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선 물

 

우리 집에는 지난 10년동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명세서가 차곡차곡 보관되여있다.

태양절, 2.16명절, 당창건기념일…

그외에도 계절과 생일날을 비롯하여 수시로 받아안은 장군님의 선물은 온 가족이 모여앉아 며칠밤을 새우며 세여도 다 세지 못할만큼 많다.

그이께서 보내주신 선물은 어느것이라 할것없이 다 소중한 보물이지만 그가운데서도 나를 고무해주고 떠밀어주는것은 장편소설 《흰파도》이다.

그 부피두터운 소설책은 나를 원형으로 하여 쓴것이다.

책장에 정히 꽂혀있는 이 소설책을 바라볼 때면 비전향장기수들을 금방석에 앉혀서 내세워주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뜻이 사무치도록 심장에 마쳐온다.

… 2000년 9월 2일 오전 10시에 판문점 우리측 지역을 떠난 뻐스가 끝없이 펼쳐진 환호의 물결을 헤치며 평양고려호텔에 도착한것은 저녁해가 저물어가던 때였다.

나는 꼭 꿈을 꾸는것만 같은 현실앞에서 가슴을 설레이며 그날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아침, 아직도 그 격정의 파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는데 똑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방문을 열어보니 안경을 낀 50전후의 사람이 미소를 짓고 서있었다.

《조국의 품에 돌아온 김동기선생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하고 친절하게 인사말을 건넨 그는 자기를 작가라고 소개하였다.

(작가라구? 작가선생이 어떻게… )

나는 그이상 더 따져볼새도 없이 예상치 못했던 격정의 소용돌이속으로 휘말려들어가고말았다. 저편에서 먼저 수십년동안 헤여졌다가 만나는 친형제처럼 나를 힘껏 포옹하였던것이다.

그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비전향장기수들과 마주서면 와락 끌어안으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하고 인사말을 하는것이 하나의 례의로 되였다.

그를 응접실로 안내하였다. 그때까지 나는 그 작가선생도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의 귀환을 축하해주려고 온줄로만 짐작하고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무척 반가웠던지라 랭동기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내놓고 그와 마주앉았다.

얼마후 작가선생은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글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60여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을 원형으로 하는 장편소설을 쓸데 대하여 몸소 발기하시고 그 창작방향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는것이다.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크게 한 일도 없이 감방에 갇혀있다가 나온 우리를 원형으로 장편소설을 쓰다니…

작가선생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아직까지 세계에 없는 비전향장기수들은 우리 당을 믿고 30년, 40년동안 기나긴 옥중생활을 이겨낸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이며 우리 당과 인민의 자랑이라고, 비전향장기수들의 옥중생활은 비슷하지만 신념과 의지를 지킨 개개인의 개성을 살리면 훌륭한 작품이 되여 인민들을 교양하는데 의의가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눈굽이 불로 지진것처럼 뜨거워났다. 지옥에서 헤매이던 우리들을 조국의 품에 안아주신것만 해도 분에 넘친데 이렇게 소설까지 쓰도록 해주시였으니 이 은정을 어떻게 갚는단 말인가.

작가선생은 후들거리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래서 선생님에 대한 소설과제를 제가 맡았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알고보니 작가선생은 나처럼 단천태생이라고 했다.

우리는 오래동안 고향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식들때문에 늘 허리를 펴지 못하시던 부모님들, 생일날에만 차례지군 하던 삶은 닭알, 기차를 타고다니던 학교길, 겨울이면 누님의 손을 잡고 거닐던 파도치는 해변가…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는듯 했다.

작가선생이 떠난 다음 나는 그가 전해준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다시금 새겨보았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나는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나무 한그루, 흙 한삽 뜬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나로서는 장군님께서 취해주신 이번의 조치가 과분한것이였다.

단지 자기를 위안할수 있는것이라면 34년동안 미친듯이 불어친 전향의 광풍앞에서 굴하지 않고 혁명적신념을 지켰다는 자부심과 긍지였다.

… 0.75평 독감방에는 자기의 당생활을 보고할 세포비서도 없고 활기에 넘쳐 이야기를 주고받을 가까운 동무들도 없었다.

수십년동안 무인도에서 홀로 살았다고 하는 장편소설 《로빈손 크루소우》의 주인공도 나의 처지에 비하면 천국에서 산것과 같다고 할수 있었다.

