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온 사회를 화목한 하나의 대가정으로
□ 《우리는 수상님을 지지합니다》
195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안팎의 정세는 매우 복잡하였다.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은 세계를 《열핵전쟁》으로 위협하면서 《반공》소동을 미친듯이 벌리고있었다. 이에 겁을 먹은 현대수정주의자들은 반제투쟁을 포기하고 우경투항주의길로 나아가고있었다.
현대수정주의자들은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를 계기로 저들의 기회주의적로선과 《개인미신》문제를 정책화하고 그것을 다른 나라 당들에 강요하였다.
현대수정주의자들은 주체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가는 조선로동당에도 저들의 수정주의적《로선》을 받아물도록 공공연히 압력을 가하여왔으며 당안의 종파분자들을 반당반혁명적책동에로 부추기는 비렬한 배신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바로 이러한 정세를 리용하여 당안에 숨어있던 반당종파분자들은 수정주의자들을 등에 업고 저들의 더러운 정치적야욕을 실현해보려고 서로 결탁하여 당지도부를 뒤집어엎기 위한 음모책동을 감행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전후 어려운 때에 당안에 기여든 반당종파분자들이 머리를 쳐들수 있다는것을 간파하시고 한없는 아량으로 여러차례에 걸쳐 경고도 하시고 개준의 기회도 주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외부세력을 등에 업고 당을 반대하여나섰다.
종파주의는 당의 통일과 단결을 좀먹고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반당적이며 반동적인 사상요소이다. 당안에서 종파적요소가 조금이라도 허용된다면 당대렬의 통일단결이 이루어질수 없으며 나중에는 당의 존재자체도 유지할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당대렬의 통일단결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당내에서 종파주의를 절대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을 창건하신 직후에 벌써 반종파투쟁을 벌리는것을 당의 강화발전을 위한 근본문제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조직령도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당창건으로부터 합당이후의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는 될수록 많은 사람들과 단결하려는 목적에서 지난날 파벌싸움에 가담하였거나 그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종파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관대히 포섭하여 교양개조하는 방침을 견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화요파와 엠엘파의 잔여분자들, 다른 나라를 등에 업고 제멋대로 날뛰던 사대주의자, 교조주의자 등 종파분자들이 당의 로선과 정책을 시비할 때마다 그들을 꾸준히 교양하시며 종파적습성을 버릴것을 충고하시였다.
하지만 력사적으로 파쟁의 악습에 물젖은 종파분자들은 수령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에도 불구하고 조국앞에 시련과 난관이 닥쳐올 때마다 머리를 쳐들고 당에 도전하여나섰다. 그자들은 저들의 추악한 정치적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적들과 결탁하는 길로 나갔으며 전후복구건설의 어려운 시기에는 당과 정부를 뒤집어엎기 위한 음모까지 꾸미였다.
종파분자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당의 통일단결을 이룩할수 없다는것을 절감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5(1956)년 8월전원회의를 계기로 종파의 잔당을 조직적으로 청산하도록 하시였다.
원래 8월전원회의가 종파분자들을 치자고 소집된 회의는 아니였다.
전원회의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솔하신 정부대표단의 동유럽사회주의국가방문결과를 총화하고 당앞에 나선 몇가지 과업에 대해서와 인민보건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한 문제가 토의안건으로 상정되였다.
회의에서는 수령님께서 첫째 안건에 대한 보고를 하신데 이어 토론이 진행되였다.
그런데 종파분자들은 당의 경제로선이 어떻소, 인민생활이 어떻소라고 시비하고 지어는 당의 간부정책까지 걸고들면서 당을 공격해나섰다.
회의참가자들은 격분에 넘쳐 이자들의 발언을 당장 중지시킬것을 요구하였다.
항일투사들을 비롯한 회의참가자들은 앞을 다투어 연단에 올라가 치솟는 격분을 안고 종파분자들의 비렬한 도전행위에 단호한 반격을 가하였으며 당의 로선과 정책의 독창성과 정당성을 론증하고 당과 수령을 견결히 옹호보위하였다.
전원회의에서는 회의참가자들의 일치한 의사에 따라 악질적인 종파분자들을 당대렬에서 제거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다. 이것은 종파분자들에게 차례진 응당한 징벌이였다.
