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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심단결의 대오-조선인민혁명군
□ 사상의 일색화를 실현한 첫 무장대오
조선혁명의 개척기에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마련된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중심으로 한 일심단결은 항일무장대오의 일심단결로 더욱 확대되고 공고화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키우신 전위투사들을 골간으로 하고 선진적인 애국청년들로 창건하신 조선인민혁명군은 우리 인민의 반일민족해방력량의 핵심이고 기둥이였다.
이에 대하여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다.
《우리는 1932년 4월에 첫 혁명적무장력으로서의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고 그것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확대발전시켰으며 바로 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의거하여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의 불길을 높여나가면서 전반적반일민족해방투쟁을 새로운 앙양에로 불러일으켰을뿐아니라 조선인민혁명군의 령도와 무력적담보밑에 당창건의 조직사상적준비도, 조국광복회조직과 통일전선운동의 확대발전도, 전민항쟁준비도 성과적으로 이끌어나갔습니다.
사실에 있어서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항일혁명시기 우리 혁명의 중추적핵심력량이며 정치적향도자이며 민족적리익의 무력적담보자였던 조선인민혁명군은 그대로 우리의 군대이자 당이고 정권이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국가적후방도 없고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오직 인민의 힘밖에 믿을것이 없었던 당시의 조건에서 그 주력인 항일무장대오의 일심단결이자 곧 조선독립이였다.
항일무장대오의 일심단결을 실현하는데서 전대오에 하나의 사상,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의 일색화를 실현하는것이 선차적인 문제였다.
항일무장대오의 단결은 가장 포악한 일제와 사생결단할 각오를 가지고 무장을 잡은 사람들의 단결인것만큼 그 어떤 실무적인 단합으로 되여서는 안되며 오직 사상의지적단결로 되여야 하였다.
당시 교활한 일제는 항일무장대오를 그 요람기에 압살할 목적으로 대대적인 무력을 동원하여 《토벌》에 미쳐날뛰는 한편 대오를 정치사상적으로 와해시키기 위하여 반동적인 정치사상공세를 악랄하게 감행하고있었다.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은 《구체적인 정강을 가지고 민중의 해방과 행복을 약속하며 그 실시를 위하여 노력하고있는 한개의 정치적, 군사적사상단체》이므로 바로 《여기에 무력전만으로의 토벌에만 의거할수 없고 정치전, 사상전에 큰 기대를 가지지 않으면 안될 리유가 있는것이다.》(《만주공산비의 연구》 2 만주국군정부고문부 1937년 243페지)라고 떠벌인것은 그 뚜렷한 증거로 된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항일무장대오안에 사상적일색화를 실현하지 않고서는 무장투쟁도, 대오의 단결도 이룩할수 없었다.
이 모든 실태를 전면적으로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대오의 일심단결을 이룩하는데서 대원들을 주체사상과 조선혁명에 관한 로선으로 무장시키는 사업을 제일차적인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이 사업을 다른 모든 사업에 확고히 앞세워나가시였다.
항일무장투쟁을 주류로 하여 전반적반일민족해방투쟁을 이끌어나가시는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수령님께서는 몸소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 《조선혁명가들은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를 비롯한 수많은 로작들을 집필발표하시여 자력독립의 생명선인 주체사상과 그를 구현한 로선과 방침들을 독창적으로 천명해주시였으며 그것으로 항일유격대의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튼튼히 무장시키고 전대오가 그것을 유일한 지침으로 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학습이 대원들의 정치사상적, 군사적자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뿐아니라 전대오에 주체의 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한 위력한 공간으로 되도록 하시였다.
당시 항일유격대에 입대하는 신입대원들속에는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와 우매화정책의 결과로 우리 글을 모르는 문맹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중에는 글은 몰라도 총이나 잘 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알아야 싸움도 더 잘할수 있고 혁명도 잘할수 있다는 진리를 깨우쳐주시고 손수 우리 글도 배워주시며 그들의 눈을 틔워주시였다. 그리고 간고한 행군과 전투의 여가시간에도 자신의 실천적모범으로 대원들이 학습을 꾸준히 진행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특히 항일무장투쟁의 새로운 전환적시기마다 그리고 유격대입대자들이 많이 늘어날 때마다 대원들이 정치군사적자질을 높이고 새로운 전략전술적방침들을 깊이 체득하여 승리에 대한 확신을 굳게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한달, 지어 몇달씩 집중적인 군정학습을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무송현 동강밀영과 몽강현 마당거우밀영, 무송현 백석탄밀영과 안도현 화라즈밀영, 원동의 훈련기지들에서의 집중적인 군정학습이 그 실례로 된다.
