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 장군복, 인민복

 

 

2

《우리 인민은 정말 좋은 인민입니다》

 

선군의 기치밑에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시련을 헤쳐오는 나날에 군대와 인민은 령도자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치였다.

선군시대에 이 땅에 펼쳐진 류례없는 군민대단결은 령도자와 인민의 혼연일체에 기초한 세상에서 가장 공고한 통일단결이며 그 어떤 천지풍파도 뚫고나갈수 있는 무한대의 힘을 지닌 불패의 통일단결이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에 산천초목도 슬피 울던 비분의 그 나날 비내리는 만수대언덕에서, 고난의 행군, 강행군길을 함께 걸으며 김정일장군님과 인민은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의리와 하늘같은 믿음으로 더욱 굳게 결합되였다.

시련의 그 나날 경애하는 장군님을 열렬히 숭배하고 따르는 인민의 숭고한 사상감정은 더더욱 세차게 분출되였다.

어버이수령님 서거 한돐을 하루 앞둔 주체84(1995)년 7월 7일이였다.

이날 금수산기념궁전을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래일이면 금수산기념궁전개관을 온 세상에 선포하겠는데 아직 궤도전차 시운전을 보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몸소 시운전중에 있는 궤도전차에 오르시였다.

그이를 모신 궤도전차는 궁전앞 종점을 떠나 경쾌하게 달리기 시작하였다. 궤도전차가 삼흥역을 가까이 하고있을 때였다. 차창밖에서 《장군님이시다!》 하는 웨침소리가 나더니 일시에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이어 주변에서 지대정리를 하고있던 대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군중이 두손을 높이 들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 만세!》를 목청껏 부르며 궤도전차로 달려왔다.

궤도전차안에서 일군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갑자기 펼쳐진 이런 광경앞에 마음이 격해지시였다.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신 장군님께서는 달리는 차창너머로 손을 흔드시며 인민들과 상봉하시였다.

끝없이 물결쳐오는 사람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장군님! 부디 건강하십시오.―》

《우리는 장군님만 믿고 삽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격정으로 하여 끊어졌다이어졌다 하는 이런 웨침을 눈으로, 심장으로 들으시였다.

이젠 그만들 하라고, 그러다 넘어지겠다고 장군님께서는 손저어 만류하시는데 앞을 보지 않고 장군님만 보며 달려오던 한 소년은 정말 꽃나무에 걸려 어푸러지고말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나 종주먹을 부르쥐고 그냥 달려왔다.

궤도전차가 룡흥돌이장을 거쳐 다시 금수산기념궁전쪽으로 향하였을 때 공원에서 일하던 사람들뿐아니라 장군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숨가삐 달려온 군중들까지 합쳐져 환호성은 더 높이 터져올랐다.

궤도전차가 삼흥역을 지났을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아직도 뒤에서 계속 터져오르고있는 인민들의 환호성을 들으시며 갈리신 음성으로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이라고, 저런 인민과 함께 숨쉬며 일하고있다고 생각하니 혁명을 더 잘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인민들과 떨어지는것이 아쉬우신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시였다. 그것은 정녕 령도자와 인민의 혼연일체의 참모습을 감동깊이  보여주는 력사적화폭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금수산기념궁전개관식이 성대히 거행된 다음날인 7월 9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이틀전에 있었던 광경을 돌이켜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녀성들과 아이들, 대학생들을 비롯한 각계층 군중이 궤도전차가 있는데로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면서 달려왔는데 그들의 눈빛에는 자기 령도자를 따르는 진심이 어려있었습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우리 인민들이 정말 좋은 인민이라는것을 다시금 느끼였습니다.》

새기면 새길수록 감동을 금할수 없는 말씀이였다.

장군님의 이 말씀에는 이런 훌륭한 인민을 믿고 그들의 무궁무진한 힘에 의거하여 주체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시려는 불변의 신념과 의지가 굽이치고있었다.

고난의 행군의 엄혹한 시련의 시기 인민들은 조국과 인민의 번영을 위해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룩하신 영상을 우러르며 얼마나 위대한분을 령도자로 모시고있는가를 철의 진리로 새기였다. 하기에 인민들은 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흠모의 정을 안고 그이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으며 령도자를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될 철석의 신념을 안고 당이 바라는 어렵고 힘든 초소에 앞을 다투어 달려가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였다. 인민의 가슴속에 맥맥히 흐르는 충정의 대하는 장군님을 만나뵙는 영광의 시각에 격랑이 되고 파도가 되여 활화산으로 폭발하였다.

머나먼 두메산골까지 찾아오신 장군님을 우러러 남녀로소 모두가 떨쳐나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랑림군 인민들, 적의 총구가 지척인 판문점까지 찾아오신 장군님을 우러러 소리없이 두팔을 높이 쳐들고 눈물로 만세를 대신하던 판문점군인들, 열병식과 군중시위장들마다에서 장군님을 우러러 목청껏 만세를 부르며 눈굽을 적시던 군민의 감동어린 모습들…

그것은 정녕 이 세상 그 어느 민족, 그 어느 인민에게서도 찾아볼수 없는 진실하고 꾸밈없는 수령숭배, 수령흠모의 대화폭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주 일군들에게 우리 인민은 자기의 수령을 흠모하고 받드는 사상감정과 정신도덕적풍모가 세계 그 어느 나라 인민들과도 대비할수 없이 고상한 인민이라고, 우리는 우리 인민에게 《위대한》이라는 말을 붙여야 한다고 거듭 뇌이시면서 인민들에 대한 크나큰 기대와 절대적인 믿음을 표시하시였다.

