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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함북금강》 칠보산
《칠보산은 우리 나라의 5대명산으로 이름난 산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습니다. 칠보산은 명산중의 명산입니다.》 김 정 일
먼저 찾으신 개심사
옛글들중에는 산수풍경을 즐긴 유람객들과 이름난 시인들에 의하여 창작된 칠보산기행문, 시가들이 적지 않다. 16세기에 남긴 《유칠보산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일찌기 여러 산들을 돌아보았는데 칠보산은 금강산이나 지리산에 양보할바가 아니다. 하물며 기괴한 맛은 금강산도 미치지 못할것이다. 자고로 비장되였던 이 산이 일조에 일국의 제일이 될지어니 산천경개를 즐겨하는 세상사람들이… 여기 칠보산을 찾을것이다.…》 칠보산을 자랑한 옛 시들중에는 이런 시도 있다.
… 맑고 개절한 틀에서는 금강산을 일러야 하고 서리고 겹친 산세로서는 묘향산을 손꼽아야 하지만 깊숙한 가운데 기괴한 맛을 갖춘것으로서는 칠보산이 으뜸이다 …
이렇듯 옛사람들이 칭송한 칠보산은 함경북도 동해안의 남부에 있는 명산으로서 동쪽은 조선동해, 서쪽은 길주명천지구대, 북쪽은 경성만으로 흘러드는 어랑천과 그 지류인 화성천 그리고 남쪽은 조선동해와 화대천을 경계로 한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있다. 지역에 따라 내칠보, 외칠보, 해칠보로 불리운다. 칠보산은 산과 바다의 뛰여난 풍치로 하여 예로부터 《함북금강》으로 알려졌으며 산이름도 진귀한 일곱가지의 보물에 비기여 칠보산이라고 불리웠다. 칠보산은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인 산발들과 좁고 깊은 계곡들, 기묘한 봉우리들과 기암들,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맑은 물, 장쾌한 폭포와 담소, 바다가의 절벽들과 기묘한 섬바위들, 사철 샘솟는 온천들로 하여 매우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있다. 칠보산에는 아름답고 독특한 자연경치와 함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많은 력사문화유적과 유물들이 있으며 이름있는 명소들과 지명들마다에는 민족의 슬기와 재능, 지향과 념원, 미풍량속이 담겨져있는 전설들이 깃들어있다. 명천읍성과 재덕산성 등의 산성들과 개심사를 비롯한 사찰들과 사찰터들, 새로운 령길을 개척한 정상인의 공적을 기념하여 세운 신도령비 등은 칠보산의 대표적인 력사유적이다. 개심사는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종일 해가 잘 들고 잠풍한 곳인 내칠보에서도 경치좋기로 이름난 개심대에 자리잡고있다. 개심사는 826년에 세워진 발해시기 유적으로서 우리 선조들의 우수한 건축술과 창조적재능, 근면함을 보여주는 오랜 력사문화유적이다. 현재 개심사에는 기본불전인 대웅전외에 만세루, 관음전, 음향각, 심검당, 산신각이 있는데 만세루는 최근에 복구한것이고 다른 건물들은 대체로 1784년에 다시 지은것이다. 그밖에도 여러개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 개심사에는 9살 난 한범이라는 소년이 썼다는 《칠보산개심사》현판이 걸려있다. 대웅전은 앞면 3간(10. 71m), 옆면 2간(6. 6m)의 겹처마합각집이다. 건물의 중심을 강조하기 위하여 가운데간을 좌우옆간보다 1m 더 넓게 하면서 네짝문을 달았으며 옆간들에는 두짝문을 달았다. 두공구조에서 특이한것은 포식두공의 일반형식과는 달리 밖으로 짤막한 산미(옛 목조건물의 지붕우에 짜올린 두공의 한 구성요소) 1개를 주두(기둥머리)에 덧붙인것이다. 건물안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는 여러 불상들이 불단우에 안치되여있다. 불상들앞에는 흰 코끼리와 푸른 사자조각을 받침대로 하는 업경대와 그밖의 불교기물들이 있어 불상들의 위엄을 한결 돋구어준다. 대웅전 뒤마당에는 수백년동안 자란 개심사 약밤나무가 있고 개심사마당에는 한고뿌 마시면 10년은 젊어진다는 룡연정이라고 불리우는 우물도 있다.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개심사마당은 늪이였고 여기서는 룡이 살았다고 한다. 그 룡은 꼭 사시절 마르지 않는 샘인 룡연정샘물을 마시고서야 하늘로 날아오르군 하였다고 한다. 심검당은 앞면 6간(16. 9m), 옆면 3간(8. 88m)의 홑처마합각집인데 경사진 자연지세에 맞게 기둥높이를 조절하여 지붕처마의 수평을 보장하였다. 관음전과 산신각의 지붕은 네모지붕이고 음향각에는 우진각지붕을 씌웠다. 이렇게 사당건축에 배집지붕은 쓰지 않고 네모지붕이나 우진각지붕을 쓴것은 독특한 양상이다. 개심사는 전반적으로 균형미가 잡히고 주위환경과 잘 어울려서 사람들에게 옛 건물의 그윽한 정서를 안겨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칠보산의 개심사를 찾아주신것은 주체85(1996)년 6월 어느날이였다. 그때 일군들은 끊임없는 선군령도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휴식의 한때를 마련해드리려고 먼저 그이를 칠보산의 일만경치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승선대에 모시려고 하였다. 