그이께서는 집중적인 군정학습이 진행되는 나날들에 몸소 정치학습제강들을 만들어주시였을뿐아니라 강의에도 출연하시여 대원들의 가슴마다에 자력독립에 관한 사상과 열렬한 조국애, 조선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깊이 심어주시고 항일유격대의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오직 주체사상밖에는 그 어떤 다른 사상도 모르는 참다운 조선의 혁명가로 준비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부대안에 정연한 사상교양체계를 세우고 그것을 적극 운영하여 담화, 해설, 토론회, 노래보급 등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사상교양을 벌려나가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수령님께서는 모든 대원들이 주체사상과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로선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며 그에 기초하여 사상의지적으로 철통같이 뭉치도록 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과 실천적모범을 따라 학습을 첫째가는 의무로 삼고 전투와 행군의 쉴참에나 군무생활의 여가시간에 주체사상과 조선혁명의 로선과 전략전술적방침으로 무장하기 위하여 학습을 중단함이 없이 정력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항일유격대오안에서 주체의 사상체계가 확고히 서고 항일무장대오의 사상의지적통일단결은 반석같이 다져지게 되였다.
항일유격대원들은 어떤 어려운 조건과 환경속에서도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로선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대오의 정치사상적순결성을 고수하기 위하여 견결히 투쟁하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로선을 목숨으로 옹호하신 이야기는 오늘도 인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준다.
어느 한 밀영에서 있은 일이다.
그날 밀영에서는 당시 조성된 정세와 관련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적과업에 대한 학습토론을 진행하고있었다. 토론에 참가한 모든 대원들이 수령님의 연설에 담겨져있는 심오한 사상과 그 정당성, 의의에 대하여 열렬히 토론하면서 그이께서 제시하신 방침을 끝까지 관철하려는 불같은 결의를 다지였다.
그런데 엄광호라는 한 불순이색분자는 얼토당토않은 궤변으로 수령님의 전략전술적방침을 시비하며 자기의 투항주의적견해를 공공연히 주장하였다.
이때 김정숙녀사를 비롯한 투사들은 즉석에서 그자의 그릇된 발언을 타격하였다. 자기의 투항주의적정체를 감출수 없게 된 그자는 직위를 악용하여 날조된 자료들로 김정숙녀사를 비롯한 견실한 투사들을 로골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격분에 넘쳐 이 비렬한 배신자의 음모책동을 규탄하시였다.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이다. 우리는 김일성동지의 전사다. 너는 누구냐? 너는 혁명의 원쑤다. 혁명은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기억하라. 너는 혁명앞에 지은 죄로 하여 처단을 면치 못할것이다!》
후날 엄가의 죄행을 단죄하고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자리에서 김정숙녀사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피력하시였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높은 정치적각성과 혁명적신념을 가지고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여야 하며 그이의 혁명사상을 헐뜯는 현상에 대하여서는 날카로운 투쟁을 벌려야 합니다.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목숨으로 지킵시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숭고하고 영예로운 임무입니다.》
김정숙녀사의 열렬한 토론을 들으며 유격대원들은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옹호하며 그 실현을 위하여 투쟁하는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첫째가는 임무이며 영예라는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투쟁의 진리를 깨닫고 승리의 정당성을 굳게 믿은 항일투사들은 죽음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원쑤들에게 두눈을 잃고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웨친 항일혁명투사 최희숙의 최후는 투사들의 높은 정신세계를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최희숙은 중요한 군사임무수행중에 부상당하여 일제놈들에게 체포되게 되였다.
적들은 비밀을 뽑아내려고 그에게 말이나 글로써는 다 표현할수 없는 무지막지한 고문을 들이댔다. 나중에는 그의 두눈까지 뽑아냈다. 그러나 그 어떤 고문과 위협도 최희숙의 송죽같은 절개를 꺾을수는 없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웨치였다.
