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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심단결의 전통-사랑과 믿음의 새 력사

 

《항일혁명의 전로정은 인민대중을 력사의 주체로 보고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광복성전의 1선에 내세워준 사랑과 믿음의 력사이며 인민대중자신이 자기의 피와 땀으로써 당당한 력사의 주체임을 과시해온 위대한 투쟁과 창조의 력사입니다. 이 인민과 인민혁명군의 투사들이야말로 새 조국건설을 담당하게 될 우리 혁명의 주체였습니다. 인민의 사랑과 지지속에서 인민의 힘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여 투쟁할 때 그 어떤 준엄한 시련도 이겨낼수 있으며 그 어떤 어려운 투쟁속에서도 승리할수 있다는것은 우리가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찾아낸 귀중한 진리입니다.》

 김 일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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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의 별》, 민족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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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이 하늘

 

우리 식 사회주의의 일심단결의 전통은 항일혁명투쟁의 불길속에서 마련되였다. 하다면 일심단결의 전통이 마련될수 있게 한 기초는 무엇인가. 그것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지니신 인민이 곧 하늘이라는 인민관이였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왔다. 이러한 하늘숭배의식을 리용하여 지배자들은 자기를 천자로 묘사하였고 신권을 통치수단으로 삼았으며 백성우에 군림하였다.

인민이 곧 하늘이라는 인민관은 이러한 력대 반인민적통치자들의 궤변에 종지부를 찍고 력사의 진정한 창조자이며 주체인 인민의 본연의 모습을 처음으로 되찾아준 력사적인 발견이고 사변이였다.

인민이 곧 하늘이라는 전혀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단결의  사상적뿌리가 내리고 단결의 새싹이 움텄으며 단결의 새로운 력사가 시작되였다.

민족수난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웠던 망국초엽에 탄생하시여 격변하는 내외정세의 소용돌이속에서 성장하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어린시절부터 도탄에 빠진 겨레의 고통을 체험하시면서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고 인민과 희로애락을 나누는 길을 걸으시였다. 그 과정에 인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귀중한 존재이며 인민을 위하여 바치는 생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값높고 숭고한 삶이며 따라서 인민을 하늘처럼 여겨야 한다는 사상을 지니게 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시였다.

《<이민위천>, 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였다.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할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신앙이며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한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게 한 생활의 본령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찍부터 간직하시고 굳혀오신 인민에 대한 사랑과 복무의지는 《이민위천》의 철학사상, 혁명정신으로 정립되였다.

《이민위천》의 사상에는 인민을 세상에서 가장 힘있고 지혜롭고 귀중한 존재, 전지전능한 존재로 여기시는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견해와 관점, 세상만사를 인민의 힘을 믿고 그에 의거하여 풀어나가며 세상의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드는것을 인생의 최고목표로 내세우시는 인민에 대한 그이의 립장과 태도가 집대성되여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이민위천》의 사상은 혁명가, 정치가들이 지녀야 할 인민에 대한 관점과 립장의 절정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이민위천》의 사상은 그 어떤 선행세대의 사상가나 정치가들에게서 전수받은것도 아니고 고요한 서재에서 리론적사유의 결과로 얻어진것도 아니다. 그것은 명실공히 애국적이며 인민적인 가정에서 탄생하시여 부모님들의 직접적인 교양을 받으시며 성장하시는 나날에 수령님께서 실지 생활체험을 통하여 지니시게 된 사상이며 세계관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뇌리에 《이민위천》의 사상이 싹트기 시작한것은 벌써 10대에도 이르지 못한 유년시기였다. 이 시기 어리신 수령님께서 큰 사상정신적충격을 받으신것은 3. 1인민봉기였다.

이 시기로 말하면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가 조선을 하나의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어버린 중세기적공포정치의 총검밑에서 우리 민족이 모든 사회적권리와 재부는 물론 생존권마저 박탈당하고 끝없는 고통속에서 신음해온 수난과 암흑의 시기, 기아와 도탄의 시기였다. 일제의 조선강점이후 비밀결사운동과 독립군운동, 애국문화계몽운동으로 부단히 힘을 축적하여온 우리 민족은 이 암흑의 시대, 폭압의 시대를 그대로 감수할수가 없어 1919년 3월 1일 분연히 반일봉기에 떨쳐나섰다.

일제는 봉기에 궐기한 조선인민을 침략군대를 동원하여 야수적으로 탄압학살하며 온 나라를 피바다로 만들었지만 인민들은 결사적인 시위를 벌리면서 앞대렬이 쓰러지면 그 뒤대렬이, 뒤대렬이 쓰러지면 또 다음대렬이 앞장에서 나가면서 영웅적으로 싸웠다. 봉기가 시작된 후 1~2개월동안 온 나라는 독립만세의 메아리로 진동하였다.

3. 1인민봉기는 일제의 야수적인 탄압과 범국민적범위로 확대되는 운동을 주도할만 한 지도력량의 결핍으로 하여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3. 1인민봉기를 통하여 우리 인민은 조선사람은 일제의 식민지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는 자주정신이 강한 인민이며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기개와 열렬한 애국정신을 가진 인민이라는것을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그때 여덟살의 어리신 나이에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대렬에 참가하시였던 수령님께서 받으신 사상정신적충격은 참으로 큰것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를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비운의 조국강산을 뒤흔들며 세계만방에 울려가던 독립만세소리는 온 여름 내 귀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만세소리는 나로 하여금 나이보다 일찍 철들게 하였다, 시위군중과 무장경찰의 격투로 불꽃을 일으키던 보통문 앞거리에서 나의 세계관은 새로운 단계에로 도약하였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3. 1인민봉기는 나를 인민의 대오속에 세워주고 나의 망막에 우리 민족의 참다운 영상을 새겨준 첫 계기였다. 내 마음속에 우뢰가 되여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던 독립만세의 메아리에 귀를 기울일 때마다 나는 우리 인민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과 영웅성을 두고 다함없는 자부심을 느끼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감동적인 말씀은 그 시기에 벌써 수령님의 마음속에 인민에 대한 새로운 관점, 《이민위천》의 사상이 싹트고 자리잡기 시작하였다는것을 페부로 느끼게 한다.

바로 이러한분이시였기에 수령님께서는 소학교시절에 민족의 힘을 하나로 동원하여 일제를 몰아낼 웅대한 포부를 지니시였다.

1925년 봄 어느날 학교에서 조직한 들놀이때 있은 일이다.

새 계절이 가져다준 따스한 봄기운에 들뜬 무송제1소학교의 교직원, 학생들은 들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한 학생만은 나무에 무엇인가를 새겨넣으며 그 어떤 상념에 깊이 빠져있었다.

학생인즉 바로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나무에는 《일본제국주의 타도, 조선독립》이라는 열두글자가 새겨져있었다. 그때 옆을 지나가던 교장이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10대의  어린 학생이 새긴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엄청나게 큰뜻이 담겨져있는 글발이였다. 그가 어린 학생이 어떻게 강대한 일본을 타도할수 있겠는가고 묻자 수령님께서는 조선사람은 누구나 다 왜놈을 미워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인민의 힘을 한데 모으면 능히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할수 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어리신 나이에 일제타도를 선언하시고 그 방도와 가능성을 단 한마디로 밝혀놓으시는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교장과 교원들은 그이의 남다른 포부와 높은 애국심에 탄복해마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뇌리에 깊이 새겨지고 마음속에 자리잡은 인민의 힘에 대한 절대적믿음은 수령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조선혁명의 새로운 앞길을 탐구하고 모색하시던 시기에 더욱 굳어졌으며 그것은 《이민위천》의 사상으로 발전정립되였던것이다.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 뿌리를 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사상정신세계는 만경대일가의 인민적인 가풍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만경대일가분들은 대대로 극빈한 소작농의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성실하고 근면한 로동으로 생활을 개척해오시였으며 언제나 소박하고 평범하게 생활하시였다.