주체90(2001)년 4월 어느날 황해남도의 토지정리현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안악군 어러리벌과 삼천군 전진벌을 비롯한 도내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해종일 바람세찬 서해벌판에 계시였다.

올망졸망하던 뙈기논밭들이 가뭇없이 자취를 감추고 대신 무연한 바다를 련상시키는 거대한 포전들이 눈뿌리 아득하게 펼쳐져있는 광경은 참으로 볼만 하였다.

그날 위대한 변혁의 시대가 안아온 사회주의농촌의 새로운 모습을 이윽토록 굽어보시며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일군들은 토지정리의 나날 황해남도땅에 꽃펴난 건설자들의 영웅적위훈과 가지가지의 미담들에 대하여 보고드리였다.

돌이켜보면 토지정리사업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시작된 가장 거창한 일이였다.

허나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라면 산도 떠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우리 군대와 인민은 모든 시련과 난관을 박차고 이 땅을 사회주의농촌의 땅답게 전변시켜나갔다.

기계가 모자라면 등짐을 져서라도 기어이 새땅을 안아올려야 한다고 하면서 어깨에 멍이 들도록 흙을 져나르며 낮이나 밤이나 들에서 산 돌격대원들, 일년 열두달 불도젤에서 떠나지 않고 마지막포전까지 내밀고 쓰러진 이름없는 운전수, 전투장에서 순직한 남편의 뒤를 이어 목도채를 메고 눈물이 아니라 땀을 뿌리며 가정의 행복도 인생의 꿈도 어머니조국의 래일을 위해 묵묵히 묻어간 평범한 녀인…

애오라지 경애하는 장군님을 새로 정리된 포전에 모실 영광의 그날을 그리며 초인간적인 힘과 의지로 력사의 기적을 창조한 충직하고 용감하며 성실하고 순박한 그 모든 건설자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대로 경애하는 장군님께 삼가 드리는 인민의 영웅서사시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건설자들의 미담을 귀담아들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맺히였다.

이 세상에 가장 인민을 사랑하시고 가장 인민을 믿고계시며 가장 심장이 뜨겁고 인정이 깊으신 장군님의 심중에 그 시각 용암마냥 끓어번지고 대하마냥 굽이친것이 무엇이였던가.

무연한 대지에 시선을 박으신채 묵묵히 일군들의 말을 듣고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윽고 갈리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을 떼시였다.

《우리 인민은 정말 좋은 인민입니다. 인민들은 대를 이어 수령복, 장군복을 누린다고 하지만 우리는 인민복을 누리고있습니다.》

천만뜻을 담아 하시는 그이의 말씀은 지축을 울리는 무게를 안고 저력있게 울리였다.

온 세계가 놀라는 위대한 전변의 기적을 이 땅에 안아오신분은 다름아닌 자신이시건만 그 주인공을 인민으로 높이 내세우시며 자신께서 기울이신 심혈, 자신께서 이룩하신 그 업적과 공헌에서 명예나 영예가 아니라 인민복, 바로 그것을 찾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

세상에 나라도 많고 나라마다 인민이 있고 지도자가 있지만 김정일장군님과 같이 인민을 존대하고 인민을 믿으며 인민복을 자랑하는 령도자는 동서고금에 있어본적이 없었다.

그런분이시기에 장군님께서는 그날 우리 인민과 같은 이런 좋은 인민을 배반한다는것은 가장 큰 죄악으로 된다고 하시면서 나는 영원한 인민의 숭배자로 한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칠것이라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이의 이 말씀은 우리 인민에 대한 또 하나의 위대한 사랑의 표시였으며 영원한 믿음과 신임, 기대와 확신의 분출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장 귀중히 여기시며 높이 자랑하시는 인민복, 그것은 오직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진정한 인민의 령도자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느끼시고 영원히 지니실수 있는 만복이다.

당과 수령께 무한히 충실하고 용감하고 순결한 오늘의 우리 인민을 낳은것은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사랑과 령도를 떠나서 어찌 조선인민의 오늘과 같은 성장과 위용을 생각할수 있을것인가.

위대한 선군의 조국, 사회주의 내 나라에서만 만발할수 있는 인민복, 그것은 수령복, 장군복이 낳은것이다.

바로 그럴진대 인민이 누리는 수령복, 장군복은 뒤전에 두시고 우리는 인민복이 있다고 하시며 인민을 위해 한생을 바칠것이라고 하시는 장군님의 인민사랑의 풍모야말로 얼마나 뜨겁고 열렬한것인가.

이러한 인민적수령을 어버이로 모시고있기에 인민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 자기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그이께 일편단심 충정을 다하고있는것이다.

