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계를 놀래운 천리마시대
□ 나래치는 천리마
전후 3개년계획에 예견되였던 복구기의 과업을 2년 8개월동안에 완수한 조선인민은 1957년부터 5개년계획수행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5개년계획은 사회주의기초건설을 완성하기 위한 계획이였다. 다시말하여 공화국북반부에 사회주의제도를 세우며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를 축성하여 공화국을 사회주의공업농업국가로 전변시키기 위한 전망계획이였다.
그 목표와 내용에 있어서 대단히 방대하고 어려운 과업이였다. 그런데 나라에는 자금도 자재도 로력도 모자랐고 아직 인민들의 생활도 펴이지 못하였다. 사대주의자들과 보수주의, 소극성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난관앞에서 동요하거나 주저하면서 전진속도를 늦추자고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서 돈을 꾸어오자고도 하였다.
게다가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자들과 국제반동들의 《반공》소동이 전례없이 강화되고 남조선괴뢰도당이 《북진》소동을 더욱 미친듯이 벌리였다.
조성된 안팎의 정세는 참으로 엄혹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이 어려운 때에 오직 인민대중을 믿고 그들을 불러일으켜 사회주의건설에서 대고조를 일으키기로 결심하시고 주체45(1956)년 12월 중순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전원회의에서는 5개년계획의 첫해인 1957년 인민경제계획이 중요하게 토의되였다.
회의에서는 1957년에 공업총생산액을 전해보다 21% 더 늘일것과 계획밖에 40억~50억원어치의 상품과 5 000~1만t의 강재, 5만t의 알곡을 추가적으로 더 생산할것을 결정하였다.
예견된 경제계획도 어려운데 추가계획까지 실현한다는것은 당시의 환경에서 실로 아름찬 과제가 아닐수 없었다.
하기에 일부 일군들속에서는 방대한 전망과업과 부닥친 난관앞에서 겁을 먹고 주저하면서 동요하는 현상들도 나타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건설에서 혁명적대고조를 일으키기 위하여》라는 력사적인 결론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결론에서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창조적힘에 의거하여 조성된 난국을 뚫고 경제건설에서 새로운 일대 앙양을 일으키며 증산하고 절약하여 5개년계획의 방대한 과업을 수행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이와 같이 혁명력량의 강철같은 통일과 단결을 이룩하고 반혁명세력과의 투쟁을 강화하는 기초우에서 다음해 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하는데 인민대중의 혁명적열의를 조직동원하여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인민대중을 적극 불러일으켜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는것은 적들의 《북진》소동도, 종파분자들의 반혁명적책동도 다 짓부셔버리고 사회주의건설을 계속 전진시켜나가기 위한 유일하게 옳바른 선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가 끝난 다음 일군들을 각지로 파견하시고 자신께서는 나라의 긴장한 강재문제를 풀기 위하여 주체45(1956)년 12월 28일 이른아침 강선제강소(당시)로 나가시였다.
그때 나라에는 분괴압연기가 강선제강소에 한대밖에 없었는데 그 분괴압연기의 능력을 높이는가 높이지 못하는가에 따라 5개년계획수행에서 생명선으로 되는 강재 1만t을 더 생산하는가 못하는가가 결정되게 되여있었다.
당시 제강소에서는 생산과제인 8만t의 계획외에 1만t의 강재를 더 생산하기 위한 내부예비를 탐구하고있었으나 신통한 방도를 찾지 못하고있었다.
