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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장려되는 민속전통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전통과 미풍량속을 고수하고 인민들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살려나가는데 계속 깊은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우리 인민들속에서 민속적으로 전해오는 좋은 관습들에는 민족의 고상하고 아름다운 정신적풍모와 정서가 반영되여있습니다.》 김 정 일
민족음식과 식생활풍습의 전통을 옳게 살려나가도록
인간생활에서 먹는 문제는 사람들의 생존과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선조들은 옛적부터 먹는 문제에 선차적인 관심을 두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식생활을 부단히 개선하여왔다. 그 과정에 해당 시기 사람들의 물질적요구와 구미, 식성에 따라 고유한 민족음식이 생겨났으며 식생활풍습이 형성되고 공고발전되였다. 고유한 민족음식에는 밥, 죽, 국수, 떡, 지짐, 국, 김치, 장, 젖갈 등이 있다. 여기서 재료에 따라 그 가지수를 보면 헤아릴수 없이 많다. 밥에는 약밥과 오곡밥, 비빔밥, 죽에는 팥죽, 녹두죽, 어죽, 잣죽, 우유죽, 떡에는 찰떡, 송편, 절편, 시루떡, 경단, 국수에는 유명한 평양랭면을 비롯하여 실국수, 칼국수, 회국수, 메밀국수, 농마국수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김치도 통김치, 김장김치, 깍두기, 나박김치, 오이김치, 보쌈김치, 석박김치 등 여러가지이다.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든 민족음식은 그 품종이 다양할뿐아니라 맛이 좋고 꾸밈이 이채롭고 영양가가 높아 세계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음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착취계급이 물질적부를 독점한 지난 시기에 근로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하고 부자들에게만 섬겨바치였다. 더우기 일제는 조선강점이후 민족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우리의 민족음식을 없애버리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의 식생활에 깃든 이러한 쓰라린 력사를 깊이 헤아리시고 민족의 수난과 더불어 뒤전으로 밀려났던 민족음식의 독특한 진미를 되살려주시였으며 그것을 인민들이 즐겨먹을수 있게 하기 위하여 뜨거운 심혈을 바쳐오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찍부터 민족음식에 깊은 관심을 두시고 인민들의 식생활과 료리가공에서 민족의 고유한 풍습과 전통을 옳바로 살려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주체53(1964)년 3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옥류관에 나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음식의 오랜 력사와 우수성에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민족음식을 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장군님께서 조선료리의 력사가 매우 오래다고 하시면서 드신 실례의 하나가 신선로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신선로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우리 나라의 독특한 료리이라고, 다른 나라 사람들속에서도 신선로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여 세계에 자랑할만 한 료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신선로에는 고기, 물고기, 남새, 산나물을 비롯하여 수십가지의 음식감이 들어가있을뿐아니라 단백질, 기름, 비타민, 광물질, 탄수화물을 비롯한 여러가지 영양소들이 골고루 들어있기때문에 그 맛이 대단히 좋고 영양가가 높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음식은 밥, 국수, 떡을 비롯한 주식물류와 국, 찌개, 튀기, 볶음을 비롯한 부식물류 그리고 수정과, 화채를 비롯한 음료류, 약과와 강정을 비롯한 당과류로 구분한다고 가르치시면서 조선료리를 체계적으로 전망성있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옥류관은 조선료리를 발전시키는데서 원종장이 되여야 한다고, 전국의 식당들에서 옥류관의 조선료리법을 배워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평양랭면의 진미를 살리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조선음식들가운데서 손꼽히는 음식중의 하나는 평양랭면이다. 평양랭면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으며 누구나 다 좋아한다. 평양랭면이 예로부터 유명해지게 된것은 그 독특한 맛때문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통적인 평양랭면의 진미를 살리는데 각별한 관심을 두시고 옥류관에서 국수의 질을 높일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가르쳐주시였다. 언제인가 장군님께서는 국수의 질을 높이자면 육수와 꾸미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육수는 고기국물과 조개국물, 새우국물, 멸치국물로 만들어야 한다, 육수는 감칠맛이 있고 시원하며 향기로와야 한다, 고기국물로 만든 육수는 고기의 단맛이 제대로 나도록 하여야 하며 기름이 뜨거나 텁텁하고 진한 고기맛이 나면 좋지 않다고 일일이 깨우쳐주시였다. 여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여러차례에 걸쳐 옥류관을 찾으시여 가르쳐주신 평양랭면의 진미를 살리는 좋은 방법을 몇가지 소개한다.
