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묘향산의 유적유물

 

 

《예로부터 <8만 4천봉>이라고 불러오는 묘향산은 웅장하고 기묘하게 생긴 봉우리들과 절묘한 바위들, 깊숙한 골짜기들과 높은 벼랑들, 구슬같은 맑은 물과 수많은 폭포들, 울창한 수림과 아름답게 물든 단풍, 여기에 갖가지 물소리, 새소리까지 한데 어울려 뛰여난 절경을 이루고있습니다. 또한 유구한 력사를 가진 묘향산에는 주체조선의 국보인 국제친선전람관이 있고 우리 인민들의 애국적투쟁이야기와 민족의 슬기를 자랑하는 문화유적들이 많아 그 이름 더더욱 빛을 뿌리고있습니다.》

김 정 일

  

1

제자리에 다시 놓인 상원암의 부처

 

 

평안북도 향산군과 구장군, 평안남도 녕원군, 자강도 희천시의 넓은 지역을 포괄하고 웅장수려한 자태를 자랑하며 높이 솟아있는 묘향산은 백두산, 금강산, 지리산, 구월산, 칠보산과 함께 조선의 6대명산의 하나로 인민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운무를 뚫고 장엄히 솟은 메부리 그리고 천길나락으로 떨어지는 폭포수, 록음이 우거진 천만골짜기마다 꽃향기 그윽한 묘향산은 그 아름다움으로서뿐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력사유적과 유물이 많은것으로 하여 명산으로 그 이름 높다.

우리 조상들은 아득한 옛날 원시시대로부터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은 이 기슭에 생의 첫 보금자리를 펴고 단란한 생활을 시작하였다.

우리 나라에 존재한 첫 고대국가인 고조선을 세웠다는 단군에 대한 전설도 바로 묘향산에 깃들어 있다.

우리 선조들은 조선의 아름다운 강토와 함께 묘향산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여왔으며 여기에 높은 예술적재능과 슬기를 바쳐 수많은 귀중한 문화유적들과 유물들을 남기였다.

묘향산에는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히 싸운 우리 선조들의 애국적투쟁이야기도 많이 깃들어있다.

고려시기 외래침략자들이 우리 나라를 침공하여 묘향산의 보현사에 불을 질렀을 때에도 고려병사들은 수천명의 침략자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겨주었고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이 조선땅에 기여들었을 때에도 묘향산의 서산대사는 73살의 늙은 몸이였지만 전국의 승려들에게 조국방위를 호소하여 5 000여명으로 된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일본침략자들을 격멸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처럼 묘향산은 이 땅의 사람들이 이 산기슭에 생의 첫 자욱을 찍은 그때로부터 수백수천년동안 조선민족과 운명을 같이한 력사의 산이며 근면하고 재능있는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문화를 자랑하는 유구한 명산이다.

묘향산탐승의 길에 오르면 기암절벽이 솟아있고 옥계수가 흐르는 곳마다에 암자와 사찰이 자리잡고있는것을 볼수 있다.

우리 민족의 창조적인 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묘향산의 력사유물들은 마땅히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후세에 길이 전해져야 한다고 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묘향산을 찾으시는 기회마다 묘향산의 력사유적과 유물들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그것을 잘 보존관리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해방후 새 조국건설의 바쁘신 나날을 보내시던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36(1947)년 5월 묘향산을 찾으시여 지난날 극소수착취자들의 유흥지로 짓밟혀오던 묘향산의 아름다운 자연풍치를 잘 보호하고 이곳을 명승지로 잘 꾸려 과거 못 살던 우리 인민들이 와서 마음껏 즐기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보현사의 건물들을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박물관을 잘 꾸리고 귀중한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과 목판활자를 비롯한 유적유물들을 잘 보존관리하여 후대들이 볼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주체38(1949)년 10월 이곳을 또다시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묘향산의 풍치와 민족문화유산들을 잘 보호관리할데 대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들을 제시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묘향산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에도 여러차례 묘향산을 찾으시여 하루빨리 전쟁의 상처를 가시고 명승지의 자연풍치를 보호관리하며 파괴된 대웅전, 만세루를 비롯한 유적유물들을 원상대로 복구할데 대한 대책까지 세워주시였다. 그후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묘향산을 찾으신 김일성주석께서는 력사유적들을 원상대로 복구하며 《팔만대장경》과 같은 유물들을 잘 보존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뜻을 받드시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언제나 묘향산의 유적유물을 빛내이기 위한 사업에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으며 자그마한 유물이라도 력사주의원칙에 맞게 대하여야 한다는 깊은 뜻을 새겨주시였다.

