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지세경은 녀자들에게 몇번씩 발을 밟히우면서 밖으로 나왔다. 신선한 바람이 이마에 건듯 부딪쳤다. 후유- 하고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내쉬였다. 옹색하기 그지없는 모임구경을 갔다가 어지간히 땀줄기를 흘린것이였다. 《이제는 어떻게 할가?》 그는 흩어져가는 사람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리풍우를 찾아가기가 오늘은 어쩐지 어색할듯싶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딱히 집어 말할수는 없었으나 오늘 《어머니 날》모임에서 하던 리풍우의 말과 비애에 젖은 회장의 공기가 그에 대한 당초의 기대를 흐리게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그는 삼십리길을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갈수 없었고 또 돌아갈수 없는 몸이였다. 지세경이 이미 안으로 닫아버린 출입문앞에 다가가 창유리를 거듭 두드리자 하관이 길쭉한 웬 낯모를 사람이 나와서 리풍우선생은 옥내려관으로 갔다고 알려주었다. 지세경은 터벅터벅 어두운 밤길을 걸었다. 리풍우를 꼭 만나야 할지, 결심이 서지 않은 맥이 없는 걸음이였다. 지세경은 머리를 떨구고 걸으면서 생각하였다. (려관에 얼핏 가볼가? 집에 가서 기다릴가?) 그러나 어느편도 지세경에게는 옹색한것이였다. (밤길을 두루 거닐다가 려관에 가 만나자.) 지세경은 드디여 마음을 다잡았다. 어두운 밤, 시장모퉁이를 돌아 광선사진관 좁은 길목을 빠져 압록강 동뚝에 나갔다. 솨솨- 물결이 소리치며 흘러간다. 그는 동뚝우에 앉았다. 도강파출소의 컴컴한 둥근 포대가 희미한 어둠속에서 검은 륜곽을 드러내보이였다. 기관총을 걸어놓은 조그마한 감시창으로는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어둠이 드리운 긴 동뚝의 여기저기에서 담배불이 반짝반짝 움직였다. 아무 생각없이 그는 무료한 긴 시간을 보냈다. 지세경은 리풍우가 들어있다는 옥내려관으로 갔다. 2층 두방만 불이 죽고 나머지 창문들에는 불빛이 휘황하였다. 그는 려관 마당안에서 서성거리며 또다시 잠시 기다렸다. 려관 웃층 유난히 널직하고 흰 카텐을 길게 드리운 창문에서 혀꼬부라진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조선의 북단 2천리 넘는 압록강 건너가면 남만주
일본수비대놈들이 즐겨부르는 노래였다. 그것은 오늘밤따라 어떻게 역겨운지 견딜수 없었다. 쟁가당 하고 다른칸 창문에서는 잔이 깨여지는 소리가 울렸다. 방안에서 혀꼬부라진 고함소리가 울리고 허겁지겁 돌아치는 그림자들이 온 마당에 가득 차서 돌아간다. 그 검은 그림자가 얼른거리는 마당에 이번에는 애수와 절망에 찬 남녀들의 류행가가 오래동안 흘렀다. 지세경은 우울과 고독에 잠겨 마당가의 이슬에 젖은 나무의자에 앉아있었다. 모든것이 귀찮았다. 모든것이 짜증나고 불안스럽고 역스러웠다. 순수하고 순결하고 무궁한 들, 어디든 거침없이 마음을 기대고 명상에 잠길수 있는 들, 넓고 신선한 자연의 품이 이때처럼 그리워보기는 처음인듯싶었다. 지세경은 아무 미련없이 이 소요하는 추잡하고 혼돈된 생활에 침을 뱉고 가버리고싶었지만 그래도 답답한 가슴을 헤쳐놓고 이야기라도 해야 할 절박한 심정이였다. 이것은 그가 이 막막한 세상에서 유일한 의지로 삼고있는 마음의 언덕인것이다. 아앙- 갑자기 밤 10시를 알리는 고동소리가 밤거리를 뒤흔들기 시작하였다. 좌우 산으로 둘러막힌 자그마한 읍거리는 사방에서 맞부딪쳐오는 산울림으로 하여 더욱 소란스럽고 앙칼진 그 고동소리를 듣기가 말할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지세경은 의자에서 뛰쳐일어나 성급하게 마당안을 오락가락하였다. 그는 리풍우가 원망스러웠다. 이 걷잡을수 없는 소요와 혼돈속에 앉아 편히 술잔을 기울이고있을 그를 생각하면 가슴에서 의분이 끓어오른다. 그러나 그 의분, 그 원망이 어째서 가슴을 태우고있는지 그것은 지세경자신도 알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 생활이 싫다. 이 소요가 싫다. 이 혼돈이 싫다. 여기서는 아무도 살아갈수가 없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절규하고 이렇게 타매하고있을뿐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지세경은 약간 비척거리며 걸어나오는 리풍우를 만났다. 《자네가 어찌된 일인가?》 리풍우는 깜짝 놀라 세경을 쳐다보았다. 그는 다짜고짜 이슬에 젖은 세경의 팔소매를 잡고 려관으로 들어갔다. 《잘 왔어. 