-국수꾸미와 육수를 닭고기로 하며 닭고기 70%, 돼지고기 15%에 통무우를 넣어 육수와 꾸미를 만들면 비리지도 않고 맛이 좋다. -육수는 끓인 다음 찬물에 서서히 식혀가지고 랭동기에 넣어야 맛이 떨어지지 않는다. -메밀국수는 가루를 미리 내지 말고 그시그시 내서 만들어야 국수가 질기기도 하고 메밀냄새도 잘 난다. -평양랭면을 구수한 메밀냄새가 나게 만들자면 메밀껍질을 지내 벗기지 말아야 한다. 메밀은 껍질에도 영양가가 적지 않다. -평양랭면은 먹는 방법도 알아야 맛있게 먹을수 있다. 평양랭면을 먹을 때에는 식초를 육수에 치지 말고 국수발에 친 다음 그것을 육수에 말아야 제 맛이 난다. 육수에 식초를 치면 육수맛이 달라진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평양랭면의 우수한 전통을 살린다는것은 곧 음식분야에서 민족성을 지킨다는것을 의미한다고 하시면서 음식분야에서 민족성을 지킨다는것은 옛날것을 그대로 답습하자는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회주의적생활양식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자는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민족료리를 전문한다는 사람들도 미처 알지 못하는 해박한 료리지식을 지니시고 보통사람들은 느끼지도 못하는 미세한 맛까지 가려보시면서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아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가 있었기에 평양랭면은 자기의 고유한 맛을 잃지 않고 오늘도 유명한 민족음식으로 자랑떨치고있는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으로 형성된 식생활풍습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김치와 장을 잘 만들도록 하는데도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고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김치와 장은 세상에서 오직 조선사람만이 조상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으며 담가먹는 손꼽히는 민족음식이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력사자료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이 남새를 심고 김치를 담가먹기 시작한것은 고구려이전시기부터인것으로 전해지고있다. 고추를 재배하기 이전시기의 김치는 동치미와 같이 소금으로 절인것이였다. 그래서 이 시기의 김치를 《침채》라고 불렀다. 우리 나라에서 고추를 심기 시작한 때부터 김치 만드는 방법이 발전하고 그 종류가 다양해졌다. 17세기 자료에는 34종의 김치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여 있는데 18세기부터는 총각김치, 통김치, 동치미, 깍두기 등 그 종류가 60여가지로 늘어났다. 간장, 된장은 고조선시기에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의 북부지역과 그 일대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것으로 전해지고있다. 원시사회 말기부터 콩농사를 짓기 시작한 우리 선조들은 집짐승들에게 겨울에 콩을 삶아 먹이군 하였다. 이때 소나 말이 먹다가 흘린 콩이 땅에 떨어져 곰팽이가 쓴것을 집짐승들이 맛있게 먹었는데 사람들은 여기에 주목을 돌리게 되였다. 그리하여 삶은 콩을 일부러 띄워서 장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거기서 오늘의 장이 유래되였다고 한다. 어느 한 고구려무덤벽화에 씌여져있는 글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여 큰 공사를 벌렸는데 공사기간에 흰쌀밥, 고기, 술과 함께 간장, 된장을 한 창고분이나 먹었다고 기록되여있다. 이것은 벌써 고구려시기에 간장, 된장이 우리 선조들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조선사람들의 전통적인 식생활풍습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면서 앞으로 김치를 더 잘 만들어 세상에 크게 소문을 낼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치는 우리 나라 부식물가운데서 가장 특색있는 음식의 하나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치는 조선사람들에게 있어서 겨울철반량식일뿐아니라 일등료리라고 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기름진 고기를 먹고도 김치로 입가심을 하며 맛좋은 떡을 먹고도 김치국물을 마시는것을 좋아한다, 주식물에서 밥이 우리 민족음식을 대표한다면 김치는 부식물에서 우리 민족음식의 특색을 보여주는 손꼽히는 음식이다, 우리 나라의 김치는 지방마다 특색이 있고 종류가 다양하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우리 나라의 김치는 지방의 기후조건과 남새의 종류에 따라 여러가지로 발전하였다, 기후가 찬 북쪽지방에서는 간과 양념을 적게 넣고 신선한 맛을 살리는 방향에서 김치를 담갔고 날씨가 더운 남쪽지방에서는 김치가 쉽게 변할수 있으므로 짜고 맵게 하면서 양념을 많이 넣었다, 그리고 바다를 끼고있는 지방에서는 남새와 물고기를 배합해서 만드는 김치가 발전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함경도지방에서 많이 만드는 식혜이다라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김치를 잘 만들어 세상에 크게 소문을 내라고 고무해주시였다. 그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날로 늘어가는 인민들의 물질적요구에 맞게 여러 단위들에서 김치를 많이 만들어 공급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독특하고 상쾌한 향기와 찡한 맛을 가진 여러 종류의 김치를 도처에서 만들어 주민들에게 공급하게 되였으며 급양부문들에서는 통김치, 보쌈김치, 동치미, 갓김치, 나박김치, 깍두기 그리고 식혜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색을 갖추어 봉사하고있다. 