔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였으나 강성태는 목소리조차 들어볼수 없게 낮은 소리로 말하며 안해를 달래군하였다. 그는 한번도 방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도저히 감출래야 감출수 없는 자기의 불안을 그렇지 않아도 마음고생을 겪고있는 그이께 서뿔리 드러낼수 없었던것이다. 신분단은 그저 한숨만 쉬였다. 종일 돌을 달구고 남비에 기름을 끓이고 하여 머리며 어깨며 잔등에는 재티가 하얗게 날아오르고 얼굴은 단기에 익어 부석부석해졌다. 그는 김정숙동지의 부은 발목을 주무르고 뜨거운 돌을 후후 불면서 찜질을 할 때면 침통한 빛을 띠우고있었다. 그는 그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열을 가늠해보기도 하고 간단없이 솟아나는 땀을 훔쳐드리기도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의 안타까와하는 마음을 풀어주려고 매양 흔연한 표정을 짓고 말씀을 건늬시였으나 신분단의 눈을 속여낼수가 없으시였다. 신분단이 부엌에 내려가고 혼자 남게 되면 그이께서는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을 곰곰히 생각하군하시였다. 지금같아서는 전망이라고는 도저히 보이지 않으시였다. 어떻게 일해나가면 좋을가? 어디에 마음을 붙이고 이 괴로움을 견디며 이 고난을 이겨내고 힘과 마음을 합쳐 혁명을 추진시킬수 있을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면 앞일이 묘연하기만 하시였다. 그렇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음을 외롭게 가지거나 막막한 생각을 조금도 품지 않으려고 굳게 결심을 다지시였다. (이겨내야 한다. 어떤 시련이 가로놓이고 어떤 난관이 중첩한다 하여도 기어이 뚫고나가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실천하고 혁명의 성새를 꾸려나가야 한다. 장군님께서는 도천리를 중심으로 한 장백현 일대와 국내 신파지구를 혁명화하고 이 지대를 완전히 장악하면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조선혁명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켜나가는데서 대단히 유리한 정세가 조성된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조국으로 나가는 공작원들과 조국에서 백두산지구로 들어오는 공산주의자들이 대체로는 신파와 장백현일대를 거쳐 다니게 될것이며 유격대에 필요한 원군물자들도 이곳에서 많이 해결하게 되며 적의 《토벌》부대들이 이 지대를 거쳐 다니게 되는것만큼 적의 군사기밀을 탐지하며 《토벌》기도를 짓부시는데서도 이 지구가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도천리에서 혁명을 추켜세우지 못하면 장백현일대와 국내 신파지구도 혁명기지로 꾸릴수 없게 되며 나아가 이 지대를 발판으로 하여 국내혁명운동을 줄기차게 밀고나가시려는 장군님의 구상을 받들어드리지 못하게 되는것이다! 그럴수는 없다. 절대로 그렇게 되여서는 안된다. 장군님의 명령을 받은 전사가 살아있고 그의 심장이 뛰고있는 한 장군님의 명령은 추호도 어길수 없으며 드팀없이 관철되여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미닫이를 여시였다. 시루에서 떡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겼다. 《형님, 떡냄새가 좋군요.》 그이께서는 소리없이 미소를 지으시였다. 이미 자신을 다잡으시고 침착히 마음을 누르신 그이의 얼굴에는 내심의 흥분으로부터 피여오르는 홍조가 떠돌고있었다. 신분단은 그이의 얼굴을 보자 기뻐 어쩔줄 모르면서 급급히 시루를 헤치기 시작하였다. 덤비다가 단김에 손을 쐬운 신분단은 흠칠 놀라 찬물에 손을 절렁절렁 헤우면서 볶아댔다. 《떡 한대접 좀 담아주세요. 어디 얼핏 다녀오려구 그래요.》 《어디루?》 신분단은 뜬김속에 얼굴을 묻은채 멍하니 그이를 바라보았다. 《복방아네 집에요.》 《그깐 집에 가서 뭘하게 정신빠진 아낙네같으니.》 신분단은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여 욕을 퍼부었다. 《그래두 불쌍한 아주머니예요. 이 밤에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어요.》 《그까짓거 모르면 뭘하오. 불편한 몸에 그런 걸음은 하지두 말아요.》 신분단은 기를 쓰고 말리였다.