전원회의에서 폭로분쇄된 종파분자들은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나라와 인민앞에 막대한 해독을 끼친 종파잔당이였다. 말로는 인민생활을 걱정하고있는듯이 웨치면서도 실지에 있어서 이자들은 전쟁의 상처로 우리 인민들이 어려운 생활을 하고있던 그때에 이른바 《깨끗한 바란스》를 운운하면서 백고무신을 비롯한 고무제품, 천제품, 수산물 등 4 000여만원(당시 화페)분의 물품들을 땅에 파묻고 강물에 처넣거나 불살라버리는 행위까지 감행하였다.
지어 이자들은 미제와 결탁하여 당과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무장폭동을 일으킬 흉계까지 꾸민 극악한 반역의 무리들이였다.
모든 사실은 종파의 더러운 습성은 어느때 가서도 고쳐지지 않으며 나중에는 나라와 인민을 배반하는 길로 굴러떨어지게 된다는것을 보여주었다.
8월전원회의는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음모책동을 제때에 짓부셔버림으로써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중심으로 한 당의 통일단결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안팎의 원쑤들의 침해로부터 혁명의 전취물을 튼튼히 지켜낼수 있게 한 력사적인 회의였다.
전원회의이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파분자들을 조직적으로 청산하며 당의 통일단결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투쟁에로 전당을 조직동원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련의 고비마다에서 언제나 그러하였던것처럼 종파를 치고 그 여독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당원들과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월전원회의가 있은 직후의 어느날 강선제강소에 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이곳 로동자들을 만나시여 당시의 복잡한 정세와 함께 8월전원회의에서 폭로분쇄된 종파분자들의 죄행을 하나하나 발가놓으시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종파분자들은 우리 당을 분렬시키고 마사먹기 위하여 로동자출신간부들을 무식쟁이라고 하고 당에 충실한 핵심들을 아첨쟁이라고 했으며 일제시기 공부를 좀 한 인테리들을 친일파라고 하면서 우리를 반대하여나섰다고 하시였다. 특히 그자들이 당중앙위원회의 령도에 대하여 악의에 차서 헐뜯은 죄행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였다.
종파분자들의 더러운 속심과 그자들이 저지른 악랄한 죄행을 똑똑히 알게 된 강선의 로동계급은 종파놈들을 전기로속에 처넣겠다고 하면서 치를 떨었다.
수령님께서는 강선로동계급의 이러한 기상을 통하여 종파잔당과 그 여독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 일떠선 인민들의 충천한 기세를 헤아려보시였다.
언제나 로동계급과 인민대중속에서 힘을 얻으시는 수령님께서는 강선에서 돌아오시자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종파여독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도록 새로운 대책을 세우시였다.
그 나날에 우리 인민들은 오직 위대한 수령님만을 믿고 따랐으며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표시하였다.
주체46(1957)년 8월 27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진행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태성리선거장에 들리시였다. 이때 아들이 인민군련대장을 하다가 전사했다는 한 할머니는 수령님의 수척하신 모습을 뵈옵고 너무도 가슴이 아파 그이께 《수상님! 얼굴이 많이 축간것 같은데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종파놈들이 인민생활이 어찌고어찌고 떠들어도 이제는 다 잘살게 되였으니 일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기지 종파놈들이 이기겠습니까? 념려마십시오. 우리는 수상님을 지지합니다.》라고 말씀올리였다.
태성할머니의 이 소박한 말은 그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 수령님을 이 세상 끝까지 따르려는 우리 인민모두의 한결같은 심정을 그대로 반영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태성할머니가 한 이 말을 늘 회고하시면서 《우리는 이 할머니의 말을 듣고 새로운 용기를 얻었으며 종파분자들을 철저히 쳐부셔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러한 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신뢰속에서 종파분자들의 책동은 여지없이 폭로분쇄되고 혁명진지는 보다 굳건히 다져졌으며 수령을 중심으로 한 당의 사상의지적통일단결을 확고히 이룩하고 광범한 인민대중을 당의 두리에 정치사상적으로 굳게 결속하기 위한 담보가 마련되였다.
□ 《사회주의에로의 민족의 대이동》
인민의 락원으로 일떠서는 공화국은 이역의 거친 하늘아래서 살길을 잃고 헤매던 동포들에게 희망의 빛발로 비쳐졌다.
더우기 일본에서 사는 재일동포들은 나날이 륭성번영하는 조국의 벅찬 숨결을 느끼며 공화국을 끝없이 동경하였다.