이러한 때에 제강소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선제강소 지도일군 및 모범로동자들의 협의회를 소집하시고 《내부예비를 최대한으로 동원하여 더 많은 강재를 생산하자》라는 연설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당중앙위원회 12월전원회의 기본정신과 5개년계획의 방대한 과업 그리고 복잡한 국내외정세와 다음해 인민경제계획수행에서 제기되는 애로와 난관에 대하여 알려주시고 우리 당은 혁명의 주력부대인 로동계급을 믿고있으며 동무들에게 기대를 걸고있다, 우리는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사회주의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는 지난날 어렵게 살아왔고 지금도 부족한것이 많은 조건에서 남이 한발자국을 걸으면 열발자국을 걷고 남이 열발자국을 뛰면 백발자국 뛰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당중앙위원회 12월전원회의에서는 강선의 로동계급에게 다음해에 강재를 계획보다 1만t 더 생산할것을 호소하였는데 동무들이 다음해에 강재를 1만t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는 소극성과 보수주의를 짓부시고 긴장한 강재문제를 풀어야 할 사람들이 다름아닌 동무들이다, 동무들은 당의 의도를 똑똑히 알고 나라의 긴장한 강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한다고 절절히 호소하시였다.
강재 1만t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수 있다는 수령님의 말씀은 강선로동계급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고 그들의 심장마다에서 피가 끓게 하였다.
그들은 앞을 다투어 수령님께 1만t의 강재를 기어이 더 생산할 굳은 결의를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 제강소에서는 지금까지 있어보지 못한 기적과 혁신이 일어났다.
혁신은 제강소의 전반적인 생산공정에서 중심고리인 분괴압연직장에서 먼저 일어났다.
그들은 집체적지혜와 재능을 합쳐 분괴압연기의 능력을 높이는데서 나서는 어려운 과학기술적문제들을 자체로 풀어나가는 한편 가열로, 압연기 등을 능률적으로 개조하여 강편생산을 훨씬 늘이였다. 이리하여 일제때에는 한달에 최고 800t의 강편을 뽑던데서 매달 평균 8 000t의 강편을 생산하게 되였다.
제강직장, 조강직장을 비롯하여 모든 직장들에서도 혁신이 일어났다. 용해공들은 전기로보수의 질을 훨씬 높이면서도 보수기간은 그 전해보다 3분의 1이나 더 단축하였으며 선진적인 용해방법을 받아들여 1회당 용해시간, 재료장입시간, 산화시간을 많이 줄이였다. 이리하여 전기로의 가동시간을 대폭 늘이였다.
강선의 로동계급은 다섯달동안에 생산계획보다 6 000여t의 강괴를 더 생산하는 집단적혁신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 로동자, 기술자들속에서는 무려 700여건의 창의고안 및 합리화안이 제기되고 그중 많은것이 생산에 도입되였다. 그리하여 생산에서 계속 높은 속도와 혁신이 창조되였다.
이러한 혁신이 일어나는 속에 6만t의 공칭능력을 가진 압연기에서 결의한 9만t을 뛰여넘어 12만t의 강재를 밀어내는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였으며 1956년보다 143. 3%로 높이 세워진 1957년도 계획과제를 전반적으로 141. 2%로 넘쳐 수행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리하여 집단적혁신운동의 불길, 대고조의 불길이 강선에서 타오르게 되였으며 강선은 천리마운동의 첫 봉화를 높이 추켜든 력사의 고장으로 되였다.
강선의 로동계급속에 혁신의 불길을 지펴올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6(1957)년 1월 새해 첫 출근날에는 황해제철소(당시)를 현지지도하시였으며 뒤이어 눈보라를 헤치시며 순안, 숙천, 문덕의 농촌들에 나가시여 농민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알곡소출을 높일데 대하여 의논하시였다. 2월에는 황해남도의 로동자, 농민들속에 계시였고 3월에는 흥남과 신포지구, 황초령기슭의 발전소로동자들을 비약과 혁신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수령님께서는 4월과 5월에도 그리고 옹근 한해를 현지에 계시면서 전체 인민을 대고조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순간의 휴식도 없이 침식도 잊으시고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에 무한히 고무된 전국의 근로자들은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라는 구호를 들고 자기 부문, 자기 단위들에서 전례없는 기적과 혁신을 일으켰다.
김책제철소(당시) 로동자들은 19만t능력의 제철설비로 자기들이 결의한 목표인 25만t도 뛰여넘어 27만t의 선철을 생산하였으며 황해제철소 로동자들은 3년은 실히 걸려야 한다던 대형용광로를 1년도 못되는 사이에 건설하고 쇠물을 폭포처럼 쏟아부었다.
