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유적유물과 전설이 많은 금강산
《우리 선조들이 이룩해놓은 민족문화유산을 그저 허무주의적으로 대할것이 아니라 귀중히 여길줄 알아야 합니다. 금강산에 대한 전설같은것도 후대들이 알게 하는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 전설가운데는 선녀들이 하늘에서 팔담에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허황한 이야기도 있지만 지금 그것을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는것만큼 금강산전설에 대하여 해설하는것을 막을 필요가 없습니다.》
김 정 일
금강산의 문화재가 빛나는것은
조선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사람들은 제일먼저 금강산을 꼽군 한다. 강원도 고성군과 금강군에 걸쳐 남북의 길이 60km, 동서의 길이 40km, 면적 530㎢의 광대한 지역을 포괄하고있는 금강산에는 비로봉, 옥녀봉, 차일봉, 세존봉, 수정봉 등 50여개의 큰 봉우리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높고낮은 봉우리들이 마치도 병풍을 두른듯이 하늘높이 솟아있다. 예리한 산봉들과 생김새가 다양한 수많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금강산은 독특한 산악미와 계곡미의 황홀한 풍치로 뛰여났을뿐아니라 고원경치, 전망경치, 호수경치, 바다와 해안경치 등 아름다운 절경을 다 갖추고있는것으로 하여 예로부터 우리 나라의 《5대명산》, 《조선팔경》, 《3신산》의 하나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하늘을 찌를듯이 톱날처럼 늘어선 《1만 2천봉》과 각양각색의 모양을 닮은 기암들, 거대한 층암절벽들과 서로 다른 깊은 계곡들 그리고 거기에 이루어진 수많은 담소와 못들, 절벽과 바위들을 감돌아 흘러내리는 구슬같은 맑은물, 무지개를 이루며 쏟아져내리는 무수한 폭포들로 하여 절승경개를 이루는 금강산은 다양한 동식물상과 록음 등이 서로 잘 어울려서 한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답다. 그런것으로 하여 우리 선조들은 새싹이 파릇파릇 움트고 갖가지 꽃들이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봉우리마다 아롱다롱 단장되는 봄의 금강산을 가장 귀한 보석인 금강석에 비유하여 금강산이라 불렀으며 봉우리마다 흰구름이 오락가락 감돌고 우거진 록음속에 옥계수 쏟아져 폭포수가 청산을 울리는 시원한 여름의 금강산을 봉래산이라고도 하였고 울긋불긋 단풍드는 가을의 금강산을 풍악산, 겨울에 나무잎이 다 떨어지면 흰눈에 덮인 기묘한 바위들만 우뚝우뚝 솟아있는것이 마치도 뼈만 남은것 같다고 하여 개골산, 신선이 사는 산과 같이 신비롭다 하여 선산이라고도 불러왔다. 금강산이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고 세상사람들로부터 동경의 대상으로 되고있는것은 이 산이 천하제일 명산이고 많은 문화유적들을 가지고있는것과도 관련된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천하절승 금강산을 개척하여왔다. 태백산줄기의 높은 령들을 넘나들면서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인민들의 창조적로력투쟁에 의하여 금강산이 개척되였으며 7세기 말엽부터는 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금강산지구의 유적유물들은 원시시대의 고인돌로부터 계급사회초기의 옛무덤들과 중세기의 산성, 건물, 탑, 비, 돌탑, 불상조각, 금속공예품, 나무공예품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매우 많다. 우리 인민들이 금강산에 8만9암자가 있었다고 전하고있는것처럼 옛 건축물이 많았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180여개의 암자이름들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08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기록되여있다. 금강산의 유적유물가운데서 산성이나 옛 무덤을 비롯하여 일부 공예, 조각품을 내놓고는 거의 모두가 불교와 관련되여있다. 이것은 불교가 우리 나라에서 5∼6세기이후 오래동안 지배적인 사상의 하나로 되여있었기때문이다. 이러한 유적유물들은 모두 인민들의 창조적인 지혜와 예술적재능, 피땀으로 이루어진것만큼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된다. 