참으로 령도자는 인민을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고 인민은 령도자를 절대적으로 숭배하고 따르는 위대한 혼연일체, 사랑과 믿음의 혈연적관계가 훌륭히 구현되고 날을 따라 활짝 꽃펴나고있는 이것이야말로 선군시대 일심단결의 참모습이다.

 

 

3

□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에

 

민족의 대국상이후 조선인민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에 하루빨리 모실것을 열망하였다. 인민들의 이러한 소망을 담은 편지를 중앙과 지방, 공장과 농촌, 전연초소로부터 매일과 같이 당중앙위원회에 보내여왔다. 이것은 장군님께서 뛰여난 예지와 로숙하고 세련된 령도로 당과 조국앞에 이룩해놓으신 위대한 업적을 놓고볼 때 너무나도 응당한것이였다.

그러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전당, 전군, 전민의 뜨거운 추대열망을 자신에 대한 더없는 신임과 기대로 여기실뿐 《우리는 추대사업을 놓고 신경을 쓸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옹호고수하고 빛나게 계승완성하겠는가 하는데 대하여서만 머리를 써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수령님께서 걸어오신 혁명의 한길로만 변함없이 걸어가야 하며 수령님의 위업을 수행해나가는데 모든 힘을 집중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시며 추대사업을 뒤로 미루시였다.

그이께서는 한없이 숭고한 도덕의리로부터 출발하시여 추대사업을 100일이나 1년도 아닌 3년을 넘기시며 오직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위업을 빛나게 계승해나가기 위한 사업에 온갖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로씨야를 비롯한 동유럽나라들과 서방의 부르죠아정객들까지 공화국에서 당과 국가수반추대행사를 옹근 3년이 넘도록 미루어오는것은 《세계정치사에 전무후무한 일》, 《정치계는 물론 실업계인물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변》, 《선대수령에 대한 세계적인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인륜도덕》이라고 평하였다.

이 기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위업을 빛나게 계승완성해나갈수 있는 정치사상적진지를 반석같이 다지시고 혁명의 기둥이며 주력군인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시였으며 선군의 기치밑에 전당, 전군, 전민을 일떠세워 고난의 행군을 승리에로 이끄시였다.

그 나날에 당과 인민의 걸출한 령도자, 세련된 정치가로서의 김정일장군님의 풍모가 더욱 뚜렷이 과시되였고 그이에 대한 군대와 인민의 신뢰는 절대적인것으로 되였다. 장군님을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에 모시려는 군민의 열망은 날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졌다.

추대사업은 더는 미룰수 없는 전당적, 전인민적지향과 요구로 나서게 되였으며 이에 따라 김정일장군님을 조선로동당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는 사업이 전당적으로 진행되게 되였다.

1997년 9월 21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우리 당의 총비서로 모실데 대한 문제를 토의결정하는 조선로동당 평안남도대표회가 평성시에서 첫번째로 열리였다. 이리하여 장군님을 조선로동당의 총비서로 높이 모시는 경사의 첫막이 올랐다.

이어 조선로동당 조선인민군대표회가 열리였고 평양시와 함경남도, 평안북도, 함경북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자강도, 강원도당대표회들이 련일 진행되였다. 10월에 들어가서도 조선로동당 량강도, 남포시, 개성시대표회들이 각각 진행되였다. 한편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성, 중앙기관 및 도당기능을 수행하는 당조직들의 대표회가 같은 의제를 가지고 련속 진행되였다.

회의장마다에서는 장군님에 대한 인민의 다함없는 신뢰와 흠모의 정이 끝없이 차고 넘치였다.

앞을 다투어 연단에 뛰여나와 절세의 위인이신 김정일장군님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높이 모시는것을 열렬히 지지하는 대표들의 열정넘친 목소리며 회의장이 떠나갈듯 한 열광적인 박수소리…

그것은 장군님에 대한 조선인민의 절대적인 지지의 표시였으며 그이의 령도따라 이 땅에 기어이 사회주의지상락원을 일떠세울 불타는 신념의 분출이였다.

당대표회들에서는 해당 지역과 단위안의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의 한결같은 의사와 념원을 반영하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모실데 대한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그처럼 고대하고 열망하던 력사적사변을 맞이한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군인들, 인민들은 환희로 들끓었다. 당대표회 회의장마다 크나큰 격정과 환희가 차넘치고 대표회소식을 들은 일터와 훈련장, 가정과 출퇴근길에서도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조선로동당의 총비서로 하루빨리 모시려는 당원들과 인민들의 불타는 열망과 당대표회들의 결정에 접한 환희의 폭발은 그대로 걸출한 령도자를 모신 위대한 혼연일체의 대화폭이였다.

그 시각 수많은 력사가, 문필가들이 이 땅 그 어데서나 들을수 있는 《만세!》의 환호성에 열혈의 심장을 적시면서 절세의 위인 김정일장군님을 조선로동당의 총비서로 높이 모시는 크나큰 영광의 체험자, 기록자가 된 비길데 없는 자부를 자자구구 새겨가고있었다.