검덕광산(당시)의 광부들은 광산의 암질조건에 맞게 고속도굴진방법을 받아들여 한달동안에 굴진속도를 종전의 30m로부터 그의 약 7배에 달하는 200m이상으로 급격히 높이였다.
경공업부문에서도 혁신이 일어났다.
다기대운동을 비롯하여 집단적혁신을 세차게 일으킴으로써 경공업부문에서는 538만m의 면직물, 154만m의 견직물, 118만컬레의 신발류를 포함하여 70여억원(당시 화페)어치에 달하는 상품을 국가계획보다 더 생산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전 4년간에 생산한 경공업제품을 1957년 한해사이에 생산하게 되였으며 직물류는 전쟁전에 비하여 무려 10배로 늘어나게 되였다.
생산적혁신은 공업부문의 공장, 기업소들뿐아니라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련이어 창조되였다.
대고조속에서 5개년계획의 첫해인 1957년도 공업생산계획은 117%로 넘쳐 수행되였으며 공업생산은 전해에 비하여 144%로 높아졌다. 알곡생산계획도 112%로 넘쳐 수행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건설의 대고조는 이렇게 일어났고 그 과정에 천리마운동이 발단되게 되였다.
천리마운동은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친 인민들의 무궁무진한 창조력의 발현이였으며 경제와 문화건설에서 집단적혁신과 근로자들을 교양개조하는 사업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사회주의건설을 최대한으로 다그치기 위한 전인민적인 운동이였다.
천리마운동의 무비의 위력은 인민들의 혁명적열의와 창조적재능을 높이 발양시키는 사회주의적대중운동이라는데 있었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주의건설을 비상히 촉진시키는 위력한 추동력으로 되였다.
사람들은 승리의 신심과 환희에 넘쳐있었고 남먼저 사회주의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려는 인민들의 기상은 날이 갈수록 활화산처럼 터져올랐다.
천리마가 활짝 나래를 펴고 내닫는 가운데 공장과 건설장들에서는 어디라 없이 《우리는 천리마 타고 달린다》의 노래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천리마운동의 거세찬 불길속에서 덕천과 기양의 로동계급은 간단한 소농기구나 만들고 자동차수리나 하던 자그마한 공장들에서 첫 뜨락또르를 30여일만에 만들고 첫 화물자동차는 40일만에 만들어내는 세계공업력사상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서평양철도공장(당시)에서는 《기계공업의 정수》라고 하는 전기기관차를 한해동안에 만들었고 룡성의 로동계급은 8m타닝반과 3천t프레스를 보란듯이 만들어냈으며 락원과 북중의 로동자, 기술자들은 굴착기와 대형양수기, 불도젤을 제작하는 력사적위훈을 창조하였다.
철도건설자들은 3~4년은 걸려야 한다던 해주-하성사이 철도부설공사를 단 75일동안에 끝냈으며 전국의 로동계급과 근로자들은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벌려 한해동안에 국가계획밖에 1만 3 000여대의 공작기계를 생산하고 3~4개월동안에 1 000여개의 지방산업공장들을 자체의 힘으로 건설하였으며 37만여정보의 논과 밭을 수리화하는 대자연개조사업을 6개월동안에 해제끼는 세기적변혁들을 련이어 이룩해나갔다.
평양시건설자들은 세계건설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평양속도를 창조하고 7 000세대분의 자재와 자금을 가지고 2만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하였다.
인민들의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에 의하여 나라의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가 튼튼히 쌓아졌다.
그리하여 1957년부터 1960년까지의 4년동안에 공업총생산액은 3. 5배로 늘어났다. 해방후 15년동안에 전쟁을 치르고 파괴된 경제를 복구하는데 오랜 시일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 공업생산은 해방전(1944년)에 비하여 7. 6배로 늘어났다.