그러나 지난날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아름다운 금강산을 제놈들의 명승탐승의 숙박소, 유흥터로 만들었고 유점사53존불의 일부 조각상과 금장암사자탑안에 있던 금부처, 표훈사의 53부처를 새긴 불탑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들을 닥치는대로 빼앗아갔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침략자들은 유점사, 장안사, 신계사, 정양사, 표훈사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유물들을 재더미로 만들었다. 1949년에 창설되였던 《금강산특수박물관》(신계사에 설치)도 이때 모두 불타고 파괴되였다. 이렇듯 지난 시기 빛을 잃었던 금강산의 유적유물들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은정깊은 보살핌속에서 수많이 복구되였으며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관리되게 되였다. 해방후 천하절승 금강산을 찾으시여 문화유적유물들을 잘 보존할데 대한 귀중한 말씀을 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54(1965)년 6월과 주체62(1973)년 8월, 주체76(1987)년 6월 등 여러차례에 걸쳐 금강산을 잘 꾸릴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금강산의 유적들가운데서 대표적인 유적들을 복구하여 유람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뜻을 그대로 이어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금강산의 력사유적을 잘 보존관리하여 아름다운 금강산을 인민의 명승지로 더 잘 꾸리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주체70(1981)년 6월 중순 어느날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내금강의 보덕암을 찾으시였다. 보덕암은 내금강의 만폭구역에서 특이한 정자이다. 이 정자는 아스라한 절벽우에 단 한개의 구리기둥으로 세운 암자이다. 벼랑에 앉아있는것 같기도 하고 매달려있는것 같기도 한 이 암자를 본 13세기말∼14세기초의 한 시인은 이런 시를 남겼다.
차거운 바람은 바위서리에 풍기고 골짜기에 담긴 물은 깊고 푸르구나 지팽이에 의지하여 벼랑을 바라보니 나는듯 한 처마는 구름을 탄듯 하구나
보덕암으로 들어가면 절벽에 깊숙이 뚫린 굴이 있다. 이 굴이 바로 몇세기전에 한 외국사신이 《이곳이야말로 진짜부처의 경지이다. 원컨대 여기에서 죽어서 조선사람이 되여 오래오래 부처세계를 보았으면 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소에 뛰여들었다는 보덕굴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보덕굴이 높은데 있다고 하시면서 수령님께서 금강산을 각별히 사랑하신것은 이처럼 아름답고 웅장한 명산에 민족의 자랑인 문화유산이 많기때문이라고, 그러므로 력사유물을 철저히 보존하는 사업에 큰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에는 금강산의 력사유적을 더 잘 보존관리하여 민족의 문화재보를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지게 하시려는 숭고한 뜻이 어려있었다. 주체88(1999)년 3월 력사유적유물들에 대한 견해와 관점을 바로가지고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문화재보들을 잘 보존관리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시기 미국놈들의 폭격으로 불타버린 금강산의 력사유적들도 다 원상대로 개건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2(2003)년 2월 일군들과 담화를 나누시면서도 금강산의 유적들을 복구할데 대하여 또다시 강조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금강산에도 복구해야 할 유적들이 많다고 하시면서 그전에는 유명한 4대사찰이 있었는데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야수적폭격에 의하여 불타버리고 지금은 내금강의 표훈사밖에 남아있는것이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신계사, 유점사, 장안사는 터만 남아있는데 이런것들도 앞으로 다 복구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력사문화유적들을 보존관리하고 복구개건하는데서 나타나는 가장 주요한 편향은 현대화하는것이라고 지적하시면서 력사문화유적복구개건에서 력사적으로 형성된 민족적건축기법을 잘 살려야 한다고, 우리 민족의 건축기법에서 우수한것을 계속 찾아내여 살리며 그것이 전통으로 계승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공화국에서는 금강산의 유적들을 보존관리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갔다. 