망국노의 멍에를 쓰고 피눈물을 뿌리며 일본땅에 끌려가 민족적인 천대속에 온갖 수난을 다 겪어온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조국으로 돌아오는것은 자나깨나 바라고바라던 가장 큰 소원이였다. 살아서 못 가면 죽어서라도 돌아가 묻히고싶은 조국이였다. 그러한 그들에게 공화국은 인간의 참된 삶을 안겨줄 진정한 어머니품이였다.
이로부터 재일동포들속에서는 공화국의 품에 안겨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려는 열망이 날을 따라 높아가게 되였으며 이러한 열망은 1958년에 이르러 사회주의조국에로의 귀국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1958년 8월 11일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끼시 나까도메부락에 사는 재일동포들은 《조국이야기모임》을 가지고 사회주의 조국에로의 집단적귀국희망을 표시하였다. 그들은 이야기모임 끝에 집단귀국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고 자기들의 절절한 념원을 담은 편지를 위대한 김일성주석께 삼가 올리였다.
나까도메부락 동포들의 귀국희망은 전체 재일조선공민들의 일치한 념원을 그대로 반영한것이였다.
그리하여 1958년 8월 도꾜에서 진행된 8. 15해방 13돐기념 재일조선인중앙경축대회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전체 재일조선공민들의 한결같은 귀국의 념원을 하루속히 실현하기 위한 필요한 대책을 공화국정부가 취하게 하여주실것을 희망하는 편지를 삼가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일조선공민들의 열렬한 귀국념원을 헤아려보시고 주체47(1958)년 9월 8일 공화국창건 10돐 경축대회 보고에서 그들의 귀국념원이 하루속히 실현되도록 필요한 모든 대책을 취할것이라는 공화국정부의 립장을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무권리와 민족적차별과 생활고에 신음하는 재일동포들은 최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돌아올것을 희망하여왔습니다.
우리 인민은 일본에서 살길을 잃고 조국의 품안으로 돌아오려는 그들의 념원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재일동포들은 날로 륭성발전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으로서 자기 조국에 돌아와 국내동포들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는 응당한 권리를 가지고있습니다.
공화국정부는 재일동포들이 조국에 돌아와 새 생활을 할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보장하여줄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기의 민족적의무로 생각합니다.》
수령님께서 천명하신 공화국정부의 립장에는 언제나 해외동포들이 겪고있는 쓰라린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시며 그것을 하루속히 덜어주시려는 그이의 자애로운 은정과 뜨거운 동포애가 깃들어있었다.
공화국정부는 1958년 9월 16일 외무상성명을 통하여 귀국하려는 재일조선공민들을 언제든지 받아들일수 있으며 또한 귀국후 그들의 생활안착과 자녀들의 교육을 전적으로 보장할 용의가 있다는것을 표명하면서 이와 함께 재일조선공민들의 귀국을 하루빨리 실현하기 위하여 공화국으로 귀국하려고 희망하는 재일조선공민들을 우리측에 인도할 해당한 조치를 즉시 취할것을 일본정부에 요구하였다.
또한 10월 16일 공화국내각은 공화국정부가 재일동포들의 귀국에 필요한 모든 려비를 전적으로 부담할것이며 그들의 출국이 해결되는 차제로 기선 및 기타 수단을 통하여 수송할수 있는 모든 준비를 갖추며 귀국동포들의 안착된 생활과 직업 및 자녀들의 교육을 보장할것임을 밝히였다.
한편 10월 31일에 진행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재일조선공민들의 귀국과 관련한 일련의 문제들을 토의하고 재일동포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일본의 제 정당, 사회단체들과 여러 사회계인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였다.
공화국인민들은 재일조선공민들의 귀국과 관련하여 취한 공화국정부의 정당한 조치들을 열렬히 지지환영하면서 귀국하는 동포들을 맞이하기 위한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귀국을 손꼽아 기다렸다.
공화국의 조치와 조국인민들의 강력한 지원은 사회주의조국에로의 귀국을 열망하는 재일동포들을 무한히 고무하였으며 그들의 귀국운동을 급속히 확대발전시키는데 결정적영향을 주었다.
사회주의조국으로 돌아오려는 재일동포들의 간절한 념원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재일동포들의 귀국의 길을 집요하게 가로막아나섰다.
미국도 재일동포들의 귀국을 《자유세계의 일대 수치》라느니, 《공산주의를 강화시킨다.》느니 하면서 일본을 적극 부추기였다.