만경대일가분들은 비록 죽물을 우리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혈육이나 이웃간에 서로 도와주고 받들어주는 마음이 극진하였다.

《돈이 없이는 살수 있어도 인덕이 없으면 살수 없느니라.》

할아버님께서는 자식들에게 늘 이런 훈계를 하시였다. 이것이 곧 만경대가정의 철학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일가는 참으로 평범하고 인민적인 가정이였으며 만경대일가의 가풍도 근면하고 소박하고 인덕을 귀중히 여기는 인민적인 가풍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인민적인 가정에서 탄생하시여 인민적인 가풍을 이어받으시며 성장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본명은 김성주였다.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되여주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아버님께서 지어주신 뜻깊은 이름이였다.

이처럼 어린시절부터 수령님에 대한 일가의 기대는 컸다. 이와 함께 그이에 대한 부모님들의 교양도 각별하였다.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시종일관 아드님을 나라와 인민의 충직한 아들로 키우시기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아버님께서는 자제분을 데리고 자주 만경봉에 오르시여 고향산천을 가리키시면서 금은보화로 가득찬 우리 나라와 슬기롭고 용감한 우리 인민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군 하였다.

대동강을 거슬러올라왔던 미국침략선 《셔먼》호를 격침시킨 선조들의 위훈이며 외적을 용감히 물리친 인민의 자랑스러운 투쟁이야기는 아드님의 가슴속에 애국의 숭고한 정신과 용맹을 키워주었다.

어머님이신 강반석녀사 역시 아드님의 교양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아드님에 대하여 무한히 자애롭고 부드러우시면서도 단순한 애정에 흐르지 않으시고 아드님을 대바르게 키우셨으며 옳은것을 극력 따르게 하시였다. 동무들과 고향마을을 사랑하도록 꾸준히 가르치시였고 웃사람들에게 례절을 잘 지키게 하시였으며 옷차림과 몸가짐도 단정히 하도록 보살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 있어서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의 동지획득에 관한 사상은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함께 혁명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고결한 의리를 낳게 한 사상정신적원천이였다.

출중한 풍모와 조선독립의 큰뜻을 이루시려는 수령님의 굳센 의지에서 커다란 기대를 가지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아드님에게 독립운동의 실태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께서 투쟁과정에 얻으신 귀중한 경험과 교훈도 자주 들려주시며 《동지를 위해 죽을수 있는 사람만이 좋은 동지를 얻을수 있다.》는 동지획득에 관한 사상도 심어주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혁명을 하자면 좋은 동지가 많아야 하는데 좋은 동지란 하늘에서 떨어지는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나는것도 아니다, 금이나 보석을 캐내듯이 힘을 들여 스스로 찾아내야 하며 키워내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라와 민중을 위한 진심만 있으면 좋은 동지는 얼마든지 얻을수 있다, 문제는 뜻이고 마음이다, 돈은 없어도 뜻만 통하면 서로 동지가 될수 있다고 뜻깊은 말씀을 해주시군 하였다.

김형직선생님의 이러한 가르치심은 간고한 투쟁과 시련속에서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얻은 귀중한 경험이며 교훈이였다.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의 가르치심은 선행세대의 혁명활동의 총화였으며 다음세대의 혁명가들이 지침으로 삼아야 할 혁명원리의 제시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지획득에 관한 사상을 단결의 혁명원리로 받아들이셨고 민족해방, 계급해방투쟁의 근본지침으로 삼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부모님들의 교양과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어리신 나이에 벌써 인민을 하늘로 숭배하는 고귀한 인생관을 지니시였으며 온 겨레를 한품에 받아들일 넓은 도량과 높은 덕망, 단결의 숭고한 포부를 지니시였다.

 

4

□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하다

 

이 땅에 망국의 비운이 짙어가던 주체15(1926)년 6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선독립의 원대한 구상을 품으시고 중국 동북지방의 화전에 있는 화성의숙에 입학하시였다.

화성의숙은 독립군의 간부들을 키울 목적으로 정의부소속의 민족주의자들이 1925년초에 세운 군사정치학교였다.

수령님께서는 이곳을 반일독립투쟁의 활무대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시고 의숙의 교육에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시였다. 그렇지만 이곳에 오신지 얼마 안되여 벌써 교육내용에 실망을 느끼시였다.

의숙에서 배워주는 조선력사는 왕조사본위로 엮어져있었고 세계혁명사도 부르죠아혁명사가 기본을 이루고있었다. 군사훈련도 마찬가지였다. 의숙에서 배워주는것은 낡은 군사훈련뿐이였다.

한편 화성의숙에 찾아오는 독립군의 거두들이나 애국지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역시 혁명력량편성과 대중동원문제, 독립군운동대렬의 통일문제와 관련한 방법과 방도문제에 대한 일가견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연탁을 두드리며 독립하자고만 부르짖었다. 그들은 인민대중과 동떨어져있었으며 세금을 징수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인민들에게 부담만 들씌우고있었다.

화전일대에 드나들면서 공산주의운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에 물젖어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일신의 공명과 출세욕에 사로잡혀 파쟁만을 일삼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들의 낡은 방식대로 해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없다는것을 깊이 느끼시고 나라의 독립을 위한 새로운 길을 탐구해나가시였다.

이와 함께 그이께서는 동지획득의 뜻을 지니시고 화성의숙의 청년들가운데서 뜻을 같이하고 생사를 같이할 동지들을 한명한명 찾아내여 혁명가로 육성하시였다.

그때 화성의숙에는 40명 남짓한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이 로동자, 농민의 출신으로서 조국해방을 위한 싸움에 한몸바칠 각오를 하고 집을 떠나온 피끓는 청년들이였으며 옳바로 이끌어만 준다면 참신한 혁명가들로 자라날수 있는 젊은 세대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의숙의 청년학생들과 친숙해지기 위하여 노력하시였다.

화성의숙의 학생들은 대부분 독립군부대에서 활동하다가 추천되여온 20살안팎의 청년들로서 제딴의 호기와 자부를 가지고있었던것만큼 수령님께서 그처럼 어리신 나이에 그들의 신임을 얻는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비범한 예지와 높은 정치적안목, 넓은 도량으로 얼마 안있어 그들과 인차 친숙해지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학과학습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이시였다. 력사, 지리, 수학 할것없이 모든 과목을 높은 수준에서 리해하시였으며 어느 과목, 어떤 문제든지 막힘없이 환히 알고계시였다.

어느날 학습시간에 외국의 부르죠아혁명사를 배우고났을 때였다.

학생들은 앞으로 우리가 일제를 내쫓고 나라를 독립시킨 다음에는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자본주의의 길로 나가겠는가, 아니면 그전에 있던 봉건군주제도를 그대로 두겠는가 하는것을 가지고 론쟁들을 벌리였다.

이때 이들의 토론을 주의깊이 듣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는 유럽나라들과 같이 부르죠아혁명을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여 낡은 봉건통치기구를 그대로 되살릴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그들을 일깨워주시였다.

나라를 독립시키는 문제와 독립후 어떤 사회를 건설하겠는가 하는 문제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라를 독립시킨 후에 어떤 사회를 건설하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지는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조선을 독립시킨 후 어떤 사회를 건설하여야 하겠습니까? 자본주의사회나 봉건사회는 돈많은 놈들이 로동자, 농민을 착취하여 호강하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이미 체험을 통하여 착취사회의 부패상과 불공평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이런 사회를 건설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조선을 독립시킨 후 착취와 압박이 없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이 잘사는 그러한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이의 이 가르치심은 학생들에게 자기들의 투쟁목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하였다.

그 어떤 과목이나 막힘이 없고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밝혀내시는 수령님을 학생들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박사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르게 되였다.

학생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더욱 존경하고 따르게 된것은 그이께서 지니신 고결한 품성때문이기도 하였다.