한 시인은 시 《환호성》에서 끓어오르는 격정과 환희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내 오늘

안기에는 너무도 작은 이 가슴이건만

하늘같은 환희와 감격을 안고 말하노니

조선은 환호성이 넘치는 나라다

또다시 조선의 환호성이 터졌다

주체의 년대와 년대를 넘으며

우리 장군님을 령도자로 높이 모셔온

그 절대의 신뢰와 숭배심이

3년세월 마음에 쌓이고쌓인

우리의 소원이 오늘에야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우리 당의 총비서로

높이 모시게 된 환호성으로 터져

또다시 조선의 하늘땅을 진감한다

 

주체86(1997)년 10월 8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높이 모시였음을 선포하는 특별보도를 발표하였다.

우리 당과 인민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높이 모신 방식은 정당사에 일찌기 없었던 독특한 방식이였다.

력사에 로동계급의 첫 당이 출현한 때로부터 한세기가 훨씬 넘는 장구한 기간에 수많은 공산당, 로동당들에서 당수반을 선출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 계기와 형식, 방법은 각이하였으나 중앙적인 회의들에서 선거하고 결정하는 실무적인 방식으로 당수반을 내세우는것이 관례로 되여있었다. 사회주의집권당들의 경우에도 선대수반이 사망하면 이러저러한 비상회의들을 열고 즉시 당수반을 내세웠다.

당의 수반을 내세우는 사업에서 존재한 온갖 관례에 구애됨이 없이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의 앙양된 정치적열의와 드높은 혁명적분위기속에서 우리 식으로 김정일군님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모신것은 온갖 풍파와 시련을 헤쳐나가는 오랜 력사적행정에서 령도자와 인민이 사상의지적, 도덕의리적으로 혼연일체를 이루고있었기때문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조선로동당의 총비서로 높이 모신것을 축하하여 전국각지에서 경축대회와 경축집회들이 련이어 진행되였고 경축무대가 펼쳐졌다. 경축대회와 경축집회, 경축무대들에서는 장군님을 당의 총비서로 모신것은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군인들, 인민들의 념원이 실현된 력사적사변이라고 격찬하면서 그이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며 당, 군대, 인민의 일심단결을 철통같이 다져나갈 결의를 다지였으며 영광의 새시대를 확신하는 충정의 송가들이 소리높이 울리였다.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도 경애하는 장군님을 열렬히 축하하였다.

온 나라가 크나큰 격정과 환희로 들끓고있던 그 시각 장군님께서는 변함없이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다.

력대로 그 어느 나라에서나 당과 국가수반선거전야에는 최고관직을 차지하기 위한 치렬한 경쟁으로 하여 수많은 비화들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념원에 의하여 당수반을 모신 사실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그 시각에도 령도자가 오직 인민의 행복과 조국의 번영에 대해서만 생각하시며 현지지도의 길에 나서신 사실은 인류정치사의 그 어느 갈피에도 찾아볼수 없는 희한한 일이였다.

이것은 령도자와 인민이 일심단결된 조선의 참모습을 뚜렷이 과시한 일대 경사였으며 아울러 조선이 고도의 정치적안정과 특유의 정치문화, 리상적인 정치풍토를 가진 나라임을 다시금 확인시킨 정치적사변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에 높이 받들어모시려는 인민의 열화같은 충정의 마음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서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높이 모신 후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은 그이를 공화국의 최고수위에 추대할것을 열렬히 갈망하였다.

드디여 기다리던 시각이 왔다.

1998년 5월 2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결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실시함에 대하여》가 발표되였다.

그러자 온 나라는 삽시에 환희로 들끓었으며 전국각지의 인민들로부터 김정일장군님을 자기 선거구에 모시게 해달라는 청원이 중앙선거위원회에 수없이 올라왔다.

고창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은 《저는 꿈결에도 잊지 못하는 우리 장군님을 뵈옵게 되면 1950년대에 저의 시어머니가 위대한 수령님께 말씀드렸던것처럼 장군님, 우리는 오직 장군님만을 믿습니다라고 인민들의 절절한 심정을 말씀드리고싶습니다. 그러니 우리 장군님을 이번 선거때에는 꼭 우리 농장에 모시도록 해주십시오. 간절한 소원입니다.》라고 하였다.

성진제강련합기업소의 로동계급은 또 그들대로 장군님께서 새로운 천리마대고조의 봉화를 지펴주신 성강의 로동계급과 가족들이 응당 그이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후보자로 높이 추대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선거위원회에 정식 제기하였다.

전국의 모든 선거구들에서 그러한 청원이 련일 제기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후보자로 추대하는 제666호선거구 인민무력부 선거자대회에서는 전체 선거자들의 일치한 념원과 절대적인 지지찬동으로 장군님을 자기 선거구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후보자로 높이 추대하였다. 련이어 전국의 모든 선거구들에서 그이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후보자로 추대하는 선거자회의가 앞을 다투어 진행되였다.

이렇게 자기들의 선거구에서 김정일장군님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후보자로 추대하고싶어하는 인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고조를 이루던 7월 12일, 장군님께서는 《전국의 모든 선거자들에게》라는 공개서한을 보내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공개서한에서 전체 선거자들이 자신에게 높은 신임을 표시하여준데 대하여 뜨거운 감사를 표시하신 다음 이렇게 지적하시였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인민의 신임을 받으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것보다 더 큰 영예와 행복은 없습니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숭고한 애국애민의 사상을 받들어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헌신함으로써 인민들의 높은 신임과 기대에 보답할것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각급 인민회의 대의원선거법에 따라 대의원후보자는 한개 선거구에만 등록하게 되여있으므로 나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선거를 위한 제666호선거구에 대의원후보자로 등록하기로 하였습니다.》

7월 14일 중앙선거위원회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제666호선거구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후보자로 정중히 등록하였음을 발표하였다.