그래도 그곳에는 푸른 하늘과 찬란한 해빛 그리고 유정한 빛을 뿌리는 달이 있었다. 흙과 아름다운 꽃도 있었다.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지 걸을수 있는 땅이 있었고 의사소통은 안되지만 적막감을 덜어주는 개도, 젖을 짜는 산양도 있었다.

후에는 자기가 구원해준 노예 후라이디까지도 생기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뙤창문을 판자로 막아놓았으니 한점의 해빛도 비쳐들수 없었고 고문을 당한 몸을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어루만져줄 달빛도 볼수 없었다.

흙도 없고 하다못해 아무데서나 자라는 잡풀마저도 없었다.

로빈손 크루소우가 개를 끌고 시름없이 거닐던 산책길같은것은 고사하고 두세걸음안팎에 발이 아프게 부딪치는 콩크리트감방안의 좁고 짧은 《산책길》밖에 없었다.

아무리 신경이 든든한 사람도 이런 생지옥속에서 며칠만 있으면 리성을 잃고 미치고말것이다.

그 지꿎은 고독속에서 나를 고무해주고 위해주는 유일한 벗이 있었으니 그는 아침기상시간과 저녁취침시간에 옆방의 동지가 감방벽을 가볍게 두드려 보내는 동지적인사였다.

그 벽두드리는 소리는 나의 가슴속에 앙금처럼 고여있던 외로움을 밀어내고 힘과 용기를 안겨주었으며 당적량심의 거울을 심장속에 떠올려 나자신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비쳐보게 하였다.

하루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감옥에 있는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는 이야기가 그 동지를 통해 통방으로 전달되였는데 그분들께 걱정만 끼쳐드리고있다는 자책감으로 가슴이 미여지도록 아팠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나를 소설의 원형으로 내세워주시였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말인가.

작가선생의 취재는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우리 집에서도 계속되였다.

작가는 직접 찾아오기도 하고 혹은 전화로 알아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몇달이 지난후 작가선생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소설원고가 완성되여 출판에 넘어갔다는것이였다.

어느 일요일인가 오래간만에 작가선생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는 가방에서 꺼낸 두툼한 소설책을 나에게 들려주면서 《잘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부족한 점이 있다면 저의 능력부족으로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겸손하게 말했다.

나는 두손으로 정중히 소설책을 받았다.

책표지를 보니 푸른 파도를 배경으로 붉은색으로 쓴 《흰파도》란 제목이 한눈에 안겨왔다. 첫장을 펼치자 《존경하는 김동기선생님, 저자 드림 2003년 10월 8일》이라고 정성들여 쓴 글자가 나타났다.

나는 소설책을 밤을 새워 다 읽었다.

마지막장을 덮고나니 감동이 너무 커서 방안을 오락가락했다. 그래도 가라앉지 않아서 마실줄도 모르는 소주생각까지 날 정도였다.

우선 나를 현재의 김동기라는 인간보다 더 훌륭한 통일투사로 형상하느라 무척 고심했을 작가선생의 수고가 헤아려져 가슴이 뭉클했다.

나도 나라가 해방되고 우리 글을 처음 배운 때로부터 소설책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읽군 하였다.

그때 작품의 주인공들은 너나없이 아득히 높은 정신세계의 봉우리에 거연히 올라선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그 감탄과 부러움은 전후 대학시절에도, 그리고 사회에 나온 다음에도 여전했었다.

그랬던 내가 장편소설의 주인공이 되다니…

한두사람도 아니고 한꺼번에 60여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을 형상한 장편소설이 출판되는 극적인 사실은 우리 조국에서만 있는 일이다.

나는 장편소설 《흰파도》를 읽고나서 보내오는 독자들의 과분한 칭찬과 격려의 인사를 받을 때면 위대한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백번, 천번 올리군 한다.

아울러 이야기하고싶은것은 그 장편소설들로 하여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자신들이 가장 보람있고 행복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라는 긍지를 심장으로 체득하게 되였다는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을 원형으로 하여 쓴 장편소설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안겨주신 또 하나의 선물이다.

나는 앞으로도 그 장편소설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혁명적신념을 지켜싸우던 옥중시절처럼 경애하는 장군님을 하늘처럼 믿고 따르며 통일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한 오늘의 보람찬 투쟁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겠다는것을 결의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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