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칠봉로인은 자주 손바닥에 물을 발라가며 새끼를 비벼댔다.

젊은 한시절에는 손바닥에 침 한방울 안뱉고도 곧 잘 비비였다. 그러나 육신이 늙어가고 몸에 기름기가 빠져버린 지금에는 손바닥을 물에 불구지 않고는 새끼를 꼬아낼 재간이 없었다.

방안은 아직도 캄캄하게 어두웠다. 로인은 손더듬으로 어둠속에 수북이 쌓인 새끼무지를 쓰다듬어보았다.

(그래 한 스무발쯤은 더 꼬았겠다.)

로인은 전날에 대비해서 속궁리를 하고있는것이였다.

(울바자를 새로 틀랴문 열두토리는 있어야겠지.)

로인은 또다시 손바닥에 물을 추겨가지고 새끼를 비비면서 지세경이 어렸을적에 옛말을 해주던 때를 회상하였다. 이렇게 아득한 옛일을 더듬는 일도 칠봉로인에게는 드문 일이여서 이 시각은 즐거운 때였다.

그때 사랑문밖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새문이 벌컥 열렸다.

《이사람아, 안채로 좀 들어오게. 령감님이 부르시네.》

신파에서 이태전에 맞아들인 애젊은 셋째첩이 골살을 찌프리며 말하였다.

새끼꼬기에만 열중하였던 로인은 영문을 몰라 잠시 눈을 껌적거렸다.

《아니 웨 꾸물거리고있는거야, 냉큼 일어서지 않구.》

셋째첩은 새문을 콩 닫더니 신발을 찰찰 끌면서 마당을 나갔다.

칠봉로인은 분주히 쌍엽장을 찾아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 주인의 꾸지람을 받지 않을가 하는 불안에 싸여 가슴이 쿵쿵 뛰였다.

남포불을 휘황히 켜놓은 안방은 눈이 부실만큼 밝았다.

《게 좀 앉게.》

백가는 셋째첩이 물부리에 끼워주는 담배를 받아들면서 한마디 하였다.

칠봉로인은 무슨 큰 죄나 지은듯이 두손바닥을 벌려 방바닥을 짚고 머리를 숙였다. 백가는 로인의 머리에 올라앉은 짚부스레기를 내려다보면서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칠봉로인의 어깨와 머리는 한결 땅바닥으로 잦아들고 손등에는 힘줄이 솟아올랐다.

《자네두 아다싶이 우리 집 일이야 좀 많은가? 한데 자네 불편한 몸으룬 그 숱한 일들을 거둘수 없단말이야. 그러니 자네 몸에 알맞춤한 일자릴 구하게.》

백가는 속심으로 칠봉의 딸 참순이를 탐내고있었다. 산판합숙에 얼굴고운 처녀애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로인의 온몸은 갑자기 화들화들 떨리기 시작하였다.

싫건좋건 이 집의 문밖에 나가 살아보려는 생각을 꿈에도 못해본 로인에게는 마른하늘의 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쥔님, 이 불쌍한 몸을 한지에 버리시려는겝니까?》

울분에 찬 가슴속에서 급기야 터져오른 이 말을 로인은 끝내 입밖에 내지는 못했다.

굵다란 한방울의 눈물이 방바닥에 뚤렁 떨어졌다.

《자네 궁상스레 굴지 말구 너그럽게 생각하게. 한 열흘 아니 한 보름쯤은 넉넉히 시간을 줄터이니…》

그러나 로인의 귀엔 백가의 말이 통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오한이 난듯이 어깨를 덜덜 떨면서 담배불에 타진듯 한 왕골삿자리만 들여다보았다. 그는 굵다란 엄지손가락으로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자기 방구석에 세워놓은 긴 왕골대를 생각하면서 얼른 이걸 기워야 할텐데 하는 터무니없는 걱정을 하였다.

그 순간 로인은 급기야 자기의 처지를 문득 깨닫고 번쩍 머리를 들었다.

《주인님!》

로인의 얼굴에는 눈물이 줄지어 굴러내렸다.

백가는 덤덤히 창문턱을 바라보면서 담배연기만 내뿜었다.