반갑네, 내 자네하구 밤을 새워 할 이야기가 있네. 갑갑해 못살겠어.》 그는 방금 술상을 치워버린 다다미방에다 지세경을 강제로 눌러앉혔다. 술과 료리가 들어왔다. 지세경의 절박한 심정을 알수 없었던 리풍우는 상머리를 붙들고앉아 자기의 울분부터 토하기 시작하였다. 《세경이, 우린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응? 길가의 무궁화는 봄이 돌아와 꽃망울이 부풀었다만 빼앗긴 이 강토에는 여전히 봄은 돌아오지 않았어. 봄은 역시 자연의 봄뿐이야. 사람도 땅도 풍습도 짙어가는 왜색뿐이네. 모두 망했어. 이번 서울가서 보니 아주 여지없이 망했더란말이네. 한때는 그래도 가난한 이 나라와 겨레를 위해 백절불굴할 결심으로 사상운동에 나섰던 자식이 글쎄 왜놈세무소에서 세무관노릇을 해먹고있더란말이네. 어떤 녀석은 총독부 서무과에서 무슨 계장인가, 과장인가 하는 자리도 차지하고… 그저 이러루하게 민족의 넋은 쇠퇴해가구있지. 이 여지없는 몰락을 그냥 둬? 안되네. 그래서는 안되지. 우리는 의기를 굽히지 말고 땅을 차고 일어서야 해!》 리풍우는 주먹으로 술상을 두드렸다. 지세경은 참고있다가 말했다. 《저는 절박한 사정으로 선생님의 조언을 들으려 왔는데요.》 리풍우는 피발이 선 눈을 맥없이 뜨고 지세경을 쳐다보았다. 《절박한 사정이라니?… 어서 말하게.》 리풍우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똑똑했다. 그는 술상에 마주앉으면 분별을 망각하는 때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자기 의식으로 돌아오면 점잖고 준절한 인간으로 되였다. 《어서 말하게, 무슨 용건이게 응?》 리풍우는 의식을 다잡고 침착한 시선으로 지세경을 주시하였다. 지세경은 잠간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가 이윽하여 머리를 들었다. 《저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선생님이기에 격식을 차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지금의 공허한 상태로는 도저히 더 지탱할것 같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격대라도 찾아갈가 하는 생각입니다. 연줄을 찾아줄수 없겠습니까?》 《무어?》 술상모서리를 잡은 리풍우의 손이 우두두 떨렸다. 리풍우는 창문가에 언뜻 시선을 주더니 엄하게 말했다. 《그런 객적은 소린 다시 말라구. 자네가 유격대를 찾아가다니…》 《죽을셈치구 내린 용단이니 그리 알아주십시오.》 《그만두게, 그만두라니까.》 리풍우는 세경이를 휘둘러칠것처럼 손을 내저었다. 《이사람, 자넬 모욕한다고는 생각지 말라구. 나는 자네를 알아. 누구보다 잘 알지. 유격대활동이란 자네가 머리속에서 몽상하는것과는 전혀 같지 않네. 그들의 생리는 우리와는 달라. 그들은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고 피곁으로 발을 동이고 산을 펄펄 날아넘으면서 항전을 하네. 자네의 생리적조건으로는 우선 그들을 따르지 못해. 세경이, 우린 연약한 체질의 자신들을 한탄할줄도 알아야지.》 지세경은 말없이 어깨를 떨어뜨리고 다다미의 터갈라진 한쪽모서리를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그는 리풍우의 개탄에 이의를 표시하거나 단호히 반기를 들 자신이 못된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육체적조건이 문제인것이 아니라 정신상의 출로를 어디서 모색하는가가 문제인것이다. 힘들고 난관이 중첩해도 유격대의 생활에 자신이 갈망하던 현실이 있고 조선청년이 리상하는 오늘이 있다면 비록 그길에 육체를 쓰러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의식은 건전한 향기를 획득할수 있지 않겠는가? 《아, 참.》 리풍우는 가슴타는 울분을 내뿜었다. 《하긴 자네나 나나 생의 목적을 아주 거기에 걸고 생사를 판가리할 결심을 가진다면 육체도 또 어찌 순응해줄는지도 모르네. 그건 실상 가능도 한 일이지. 하지만 사상면에서 지향면에서 우리는 길이 막힌 사람들이네. 유격대를 찾아 떠나겠다고?… 이사람, 그런 식으로 울분을 터뜨리지 말라구. 자고로 우리 나라에 이런 무장투쟁이 좀 많았는가? 확실한 승산도 없는 싸움에 아까운 젊음을 불사르다니, 그렇지 않아도 이 나라의 산야엔 애국에 끓어넘치던 젊은이들의 시체가 너무도 많이 깔렸어…》 리풍우는 손수건을 꺼내여 눈언저리를 닦았다. 《들게, 들어야 하네. 들면 울분이 가라앉을수도 있으니까.》 리풍우는 술잔을 지세경에게 내밀었다. 지세경은 술잔을 받았으나 들 생각은 없었다. 《며칠전 평양에서는 온 조선에 들썽하게 소문을 낸 한 반일녀걸의 회갑연이 있었네.》 