하지만 명산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거기에 깃들어있는 민족의 슬기와 창조적재능을 더 귀중히 여겨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랜 력사문화유적인 개심사부터 찾으시였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건축술과 예술, 유구한 력사가 깃들어있는 개심사에 대한 해설을 주의깊게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라의 귀중한 문화적재보를 잘 보존관리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나서 대웅전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대웅전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승려들이 쓰는 목탁도 몸소 보아주시고 목탁에서 참 묘한 소리가 난다고 말씀하시였다. 개심사의 오랜 력사유물을 그리도 귀중히 여겨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칠보산에 오신 그이께서 왜 명소들보다 먼저 개심사를 찾아주시였겠는가 하는 의미를 깊이 새겨보게 되였고 민족의 문화유산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를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되였다.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애국애족은 자기 조국의 력사와 문화에 대하여 잘 알 때 생긴다고 하시며 력사유적에 대한 참관사업을 조직하여 인민들에게 조국애, 민족애를 심어줄데 대하여 강조하시고나서 오래전에 휩쓴 큰물로 하여 파괴된 만세루를 원상그대로 복구할데 대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하나의 유적유물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그것을 먼 후날에 가서도 손색이 없도록 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애국의 마음에 받들려 그후 개심사의 만세루는 자기의 옛 모습을 자랑하며 개건되게 되였다. 주체90(2001)년 11월 또다시 칠보산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칠보산에는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력사문화유적들도 많으므로 그 보존관리사업을 잘하며 그를 통한 애국주의교양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력사의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개심사를 또다시 찾으시였다. 복구된 개심사의 만세루를 돌아보시며 장군님께서는 만세루를 고전미가 나게 잘 복구하였다고 거듭 치하하시면서 건설자들에게 감사를 보내주시였다. 그리고 산간오지의 이름없는 주지스님을 몸가까이 세우고 기념사진도 찍으시였고 그에게 은정넘친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그날을 회억하며 주지스님은 자기의 심정을 글줄에 담아 이렇게 토로하였다.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령도자들도 많지만 우리 장군님처럼 외진 산골에서 불문에 몸을 담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름없는 승려들까지 사랑의 한품에 안아 따뜻이 보살펴주시는분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선군혁명령도의 장정을 이어가시는 바쁘신 속에서도 우리 불교도들의 도장이며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력사문화유산들을 후세에 길이 빛내이기 위해 마음쓰시며 불교도들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따뜻이 보살펴주고계시는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애와 사랑을 가슴깊이 느낀다. 하기에 나는 우리 불자들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장군님을 모심으로 하여 우리 개심사가 오늘과 같이 유명사찰로, 민족문화유산으로 빛을 뿌릴수 있게 되였다고 긍지높이 이야기해주고있다.》
칠보산이 6대명산의 하나로 빛나는것은
무릇 사람들은 명산을 두고 자연의 거대한 창조물이라고 일컫는다. 허나 아무리 산천경개가 수려하고 황홀하다고 해도 찾아주는이 없고 알아주는이 없으면 그것을 어찌 명산이라 하겠는가. 땅속의 보석도 닦아야 빛이 난다는 말도 있듯이 아무리 수려한 산천이라 해도 가꾸어주고 내세워주는 절세의 애국자를 모셔야 명산으로 빛난다. 세월의 운무속에 가리워졌던 《함북금강》 칠보산이 로동당시대 6대명산의 하나로 된것이 이를 증명해주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칠보산을 두번째로 찾으신것은 주체85(1996)년 11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외칠보로부터 해칠보까지의 먼길을 몸소 답사하시면서 칠보산의 자연미와 환경상태를 깊이 료해하시고 칠보산을 인민의 사랑을 받는 명산으로 더 잘 꾸리기 위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칠보산휴양소 분소입구에 이르렀을 때였다. 