그리하여 《금강산4대사찰》의 하나였던 표훈사를 비롯하여 정양사, 보덕암과 불지암, 《금강산3대탑》인 신계사돌탑, 장연사돌탑, 정양사돌탑과 금장암사자탑, 마하연묘길상, 삼불암과 정양사 약사여래상, 발연사 무지개다리와 유점사돌다리, 묘길상앞 돌등을 비롯한 돌등들, 서산대사비를 비롯한 비석과 부도 등 오랜 문화유적과 유물들이 옛 모습그대로 보존되게 되였다.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문화재들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강산일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귀중히 여기고 잘 보관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공화국의 전국각지에서 건설사업과 관개건설공사들이 벌어지고있던 1980년대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많이 발굴되는 문화유물들을 제때에 빠짐없이 수집할수 있게 해당한 대책을 세워주시였으며 전군중적인 관심속에 이 사업이 진행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이 시기 전국각지에서 력사유물수집사업이 광범하게 진행되여 수많은 유물들이 수집되였는데 금강산일대에서만도 국보적인 가치가 있는 금불상과 금동불상을 비롯한 여러가지 유물들이 수집되였다. 1981년 11월 금강군 내강리 금장동의 어느 한 바위짬에서 고려시기의 석가여래앉은부처상 2상, 관세음보살앉은부처상 1상이 발견되였으며 그 이듬해 10월 만폭동 향로봉에서 고려시기 금동불상 3상이 수집되였다. 1983년 12월에는 금강산 유점사 남쪽 5리 지점에서 절벽짬사이에 있던 10개의 금동불상과 불상을 넣었던 흰사기단지 20개가 발굴되였다. 그후 금강산 차일봉의 높은 산발 중턱 바위짬에서 금강군 주민들에 의하여 금동불상이 또다시 발견되였다. 불상의 몸체에서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진주, 옥돌, 은장석, 향목, 벼알, 비단천쪼각 등의 유물이 나왔다. 이 금동불상은 8각련꽃받침대우에 아미타여래상을 중심에 앉히고 그 량쪽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상을 세운 독특한 형식의 불상이였다. 금동3불상은 정확한 비례설정과 섬세한 표현수법으로 만들어진 우수한 조각품들중의 하나로서 발굴당시 보존상태도 좋았다고 한다. 불상의 몸체안에서는 《가선부대》라는 벼슬이름이 적힌 참지와 진주옥돌, 벼알, 비단천, 조각상 18종 등 47점의 유물이 나왔다. 금동3불상은 그 형상수법과 부처안에서 나온 유물과 벼슬이름을 밝힌것으로 보아 그 제작년대를 리조초기의것으로 볼수 있으며 가치와 미술공예적수준도 국보적의의를 가지였다. 금강산일대에서 여러점의 금불상과 금동불상들이 발견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집된 금불상들을 조선중앙력사박물관과 원산력사박물관에 진렬보관하고 후대들을 애국주의로 교양하는 사업에 널리 리용하도록 하시였다. 이처럼 천하제일명산 금강산의 수많은 유적유물들마다에는 민족의 문화재를 제일로 아끼고 사랑하시는 절세의 위인들의 은혜로운 사랑과 뜨거운 은정이 깃들어있다. 6. 15가 놓아준 《통일오작교》를 타고 근 200만명에 달하는 남측관광객들이 금강산을 다녀갔다. 그들은 금강산에 와보아야 조선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수 있고 금강산의 유적유물을 보아야 우리 민족이 얼마나 슬기로운 민족인가를 알수 있다고 하면서 민족의 넋이 살아 숨쉬는 금강산은 진정 민족의 명산, 세계의 명산이라고 감동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정녕 내 나라, 내 조국을 제일로 사랑하시며 우리 겨레에게 세계적인 명승지를 마련해주시고저 끊임없는 로고를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금강산의 문화재보는 아름다운 경치와 더불어 더욱더 찬연한 빛을 뿌리는것이다.
