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민주주의기발아래 뭉치여 인민의 새 나라를

 

 

《민주개혁이 실시된 결과 북조선인민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하게 되였다. 그들은 인민의 정치적자유와 권리를 보장하여준 민주정치와 근로대중을 봉건적, 식민지적착취와 예속에서 해방하여준 민주제도가 얼마나 귀중한것인가를 직접 체험하게 되였다.》

 

김 일 성

 

 

2 

1) 민주주의기치아래 모든 력량이 뭉치자

 

 

 3

 

□ 진보적민주주의의 길

 

일제는 패망하고 조선은 해방되였다.

조국땅을 짓누르던 민족수난의 검은구름은 가시여지고 일제의 구두발밑에서 신음하던 겨레는 자유와 해방을 맞이하게 되였다.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이 성취됨으로써 우리 민족앞에는 새 조국을 건설하여야 할 새로운 과업이 나서고있었다.

오래동안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신음하다가 해방을 맞이한 인민들은 건국열의로 들끓고있었으며 그들의 기세는 대단히 높았다. 그런데 각이한 세력을 대변하는 각당, 각파들이 나타나 저마다 자기의 주의주장을 내세우면서 대중을 자기편에 끌어당기려 하고있었다.

《해방바람》을 타고 해내외에서 형형색색의 《혁명가》, 《애국자》들이 나타나 별의별 주의주장을 내돌리며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다. 이 틈에 친일파, 민족반역자들까지도 《애국자》로 가장하고 온갖 꾀임수로 각성이 부족한 인민들을 자기편에 끌어당겨 저들의 정치적야욕을 실현해보려고 미쳐날뛰고있었다.

해방후 우리 인민앞에 나선 건국위업은 어떠한 당파나 몇몇 사람의 힘만으로는 성취할수 없었으며 그것은 오직 광범한 인민대중의 힘을 옳게 조직동원하여야만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었다.

그런데 인민대중의 힘을 적극 조직동원하려면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하나로 굳게 묶어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무엇보다도 모든 애국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울수 있는 기치를 들어야 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해방직후인 주체34(1945)년 8월 20일 군사정치간부들앞에서 하신 연설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건설에 대하여》에서 조선인민자신의 손으로 부강하고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건설할데 대한 구상을 밝히시면서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새 조선건설로선으로 제시하시였다.

어떠한 기치를 들어야 해방정국의 복잡한 정세하에서 각이한 주의주장을 표방하거나 아직은 누구를 따라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광범한 대중을 부강하고 자주적인 독립국가건설에 한사람같이 떨쳐일어나게 할수 있겠는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이러한 새 조국건설의 요구에 부응하여 진보적민주주의기치를 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즈음 어느 한 지방도시의 공산당청사를 찾으시였을 때였다. 건물의 벽에는 《공산주의기치아래 프로레타리아트는 단결하라!》는 구호가 나붙어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그곳 일군들에게 당신들은 로동계급의 힘만으로 새 조국을 건설하려고 하는가라고 물으시였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야 공산혁명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인데 로동계급밖에 믿을것이 있는가고 하였다. 그들의 주장은 지난날 초기공산주의자들이 들고다니던 주장과 별로 차이나는것이 없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진보도 없었고 새로운 시국의 흐름에 발을 맞추려는 진지한 모대김도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조국땅에 인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면 로동계급뿐아니라 그 동맹자인 농민은 물론 새 사회건설에 리해관계를 가지고있는 각계각층의 애국적인 군중을 통일전선에 묶어세워 거족적인 힘으로 우리 나라를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로 건설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구호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는것만큼 민주주의기발아래 단결하라로 바꾸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조선이 나아갈 길은 진보적민주주의의 길이며 해방된 조국땅에 세워야 할 국가는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이라고, 이것이 바로 우리의 건국로선이며 인민대중이 념원하는 길이라고 가르치시였다.

민주주의는 로동계급과 농민대중을 비롯하여 민족의 원쑤들을 제외한 각계각층 인민들의 한결같은 념원이고 요구였다. 로동계급과 농민대중은 지난날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초보적인 자유와 권리마저 빼앗기고 가장 가혹한 억압과 착취를 받았으며 따라서 그들은 민주주의혁명에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지고있었다. 지식인들과 청년학생들은 식민지통치밑에서 민족적억압과 멸시를 받아온것으로 하여 민족문화와 민족교육을 발전시킬수 있는 민주주의의 길을 적극 요구하고있었다. 또한 소상인, 수공업자들은 물론 량심적인 민족자본가들도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기업활동의 자유를 억제당하고 일본독점자본에 의하여 경제적으로 파산당하여왔기때문에 기업의 발전을 보장할수 있는 새 민주조선을 건설할것을 희망하고있었다. 애국적인 종교인들도 민족적독립을 이룩하지 않고서는 신앙의 자유가 없다는것을 통절히 느끼였기에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을 희망하고있었다.

이처럼 당시 광범한 대중은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오래동안 자유와 권리를 심히 억제당하여온 처지의 공통성으로 하여 민주주의에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지고있었다.

이렇게 인민들속에 깊이 들어가시여 조국의 실정과 인민들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는 과정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주주의기발이야말로 인민의 힘을 하나로 묶어 자주적인 새 민주조선을 훌륭히 건설할수 있게 하는 위대한 기치이라는것을 깊이 확신하시였다.