몇년전에 어느 한 나라에서 세계적인 체육경기대회를 준비하면서 료리문제를 상정시키고 토의하였는데 여러 나라 선수들과 관광객들에게 공급하는 가장 인기있는 료리의 하나로 조선김치가 선정되였다고 한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민족음식의 하나인 김치가 세상에 소문이 자자하다는것을 말해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장맛을 돋구어 민족음식의 특색을 살려나가도록 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조선사람들은 멀리 다른 나라에 가서도 김치와 장국을 그리워한다. 그것은 거기에 민족의 풍습, 조국에 대한 뜨거운 향취가 담겨져있기때문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간장, 된장은 우리 인민들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식료품이라고, 장맛이 좋아야 음식맛이 좋다고, 그래서 옛날부터 그 집 며느리를 알려면 장맛을 보라고 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장을 잘 만들도록 하시였다. 1980년대에 장공장들에서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장맛도 그리 좋지 못하다는것을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부터 장을 담그는 방법을 알아가지고 지도사업을 잘하여 우리 인민의 구미에 맞게 장맛을 높이도록 하시였으며 집집마다 제각기 메주를 쑤어 장을 맛있게 담그어먹는것을 장려하도록 하시였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그 어려운 시기에나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선 오늘에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전국의 방방곡곡을 찾으시면서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돌아보시는 곳들중의 하나가 기초식품공장들이다. 인민군구분대들을 찾으시여 일일창고에 쌓여있는 콩마대들을 기쁜 마음으로 보시면서 선군9경이라고 불러주신분도 바로 장군님이시고 원산청년발전소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제대군인부부의 가정에 들리시여 매달아놓은 메주덩이들을 보시며 그토록 만족해하신분도 바로 장군님이시다. 몸소 장과 조미료의 견본까지 보내주시며 그 질을 높일 방도를 밝혀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가 있어 간장과 된장은 우리 인민들의 전통적인 식료품으로 더욱 개선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의 독특한 식생활풍습을 적극 살려나가도록 하시였다.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식생활풍습에는 년중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은 동지날에 팥죽을 쑤어먹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주체70(1981)년 12월 22일이였다. 이날 저녁 몇몇 일군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그들을 다정히 맞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은 미처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덤덤히 서있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이 동지날이여서 동지죽을 쑤었기에 동무들을 불렀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그제야 비로소 장군님께서 부르신 의도를 알게 된 일군들은 동지날도 잊고 지낸 자신들이 민망스러워 어쩔줄 몰라했다. 동지날에 팥죽을 쑤어먹는것은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식생활풍습이다. 한해 농사를 지어서 알알이 골라두었던 잘 영근 팥이나 녹두를 걸러서 별식으로 끓인 죽을 온 식솔이 단란하게 둘러앉아 먹는것은 참으로 좋은 풍습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은 지난날 민속적인 날들을 잊지 않고 쇠는데 지금은 그것이 다 없어졌다고, 동지날을 쇠며 동지죽을 먹는것은 좋은 일이라고, 동지죽을 먹으면서 한살을 더 먹었다는 생각과 함께 지난해를 돌이켜보며 새해의 결의를 다지게 되니 좋고 이웃들이 서로 동지죽을 나누어먹으면서 화목을 도모하니 또한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면서 일군들에게 동지죽을 많이 들라고 권하시였다. 그들이 식사를 마쳤을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모두 한가마에 끓인 음식을 나누어먹으니 얼마나 좋은가고 기뻐하시며 혁명가들은 조상전래의 미풍량속도 알고 자기 향토도 알아야 한다고, 이것을 모르면 혁명가가 될수 없다고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자기 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알고 전통적인 민속풍습을 적극 살려나갈것을 바라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며 일군들은 앞으로 우리 민족의 독특한 식생활풍습을 적극 살려나가는데 앞장서리라는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 6월 조선료리협회가 주최한 민속음식품평회장을 몸소 돌아보시면서 선조들이 창조한 전통적인 민속음식을 빠짐없이 찾아낼데 대한 문제, 두부를 비롯한 여러가지 콩음식을 많이 만들어먹도록 할데 대한 문제, 민족음식을 해먹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작물들을 심기 위한 대책을 세울데 대한 문제, 도별로 자기 지방 토배기료리의 특성을 잘 살려나갈데 대한 문제, 료리가공기술과 식료가공기술을 발전시킬데 대한 문제, 민족음식을 장려하고 인민들의 식생활을 개선해나가기 위해 일군들이 이 사업에 대한 관점을 바로가질데 대한 문제 등 민족음식을 발전시키고 전통적인 식생활풍습을 적극 장려하는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로고와 심혈이 있어 온 나라에 민족음식과 식생활풍습의 전통이 옳게 살려지게 되였으며 조선민족고유의 향취가 차넘치게 되였다.