어느날 화성의숙에서 학생들이 축구시합을 하다가 한 학생이 다리를 크게 다친 일이 있었다. 이때 수령님께서는 그 학생을 업고 의원을 찾아가시여 응급처치를 받게 하시였으며 뼈가 상한 그를 위해 치료에 좋다는 약들과 오징어뼈를 구해오시였고 환자의 입맛을 돋구어주기 위하여 그가 좋아하는 고추장과 풋고추, 시원한 오이와 도마도도 구해다가 환자에게 먹이시였다. 그리고 상처가 나아갈 때에는 쌍지팽이를 만들어다 주시였다. 병신이 되는줄만 알고 비관하던 그 학생은 말할것도 없고 학생들 모두가 수령님의 후더운 인정에 크게 감동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들을 선진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하여 파악이 있는 동무들속에서부터 보급사업을 시작하여 점차 그 대렬을 늘여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회정치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마련하시였는데 그것은 학생들의 정치적안목을 높여주는 훌륭한 교양마당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고계시는 고매한 인품과 포옹력, 자연과 사회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능력과 천재적예지, 확고부동한 반제반일사상, 혁명의 전도에 대한 통찰력과 웅심깊은 구상은 모든 청년학생들의 심장을 틀어잡았으며 그들로 하여금 조선혁명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가지고 투쟁에 적극 나서도록 고무하였다.

청년학생들은 한결같이 일제침략자들을 조국강토에서 몰아내고 나라의 자주독립을 이룩하며 나아가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를 건설할데 대한 수령님의 확신에 넘친 원대한 구상을 열광적으로 지지찬동하여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들속에서 우수한 핵심청년들을 료해장악하시고 새형의 혁명적전위조직을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을 빈틈없이 진행하신데 기초하여 마침내 주체15(1926)년 10월 17일 타도제국주의동맹(략칭 《ㅌ. ㄷ》)결성모임을 소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ㅌ. ㄷ》결성모임에서 하신 《제국주의를 타도하자》라는 보고에서 반일투쟁의 력사적경험과 교훈을 전면적으로 분석하시고 일제를 타도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자면 민족주의운동자들과 당시 공산주의운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투쟁의 길로 나아갈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상층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중운동으로, 우리 인민자체의 힘으로, 자주적으로 일본제국주의를 때려부시고 진정한 조선의 독립을 달성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ㅌ. ㄷ》의 당면과업과 최종목적을 밝힌 투쟁강령을 제시하시였다. 당면과업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달성하는것이였고 최종목적은 조선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며 나아가서 모든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세계에 공산주의를 건설하는것이였다.

《ㅌ. ㄷ》의 강령은 력사상 처음으로 조선의 자주적발전을 위한 명확한 길을 밝힌 혁명강령이였으며 조선인민을 참다운 투쟁의 길, 민족적 및 계급적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길로 힘있게 고무한 전투적기치였다.

수령님의 보고가 끝나자 회의참가자들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ㅌ. ㄷ》의 강령을 실현하는 길에서 한몸바쳐 싸울것을 굳게 결의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 참가한 전체 성원들의 일치한 념원과 의사에 의하여 타도제국주의동맹 책임자로 추대되시였다.

당시 15살에도 이르지 못한 학생의 신분으로 일제타도와 사회주의기치를 내건 혁명조직을 뭇고 그 지도자로 추대된다는것은 참으로 세인을 경탄케 하는것이였다.

온갖 좌우경기회주의사상조류가 당대의 사회운동을 휩쓸고있던 그 시기에 조선혁명의 정확한 강령과 방도를 제시하여 갈길 몰라 어둠속을 헤매이던 사람들의 가슴속에 독립의 서광을 안겨주고 뜻을 같이하고 생사를 함께 할 동지적관계를 맺은 그러한 위인이 정녕 어디에 있었던가. 수령님의 그 위대한 인품에 매혹되여 《ㅌ. ㄷ》의 성원들은 년령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수령님을 자신들을 이끌어줄 령도자로 내세웠던것이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선독립의 험난한 길을 같이 헤쳐나갈 동지들을 모으시던 력사의 그 나날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자본가들은 돈을 모으는 재미가 별재미라고 하지만 나한테는 동지를 모으는 재미가 최상의 락이고 재미였다. 동지 한명을 얻을 때의 희열을 어찌 황금덩이 하나를 얻을 때의 기쁨에 비길수 있겠는가. 동지를 얻기 위한 나의 투쟁은 이렇게 화성의숙에서부터 첫발자국을 떼였다. 그때부터 나는 한생을 동지를 얻는 일에 바치였다.》

《ㅌ. ㄷ》는 투철한 공산주의적인 전위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타도제국주의동맹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출현하였다. 이 명칭에는 일제를 타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온 민족의 힘을 하나로 결속해야 한다는 수령님의 민족단합의 원대한 뜻이 반영되여있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편견과 몰리해로부터 민족주의자들은 공산주의란 소리만 들어도 닁큼 놀라 뛰리만큼 증오하였으며 그에 대한 강한 거부반응을 나타내고있었다. 아무리 사상이 다르고 또 공산주의를 싫어한다고 해도 민족단합을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단결해야 한다는것이 수령님의 드팀없는 립장이였다.

제국주의타도는 공산주의자들의 당면목표일뿐아니라 민족주의자들의 투쟁목표이기도 한것만큼 량자가 공감하는 가장 적절한 구호였던것이다.

민족주의자들과의 단결과 합작이 민족해방투쟁의 중요한 과제였던것으로 하여 수령님께서는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새로운 전위조직의 정식명칭으로 정하신것이다. 여기에는 정견과 신앙, 주의주장이 어떠하든지간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굳게 믿고 함께 손잡고나가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원대한 구상이 담겨져있었다.

현실적으로 타도제국주의동맹이 결성되고 그가 확대강화됨에 따라 《ㅌ. ㄷ》를 핵심체로 하여 로동자, 농민은 물론 각계각층의 결속을 이루는 길을 개척해나갈수 있었던것이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활동에 대하여 해방직후 남조선에서 발행된 한 출판물에는 《<ㅌ.ㄷ>와 김일성》이라는 표제로 다음과 같은 글이 씌여져있었다.

《1926년이다. …

사회적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김일성의 순진한 심리에는 고민의 파동이 일어났다. 당시 민족주의운동선상에는 과거의 애국주의적경향에서 혁명적단계에로 취향하는 기운이 농숙하였을뿐아니라 모든 민족주의운동단체는 단일전선결성의 촉진에 마력을 가하여 정의부(…)를 중심으로 협의회, 촉성회의 리론적대립은 이 전선의 결성에 발전을 의미하였다. 타방 사회주의운동도… 대두하였다.

소년 김일성의 머리는 아니 학생 김성주의 의식은 이 두 사회적경향에서 비판을 요하게 되였고 자기의 독자적발전이 있음으로써 장래의 목적달성을 기할수 있음을 깨달았다. …

좌우익의 소아병적경향을 배제하고 <ㅌ. ㄷ> 즉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하였다.》(《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 1집 동방문화사 서울 1945년)

타도제국주의동맹의 결성은 온 민족이 믿음과 사랑으로 결속되고 민족의 운명을 함께 개척해나가는 사랑과 믿음의 새 력사, 일심단결의 시원을 열어놓은 력사적선언으로 되였다.