주체조국의 력사에 길이 아로새겨질 주체87(1998)년 7월 26일 전국의 모든 선거장들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선거가 일제히 진행되였다.

이날 전국의 모든 선거구들에서 외국에 나가있거나 먼바다에 나가 일하고있는 선거자를 제외한 99. 85%의 선거자들이 선거에 참가하였으며 선거자 100%가 등록된 대의원후보자들에게 찬성투표하였다.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선거를 위한 제666호선거구에서는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온 나라 인민들의 커다란 관심속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하는 뜻깊은 선거가 진행되여 100% 찬성투표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날에도 어느 한 인민군부대를 시찰하시여 그곳 장병들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참가하신후 군부대시찰을 계속하시였다.

1998년 9월 5일 평양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는 온 나라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한결같은 의사와 념원을 반영하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하였음을 내외에 엄숙히 선언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중임을 계속 맡으시고 국가의 최고리익을 수호하는 국방사업을 이끄시는것은 오랜 혁명투쟁실천속에서 장군님의 위대성을 깊이 절감하고 절대적인 신뢰심을 지닌 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였다.

당과 수령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받드는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의 적극적인 참가밑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선거는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친 조선인민의 불패의 힘, 철벽으로 다져진 공화국의 정치사상진지의 위력을 다시한번 온 세상에 과시한 력사적사변으로 되였다.

조선의 군대와 인민은 그 이후에 진행된 대의원선거들에서도 경애하는 장군님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변함없이 추대함으로써 령도자의 두리에 굳게 뭉친 일심단결의 위력을 온 세상에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4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2002년 평양을 방문하여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였던 어느 한 나라의 예술인은 하나의 극적인 사실을 체험하였다.

조선인민군창건 70돐을 뜻깊게 경축한 경사로운 밤 홰불행진에 참가한 조선청소년들이 행진이 끝난 뒤에도 노래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을 합창하며 김일성광장을 떠나지 못하는것이였다.  그 눈물겨운 장면을 뜨거운 격정속에 목격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고난을 겪은 뒤 다른 나라 같으면 이런 요란한 군중시위는커녕 초보적인 사회질서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규모의 열병식과 홰불시위까지 진행하고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더우기 자기의 령도자를 그리는 노래를 부르며 광장을 떠나지 못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눈물이 나서 볼수 없다. 나는 조선의 진짜힘이란 바로 령도자와 인민이 한마음, 한모습으로 혼연일체를 이룬 통일단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언제나 마음속에 그리며 삶의 순간순간을 빛내여나가는것, 바로 이것이 오늘 공화국에 펼쳐진 또 하나의 사회적풍경이다.

그리움은 인간의 가장 순결하고 진정어린 감정정서로서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를 대하는 인민들의 충정의 뚜렷한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움은 마음을 지어먹는다고 하여 생기는것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 인간적인 매혹에서 우러나오는 심리이다.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매혹의 감정이 없이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를 그리는 진심이 생겨날수 없는것이다.

선군시대는 력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령도자에 대한 조선인민의 열화와 같은 충정과 한없이 고결한 그리움의 정을 폭발시켰다.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이 노래에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군대와 인민의 한없는 그리움의 정신세계가 담겨져있다.

 

북두칠성 저 멀리 별은 밝은데

아버지장군님은 어데 계실가

창문가에 불밝은 최고사령부

장군님 계신 곳은 그 어데일가

 

 

자애로운 어버이사랑을 전하며

아침해빛 전사들의 길을 밝히네

장군님 계시는 최고사령부

기어이 기어이 찾아가리라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을 그대로 담은 이 노래는 장군님의 두리에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친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의 시대적메아리이다.

조선의 군대와 인민은 이 노래를 부르며 고난과 시련을 이겨냈고 생산과 건설을 다그쳤다. 조국보위초소와 사회주의건설장 그 어디서나 울려퍼진 이 노래는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고 그들을 기적과 위훈에로 고무하였다. 준엄한 날에나 영광의 날에나 이 노래는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잠시동안 외국방문의 길에 오르시였을 때에도 인민들은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그 거룩한 자욱자욱을 마음속으로 따랐다.

주체90(2001)년 여름 경애하는 장군님의 로씨야련방에 대한 방문은 김정일장군님과 인민간에 오고가는 그리움의 세계가 얼마나 절절하고 뜨거운것인가를 눈물겹게 보여주었다.

7월 26일, 이날 신문과 방송들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뿌찐대통령의 초청에 의하여 로씨야련방을 방문하시게 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간명하고 소박한 한문장의 보도였지만 인민들이 받아안은 충격은 컸다.