민족옷을 많이 입어야 한다시며
사람에게 있어서 입는 문제는 먹는 문제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옷은 추위와 더위 그리고 외부에서 미치는 이러저러한 영향으로부터 사람들의 몸을 보호하고 인품을 돋구어준다. 조선속담에 《옷이 날개》라 하고 《하루 굶은것은 몰라도 헐벗은것은 안다.》는 말이 있게 된것은 이때문이다. 옛날옛적부터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지대의 자연기후조건과 생산활동, 생활감정과 취미, 기호에 맞는 옷을 만들어입었으며 그 과정에 옷차림풍습을 가지게 되였다. 우리 선조들도 머나먼 태고적부터 입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조적활동을 줄기차게 벌려왔는데 그 과정에 아름답고 고상한 민족옷이 창조되고 고유한 민족옷차림을 하게 되였다. 슬기롭고 근면한 우리 선조들이 옷을 만들어입기 시작한 때로부터 유구한 세월이 흐르는 과정에 조선옷은 시대적미감에 맞게 계승발전되여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오늘도 인민들속에 널리 장려되고있다. 조선옷차림이 세월의 흐름에도 변함없이 인민들속에 널리 장려되고있는것은 민족의 우수한 전통을 고수하고 더욱 빛내여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기때문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민족적특성을 살려 주체성있게 발전시켜나갈데 대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민족옷을 많이 입는것을 적극 장려하도록 하시였다. 한때 일부 새 세대 녀성들은 양장만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해당 부문 일군들은 그것을 있을수 있는 일로 범상하게 여기면서 심중히 대하지 않고있었다. 이러한 때인 주체75(1986)년 1월 1일이였다. 새해 첫날 나라의 전반사업을 돌보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조선옷을 입도록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일군들과 오래동안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치마저고리는 조선민족의 고유한 옷으로서 세계에 자랑할만 한 옷양식의 하나이므로 녀성들이 일할 때에는 양복을 입어도 명절날이나 시집갈 때에는 조선치마저고리를 입는것이 좋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전통적인 관습으로 보아도 우리 나라의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비단치마저고리를 해입혀 내세웠고 없으면 자기가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저고리를 잘 손질하여 입혔으며 언니가 시집갈 때 입었던 치마저고리를 동생이 시집갈 때 입혀주기도 하면서 첫날옷을 가보로 여기며 대를 물리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혁명가는 생활에서도 자기의 민족성을 존중하는 충실한 애국자로 되여야 한다고 간곡히 강조하시였다. 자기의 민족성을 존중하는 충실한 애국자가 되여야 한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민족옷을 입는것이 단순히 문화생활의 한 측면으로만 되는것이 아니라 민족성을 고수하고 발전시켜나가는데서 나서는 절실한 문제이라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였다. 사실 민족옷을 장려할데 대한 장군님의 간곡한 가르치심은 이때 처음 있은것이 아니였다. 주체66(1977)년 9월 어느날이였다.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의상도안과 견본품들을 보아주시였는데 그이께서는 어떻게 하면 녀성들의 옷차림을 민족적전통을 살리면서도 현대적미감에 맞고 세련되게 하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깊이 마음쓰시였다. 민족고유의 우리것을 열렬히 사랑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옷, 특히 녀성들의 치마저고리는 수천년의 력사가 있는 문화적이고도 세련된 옷으로서 오늘도 세계 그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만 한것이라고, 치마저고리를 입는것을 계속 장려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저고리는 그 형식을 변형시키기 힘들지만 치마는 여러가지 형식과 문양, 색갈로 더 화려하게 할수 있을것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지난 시기 젊은 녀성들은 흰 저고리에 깜장치마를 즐겨입었는데 그것도 검박하면서 고상하게 보여 좋다고, 앞으로 대학생처녀들에게 교복을 줄 때 흰 저고리와 깜장치마를 한벌씩 더 주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다심한 사랑에 의하여 그후 녀대학생들은 교복을 받아안을 때 치마저고리를 한벌씩 더 받게 되였다. 그후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속에서 조선옷을 입는것을 장려할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녀성들에게 조선옷을 잘 만들어입히면 고상하고 우아할뿐아니라 거리도 환해져 좋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옷차림에는 민족의 고유한 풍습과 정서가 깃들어있다. 때문에 민족옷을 홀시하면 점차 민족의 전통이 허물어지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도 지켜낼수 없게 된다. 어느해인가 설날을 맞으며 남조선의 한 방송이 각계층 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바 있다. 그에 의하면 전통적인 민족의상을 입지 않겠다는 가정이 63%나 되였고 세배나들이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60%를 넘었으며 응답자중 많은 사람들이 윷놀이와 같은 민속놀이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이것은 남조선에서 양풍, 왜풍에 의하여 민족의 넋과 미풍량속이 무참히 짓밟히고있다는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이다. 지금 제국주의자들이 침략책동의 일환으로 부르죠아문화를 집요하게 류포시키는 조건에서 민족성을 고수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있다. 이러한 시대적요구로부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옷차림에 대하여 그토록 중시하시는것이다. 조선옷을 통하여 민족의 넋과 고상한 아름다움을 대를 두고 간직해나가도록 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혈은 이루 다 헤아릴수 없다. 주체77(1988)년 10월 21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국경공업제품전시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조선치마는 조선옷으로서의 고유한 맛이 나게 길게 해입혀야 한다고, 거리에 다니는 녀성들을 보아도 조선치마를 짧게 해입고 다니는것은 보기 좋지 않다고, 꼬리치마는 흰 고무신이 보일락말락하게 길게 해입어야 조선옷맛이 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며칠후 또다시 옷차림도안과 견본을 보아주시면서 조선옷을 여러가지 천을 가지고 많이 만들어야 한다, 지금 조선치마저고리를 한가지 색갈로만 만들며 서로 다른 색갈로 만드는 경우에도 색조화를 잘 맞추지 못하고있는데 그렇게 하는것은 민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 잘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조선옷견본을 민속적인 자료들과 조선옷에 대한 연구사업을 잘하여 완성하여야 하겠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78(1989)년에만도 여러차례에 걸쳐 옷차림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애국자가 되려면 자기 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더 잘 연구하여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도 고유한 민족성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녀성들속에서 조선옷을 입는 사회적기풍을 세우고 어린이들에게 생일과 민속명절, 주요 국가적인 명절날에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녀자), 조선바지저고리(남자)를 입히는것을 장려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조선옷견본전시회와 조선옷견본현상모집 같은것을 널리 조직하며 조선옷을 전문으로 하는 조선옷점을 많이 꾸려 녀성들이 조선옷을 만들어입는데 불편이 없도록 대책을 취해주시였다.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민족옷을 발전시키는데 깊은 관심을 돌려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4(1995)년 4월 민족의상전시회와 관련한 문건을 보아주시고 모란봉극장에서 조선민족의상전시회를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모란봉극장에서는 조선민족의상전시회가 성대히 열리였으며 전시된 200여벌의 조선옷들은 그 독특함으로 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 세기에 들어와서도 고전적로작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적전통을 적극 살려나갈데 대하여》, 《선군시대에 맞는 사회주의적생활문화를 확립할데 대하여》를 비롯한 여러 로작들에서 민족옷을 즐겨입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녀성들속에서 우아하고 보기좋은 조선치마저고리를 입는것을 적극 장려할데 대한 문제 그리고 사람들의 옷차림과 몸단장을 시대에 어울리게 단정하면서도 건전하고 고상하게 할데 대한 문제 등 민족옷발전에서 강령적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공화국에서는 민족옷을 장려하는 기풍이 전사회적으로 확립되게 되였으며 피복연구사업이 강화되고 옷품평회와 전시회가 자주 열려 조선옷의 본보기가 널리 보급일반화됨으로써 민족옷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그 차림새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였다.
