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민족의 총의에 의하여
□ 4월남북련석회의
북반부에서 민주개혁이 성과적으로 진척되고 첫 민주선거실시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법적성격을 띤 인민위원회로 공고발전시킨데 따라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토대가 튼튼히 마련되여갔다. 그러나 미제의 민족분렬책동으로 말미암아 북과 남을 다 포괄하는 전령토적범위에서의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앞길에는 많은 난관이 가로놓여있었다.
미제는 강점 첫날부터 포악한 군정을 실시하면서 남조선을 영구강점하려고 미쳐날뛰였다. 놈들의 이러한 책동은 날이 갈수록 더욱 로골화되였다.
미제는 1947년 9월 남조선에 대한 지배를 《합법화》하려는 음흉한 기도밑에 조선문제를 비법적으로 유엔에까지 끌고갔다. 이에 대하여 미국신문까지도 《38°선이북에 놓여있는 조선의 절반을 될수 있는대로 빨리 획득하려는 기도에서 미국의 후원을 받게 될 남조선공화국을 세우려는것》(《뉴욕 져널 앤드 아메리칸》 1947년 9월 17일)이라고 론평하였다. 미제는 유엔에서 저들의 거수기를 발동하여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이라는 침략도구를 조작하였으며 1948년 2월 《유엔소총회》에서 《우선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할데 대한, 다시말하여 남조선에서만 《단독선거》를 실시할데 대한 범죄적결의를 날조하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의 책동으로 하여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의 위기는 더욱 격화되고 통일적인 민주주의림시정부수립의 길에는 엄중한 장애가 조성되였다.
이 엄중한 난국을 타개하고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통일국가의 건립을 위한 결정적인 구국대책을 세우는것은 한시도 미룰수 없는 긴박한 과업으로 나섰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이 력사적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남북련석회의소집을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6(1947)년 10월 3일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회의에서 남북의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들의 협의회나 련석회의형식으로 남북협상을 진행할데 대한 방안을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1월에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회의에서 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과 개별적인사들에게 남북협상을 조속히 실현할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3월에 소집된 북조선민전중앙위원회 제26차회의에서 4월 14일 평양에서 남북련석회의를 열것을 남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에 제의하는 공개서한을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미제의 음흉한 분렬책동에 의하여 국토가 북과 남으로 갈라져 상반되는 길로 나아가고있는 엄중한 시기에 사상과 리념, 정치적견해가 다를뿐아니라 서로 적대시하여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나라의 운명을 론의한다는것은 당시 누구도 생각할수 없는 어려운 일이였다. 하기에 이에 대하여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련석회의의 소집과 그의 성과적진행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인민들의 강력한 항의의 목소리와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한 인민들의 완강한 투쟁이 그들, 남조선의 각계 인사들에게 주고있는 커다란 영향력을 헤아려보고계시였다.
통일된 조국에서 살려는것은 북남조선인민들의 한결같은 지향이였다.
량심적인 민주인사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말로나마 애국애족을 고창하는 정치적야심가들까지도 인민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인민들의 지향에 편승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수령님께서는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들의 가슴속에 간직되여있는 민족적량심을 귀중히 여기시였다.
그이께서는 당파싸움의 소음속에서도 민족분렬과 국토량단을 우려하는 애국의 목소리를 가려들으시고 시대착오적인 《반공》의 도포자락을 펄럭이는 완고한 민족주의자들의 넋속에서도 한가닥 남아있는 우국지심을 가려보시였다.
일찌기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반일민족통일전선체인 조국광복회를 창립하시고 조국광복회가 내세운 강령을 기치로 하여 각계각층의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을 단합시킨 경험을 쌓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민족회의도 이처럼 애국애족의 공통된 리념에 기초한다면 능히 실현되리라는것을 확신하신것이였다.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를 소집할데 대한 발기는 전체 조선인민의 열렬한 지지와 찬동을 받았다. 남조선민전산하 정당, 사회단체들은 물론 중간 및 우익정당, 사회단체 대표들까지도 남북련석회의를 지지하는 특별결의문을 채택하였다.