우리 장군님께서 왜 년중 제일 더운 때에 외국방문의 길에 오르실가, 다른 나라 국가수반들에게는 이 계절이 휴양계절이라는데 우리 장군님께선 이렇게 로고를 하셔야 하는가. 삼복중에서도 제일 참기 어려운 중복때에 외국방문을 떠나시는 장군님의 안녕이 념려되여 인민들은 안타까움에 눈굽을 적시였다. 그러나 장군님을 모신 렬차는 이미 폭양이 내려쪼이는 무더위속을 헤치며 로씨야땅에 들어섰다.

그이의 로씨야방문과정에 인민들은 그리움의 정을 폭발시켰다.

장군님께서 로씨야에 대한 방문의 길에 오르시였다는 보도가 나가자마자  병원들에서는 《장군님께서 우리를 믿고 머나먼 길을 떠나시였는데 내가 어떻게 병원에 누워있을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구급환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환자들이 퇴원하여 자기 초소로 돌아갔으며 상급에서부터 귀대명령을 하달한것도 없고 조직적으로 포치한 일도 없었지만 표창휴가를 갔던 인민군군인들은 스스로 부대로 돌아와 전호가에 섰다.

누구나 서로 만나면 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으며 인민군초소들과 도시와 농촌, 이르는 곳마다에서 장군님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과 《장군님 안녕히 다녀오시라》의 노래소리가 끊임없이 울려나왔다.

장군님은 지금 어디에 계실가.

그이께서 가시는 길에 비가 내리지 않는지, 무덥지는 않는지 하고 마음을 쓰는 한결같은 심정들이 한곬으로 쏠려 기상수문국에 로씨야의 날씨를 문의하는 전화들이 련일 그칠새없이 걸려왔다.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의 정은 온 나라 인민을 기적과 혁신에로 불러일으켰다.

온 나라가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 로력적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불도가니마냥 들끓었다.

《외국방문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충정의 보고를 드리자》, 이것은 장군님의 로씨야방문기간에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끓어번진 한결같은 지향이였고 억센 맹세였다.

김철의 로동계급이 장군님의 로씨야련방공식방문소식에 고무되여 생산공정의 기술개건과 현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갈 때 개천지구탄광련합기업소의 로동계급은 새로 수백만t의 탄밭예비를 찾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의 로동계급은 장군님께서 전해에 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주신 과업을 앞당겨 실천하고 그이께서 돌아오실 날만을 기다렸다. 태천군 한드레벌과 안변군 풍화협동농장의 농장원들을 비롯한 각지의 농업근로자들이 삼복의 무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정력적인 대외활동의 길을 이어가시는 장군님께 훌륭한 농사작황을 보여드리기 위해 온갖 지성을 다 바쳤다. 과학자, 기술자들은 이 기간에만 하여도 강성대국건설에 이바지할 훌륭한 과학연구성과들과 기술혁신안들을 수많이 내놓았다.

생산과 건설에서뿐이 아니였다.

외국방문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장군님께 기쁨드릴 불타는 열망을 안고 계순희선수가 2001년 세계유술선수권대회에서 영예의 제1위를 쟁취하고 주체조선의 존엄과 영웅적기개를 온 세상에 높이 떨치였다.

이렇게 온 나라가 대외활동의 길을 걷고계시는 장군님에 대한 충정으로 달아오르고있는것과 때를 같이하여 조국의 모든 신문, 방송, 통신이 일제히 경애하는 장군님의 로씨야방문소식을 대서특필하여 보도하였다.

조로모스크바선언의 채택, 뿌찐대통령과의 상봉과 단독회담, 레닌묘방문, 무명전사묘방문 등의 소식이 사진과 함께 TV방송으로 여러차례에 걸쳐 상세히 보도되였다.

자나깨나 어버이장군님의 안녕만을 학수고대하던 인민들은 TV화면에서 건강하신 몸으로 대외활동을 정력적으로 벌려나가시는 그이의 모습을 뵈옵고 환호를 올리며 격정을 터치였다.

이 삼복의 무더운 날씨에 조국을 위하여, 인류의 자주위업을 위하여 바치시는 장군님의 로고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사람들은 저저마다 흥분된 심정으로 토로하였다.

시내의 곳곳에, 기관, 기업소마당들에 장군님의 로씨야방문 로정도가 게시되였다. 인민들은 그앞에서 도시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장군님을 모시고 달리는 렬차의 진동에 자기들의 심장의 박동을 맞추었다.

이렇게 온 나라 인민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그리며 격동의 날과 날을 보내고있을 때 그이께서도 떠나오신 조국과 인민에 대한 그리움으로 순간순간을 보내시였다.

그이를 모신 렬차가 옴스크를 향해 달리고있을 때였다.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그동안 렬차행군으로 피로하겠다고 하시며 며칠동안 로씨야방문과는 인연이 없는 임무를 주겠으니 바람을 쏘이다 와야겠다고 하시였다.