《참 형님두, 늘 마음이 너그럽다가두 가끔 이래요. 복방아 어머닌 우리가 돌봐드리구 깨우쳐 혁명에
끌어들일 좋은분이예요. 오늘만 날이겠어요. 앞으로 달라질 복방아 어머니를 생각해보라요.》 《고마와요, 형님》 김정숙동지께서는 대접을 품에 안으시더니 부엌문을 여시고 나가시였다. 밤하늘은 흐리지 않았으나 별은 볼수 없었다. 낮동안 증발한 수증기들이 광막한 우주공간에 안개처럼 가득히 서려있었다. 그것은 눈석이가 끝난후의 봄하늘이였다. 땅도 이즈음에는 한결 검게 보였다. 습기를 잔뜩 빨아들인 땅도 낮동안 거죽이 뿌득뿌득 말랐다가도 밤이 되면 순식간에 축축히 젖어버렸다. 그이께서는 불빛도 인적도 없는 몇채의 집을 발더듬으로 지나시였다. 달구지바퀴가 지나간 자리를 밟으실 때에는 발바닥이 매끈하다가도 소발통이 짓이겨놓은 길에 올라서면 들쑹날쑹하여 걸음을 제대로 옮길수 없으시였다. 낮은 홈탕이라고 생각하시고 발을 건너뛰려 하시면 불룩한 둔덕에 발목이 걸채이신다. 이번에는 높은 둔덕인가 하여 마음놓고 밟으시면 풍덩 몸이 앞으로 곤두박히시였다. 성가스럽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밤길이였다. 그렇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놋대접이 식을가봐 거기에만 신경을 쓰며 손으로 감싸안으시고 걸음을 빨리하시였다. 구수한 떡냄새가 풍겨올랐다. 덮개가 열리지 않았나 하여 손으로 만져보시였다. 덮개는 꼭 맞물린채로 있었다. 그이께서는 안심하시고 총총히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첫참이네 집, 명학이네 큰집… 그이께서는 하나하나 집을 헤여넘기시고 복방아네 삽짝을 여시였다. 풀더미같은 마가리에는 불이 없었다. 그러나 어두운 방안에서 애들 소리가 울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문앞으로 다가가시였다. 복방아가 동생에게 옛말을 들려주고있었다. 《호랑이가 살금살금 마당으루 기여들었대. 엄마인체하구말이지. <얘들아, 문을 열어라. 엄마가 수수가을하고 왔다.> 호랑이가 문구멍에 대고 말했지. 멋모르는 동생이 문을 벗겨주려구 달려갔단다. 호랑이가 들어오면 잡아먹는것두 모르구. 언니가 동생을 막았단다. 그리구 말했지, <문구멍으루 입김을 불어봐, 우리 엄마 입김은 따뜻하단다.> 그래 호랑이는 살그머니 코바람을 불었단다. 언니하구 동생은 뺨에다 코바람을 맞아보았지. 얘 넌 호랑이 코바람이 찰것 같니 더울것 같니?》 깨르르 하고 애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귀기울이시여 그 소리를 들으시였다. 가난과 학대에 짓눌린 이 캄캄한 오두막에서 얼마나 천진란만한 목소리가 울리고있는가? 《복방아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나직이 정겨운 목소리로 부르시였다. 말소리는 뚝 끊어졌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복방아야.》 김정숙동지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다시 부르시였다. 문이 활짝 열렸다. 문선에 붙어선 자그마한 아이의 모습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누구나?》 《나 얌전네 고모야.》 복방아는 꼼짝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놋대접을 복방아에게 내미시였다. 《이걸 받아라.》 복방아는 얼결에 대접을 받았다. 《야, 따끈따끈해.》 《무시거? 호랑이코바람이니?》 안에서 복방아 동생이 그렇게 묻고 깔깔 웃어댔다. 《야, 떡이구나.》 복방아는 덮개를 열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소리쳤다. 복방아 동생이 《나 떡, 언니야!》하면서 문앞으로 뛰여왔다. 《엄마는 안계시니?》 《누웠어, 아프다구.》 《저녁은 지었니?》 《아니.》 그때 안에서 복방아 어머니의 노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이놈 계집애, 떡을 팡가치지 못하겠니, 구장네 떡이 아니면 굶어죽을가봐 그러느냐?》 애들은 깜짝 놀라 떡대접을 밀어놓고 방구석으로 물러갔다. 문은 태질을 치며 안으로 닫겼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결에 녀인을 만류하시려는듯 손을 내미시고 문선을 만지시며 안타깝게 부르시였다. 