몸소 들려주신 금강산전설
금강산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엿보게 하는 유산들중에는 당대 사회계급관계와 생활세태, 인민의 지향과 념원, 풍습, 아름다운 자연풍치를 반영하고있는 많은 전설들도 있다. 천태만상을 이룬 봉우리와 기암들, 단풍으로 붉게 물들은 계곡들과 하얀 비단필을 드리운듯 황홀함을 자아내는 무수한 폭포들, 담소와 못들… 금강산의 그 어느 명승에도 전설이 깃들지 않은 곳이란 거의나 없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반한 하늘나라의 선녀가 금강산의 나무군총각과 백년가약을 맺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문주담, 상팔담전설이며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구경하려고 우물밖에 나왔던 개구리가 황홀한 경치에 홀딱 반한채 바위로 굳어져버렸다는 구룡연구역의 개구리바위전설과 하늘나라에서 절구를 찧던 옥토끼가 옥황상제의 분부도 잊고 금강산구경에 시간가는줄 모르다가 끝내는 옥황상제의 벌을 받아 거부기몸집에 토끼대가리모양을 한채로 굳어져버렸다는 구룡연 토끼바위전설, 온정골 늙은이들이 한 소녀를 따라 삼선암에 갔다가 3일만에 왔는데 210년이 흘렀고 마을은 쑥밭이 되였더라는 쑥밭전설. 어찌 그뿐이랴. 이름난 박씨부인에 대한 전설도 여기에 깃들었고 임진조국전쟁시기 왜적을 쳐물리치는데서 큰 공을 세운 사명당을 비롯한 애국명장들의 전설이 깃든 곳도 바로 금강산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이 이 전설들로 하여 더욱 빛나고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천하제일명산 금강산을 인민의 즐거운 문화휴식터로, 세상에 자랑높은 명승지로 되게 하시려 늘 마음을 써오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금강산에 깃든 전설들을 더 많이 발굴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어 그들의 가슴마다에 열렬한 조국애와 향토애를 깊이 심어주도록 하는데도 각별한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주체50(1961)년 9월 어느날이였다. 그날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설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였다. 전설은 흔히 구체적인 력사적사건이나 인물, 지명과 결부된 이야기로 전해진다, 전설은 많은 경우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전설은 비록 환상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속에는 인민대중의 념원과 생활감정, 그들의 재능과 지혜가 그대로 반영되여있다. 이렇게 허두를 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강산의 팔담과 결부된 《금강산팔선녀전설》만 보아도 그것을 잘 알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에 대하여 재미나게 이야기하시였다. 먼 옛날 금강산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한 나무군총각이 살고있었다. 어느날 나무군총각은 산에서 포수에게 쫓긴 사슴을 구원해주었는데 사슴은 자기를 구원하여준 선량한 나무군총각이 아직 장가를 못 가고있다는것을 알고 그를 동정하여 아름다운 선녀를 안해로 맞아들이도록 도와준다. 사슴은 나무군총각에게 팔담에 가면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는데 그 선녀의 옷을 감추면 그를 안해로 맞아들일수 있으며 아이 셋을 낳기 전에 절대로 그 옷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하고서는 사라졌다. 나무군총각은 사슴이 시키는대로 팔담에 숨어있다가 목욕하러 내려온 한 선녀의 옷을 감춘다. 그리하여 날개옷을 잃은 선녀는 어찌할수 없어 나무군총각의 안해가 되여 아름다운 금강산에서 살게 된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무군총각과 선녀사이에는 아들, 딸 두 아이가 생겨났으며 그들의 사랑과 정은 더없이 깊어지고 서로 떨어질수 없을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무군총각은 자기 옷을 보고싶다는 선녀를 측은히 여겨 그에게 날개옷을 준다. 선녀는 날개옷을 입자 두 아이를 한팔에 하나씩 안고 하늘로 날아올라간다. 순간에 사랑과 행복을 잃은 나무군총각에게 사슴이 다시 나타나서 당신이 날개옷을 감춘 후부터는 선녀들이 드레박으로 물을 퍼올려 하늘에서 목욕을 한다고 하면서 그 드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 안해와 아이들을 만날수 있다고 알려준다. 나무군총각은 사슴의 말대로 하늘에 올라가서 안해와 아이들을 만난다. 그러나 선녀에게도 나무군총각에게도 하늘세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녀에게는 그처럼 아름다운 금강산에서 선량한 나무군총각과 함께 일하며 살아가던 그날이 그리워졌고 나무군총각에게는 자기가 나서 자란 금강산과 같이 아름다운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되였으며 혼자 두고온 어머니가 근심되였다. 