1948년 4월초 서울에서는 100여개의 중간 및 우익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통일독립운동자협의회》를 결성하고 유엔의 《단독선거》결정에 항의하는 결의문과 《남북련석회의 추진에 관한 특별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우익의 거두라고 하던 김구도 련석회의소집을 적극 지지찬동하였다.
김구로 말하면 해방전 《상해림시정부》 주석경력자로서 민족의 《지도자》로 자처하여온 인물이였다. 그는 중국각지로 떠돌아다니며 숱한 행세식공산주의자들을 만나보고 환멸을 느낀 나머지 《반공벽》을 든든히 쌓고 공산주의자들과는 다시 상종하지 않기로 결심한 우익거두였다. 그는 해방후에도 한때는 북반부의 시책들을 비방중상하면서 숱한 테로, 암해분자들을 들여보내여 죄행을 저지르게 한 우익세력의 중심인물이였다.
그런데 초청장을 받은 김구의 태도는 첫 순간부터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져있는 초대장과 함께 비록 지난날 민족앞에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애국의 길에서 싸우려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묻지 않고 손잡고 나아갈것을 선언한 편지를 받아안은 김구는 감격을 금치 못해하였다.
《이제야 구국의 활로가 열렸구나. 과시 듣던바대로 만고의 위인이시고 절세의 애국자이심에 틀림없구나!》
그에게 있어서 초대장은 회의에 참가하라는 한갖 통지서가 아니였다.
그것은 《반공》, 반역의 치욕속에 사라져가는 민족적량심의 마지막흔적을 되살려 가슴가득히 채워주는 재생의 빛발이였으며 그를 애국의 길로 손잡아 이끌어주는 구원의 손길이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에서 힘을 얻은 김구는 서울을 떠남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유엔이 아무리 <단독정부>를 수립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 자손만대에 넘겨줄수 있는 정부가 될수 없는것이다.
나는 외국인의 유혹과 국내 일부인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흔연 남북회담에 참가하기를 결정하였다. 공수래공수거(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뜻)라고 기우하는이도 있으나 우리의 전도에는 위대한 희망이 보이고있다. 나는 오직 우리의 통일과 독립의 활로를 찾기 위하여 피와 피를 같이한 동포끼리 마주쳐 최후의 결정을 보려고 결연 가련다.》
이것은 김구 혼자만의 심정이 아니였다.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우려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평양으로 쏠리고있었다.
신문, 잡지들도 대서특필하였다.
당시 서울에서 발간된 《자유신문》 3월 30일부는 사설에서 《남북분렬 3년의 암운을 헤칠 서광》이라고 전제하고 《이 회담은 조선민족이 요구하는 유일한 활로이며 따라서 이를 희망하는 열의가 남조선 방방곡곡에 충만되고있다.》고 썼다. 계속하여 신문은 이 구국운동이야말로 《5천년력사를 가진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자시를 표현한것이요, 모든 사대주의와 타력의존주의를 박차고 힘있게 진군하려는 민족의 거보》로서 《세계의 아무도 정당한 민족의 요구와 지향을 막지 못할것이며 국내의 누구도 이 충만된 의욕과 의기를 방해하지 못할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또한 많은 인사들이 앞을 다투어 《통일절대지지》, 《3천만의 축원》, 《감격에 벅차 울음이 난다》, 《한사코 성사시키자》등의 제목으로 여러 출판물들에 남북련석회의소집을 열렬히 지지하는 담화들을 발표하였다.
참으로 남북련석회의를 소집할데 대한 발기는 분렬의 암운을 가실 통일의 밝은 서광이였다.
남조선의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집요한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북행길에 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명의 대표라도 회의에 더 참가시키기 위하여 회의날자를 5일간이나 미루도록 하시였다.
주체37(1948)년 4월 19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온 민족의 크나큰 기대와 관심속에서 력사적인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가 열리였다.