공업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농업의 물질기술적토대도 비상히 강화되고 알곡생산은 1956년에 비하여 1960년에 32%나 늘어나는 기적이 창조되였다.
공업과 농촌경리를 비롯한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이 급속히 발전하는데 따라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은 더욱 개선되여 인민들이 먹고 입고 쓰고사는 문제가 기본적으로 풀리게 되였다.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부문에서 일어난 이러한 력사적기적은 인민대중의 단결과 협력의 위력을 화산의 용암처럼 분출시키는 천리마운동의 무비의 견인력과 위력을 뚜렷이 확증해주고있었다.
천리마운동의 불길속에서 사회주의건설의 대고조의 시기로 불리우는 천리마시대가 펼쳐지고 이 시대의 거창한 흐름속에서 당과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전당과 전체 인민의 정치사상적통일이 반석같이 다져졌다.
하루에 천리를 가는 전설의 천리마는 남들이 한걸음을 걸을 때 열걸음, 백걸음을 내달리는 조선인민의 혁명적기상을 상징하게 되였으며 세상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천리마의 나라》, 《천리마조선》으로 부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이 천리마대진군에서 이룩한 성과를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평양의 만수대언덕에 천리마동상을 세우도록 하시였다.
날개돋친 천리마를 타고 창공높이 날으는 로동자, 농민을 형상한 천리마동상은 영웅조선의 위용과 참모습을 온 세상에 떨치며 거연히 솟아있다.
언제인가 공화국을 방문한 한 외국인이 전진하는 우리 인민의 기상을 그대로 담은 천리마동상을 보고 감탄해마지 않다가 지나가는 한 로동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누구나 조선이라고 하면 천리마를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천리마동상은 훌륭합니다.
한 민족의 위대한 정신, 한 인민의 영웅적투쟁과 자랑높은 력사를 이처럼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한 천리마동상과 같은것은 세계에 드물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리해되지 않는것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처럼 유명한 천리마동상에 고삐가 없습니까?》
그러자 로동자는 빙그레 웃으며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우리의 천리마에는 고삐가 필요없기때문입니다.
보통 말고삐라는것은 달리는 걸음을 멈추어세우거나 달리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의 천리마는 속도를 늦출 필요도 없고 도중에 방향을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제야 잘 알겠다는듯이 외국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 조선의 천리마동상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굴함없이 높은 속도로 내닫는 우리 인민의 위대한 정신과 견인불발의 투지로 비약하며 오직 앞으로만 돌진하는 공화국의 상징이기때문에 고삐가 필요없는것이다.
이 천리마의 기세로 조선인민은 수령이 가리키는 길만을 따라 순간의 침체와 답보도 모르며 오직 앞으로만 내달려 1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나라의 공업화를 실현하였으며 시각마다 기적을 창조하며 언제나 비약의 길로만 달려나갔다.
□ 천리마작업반운동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하여 경리형태는 사회주의적으로 개조되였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이에 뒤떨어지고있었다. 어제까지 자본주의적경리에서 살던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아직 개인주의, 리기주의, 보수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상잔재가 적지 않게 남아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 새로운 환경에 맞게 사람들을 사회주의적인간으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교양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시였다.
이로부터 주체47(1958)년 3월 조선로동당대표자회에서 사회주의교양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를 당정치사업의 총적방향으로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 기회에 사회주의교양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과업을 명확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더욱 높이 들고 공화국북반부를 붉은 일색으로 만들며 우리의 온 사회를 화목하고 단합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만들기 위하여 투쟁하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교양을 강화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집단주의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교양사업에 힘을 넣으시였다.