《나에게는 지금 눈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녀투사의 이 웨침앞에서 혼비백산한 적들은 공산주의자의 심장이 어떤것인가를 보자며 그의 심장까지 도려냈다.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는 말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진리성을 확신하는 사람들, 혁명절개가 강한 투사들만이 할수 있는 명언이다. 녀투사가 남긴 이 심장의 웨침은 오늘날 우리 인민들과 새 세대들에게 있어서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한 락관을 상징하는 금언으로 되고있다.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그것은 자기 힘을 믿는데서부터 생긴다. 자기 령도자에 대한 믿음, 자기자신의 힘, 자기 집단의 힘, 자기 인민의 힘을 확고히 믿을 때만이 그러한 신념이 뿌리내리고 어떤 역경속에서도 고수되는 법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만을 알고 그 어떤 절해고도에서도 그러한 신념을 지켜싸운 강자들의 집단, 사상의지적으로 단결된 정치사상강군이 바로 조선인민혁명군이였다.
□ 조직력과 규률을 생명으로 하는 군대
조선인민혁명군은 사령관의 사상과 의도, 명령지시를 한치의 드팀도 없이 무조건 집행하는 강한 조직력과 강철같은 규률을 가진 집단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항일유격대가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과 싸워이긴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강한 규률을 가진데 있었습니다. 항일유격대원들은 언제 어디서나 유격대의 조직규률을 자각적으로 지켰으며 명령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무조건 끝까지 관철하였습니다.》
집단의 단결력은 사상과 행동의 일치성을 어떻게 보장하는가에 크게 달려있다.
사령관이 앞으로 나갈것을 요구하면 대오는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전술적으로 물러설것을 요구하면 제때에 물러서야 하며 우회할것을 요구하면 정확히 우회하여야 한다.
정세와 정황이 수시로 변하는 때에 지휘관이 앞으로 하면 앞으로 나아가야지 뒤로 물러서면 싸움에서 승리할수 없을뿐아니라 그런 집단은 오합지졸에 불과한것이다.
령도자의 유일적령도밑에 한결같이 움직이는 높은 조직성과 규률성을 가진 집단만이 단합된 전투력있는 대오로 되는것이다.
조선인민혁명군대오안에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유일적령도밑에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철같은 중앙집권적규률이 확립되여 있었다.
그것은 자각성에 기초한 명령지휘체계였다.
항일유격대에서 전투와 부대지휘관리는 철저히 정치사업을 앞세우는 방법으로 진행되였다.
정치사업을 앞세운다는것은 대원들에게 사령관의 사상과 전략전술의 정당성과 의의를 체득시키고 그들의 열의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들자신이 높은 자각성과 적극성을 가지고 모든 군사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것이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누가 시키거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제를 몰아내고 조국을 해방하기 위하여 스스로 무장을 잡은 사람들로서 군사규률도 자각적으로 지킬 때만이 가장 공고한것으로 될수 있었다. 아무리 규률이 강한 대오라도 그것이 강권이나 맹목성에 의하여 움직이는것이라면 다 흩어지고만다. 따라서 유격대에서는 모든 사업에 정치사업을 앞세우는것이 전투와 부대관리의 확고한 원칙으로 되여있었다.
여기서 큰 역할을 한것이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였다.
조선인민혁명군안의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유일적령도를 확고히 보장하며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하여금 혁명군대의 본질적특성인 정치사상적우월성을 남김없이 발휘하도록 하는 조직정치사업의 직접적담당자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장대오안에 당조직과 정치기관들을 튼튼히 꾸리고 그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는 문제를 조선인민혁명군을 정치사상적으로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가장 원칙적인 문제로 보시고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를 내오고 우에서부터 하부말단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중앙집권제원칙에 기초한 당조직지도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부대앞에 제기되는 모든 정치군사적임무들을 당위원회의 지도밑에 수행해나가도록 하는 체계를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대로 부대안의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은 부대안에 사상교양사업체계를 정연하게 세우고 교양사업을 강화하여 주체의 사상체계를 세우는 사업과 함께 수령님의 로선과 전략전술로 튼튼히 무장하는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갔다.
이와 함께 사단과 련대의 지휘관들과 정치일군들이 중대와 소대들에 정상적으로 내려가 새롭게 제시되는 전략전술적방침들을 정확히 전달침투하는 체계도 세웠다.