뜻밖의 말씀에 놀라는 그에게 장군님께서는 비행기를 타고 조국에 가서 이틀전에 본 과학자료인 아카시아나무에 대한 록화테프를 해당 일군에게 넘겨주고 그것을 대대적으로 심을데 대한 당의 의도를 알려주어 곧 조직사업을 하도록 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으로 떠나는 동무가 부럽습니다. 나는 수령님께서 계시는 조국으로 돌아갈 날이 아직 멀었는데 동무는 조국에 갔다오게 되였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조국을 떠난지 한주일도 못되였는데 수령님이 그립고 조국인민들, 조국산천이 그립습니다.》

이날은 그이께서 조국을 떠나신지 4박 5일째 되는 날이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비행기로 조국에 갔던 그 일군이 돌아오자 장군님께서는 고향집안부를 묻듯 나라형편과 인민들의 소식을 다우쳐물으시였다.

일군은 지금 조국에서는 인민들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로씨야를 방문하시는 기간 생산과 건설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여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겠다고 하면서 부글부글 끓고있다고 보고드리였다.

그의 말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가신채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이라고 나직이 뇌이시며 우리에게는 인민복이 있다고,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에 대한 충실성이 우리 인민처럼 높은 인민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고, 조국인민들이 분발하여 떨쳐나섰는데 우리도 이번 로씨야방문에서 큰 성과를 거두어 인민들의 기대에 보답하여야 한다고 격정어린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로씨야방문기간 인민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안으시고 낮에는 현지시간에 맞춰 일정을 맞물리시고 밤에는 밤대로 조국의 시간에 맞추어 불철주야로 사업하시며 《달리는 백야》의 전설을 남기시였다.

정녕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을 더없이 그리워하시고 인민은 그이를 안타까이 기다리는 절절한 마음이 뜨겁게 오고간 20여일은 령도자와 인민이 화목하고 행복한 하나의 대가정, 한식솔임을 뚜렷이 보여주고 조선은 령도자와 인민이 한피줄, 한마음되여 운명을 같이하는 불패의 나라임을 온 세상에 과시한 뜻깊은 나날이였다.

하기에 세계는 혼연일체의 이 력사의 화폭을 두고 이구동성으로 놀라움과 격정을 토로하였다.

일본의 한 사회계인사는 격정에 넘쳐 이렇게 말하였다.

《세계정치사는 국가의 최고령도자가 외국방문의 나날을 보낼 때 조선인민처럼 자기 령도자와 호흡도 숨결도 같이하고 자기 수령의 걸음걸음에 자기 심장의 박동을 함께 하며 충성다한 인민은 기록하지 못하였다.

오직 령도자와 인민이 혼연일체를 이룬 주체의 조국, 조선에서만 창조될수 있는 희한한 현실이다.》

또한 서방의 한 보도물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로씨야방문은 두개의 매우 의미심장하고 위력한 《미싸일》을 날렸는바 하나는 모스크바에 불어친 평양바람이고 또 하나는 북조선국내에서 전례없이 시위된 단결의 열광이였다고 전하였다.

령도자와 인민이 그리움의 정으로 하나로 뭉친 위대한 혼연일체라는 바로 여기에 공화국의 일심단결의 위력이 있다.

 

 

5

□ 비전향장기수들을 꽃수레에 태워

 

2000년 9월 2일 세계의 이목이 조선에로 집중된 속에 수십년세월 남조선의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당과 수령, 사회주의조국과 인민에 대한 신념과 의리를 끝까지 지켜싸운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어머니조국의 품에 한꺼번에 안기였다.

온 나라가 조국의 장한 아들들,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을 맞이하는 뜨거운 환영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판문점으로부터 수도 평양에 이르는 수백리 도로에는 환영의 꽃바다가 펼쳐졌다. 공화국기와 꽃다발, 북과 꽹과리를 들고 떨쳐나선 각계층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은 수십년만에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기는 통일애국투사들을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그것은 신념과 의지의 강자, 영웅들에게 드리는 온 나라 인민의 열렬한 축하이고 영광이였다.

비전향장기수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만세!》를 목청껏 웨치며 생의 은인이신 김정일장군님과 어머니조국에 삼가 가장 뜨거운 감사의 인사, 충정의 보고를 드리였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릴 때까지 수십년세월 감옥에서 신념과 지조를 지켜 싸워온 전사들이 한꺼번에 조국의 품에 안긴 이런 극적사변, 꿈같은 현실은 고금동서에 있어본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20세기 령마루에서 비전향장기수집단귀환이라는 력사적사변을 이룩한 주체조선의 기적에 대해 뜨겁게 돌이켜보았다.

수십년세월 혁명과 반혁명,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리념대결에서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끝끝내 승리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세계 그 어디에도 없는 비전향장기수들이다.

비전향장기수들의 생존여부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것은 1990년대초였다.

남조선신문 《한겨레》는 34년간의 감옥살이속에서도 지조를 지킨 비전향장기수 리인모로인이 감옥에서 풀려나 부산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리인모의 곡절많은 인생행로는 남조선잡지 《말》에 실린 그의 수기가 입수됨으로써 더욱 명백해졌다. 이리하여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군종군기자로 활동하다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남녘땅에 떨어졌던 리인모의 그후 40여년 생활에 대한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였다.

공화국에서는 남조선에 리인모뿐아니라 다른 비전향장기수들도 있으며 그들이 수십년동안 옥고를 치르면서도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싸웠고 또 싸우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때로부터 리인모를 비롯한 비전향장기수들을 조국의 품에 데려오기 위한 투쟁이 벌어졌다.