 

5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라!》

 

혈기왕성한 청년들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청년들이 일어나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자, 이것이 반일을 지향해나선 식민지조선청년들의 의기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이러한 청년들의 지향과 열정을 하나로 묶어세우실 경륜을 안으시고 활동무대를 길림의 청년학생들속에 옮기시였다. 여기서 《ㅌ. ㄷ》를 보다 광범한 청년들을 망라하는 대중적조직인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하시였으며 나아가 청년들의 전위조직인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하시였다. 이렇게 청년조직화의 거점을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조직화된 핵심청년들이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근로대중속에 들어가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후날 이때를 회고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도 처음에 혁명운동을 시작할 때에는 학생운동으로부터 시작하여가지고 점차 로동자, 농민들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광범한 로동자, 농민들속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그들을 깨우쳐 혁명투쟁에 불러일으키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승리의 신심이 더욱 높아졌고 투쟁은 적극적인 단계에로 힘차게 발전하게 되였습니다.》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라!》, 이 구호에는 조선독립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그것을 이룩하기 위한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심오한 혁명적원리가 담겨져있었다. 이것은 인민대중을 우매하고 미개한 계몽대상으로만 보아오던 선행운동가들의 사고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민이야말로 선생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기본동력이라는 관점의 발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에 대한 이렇듯 순결하고 진실한 사랑을 지니시고 인민들속에 들어가는것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였으며 몸소 키우신 지도핵심들을 대중속에 파견하실 때마다 인민을 선생으로 믿고 그들의 힘에 의거하여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데 대하여서와 인민들앞에서 겸허하고 솔직하며 그들을 한집안식솔처럼 다정하게 대하는 고상한 인민적품성과 작풍을 소유할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몸소 그 모범을 창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에서 근로인민들과 침식을 같이하시면서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그들을 교양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농촌에 나가시면 농민복을 입으시고 농민들의 일손을 도우시면서 그들을 일깨워주시고 밤이면 이야기모임도 조직하시고 강연도 하시였으며 야학에 나가시여 글도 가르쳐주시였다.

이 시기 수령님께서는 대중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는데서 출판물과 문학예술이 노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것을 인정하시고 이 사업에 많은 힘을 기울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신문 《새날》과 잡지 《볼쉐위크》, 《농우》 등 출판물을 발간하여 배포하게 하시여 조선독립의 방향과 방도를 대중속에 깊이 침투시키도록 하시였다.

한편 그이께서는 문학예술의 보급에도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친히 《조선의 노래》, 《딸에게서 온 편지》,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혈분만국회》 등의 노래와 연극, 《단심줄》, 《13도자랑》 등의 가무도 창작하시였다. 그이께서 창작하신 이 모든 작품들에는 반일감정과 조국애와 민족애, 단결의 정신이 철저히 구현되여있었으며 그것은 사상성과 예술성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훌륭한 작품들이였다.

하기에 이 작품들은 나오자마자 인민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연예선전대를 이끄시고 어느 한 마을에 가시여 주체17(1928)년 설을 그곳 인민들과 함께 쇠시며 가무 《단심줄》공연을 보실 때였다.

《단심줄》은 반일애국력량이 통일단결하여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데 대한 사상을 노래와 춤이 배합된 생동한 예술적형상으로 보여주고있다.

작품에서는 로동자, 농민, 병사, 부녀, 학생, 지식인 등 각계각층의 옷차림을 한 어린 연기자들이 무대중심에 세워놓은 붉은 기둥에 드리운 끈들을 잡고 랑만에 넘쳐 춤을 추고 노래부르면서 기둥주위를 얼기설기 도는 사이에 여러 갈래의 색끈이 기둥에 하나의 단심줄로 곱게 엮어지는 과정을 형상하고있다.

무대가운데 세워진 붉은 기둥은 령도의 중심을 상징한것이며 여러 갈래의 색끈은 각계각층의 반일애국력량을 상징한것이다. 기둥을 중심으로 다양한 색갈의 단심줄을 꼬아나감으로써 작품은 모든 반일애국력량은 령도의 중심에 하나로 튼튼히 단결하여야 한다는 사상을 생동한 예술적형상으로 보여주고있다.

작품은 특히 훌륭히 상징된 무대형상과 아름답고 씩씩한 무용률동, 명랑하고 진취적인 노래 등 다양한 예술적형상의 배합으로 주제사상을 더욱 심오하게 전개하고있다.

전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을 예술적형상으로 천명하고있는 이 공연은 대중에게 깊은 감명을 자아내였다.

관중은 《단심줄》공연을 보고 흥분하여 좀처럼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았다. 이날 의병투쟁과 독립군운동에 참가했다는 한 로인은 수령님의 두손을 부여잡고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지난날의 의병활동이 흐지부지돼버린것도 힘을 합치지 못한탓이라고, 조선사람은 셋이 모여도 단결하여 왜놈들과 싸워야 한다고 하면서 젊은 세대들이 잘 싸워달라고 당부하였다. 이 말에는 갈길 몰라 어둠속을 헤매이던 인민들이 독립의 신심을 새겨안은 무한한 기쁨이 담겨져있었다.

인민은 자기를 동정하고 리해해줄줄 아는 사람들앞에서는 그가 누구든지 서슴없이 마음의 대문을 열어제낀다. 그리고 불타는 열광으로써 그들을 품어안는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들속에 들어가 혁명의 씨앗을 뿌려나가시는 나날에 체득하신 진리이다.

그이께서 천불교신자들을 반일의 길로 어떻게 이끌어주셨는가 하는데서 그 사례를 보게 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산기슭의 내도산마을에 가셨을 때였다. 장차 이곳을 무장투쟁을 위한 근거지로 만들 구상으로 이미전에 조직성원을 파견하시였는데 도무지 성과를 내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말인즉 부락민이 몽땅 천불교신자가 되여 선진사상이 먹어들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그는 이렇게 실태를 보고하면서 종교가 아편이라고 한 맑스의 말이 참으로 명언이라고 덧붙이는것이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직접 실정을 알아보시였다. 그 과정에 천불교가 매우 애국적인 종교라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천불교교주는 한때 독립군에서 싸우던 사람인데 독립군이 맥을 추지 못하게 되자 총을 내던지고 내도산에 들어와 왜놈들에게 천벌을 내리고 조선민족에게 복을 내려달라는 간절한 뜻을 담은 종교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천불교라는것이였다. 말하자면 반일독립을 기원하여 만들어진 종교였다. 종교도 이런 애국적인 종교라면 좋은것이지 무엇이 나쁘단 말인가.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반일의 길에 이끌어줄수 있다고 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곳에 며칠간 머물러계시면서 마을사람들과 사업하시였다. 특히 교주와의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그의 가슴속에 애국심과 일제에 대한 증오심이 간직되여있음을 헤아리시며 수령님께서는 그 애국의 넋에 불을 달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일제침략자들의 칼부림에 피흐르고있는 조선의 참상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면서 놈들을 그냥 두고서는 우리 인민이 결코 오늘의 불행과 고통에서 벗어날수 없으며 오직 일제를 때려부시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는 길만이 진정 민족의 행복을 가져오기 위한 참된 길이라는것을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남녀로소, 신앙과 정견을 가리지 말고 모두가 반일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하며 신을 믿어도 조선사람의 정신을 가지고 조선의 독립과 조선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종교인들의 심정을 리해하고 나라의 독립의 길을 함께 가자는 수령님의 진정에 감동된 마을사람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반일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천불교신자이건, 천도교신자이건, 그리스도교신자이건 어떠하랴. 문제는 그 어떤 종교인이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것이였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투쟁의 첫 시기부터 간직하고계신 신조였으니 그이께서 생애의 전 과정을 통해 종교인들을 아량있게 대하시고 너그럽게 포옹하신것은 그 어떤 정치적고려에서 나온 생색이거나 일시적인 전술적조치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을 믿으시고 소중히 여기신데서 출발한것이였다.

어찌 종교인들뿐이랴.

《리론가》로 자처하며 자기들의 《리상촌》만을 고집하던 오가자마을의 변로인도 독립운동의 선각자로, 마을의 좌상으로 존대해주시며 조선독립의 옳바른 길을 가르쳐주시는 수령님의 성품에 감동되여 마을을 혁명촌으로 꾸리는데 나서게 되였다. 일제의 리간책동으로 하여 서로 적대시하며 곁을 주지 않던 푸르허마을사람들의 얼어붙은 가슴도 마을에 《머슴》으로 들어가 참기 어려운 일들을 당하시면서도 그들의 불신을 해소시켜주신 수령님의 진정에 감동되여 봄날의 눈석이마냥 녹아내리고 온 마을이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나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을 믿고 그들속에 들어가시여 진행하신 정치사상교양사업은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청년학생들과 로동자, 농민들을 비롯한 각계각층 군중이 각성되고 조직된 력량으로 뭉쳐져 혁명의 대중적지반이 튼튼히 축성되여갔다. 이들의 단결된 힘에 의하여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과 일본상품배척투쟁, 악질지주반대투쟁, 추수투쟁 등 각종 투쟁이 승리적으로 진행되였고 이 소식은 국내에도 료원의 불길처럼 퍼져가 온 민족의 반일투쟁을 크게 고무추동하였다.