남조선괴뢰들 역시 절대다수가 남조선에 고향을 둔 재일동포들의 공화국에로의 귀국이 남조선인민들에게 주는 영향을 두려워하면서 필사적으로 반대해나섰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의 정당한 조치와 강경한 요구, 재일동포들의 힘있는 귀국운동 그리고 그에 대한 일본사회계의 적극적인 지지 등 각 방면으로 강화된 정치공세에 의하여 일본정부는 마침내 재일조선인들의 귀국을 승인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주체48(1959)년 12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첫 귀국선이 니이가다항에 입항하였으며 세계의 이목과 커다란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동포 975명을 태운 제1차 귀국선이 수많은 재일동포들과 일본인민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면서 니이가다항을 떠나 사회주의조국의 북방항구도시 청진에 도착하였다.
부두는 감격과 환희로 끓어번졌다.
환호와 만세소리 하늘높이 메아리치고 몇십년만에 만난 혈육들이 서로 굳게 포옹하며 말보다 먼저 터뜨리는 감격의 울음소리가 부두에 차넘치였다. 살아생전에 밟아보지 못할것만 같던 조국의 품에 안긴 늙은이들의 주름진 얼굴에도, 아직은 조국에 대해 말로만 들어왔던 철부지어린이들의 얼굴에도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렸다.
조국에 가면 가슴속에 서리고서린 하많은 이야기를 다 쏟아놓으리라 생각하였건만 막상 소원을 풀고보니 저마다 삼가 외우는 첫말은 오직 한가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였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고여오르는 다함없는 감사의 정을 안고 귀국한 동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을 우러러 삼가 축원의 인사를 드리였다.
이때로부터 청진항은 이국에서 류랑하던 그리운 동포들의 행복의 눈물로 젖고 또 젖었다.
재일조선공민들을 태운 귀국선은 동해의 푸른 물결을 가르며 청진-니이가다사이를 련속적으로 오갔다. 그리하여 제1차 귀국선이 도착한 때로부터 1960년 12월 18일까지의 1년동안에만 하여도 연 51차에 걸쳐 5만 1 978명의 재일조선공민들이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겼다.
세상사람들은 이 력사적인 사변을 두고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민족의 대이동》, 《20세기의 인도주의사업》이라고 하면서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조국은 재일동포들을 데려오는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귀국하는 동포들이 조국에 와닿기도 전에 매 사람들이 쓰고살 집을 마련해놓도록 하시였으며 세간살이는 말할것도 없고 쌀과 부식물, 조미료에 이르기까지 없는것없이 다 갖추어놓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사람마다 자기의 희망과 재능에 따라 일하고 공부할수 있도록 해주시였다.
첫 귀국선이 도착한지 며칠 안되던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공화국의 품에 안긴 한 동포의 가정을 찾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꿈만 같은 영광에 어쩔바를 모르며 황황히 달려나와 큰절을 올리는 젊은 동포부부를 앞세우시고 그 집 부엌에 들어서시여 찬장이며 쌀독을 하나하나 열어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집 부부가 다 자기가 희망하는 대학들에서 공부하게 되였다는 말을 들으시고 소원대로 되였다니 기쁘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공부를 잘하며 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어려워말고 알리라고 당부까지 하시고서야 그 집을 떠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 조국의 품은 한없이 따사롭고 은혜로왔다.
일본땅에서는 시름을 놓을 날이 없었던 동포들이 이제는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살림살이걱정, 일자리 구할 걱정, 자식 공부시킬 걱정, 병치료걱정과 같은 온갖 근심걱정을 모르며 행복한 생활을 누려가게 되였다.
동포들은 조국의 따뜻한 품속에서 모두가 안착되여 사회주의건설장에서 자기의 모든 지혜와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이리하여 수많은 동포들이 천리마기수로, 조선로동당원으로, 각급 주권기관의 대의원으로, 로력영웅으로, 국가경제기관일군으로, 교수, 박사로, 예술인, 체육인으로 자라났다.
그 나날들은 그대로 조국의 품에 안긴 동포들은 물론 모든 해외동포들이 위대한 수령님과 사회주의조국의 은혜로운 품속에서만 자기들의 운명도 미래도 꽃펴나게 된다는것을 심장으로 체득하던 감격의 나날이였다. 하기에 그들의 심장속에서는 사회주의조국에 자기들의 운명을 맡기고 수령님을 충직하게 받들어나갈 굳은 결의가 억센 신념으로 깊이 뿌리내리게 되였다.