혁명전사들에 대한 가장 숭고한 도덕의리심을 지니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비전향장기수들의 생존여부가 알려지기 시작한 때부터 그들모두를 데려올 결심을 굳히시고 그 실현을 위한 통이 큰 작전을 펼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적들과의 총포성없는 대결전이 절정에 이르렀던 주체82(1993)년 3월의 그 준엄한 시각에 남조선에서 30여년이나 옥고를 치른 비전향장기수 리인모를 사회주의조국의 품으로 안아오시고 그를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높이 내세워주시였다.

그리고 련이어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데려올 작전을 벌리시였다.

주체83(1994)년 2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는 문제를 놓고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일군들에게 리인모동지를 데려온것처럼 남조선에 있는 다른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데려와야 한다고 하시면서 세계에 옥중투쟁을 하여 소문이 난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남조선의 감옥에서 30년 또는 40년을 굴하지 않고 옥중투쟁으로 인생의 전부를 보낸 비전향장기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30년 혹은 40년을 옥중투쟁을 하면서 전향하지 않은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우리 당에 의하여 교양육성된 혁명가들속에서만 나오고있다고 긍지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는 문제를 혁명의 길에서 우리 당을 받들어 싸운 동지들에 대한 혁명적의리로 여기며 혁명의 령도자가 전사들에게 베풀어야 할 고귀한 사랑으로 간주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전선시찰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면서도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을 순간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데려오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통일애국투사들을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해 가르치심을 주신것만 해도 수십차, 1994년 3월 24일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기 위한 비상설기구인 《남조선의 비전향장기수구원대책 조선위원회》를 조직, 비전향장기수문제가 20세기 최대의 인권문제, 인도주의적문제로 되여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게 한 국가적인 규모에서의 강력한 조치들…

수십년간의 감옥살이로 페인이 된 전사들의 건강을 념려하시는 장군님의 뜨거운 은정이 귀중한 보약, 사랑의 불사약이 되여 천리만리 지경을 넘고 지구를 돌아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김인서로인에게도 그리고 다른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에게도 가닿았다.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기 위한 투쟁은 국내외적으로 나날이 확대발전하여 전민족적인 범위로 파급되고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6월 나라의 통일문제를 거론하는 력사적인 평양상봉때 비전향장기수송환문제를 제기하시고 그것을 6. 15북남공동선언의 조항의 하나로 명문화해놓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이와 관련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말씀을 거듭 주시고 그들의 귀환을 하루라도 앞당기시려고 밤낮으로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그것은 정녕 자기의 자식에게 기울이는 친부모의 사랑이였고 대오에서 떨어진 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숭고한 도덕의리의 화폭이였다.

비전향장기수들은 비록 경애하는 장군님 가까이에서 살지는 못하였지만 혁명가의 신념과 량심으로 자기들의 혈맥이 장군님과 하나로 이어져있고 죽을지언정 버릴수 없는 자기들의 사상과 신념이 다름아닌 장군님으로부터  오는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1990년대는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있어서도 신념과 의지를 자기의 목숨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되였던 준엄한 시기였다.

이전 쏘련과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의 좌절을 두고 교형리들은 그들에게서 이제는 사상과 신념의 뿌리가 뽑혀질것이라 장담하였다.

더우기 대국상을 당하여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의 기둥이 무너져내릴것이라 쾌재를 올렸다.

그러나 적들은 오산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이들 혁명전사들의 마음의 기둥이 되여주시고 하늘이 되여주시였던것이다.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그 무슨 《붕괴》요, 《변화》요 하고 요란스럽게 떠들고있던 엄혹한 정세속에서 김정일장군님께서 세계를 향해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단 0. 001%의 오차도 없이 계승해나갈것이다,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기어이 관철하자 등으로 자신의 의지를 천명하실 때 그들은  장군님 계시여 태양은 꺼지지 않았으며 사회주의미래는  휘황하다는 신념을 더욱 깊이 새기였다.

비전향장기수들은 주위를 맴도는 어지러운 자본주의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조국과 사회주의의 미래, 자기들의 운명도 모두 장군님께 의탁하고 어려울수록 희망의 등대를 더더욱 우러렀다.

후날 비전향장기수 안영기는 끝까지 전향하지 않은것이 북에 있는 처자때문이 아닌가고 묻는 외국기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물론 처자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그들앞에 떳떳한 모습으로 나서고싶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모든 시련을 이겨낼수 없다.

우리 수령님에 대한 믿음, 수령님이 이끄시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믿음, 수령님의 뜻을 이어나가시는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믿음, 이것이 바로 죽어서도 버릴수 없었던 나의 신념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 계시여 이렇게 비전향장기수들은 사상과 의지의 검증의 년대라 할수 있는 가장 어려운 1990년대를 승리자의 모습으로 딛고 일어나 마침내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기게 된것이다.

비전향장기수들의 공화국에로의 귀환은 력사의 온갖 도전앞에서도 사회주의의 한길로 곧바로 걸어가는 수천수만의 전사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신념이 과연 어떤것이며 조선의 일심단결의 근저에 과연 무엇이 놓여있는가를 세상에 똑똑히 보여주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