집단주의는 사회주의사회의 기초이며 사회주의사상은 본질에 있어서 집단주의사상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집단주의사상으로 무장시키는것은 근로자들을 사회주의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교양사업에서 제기되는 기본문제의 하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교양사업에서 중요한 문제는 모두가 서로 돕고 단결하여 사회주의경리를 발전시키며 공동의 리익을 위하여 몸바치는 집단주의사상을 키우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여기에서 주되는 장애로 되는 개인주의, 리기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상잔재를 없애고 근로자들을 사회주의사상으로 무장시킬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단주의교양을 지방의 실정과 계층별 특성에 맞게 진행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주체47(1958)년 5월 량강도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량강도의 림산로동자들은 자유주의습성과 처서판의 낡은 습성이 남아있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산림을 자기의 재산으로 알고 그것을 사랑하며 모든 일이 다 자기의 일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일하도록 교양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량강도농민들은 오래동안 화전민으로 분산되여 살아왔기때문에 보수성과 분산성이 더 많다고 하시면서 이것을 극복하고 그들을 집단주의사상으로 교양하기 위한 사업을 다른데보다 더 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이와 함께 그를 위한 물질적조건들도 지어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람들을 사회주의적인간으로 교양개조하기 위한 사업을 사회주의경제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사업과 밀접히 결합시켜나가도록 하시였다.
당시 나라의 도처에서는 사회주의건설의 전진운동을 방해하는 소극성과 보수주의, 기술에 대한 신비주의를 배격하고 집단적혁신을 일으키기 위한 천리마운동이 세차게 벌어지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종래 다른 나라들에서 로동생산능률을 높이기 위한 생산경쟁운동으로 벌리던 대중운동과는 달리 천리마운동을 사람들을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는 사업과 생산에서 집단적혁신을 일으키기 위한 사업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새형의 사회주의적대중운동으로 심화발전시킬것을 구상하시고 그것을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분야를 포괄한 전인민적운동으로, 대중자신의 사업으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심화발전시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8(1959)년 2월 강선제강소를 찾으시고 천리마작업반운동의 봉화를 들도록 불씨를 지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곳 로동계급에게 5개년계획이 사회주의건설과 조국의 자주적통일 그리고 인민생활향상에서 가지는 거대한 정치경제적의의를 밝히시면서 각계각층 군중을 모두다 교양개조하여 우리 당주위에 굳게 결속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당조직은 물론 직맹, 민청, 녀맹 등 사회단체들도 군중속에서 사회주의교양을 강화하여 모든 사람들을 적극분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수령님으로부터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 강철직장의 한 작업반성원들은 그이께서 제시하신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밑에 작업반을 서로 돕고 이끄는 사회주의적집단으로 꾸려나갔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한뜻이 되여 한덩어리로 굳게 뭉친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굳은 확신을 가지고 인간개조사업과 함께 생산에서 집단적혁신을 일으키기 위한 사업을 적극 밀고나가 그해 3월 천리마작업반운동에 궐기하였다.
그들은 작업반총회를 열고 생산에서 보다 높은 앙양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빨리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해나감으로써 사회주의건설을 보다 성과적으로 전진시키기 위하여 천리마작업반운동을 벌릴것을 결의하였다.
작업반총회에서 채택된 결의문에는 작업반앞에 부과된 5개년계획을 1959년안에 어김없이 넘쳐 완수하며 년간계획을 111%로 수행할것이 강조되였다. 이와 함께 사회주의교양사업을 강화하고 서로 돕고 가르쳐주는것을 집단생활의 기본으로 하며 온갖 낡은 사상잔재를 완전히 없애기 위한 투쟁을 강화할것이 지적되였다.