그리하여 나무군총각과 선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금강산에 내려와 어머니를 모시고 잘 살았다고 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팔선녀전설이야기를 마치시자 한 대학생이 하늘에서 선녀들이 금강산에 내려와 목욕을 했다든가, 하늘의 선녀와 금강의 나무군총각이 부부를 이루고 살았다는 이야기는 다 허황한것이 아닙니까라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제기하였다. 그 질문을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팔선녀전설이 다 허황한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여기에는 금강산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금강산의 물이 세상에서 제일 정결하다는것을 이야기하고있으며 그것을 만방에 자랑하려는 우리 선조들의 깨끗한 지향과 금강의 총각들처럼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반드시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사상도 담겨져있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옛 이야기를 듣거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들려줄 때 거기에 담겨져 있는 인민의 념원과 지향이 무엇이며 인민의 슬기와 지혜가 어떻게 반영되여있는가 하는것을 깊이 분석하여보아야 한다고, 깊이 분석해보지도 않고 함부로 이것은 미신적이요, 저것은 비과학적이요 하는 식으로 딱지를 붙이고 없애버리려 하여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런 실례의 하나로 금강산 옹달샘이야기를 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금강산의 어느 한 옹달샘물을 마시면 늙은이는 젊어지고 젊은이는 머리가 좋아지고 아이 못 낳는 녀인은 아이를 낳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물론 허황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여기에는 정갈한 금강의 물을 자랑하고 유람객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금강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과 지향이 깃들어있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샘물을 마시면 기분이 유쾌하면 유쾌했지 나쁠것은 없을것이라고 하시고나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비록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였지만 전설에 대한 옳은 견해와 관점을 가지게 하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그 말씀을 들으며 대학생들은 우리 인민이 창조한 하나하나의 전설들에 바로 선조들의 지향과 념원, 생활감정과 지혜가 깃들어있다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고 금강산의 전설도 대를 이어 전해갈 귀중한 민족의 문화유산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그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강산을 찾으실 때마다 일군들에게 금강산의 전설들도 몸소 들려주시면서 금강산과 관련된 전설들을 더 많이 찾을데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군 하시였다. 단풍이 붉게 타던 주체64(1975)년 10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금강산의 몽천을 찾으시였다. 그이를 모신 일행이 《몽천》이라고 쓴 표식비앞에 이른것은 한낮이 가까와올 무렵이였다. 묘하게 생긴 곳에서 샘물이 솟고있었는데 한낮의 해볕에 뒤잔등을 푹 적시였던 일군들은 그 샘물을 보고 무등 기뻐했다. 일군들이 샘물을 정히 떠서 경애하는 장군님께 드리고 마른 목을 추기려고 하는데 장군님께서는 여기에 이런 샘물이 있는것이 아주 신통하다고 말씀하시였다. 해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정처럼 맑은물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누가 이 샘물의 유래를 알면 한번 이야기해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런데 누구도 자신있게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몽천》이라는 이름이나 들었을뿐 그 유래까지는 전혀 알지 못하였던것이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그럼 내가 알고있는 여기 전설을 알려주어야 하겠구만 하시면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였다. 옛날에 집터를 찾으려고 돌아다니던 승려들이 이곳에 와서 너무 지쳐 그만 잠이 들었다고 한다. 종일 더위에 시달린 그들은 목이 말라 꿈속에서도 물을 찾아 안타까이 헤매였다. 마침내 그토록 찾고찾던 샘물을 찾은 그들은 너무 기뻐 서로 얼싸안으며 잠에서 깨여났다. 깨여나고보니 아쉽게도 그것은 꿈이였다. 하지만 이 아니 꿈같은 일인가. 신기하게도 잠을 자던 자기들의 옆에서 샘물이 퐁퐁 솟고있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승려들은 꿈속에서 찾아낸 샘물이라고 하여 《몽천》이라고 이름을 달았다는것이다. 