□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조선인민의 사회주의건설은 결코 평화적환경속에서 순탄하게 진행된것이 아니였다. 정전이라는 특수한 환경속에 처하여있는 형편에서 어느 하루도 전쟁의 위협이 가셔진 날이 없었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증대되였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와 미제국주의자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은 더욱 로골화되여 나라안팎의 정세는 매우 복잡해졌다.
1962년 10월 꾸바공화국을 반대하여 까리브해위기를 조성하였고 그후 윁남에 대한 침략전쟁을 대대적으로 확대하여 국제정세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미제는 남조선을 아시아침략의 주요거점으로 계속 틀어쥐고 여기에 저들의 침략무력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륙무기를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면서 공화국에 대한 침공을 가상한 대규모적인 군사연습소동을 벌렸으며 군사적도발을 끊임없이 감행하였다. 1961년에만 하여도 대규모적인 군사연습소동은 무려 34회이상에 달하였고 공중과 해상 및 지상으로부터 미제가 감행한 각종 침범 및 도발건수는 1962년 한해동안에 1 487건에 달하였다.
미제와 그 주구들은 특히 남조선에서의 《군사정변》이후 괴뢰정부예산에서 군사비지출을 2배이상으로 늘이고 경제의 군사화를 다그치고있었다.
미제는 또한 일본군국주의를 재생시키고 남조선괴뢰들과 결탁시켜 아시아침략의 《돌격대》로 리용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반도에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긴박한 정세가 조성되고있었다.
한편 세계사회주의운동도 커다란 시련을 겪고있었다. 자기들의 핵무기이면 충분하기때문에 사회주의나라들은 구태여 군사력을 강화할 필요가 없다고 하던 현대수정주의자들은 까리브해위기때에 제국주의자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미제와 타협하는 길로 나갔다.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조국의 안전을 튼튼히 수호하기 위하여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시였다.
주체51(1962)년 12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내놓으시였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방침의 기본요구는 국방건설의 비중을 경제건설에 못지 않게 높이며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다같이 틀어쥐고 계속 높은 속도로 밀고나감으로써 국방력도 강화하고 경제적토대도 튼튼히 다지며 인민생활도 높여나가는것이였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방침은 우리 인민자체의 힘으로 미제의 어떠한 침공도 짓부시고 조국의 안전을 수호하면서 사회주의건설을 보장할수 있는 가장 정당하고 혁명적인 방침이였다.
크지 않은 공화국이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동시에 밀고나간다는것은 결코 헐한 일이 아니였다. 세계력사를 놓고보아도 공업화를 하면서 동시에 국방건설을 한 실례는 없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당의 령도에 충실한 인민이 있고 그들의 무궁무진한 힘을 발동한다면 능히 경제와 국방을 다같이 밀고나갈수 있다는것을 확신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전원회의에서 전군, 전민을 그 관철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이라는 구호를 제시하시였다.
구호에는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침략책동과 위협도 철저히 짓부시고 사회주의위업을 끝까지 고수발전시켜나가시려는 수령님의 강철의 의지와 깊은 의도가 담겨져있었으며 온갖 난관과 시련도 뚫고 당과 수령이 부르는 한길을 따라 꿋꿋이 전진해온 인민들에 대한 믿음이 반영되여있었다.
또한 언제나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견지하고 승리의 신심드높이 전진함으로써 원쑤들의 그 어떤 침략책동도 짓부시고 사회주의위업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기려는 우리 인민의 굳은 결의와 투지가 담겨져있었다.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이라는 구호는 전당, 전군, 전국, 전민에게 명확한 목표와 일치한 행동방향을 밝혀준 전략적구호였으며 인민들을 미제의 침략책동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키고 사회주의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전투적기치였다.
하기에 구호는 전체 군대와 인민의 심장을 틀어잡으며 그들을 경제건설과 함께 국방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나라의 국방력강화에서 기본은 인민군대강화였다.
인민군대에서는 《일당백》의 구호를 들고 군사정치훈련을 적극 다그쳐 모든 군인들이 펄펄 나는 싸움군으로 준비하여나갔다.
인민들은 한손에는 마치와 낫을 틀어쥐고 생산과 건설, 학습을 밀고나가면서 다른 한손에는 총대를 틀어쥐고 전쟁에 대처하여 침략자들을 언제 어디서나 소멸할수 있는 만단의 준비태세를 갖추어나갔다.