칠봉로인은 말로 다할수 없는 하소연이 가슴에 차고넘쳤으나 입은 좀체로 열려지지 않았다.

《마음을 크게 먹으라니까. 이 넓은 세상천지에 어디 가서 못살아.》

셋째첩이 옆에서 부추기듯이 한마디 하였다.

칠봉로인은 거의 방바닥을 기여 문밖을 나섰다. 그는 벽밑에 세워놓은 쌍엽장을 몇번씩 헛잡았다. 그리고 사랑으로 나오는 마당구간을 몇십리나 걷듯이 힘겹게 걸었다. 방에 들어온 칠봉로인은 정신없이 새끼무지우에 쓰러졌다. 생각할수록 기구하고 가엾은 인생이 구슬퍼졌다. 칠봉로인은 이태전에 백지주놈의 목재판에 끌려나갔다가 성성한 다리를 잃어버렸다.

그때의 기막히던 참상을 칠봉로인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것이였다.

…지주는 그때 산판에 있었다. 벼랑턱에 쌓아놓은 원목더미가 기울어지면서 숱한 목재가 강물에 처박힐 형편에 이르렀다. 황급해난 지주는 칠봉로인더러 기울어지는 원목더미를 바로잡으라고 소리쳤다. 목숨을 내대고 원목을 건지라는것이였다. 그때 칠봉로인은 지주의 고함소리가 무서운것보다 원목이 못쓰게 될것만을 생각하면서 든장대를 받쳐들고 기울어지는 원목더미속으로 뛰여들었다. 그리하여 필사적으로 원목은 건졌으나 다리가 부러졌다.

한다리를 잃고 졸지에 불구가 된 칠봉로인은 쌍엽장에 의지하여 마을로 돌아왔다. 온 동네가 하얗게 떨쳐나 고개마루로 넘어오는 칠봉로인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제다리를 잘라먹은 원귀같은놈에게로 다시 찾아온단말인가?… 사람들은 로인의 처사가 너무도 한심하고 가긍하여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있었으나 로인은 흐린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방울만 걱정스러운듯 컴컴하게 낮아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부지런히 쌍엽장을 놀렸다.

칠봉로인에게는 이러나 저러나 자기의 고달픈 육신을 의탁할수 있는곳은 백가네 뜰안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억울하게 불구가 된 지금의 기박한 처지를 동정해줄 사람도 백진사어른이라고 생각하였다.

왜 안그러랴, 실로 황우같은 자기의 힘이 그 상전을 위해 얼마나 충실하게 바쳐졌는가?

《진사님 칠봉이가 왔사와요.》

칠봉로인은 겨드랑이에서 쌍엽장을 떼여 퇴지아래 봉당에다 고스란히 눕혀놓고 자신도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퇴지로 달려나온 백가놈은 눈앞이 아뜩해 서있었다. 이 병신된 늙은것이 무엇때문에 이곳으로 찾아들었나. 백가놈은 로인의 후렁후렁한 한쪽가랭이를 내려다보면서 기가 차 하였다.

생각같아서는 당장 몰아내고싶었으나 울타리에 하얗게 달라붙은 동네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그럴수도 없었다.

백가는 로인에게 공밥을 먹이지 않고 그의 강마른 육체에서 짜낼 리윤을 생각하면서 오래도록 골치를 썩였다. 한가지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신포에 있는 칠봉로인의 딸을 꾀여다가 리득을 보자는것이였다.

결심이 확고해지자 후- 한숨이 터져나왔고 마음도 사뭇 너그러워졌다. 그러는사이에 흐린 하늘에선 후둑후둑 비방울이 떨어졌다. 로상에서 비를 맞지 않으려고 그렇게 서둘러 온 칠봉로인이였건만 퇴지아래 봉당에서 후줄근히 비를 맞았다.

《이사람아, 어서 올라서게, 올라서라니까.》

백가놈은 흠빡 물참봉이 된 칠봉로인을 단장끝으로 집어올리며 지껄였다.

《자네가 우리 집에서 그만치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내가 자네 정리를 모른다고 할터인가. 아무리 병신몸으로 돌아왔기로 나는 탓하지 않으려네.》

《진사님!》

로인은 다시한번 땅바닥에 엎드려 목놓아울었다. 어떤 위험이 닥쳐오는지도 모르고 어떤 불행이 덮씌워지는지도 모르고 로인은 상전의 《은총》과 《인정》에 목메여 오래오래 흐느껴울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갑자기 진사댁문밖으로 물러나라니 이게 도무지 어찌된 노릇인가?