기묘한 봉우리들과 절벽들, 무성한 수림으로 절경을 이룬 산발들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시고 한참이나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칠보산의 경치가 어느 계절이 제일 좋은가고 물으시였다. 동행하던 한 일군이 칠보산은 설경이 제일 좋다고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내려 바위짬에 있는 소나무들이 눈을 이고있기때문에 신묘한 바위들이 더 두드러져 설경이 아주 황홀할것이라고 하시면서 칠보산은 설경도 좋지만 단풍철도 좋을것이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장군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일군들은 어쩌면 이 고장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보다 칠보산의 풍치에 대하여 더 잘 아실가 하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탄사를 올렸다. 칠보산의 단풍철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황홀하였기때문이였다. 칠보산의 아름답고 특색있는 사계절풍치를 그려보시는듯 주변산발들에서 좀처럼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칠보산은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다고, 칠보산은 우리 나라의 5대명산으로 이름난 산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다고 하시면서 저으기 아쉬움이 어린 어조로 칠보산은 왜 우리 나라 5대명산에 속하지 못하였는지 리해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때 곁에 있던 칠보산명승지 학술연구사가 옛날에 함경북도지방이 정배살이를 하던 곳이기때문에 칠보산이 명산으로 알려지지 못한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의 말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배살이와 명산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정배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와서 산다고 하여 칠보산의 경치가 달라질것도 아닌데 옛날 사람들이 칠보산을 5대명산에 포함시키지 않은것은 잘못되였다고 보아야 할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옛날 사람들이 5대명산을 꼽았다면 오늘 로동당시대에는 6대명산을 꼽고 칠보산을 단연 첫자리에 놓아도 손색이 없을것 같습니다. 칠보산은 묘향산이나 구월산에 비길데 없이 경치좋은 명산입니다.》 칠보산의 온 골안이 울리도록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장군님의 안광에는 우리 나라에 또 하나의 명산을 찾아주신 기쁨과 함께 아름다운 조국산천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애정이 뜨겁게 어리여있었다. 《칠보산은 명산중의 명산입니다.》 조국의 명산에 대한 사랑과 긍지를 담아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에 화답하듯 칠보산의 온 골안이 울리며 무수한 나무들이 설레였다. 백여만년 비바람에 씻기고 깎이여 천태만상의 절경을 이루었건만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이 없던 칠보산이였다. 그런 칠보산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여 비로소 자기의 참모습을 드러내며 명산중의 명산으로 자랑떨치게 된것이다. 명산의 참모습을 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칠보산의 뭇봉우리와 기암절벽 하나하나에도 애틋한 정을 담아 명봉, 명소들의 신묘함과 아름다움을 한껏 부각시켜주시였다. 칠보산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처음 보신 기암은 장수봉기슭에 우뚝 솟아있는 처녀바위와 총각바위였다. 그 바위앞에 이르시여 유심히 살펴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저 바위들에 무슨 전설이 깃들어있는가고 물으시였다. 동행한 학술연구사가 처녀바위와 총각바위에 깃들어있는 전설을 해설해드리였다. 해설을 마친 학술연구사는 만약 그들이 결혼하여 백년해로로 살다가 죽었다면 그것으로 끝났겠지만 저처럼 굳어져 영원한 사랑, 영원한 청춘으로 살기때문에 오늘 경애하는 장군님을 맞이할수 있었다고 말씀올리였다. 아주 걸작이라는듯 크게 소리내여 웃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위들을 가리키시며 저것 보오, 사람이 신통하지 않소, 고양이바위도 신통하다고 하시며 다시금 웃으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일행모두는 다시금 처녀바위와 총각바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비옷을 쓴채 수집어 발끝만을 내려다보는것만 같은 처녀바위와 애타게 처녀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는것만 같은 총각바위는 참으로 신통했다. 