민속명절을 뜻깊게 쇠도록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해마다 즐겨맞아오던 민속명절들이 적지 않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기후조건, 농사철 등을 참작하여 뜻있는 날을 명절로 정하고 맞아왔었다. 우리 인민은 한해를 봄, 여름, 가을, 겨울 네계절로 나누고 다시 기상기후의 변화에 따라 24절기로 세분하였으며 절기의 흐름에 맞추어 농산활동과 생활조직을 해왔다. 봄절기에 접어들면 농사일에 착수하였고 가을철이 오면 로동의 열매인 무르익은 오곡백과를 거두어들이였으며 겨울나이준비를 서둘렀다. 겨울철은 상대적으로 덜 바쁜 농사철이라고 하지만 농민들은 새해농사차비를 위해 손맥을 놓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런 바쁜 속에서도 필요한 휴식을 하고 다시 새로운 기분을 가지고 다음의 영농작업에 달라붙기 위하여 영농공정과 공정사이에 합리적인 명절을 정하였다. 명절은 아무렇게나 정한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에 따라 알기 쉽게 정하였다. 우리 선조들이 명절날을 정한것을 보면 기수의 달에 수자가 중복되는 날, 즉 음력 1월 1일, 3월 3일, 9월 9일과 같은 날이거나 즐겁게 휴식할수 있는 달밝은 음력보름날들인 1월 15일, 6월 15일, 7월 15일, 8월 15일 등을 명절로 정하였다. 이와 같이 명절을 정하던 초기에는 달과 날의 수자가 같거나 달밝은 보름날을 쉬는 날로 정하고 계절에 맞는 놀이와 행사들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후세로 내려오면서 명절의 의의를 돋구려고 거기에 사건과 전설을 꾸며 덧붙이였다. 그리하여 명절에는 여러가지 전설과 격식적인 의례들이 덧붙어 전하여지게 되였다. 오늘 공화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속명절들을 경사롭고 뜻깊게, 즐거이 쇠고있다. 온 사회와 가정들에서 민속명절들을 뜻깊고 즐겁게 쇨수 있게 된 여기에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뜨겁게 어리여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풍습을 귀중히 여기고 잘 살려나가며 민속명절들을 즐겁고 뜻깊게 쇠도록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 나라에 민속적으로 전해내려오는 명절이 몇이나 되는가고 물으신적이 있었다. 뜻밖의 물으심이여서 누구도 선뜻 대답을 못하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사람은 추석에는 산소에 가는 풍습이 있는데 이런 풍습들을 사회주의적생활양식에 맞게 잘 살려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명절들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해주시였다. 예로부터 의리가 깊고 이웃과 화목을 도모해온 우리 민족은 해마다 명절들을 즐겨왔다. 명절이 오면 집집마다 독특한 음식을 만들어가지고 나와 씨름경기와 그네뛰기, 널뛰기, 윷놀이를 비롯한 민속놀이를 한 다음 서로 음식을 나누면서 춤과 노래로 한때를 즐기군 하였다. 지금까지 력사적으로 내려오며 전해지고있는 한가위, 설명절 등 모든 명절들은 그런 민속에서 유래된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명절이라는 말은 근대에 와서 생겨난 말이고 그전에는 민속명절을 세시 또는 월령, 속절이라고 불렀다고 하시면서 민속은 말그대로 근로인민대중속에서 생겨나고 발전하였으며 오늘까지 전해지고있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풍습이라고, 로동의 보람과 미래에 대한 리상을 춤과 노래에 담아 즐긴것은 근면하고 지혜로운 우리 인민의 생활감정을 표현한것이며 조상의 산소를 돌아보고 제사를 지내는것은 례절이 밝고 의리가 깊은 우리 인민의 품성을 그대로 반영한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조상전래의 미풍량속을 잘 살려 민속명절들을 장려하고 사람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시려는 의도가 담긴 뜻깊은 말씀이였다. 우리 민족의 고유하고 우수한 전통을 살려나가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설명절을 즐겁게 쇠도록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주체86(1997)년 2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오랜 기간 전통적으로 쇠여온 민속명절을 즐겁게 쇠는것은 고유한 민족문화전통을 살려나가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전에 우리 인민들은 설명절을 즐겁게 쇠군 하였다고, 온 한해동안 힘겹게 일하다가 설이 오면 지방마다 특색있는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어먹고 윷놀이와 같은 즐거운 민속놀이도 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설명절을 쇠는것을 비롯하여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전통과 생활풍습을 잘 살려나가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9월과 그 이듬해 1월 어느날에도 설명절을 잘 쇨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새해를 맞이하는 명절로 음력설을 쇠여왔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도 예로부터 음력설을 쇠였다, 우리 나라에 양력이 들어오면서부터 음력설을 크게 쇠던 풍습이 점차 없어지게 되였는데 양력설을 기본으로 하는것은 서양식이다, 앞으로 양력설은 간단히 쇠고 음력설을 크게 쇠는것을 전통화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에 따라 공화국에서는 설명절을 전통적인 풍습에 따라 민속명절로서 크게 쇨뿐아니라 예로부터 전하여오는 세배, 설음식, 민속놀이 등도 모두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게 잘 계승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설명절뿐아니라 추석과 정월대보름 등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속명절들의 유래까지 세세히 가르쳐주시면서 명절을 뜻깊게 쇠도록 하시였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추석은 우리 인민이 옛날부터 쇠는 명절이다, 지난날 우리 인민은 년중에도 설명절과 추석을 큰 명절로 즐겁게 쇠군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세나라시기에 이미 8월추석을 큰 명절로 쇠군 하였다, 그러니 추석의 유래는 세나라 초기나 그 이전시기부터였을것이다, 옛날에는 추석을 가위라고 하였는데 추석을 앞두고 녀인들이 길쌈경기를 하여오다가 8월 보름날에 승부를 가른 다음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노래부르고 춤추며 놀았다, 한해농사를 지어놓고 가을걷이를 하기 전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하루를 즐겁게 지내는것도 좋고 가족, 친척들이 다같이 조상의 묘를 찾아보는것이 나쁘지 않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추석에 햇곡식으로 정히 음식을 지어가지고 조상의 묘를 찾는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풍습이다. 장군님께서는 이 고유한 풍습을 적극 살려나가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추석은 사람들속에서 민족성을 살리는 좋은 풍속인것만큼 조건을 보장하고 장려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추석날을 휴식일로 제도화하고 교통이 불편한 곳에는 기차나 뻐스로선도 내오게 하도록 하는 등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다 보장해주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월대보름의 유래도 알려주시면서 민속명절로 크게 쇠도록 하여주시였다. 주체91(2002)년 2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보름이 어떤 날인지 알고 지낼 필요가 있다고 하시면서 정월대보름의 유래와 풍속을 구수하게 이야기해주시였다. 정월대보름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면서 전해오는 우리 민족의 고상한 풍속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정월대보름이 어떤 날이며 무슨 음식을 만들어먹는가 하는것과 같은 상식도 알려주며 달력이나 탁상일력에도 정월대보름이라고 쓴것이 없는데 써넣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전통적인 풍속을 귀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애에 떠받들려 정월대보름이 국가적휴식일로 되게 되였다. 정월대보름이면 전국의 거리와 마을들, 공원과 유원지를 비롯한 곳곳에서 어린이들이 연띄우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줄넘기를 진행하고 공장과 기업소, 협동농장들은 민속놀이로 흥성이고있으며 TV와 방송에서는 흥겨운 민요가락이 흘러나오고 민족음식의 향취가 민족료리전문식당들과 각지 급양봉사망들, 모든 가정들에서 넘쳐난다. 통일조국의 앞날을 축복하듯 밤하늘에 밝은 빛을 뿌리며 떠오르는 둥근달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절세의 위인을 모셔야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도 빛나고 민족의 밝은 래일도 펼쳐지게 된다는 신념과 확신을 더욱 굳게 다지군 한다. 정녕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높은 뜻을 지니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민족의 어버이로 높이 모시였기에 민속명절들을 맞고 보내는 우리 민족의 생활풍습은 선군시대에 더욱 활짝 꽃펴나게 되였으며 이 땅에서는 우리 민족고유의 우수한 민속전통이 더 훌륭히 계승발전되게 되였다.