칠봉로인은 너무도 안타깝고 막막하여 가슴을 버럭버럭 쥐여뜯었다.…

또다시 밖에서 딸딸 신발끄는 소리가 들린다.

저건 누구의 신발소릴가? 날 찾아오는 소릴가? 아니 그럴수 없어. 날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어. 저건 물레방아소리지… 아니야, 앞집에서 벼짚 두드려대는 소리구나. 아아, 날 찾아줄 사람은 이젠 없어…

그 순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분내가 코를 쿡 찌른다.

표독스레 종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칠봉로인은 욱신거리는 머리를 들어 가까스로 바라보았다.

《잘도 늘어졌군.》

셋째첩이 문전에 실팍한 어깨를 갖다붙이고 흘겨본다.

《어서 부엌에 들어와 불좀 때게, 얼른.》

셋째첩은 앙큼하게 소리를 지르고 팔짱을 끼더니 오한이 난듯 몸을 오들때린다.

《갑지요. 아씨.》

칠봉로인은 거의 딩굴다싶이 일어나 셋째첩을 따라섰다.

나에게 일감을 주려나? 그래 아직은 내가 필요한 물건이렸다. 암 내가 없이야 이 집 구석구석 허구많은 일들을 그 누가 알심있게 해주랴.

로인은 뚝뚝 소리가 나게 쌍엽장을 내짚었다. 기름이 번질번질한 실겅우에 남포등이 켜져있었다.

거위처럼 엉치가 퍼진 지주 본댁네가 커다란 놋양푼에 쌀뜨물을 받아놓고 머리를 감고있었다.

《칠봉인가, 불 좀 때게.》

지주마누라는 머리를 줄렁줄렁 헤우면서 분부한다.

《예, 합지요.》

그는 재빨리 나무매끼를 터쳐가지고 커다란 부엌아궁에 와삭와삭 쓸어넣었다. 성냥을 켜대기 바쁘게 화르르 불길이 살아올랐다.

가마가 실실 끓었다. 김이 솟아오른다. 뿌연 김이 떠도는 부엌안은 퍽 아늑하였다. 지주녀편네는 더운물을 퍼내여 뒤덜미에 홀홀 끼얹으면서 즐거워한다.

칠봉로인의 가슴은 복잡하고도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날 이 집에서 쫓아내다니, 그게 참말인가.)

《이봐 칠봉이, 뭘하구있는게야?》

지주녀편네가 꽥 소리를 질렀다. 칠봉로인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아궁이 까맣게 불이 죽어있었다.

칠봉로인은 덤벼치면서 와삭와삭 나무를 꺾어넣었다.

《아이유 이 먼지. 어서 썩 물러가지 못해.》

칠봉로인은 엉겁결에 문밖으로 뛰여나왔다. 그는 아무데나 털썩 주저앉았다. 그것은 대돌이였다. 대돌밑에서 주둥아리가 시커먼 누렁개가 다리를 벋디디고 기지개를 쓰고있었다.

누렁이는 칠봉로인을 알아보자 다리에 칭칭 감겼다.

《오냐, 네가 사람보다 낫구나.》

칠봉로인은 개의 목덜미를 껴고 부루루한 털속에 머리를 비볐다.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짐승의 따스한 털온기가 얼굴을 어루만진다. 껄껄한 혀바닥이 로인의 손등을 정겹게 핥아준다.

개는 낑낑거리며 앞발로 땅을 허비고 꼬리를 두드려 봉당에서 먼지를 일으켰다.

개같은 미물도 사람의 애무를 알아주는것이다.

《네가 아침물을 못먹었겠구나.》

칠봉로인은 지주녀편네가 머리감던 뿌연 입쌀뜨물을 생각하였다. 로인은 일어섰다. 그리고 용기를 내여 부엌으로 들어갔다. 젖은 부엌바닥에 뜨물이 담긴 양푼이 놓여있었다.

로인은 무릎걸음으로 양푼을 들고 문밖을 나섰다.