《복방아 어머니.》 《가라구요. 다시는 내 뜰안에 얼씬하지 말라구요. 생떼같은 아들을 산판에 끌어가구 어디 와 이따위 알량한 수작을 하는거요. 구장이 지주하구 한편이지 우리하구 한편일테요?》 아낙네는 기가 나서 고래고래 웨쳐댔다. 사정은커녕 말 한마디 붙여볼수 없는 악마디진 성미를 드러내고있었다.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산판에 보내고말았으니 어찌 안그러랴! 이제는 하늘아래 두려운것이 없어진 녀인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동안 갈피를 잡을수 없는 생각에 눌리워 하염없이 서계시였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어떻게 정성을 들이고 힘을 바쳐야 이 녀성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을것인가?) 방안은 조용하였다. 이따금 가슴이 무너지게 내뿜는 한숨소리와 바람이 스쳐가며 울리는 문풍지소리가 붕- 하고 어둠에 짓눌린 대기를 진동시켰다. 빈집같이 적막하고 쓸쓸한 오두막이다. 눈물과 한숨만이 들어찬 지겨운 고생살이가 낮은 처마처럼 드리워 그이의 가슴에 무겁게 매달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문앞을 물러나시였다. 그리고 불 없는 캄캄한 오두막을 이윽히 굽어보시였다. 안타까움이라 할지 비분이라 할지 이루 말할수 없는 괴로운 생각들이 그이의 뇌리에 차고넘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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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돌아와 신분단이와 함께 저녁을 드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형님, 제가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말해두 좋아요?》 《어서 말해요. 무슨 부탁인데?》 신분단은 기꺼이 대답하였다. 《이제부턴 형님이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도울일이면 도와드려야지, 우리 쥔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우. 어서 얘길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신분단의 얼굴을 이윽히 지켜보시며 무엇인가 생각하시더니 말씀을 이으시였다. 《저 복방아 어머니말이예요. 지주집 연자방아를 돌리게 된 모양인데 우리 하루 도와주면 어떨가요. 이제 가보니 저녁두 못짓구 누워있지 않겠어요. 필경 지주가 또 달려들어 그 형님을 못살게 굴터인데.》 《그런 소리 말아요.》 신분단은 생각도 안해보고 손을 내저었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건 백날 도와야 소용이 없어요. 그렇지 않아두 우리 쥔이 아지미한테 허드레일을 맡긴다구 나더러 버릇고쳐주겠다고 별러요. 장군님께서 보내시는 공작원을 잘 모셔야 한다구 건넌방 온돌을 뜯어고치구 뒤담밖으로 빠지는 땅굴까지 파놓은걸 보라요. 허청간기둥에다는 낫을 갈아꽂아놓구. 한뉘 부엌살림이란걸 모르던 사람이 요새는 그냥 부엌에 달라붙어 성화를 멕여요.》 《형님.》 《글쎄 나혼자서는 어떻게 못한다니까. 연자방아일이 어디 쉬운줄 알아요. 자꾸 수모를 받으면서 왜 그런 일만 해주겠다는거나요. 난 아지미가 괄세받는건 차마 눈뜨고 못보겠다니까.》 신분단은 김정숙동지의 말씀을 막아버릴양으로 얼른 일어나 부엌에 내려갔다. 그는 공연히 가마뚜껑도 열어보고 아궁속도 들여다보면서 딴전을 부리다가 올라왔다. 《형님, 내 한가지 이야기를 할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숟가락을 드신채 음식을 드실념도 않고 말씀하셨다. 《무슨 이야긴데?》 신분단은 미심쩍어하면서도 호기심이 들어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 두만강연안의 농촌지역들을 혁명화하시던 때의 이야기예요.》 신분단은 정신이 번쩍 들어 그이 앞에 와앉았다. 《어서 해요. 우리 쥔한테서두 가끔 장군님의 이야기를 듣기는 하지만 장군님을 직접 모시고 싸운 공작원아지미한테서 듣는거 하구야 비할바가 아니지.》 