그런데 당시까지만 하여도 사람들속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하였다. 사람들은 흔히 민주주의라고 하면 사회주의나라인 쏘련식민주주의나 자본주의나라인 미국식《민주주의》만 있는줄 알았고 그래서 조선이 나아갈 길도 이 두 길중의 하나일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나고있었다.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조선이 나아갈 민주주의는 어떠한것인가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심어주어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3일 평양로농정치학교 학생들앞에서 하신 강의 《진보적민주주의에 대하여》에서 조선이 나아갈 참다운 민주주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이날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선이 나아갈 길은 참다운 민주주의인 진보적민주주의의 길입니다. 이 길만이 우리 인민에게 자유와 권리를 주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하여줄수 있으며 나라의 완전자주독립을 보장하여줄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조선인민은 말로써가 아니라 실지로 인민대중이 나라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진보적민주주의를 요구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진보적민주주의의 길만이 3천만 조선인민이 념원하는 길이며 조국의 륭성발전과 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약속하는 길이라는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그러므로 진보적민주주의에 기초한 자주독립국가,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워야 하며 민주주의기발아래 각계각층의 애국적인민들을 묶어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러기 위하여서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고 그 운동을 강화발전시켜 결국 통일적이며 자주적인 정권, 참다운 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유미자본주의국가의 《민주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사회주의국가의 민주주의를 그대로 본딴것도 아니라고 하시면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에 놓여있는 조선의 현실에 가장 알맞는 새형의 민주주의라는것을 밝혀주시고나서 그 특징을 분석하시였다.

우선 자주의 특징을 가진다. 자주의 특징을 가진 민주주의의 본질적요구를 구현한 독립국가는 남에게 예속되는것을 반대할뿐아니라 남을 예속시키는것도 반대한다. 앞으로 세워질 민주주의국가는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국가, 민족들과는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서 외교관계를 맺으며 친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노력할것이다.

진보적민주주의는 또한 련합의 특징을 가진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계급, 하나의 정당, 하나의 단체, 하나의 종교만을 위한것이 아니라 광범한 인민대중을 위한 민주주의이기때문에 이 민주주의는 반제적이며 애국적인 모든 계급, 정당, 단체들이 망라되는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며 각계각층의 광범한 애국적인민들이 련합할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모든 애국력량의 련합을 요구하면서도 각계각층의 독자성을 보장한다.

인민대중에게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것은 진보적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부르죠아민주주의와 달리 무권리와 불평등을 반대하고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인민들에게 똑같은 권리를 보장해주며 그것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게 한다.

진보적민주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부강한 국가의 건설을 지향하는바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켜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고 인민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보장하는것이다.

진보적민주주의는 또한 일제잔재와 봉건잔재를 쓸어버리는 혁명을 지향하고 인민들사이의 화목과 단합을 도모하며 나라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를 지향한다.

자주, 련합, 자유와 평등, 부강, 혁명, 평화를 기본내용으로 하는 진보적민주주의에 관한 리론은 제국주의압박에서 해방된 광범한 인민대중의 의사와 념원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 참다운 인민적정치방식을 밝힌 독창적인 리론이였다.

강의에 참가한 학생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면서 오늘같이 훌륭한 강의는 처음 들어보았다고, 우리 앞길을 등대처럼 밝혀주는 강의였다고 자기들의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독창적으로 창조하신 진보적민주주의는 조선사람들의 처지와 지향에 알맞는 조선식민주주의였고 옳바른 단결의 기치였다. 이 단결의 기치가 마련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진보적민주주의길을 따라 새 사회건설에 떨쳐나설수 있게 되였으며 그 기치밑에 누구나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칠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로부터 며칠후에 있은 조국개선을 환영하는 평양시환영군중대회에서 하신 《모든 힘을 새 민주조선건설을 위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에서 조국해방의 세기적숙망을 실현한 전체 조선인민앞에는 민주주의완전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할 력사적과업이 나서고있으며 이 거창한 건국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서는 그 주인인 조선인민이 단결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조선민족이 민주주의 새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힘을 합칠 때는 왔습니다. 각계각층 인민들은 누구나 다 애국적열성을 발휘하여 새 조선건설에 떨쳐나서야 합니다.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하며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민주를 사랑하는 전민족이 굳게 단결하여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나가야 하겠습니다.》라고 전체 조선인민앞에 민주주의기치아래 모든 애국력량이 뭉칠데 대하여 호소하시였다.

이렇듯 진보적민주주의는 해방이후 새 조국건설시기 조선인민의 기치로 되였다.

진보적민주주의는 그 정당성으로 하여 해방후 각계각층 인민대중의 열렬한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수백만 애국적민주력량을 단결의 대하에 합류하게 하였다.

 

 

4

□ 마치와 낫과 붓을 새겨넣은 당기

 

새 건국열의를 활화산처럼 폭발시키고있는 인민대중앞에 단결의 기치라 할수 있는 민주주의기발을 제시한것과 더불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것은 광범한 애국력량을 조직적으로 결속하는것이였다. 구체적으로 근로대중의 조직적핵심대오를 마련하고 그것을 모체로 하여 광범한 인민대중의 조직적결속을 이룩해야 하였다. 여기서 전위조직으로서의 위치에 놓이는 로동계급의 당건설을 앞세우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령도계급인 로동계급의 당이 있어야 각계각층의 광범한 대중을 정치사상적으로 각성시키고 조직적으로 묶어세워 민주력량을 튼튼히 꾸릴수 있었고 그들을 조직동원하여 새 민주조선건설을 성과적으로 밀고나갈수 있었다.

해방후 조성된 정치정세와 대세의 흐름을 예리하게 꿰뚫어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10일 항일무장투쟁시기에 키우신 공산주의자들을 핵심으로 하고 국내의 여러 지방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을 망라하여 북조선공산당을 창건하시였다.