회의에는 북남조선의 1 000여만명의 당원들과 맹원들을 망라한 56개 정당, 사회단체 대표 695명이 참가하였다. 여기에는 해외교포대표들도 있었다.
회의는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넘어 나라의 통일국가건설이라는 하나의 목표밑에 북과 남의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망라한 전례없는 민족적거사로서 처음부터 혼연 융합된 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력사적인 보고 《북조선정치정세》에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이 남조선에서 실시하려는 망국적《단독선거》를 거부하며 파탄시키는것이 우리 민족앞에 나선 가장 큰 정치적과업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망국적단독선거를 단호히 거부하여야 합니다. 이 거족적투쟁에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우려하는 모든 사람들은 당파와 종교의 소속, 정치적견해를 가리지 말고 반드시 단결하여야 하겠습니다.
단결만이 우리의 승리를 보장할수 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조국이 분렬의 위기에 처한 이 엄중한 때에 우리가 단결하여 일대 구국투쟁을 벌리지 않는다면 민족과 후손들에게 천추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짓게 된다는것을 강조하시면서 남조선《단독선거》를 저지파탄시키고 민주주의적원칙에서 통일정부를 세워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보고는 회의참가자들을 크게 감동시키였다.
그들은 비록 대표하는 계급과 계층이 다르고 정견과 신앙이 같지 않았으나 한결같이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방략을 지지하고 그 길을 따라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싸울 결의를 피력하였다.
련석회의에서는 남조선《단독선거》를 반대배격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할데 대한 결의를 담은 결정서와 전체 인민을 투쟁에로 호소하는 《전조선동포에게 격함》이라는 격문을 채택공포하였다. 또한 반미구국투쟁을 힘있게 벌리기 위하여 남조선《단독선거》반대투쟁위원회를 뭇고 조선에서 쏘미량군 즉시철거를 요구하여 쏘미량국정부에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였다.
수령님께서는 련석회의에 이어 4월말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를 소집하시고 외국군대의 철거와 통일적중앙정부수립 등 당면대책을 밝힌 《남북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 공동성명서》를 채택발표하도록 하시여 남북련석회의의 성과를 공고히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5월 2일 련석회의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실천적방도들과 조국통일전망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하여 대동강의 쑥섬에서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였던 남조선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의 협의회를 조직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쑥섬으로 건너가는 배에 오르시여 남조선대표들을 한사람한사람 손잡아 태워주시였다.
나루배에는 해방전에 《림시정부》의 주석으로 있었고 해방후에는 한국독립당 당수였던 김구, 전 《림시정부》 부주석이며 남조선 《과도립법의원》 의장, 민족자주련맹 주석인 김규식, 민주독립당 당수인 홍명희, 전 《림시정부》에서 외무부장, 선전부장, 재무부장, 법무부장을 한 조소앙, 엄항섭, 조완구, 최동오 그리고 김책을 비롯한 북반부의 일군들도 함께 올랐다.
그때 남쪽의 한 인사는 정견과 주의주장이 다른 각계 인사들이 한배를 타고가는 이 광경을 보면서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아, 얼마나 극적이냐. 어제까지도 반공일선에 서있던 저 어른들이 <공산>호를 타고 저렇게 흡족해하다니!》라고 말하였다.
조국통일력사에 길이 빛날 이 불멸의 화폭은 바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지니신 크나큰 도량과 위대한 포옹력을 그대로 말해주고있었다.
이날 쑥섬협의회에서는 남조선《단독선거》를 저지파탄시키고 남북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적인 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할데 대하여 일치하게 합의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쑥섬협의회는 사실상 전조선적인 정치협상회의였으며 우리 공화국의 건국력사에 빛나는 장을 장식한 력사적인 회합이였다.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과 각별한 보살피심을 받았으며 북반부에서 이루어진 성과를 직접 눈으로 본 남조선대표들은 한결같이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경모의 마음을 금치 못해하였다.