항일무장투쟁의 력사적인 발전단계들마다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로선과 전략적방침들은 례외없이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에서 토의결정되고 그 정치적령도밑에 관철되였다. 이것은 무장대오안에 당위원회를 두고 그를 통하여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사령부의 유일적인 령도를 확고히 실현하도록 하신 수령님의 령도가 얼마나 현명한가 하는것을 뚜렷이 실증하여주는 동시에 항일무장대오의 조직사상적통일과 단결의 참모습과 위력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의 역할을 높이도록 하시는 한편 여러가지 군사규정들과 행동준칙을 작성하여 그것을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철저히 지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5(1936)년 12월에 발표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잠행조례》는 부대의 규률을 강화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였다.
잠행조례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사명과 특성, 지난 기간 활동경험을 심오히 분석총화한데 기초하여 남의 경험이나 규정에 구애됨이 없이 조선인민혁명군과 항일혁명전쟁의 구체적실정에 맞게 작성되였다.
잠행조례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성격과 사명, 지휘관, 대원들이 일상생활에서 준수하여야 할 규범들과 행동준칙들이 자세히 밝혀져있었다.
잠행조례의 중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본군은 일본제국주의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이다.
이것은 조례의 첫 조항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조직원칙을 규제한 조례의 두번째 조항에서도 본군은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로써 조직된 진정한 조선인민의 혁명군대라고 밝히였다.
군민관계에 대해서는 이렇게 명시하였다.
- 본군은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다.》는것을 깊이 명심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옹호보위하며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군민이 일치단결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한다.
관병일치에 대한 조항은 다음과 같다.
- 본군의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은 옹간애병, 관병일치의 정신에서 군기와 풍기를 자각적으로 준수한다.
잠행조례에는 일제와 그 주구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항일전쟁경비로 충당하며 그 일부로는 빈곤한 인민을 구제한다는 조항, 조선인민혁명군과 협동작전을 하려는 부대들과 본군을 동정하려는 나라와 인민들과의 공동전선을 도모한다는 조항, 부대의 군사편제와 각급 지휘관의 임면에 관한 사령부의 권한이 밝혀있었고 입대자격과 입대 및 탈대절차, 처벌대상에 관한 범위가 규정되여있었다.
이밖에도 잠행조례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의 기발과 휘장, 군모의 별도 규정되여있었다.
잠행조례가 지향하고있는 목적은 명백하였다. 그것은 인민의 리익을 조금도 침해하지 않고 군민이 하나로 되고 관병이 하나가 되여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을 발휘함으로써 인민이 학수고대하는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기어이 자체의 힘으로 이룩하자는것이였다.
잠행조례를 관통하고있는 기본정신은 사랑이였다. 다시말하여 인민에 대한 사랑, 병사들에 대한 사랑, 지휘관들에 대한 사랑을 철칙으로 삼으라는것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잠행조례》는 그 누구를 통제하고 단속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군대와 인민, 지휘관과 병사들사이를 뜨거운 정으로 이어주는 사랑의 법전, 사랑의 헌장이라고 말할수 있다.
이 잠행조례의 기본정신에 기초하여 지난 기간 부대들에서 리용되여오던 규칙들과 행동규범들이 재검토되고 새롭게 개선되였다. 그 과정에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속에서 규률준수에 대한 자각성이 높아졌으며 무장대오안에 강철같은 규률이 서고 명령지휘체계가 더욱 강화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부대들에서 발생되는 당조직규률과 군중규률을 위반하는 현상들에 대하여서는 그것이 비록 자그마한것이라 할지라도 제때에 일깨워주어 극복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이렇듯 부대지휘관리가 대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자각성과 적극성을 불러일으키는것으로 일관되여 항일무장대오는 고도의 조직성과 규률성을 체현한 조직적전일체로, 행동의 통일체로 그 면모를 일신하게 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언제 어디서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최상의 영예로 인정하고 무조건 접수하였으며 사소한 리유와 구실, 조건타발도 없이 그것을 철저히 집행하였다.
그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지시를 어떻게 철저하게 집행하였는가 하는것은 류경수항일혁명투사의 명령수행과정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1941년 봄 어느날 류경수는 수령님으로부터 어느 한곳에 있는 련락지점에 가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올데 대한 명령을 받았다. 그곳은 몇십겹을 헤아리는 적의 보초소들과 봉쇄구역들을 돌파해야 하는 어려운 과업이였다. 그가 이처럼 어려운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왔을 때 사령부가 자리잡았던 곳에는 뜻밖에도 적《토벌대》의 불무지로 가득차있었다. 그 상태에서는 웬만한 사람 같으면 사령부가 이동했을것이라 판단하고 걸음을 옮겼을것이다.