학술연구사의 말대로 경애하는 장군님께 자기들의 사랑을 말씀드리고 행복하게 살려고 오늘까지 그자리에 그대로 서있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모두들 더없이 즐거운 심정에 휩싸여있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칠보산이 명산이니 전설도 그럴듯 하다시며 이곳 명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전설도 알려주면 그들이 칠보산에 대한 인상이 더 깊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학무대》라고 부르는 기암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학이 날개를 펼치고 너울너울 춤을 추는것 같다고 하여 《학무대》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해설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바위모양을 더듬어보시고나서 학같지 않고 매같이 생겨보인다고, 앞코숭이가 신통히도 매같이 생겼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때 동행한 일군들은 모두 감탄하였다. 해설자의 해설을 듣는 순간까지만도 그가 학이라고 하기에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바라보니 신통히도 매의 모양이였기때문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기쁨에 넘쳐있는 일군들에게 학무대를 매바위라고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봉황새에 메닭의 이름》이라고 오랜 세월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던 기암이 그제야 비로소 제 모양새 그대로의 이름을 가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로적봉다리입구에 이르시여 로적봉과 풍돌바위에 대한 전설을 들으시고는 로적봉이 기묘하기도 하고 그에 대한 전설도 재미있다고, 풍돌바위는 농민이 로적가리를 더 높이 쌓을 생각으로 허리춤에 손을 얹고 로적봉을 바라보는것 같다고 하시면서 칠보산은 파고들수록 이야기거리가 많은데 그런 이야기거리들을 다 찾아내여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이날 승선대에 오르시여 새로 지은 정각을 보시며 아주 잘 지었다고 못내 만족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칠보산의 명소들이 이제야 제모습을 다 드러내였다고 하시면서 승선대에 쌍안경을 비치하여 관광객들이 칠보산명소들을 구체적으로 볼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칠보산의 참모습을 더욱 빛내이고 자랑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은 칠보산관광안내도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이날 시간이 퍼그나 흘러 귀로에 오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박달령에서 다시 차를 멈추시고 칠보산전경도를 보아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전경도에 그려진 명소들과 실지 명소들을 대조하여보시는듯 전경도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이윽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명소들의 위치도 맞지 않고 원근감도 잘 나타나지 않을뿐아니라 전경도의 품위도 낮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명산의 품격에 맞게 만수대창작사에서 칠보산전경도를 보석화로 잘 그리게 하고 전경도틀도 멋있게 만들어 세우라고 가르쳐주시였다. 그후 만수대창작사에서 만든 칠보산관광안내도사판을 몸소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칠보산명소를 다 알수 있게 안내도사판이 잘되였다고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빨리 현지에 내다 설치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칠보산의 관문인 박달령에는 명산의 품격에 맞게 특대형보석화 《칠보산관광안내도》가 세워지게 되였다. 아직 그 어느 명승지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특대형보석화 《칠보산관광안내도》. 오늘 칠보산을 찾는 사람들은 이 안내도를 보면서 칠보산의 명소들과 자기들이 걷게 될 탐승길을 찾아보기에 앞서 이곳 명산에 깃들어있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과 거룩한 발자욱을 더듬어보며 그이에 대한 경모의 정을 금치 못하군 한다. 진정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세심한 령도밑에 칠보산은 조선의 6대명산의 하나로, 민족의 크나큰 자랑으로 세상에 그 이름을 더 높이 떨칠수 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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