시대적미감에 맞게 발전하는 민속놀이
민속놀이는 예로부터 인민들이 로동과 생활속에서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고유한 민족오락이다. 산좋고 물맑은 이 땅에서 오랜 세월 근면하게 일하면서 살아온 우리 민족은 명절날이나 휴식일은 물론 일상생활의 쉴참에도 흥겨운 민속놀이를 많이 하여왔다.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민속놀이는 체력단련놀이, 지능겨루기놀이, 가무놀이, 무술련마놀이, 인형 및 탈놀이 등 그 종류가 수백가지나 된다. 이것은 민족의 재부이며 자랑으로 된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속놀이를 장려하면 사람들의 체력을 단련하고 지능을 계발시키며 언제 어디서나 생활을 락천적이고 유쾌하게 할뿐아니라 그들에게 민족적자부심과 긍지를 높여주고 민족제일주의정신을 적극 키워주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오늘 공화국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따뜻한 보살피심에 의하여 민속놀이가 널리 장려되고 일반화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찍부터 인민들의 생활에 유익하며 민족적정서가 짙은 민속놀이를 적극 장려하게 하시여 근로자들에게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심어주고 문화정서적으로, 락천적으로 살며 일해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주체69(1980)년 9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일군들과 담화를 하시다가 명절날이나 쉬는 날에는 민속놀이를 많이 하도록 장려하는것이 좋다고 하시면서 민속놀이를 장려하면 인민들이 명절이나 쉬는 날을 즐겁게 보낼수 있으며 생활을 더 정서적으로 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나라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좋은 민속놀이들이 많다고 지적하시였다. 계속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윷놀이는 옛날부터 설명절때마다 우리 인민이 즐겨하는 좋은 오락의 하나입니다, 널뛰기나 그네뛰기도 좋은 민속놀이입니다, 그전에는 명절때가 되면 처녀들이 널뛰기를 하느라고 온 동네가 흥성거리군 하였습니다라고 하시면서 민속놀이를 장려하는것은 인민들을 교양하는데도 좋고 우리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발양시키는데도 좋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지금 민속놀이를 하는데가 별로 없다고, 설명절이 되여도 윷놀이를 하거나 연띄우기를 하는것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근로자들이 명절이나 쉬는 날에 이르는 곳마다에서 장기와 그네뛰기, 널뛰기, 바줄당기기, 연띄우기, 윷놀이와 같은 여러가지 운동과 유희, 오락을 많이 하도록 사회적인 분위기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문화정서생활을 마음껏 즐길수 있게 여러가지 운동기구와 유희, 오락기구들을 더 많이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바줄당기기와 그네뛰기, 널뛰기에 쓰이는 바줄과 널판도 보장해주고 윷쪽과 윷판 같은것도 만들어주며 어린이들이 연을 만드는데 필요한 종이와 연줄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세부적인 문제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시대발전과 인민의 문화생활수준이 높아지는데 맞게 민속놀이를 계속 장려해나가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경치좋은 곳이나 유원지들에 민속놀이장을 꾸려줄데 대한 문제, 민속놀이감들을 많이 만들어 팔아줄데 대한 문제, 전국적인 장기경기를 조직할데 대한 문제, 지방마다의 독특한 민속놀이풍습을 살려나갈데 대한 문제 등 민속놀이와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돌리신것은 어린이들의 민속놀이였다. 주체87(1998)년 10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전에는 팽이치기와 제기차기, 메뚜기차기, 유리알치기를 비롯하여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유희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놀이를 하는것이 없다고, 그전에는 어린이들이 강물우로 돌팔매질을 하여 돌이 물우로 여러번 스쳐지나가게 하는 놀음도 많이 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어린이들의 동심세계와 체질에 맞는 민속놀이들이 적극 장려되도록 장군님께서는 그리도 마음쓰신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속에 공화국의 여러곳에 연, 팽이, 윷, 장기 등 여러가지 민속놀이감들을 전문으로 파는 오락기구전문상점들이 생겨나게 되였으며 여기저기에 민속놀이장들이 꾸려져 근로자들과 어린이들의 민속놀이가 흥겹게 벌어지게 되였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장이 바로 사리원의 풍치수려한 경암산기슭의 민속거리에 있는 민속오락장이다. 주체97(2008)년 12월 어느날 민속거리를 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속오락장을 보시면서 시민들이 윷놀이와 장기, 바둑놀이를 하며 즐겁게 휴식할수 있어 좋아할것이라고 못내 기뻐하시였으며 추울 때나 더울 때에도 시민들이 찾아와 오락을 할수 있도록 실내오락장과 야외오락장을 따로 꾸린데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추석명절의 흥취를 돋구어주는 씨름경기에도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씨름은 4∼5세기이전부터 있었고 18세기경에는 이웃나라에까지 퍼졌다. 씨름은 지방마다 사람들의 풍습과 취미에 따라 그 형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나이와 수준에 맞게 대체로 상씨름, 중씨름, 애기씨름으로 나누어 진행되여왔다. 고구려의 벽화에는 웃동을 벗어제낀 씨름군들이 승부를 겨루는 재미있는 장면이 그려져있는데 이것은 고구려사람들이 씨름을 즐겨하였으며 고구려시기에 씨름이 널리 보급되였다는것을 증명해주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래전에 《씨름은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민족경기의 하나이다》라는 담화를 발표하시여 씨름이 고려이전시기에 우리 나라에서 생겨난것이라고 밝혀주시였고 씨름은 7월백중날과 8월추석날에 제일 많이 한 조선사람들이 좋아하는 전통적인 민족경기라고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씨름을 비롯한 민족경기를 잘 살려야 한다고, 민족경기를 살린다고 하여 복고주의를 해서는 안된다고, 민족경기를 우리 시대 사람들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에 따라 공화국에서는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속에서 씨름이 널리 일반화되여왔으며 2002년부터는 대황소상전국민족씨름경기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진행되게 되였다. 주체91(2002)년 1월 어느날이였다. 우리의 민족성을 그 누구보다 귀중히 여기시며 우수한 민속전통을 고수하고 빛내여주시기 위해 언제나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씨름경기를 본래의 취지에 맞게 잘 조직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내용과 격을 한계단 더 높이 끌어올리기 위한 현명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금 조직하는 씨름경기는 인기를 잃고있다고, 씨름경기는 우리의 민족성을 고수하는 특색있는 경기로 되여야 하며 그러자면 경기조직자들이 여러모로 머리를 쓰고 중앙과 지방의 해당 기관들이 이 사업에 관심을 돌리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시상품으로는 송암명기소목장의 소를 보내주도록 은정깊은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하고도 뜨거운 은정속에 민족씨름경기는 내용과 품격에서 근본적으로 개선되여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대황소상전국민족씨름경기로 발전하게 되였다. 경기에서 1등을 한 선수에게는 대황소와 함께 특색있게 만든 금소방울도 상으로 주게 되여 경기는 사람들의 인기를 더욱 끌고 흥취를 한껏 돋구게 되였다. 2002년 제1차 대황소상전국민족씨름경기가 풍치수려한 모란봉의 씨름경기장에서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속에 대성황리에 진행되였다. 경기에는 20대, 30대의 청년들로부터 일흔살을 바라보는 로인들도 참가하여 더욱 이채를 띠였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민족씨름경기를 보게 된 사람들은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씨름경기가 한창이던 어느날 한 닭공장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오늘 모란봉에서 진행된 씨름경기가 어떻게 되였는가고, 황소는 얼마나 큰것이였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이 900kg짜리 황소라고 말씀올리자 장군님께서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며 말그대로 대황소라고, 잘했다고 하시면서 이런 대황소상경기를 전통화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유서깊은 모란봉에서 대황소상의 금소방울소리가 온 나라에 울려퍼지게 되였으니 그게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남녀로소 누구나 크나큰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기다려지고 일단 경기장면을 보면 경기장에 선수가 되여 뛰여들고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나게 하는 대황소상전국민족씨름경기는 바로 이렇게 마련되였다. 2009년 9월 제7차 대황소상전국민족씨름경기가 진행되였는데 전국에서 선발된 100여명의 씨름강자들이 참가하여 련 3일동안 《백병전》을 벌렸다. 씨름경기장에서 승벽내기를 하는 선수들의 아슬아슬한 경기장면도 볼만 하였지만 민족옷을 떨쳐입은 남녀로소가 꽹과리, 장고를 치며 경기열기를 돋구는 모습도 경기장을 이채롭게 하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뜻한 보살피심과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공화국에서는 예로부터 전하여오던 민속놀이들이 적극 장려되고 시대적미감에 맞게 발전함으로써 근로자들의 생활은 더욱 흥겹고 다양해지게 되였다. 절세의 위인의 사랑속에 민속놀이는 자기의것을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며 자기의 멋으로 발전하려는 조선민족의 아름다운 지향과 더불어 더욱 계승발전될것이다.