그렇지만 투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원들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30분밖에 없다, 이 30분동안에 우리가 저 불무지가 있는 사령부자리까지 가지 않으면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어기게 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 위험속에서도 우리 세사람을 끝까지 기다리실것이다라고 하면서 적들이 욱실거리는 곳을 향해 주저없이 기여갔다. 그러다가 사령부자리근처에서 수령님께서 남겨두신 대원을 만났다. 전사가 임무를 마치고 어김없이 돌아올것이라는 수령님의 믿음과 정황이 어떻게 변하든지간에 오직 명령대로만 행동하여야 한다는 투사의 판단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정해주신 날자와 시간과 장소를 털끝만큼한 편차도 없이 엄수하려는 투사의 드팀없는 자세와 철저한 집행정신은 사령관동지의 명령지시를 어떤 환경속에서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는 강한 조직성과 규률성의 발현이였다.
이와 같이 조선인민혁명군은 강한 조직성과 규률성에 기초하였기에 언제나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조직적전일체로서 대오의 행동통일을 보장하고 싸움마다에서 승리만을 아로새기는 강철의 대오로 될수 있었다.
□ 살아도 죽어도 그 품속에
항일무장투쟁은 《강대성》을 자랑하는 포악한 일제와 맞서 장기간에 걸쳐 혈전을 벌려온 류례없이 간고한 투쟁이였다. 생사를 판가름하는 엄혹한 시련과 난관을 뚫고나가는 과정에 항일유격대오안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고 서로 도와주며 그에 보답하는 참다운 인간관계, 사랑과 의리의 관계가 맺어지게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하나의 사상을 가지고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생사운명을 같이할 동지들이기때문에 우리들사이에 맺어지는 동지적사랑은 가장 고상하고 숭고하며 부모처자의 사랑에도 비길수 없고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으며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것입니다.
우리 인민혁명군이 중첩되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일제를 쳐부시며 멀리 전진해올수 있은것은 동지들에 대한 혁명적의리를 깊이 간직하고 대오의 철석같은 단합을 이룩하였기때문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은 당시 조선인민혁명군대오안에 흐르고있던 사랑과 의리의 관계가 어떠한 경지에 이르렀는가를 가늠해볼수 있게 한다.
사랑에는 사람들이 맺는 관계에 따라 부부간의 사랑, 부자간의 사랑, 벗, 친우들간의 사랑, 동지적사랑 등 여러가지가 있게 된다.
부부간의 사랑, 부자간의 사랑, 벗, 친우들간의 사랑이 혈육이나 친분관계에 의하여 맺어지는 사랑이라면 동지적사랑은 같은 사상을 가지고 같은 목적을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들사이에 맺어지는 사랑이다.
여러가지 사랑가운데서도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공동의 목적과 리상을 안고 뭉친 동지들사이의 사랑이 가장 귀중하고 값높은 사랑이라는것을 실천으로 검증한것이 바로 항일유격대원들이다.
항일유격대원들에게 있어서 다른 사랑도 귀중하였지만 한 대오안에서 운명을 같이하는 동지들사이의 사랑은 더없이 귀중하였다. 항일유격대원들은 항일무장투쟁의 길에 들어선 첫날부터 동지들의 사랑속에서 성장하고 투쟁하였으며 자기의 생을 빛내였다. 항일유격대원들은 동지들을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것, 지어 생명까지도 서슴없이 바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동지적사랑은 그 무엇을 주고도 살수 없는 값높은 사랑이였다.