민간군사조직인 로농적위대대렬이 급속히 확대되는 한편 전체 인민이 군사를 성실히 배우고 군사훈련에 적극 참가하였다. 이와 함께 동서량해안과 나라의 모든 지역에 철옹성같은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온 나라를 철벽의 요새로 전변시켜나갔다.
그리하여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하는 전인민적, 전국가적방위체계가 튼튼히 세워지게 되였다.
그후의 사태발전은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조치의 정당성과 그 불패의 생활력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날이 갈수록 정세를 더욱 긴장시켰으나 공화국은 추호의 동요도 없이 언제나 원쑤들의 침략책동을 단호히 짓부시면서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밀고나갔다.
1968년에 있은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때 오만무례하게 날뛰던 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의 강력한 자위적국방력의 위력앞에 무릎을 꿇게 된것은 그의 뚜렷한 실례로 된다.
1968년 1월 원산앞바다를 비롯한 공화국의 령해깊이 침입하여 정탐행위를 하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인민군해군의 자위적조치에 의하여 나포되였다. 미제는 엄청난 규모의 륙해공군무력을 집결시키면서 군사적위협으로 공화국을 굴복시켜보려고 어리석게 책동하였다. 미제는 이른바 《보복조치》로서 《원산을 폭격하겠다.》느니, 《원산을 공격하고 그 배를 빼앗아가겠다.》느니, 어느 《비행장을 하나 폭격하겠다.》느니 하면서 우리 인민을 위협해나섰고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군사적도발행위를 발악적으로 감행하였다. 미제의 이러한 도발책동으로 하여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일어날수 있는 엄중한 사태가 조성되였다. 사태는 참으로 위급하였으며 온 세계가 정세발전을 주시하면서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하시고 전체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로 하여금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나라의 군사적위력을 더욱 강화하고 침략자들을 일격에 때려부실수 있게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도록 적극 불러일으키시였다.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 비상한 각오를 가다듬고 철천의 원쑤 미제침략자들을 맞받아나선 인민군대와 인민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미제가 함부로 덤벼든다면 일격에 때려부실수 있도록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자!》
《원쑤 미제의 가슴팍에 총창을 박는 심정으로 생산에서 계속 앙양을 일으키자!》
인민군군인들은 서리발총창을 비껴들고 진지를 차지하였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전체 근로자들은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더욱 튼튼히 틀어쥐고 생산과 건설에서 날에날마다 기적과 혁신을 이룩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견결하고 단호한 립장과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산악같이 일떠선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의 장엄한 기상에 당장 전쟁을 일으킬것처럼 미쳐날뛰던 미제는 겁을 집어먹고 저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는 사죄문을 써바치지 않으면 안되였다.
세계의 많은 나라 인민들은 공화국의 승리를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그이의 령도를 받는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의 불패의 위력에 대하여 경탄하였다.
스리랑카의 한 신문은 《미국놈들의 <강대성>에 대한 신화는 깨여졌다》라는 론설에서 《우리는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동지를 수령으로 모시고있는 영웅적조선인민이 미제국주의의 <강대성>에 대한 신화를 또다시 산산이 깨뜨려버린것을 열렬히 축하한다.》고 썼다.
에짚트신문 《알 굼후리아》지는 또한 이렇게 썼다.
《어떻게 작은 나라 조선이 거대한 악마인 미국놈의 뺨을 후려갈겼는가? 어떻게 이 나라 사람들이 <푸에블로>호를 붙잡고 그 거만한 미국의 코대를 꺾어놓았는가? 어떻게 조선이 미국의 침략에 대처할수 있는 그러한 강력한 힘을 가질수 있게 되였는가? 그것은 경모하는 김일성수상님을 수반으로 하는 지도부를 가지고있기때문이다.》
《푸에블로》호사건을 통하여 세계인민들은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과는 어떻게 맞서싸워야 하는가를 알게 되였으며 단결하여 싸우면 얼마든지 이길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되였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1967년 1월 적들의 《경호함56》호를 격침시키고 1969년 4월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격추한것을 비롯하여 조국의 하늘과 땅, 바다를 침범하는 침략자들에게 언제나 쓰디쓴 패배를 안기였다.
공화국은 이렇듯 그 어떤 대적도 범접할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전변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