미풍량속이 더 훌륭히 꽃펴나도록
예로부터 조선은 례의도덕이 바른 동방례의지국으로 널리 알려져왔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례의를 귀중히 여기고 그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였을뿐아니라 례의를 어기는것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였다. 그러므로 조선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인사례법이 바르고 례절을 잘 지키는것을 풍습으로 삼아왔다. 옛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사람들은 꿇어엎드려 절을 하는데 한다리는 뒤로 뻗친다고 하면서 부여와 다르다고 하였다. 이 자료에서 고구려와 부여사이에 례절이 다르다고 한것은 부여에서는 꿇어엎드려 손을 바닥에 짚고 절하였던데서 나온 말이다. 고구려사람들이 부여사람들과 달리 다리를 뒤로 뻗치고 절한것은 평소에 웃어른들에게 하던 절을 말한것이 아니다. 《삼국지》의 다른 개소에서 사위가 처가집에 가서 문밖에서 자기 이름을 대면서 꿇어 절한다고 한것을 보면 일상생활에서는 고구려사람들도 부여사람들과 같이 절하였다. 그러나 군사행동이나 공적인 용무로 인사를 할 때에는 보다 신속하게 다음동작으로 넘어갈수 있게 한다리를 꿇고 한다리는 뒤로 뻗치고 절을 하였던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백제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백제에서는 군사행동때에는 인사를 하지 않았으며 일상생활에서 인사를 할 때에는 두손으로 땅을 짚고 부여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하였다. 이것은 군사행동과 일상생활에서 례절이 달랐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다. 봉건말기에 조선사람들이 하던 인사법은 대체로 세가지로 나누어볼수 있다. 그 하나는 우에서 본바와 같이 꿇어엎드려 두손을 땅에 짚고 머리를 숙이는 큰절이며 둘째는 두손을 앞에 모두어쥐고 깊숙이 머리숙이는 절인데 지난날에는 이것을 《읍》이라고 하였다. 셋째는 머리만 간단히 숙여 절하는것이다. 이러한 절은 때와 장소, 대상에 따라 그에 맞게 하였다. 큰절은 집안에서만 하는 절이였고 읍이나 머리만 숙이는 절은 흔히 밖에서 하는 절이였다. 리조시기자료에 의하면 공적인 사업과정에는 두번 큰절을 하게 되여있었는데 사사로운 생활에서는 두번 절하는 법이 없었다.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벼슬도 높은 사람에게는 큰절을 하고 웃사람에게는 허리굽혀 절(읍)을 하였다. 가정에서는 명절에는 물론이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모이상의 어른들에게 큰절을 하고 문안하였다. 웃사람과 아래사람의 기준이 신분관계에 따라 정해진 봉건사회에서 평민들은 량반에 대해서는 나이에 관계없이 인사를 하여야 하였다. 그러한 례를 18세기 화가 김득신의 그림 《농민과 량반》에서 찾아볼수 있다. 량반은 나귀를 타고 거드름을 피우며 고개를 쳐들고 지나가는데 농민남녀는 한켠으로 길을 비켜서서 허리를 깊숙이 굽혀 절을 하고있다. 길거리에서 하는 인사는 허리굽혀 절하는것과 머리숙여 절하는것이 있었으며 이러한 절과 함께 지켜야 할 여러가지 례절이 있었다. 우리 조선민족의 인사법은 웃어른에게 하는것, 같은또래의 친구에게 하는것, 아래사람에게 하는것 등 례절을 지켜야 할 대상에 알맞게 되여있다. 즉 보다 정중성을 표시해야 할 대상에게는 허리를 깊숙이 굽혀 절하고 친구사이에는 간단히 머리숙여 인사하며 아래사람의 인사에 반드시 머리를 숙여 답례하는것은 인사로써 아래우를 잘 가리는 단정한 례절이였다. 가정에서 부모와 웃어른들을 존경하고 아래사람들을 사랑하며 화목하게 살아왔고 친척들사이에는 물론 이웃과 동무들사이에도 서로 도와주며 아끼고 사랑하여온 훌륭한 례의범절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잘 지켜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여 온 사회의 일심단결을 더욱 강화하고 온 나라에 사회주의적미덕이 활짝 꽃펴나게 하신분은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조선의 미풍량속을 귀중히 여기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사례절에서 우리 식의 인사법을 지켜나가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시였다. 주체52(1963)년 2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하신 담화 《대학생은 언제나 례절을 잘 지켜야 한다》에서 우리 인사법의 우수성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그 전통을 이어나가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사람은 예로부터 례의범절이 밝은 인민으로 불리워왔다, 인민들속에서는 웃사람을 존경하고 아래사람을 사랑하며 서로 양보하고 도와주는 아름다운 기풍이 지배하였으며 그것이 하나의 민족적풍습으로 굳어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절이 기본인사법인데 인사대상과 장소에 따라 절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길가에서 친구들이 서로 만났을 때에는 머리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나누었지만 로인이나 웃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반드시 존경의 뜻을 담아 공손한 말로 안부를 물으면서 허리굽혀 인사하였다고, 방안에서는 웃사람에게 큰절이나 반절을 하였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주체69(1980)년 3월 어느날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사를 조선식으로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 여러가지 형식이 있지만 조선절이 제일 좋다고, 사람들이 서로 절을 하며 인사를 나누도록 교양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 인사례절을 잘 지켜나가도록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큰절은 설명절아침에 웃사람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등 특별한 경우에만 하고 일상생활에서는 머리를 숙이는 절을 하도록 하시였으며 일군들부터 악수가 아니라 조선절로 인사하는 모범을 보이고 근로단체조직들과 학교들에서 우리 나라 인사례법의 우수성에 대하여 옳게 인식시키도록 하시였다. 뿐만아니라 남의 식을 본따지 말고 우리 식으로 인사할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려민족에게 절을 하는것과 같은 좋은 인사법이 있는데 무엇때문에 남의 인사법을 따르겠는가고 하시면서 원래 악수를 하는것은 유럽사람들의 인사법이라고, 그런데 일제식민지통치때부터 우리 나라에 악수를 하는 인사법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고, 우리는 남의 인사법이 아니라 우리 고려민족의 인사법을 적극 장려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인사법을 적극 장려할데 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 기회에 옛날에 우리 나라에는 악수법이 없었는데 근대에 와서 생겨났다고, 악수를 하는것은 서양식례법이라고 거듭 일깨워주시면서 우리 나라 인사례절을 잘 지켜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원래 악수는 우리 식의 인사례법이 아니다. 