한가정에 흐르는 혈육간의 사랑도 부모가 있어 생겨나고 맺어지는것처럼 항일유격대에 흐르는 동지적사랑과 의리에도 그 시원을 열어주신 어버이가 있었으니 그이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동지들이 있는 곳이라면 시련의 고비고비를 넘으시며 찾아 안아주시던 그 손길로 유격대원 한사람한사람을 진정한 동지로 믿어주시고 친부모도 다하지 못할 자애로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휘관들에게 자신이 덥고 배부를 때에도 대원들은 춥고 배고플수 있다는것을 항상 생각하며 대원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면서 몸소 대원들의 일상생활과 건강에 대하여, 그들의 전투임무수행에 대하여, 나아가서는 그들의 가정형편에 대하여서까지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항일무장투쟁의 간고한 나날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몇끼씩 끼니를 건느시면서도 어찌다가 차례진 강냉이 몇알, 누룩 한덩어리마저 모두 대원들에게 돌려주시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한지에서 숙영할 때에는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모포마저 대원들에게 돌려주시였으며 대원들이 정성담아 올린 한 뿌리의 산삼도 몇해씩 간수해두셨다가 부상당한 대원에게 친히 보내주시였다. 또한 행군길에 오른 어린 대원의 발이 부르틀세라 친히 신발까지 보아주시였고 가렬한 전투마당에서 몸소 기관총을 잡으시고 대원들을 위험에서 구원하기도 하시였으며 희생된 대원을 애도하여 숙영의 밤을 지새우시며 손수 추도문을 쓰기도 하시였다.
친자식도 멀리 떨어져있으면 정이 떠지고 멀어진다고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가까이에 있건 멀리에 있건 그 어느 대원에게도 한결같이 극진하였다.
1940년도에 있은 일이다. 독립적인 임무를 수행하던 한 소부대는 대적의 포위속에서 간고한 싸움을 벌리다나니 사령부와의 련계가 끊어지게 되였다. 오랜 기간의 간고한 전투와 행군과정에 그들의 옷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식량마저 떨어진지 오래여 대원들은 몹시 지쳤다. 게다가 겨울이 닥쳐와 추위까지 그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수령님만을 그리며 모든 시련을 이겨내며 전진하였다.
소부대성원들이 사령부가 숙영하였던 자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곳에는 그들만이 알수 있는 표식이 있었다. 그밑을 파보니 뜻밖에도 거기에는 누기가 차지 않게 기름종이로 싸고 또 싼 솜동복 수십벌과 쌀가마니가 나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곳을 떠나시며 련락이 끊어진 소부대들을 걱정하시며 옷과 식량을 묻어두신것이였다.
소부대성원들은 수령님의 자애로운 품에 와락 안기듯 솜동복과 쌀가마니에 얼굴을 묻었다.
《사령관동지! 고맙습니다.…》
일본군경들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소멸하겠다고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던 그 시기에 사령부에서 식량을 구했으면 얼마나 구했고 솜동복을 준비했으면 얼마나 준비했겠는가!
사령부에서 쓰고남음이 있어 자기들의 몫을 따로 남겨둔것이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그들은 수령님의 뜨겁고도 자애로운 사랑과 은정에 목이 메여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이렇듯 크나큰 사랑과 은정에 이끌리여 소부대성원들은 모진 시련과 난관을 뚫고 끝내 사령부로 찾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인가는 자신께 차례진 죽물마저 사령부와 멀리 떨어져있는 대원들이 눈앞에 안겨와 수저를 드시지 못하시였고 또 어느때인가는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를 소부대성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리시며 사슴고기를 말리워 가루로 만들어 쉰개의 봉지에 넣도록 하시고 거기에 손수 이름까지 적으시여 소중히 보관하도록 하시였다.
육친의 사랑을 초월하는 이렇듯 뜨거운 사랑과 은정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천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동지적사랑과 의리의 고귀함을 가슴속에 새기고 수령님의 두리에 도덕의리적으로 굳게 뭉치게 하는 자양분으로 되였다.
항일유격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자신들의 운명의 어버이로 끝없이 흠모하고 높이 모시는것을 마땅한 본분으로, 도리로 여기였다.
특히 수령님의 신변을 옹호보위하는데 최대의 관심을 돌렸으며 이 길에서 한목숨 서슴없이 내대는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수령님의 신변에 위험이 닥쳐온 위기일발의 시각 비발치는 탄우속에서 한몸이 그대로 방탄벽이 되시였던 김정숙녀사, 사령부로 가장하여 사령부로 쏠리는 적을 유인한 오중흡련대장을 비롯한 7련대성원들, 적들에게 체포되여서도 사령부의 안전을 지켜 자기의 혀를 스스로 끊고 목숨까지 바친 마동희 등 수없이 많은 항일투사들이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위해 자기의 한몸을 서슴없이 내댔다.