 

 6

□ 사랑과 믿음으로

 

1920년대 후반기에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력량은 각개분리되여있었다.

당시 민족주의운동자들은 반일투쟁을 한다고 하면서도 여러파로 갈라져 제가끔 행동하고있었으며 군자금이나 모으러 동분서주하면서 조선인거주지역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권력다툼을 일삼고있었다. 그런가 하면 공산주의운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여러 갈래의 종파집단을 뭇고 저마다 자기들이
《정통파》라고 하면서 다른 파를 제거하고 자파세력확장을 위하여 광분하고있었다. 그 과정에 피비린내나는 살륙전까지 벌어졌다. 권력싸움이나 파쟁은 사람들사이에 대립과 반목, 증오와 질시만을 야기시키고 대중을 사분오렬시킬뿐이였다. 그래서 군중은 소위 《운동자》들의 파벌싸움에 환멸을 느끼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사랑과 믿음으로 뜻과 마음을 합치고 사람들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묶어세우는 인간존중, 인간사랑의 화폭을 펼쳐나가시였다.

이 시기에 길림에서 일어번지는 혁명바람을 타고 국내와 일본, 연해주, 만주각지에서 반일독립에 뜻을 둔 청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들가운데는 독립군에 관계했던 청년들, 일본에 가서 고학을 하던 청년들도 있었고 로씨야땅에서 백파들과 싸우던 청년들,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광주폭동에 참가했던 청년들도 있었으며 일제의 추격을 피해 여기저기 숨어다니던 청년들도 있었고 레닌의 숭배자, 손문의 숭배자, 루쏘의 숭배자도 있었다. 또한 자산가출신의 청년들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들모두를 생사를 같이할 동지로 믿고 조직의 한 성원으로 받아들이시였다.

기성리론이나 기성의 경험을 보면 어느 나라에서나 무엇보다도 사회계급출신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들을 선발하고 일정한 조직원칙이나 행동규범을 기본으로 하여 집단의 통일을 보장하는것이 하나의 공식으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사람들을 묶어세우는데서 사회계급적처지가 아니라 조선독립의 지향과 투쟁의욕을 중시하시였고 그래서 동지적사랑과 믿음으로 대하시였다.

하다면 세계관에서나 혁명에 대한 태도에서나 사회정치생활경위에서 천태만상인 청년들의 무엇을 믿었는가. 그것은 그들이 지닌 조국애와 민족애, 인간애였다.

이에 대하여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재산의 유무나 대소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다. 사람을 평가하는 나의 기준은 그가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인민을 얼마나 사랑하며 조국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는데 있었다. 부자라고 하더라도 조국을 사랑하고 인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으로 보았고 무산자라 하더라도 조국애와 인간애를 지니지 못한 사람이라면 좋지 않은 사람으로 보았다. 한마디로 말하여 사상을 기본으로 하여 사람을 평가하였다.》

이렇듯 수령님께서는 사람을 평가하는데서 기본을 인간애와 조국애, 민족애로 보시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적 및 계급적해방을 위하여 투쟁할 각오가 되여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생사를 같이할 동지로 믿고 내세워주시였다.

그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차광수, 박소심을 비롯한 청년들에게 돌려주신 동지적사랑과 믿음은 조선혁명이 다름아닌 동지애로 개척되였음을 보여주는 력사적화폭이였다.

차광수는 견문도 넓고 리론수준도 높은 사람으로서 조선독립의 옳바른 길을 찾지 못하여 동양3국을 돌아다니면서 쓴맛 단맛을 다 본 청년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처음으로 만나는 그였지만 마음속에 간직한 깨끗한 조국애와 혁명적열정을 무엇보다 굳게 믿으시고 값높이 내세워주시였다.

하기에 차광수는 이국땅에서 찬비를 맞으며 걸어갈 때 자기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줄수 있는 옳바른 투쟁로선과 지도자를 목마르게 기다렸노라고 자기의 절절했던 심정을 터치면서 수령님께 《성주, 우리 서로 믿음과 사랑속에 공산주의운동을 할수 없을가? 분파와 헤게모니싸움이 없이 말이요!》라고 말씀올리였다.

이 말은 조선독립의 옳바른 길을 찾아 만리타향을 정처없이 헤매이던 끝에 그가 찾은 인생의 총화이며 교훈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터놓는 차광수의 손을 굳게 잡으시고 우리 새 세대들은 종파분자들처럼 분렬의 길을 갈것이 아니라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혁명의 곧바른 길을 가자고 고무해주시였다. 그리고 그에게 중요한 과업들을 맡겨주시며 크나큰 믿음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동지들에게 주신 사랑과 믿음, 그것은 령도자가 전사들에게 베푸는 관용이나 은총이 아니라 생사를 같이하는 사람들사이에 주고받는 혈연적인 사랑과 믿음이였다.

박소심은 독립의 진정한 길을 찾아 헤매다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듣고 머나먼 길을 달려와 수령님의 품에 안긴 지식청년이였다. 그런 그가 몹쓸 전염병에 걸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기좋고 조용한 곳에 초막을 짓고 그의 병치료를 위해 가능한 모든 조건을 보장해주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친히 그를 찾으시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그 병에 걸리면 가족과 친척까지 접근하기를 꺼려하였다. 그래서 그 누구의 따뜻한 간호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혼자서 외롭고 쓸쓸하게 고통을 겪다가 숨지고마는것이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의 가엾은 운명이였다.

이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계셨지만 수령님께서는 따라서며 만류하는 동지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를 찾으시였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버린다고 해도 자신께서만은 결코 버릴수 없었으며 병마의 손아귀에서 고통을 당하고있는 전사를 다시 투쟁대오에 세워주고싶으실뿐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건강을 념려하여 돌아가주시기를 거듭 간청하는 환자에게 일없다고 하시며 그를 진정시켜주시였다. 그리고 환자와 낚시질도 하시고 가지런히 누우시여 밤을 보내시며 온 하루를 그와 함께 지내시였다. 그이께서는 환자에게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함께 혁명을 하자고 고무도 해주시고 조직의 활동정형과 동지들의 소식도 알려주시며 그에게 생의 활력을 부어주시였다.

인간의 미덕인 의리에 대하여 쓴 많은 책을 읽었으며 그 세계를 끝없이 동경하여온 지식청년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과 같이 그렇듯 고결한 의리의 높은 경지에 오른분은 처음이였다.

젊으신 나이에 혁명의 령도자로 등장하시여 숭고한 도덕의리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는 박소심의 마음속에서는 심장의 터침이 뜨겁게 울리고있었다.

-내 비록 꺼꾸러져 혁명을 더 못하게 된다고 해도 그이의 곁은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리라.-

어찌 이들뿐이랴. 독립군출신인 최창걸, 공영, 현대홍, 박진영, 리제우, 계영춘, 일본인이 경영하는 무기상점에서 점원을 하던 최효일, 한때 파벌에 관계했던 허률, 지식청년 신춘, 오중화, 채수항, 오중성, 오빈 등 각이한 인생경로를 거쳐온 수많은 열혈청년들과 각계 인사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고결하고 불같이 뜨거운 사랑과 의리에 매혹되여 하나의 기치밑에 뭉쳤다.

동지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고결한 의리는 새 세대 청년혁명가들의 운명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왔을뿐아니라 1930년 7월 그 이름도 숭엄한 첫 당조직인 건설동지사를 탄생시켰다.

첫 당조직-건설동지사의 명칭은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의 첫걸음을 떼시였고 생사운명을 같이할수 있는 동지들을 찾아내고 묶어세워 혁명을 심화발전시키며 종국적인 승리를 달성하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포부와 의지를 담고있다.