리풍우는 머리를 떨어뜨리고 비애에 잠겨 말을 이었다. 《녀자의 몸으로 가슴에다 륙혈포, 다이나마이트를 품고 시시로 변장을 해가며 깊은 산속을 수십일씩 헤매고 생쌀을 씹던 범같은 녀자지. 반일에 뜻을 두고 압록강을 넘어 중국관내에까지 휩쓸고 다니며 명성을 떨치던 녀성이네. 나는 신문기자들과 같이 그 녀성하구 인터뷰를 하지 않았겠나. 내가 물었네, 오늘 회갑날을 당하셔서 감상이 어떠냐구? 그랬더니 그는 쓸쓸히 웃으면서〈한숨뿐이웨다. 륙십평생 헛손질만 하다만듯 한 느낌이예요. 그저 갈팡질팡하면서 한생을 살다보니 추억도 없고 영예도 없고 미래도 없는 그저 공이예요.〉하고나서 손가락을 둥그려 공을 표시해보이더란말이네. 나는 륙십에서 사십을 뚝 떼여버리고 스무살의 창창한 나이를 가지신다면 무얼 하실테냐고 물었지. 그는 오래도록 생각하더니 〈글쎄요. 사립학교나 하나 운영해볼가요? 총들고 사선에 나설 의향은 없습니다. 강대한 일본제국주의를 무장으로 타승할 힘은 아직 이 나라에 태여나지 못하였어요.〉하고 또다시 쓸쓸히 구슬픈 미소를 띠우더란말이네. 세경군, 이것이 우리 독립운동의 실태라고 나는 생각하네. 암담하지. 거기에 모인 숱한 우국지사들이 눈물을 뿌리며 슬퍼했었네. 한데 자네 유격대를 찾아가겠다고?…》 지세경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 하나 묻겠습니다. 유격대활동에 그렇듯 신심을 못가지는 선생님이 신문기사에서는 왜 유격대활동과 그 공적을 좋게 평가하려고 그렇게 부심하시는겁니까? 검열에서 삭제를 당하고 경찰의 추궁을 받으면서까지…》 《이사람, 그런 질문도 하는가? 일전에 어느 한 지식인은 자기 수기에서 이렇게 말하였네. 내가 지금 독립 독립 하고 부르짖는것은 독립이 당장 가능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기때문에 부르짖는것이다 라고. 내가 유격대를 성원하고 아끼며 지지하려고 하는것은 그를 통해 나라의 광복이 당장 이룩된다고 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분명 나라를 위한 의로운 행위이기때문이네. 나는 총들고 왜놈하나 죽인것이 없는 지사일세.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져. 유격대활동을 과거에도 지지했거니와 앞으로도 지지할 결심이네.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할 결심이야. 자선도 하고 계몽도 하고, 농촌진흥, 물산장려에도 힘을 바치고… 모두가 이렇게 한다면 당장은 안되여도 앞으로는 빛이 보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자네도 무엇이건 유익한 일을 하라는거야.》 지세경은 고통스레 얼굴을 싸쥐였다. 《저는 오늘 〈어머니 날〉모임이란걸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한바가 많습니다. 민족을 위한 유익한 일을 저런 식으로 해야 옳겠습니까?》 주기가 오른 리풍우의 얼굴은 경련이 인듯이 푸들거렸다. 《세경이, 자네 말이 옳아. 우린 좀 큰것을 했어야 했었지. 부녀들의 눈물로써 당장 민족이 계몽되는것도 아니니말일세. 하지만 이 일도 버리지는 말아야 하네. 우리는 너무도 취미를 빼앗긴 민족이야. 너무도 장식없는 민족으로 되였단말이네. 요구가 없는자에게 투쟁의 의욕이 없는것과 같이 생활이 무미건조한 민족에게는 반항의식도 고갈되는 법이네. 세상이 다 하는 일을 식민지 이 나라에서라고 왜 못하겠는가. 나라를 위해 필요한 문명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받아들일 결심이네. 이렇게 한치한치 민족계몽이 이루어지는 법이야.》 리풍우의 표정은 퍽 구슬퍼보였다. 지세경이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성실한 감정과 리성을 언제든지 존중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우한 이 나라를 구원하는 생명수로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힘들어도 다른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유격투쟁에 리상을 걸어볼 형편이 못된다면 또 다른길을 찾아낼터입니다.》 지세경은 리풍우와 헤여져 먼저 밖으로 나왔다. 일순간 말못할 공허가 가슴이 무너지게 밀려들었다. 리풍우는 그래도 무엇인가 하고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있나? 그리고 앞으로는 또 무엇을 해야 하나?… 지세경은 머리를 푹 숙이고 이미 통행이 끊어진 도강나루를 향해 맥없이 터벅터벅 걸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