그럴듯한 전설이여서 일군들은 솔깃이 귀를 기울이며 의미있게 미소들을 지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옛날부터 유래가 있는 몽천을 정갈하고 문화성있게 꾸려 이곳을 찾는 인민들이 휴식의 한때를 즐겁게 보내도록 하여야 한다고 따뜻이 이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몽천에서뿐아니라 만물상으로 오르는 길에서도 여러가지 전설들을 일군들에게 들려주시였다. 높이가 30m가량 되는 3개의 바위앞에서 걸음을 멈추신 장군님께서는 삼선암의 모습이 볼수록 장쾌하다고 하시며 강원도의 한 책임일군에게 삼선암에 대한 전설을 알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일군은 당황하여 머리를 숙일뿐 아무 말씀도 올리지 못하였다. 그러는 일군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시며 그러니 할수없이 내가 이 고장 주인을 대신해주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전설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먼 옛날에 하늘에서 세 신선이 아름답기로 이름높은 금강산을 구경하려고 이곳에 내려왔댔는데 천태만상을 이룬 여기 만물상의 경치에 매혹되여 그만 넋을 잃고 발길을 떼지 못하다가 돌로 굳어져버렸다는것이다. 장군님께서 구수하게 펴나가시는 전설이야기는 일군들의 흥미를 끌었다. 가파로운 산을 톺아오르느라고 일행모두가 어지간히 맥이 빠졌을 때 장군님께서는 다리쉼을 할겸 좀 쉬여가자고 하시면서 이번에는 금강산의 산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옛날 한 늙은이가 죽기 전에 소원을 푼다고 하면서 세상천하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금강산구경을 왔었다. 그런데 늙은이는 만물상 천불대쪽으로 올라가다가 100년 묵은 산꿀을 발견하였다. 너무 기뻐서 그는 그것을 실컷 먹고 취하여 깊은 잠에 들었다. 얼마후 깨여나니 팔팔한 젊은이처럼 저절로 기운이 부쩍부쩍 솟고 신체가 쌩쌩해져서 10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일군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자, 우리도 이제 100년 묵은 산꿀을 먹으면 100년은 더 젊어질것이니 어서 기운을 내서 산꼭대기에 오르자고 일군들을 재촉하시였다. 전설을 들은 일군들의 어깨에 날개라도 돋친것처럼 마음이 훨훨 날고 힘이 용솟음쳤다. 일행이 귀면암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허수아비같고 얼굴생김새도 험상궂은 도깨비 같다고 하여 귀면암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시고 무거운 돌을 수수백년세월 무겁게 들고있는 사연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금강산에는 우리 인민들의 소박한 지향과 념원이 반영된 수많은 전설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금강산의 매 봉우리와 골짜기, 이름난 바위들과 폭포, 담소들에 깃든 전설들을 다 찾아내여 탐승객들에게 잘 해설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금강산탐승객들이 별로 힘든줄 모르고 험한 산길을 오르내릴수 있으며 우리 조국의 유구한 력사와 민족문화유산들도 더욱 생동하게 인식할수 있을것이다.… 일군들의 가슴은 찡-하였다. 조선의 명산 금강산을 얼마나 사랑하시였으면 그 고장 주인들도 미처 알지 못하는 샘물과 산꿀, 기암에 깃든 전설들을 몸소 들려주시며 명승고적에 대한 전설들을 다 찾아낼데 대하여 그토록 강조하시였겠는가. 금강산의 모든 전설들을 합치고 또 합친들 민족의 문화유산을 제일로 여기시고 끝없이 빛내여주기 위해 온갖 심혈을 다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의 서사시에는 비기지 못하리라. 전설이 많은 금강산에 새라새로운 사랑의 전설을 새겨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더 많은 전설들을 발굴해설하여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열렬한 조국애와 향토애를 깊이 심어주리라는 결심을 가다듬었다. 그후 《금강산의 력사와 문화》, 《금강산》, 《천하명승 금강산》과 같은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책들마다에는 금강산과 관련된 전설들이 적지 않게 수록되였으며 금강산의 전설들을 종합적으로 담은 《금강산전설집》도 출판발행되였다. 그 도서들은 금강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산천도 내 나라 산천이 제일이고 민족도 내 민족이 제일이라는 한없는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있다. 실로 금강산의 일목일초뿐아니라 거기에 깃든 전설 하나하나도 귀중히 여기시고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되게 하기 위해 온갖 심혈을 다 바쳐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열렬한 애국애족의 마음에 떠받들려 금강산은 명실공히 민족의 기상을 만천하에 떨치는 천하제일명산으로, 인민의 명승지로 될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