인민정권건설과 민주개혁을 옳게 령도해오는 과정에 공산당은 세련되고 원숙한 전투적력량으로 강화되였다.

공산당은 새 민주조선을 건설하는 투쟁속에서 단련되고 육성된 로동자, 농민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창건후 불과 10개월동안에 북반부에서만도 27만여명의 당원들을 가지게 되였고 모든 지방과 주요공장, 기업소들에 1만 2 000여개의 당세포들이 활동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건설에서 이룩한 이러한 승리를 공고히 하며 당을 보다 강력한 대중적당으로 발전시킬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당시 국내에는 공산당과 함께 근로자들을 망라하고있는 여러 정당들이 존재하고있었다. 북반부에는 신민당이 있었다. 1946년 2월에 조직된 신민당은 소자산계층의 울타리를 벗어나 로동자, 빈농민들속에까지 그 세력을 넓혀나가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근로대중의 통일단결에 지장을 줄수 있는 조건으로 되였다.

근로인민의 대중적당을 내오는것은 변화된 사회계급관계와 조성된 정세의 요구이기도 하였다. 당시 북조선에서는 인민정권의 기능을 수행하는 림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고 민주개혁이 실시되는 과정에 로동계급과 농민, 지식인들의 동맹이 강화되였으며 그들이 새 민주조선을 건설하는데서 리해관계를 같이하게 되였다. 따라서 공산당과 신민당이 따로 존재하는것은 무의미하였다.

한편 공산당의 당면투쟁강령과 다른 근로자당들의 강령이 대체로 일치한것은 근로인민의 대중적당을 내올수 있는 기초로 되였다.

이 모든것을 깊이 통찰하신데 기초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6월 남북조선공산당 책임일군협의회에서 근로인민의 대중적당을 창립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근로인민의 대중적당창립방침은 공산당을 다른 근로자당과 합쳐 단일한 로동당을 창립하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합당방침을 제시하시면서 합당사업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근로대중의 대중적당을 창립하는 사업은 공산당과 다른 근로자당들과의 합동을 실현하는 문제인것만큼 공산당의 의사를 다른 정당들에 강요하려 해서는 안되며 모든 문제를 신중히 처리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공산당과 신민당이 합당하는 문제가 제기되자 반동들과 종파분자들은 그것을 파괴하려고 음흉하게 책동하였다.

이자들은 합당사업에 혼란을 조성하기 위하여 《합당은 공산주의자들의 일종의 술책》이라느니, 《합당은 잠시적인것이며 일정한 시기에 가서는 반드시 분리될것이다.》, 《공산당은 신민당간부를 불신임한다.》, 당의 《소자산계급화》요, 《우경화》요 하면서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자들의 책동을 제때에 폭로분쇄하시면서 합당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합당사업을 두 당의 광범한 당원대중의 의사에 따라 그들자신이 수행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당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당원대중이다. 로동계급의 당과 소자산계급의 당을 합당하는것과 같은 전례없는 대사를 두 당의 당원대중의 참가없이 상층부의 몇몇 사람만의 의사와 힘으로 할수 없다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합당사업을 광범한 당원대중자신의 사업으로 전환시킬것을 결심하시고 무엇보다먼저 공산당원들과 신민당원들속에서 합당의 필요성과 대중적당창건방침의 정당성, 그 의의를 정확히 인식시키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7월 신민당의 책임일군들을 만나시여 근로대중의 분렬을 막고 혁명력량의 결정적우세를 보장하려면 공산당과 다른 근로자당이 합당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설득력있게 해설해주시였다.

특히 합당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명확한 해답을 주시였다.

제기된 문제들가운데는 북조선에 여러개의 정당이 있는데 왜 신민당과만 합치는가, 합칠바에야 공산당이 청우당이나 민주당과도 합칠수 있지 않는가 하는 질문도 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청우당이나 민주당과 합치자는 견해는 우당들의 계급적성격을 똑똑히 알지 못한데로부터 나온것이라고 하시면서 일반적으로 당이란 계급의 선봉부대이다, 이제 우리가 창립하려는 당은 로동자, 농민, 지식인들의 리익을 대표하며 옹호하는 로동계급의 선봉부대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자산계급의 정당이고 청우당은 종교인당이다, 그러니 만약 우리 당이 민주당이나 청우당과 합친다면 근로대중의 전위부대라기보다 그 무슨 조합과 같은것으로 될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당, 청우당과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통하여 단결하여야 한다, 합당한다고 하여 조합식으로 다 합치자는것이 아니라고 일깨워주시였다.

당의 명칭을 왜 로동당이라고 부르는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였다.

수령님께서는 로동자들은 물론 농민도 로동을 하며 사무원도 정신로동을 하고있다, 우리가 두 당을 합당하여 창립하게 될 당은 다같이 로동에 참가하는 로동자, 농민은 물론 지식인들의 선진분자들의 조직인것만큼 그 명칭을 로동당이라고 하자는것이다, 근로당, 로력당이라고 할수 있으나 로동당이라고 하는것이 제일 적당하다고 말씀하시였다.

이것은 두 당의 당원대중의 절대적지지와 찬동을 받았으며 그들을 합당사업에 불러일으키는데서 커다란 추동력으로 되였다.

특히 해방후 공산당이 실시한 제반 민주개혁의 혜택을 실생활을 통하여 체험한 근로대중은 공산당을 자신들의 리익의 대표자, 옹호자로 신뢰하며 합당을 적극 지지하였다.