《그런데 형님, 내가 하자는 이야긴 장군님께서 왜놈들을 족치시던 통쾌한 이야기가 아니구 어느 농촌에 들어가 <머슴>을 사시던 때 이야기예요.》 《아니, 장군님께서 머슴을 살아요?》 《그럼요, 혁명을 하시자니 그런 일도 겪으셨던거랍니다.》 《원 저런 끔찍하게두, 장군님께서 머슴을 사시다니, 이런 변이 세상에 어디 있소.》 신분단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김정숙동지를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는 한때 두만강가까운 농촌지역을 혁명화하려고 많은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셨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조용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때 정치공작원들은 장군님의 말씀을 명심하구 대중속에 들어가서 핵심을 키우고 조직을 넓혀나가면서 활발히 투쟁을 벌려나갔어요. 그렇지만 일부 공작원들은 적들의 탄압이 심한데다 경험이 어리다보니 일을 뜻대로 내밀지 못하고있었어요. 이런 사정을 아시게 된 장군님께서는 제일 어려운 농촌들에 나가시여 혁명화의 본보기를 만들 결심을 하시고 안도현에 있는 푸르허부근의 한 마을에 몸소 들어가셨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은 어떠했겠나요. 경찰놈들의 감시가 심한데가 밀정놈들이 박혀있어서 자칫하다가는 신분이 드러날판이였어요. 그래서 동지들은 장군님께서 그 마을에 들어가시는걸 한사코 막아나섰답니다. 장군님을 따라 혁명에 나선 사람들이구 장군님을 조선혁명의 태양으로 모신 혁명가들인데 왜 안그랬겠나요. 그렇지만 장군님께서는 동지들의 그 간절한 소원도 마다하시고 머슴으로 가장하고 마을에 들어가셨답니다.》 《원 세상에…》 신분단은 가슴을 부둥켜안고 눈을 슴벅슴벅하면서 뒤말을 잇지 못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가슴이 저리신듯 깊이 한숨을 내쉬시고 조용조용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런 내막을 알수 없는 마을사람들은 장군님을 정말 말없이 일잘하는 무던한 <머슴군>으로만 알고 별의별 궂은 일을 다 시키군했어요. 아낙네들은 장군님더러 우물에 얼어붙은 얼음을 까달라고 하였고 잔치집에서는 떡을 쳐달라고 부탁하군했어요. 그러면 장군님께서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으시고 땀을 흘리시며 고된 일을 치르군하셨지요.》 《저런 소경같은것들이, 아무리 <머슴군>차림을 했기로서니 장군님을 몰라봐.》 《가슴이 아프지요, 형님?》 《가슴이 아파 난 못견디겠다니까.》 《그래요.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밤잠도 이룰수가 없구…》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이 막혀 한동안 숨소리만 높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조선혁명을 위해 기울이신 장군님의 력사를 더듬자면 한이 없어요. 장군님은 이 세상 사람들이 겪을수 있는 고통, 당할수 있는 온갖 슬픔을 모두 겪고 치르셨어요. 혁명에 바치신 장군님의 그 정성을 생각해서도 우리는 기어이 일제를 때려부시구 장군님 모시고 조국으로 가야지요. 어떻게 장군님을 받들어드릴가? 어떻게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할수 있을가?… 이렇게 곰곰히 생각하면 먹는 밥도 달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아요. 장군님께서 그처럼 심혈을 기울여 키워오신 혁명인데 우리가 그 뜻을 받들지 못한다면 무슨 혁명가라구 하겠나요.》 신분단은 소리없이 옷고름을 들어 눈물을 찍었다. 이상하게 안타깝고 쓰라린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혁명에 기울이신 그 수고도 가슴에 맺히고 장군님을 받들어모시는 김정숙동지의 그 충성도 가슴에 맺힌다. 《아지미, 걱정 말아요. 래일 연자방아간으루 가자요.》 신분단은 눈을 슴벅이였다. 《형님, 고마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신분단의 두손을 꼭 잡으시였다. 그리고 하염없이 그 손을 오래오래 감명깊이 쓸어만지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