주체62(1973)년 6월 묘향산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상원동에 오르시여 여러 력사유적들을 돌아보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르시였던 상원암등산로정을 따라 인호대에 이르시여 아름다운 전경을 부감하시였다.

천신폭포를 배경으로 하고 룡연폭포와 산주폭포를 앞에 드리운 기암절벽우에 자리잡고있는 상원암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왔다. 

상원암에 이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찰의 유래와 건축물의 특징, 전설들과 일화들을 들으시며 건축물을 자세히 살피시였다.

그러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관세음보살》상에 눈길을 멈추시였다.

불상을 자세히 살펴보신 장군님께서는 그것이 본래의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아보시였던것이다.

사실 그때 상원암에 있는 불상은 관음전에 가져다놓고 그보다 작은 다른 불상을 가져다놓은것이였다.

이러한 사실을 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상원암에 있던 부처를 관음전에 가져다놓아서는 안된다고, 관음전에 놓을 부처가 없으면 다른 곳에 있는것을 가져다놓더라도 상원암에는 본래있던 부처를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비록 길지 않은 말씀이였지만 그이의 이 말씀에는 하나의 자그마한 유물이라도 력사주의적원칙에 맞게 대하여야 한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있다.

지난날 수많은 유적유물보존부문 일군들과 답사자들이 상원암에 와보았지만 누구도 법당안에 본래의 불상이 아닌 다른 불상이 놓여있다는것을 가려보지 못하였다.

우리 민족이 창조한 문화유산을 길이 빛내이시려는 불같은 애민애족의 사상과 민족문화유산과 유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 뛰여난 관찰력을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만이 하나의 자그마한 불상에도 깊은 주의를 돌리시고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아주시였던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위치선정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력사유적유물들을 력사주의적원칙에서 옳게 대하여야 한다는 깊은 뜻을 새겨주는 중요한 문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에 의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졌던 상원암의 부처는 그후 다시 제자리에 놓이게 되였다.   

 

2

로천력사박물관

 

 

묘향산에는 우리 나라에서 손꼽히는 사찰인 고려시기의 유명한 보현사가 있다.

보현사는 중심건물인 대웅전과 만세루를 비롯하여 조계문, 해탈문, 천왕문, 관음전, 령산전, 수충사, 다리니석당, 종각, 석가여래탑(8각 13층탑), 다보탑 등으로 구성된 아주 큰 규모의 사찰이다.

1042년에 처음 세워진 보현사는 11세기의 우리 나라 건축술을 대표하는것으로서 예술적가치가 매우 높은 건축물이다.

묘향산력사박물관은 바로 선조들의 뛰여난 건축술과 훌륭한 예술적기교를 잘 보여주는 보현사건물을 그대로 리용하고있다.

5만여의 부지면적을 가진 묘향산력사박물관은 로천력사박물관이며 국제관광지이다.

박물관에서는 묘향산 보현사의 대웅전과 만세루, 13층탑과 9층탑,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유적유물들에 대한 보존관리 및 연구사업과 함께 그에 대한 해설강의가 진행된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문은 남북중심축을 따라 놓여있는 조계문, 해탈문, 천왕문이다.

첫 문인 조계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고 가운데에 문길을 냈으며 그 좌우에 나무로 만든 금강신을 세워놓았다.

둘째 문인 해탈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서 조계문보다 크다. 해탈문의 복판에는 문길을 내고 그 동쪽에는 푸른 사자를 탄 문수보살의 조각상을, 서쪽에는 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의 조각상을 두었다.