신민당에서는 7월 21일 합당을 지지하는 립장을 공식표명하고 공산당에 합당제의서를 보내왔으며 공산당에서는 그에 대한 회답서한을 보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합당사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도 당원대중의 의사에 따라 그들자신이 해결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7월 29일에 열린 북조선공산당 및 조선신민당 중앙위원회 확대련석회의에서 하신 보고 《오늘의 정치정세와 우리들의 새로운 임무》에서 합당을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면서 로동당을 창립함에 있어서 세포로부터 도당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우로 올라가면서 두 당 각급 당조직들이 련석회의를 열고 로동당 각급 조직을 내오도록 하시였다.

련석회의가 있은 다음 곧 두 당의 각급 조직들에서는 당강령초안과 규약초안에 대한 토의사업이 벌어졌으며 합당을 위한 두 당 합동세포총회들이 진행되였다. 세포회의들은 서로 포옹하고 서로 리해하며 서로 믿는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다. 합동세포총회가 성과적으로 결속된데 기초하여 합당을 위한 시, 군, 도당대표회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였으며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로동당 각급 지방조직들이 나오게 되였다. 그리고 각 시, 군, 도당대표회들에서는 당창립대회에 파견할 자기 대표들을 선출하였다.

지방당조직들의 합동에 기초하여 1946년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는 력사적인 북조선로동당창립대회가 열리였다.

이처럼 합당사업은 두 당 전체 당원들의 높은 열의속에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이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새로 내오는 근로인민의 대중적당, 로동당이 어떤 당인가를 우리 인민들에게 정확히 인식시키며 세계인민들이 다 알도록 하기 위하여 당마크를 제정할데 대한 과업과 그 도안작성방향을 밝혀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당마크는 우리 당의 고유한 성격을 뚜렷이 나타낼수 있게 특색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당마크에는 반드시 로동계급과 농민과 근로인테리가 함께 형상되여야 한다, 그래야 로동당이 로동계급과 농민, 근로인테리의 선진분자들을 망라한 우리 나라 근로인민대중의 통일적당이라는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줄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당마크에 형상할 로동계급은 마치로 표시하고 농민은 낫으로 표시하며 근로인테리는 펜으로 표시할수 있겠으나 우리 식으로 붓을 그리는것이 더 좋겠다고 하시였다.

그런데 맑스주의를 잘 안다고 하던 교조주의자들은 당마크에 지식인을 상징하는 붓을 그려넣는것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지식인을 사회의 간층으로 보는 기성의 관점과 그들의 대부분이 유산계급의 출신이고 지난날 일제에게 복무했다는데로부터 지식인들을 무턱대고 배척하였다. 종파분자들이 두 당의 합당을 두고 당을 《소자산계급화》하는것이라고 떠든것도 주로 지식인들을 당에 받아들이게 되는것과 관련되여있었다. 합당사업에서도 이 문제는 첨예한 문제로 제기되였었다.

수령님께서는 사회발전에서 지식인들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 식민지지식인들이 가지게 되는 반제혁명성과 애국애족의 사상을 깊이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일찌기 항일투쟁의 나날 지식인을 반제민족해방력량의 하나로 규정하신 그대로 변함없이 그들을 믿으시고 당의 구성성분으로 내세워주시였으며 당마크에도 반영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당마크에 붓을 새기는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지식인이 없이는 혁명도 할수 없고 나라도 건설할수 없다, 낡은 사회를 때려부시고 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지식인이 필요하고 새 사회를 건설하는데서도 지식인이 있어야 한다, 지식과 기술이 있는 지식인들과 손을 잡아야 혁명도 하고 건설도 할수 있지 않는가고 말씀해주시였다.

지식인을 당의 구성성분으로 규정하시던 나날에 대하여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후날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다.

《내가 해방후에 인테리를 혁명의 동력으로 내세우자고 주장한것은 그때 식민지였던 우리 나라 인테리들이 일제의 민족적인 탄압과 멸시를 받아온 사람들이므로 혁명성이 있다고 생각하였기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인테리들에게 혁명성만 있으면 다른것은 문제될것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식인을 당의 구성성분으로 내세워주시고 그것을 상징하는 로동당의 마크를 제정하도록 하실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치신 로고와 지식인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믿음은 오늘도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며 우리 당 력사를 빛내여주고있다.

그리하여 조선로동당은 지식인을 당의 구성성분으로 포함시키는 첫 당으로 되였고 당마크에 로동계급을 상징하는 마치와 농민을 상징하는 낫과 함께 지식인을 상징하는 붓을 새겨넣은 유일한 당으로 되였다. 이것은 사실상 로동계급의 당건설력사에서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일로서 지식인의 사회적처지에서 일어난 획기적인 사변이 아닐수 없었다.

로동계급의 당건설력사를 더듬어보면 조선로동당보다 력사가 오랜 당도 있었고 당원수가 많은 당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의 로동계급의 당도 지식인을 당의 구성성분으로 규정한 당은 없었다. 이전 쏘련공산당은 1 800만명의 당원가운데서 로동자는 43.4%, 농민은 12.8%였는데 지식인은 43.8%로서 로동자보다 0.4%가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쏘련당의 력사에서 지식인이 당의 구성성분으로 규정된적은 없었다. 다른 당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마치와 낫과 함께 붓을 새긴 조선로동당의 기발은 력사상 처음으로 되는 자주시대 로동계급의 당의 빛나는 상징이며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인민대중의 단결의 기치, 승리의 기치이다.