《칠봉인 일군이야.》

경대앞에 마주앉아 머리에 동백기름을 치고있던 지주녀편네가 하는 소리다. 칠봉로인은 그것을 무슨 꾸지람으로 착각하고 무춤 고개를 돌렸다. 간사하게 웃는 계집년의 눈과 마주쳤다.

칠봉로인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번쩍거리는 양푼을 개주둥이앞에 갖다놓았다. 개는 꼬리를 저으며 넓다란 혀바닥으로 철썩철썩 소리를 내며 물을 찍어먹는다.

칠봉로인은 어진 주부처럼 무릎을 쭈그리고 개와 마주앉아있었다.

가끔 로인은 양푼속에 손을 넣어 밑굽에 가라앉은 쌀까리를 적셔준다. 개는 마구 주둥이를 휘둘러 게걸스레 먹어댄다.

(이 양푼은 마나님 머리감는 그릇이겠다. 개주둥이가 들어가선 안될터이지.)

칠봉로인은 이런 생각이 들었으나 곧 잊어버렸다. 그는 다른 생각에 빠져버렸다. 자기 손으로 먹여살릴 이 뜰안의 짐승들을 걱정한것이다.

《닭들도 아침모이를 주어야겠다.》

칠봉로인은 즉시 일어섰다. 그는 모이바가지를 들고 퇴돌우에 올라갔다.

《구구 구구.》

그는 닭들을 불렀다. 담모퉁이에서 새빨간 수탉이 목을 길게 빼고 달려왔다. 닭들은 모이를 뿌려주는대로 날개를 푸득푸득거리며 쪼아먹는다.

로인은 즐겁고 대견한 생각에 자기의 불행같은것은 죄다 잊어버렸다. 그는 소란하게 돌아치는 닭들을 유심히 내려다 보았다.

로인의 눈에는 통통한 검정암탉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이냐? 로인은 저쪽 외양간 모퉁이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여 구구-구구- 하고 소리쳤다.

아무 기척도 없다. 로인은 다시 벼짚동가리어방에 대고 또 구구 소리쳤다. 그러나 로인의 입에서 부르던 소리는 뚝 끊어졌다. 어제 경찰서 아라가와대위가 잡아먹은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뒤뜰안에 던져버린 닭의 발목지를 가지고 개와 고양이가 온밤 아웅다웅하던 생각도 떠올랐다. 무어라 형언할수 없는 아쉬움이 뼈마디까지 스며들었다.

칠봉로인은 닭의 무리를 헤치고 닭장으로 갔다.

얼룩덜룩 닭똥이 묻은 긴 홰가 쓸쓸하도록 비여있었다.

로인은 아프게 눈을 쪼프렸다. 바람에 푸수수 짚검부레기들이 떨고 닭장문이 삐거덕거렸다.

칠봉로인은 얼마동안을 서있었는지 몰랐다. 그는 한숨을 쉬였다. 생각할수록 한스러운 일이였다.

칠봉로인은 향방없이 걸어갔다. 그는 벼짚낟가리에 왔다. 무심히 걸었으나 자기의 땀과 노력이 고인 일터에 온것이다. 그는 벼짚낟가리에 무릎을 꺾고 콱 엎디였다.

《주인님.》

칠봉로인은 몸부림치며 눈물을 흘렸다.

지주녀편네가 또다시 칠봉로인은 불러들였다.

《칠봉인가. 어서 오게.》

지주녀편네는 올방자를 틀고앉은 무릎에 번쩍거리는 비단치마를 둥그리고 간사하게 웃음을 보내고있었다.

《자네 령감한테서 무슨 말씀 들었는가?》

칠봉로인은 또다시 가슴이 철렁하였다.

(일은 끝내 시작되는구나!)

칠봉로인은 대답을 못하고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기만 하였다.

《듣자니 자넬 우리 집에서 내보내기로 작정하셨다는데 참말인가?》

《예.》

로인의 온몸으로 전률이 흘러갔다. 그의 뒤덜미에서 머리칼마저 푸수수 일어나는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보게, 자넬 어떻게 내보내기까지야 하겠는가?》

칠봉로인은 무슨 말인지 말귀를 깨달아들을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멍하니 지주녀편네를 쳐다보기만 하였다.