이에 대하여 해방직후 남조선에서 발행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여져있다.

《…회덕에는 닉명단체 <건설동지사>가 생기였다. 김일성에 대한 기대와 이 단체들의 운동은 컸다. 열의 인, 정의 인인 김일성에 대한 민중의 지지도 컸다. 아니 지지라기보다 19세 소년혁명가 김일성은 완전히 민중의 친애하는 아들로서의 동생으로서의 사랑을 받았고 또 김일성은 그들 민중에게 대하여 진심으로 봉사할것을 심약하였다. 운동의 보무는 항상 민중과 같이하였고 주위의 동지들도 또한 민중을 떠난 가공적소위는 없었다.》(《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 1집 동방문화사 서울 1945년)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진실하고 숭고한 사랑과 믿음은 각이한 정견과 생활경위, 사회계급적출신의 청년들이 혁명조직에 스스로 들어오게 하는 사상정신적기초로 되였고 혁명에 대한 그들의 무한한 충실성과 헌신성을 분출케 하는 원천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은 그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돌려진것이 아니다. 애족, 애민의 넋을 천품으로 지니신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은 반일애국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돌려지는 광폭의 사랑과 믿음이였다.

1927년 2월 14일 《상해림시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있던 안창호가 길림에 와서 《조선민족운동의 장래》라는 제목으로 시국대강연을 할 때였다. 교포사회에서 명망이 높은 그였는지라 수령님께서도 큰 기대를 가지고 강연회에 참석하시였다. 그런데 강연회는 그이께 커다란 실망을 주었다.

이날 안창호는 강연에서 개량주의적인 실력양성론(준비론)을 들고나왔는데 그는 조선민족을 세계에서 정신적수양이 가장 낮은 민족이라고 하면서 우리 민족이 적어도 미국이나 영국사람들만큼 때벗이를 해야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수 있을것이라는 주장까지 하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강연내용에 깔려있는 민족개량주의적이며 투항주의적독소를 가려보지 못하고 그에 공감을 표시하며 안창호의 열변에 현혹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연을 듣다못해 더 참지 못하시고 연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종이에 써서 들이대시였다.

《- 산업과 교육을 진흥시켜 조선민족의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라를 일제놈들에게 통채로 빼앗긴 조건에서 그것이 이루어질수 있는가?

- 우리 민족을 정신수양이 낮은 민족이라고 했는데 어떤 점이 그러한가?

- 연사가 말하는 렬강이란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들인데 과연 우리가 그들을 본받아야 하는가? 또 우리가 그들의 <원조>에 의해서 독립을 가져올수 있는가?》

안창호는 자기주장의 부당성과 비현실성을 여지없이 론박한 서면질문을 내리읽고나서 한동안 멍청히 서있다가 서둘러 강연을 마무리짓고 연탁에서 내려왔다. 미국과 하와이, 상해, 만주 등 각지의 조선인거주지역들을 다니며 민족주의의 《대리론가》로, 이름난 웅변가로 소문을 낸 안창호도 수령님의 사리정연한 론박앞에서 더는 어쩔수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강연이 끝나갈무렵 일제의 부추김을 받은 중국반동군벌경찰과 헌병 수백명이 강연회장에 달려들어 안창호를 비롯한 300여명의 독립운동자들과 강연회참가자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의 이러한 탄압만행을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을 말살하려는 책동으로 락인하시고 조직을 발동하여 즉시에 대중적인 석방운동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창호의 체포를 두고 그토록 분개하시고 위험을 무릅쓰면서 석방운동을 벌리시자 적지 않은 사람들은 리해할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기웃거렸다. 안창호의 리론에 대하여 서면질문까지 들이댄 사람들이 왜 이번에는 그를 구원하지 못해 그렇게 애를 쓰느냐 하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문제시하신것은 안창호의 사상이였지 안창호란 인간자체를 반대하신것은 아니였다. 안창호도 조선사람이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애국지사였다. 그런 뜻에서 그이께서는 안창호를 존경하고 아끼시였다. 그이께서 안창호의 강연을 반박하신것은 그가 사대주의적이고 민족허무주의적이며 개량주의적인 립장에서 벗어나 나라를 독립하는 성스러운 투쟁에 더 적극적으로 투신해주기를 바라시였기때문이다.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안창호를 떠받들던 사람들도 겁이 나서 수수방관하고있을 때 결연히 석방운동에 나서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활동과 군중투쟁의 압력으로 하여 마침내 안창호를 비롯한 수감자전원이 석방되였다.

안창호는 그후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여서도 애국자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최후의 순간까지 꿋꿋이 싸웠다.

이처럼 주의주장이 다른 사람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굳게 믿고 서슴없이 손을 내미는것이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의 세계였다.

이와 같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초기혁명활동시기부터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들 누구나 모두 안아 불같은 사랑과 믿음, 고결한 의리로 단결의 새 력사를 수놓아가시였다.

 

 7

□ 모든 세력을 반일의 기치하에

 

혁명활동의 첫 시기부터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뜻을 같이할 동지들을 얻기 위해 애쓰시는 한편 조선독립의 길, 조선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며 피타는 사색과 탐구를 진행하시였다. 인민을 가장 지혜로운 선생으로, 스승으로 여기고 인민들속에 들어가 그들과 고락을 같이해나가시는 과정에 그이께서는 평범한 근로인민대중이 각성되기만 하면 참으로 큰 힘을 발휘할수 있으며 인민대중의 단결된 힘에 의거한다면 능히 자체의 힘으로 조선독립을 이룩할수  있다는 귀중한 진리를 체득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끊임없는 탐구과정에 마침내 인민대중은 혁명의 주인이며 따라서 혁명을 추진시키기 위해서는 인민대중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을 발동시켜야 한다는 원리, 자기 나라 혁명은 자기자신이 책임지고 자주적으로 벌려야 한다는 혁명원리를 발견하시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였다.

수령님의 사색과 탐구는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조선민족해방투쟁의 로선과 방침을 밝히는 문제로 이어졌다.

이러한 근본문제를 놓고 사색을 거듭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을 마침내 주체19(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된 카륜회의에서 하신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전면적으로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주체사상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밝히시였다.

《혁명투쟁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이 조직동원되여야 혁명투쟁에서 승리할수 있는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또한 조선혁명의 기본임무와 성격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하시였다.

《…조선혁명의 기본임무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독립을 달성하는것과 함께 봉건적 제 관계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있습니다.

조선혁명의 기본임무로부터 출발하여 현단계에서의 조선혁명의 성격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되는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의 기본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전략전술적문제로서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한 문제, 모든 세력을 반일의 기치밑에 결속할데 대한 반일민족통일전선문제, 자주적으로 혁명적당을 창건할데 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이것은 주체사상의 원리에 기초한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로선의 정립을 의미하였다.

주체사상의 창시와 주체의 혁명로선의 정립으로 우리 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은 력사상 처음으로 정확한 향도리념과 로선을 가지고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보고에서 중요한 전략적로선의 하나로 제시된 반일민족통일전선에 관한 사상은 무슨 힘으로 세계적인 군사강국이라고 하는 일제의 막강한 무력을 타승할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것은 다름아닌 전체 조선민족의 단합된 힘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원래 혁명은 인민대중을 해방하기 위한 투쟁인것만큼 광범한 인민대중이 참가하지 않고서는 승리할수 없습니다. 더우기 우리가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일제를 타승하고 전민족을 해방하려고 하는것만큼 일제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하나로 굳게 결속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로동자, 농민은 물론, 종교인, 량심적인 민족자본가에 이르기까지 반일적인 사상을 가진 모든 세력을 반일의 기치하에 굳게 결속하여야 합니다.》

원래 회의를 진행하기 전에 보고초안에 대한 대중적인 토의과정에 민족통일전선전략과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서도 론의가 분분하였다. 국제당의 일부 사람들이 중국에서 국공합작이 실패한것을 리유로 통일전선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밀몰아 개량주의자로 규정해버렸기때문에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을 제기하면 국제당의 립장에 도전하는것으로 인정될수도 있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론의에 대하여 신중히 대하시면서 남들이 만들어놓은 형식에 억지로 틀어맞출것이 아니라 설사 남들에게 없는 규정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나라의 실정에 부합되는 과학적인 규정이라면 그것을 서슴없이 선택할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시였다.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에 대한 그이의 주장은 우리 나라의 현실에 토대한 참으로 정당하고 과학적인것이였다.