력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로동계급과 함께 농민과 지식인을 당의 구성성분으로 규정하시고 당을 그 선진분자들을 망라하는 근로대중의 통일적당으로 강화발전시키신것이 얼마나 현명한 조치였는가 하는것을 웅변으로 실증하여주었다.

로동자, 농민, 지식인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민들은 민족의 자주독립과 부강번영의 앞날은 로동당의 향도에 의해서만 밝아올수 있다는것을 굳게 믿게 되였고 자신과 후대들의 운명을 당에 의탁하고 그 두리에 한덩어리로 굳게 뭉치였다.

합당후 1년사이에 당원수는 36만 6 000여명으로부터 68만명으로 늘어났고 당세포수는 1만 2 000여개로부터 2만 8 000여개로 장성하였으며 모든 공장, 기업소, 기관들과 농촌, 가두들에 당세포가, 모든 면에 면당위원회가 각각 조직되였다. 전쟁전인 1950년 6월에 이르러 당원수는 85만 6 800여명으로 장성하였다.

조선로동당은 그 창건자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주체의 당이였고 새 조국건설의 전반에 걸쳐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실현하는 정치적령도조직이였으며 전체 조선인민의 통일단결을 담보하는 핵심적력량이였다.

 

 

5

□ 각계각층의 광범한 대중을 조직된 력량으로

 

새 조국건설에서 나서는 어렵고도 무거운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자면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의 조직적결속을 이룩하여야 하였다.

해방직후 나라의 여기저기에서는 이러저러한 정치세력들이 나타나 저마끔 대중을 전취하기에 급급하고있었다. 같은 계층안에서도 여러 갈래의 사회단체들이 조직되여 세력권을 다투는 편향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광범한 군중을 조직적으로 결속시키자면 각계각층 군중의 서로 다른 리해관계와 민주주의에 대한 공통된 지향을 밀접히 결합시킬수 있는 합리적인 방식에 의거하여야 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애국적민주력량의 분렬을 막고 광범한 군중을 굳게 결속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계층별 또는 직업별로 되는 단일한 민주주의적대중단체들을 조직할것을 밝히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각계각층의 인민대중을 계층별로 또는 직업별로 유일한 조직체계에 따라 사회단체들에 묶어세워야 합니다. 해방후 각 지방에 산만하게 조직된 사회단체들을 개편정비하여 청년학생들은 청년동맹에, 녀성들은 녀성동맹에, 로동자들은 로동조합에, 농민들은 농민조합에 다 망라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군중을 계급, 계층별, 직업별로 묶어세우는것은 각계각층의 군중을 그들의 리해관계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전반적으로 폭넓게 결속하고 유일한 조직체계에 통일적으로 묶어세울수 있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였다. 그것은 또한 각당, 각파간의 대중전취를 위한 경쟁을 없애고 대중의 분렬을 막으며 민주주의기발아래 군중을 하나로 묶어세우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 정치세력들이 저마끔 대중을 전취하려고 시도하고있는 실태와 각계각층의 리해관계와 동향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에 기초하시여 모든 대중단체결성사업을 동시에 벌려나가도록 하시였다.

이처럼 여러 대중단체들의 결성방향과 방도를 제시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사회건설을 위한 거창한 투쟁을 조직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비상한 전개력과 능숙한 조직적수완으로 대중단체결성을 위한 준비사업을 정력적으로 추진시켜나가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8일에는 평양시안의 로동조합일군들을 만나시여 직업동맹건설의 지침을 밝혀주시고 그 다음날에는 강선의 로동계급을 찾으시여 로동조합일군들에게 선진적인 로동자들을 로동조합에 받아들여 조직을 확대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으며 11월 9일에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산업부장 및 로동조합장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각 지방에 조직되여 활동하고있는 로동조합조직들에 토대하여 중앙으로부터 말단단위에 이르기까지 전일적인 조직체계를 가진 로동조합총련맹을 시급히 내오기 위한 사업을 다그칠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주체34(1945)년 9월말 녀성일군을 만나시여 통일적인 민주주의적녀성조직을 내올데 대하여 가르쳐주신 수령님께서는 10월초 녀성동맹창립조직위원회를 무어주시고 10월 25일에는 평양시 녀성일군들앞에서 《현 국제국내정세와 녀성들의 과업》이라는 강연을 하시면서 그들을 대중적인 민주주의녀성조직을 내오기 위한 사업에 떨쳐나서도록 고무추동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주체34(1945)년 10월에 행정구역단위로 농민조합련맹결성준비위원회를 내오고 농민조직들을 개편정비하도록 하시였고 주체35(1946)년 1월 6일 북조선농민조합련맹결성준비위원회 일군 및 각 도 농민조합대표협의회에서 하신 연설 《북조선농민조합련맹결성대회준비를 잘할데 대하여》에서는 농민조합련맹을 결성할수 있는 준비를 적극 추진시켜나가도록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민주주의기발아래 모든 애국청년들을 묶어세우는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새 조국건설의 첫 시기 청년운동내부는 매우 복잡하였다. 청년들은 서로 계급적출신이 달랐고 정치적동향도 각이하였다. 이로부터 그들은 제가끔 서로 다른 여러가지 청년단체들에 망라되여있었다.

비록 공청조직들이 청년대중을 묶어세우고 청년운동을 발전시키는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있었으나 어디까지나 공산주의사상을 신봉하는 무산청년들만이 들어갈수 있는 청년조직이였던것만큼 광범한 각계각층의 청년들을 묶어세우는데서는 일정한 제한성이 있었다.