강선제강소에 뒤이어 룡성기계공장(당시), 흥남비료공장(당시), 평양방직공장 등 다른 기업소들에서도 천리마작업반운동을 벌릴것을 결의하여나섰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였으며 이것은 생산에서의 집단적혁신과 인간개조사업에서의 새로운 전환의 계기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선의 로동계급이 천리마작업반운동의 봉화를 추켜든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고 이것을 전군중적운동으로 온 나라에 일반화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천리마작업반운동은 생산에서의 집단적혁신운동으로 되였을뿐아니라 사람들을 새로운 인간으로 교양개조하는 가장 대중적인 운동으로, 사회주의교양의 학교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작업반운동과정에 천리마기수들속에서 나타나는 자그마한 새싹도 높이 평가해주시고 소중히 키워 그것을 널리 일반화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이무렵 평양제사공장(당시)의 나어린 한 처녀작업반장이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로동자들을 교양개조하여 자기 작업반을 천리마작업반으로 만든 다음 자진하여 일도 몇곱절 더 힘들고 수입도 훨씬 적은 가장 뒤떨어진 작업반으로 옮겨가서 그 작업반도 천리마작업반으로 추켜세웠다. 그는 로동규률도 잘 지키지 않고 작업에도 성실히 참가하지 않던 뒤떨어진 동무들을 참을성있게 교양하여 전체 집단을 단결되고 각성된 집단으로 만들었으며 지난날에는 70%밖에 수행하지 못하던 생산계획을 140%로 넘쳐 수행할수 있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9(1960)년 3월 어느날 그를 친히 만나시여 그의 아름다운 소행을 치하하시고 사람들을 교양개조하는데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사람들을 교양개조하자면 먼저 그들을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잘 알아야 하며 사람을 잘 알려면 군중속에 들어가 함께 일하고 생활하며 고락을 같이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실천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면서 참을성있게 해설하고 설복하며 결함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 따뜻이 대하고 성심성의로 도와주며 사람들이 가지고있는 긍정적인것을 찾아내여 끊임없이 키워주고 모두가 그 모범을 본받게 할데 대하여 깨우쳐주시였다.
수령님의 교시에 따라 사람들을 교양개조하는 사업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대중적인 운동으로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근로자들의 정신도덕적풍모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생산과 건설에서 기적적인 성과들이 련이어 창조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업부문에서 일어난 천리마작업반운동을 인민경제 모든 부문,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일반화하며 그를 한계단 더 높이 발전시키기 위하여 주체49(1960)년 8월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를 소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에 친히 참석하시여 《천리마기수들은 우리 시대의 영웅이며 당의 붉은 전사이다》라는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천리마기수들을 시대의 영웅으로 높이 평가하시고 천리마작업반운동을 공업부문뿐아니라 농업, 건설, 운수, 상업, 교육, 보건, 과학과 문학예술 등 모든 부문에서 더욱 전면적으로 전개하며 천리마작업반운동을 천리마직장쟁취운동으로 확대발전시킬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대회를 계기로 천리마작업반운동은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분야를 전면적으로 포괄하면서 전인민적운동으로 힘있게 벌어졌으며 점차 작업반의 범위를 벗어나 직장으로, 공장으로 확대발전되여갔다. 이 과정에 근로자들속에서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집단주의적생활기풍이 온 사회에 차넘치게 되였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밑에 모두가 서로 돕고 이끌어주어 온 사회가 화목하고 단합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되여가고있었다.
□ 천리마시대를 수놓은 꽃들
천리마시대에 사람들의 정신도덕생활에서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천리마운동이 심화발전되는 과정에 창조된 천리마작업반운동은 근로자들의 로동과 생활에서 일대 전변을 가져왔다.
천리마작업반은 한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일하며 모든 사람은 한사람을 위하여 일하는 참다운 사회주의적집단이였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참가자들은 생산, 기술, 사상, 도덕, 문화의 모든 령역에서 서로 돕고 이끌어 다같이 사회주의적으로 일하고 배우며 살기 위하여 투쟁하였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은 시작된 첫날부터 커다란 생활력을 나타내며 모든 근로자들이 참가하는 전인민적운동으로 급속히 확대발전되여갔다.
이리하여 불과 1년 남짓한 사이에 이 운동에는 17만 8 000여명이 망라된 8 600여개의 작업반이 합류하였으며 1961년 8월에 이르러서는 벌써 200여만명이상의 근로자들이 참가하는 전인민적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이 전인민적인 대중운동으로 발전함에 따라 천리마기수칭호를 받은 근로자들과 천리마작업반들의 수도 급속히 늘어났다. 1963년에 천리마기수칭호를 받은 로동자, 사무원, 농장원, 학생수가 58만 6 000여명이였다면 1966년에는 121만여명으로, 같은 기간에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수여받은 작업반수는 1만 7 000여개로부터 3만 1 700여개로 증가하였으며 천리마공장은 1개로부터 28개로 늘어났다.