세계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혹한 식민지통치하에 있던 당시 조선의 실정에서 조선인민이 당하는 고통은 극소수의 친일분자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례외로 될수 없는 범민족적인것이였다. 로동자들은 하루 12~14시간의 고역과 기아임금에 시달리고 농민은 60~70%에 달하는 소작료와 가렴잡세, 강제부역에 시달렸으며 항시적으로 기아선상을 헤매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태는 돈푼이나 있다는 계층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정이 비교적 유족하다고 하여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일본사람들의 로골적인 민족차별정책으로 그 지식을 살릴 길 없어 호구지책에 급급하였고 무엇인가 일판을 벌려보겠다고 안깐힘을 쓰던 민족자본가들도 항시적으로 도산과 파산의 운명에 직면하고있었다. 그런가 하면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탄압과 감시속에 있었다. 그 고통이 범민족적인것만큼 일제에 대한 증오도 또한 범민족적인것이였다. 누구나가 다 일제를 철천지원쑤로 증오하였으며 놈들을 이 땅에서 내쫓고 국권을 회복할것을 열원하였으며 그것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까울것이 없다는 심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활동하시면서 그것을 확인하시였다. 로동자, 농민은 말할것도 없고 일제를 증오하는데서는 지식인도 민족자본가도 종교인도 민족주의자도 다 같았다.

일제에 대한 범민족적인 증오, 반일감정이 한데 뭉치면 커다란 폭발을 일으킬것은 틀림없었다. 문제는 그 치렬한 반일감정을 하나로 집결시켜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전환시키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은 바로 반일독립을 지향하는 사람은 어떤 세력임을 막론하고 한대오가 되여 한전선에서 일제를 격멸하기 위한 공동투쟁을 벌린다는것이였다. 다시말하여 무산자와 유산자, 무신론자와 유신론자가 손을 마주잡으며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어깨겯고 나간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나라의 사회계급적 제 관계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반일을 지향하는 모든 계층들이 독립의 담당자로 등장하여 자기의 역할을 당당히 수행할수 있게 내세워주시였다. 여기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각계각층 군중을 력사의 주체로, 인민대중으로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민위천》의 지론을 또다시 확인할수 있다.

실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조선혁명의 진로》는 전민족의 대단결로 조국강산에 드리운 검은구름을 가셔내고 조선의 독립을 안아올 휘황한 등대이며 홰불이였다.

 

 8

□ 어두운 강산에 높이 솟은 태양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현명한 령도와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조선독립의 새로운 진로가 열리고 반일애국력량의 진정한 통일과 단결이 이룩되여나갔다.

주체조선의 새 력사가 개척되던 그 력사적시기에 청년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실 위대한 령도자로, 통일단결의 유일한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였다.

《ㅌ. ㄷ》의 결성으로 독립운동의 새 출발을 떼시고 사대에 물젖고 세력다툼만을 일삼는 기성의 모든 운동자들과는 달리 오직 인민의 힘을 믿으시고 인민에 의거하시여 투쟁의 새 길을 개척해나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인민들은 희망과 탄복속에 우러렀다.

그토록 위대하신분, 절세의 위인을 모신것은 조선민족이 받아안은 행운중의 행운이였고 자랑중의 자랑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령도자로 높이 모신 감격과 기쁨이 날로 커가는 가운데 그것이 바로 자기들만이 아닌 온 민족의 기쁨, 온 나라의 경사임을 절감하면서부터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생각은 더욱 깊어갔다. 온 겨레가 세기를 두고 갈망해오던 그러한 위대한분, 절세의 위인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더 높이 받들어모실수 있겠는가 하는데서였다.

수령님에 대한 열화같은 충정에 불타던 열혈전위투사들은 생각을 모으던 끝에 한없는 흠모와 기대를 담아 조선의 캄캄한 밤하늘에서 어둠을 몰아내고 새날을 안아오는 새별이라는 뜻에서 그이의 존함을 한별동지로, 그것을 한문자로 한 일자, 별 성자로 표기하여 부르기로 하였다.

한별동지, 이 존함에는 밤하늘에서 어둠을 밀어내고 새날을 불러오는 새별이 되여주기를 바라는 동지들과 인민들의 절절한 념원과 기대, 다함없는 신뢰의 정이 담겨져있었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헤매이던 조선인민, 간악한 일제의 압제밑에서 인간의 존엄과 자주성을 짓밟히운채 억눌리고 천대받던 인민이 애타게, 목마르게 기다린것은 과연 그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이 땅에 드리운 암흑의 장막을 밀어제끼고 재생의 빛을 뿌려줄 희망의 별, 향도의 별이였다. 향도의 별을 그리는 인민의 절절한 소망은 자기들을 구원해주고 행복한 미래에로 이끌어줄 위대한 령도자에 대한 갈망이였다.

독립의 옳바른 길을 밝혀주고 대중을 하나의 단합된 력량으로 묶어세워 승리에로 이끄는 현명한 지도자가 없었던탓으로 조선은 왜적의 칼에 맞아 갈기갈기 찢기였고 강토는 인민의 선혈로 물들어있었다.

민족의 존망이 생사기로에 놓여있던 이러한 시기에 수령님은 조선인민에게 있어서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희망의 별, 민족재생의 별이시였다.

하기에 열정적인 시인이며 재능있는 작곡가였던 혁명시인 김혁은 1928년 위대한 수령님을 조선의 향도성으로 맞이한 인민의 그 환희, 그 영광을 담아 불멸의 혁명송가 《조선의 별》을 창작하여 대중속에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

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캄캄한 밤하늘 바라다보니

신음하는 조국산천 어리여오네

변치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마음

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간악한 강도 일제 쳐물리치고

삼천리에 새별이 더욱 빛날제

조선아 자유의 노래부르자

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노래는 력사밖에 밀려나 국호마저 잃은 조선인민이 영명한 령도자를 모심으로 하여 그 누구도 업신여길수 없는 자주적인 인민이 되였음을 온 세상에 소리높이 구가한 긍지의 노래, 행복의 노래였다. 노래는 또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감정과 오직 그이께 자기 운명과 미래를 의탁하고 살아나가려는 아름다운 지향과 념원을 절절하게 반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젊은 사람을 그렇게 내세우는 법이 어디 있는가고 엄하게 책망하시며 노래를 부르는것을 굳이 만류하시였다.

이때 차광수는 조직성원들이 모인 가운데서 《조선의 별》을 보급하면서 절절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한별동지의 말씀이라면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었소. 그것은 우리들자신이 스스로 그이를 혁명의 령도자로, 통일단결의 유일한 중심으로 모실것을 결심하였기때문이요. 그러나 <조선의 별>을 부르지 말라는 그이의 말씀만은 받아들일수 없었소.

동무들! 생각해보시오.

지난날 조선의 공산주의자들과 애국자들이 어찌하여 온 강토를 붉은 피로 물들이면서도 참혹한 실패만을 거듭해왔는가.

그것은 혁명의 옳은 진로를 밝혀주고 대중을 하나의 단합된 력량으로 묶어세워 승리에로 이끄는 현명한 지도자가 없었기때문이였소. 뭉치려고 하여도 단결의 중심이 없었고 전진하려고 하여도 곧바른 길을 찾을수가 없었소.

그런데 암흑속에 신음하던 조국땅에 드디여 려명이 밝아왔소. 밤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새별처럼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는 지도자가 나타났소.