우리 인민은 옛날부터 서로 만나면 절을 하였다. 서로 만나 악수하는것은 서양식례법이지만 습관되여서 누구나 례사롭게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고상한 미풍량속을 귀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악수를 하지 말고 절을 하도록 간곡히 가르치시였던것이다. 우리 인민의 미풍량속을 옳게 살려 민족의 존엄과 위용을 온 세상에 떨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가 있어 오늘 공화국에서는 웃사람들을 존경하고 아래사람들을 사랑하는 사회주의도덕기풍이 활짝 꽃펴나고 숭고한 도덕의리에 기초하여 수령, 당, 대중의 혼연일체가 더욱 튼튼히 다져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통적인 식사례절과 언어례절을 잘 지켜나가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은 식사를 나눌 때에도 례절을 잘 지켰다고, 우리 나라에서는 밥을 풀 때 로인이나 웃사람의 밥을 먼저 담았으며 식사도 로인이나 웃사람에게 먼저 권하였다고, 우리 인민은 특히 손님을 례절바르게 대하고 성의를 다하여 대접하는 좋은 풍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조상전래로 내려오는 이러한 미풍량속을 잘 살려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군 하시였다. 또한 우리 인민은 일상생활에서는 말할것도 없고 결혼식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서도 례절바르게 행동하였다, 례절이 바른 우리 인민의 풍습은 언어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있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같은 말이라도 웃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르고 동년배에게 하는 말이 달랐으며 아래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달랐다, 우리 나라가 예로부터 동방례의지국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것은 우연한것이 아니라고 지적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난날의 민족적풍습가운데는 오늘의 시대적요구에 잘 맞지 않는 낡고 뒤떨어진것, 허례허식적인것이 적지 않다고 하시면서 민족적전통을 살린다고 하면서 뒤떨어진것까지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지난날의것을 덮어놓고 내세우는것은 복고주의라고, 복고주의와 허무주의를 다같이 경계하면서 민족적풍습가운데서 낡고 뒤떨어진것은 버리고 좋은것은 적극 살려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시대의 요구에 맞게 언어례절을 발전시킬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가르치심에 의하여 지난 봉건시기에 웃사람에게 자기를 낮추어 남자, 녀자가 하던 부름말 《소자》, 《소녀》와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가 자식을 둔 아들과 며느리, 딸들에게 하던 《애비》, 《에미》와 같은 부름말, 사망한 다른 사람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키던 《선대인》, 《대부인》과 같은 부름말 등 인민들의 생활감정에 맞지 않는 낡고 뒤덜어진것들이 사라지게 되였다. 조선민족의 미풍량속을 귀중히 여기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이 인정미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인민들을 언제나 따뜻이 대해주도록 세심히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인정미는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미덕으로서 조상전래의 전통적인 미풍량속이다. 남을 위해 마음쓰며 헌신하는 따뜻한 인정이 오가는 속에 인간생활의 진미와 향기가 있고 인간관계의 고결함과 아름다움이 있는것이다. 주체85(1996)년 2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래동안 일하다가 년로보장으로 넘어가는 일군들을 잘 대해줄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해 8월 어느날에는 일군들에게 사람은 인정미가 있어야 한다고 다시금 간곡히 말씀하시면서 자기를 배워준 선생과 선배들을 존경하는것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라고 일깨워주시였다. 그후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사람들로부터 《우리》라고 불리우는 일군이 되여야 한다고 거듭거듭 강조하시였고 최근에는 일군들이 조국이라는 《거목》을 받드는 뿌리가 되여야 한다고 참다운 인생관, 생활의 륜리에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오늘 공화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가르쳐준 스승과 선배들을 존경하고 일군들이 사람들을 후더운 인정과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대해주며 그들의 생활을 다심히 보살펴주는 아름다운 생활풍조가 전사회에 지배하게 되였다. 그뿐이 아니다. 전쟁시기도 아닌 평화시기에 터지려는 수류탄을 한몸으로 막아 대원들의 생명을 구원한 지휘관도 있고 영예군인들의 손상당한 눈과 발이 되여주고저 그들에게 시집장가가는 처녀총각들도 많다. 자기의 피를 뽑고 살점과 뼈를 떼내여 중상자를 살려내고 부모잃은 아이들과 자식이 없는 늙은이들이 친혈육의 정과 가정적인 정서를 그리워할가봐 그들을 데려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과 며느리가 되여주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스승과 선배들을 존대하고 이웃과 동무들,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조상전래의 관습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더욱 훌륭히 발전시킨 아름다운 도덕의리의 정취, 향취이다. 정녕 조상전래의 미풍량속을 가장 귀중히 여기시고 시대의 요구에 맞게 더 훌륭히 꽃펴나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공화국에서는 우수한 민족성과 민족적바탕에 기초한 제일의 도덕문명이 이루어지게 되였으며 인덕의 화원이 더욱 무성하게 꽃펴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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