청년운동의 복잡한 형편을 낱낱이 헤아려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청을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애국적청년들은 민주주의기발아래 단결하라!》는 구호밑에 각계각층의 청년들을 망라하는 대중적인 청년조직인 민주청년동맹을 창립할데 대한 독창적인 로선을 제시하시고 지체없이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청년들을 불러일으키시였다.

청년일군들의 한결같은 념원에 의하여 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신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28~29일에는 민주청년열성자대회를 소집하시고 《민주청년동맹을 조직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결론을 하신데 이어 회의에서 전체 조선청년들에게 보내는 선언서를 작성발표하도록 하시였다.

선언서는 청년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신국가건설에 가장 중견이 될 조선청년남녀들이여! …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가를 자각하라! 우리는 총력량을 집중하여 전조선인민의 복리를 보장할수 있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하루바삐 건설해야 할것이다.

화려한 삼천리강산의 주인인 조선청년남녀들이여! 세계에 자랑할만 한 민주주의 새 나라를 건설하자! … 민족단결을 방해하고 분렬작용을 꾀하는 일체의 반동분자들과 용감하게 싸우자! 피끓는 이 땅의 청년들이여! 오라! 모이라! 단결은 힘이다. 그리하여 그 단결된 힘과 끓는 정열로써 이 거룩한 사업을 완수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나하나의 문구에 이르기까지 가르쳐주시고 몸소 가필하여주신 선언서는 각계각층 청년들의 요구와 리해관계를 정확히 반영한것으로 하여 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공청을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민주청년동맹을 조직하기 위한 사업은 종파분자들의 분렬책동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동반하였다.

종파분자들은 이 로선을 《청년운동의 퇴보》니, 《우경화》니 하면서 민주청년동맹의 결성을 집요하게 방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파분자들의 이러한 분렬책동을 신랄하게 폭로비판하시며 민청조직로선을 완강하게 관철해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때로는 몸소 여러 지방에 나가시여 민청단체결성대회를 현지에서 지도해주시고 때로는 민청조직결성에로 청년학생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강연에도 직접 출연하시였으며 때로는 민청단체결성에서 나타나는 편향들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였다.

민청창립을 위한 위대한 수령님의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령도의 나날은 청년들에 대한 크나큰 믿음과 사랑으로 이어진 가슴뜨거운 나날이였다.

바로 이 력사의 나날에 평양시민청청사를 찾으시여 청년들과 청년일군들에게 돌려주신 사랑의 이야기도 꽃펴났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깊은 밤 평양시민청청사에 도착하신 수령님께서는 찬눈을 맞으시며 청사의 이모저모를 살피시다가 청년들이란 밝고 환하고 명랑한것을 좋아하는데 청년기관의 현관전등이 이렇게 어두워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바꾸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정문을 열고 들어가시다가 문이 비좁은것을 헤아리시고는 희망과 포부가 큰 청년들이 앞가슴을 쩍 벌리고 네활개를 치며 들어갈수 있게 문을 넓혀주어야 하겠다고 일군들을 일깨워주시였다. 그 누구에게나 평범하게 생각되는 하나의 전등, 하나의 문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의 특성에 맞게 해주시려는  수령님의 사랑은 진정 청년들의 위대한 어버이, 위대한 스승만이 안겨줄수 있는 숭고한 사랑이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부관이 밤늦도록 일하다가 피곤에 몰려 책상우에 엎디여 쪽잠이 든 한 청년일군을 깨우려 하자 그것을 만류하시고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시여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덮어주시였다.

미래의 기둥을 감싸주는 그이의 사랑의 손길은 이처럼 따사롭고 위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랑과 믿음으로 청년들을 품어주고 이끌어주셨기에 새 조국건설의 첫 시기 그처럼 복잡한 환경속에서도 각계각층의 청년들을 단일한 조직에 하나의 거대한 민주력량으로 결속시키는 기적이 일어날수 있었다.

1946년 1월 17일 창립당시 민청은 벌써 25만명의 청년학생들을 망라한 대중적정치조직으로 되였으며 창립이후 불과 몇달후에는 80만명의 대부대로 장성강화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뜨거운 사랑과 넓은 포옹력,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각계각층의 대중을 유일적으로 망라한 대중단체들이 련이어 결성되게 되였다.

1945년 11월 30일 평양에서는 북조선로동조합총련맹결성대회가 열리였다.

대회에서는 북조선의 모든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을 망라한 853개의 로동조합분회와 14개의 산별조직들을 묶어세운 북조선로동조합총련맹을 결성하였다.

1946년 1월 31일에는 북조선농민조합련맹이 결성되고 1945년 11월 18일에는 북조선민주녀성동맹이 창립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주주의적사회단체들을 조직할것을 발기하시고 이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여 북조선공업기술총련맹, 북조선예술총련맹, 북조선기자동맹, 북조선불교도련맹, 북조선그리스도교련맹 등 사회단체들도 조직하시였다.

이처럼 민주주의기발아래 대중적인 사회단체들이 조직됨으로써 나라가 해방된지 불과 몇개월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수백만의 각계각층의 애국적인민들이 굳게 뭉쳐 새 조선건설의 강력한 민주력량을 이루게 되였다.

이 세상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제국주의의 식민지기반에서 갓 벗어나 그처럼 짧은 기간에 단일한 대중단체들을 조직한 나라는 조선밖에 없다.

이로써 새 조국건설은 인민들자신의 위업으로 되였으며 조직화된 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에 받들려 인민의 나라 민주조선이 탄생의 고고성을 힘있게 터뜨리며 승리와 전진의 닻을 올렸다.