북반부의 민주건설모습을 본 남조선의 한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이번 련석회의참가자로 북조선에 와서 북조선인민들이 실지로 건설해놓은 업적들을 보고 오직 감격할수밖에 없으며 김일성위원장의 훌륭한 령도에 대하여 성심으로 경의를 표하는바이다.》
지어 일생을 두고 《반공》을 일삼아오던 김구까지도 자기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토로하였다.
《김일성장군님과 같은분이 진정한 공산주의자라는것을 나는 북조선에 와서 내 눈으로 모든것을 보고야 진심으로 느꼈습니다. 그런 공산주의자라면야 무엇때문에 공산주의자가 나쁘다고 하겠습니까.》
또한 그는 수령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고향집을 방문하고 후날 자기 친척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탄복하여마지 않았다고 한다.
《집안이 평범한 백성의 집이니 어찌 그분이 백성들을 생각하는것이 우연하다고 하겠소. 김일성장군님이 령도해야 조선은 행복하게 될수 있소. 진짜 공산주의가 김장군님이 베푸시는 그런 정치라는걸 알았다면 내가 왜 반대해나서겠소? …나는 김일성장군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가겠소. 이 길만이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이요.》
온 겨레의 마음과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된 남북련석회의는 당파와 소속, 주의주장을 달리하는 각당, 각파대표들이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통일적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문제를 토의하고 견해와 행동의 완전한 일치를 이룩한 력사적인 첫 대민족회의였다. 련석회의는 민족공동의 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각이한 정치세력과 각계각층이 얼마든지 단결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으며 조선인민은 자기의 운명개척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능히 해결할수 있는 슬기로운 인민이라는것을 온 세상에 시위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국의 한 문필가는 자기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회의의 남조선대표가운데는 리승만을 제외하고 남조선에 있는 우수한 인물이 거의 한사람도 빠짐없이 포함되여있었다. … 이만큼 다수의 남조선사람이 출석을 수락하였다는 사실은 비록 사정이 어떻든지간에 조국통일에 대한 그들의 본능이 얼마나 뿌리깊은것인가를 보여주는것이다.》(《맥아더의 수수께끼》 지지통신사)
남북련석회의를 계기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반대하고 통일적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투쟁은 전민족적범위에서 더욱 세차게 벌어졌다.
□ 새 기발 높이여 삼천만은 나섰다
4월남북련석회의가 있은 때로부터 두달이 지나갔다.
이 두달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민족분렬책동을 짓부시고 북남조선전역을 포괄하는 통일적자주독립국가를 일떠세우기 위한 투쟁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른 나날이였다.
그러나 이 기간 정세는 극도로 첨예화되고 복잡해졌다. 미제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반대배격에도 불구하고 남조선에서 끝내 《단독선거》를 강행하였다.
1948년 5월 10일에 남조선에서 실시된 《단독선거》는 세상에 선거라는 말이 생겨난이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가장 살인적이고 기만적인 《선거》였다.
미제는 《선거》를 앞두고 남조선의 애국적인사들을 위협할 목적으로 허다한 명령서와 무시무시한 포고령들을 련발하고 남조선전역에 땅크와 대포, 기관총 등으로 장비된 미군기동부대들과 경찰, 테로단을 배치하였다.
이와 같은 삼엄한 분위기속에서도 남조선인민들은 매국적《단독선거》를 거부하여나섰다.
그들은 가혹한 폭행과 테로에 파업과 시위, 폭동으로 맞서거나 놈들의 눈을 피하여 산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하여 제주도를 비롯한 일련의 지역에서는 《선거》가 전혀 실시되지 못하였다. 이른바 《선거위원회》가 과장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경상북도에서는 선거자의 겨우 10~20%가 《선거》에 참가했을뿐이였다.
이것은 사실상 《5. 10단선》의 파탄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되자 미제는 어용도구인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내세워 《선거》가 《자유의사표시》에 의하여 진행되였다고 공포하면서 《선거》결과를 날조하여 친일친미파, 민족반역자들로 비법적인 《국회》를 조작하고 리승만괴뢰정권을 만들어냈다. 남조선의 《국회의원》가운데는 로동자대표와 농민대표는 한사람도 없었다.