셋째 문인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서 세 문가운데서 가장 큰 문이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보현사 9층탑과 만세루, 보현사 13층탑, 대웅전이 차례로 서있다. 만세루 앞마당에 있는 보현사 9층탑은 화강석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고려초기의 돌탑이다. 고려시기모습으로 복원된 만세루는 턱지은 비탈면에 서있는데 정면절반은 2층으로, 후면절반은 단층으로 된 합각집이다.

만세루와 대웅전사이 뜨락에 있는 보현사 13층탑은 고려말기의 탑이다. 보현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은 장중하고도 화려한 건물이다. 대웅전 동쪽에는 관음전이 있는데 리조초기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관음전 서쪽에 있는 만수각은 리조말년인 1894년에 당시 왕실을 위해 세웠다고 한다.

관음전 동남쪽에는 1983년에 건설된 《팔만대장경》보존고가 있다. 이 보존고는 고려시기의 모습을 갖춘 큰 규모의 합각집이며 여기에는 유물들을 가장 안전하게 보존할수 있는 최신과학설비들이 다 갖추어졌다. 관음전 동쪽에는 령산전과 수충사가 있다. 수충사는 임진조국전쟁때 의병장을 한 서산대사와 사명당을 기념하여 세운 건물이다.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를 여러가지 유적유물을 통하여 직관적으로 생동하게 보여줌으로써 인민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는데 적극 이바지하고있는 묘향산력사박물관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각별한 관심과 은정에 떠받들려 자기 발전의 전성기를 펼쳐왔다.

주체36(1947)년 5월 3일 묘향산을 찾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명산을 인민의 문화휴식터로 꾸릴 원대한 구상을 펼쳐주시고 력사유적과 유물이 많은 보현사에 력사박물관을 내올데 대한 현명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의 넋과 슬기가 어려있는 귀중한 력사유적과 유물이 많은 이곳을 잘 꾸려 선조들이 남긴 재능을 후대들이 와서 볼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박물관을 꾸려 잘 보존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그리하여 1947년 5월 묘향산지구의 귀중한 민족문화유산들을 보존관리하고 주체적으로 계승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묘향산력사박물관이 개관되게 되였다.

당시 창립된 묘향산력사박물관에는 초기에 14세기 고려대장경, 15세기 대장경판목을 비롯한 불교관계유물들과 민속자료들, 임진조국전쟁시기 서산대사를 비롯한 애국적인 승병들이 남긴 많은 유물들이 수집전시되여있었다.

그러나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야수적폭격으로 보현사의 여러 건축물들과 거기에 보관되여있던 유물들이 무참히 파괴소각되였다.

전쟁시기 민족의 국보적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안전하게 소개보존할데 대한 조치를 몸소 취해주신 김일성주석께서는 전후에 보현사의 기본건물인 대웅전과 만세루를 옛 모습그대로 복구하도록 필요한 모든 대책을 다 세워주시였다. 그후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력사박물관을 찾으신 김일성주석께서는 유적의 설명문을 친히 읽어보시면서 문장을 하나하나 다듬어주시기도 하시고 강사의 해설문도 보아주시면서 해설방법까지 바로잡아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꽃피워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보현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과 만세루를 복구하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으며 묘향산력사박물관을 력사주의원칙에 맞게 꾸리고 운영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세루복구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제기되는 온갖 자재들을 제때에 풀어주시였으며 건설공사에 필요한 로력을 더 보충하도록 해당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문화보존부문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보현사 대웅전과 만세루를 복구하기 위한 건설을 다그쳐 대웅전은 1976년 12월에 만세루는 1979년 5월에 완공하였다.

주체70(1981)년 5월 어느날 묘향산력사박물관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먼저 보현사의 령산전을 찾으시여 령산전의 외부단청이며 건물장식, 불상들을 일일이 보아주시고나서 관음전으로 향하시였다.

이윽고 관음전에 들리신 그이께서는 관음전의 건축유래와 금단청, 별지화들이며 불상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해설을 들으시였다.

관음전을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본채의 액방 한구석 모서리의 별지화에 시선을 멈추시고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수행하던 박물관일군들에게 그림을 가리키시며 저것이 무슨 그림인가고 물으시였다.