 

 

6

□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애국과 민주를 지향하는 정치세력들을 어떻게 묶어세우는가 하는것은 새 조선건설을 위한 튼튼한 민주력량을 마련하는데서 원칙적문제로 나섰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문제는 중간세력과의 련합을 어떻게 실현하는가 하는것이였다.

소자산계급과 종교인, 민족자본가를 비롯한 중간세력을 누가 쟁취하는가 하는것은 민주세력과 반민주세력의 관계에서 누가 결정적우세를 차지하는가를 좌우하는 심각한 정치적문제였다.

당시 미제의 사촉을 받은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비롯한 반동분자들은 각양각색의 반동단체들을 조작하여 반민주세력을 규합하는 한편 중간세력들을 끌어당기기 위하여 교활하게 책동하고있었다.

게다가 종파분자들은 《모든 자산계급을 타도해야 한다.》고 떠들면서 중간세력들을 덮어놓고 배척하였으며 이것으로 하여 그들이 반동의 편으로 기울어질수 있는 위험이 조성되고있었다.

이자들은 악질적인 친일주구들의 이름과 함께 포섭해야 할 중간세력들의 이름도 나란히 놓고 거기에 《무산혁명에서 타도해야 할 대상》이라고 단정한 《공시문》이라는것을 도처에 내붙이는 망동을 부렸다.

그들은 사람들이 량심적인 기업가를 만나면 《부르죠아》와 손을 잡는다고 비방하였고 종교인들을 만나면 《마약중독자》가 되고싶은가고 시비해나서면서 중간세력들을 고립시키고 심지어 적대시하였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지방들에서는 일군들과 군중들이 민족자본가와 종교인들과 접촉하는것조차 꺼려하며 그들을 외면하고 따돌리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리하여 중간세력들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동서남북을 휘둘러보며 동요하고있었다.

조성된 사태에서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포섭하여 민주의 편에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을 잘하지 않는다면 민주력량의 분렬을 초래할수 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성된 사태의 엄중성과 이 시기 중간세력의 정치사상적동향을 깊이 통찰하시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적발전에 리해관계를 가지는 모든 정치세력들의 단합을 실현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13일 각 도당 책임일군들앞에서 하신 연설 《새 조선건설과 민족통일전선에 대하여》와 이해 12월 22일 민주청년단체가 주최한 정치강좌에서 하신 강의 《민족통일전선문제에 대하여》를 비롯한 여러 로작들에서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로선과 통일전선운동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 그 형태 등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밝히시였다.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로선의 근본사상은 나라가 해방된 조건에서 통일전선운동을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요구하는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들의 공개적인 련합전선의 형태로 진행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이 로선은 그이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내놓으신 나라의 독립을 지향하는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을 하나로 묶어세울데 대한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과 그 실현의 귀중한 경험에 기초한것이였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애국, 애족, 애민의 숭고한 사상을 구현하여 비록 사상과 리념, 정견은 서로 다르지만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에 리해관계를 가지는 각당, 각파가 통일전선이라는 큰 배를 같이 타고 힘을 합쳐 새 민주조선을 건설해나갈수 있게 하는 탁월한 로선이였으며 수령님의 고결한 인간애와 인덕정치, 광폭정치의 리념을 체현하고있는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믿음의 결정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성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우당들과의 사업에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다.

해방직후 공산당이 창건되고 그 력량이 장성강화되여가고있을 때 소자산계급, 민족자본가, 종교인 등 중간세력들도 제각기 자기들의 독자적인 정치조직을 가지려고 하면서 점차 조직화되는 방향으로 나가고있었다.

결과 1945년 11월에 민주당이, 1946년 2월에는 천도교청우당이 조직되였다.

민주당은 소자산계급, 기업가, 상인, 부농, 소시민, 기타 성분들로 구성되여있었으며 여기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많이 망라되여있었다.

천도교청우당은 천도교인들의 정당으로 결성되였는데 그 절대다수가 농민들이였다.

그들이 내세운 강령으로 보나 그 구성으로 보나 응당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 인입해야 할 정당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당들과의 통일전선을 형성함에 있어서 대중단체들이 계급별, 계층별로 단일화되여 하층의 통일이 이미 실현되고있는 조건에서 이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상층통일을 이룩하는데 힘을 기울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여기에서 우선 힘을 넣어야 할 대상이 민족주의자들과 종교인들이라고 보시였다.

민족주의자들은 우당안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고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대부분은 독립국가건설을 바라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외세 특히 미국의 도움으로 이룩해보려고 그릇되게 생각하면서 공산당과의 합작을 반대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누구도 지닐수 없었던 높은 권위와 넓은 도량, 비상한 감화력으로 각이한 정치적견해를 가진 우당안의 각계각층 사람들을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형성에로 이끌어나가시였다.

주체34(1945)년 11월 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민족주의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만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국내외에서 반일운동을 벌려온 그들의 공로를 치하하신 다음 나라가 해방된 오늘 새 민주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우리가 어떤 건국자세를 가져야 하겠는가고 문제를 제기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지금 일부 사람들은 남조선에 상륙한 미군에 기대를 걸고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의 력사를 보아도 그렇고 오늘 남조선에 상륙한 미군의 소행을 보아도 그렇고 어느모로 보나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져서는 안된다, 만일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미군의 방조로 새 나라를 세우려 한다면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수 없을뿐아니라 또다시 과거와 같은 망국노의 처지에 빠지게 될것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힘으로 건국해보려는 그릇된 태도를 철저히 반대하고 반드시 자체의 힘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인민이 자기의 힘으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모두가 민주주의기발아래 굳게 뭉쳐야 한다고 하시면서 민족주의자들이 참말로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생각한다면 공산주의자들과 손잡고 합작해나가야 한다고 사리를 밝혀가시며 말씀하시였다.