《자넬 어떻게 내보내기야 하겠느냐말이야.》

지주녀편네는 약간 샐쭉 웃고 눈을 찔 흘겼다. 그것으로 자기의 친근한 동정을 나타내려는것이였다.

칠봉로인은 땅바닥을 짚었던 깍지같은 손을 들어 덥석 지주녀편네의 손을 잡으려다 그만두었다.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런 엄청난 생각이 어느틈에 기여들었는가? 로인에게는 자기의 이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라도 표현하고싶은 한가지 생각이 너무도 강렬하게 치받치고있었던것이다.

《칠봉인 사람이 용해, 은공을 안단말야.》

《압지요. 마나님, 알구말구요.》

로인의 얼굴에는 사무치는 진정이 어려있었다. 동정과 자비를 베풀줄 아는 마나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그는 상전의 분부만을 기다리고있었다.

《이거 보라구 칠봉이.》

지주녀편네는 철부지아이 다루듯 칠봉로인을 구슬리기 시작하였다.

《칠봉이한텐 딸애가 하나 있지?》

《있습지요.》

칠봉로인은 얼른 대답하고 또 멍하니 쳐다본다.

《그 애가 몇살이더라?》

《열여덟이지요.》

《곱게 생긴 처녀라고 했었지?》

《곱다마다요. 원 마나님두.》

칠봉로인은 처음으로 한번 웃었다. 눈가에 착잡하게 덮였던 불안은 사라지고 그대신 기쁨이 어렸다.

《그 애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군 칠봉이.》

《마나님, 어찌 그런 황송하신 말씀을…》

《아니야, 난 보고싶다니까.》

지주녀편네는 애교있게 어깨를 흔들며 아주 대단히 보고싶다는 의향을 나타내였다.

《그거야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어렵지 않다면 오늘 당장 데려다주어.》

《……》

칠봉로인은 대답을 못했다.

《아, 내가 숙수치마 한감 끊어주고싶어 그런다니까.》

이번에도 칠봉로인은 또 말을 알아듣지 못한것처럼 눈을 꺼벅꺼벅하였다.

《숙수치마를 해주고싶어서 그래. 그 애가 언제 그런 치마를 입어보았겠어.》

칠봉로인은 스르르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자 그의 입은 무겁게 닫혀버렸다. 친절은 고마왔으나 그때문에 옹색한 일이 생길가봐 걱정스러웠다. 자기같은 가난뱅이 자식은 누가 욕을 해도 겁나고 떡 한개를 크게 잘라주어도 겁나는법이다. 죽은 나무등걸같이 컴컴하게 굳어져버린 로인을 마뜩지 않게 흘겨보던 지주녀편네는 골살을 찌프렸다.

《왜 그리 죽은 말귀신같이 하고 앉았어 엉?》

칠봉로인은 꿈칠하고 놀라 한발 뒤로 물러앉았다. 두손바닥은 다시 땅을 짚고 허리는 새우등처럼 꼬부장해졌다. 그것은 표독스런 상전앞에서 언제나 취해온 늙은이의 순종하는 자세였다. 그 묵묵히 굽어든 잔등우에는 무서운 욕설과 채찍이 떨어졌었다. 지금도 로인은 그것을 기다렸다. 좋건싫건 운명처럼 그것을 기다리기에 버릇되여온 로인이였다.

《얘, 칠봉이.》

지주녀편네는 도고히 위엄을 가지고 불렀다. 로인은 얼핏 고개를 들었으나 머리는 다시 서서히 굽어들었다. 번쩍거리는 비단무릎은 눈앞에 있었으나 목소리는 아득히 먼곳에서 들린것 같이 생각되였다. 그는 귀를 강구었다.