이것은 조국땅우에 인민의 행복한 락원을 더 빨리 건설하려는 인민들의 한결같은 지향과 불타는 애국심의 반영이였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두리에 한마음한뜻으로 뭉쳐나가는 우리 근로자들의 무궁무진한 창조력의 시위였다.
천리마기수들은 천리마시대의 참다운 주인공, 선구자들로서 전체 인민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으며 훌륭한 행동과 특출한 업적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무한히 고무하였다.
천리마기수들이 일하는 모든 곳에서는 사람들을 교양개조하는 아름답고 숭고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꽃펴났다.
리현리의 한 처녀선동원에 대한 이야기도 그가운데 하나였다.
선동원이 일하는 작업반에는 자기 집 터밭을 가꾸는데는 힘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농사일에는 열성을 내지 않거나 건강한 아이를 앓는다고 속이고 일에 나오지 않으면서 딴장을 보군 하는 몇몇 뒤떨어진 농장원들이 있었다.
처녀선동원은 그들이 그릇된 길을 걷는것을 자기 일처럼 가슴아파하면서 두번세번 찾아다니며 일깨워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뒤떨어진 사람들은 그가 찾아오는것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화가 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는 타고난 락후분자는 없으며 개조 못할 사람이 없다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작업반원들을 도와주는데 더욱 진심을 쏟아부었다.
땔나무가 없어 나무하러 가겠다는 사람에게는 농장관리위원회에 제기하여 집에 나무를 실어다주게 하였으며 집을 깨끗이 꾸리지 않고 사는 농장원에게는 마을청년들과 같이 가서 도배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었다.
이리하여 끝내 리기주의와 낡은 생활습성에 물젖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세워 그들을 로동을 사랑하고 집단을 사랑하는 성실한 농장원으로 만들었다.
주체50(1961)년 1월 어느날 리현리당총회를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 대하여 료해하시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동원의 소행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사람을 개조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 당과 우리 당원들은 바로 이 가장 어려운 사업인 사람을 교양하고 개조하는 사업에 달라붙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당원들이 자기 당을 무한히 신뢰하고 사랑할뿐아니라 자기 당의 주위에 더 많은 군중을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에 자신을 가지고 달려들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성과는 황금보다도, 몇백만t의 쌀보다도 더 귀중한것이며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것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그처럼 기뻐하시고 만족해하신것은 사람들을 당의 두리에 묶어세우고 사회주의건설에로 힘있게 추동하는 사업에서 자랑스러운 열매가 맺어지고있는 그 커다란 성과였으며 농촌의 한 처녀선동원까지도 사람들을 교양개조하는 사업이 중요한 문제라는것을 깊이 인식하고 이 어려운 사업에 자신심을 가지고 이악하게 달라붙고있는 그 기풍이였다.
사회주의건설을 빨리 다그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맡아하는 대중의 열의가 높아야 하는데 사람들의 열성은 보수나 상금을 많이 주고 대우를 높여주는것과 같은 물질적자극만으로는 결코 해결될수 없는것이다. 그렇게 하여 높아진 관심은 일시적인것이며 본질에 있어서 그것은 높은 자각성에 기초한 열의와는 구별되는것이다.
사람들의 활동에서 사상의식이 노는 역할의 중요성을 깊이 헤아리고계시는 수령님께서는 사람들의 사상을 개조하고 발동하는 사업을 확고히 앞세워나갈데 대하여 늘 가르쳐주시였는데 이것이 이제는 대중에게 접수되여 대중자신의 사업으로 전환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것을 천리마의 대진군속에서 당이 이룩한 가장 큰 성과로, 천리마기수들이 세운 가장 중요한 공적으로 높이 평가하시는것이였다.