민족주의자들은 너무나도 지당한 말씀이여서 자기들이 몽매하여 대의를 보지 못하였다고 뉘우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받들어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보람찬 사업에 적극 떨쳐나설것을 다짐하였다.

통일전선을 이룩하는데서 민족주의자들 못지 않게 중요한 대상은 우당의 구성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던 종교인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쁘신 가운데서도 종교계의 진보적인 인사들을 자주 만나시여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산당의 종교정책과 통일전선정책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그들에게 《하느님》을 믿어도 남의 나라 《하느님》이 아니라 조선의 《하느님》을 믿어야 하며 숭미사상을 퍼뜨리는 신자가 될것이 아니라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투쟁하는 애국적인 종교인이 되라고 일깨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일군들이 종교인들과 접촉하기 힘들다고 하여 그들과의 사업을 포기하거나 오랜 기간 굳어진 그들의 신앙심을 떼여버리려고 조급하게 서두르는 편향을 다같이 극복하고 애국적인 종교인들을 다 포섭하여 통일전선에 인입시키도록 해주시였다.

한생을 《하느님》만을 믿고 살아온 종교인들이 김일성장군님을 하늘처럼 믿고 따르며 새 민주조선건설에 참가하고 애국적인 종교인들이 나라의 국사를 론의하는 인민의 대표가 되고 정부의 한 성원이 되여 건국위업에 이바지할수 있은것은 그이의 옳바른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정책이 있었기때문이다.

해방후 애국적민주력량의 단합이 실현되던 력사의 갈피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종교인들을 얼마나 넓은 도량과 뜨거운 사랑으로 대해주시고 종교인들이 수령님을 얼마나 진심으로 믿고 따랐는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실이 새겨져있다.

1946년도의 어느날 밤 12시가 지나서였다. 당시 천도교청우당 당수였던 김달현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청사로 찾아와 위대한 수령님과의 면담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수령님의 집무실에 들어온 그는 선뜻 찾아온 사연을 말씀드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외람된 부탁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에게 산삼이나 록용 같은 보약을 좀 구해주실수 없겠는가고 해서 왔다는것이였다.

뜻밖의 그의 청탁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선생이 늘 건강자랑을 하시더니 오늘은 어떻게 되여 보약을 갑자기 찾는가고 친절히 물으시였다. 그러자 그는 스스럼없이 얼마전에 젊은 녀자를 골라 재취하였는데 여간 천대가 심하지 않다고 하면서 《… 장군님,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씀올리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그가 올리는 청을 들으시고는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그렇다면 도와주자고 하시고 인차 몸소 산삼과 록용을 구하여 그에게 보내주시였다.

그때로부터 한해가 지난 어느날 김달현은 다시 수령님을 찾아왔다. 그는 장군님덕으로 70나이에 생남을 했다고 기뻐하면서 아들의 백날잔치에 그이께서 꼭 참석해주실것을 간청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선생이 생남한것은 참 대단한 경사라고 하시면서 그에게 초청을 쾌히 수락한다고 따뜻한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복잡한 사업들을 조직령도하시느라 불철주야로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계시였지만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그의 집을 찾으시여 생남한 부인을 따뜻이 축하해주시였다.

바로 이것이 위대한 수령님과 종교인들사이에 맺어진 인간적뉴대의 축도였고 새 조국건설의 첫 기슭에서 종교인들과의 통일전선을 곡절없이 순조롭게 이룩할수 있게 한 비결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주민구성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있고 또 주민들속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고있던 민족주의자들과 종교인들과의 사업에 큰 힘을 넣어 그들을 이끌어주심으로써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빛나게 실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당들과의 사업을 잘하도록 하신 기초우에서 새 조국건설을 위한 실천투쟁에 우당들을 적극 인입하게 하시였으며 그 과정에 우당들이 단결과 협조를 더욱 긴밀히 해나가도록 하시였다.

민주주의림시정부수립과 관련하여 우당들이 공산당과 일치한 보조를 취하면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결성하는 사업에 공동으로 참가한것은 새 조국건설을 위한 실천투쟁속에서 우당과의 합작을 실현한 첫 정치적성과로 된다.

1946년초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들은 민주주의림시정부수립에 대하여 의견일치를 보고 북조선중앙정권기관인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결성하는 사업에 공동으로 참가하였다.

토지개혁, 산업국유화를 비롯한 사회의 민주주의적개혁을 실현하는데서도 각당, 각파들과의 협력과 단합이 성과적으로 실현되였다. 이로써 북조선에서는 실제상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이루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성과에 토대하여 주체35(1946)년 7월 22일에 북조선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 대표회의를 여시고 상설적인 통일전선조직인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를 결성하시였다.

뒤이어 도, 시, 군에 민전 각급 위원회들이 조직됨으로써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조직체계를 갖춘 통일전선조직으로 되게 되였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는 각 정당, 사회단체들이 망라되였으며 그 산하에 600여만에 달하는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이 민주주의기치밑에 굳게 뭉치게 되였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이룩됨으로써 지난날 서로 다른 정치적리념과 주의주장을 내세우면서 반목과 대립, 분렬과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던 각당, 각파들이 련합과 단합을 실현하고 광범한 애국적민주력량이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에 힘차게 떨쳐나설수 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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