《그래 칠봉인 우리 집에서 몇해나 살고있는지 알기나 해?》

《여덟해하구 석달을 더 살았습죠, 마나님》

《그 여덟해동안에 먹고 입고 쓰고 산것이 누구의 덕분인줄 알기나 해?》

《알다마다요 마나님, 이 백진사댁아니문 나는 굶어죽은지 오랬을 몸이지유.》

《그래 그 은공 조금만 알았어두 제 딸년을 남의 집 부엌에 빼돌릴수 있느냐말야.》

《빼돌리다니요. 그 앤 일곱살에 에미 죽구 이웃에 양딸루 준 애인데유. 지금두 그 앤 신파지국장선생댁에서 보살핌을 받고있지유.》

《우린 그 애 불쌍한줄 모르는 사람들야?》

칠봉로인은 후들후들 몸을 떨며 머리를 들었다. 성긴 턱수염은 꺼칠하게 일어서고 우묵하게 그림자가 비낀 눈확속에서는 선량한 두눈이 앞을 바라본다.

《그 앨 우리 집에 데려다놓구 애비딸이 함께 있으면 오죽 좋아, 오래지 않아 시집두 가야 할 애인데 그냥 남의 집 부엌에 내돌릴테야?》

움직이지 않는 선량한 두눈이 그냥 바라본다. 그것은 자식을 그리는 아버지의 눈이다. 거기에는 분노도 항변도 의혹도 없다. 거기에는 이 세상의 불의란 한번도 비껴본것 같지 않다.

《왜 그렇게 한껏 보기만하는거야.》

지주녀편네는 빽 소리쳤다. 선량하기 그지없는 로인의 그 두눈이 어쩐지 불쑥 겁나는것이였다.

《우리 집 참순이는 거들지 말아줘요. 그 애꺼지야 어떻게 종노릇을 시켜유.》

칠봉로인은 비로소 자기를 내보내려 한것이 참순이를 끌어오기 위한 모략이라는것을 알았다.

《누가 종을 시킨다구 그래?》

《그저 그 앨 팽개쳐놔둬유.》

《저런 시라소니같은것이!》

《아니여유, 팽개쳐놔둬유.》

로인은 후들후들 머리를 떨었다. 그리고 실성한듯 그냥 중얼중얼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놔둬유, 팽개쳐놔둬유, 마나님 팽개쳐놔둬유.》

《저것이 미치지 않았어?》

《아니여유, 아니여유 놔둬유. 우리 참순일 놔둬유!》

《거기 누가 없느냐?》

지주녀편네는 더럭 겁에 질려 소리쳤다. 미쳐버린듯 한 로인이 금시라도 훌쩍 달려들어 목을 짓누르고서서 《놔둬유. 놔둬유.》하고 숨이 질 때까지 그 말을 계속 념불외우듯 중얼중얼 할것만 같았다.

그러나 로인은 손가락하나 꼼짝않고 앉아있었다. 자식을 그리는 티없이 맑은 눈가에 천천히 이슬같은 눈물이 고여올랐다. 그것은 떨어지지 않고 커다랗게 눈시울에 맺혀서는 후르르 떨고있었다. 밖에서 성급한 신발소리들이 울렸다. 문이 홱 열렸다. 그러자 어느결에 날아들어온 몽둥이가 로인의 등줄기를 후려쳤다. 로인은 신음소리도 없이 쓰러졌다. 그러자 로인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삿자리에 떨어졌다.

…얼마후 의식을 차린 칠봉로인은 돼지무리를 몰고 절뚝거리며 들로 나갔다.

당장 먹고 살아가기 위하여, 이 기박하고 억울한 생활이나마 하루라도 더 지탱하기 위해서 모든 수모와 학대를 참고 들로 나가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이날 칠봉로인은 돼지를 한마리 잃어버리고 돌아왔다. 목장뜰안에 나와 뽀얗게 들먼지를 뒤집어쓰고 밀려드는 돼지들을 단장끝으로 세여넘기던 지주놈은 성이 독같이 뻗쳐올라 칠봉로인을 몰아세웠다. 지주놈은 당장 선자리에서 물러가 돼지를 찾아오기전에는 이 뜰안에 얼씬도 말라고 쫓아내고말았다.

로인은 운신조차 하기 어려운 아픈 몸을 이끌고 컴컴하게 어둠이 드리운 수림속을 헤치고 들어갔다.

《어-허! 어-허, 뚤뚤 뚤뚤…》

눈물섞인 로인의 처량한 외마디 부름소리가 적막한 수림속의 컴컴한 공간에 무시무시하고도 구슬픈 메아리를 길게 불러일으키면서 터져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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