며칠후에 신문에는 그 처녀선동원에 대한 글이 실렸으며 얼마후에는 그를 원형으로 한 연극이 창작되여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사람을 교양개조하는 사업이 대중운동으로 확고히 전환됨으로써 서로 돕고 이끌며 일하고 생활하는 기풍이 온 사회에 지배하게 되였다.
전쟁때 하나밖에 없는 누이의 행처를 잃고 늘 우울해있는 한 청년의 괴로움을 가셔주기 위하여 온 작업반이 떨쳐나서 수백통의 편지를 띄우고 무려 173군데나 찾아다니면서 끝내 누이를 찾아준 이야기, 스스로 뒤떨어진 작업반에 내려가 자신의 실천적모범과 꾸준한 교양으로 앞선 작업반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야기, 아버지가 전쟁때 남쪽으로 나가고 어머니마저 여의여 고아로 된 한 녀성을 공장에 데려다가 작업반이 달라붙어 교양하여 그를 옳은 길로 이끌어준 이야기 등 아름다운 소행은 날에날마다 수없이 피여났다.
집단의 교양과 집단의 도움에 의하여 어제날의 소극분자가 오늘은 적극분자로 되고 어제날의 락후분자가 오늘은 선진분자로 되였으며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천리마기수의 대렬속에 들어섰다.
천리마기수들은 자신보다 집단을 먼저 생각하고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였다.
뒤떨어진 작업반을 천리마작업반의 수준에로 끌어올리는 투쟁이 널리 보편화되던 때에 평양제사공장의 한 천리마작업반장의 발기에 의하여 집단이 집단을, 중앙공업기업소가 지방공업기업소를, 공장이 농업협동조합을 도와주는 투쟁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평양견방직공장(당시)의 한 천리마작업반원들은 지방공업기업소에 기술적방조를 주었을뿐아니라 자기들이 절약한 기자재로 그 공장을 도와줌으로써 생산에서 급격한 장성을 가져오게 하였다.
한편 청년들을 비롯하여 수천수만의 근로자들이 수산부문과 탄광, 광산개발지들, 농장벌 등 당이 부르는 어렵고 중요한 부문들에 주저없이 달려가 기적과 위훈을 창조하였다.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서로 돕고 이끌며 일하고 생활하는 그 나날속에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의 미담들도 수없이 꽃펴났다.
황해제철소의 용해공들은 랭각수관이 터져 평로가 폭발될 위험에 처하였을 때 세차게 내뿜는 불길속을 뚫고들어가 로를 살려내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였고 장자강반의 한 녀교원은 걷지 못하는 소년을 2년이상이나 업고다니면서 공부를 시키고 다리를 고쳐주었다.
보건부문의 의사, 간호원들도 《환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백번 물음에 백번 웃으며 대답하자》, 《찾아가 모셔오고 따라가 고쳐드리자》 등의 구호밑에 환자들에게 정성을 다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1960년 11월 흥남비료공장병원(당시)에는 속살까지 드러나 3도화상면적이 온몸의 48%에 달하는 한 소년이 구급으로 실려왔다. 소년의 생명은 기존의학리론이나 경험으로는 도저히 살릴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이 병원의 의료일군들과 실습나와있던 함흥의학대학 학생들은 인민들의 생명을 책임진 자각을 안고 자기들의 살점을 두번, 세번 떼내여 소년에게 붙여줌으로써 그의 생명을 구해내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이것은 천리마운동의 불길속에서 교양육성된 공화국의 보건일군들이 지닌 정신세계의 높이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화폭이였다.
사람들의 심장을 격동시키며 감격과 흥분없이는 들을수 없는 이러한 미담들은 나라의 도처에서 수없이 생겨났다.
날에날마다 무수히 피여나는 아름다운 이 꽃들은 모두가 천리마시대의 위대한 사회주의학교인 천리마작업반운동의 불길속에서 태여난 참다운 새 인간들이였다.
료원의 불길처럼 타오른 천리마작업반운동의 거세찬 흐름과 더불어 천리마시대는 힘있게 전진하였고 사회주의제도는 튼튼히 다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