미제의 이러한 괴뢰정부조작책동은 전체 조선인민의 민족적분노를 자아냈다. 북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들과 각계 인사들은 련이어 성명서와 결정서, 담화들을 발표하여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죄행을 단죄규탄하였다.
사태는 너무도 엄중하였다. 조국의 절반땅이 미제의 완전한 식민지로 굴러떨어질 위험이 바로 눈앞에 닥쳐오고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37(1948)년 6월 29일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지도자협의회를 소집하시고 결정적인 구국대책을 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협의회에서 하신 보고 《남조선단독선거와 관련하여 우리 조국에 조성된 정치정세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대책》에서 남조선《국회》의 비법성을 분석폭로하시고 지체없이 전조선적인 정부를 세울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현정세에서 미군이 철거하기만 기다리면서 결정적구국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조선인민은 우리를 영원히 원망할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지체없이 조선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전조선최고립법기관을 세우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실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단독정부를 세울것이 아니라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로써 전조선정부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구국대책은 온 민족의 의사와 념원을 정확히 반영한것으로서 미제국주의자들의 민족분렬책동에 타격을 주고 전조선적인 통일적중앙정부를 세우기 위한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대책이였다.
회의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구국대책을 지지찬동하고 북남조선총선거를 실시하여 최고인민회의를 창설하며 전조선적인 통일적중앙정부를 세울것을 결정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화국의 헌법을 제정실시하는데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이미 작성한 헌법초안을 전인민적토의에 붙이도록 하시였다.
여기에는 공화국헌법이 명실공히 인민의것으로 되게 하며 헌법토의과정을 통하여 우리 인민이 이제는 나라의 기본법까지도 제 손으로 만드는 새 조선의 참된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과 크나큰 긍지를 안고 통일적중앙정부수립을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서게 하시려는 수령님의 깊은 의도가 담겨져있었다.
헌법초안에 대한 전인민적토의사업은 이미 1948년 2월 중순부터 두달 남짓한 기간에 걸쳐 북남조선 전 지역에서 진행되였다. 헌법초안은 전체 조선인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헌법초안에 대한 전인민적토의과정에 북남조선전역에서 헌법초안을 지지하는 5만 8 000여통의 결정서를 보내왔다.
남조선의 한 사회단체인 《전국유교련맹》은 자기의 결정서에서 《헌법초안은 우리가 생명을 걸고 요구하던 북조선에서 실시한 제반 민주개혁을 법적으로 보장한 진정한 민주주의적헌법으로서 조국의 독립과 통일민주주의국가수립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목표가 성문화된것》이라고 하면서 《이 헌법이 전국적으로 실시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침해하는 국내외반동파를 완전분쇄하는 날까지 계속 투쟁》할것이라고 결의다지였다.
헌법초안토의사업은 조선인민에게 조국의 통일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목표를 명확히 알려주고 그들을 총선거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남총선거에 의한 통일적중앙정부의 수립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제기되였던 국호문제와 국기, 국장, 애국가제정문제도 옳게 해결하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에는 우리 공화국의 자주적성격과 민주주의적이며 인민적인 성격이 뚜렷이 반영되여있다. 국호는 인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고 분렬된 나라의 현실을 다같이 고려하였다.
국장에는 공업강국으로 발전할 나라의 전망을 보여주는 수력발전소의 웅장한 모습과 승리의 상징인 찬란한 오각별을 그려넣었다.
국가도 나라가 통일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국가라고 하지 않고 애국가로 하도록 하였다.
국기에도 깊은 뜻이 담겨져있다. 붉은색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싸운 투사들이 흘린 붉은 피와 민주의 기발아래 굳게 뭉친 민주력량을, 흰색은 수천년의 유구하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가지고있는 단일한 우리 민족을, 푸른색은 세계인민들과 단결하여 전진하는 조선인민의 기백과 공화국의 자주권을 그리고 흰 동그라미안의 오각별은 미래의 승리를 상징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신 이러한 조치들은 북남총선거의 승리를 위한 확고한 담보로 되였으며 조선인민을 통일적인 중앙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북남총선거를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이 벌어지고 선거자들의 열의가 비상히 높아진 가운데 전국각지의 선거구들에서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립후보자추천사업이 진행되였다.