정세가 엄혹해지고 생사를 가늠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여도 항일유격대원들의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도덕의리는 변치 않았을뿐아니라 높이 발현되였다.
1940년 가을 일제의 전례없이 악랄해진 군사적공세와 심리적공세로 하여 정세는 참으로 어려웠다.
이러한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를 여시고 대원들에게 부닥친 난관의 엄혹성에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대원들에게 정세는 엄혹하고 더 간고해진다, 우리 혁명위업이 열매를 맺어 나라가 독립되리라는것은 누구나 일치하게 믿고있는바이지만 그런 날이 언제쯤 오겠는가 하는것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10년이나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면서 싸웠지만 그런 고생을 이제 5년 더하게 될지 10년 더하게 될지 그것은 찍어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명백한것은 최후의 승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있다는것이다, 물론 이 길에는 허다한 난관이 있다, 우리가 이때까지 겪은 난관보다 몇배, 몇십배 더 큰 난관도 있을수 있다, 그러니 우리를 끝까지 따라가 혁명을 계속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 집으로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려비도 주고 길량식도 주겠다, 그리고 투쟁을 중도반단한데 대하여 문제시하지 않겠다, 힘이 약하고 신심이 모자라서 대오를 떠나는거야 어떻게 하겠는가, 갈 사람은 가라, 그러되 인사는 하고 가라라고 툭 털어놓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대원들은 모두가 수령님의 팔에 매달려 장군님, 혁명이 성공하는 날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일없습니다,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으니 우리는 장군님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동지들을 배반하고 산에서 내려가 적들한테 머리를 숙이고 살바엔 여기서 싸우다 죽는것이 낫습니다, 우리는 장군님과 생사를 같이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눈물을 뿌렸다.
격정의 눈물없이는 볼수 없었던 이 숭엄한 광경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심어주시고 굳히여주신 동지적사랑과 의리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항일무장대오의 일심단결의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는 력사적화폭이였다. 그것은 또한 수령과 전사들사이에 맺어지는 동지적사랑과 의리야말로 그 어떤 세상풍파속에서도 끄떡하지 않고 최악의 역경속에서도 흩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더 굳세여지는 통일단결의 원천이라는것을 생활의 론리로 확증하여주는 단결의 정화였다.
실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속에서 발휘된 동지적사랑과 고상한 도덕의리는 그들로 하여금 그 어떤 준엄한 시련도 이겨내게 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반일의 기치를 끝까지 들고나갈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이였다.
일심단결의 결정체로서의 조선인민혁명군의 면모에 대하여 당시 미국에서 발행된 교포신문 《신한민보》는 이렇게 전하였다.
《이제 최근 천진통신을 의지하건대 그 보도가 자못 소상함이 아래와 같으다. 한중의용군중에 가장 용맹스럽게 쌈 잘하는 군사는 한인 김일성장군(내지 신문과 기타 한국측의 소식을 의지하건대 간도를 근거하고 활동하는 김일성씨의 무장부대가 있어 지난 6월에 국경을 넘어 갑산 보천보를 습격하여 왜군경의 간담을 떨어뜨렸고 그후에도 동군의 행동이 동아일보와 기타 신문에 자조 보도되였다. …) 통솔하에 전혀 한인으로 편성한 사단이라고 한다.
…
그들의 단결존재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데 있는것이며 일종 가족식계통적지배에다 의협충용 등 전통적정신훈련을 겸해서 그 단결이 더 굳은것이다. 이로 인하여 수령이 한번 령을 내리면 그 부하가 수화를 헤아리지 않고 내닫는것이다. … 그들의 목적은 다만 민족을 위하여 원쑤를 갚는것뿐이요 전략은 많이는 유격방식을 취하여 신출귀몰함으로 왜적으로 하여금 갈팡질팡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것이다.
쏘련군사가의 관측은 <만일 일조에 중일량국이 정식 선전하면 일본이 만주 한모퉁이의 의용군을 당해내려도 군사 20만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믿을수 있다고 하면 그들의 실력이 몹시 위대한것이 아니냐.》(《신한민보》 1937년 9월 30일)
이 사료가 시사하는바와 같이 조선인민혁명군은 위대한 수령님의 유일적령도밑에 력사와 인민앞에 지닌 자기의 숭고한 사명과 임무를 유감없이 수행할수 있는 가장 굳건하고 위력한 단결을 이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