그이가 바로 우리모두가 한결같이 우러러따르는 김성주동지이시오.

그이이시야말로 조국해방의 새 아침을 불러오실 조선의 새별이시오.

그래서 우리는 김성주동지를 통일단결의 영원한 중심으로 모시고 한별동지로 부를것을 조직의 이름으로 결정하였소.

그리고 김혁동무가 <조선의 별>을 창작하자 모두 두손을 들어 환영하면서 이 노래를 널리 보급할데 대한 문제도 조직의 결정으로 채택하였소.》

하여 노래는 조직성원들뿐아니라 광범한 인민들속에 끝없는 희망과 신심과 투지를 안겨주며 널리 불리워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지들과 인민들의 사랑과 기대가 커갈수록 인민의 참된 충복이 되여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싸워나갈 결심을 굳히시였다.

수령님께서 가셔야 할 혁명의 길은 멀고 험난하였다.

그이께서는 옥중고초도 폭압의 광풍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새로운 길을 줄기차게 개척해나가시였다. 이 과정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앞날을 내다보면서 투쟁의 길에 나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발자취가 어리고 수령님의 령도가 미치는 곳이면 그 어디에서나 인민대중이 각성되고 혁명의 열풍이 일어났으며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존경과 신뢰의 정은 더욱 부풀어올랐다.

내도산마을사람들은 《조종의 산 백두산에 우리 백의동포의 운명을 건져주실 위인이 출현하시였다.》, 《우리 조선에 대통운이 텄으니 이제 나라가 독립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카륜사람들속에서는 《김성주선생님은 참으로 온갖 지략을 다 겸비하신분이시다. 그이의 령도를 받들어나가야 조선독립을 이룩할수 있다.》고 하면서 수령님을 끝없이 칭송하였다. 오가자사람들은 《물도랑 하나를 놓고 싱갱이질을 하던것이 어제일 같은데 온 료하농촌이 이렇게 단합을 하고 그처럼 기승을 부리던 지주놈도 무릎을 꿇게 만들었으니… 두고보게. 이제 그이는 온 조선땅을 오가자처럼 만드실걸세.》, 《캄캄칠야에 별이 하나 솟았지. 새별이 떴네. 새별이 뜨면 새날이 밝지.》라고 참된 령도자를 맞이한 기쁨을 표시하였다.

파벌분자들의 세력다툼으로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며 강가의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사람들을 반일의 기치아래 하나로 묶어세우신 수령님의 비범한 정치적식견과 원숙한 조직적수완앞에서 당대에 명성을 떨치던 인물들도 마음속으로 깊이 머리를 숙이였다.

오동진과 같은 명망있는 독립운동자들도 크게 감동되여 자기들에게 기대를 걸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진정 나라를 찾기 위한 투쟁에 나서려거든 김성주청년을 찾아가라.》고 권고하게 되였다.

이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의 정은 날을 따라 더더욱 깊어져 인민들속에서는 한별동지라는 수령님의 존함을 두고 장차 조선을 이끌고나가실 그토록 위대하고 존귀하신분을 어찌 새별에만 비기겠는가, 마땅히 온 누리에 빛과 열을 주고 만물에 생을 주는 태양에 비겨야 할것이라는 진정어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도고한 유지로 소문난 오가자의 변대우로인은 위대한 수령님의 고결한 인품과 탁월한 령도력에 머리를 숙이면서 김성주선생님을 잘 모셔야 하네,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구원하실분은 그이밖에 없네, 이제 두고보게, 그러니 그이를 어찌 별에만 비기겠나, 어두운 강산에 높이 솟은 태양이시네, 이를테면 일성(日成)이시지라고 진정에 넘쳐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그토록 바라고바라던 민족의 광휘로운 태양, 참다운 인민의 수령을 맞이한 겨레의 한결같은 마음이였다.

1930년 가을 어느날 차광수는 조선혁명군 성원들이 모인 기회에 중대한 문제를 하나 제기하겠다고 하면서 지금 오가자의 온 마을사람들이 한별동지를 우리 민족의 태양이라고 칭송하고있는데 이것은 오가자만이 아닌 길림과 카륜, 조선의 모든 겨레의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수령님을 절절히 흠모하고 따르는 인민들의 심정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온 겨레가 우러러따르는 위대한 한별동지를 어찌 새별에만 비기겠소. 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을 담아 김일성동지의 명함을 한 일자 별 성자대신 날 일자에 이룰 성자로 하여 김일성(金日成)동지로 할것을 제기하오.》라고 흥분에 넘쳐 말하였다.

우렁찬 박수소리와 함께 《대찬성이요! 절대찬성이요!》라는 목소리가 거듭 울려 방안은 삽시에 감격과 기쁨으로 설레였다.

태양으로 우러러 부르는 불멸의 존함 김일성동지!

인류력사에는 걸출한 위인과 이름난 지도자가 많았지만 위대한 수령님과 같이 동지들과 인민들로부터 태양의 존함을 받은 그러한 위인, 그러한 지도자는 일찌기 없었다.

진정 태양의 그 존함에는 태양처럼 휘황한 빛발로 시대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태양과 같이 따사로운 빛으로 인민들을 한품에 안아 키우시며 찬란한 빛발로 민족재생의 서광을 안아오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조선인민의 절대적인 신뢰와 크나큰 기대, 다함없는 흠모의 정이 어리여있었다.

태양의 존함에는 또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혁명의 전위투사들로 자라난 청년공산주의자들이 그이를 민족의 태양으로, 해방의 구성으로 높이 우러러모시고 그이께 자기의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며 결사옹위해나가려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이 담겨져있었다.

조선의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을 령도의 중심, 단결의 중심으로 모시였다.

김일성! 그이의 사상은 조선독립의 앞길을 밝혀주는 태양의 빛이였고 그이의 령도는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뿐아니라 전체 조선인민을 조직적으로 결속할 열이였으며 그이의 인품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만시름을 놓고 안길수 있는 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령도의 중심, 단결의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혁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한 투쟁에 한몸바친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조직의 생명으로 내세운 통일단결에 해를 줄수 있는 사소한 요소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감옥과 교수대로 끌려가면서도 수령님과 맺은 동지적의리와 언약을 목숨으로 지켰다. 그리고 다음세대의 혁명가들에게 그것을 재보로 넘겨주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이들의 뜨거운 충정에 의하여 마련된 일심단결의 전통에 대하여 감회깊게 회고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내가 나이도 어리고 투쟁경력도 짧았지만 그들이 나를 내세우지 못해 그처럼 애쓴것은 통일단결의 중심도 없이 각당, 각파가 저마끔씩 영웅호걸행세를 하면서 파쟁으로 혁명운동을 말아먹던 전 세대의 운동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고 나라를 찾자면 2천만 민중이 합심해야 하며 2천만 민중을 한마음한뜻으로 뭉치게 하자면 령도의 중심, 통일단결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기때문이였다.

내가 김혁, 차광수, 최창걸과 같은 사람들을 그토록 사랑하고 잊지 못해하는것은 그들이 나에 대한 노래를 짓고 나를 지도자로 내세워서가 아니다. 바로 그들이 우리 민족이 그처럼 절절하게 바라면서도 실현할수 없었던 통일단결, 우리 인민의 자랑이고 영광이며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인 참다운 통일단결의 시원을 열어놓고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에서 령도자와 대중의 일심동체를 이룩한 통일단결의 새 력사를 피로써 개척한 선구자들이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교시하신바와 같이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의 력사적공적은 바로 민족해방운동사에 처음으로 지도자를 내세우고 그 지도자를 핵으로 하여 동지적사랑과 의리에 기초한 대오의 통일단결을 이룩한 그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넋과 전통을 창조한데 있다.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혁명의 수령으로 내세우고 그이의 두리에 한마음한뜻으로 뭉쳐 혁명투쟁을 전개한 때로부터 파쟁과 혼란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단결의 새 력사가 개척되였으며 조선인민의 민족해방투쟁과 조선혁명은 새로운 장을 펼쳐나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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