1948년 8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북남조선총선거가 승리적으로 진행되였다.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가 보장된 북조선에서는 인민대중의 정치적열의와 로력적투쟁이 비상히 앙양된 분위기속에서 총선거자의 99. 97%가 선거에 참가하여 212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하였다.
남조선에서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테로와 폭압으로 말미암아 비밀리에 서명을 받는 방법으로 전체 선거자의 77. 52%가 선거에 참가하여 먼저 1 080명의 인민대표를 선거하였다. 선출된 인민대표들은 사선을 헤치고 해주에 모여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를 열고 360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거하였다.
북남총선거의 승리에 기초하여 9월 평양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가 소집되였다.
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이 채택되였다.
최고인민회의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념원을 반영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수상, 국가수반으로 높이 추대하였다.
항일대전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고 새 민주조선건설을 령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국가수반으로 높이 모신것은 전체 조선인민의 최대의 행복, 최상의 영광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를 조직하시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남조선 전체 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세워진 유일한 합법적국가이며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의 리익을 대표하고 그들의 자주성을 철저히 옹호하는 참다운 인민의 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튼튼히 틀어쥐고 새 생활을 창조해나가는 자주독립국가의 슬기로운 인민으로 되였으며 주체의 기치를 높이 들고 세계의 대소국가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국제무대에 떳떳이 나설수 있게 되였다.
9월 12일 공화국각지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과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군중대회들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평양시의 수십만 군중은 이른아침부터 대회가 진행될 역전광장으로 물밀듯이 모여들었다.
이 시각 각 도소재지와 군소재지들에서도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의 대오가 군중대회장으로 밀려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높이 모시고 공화국기발을 추켜든 군중들은 감격에 넘쳐 만세를 부르고 노래를 불렀다.
백두산천지에서 제주도끝까지
새 기발 높이여 삼천만은 나섰다
산천도 노래하라 이날의 감격을
조선은 빛나는 인민의 나라다
…
권리는 인민에게 최고회의 열어서
우리의 대표로 중앙정부 세우자
민족의 영웅이신 장군님 받들어
조선은 동방에 빛나는 나라다
아 자유조선 인민공화국
해와 별 빛나라 조국의 앞길에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수반으로 하는 통일적인 중앙정부의 탄생을 지지환영하는 뜨거운 애국의 열정은 온 남녘땅에서도 세차게 굽이쳤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이 선포되자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의 한결같은 의사와 념원을 담아 민주주의 각 정당, 사회단체들은 련이어 지지환영성명들을 발표하였다.
남조선의 한 사회단체인 《교육자협회》는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은 소년시대때부터 이미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항일유격전을 전개하시였고 해방후 북조선에 있어서 토지개혁, 산업국유화법령, 남녀평등권법령, 인민경제계획 등 위대한 민주개혁들을 완수하시였으며 인민공화국의 튼튼한 토대를 구축함으로써 전인민의 무한한 신뢰와 경애를 받고있는것이다. 그러므로 김일성장군님이 인민공화국수상으로 선임된것은 전인민의 의사와 완전히 일치한것이며 남북조선인민은 김일성장군님이 령도하시는 인민공화국기발아래로 뭉치여 조국의 통일자주독립을 위하여 용감히 매진할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공화국창건이 선포되던 력사적인 그날 북남삼천리 온 강산은 감격과 환희로 들끓었고 만세의 환호성이 하늘땅을 진감하였다.
그것은 정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령도자이신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는 전체 조선인민의 다함없는 감사의 송가였으며 공화국의 기치아래 굳게 단결하여 조국의 통일독립과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힘차게 나아갈 투쟁의 맹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