그 별지화로 말하면 어떤 환상적인 동물을 형상한 그림이였는데 그 누구도 그것이 무슨 그림인지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저 옛사람들의 환상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하면서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들이 력사학자의 본분을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하여 눈길을 들지 못하고있는데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나직한 어조로 얼핏 보면 원숭이같기도 하지만 분명치 못하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뇌이고나신 그이께서는 그 그림을 다시 눈여겨보시였다.

그러시는 그이의 눈가에는 의혹의 빛이 실려있었다.

한것은 불교적성격을 띠는 건물들에 그려놓은 그림들은 모두 환상적으로 형상되는것이 관례인데 유독 그 그림만이 자연그대로의 원숭이처럼 형상되였기때문이였다.

불교전문가들이나 알수 있는 이런 내막을 다 알고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저 그림은 명확치 못한 그림이라고, 관음전을 보수하면서 과학적고증을 잘하지 못하다보니 그림이 원숭이처럼 형상된것 같은데 다시 고증을 잘하여 단청채색을 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후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고 그 그림을 다시 고증한데 의하면 원숭이처럼 형상되였던 그 그림은 《기린》이라는 환상동물이였다.

불교에서 전해오고있는 전설에는 나라에 위력이 높은 위인이 나타날 때 《기린》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렇게 관음전의 《기린》은 제모습을 다시 찾게 되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웅전에 소중히 보관되여 있는 《팔만대장경》과 목판을 보시고 《팔만대장경》은 국보적의의를 가지는 출판인쇄유산으로서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이라고 하시면서 잘 보존관리할데 대하여 절절히 당부하시였다.

묘향산의 훈풍에 무수한 구리종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8각 13층탑을 바라보시며 처음으로 묘향산을 찾으시였던 30여년전의 뜻깊은 그날을 감회깊이 회고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8각 13층탑은 화강석으로 잘 쌓았는데 보호울타리를 잘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시면서 세멘트로 만든 울타리대신에 돌로 옛날에 만든것보다 더 잘해놓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주체85(1996)년 5월 또다시 묘향산력사박물관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팔만대장경》을 영구보존할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주시고 비오는 어느날에는 《팔만대장경》이 걱정되시여 한 일군을 보내시여 그 보존실태까지 알아보시였다고, 누구도 관심을 돌리지 못하던 력사유적설명문까지 구체적으로 보아주시면서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였다고, 천왕문단청은 200년이 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원상대로 잘 보존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묘향산력사박물관사업에서 기본은 력사유적과 유물에 대한 선전이라고 하시며 문화유적과 유물에 대한 평가와 해설은 철저히 력사주의적원칙에서 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그전에 묘향산력사박물관에 왔을 때 관음전액방에 있는 그림을 보면서 원숭이 비슷한것이 무슨 동물인가고 물어본적이 있는데 고증한데 의하면 《기린》을 환상적으로 형상한것이라고 하시면서 원숭이로 고쳐그리지 말고 고증한대로 《기린》이라고 해설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묘향산력사박물관의 담장을 돌로 쌓은것은 좋지만 그 안쪽면에 세멘트를 바른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력사주의적원칙에서 고전미가 나게 하여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이후 묘향산력사박물관은 더욱 훌륭하게 변모되였으며 문화유적과 유물들에 대한 보존관리와 선전에서는 많은 성과들이 이룩되였다.

묘향산력사박물관의 학술일군들은 《백두산3대위인과 묘향산》, 《묘향산은 길이 전하리》를 비롯한 수많은 도서, 편집물들과 가치있는 연구론문들, 《향산이적》을 비롯한 수십권의 민족고전번역자료들을 내놓았으며 박물관구내를 문화유적터로 훌륭히 꾸리였다.

박물관이 개관된 때로부터 지난 60여년간 450여만명의 근로자, 청년학생들과 30여만명의 외국의 벗들이 박물관을 참관하였다.

덩그렁 댕그랑, 덩그렁 댕그랑.

보현사의 8각 13층탑에 매달린 구리종들은 오늘도 신비롭고 우아한 소리를 내며 희세의 위인, 절세의 애국자를 높이 모셔야 민족문화유적과 유물도 영원히 빛을 뿌릴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 민족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