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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삼복더위와 수박
10년전까지만 해도 삼복더위란 말만 들으면 한증탕처럼 후끈한 독감방에서 땀을 바께쯔채로 뽑던 일이 생각나군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들으면 먹음직스럽게 짜개놓은 빨간 수박부터 눈앞에 떠오른다. 그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선군혁명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바쁘신 가운데서도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하여 보내주신 사랑의 수박이다. 물동이만 한 수박을 받아온 날 제일 좋아하는것은 손자녀석이다. 《왕할아버지, 빨리 수박을 먹자요. 빨리요.》 나는 무턱대고 졸라대는 그애의 독촉에 못 견뎌 서둘러 식탁에 마주앉았다. 애어머니가 과일칼을 들고 수박을 절반으로 쭉- 자른다. 《야, 빨간 수박이다!》 하고 손자애가 환성을 지른다. 제일 큰 수박 한쪽이 나에게 먼저 차례진다. 《난 일없다. 애부터 주거라.》 내가 손자에게 수박을 양보하면 네살밖에 안된 그녀석은 제법 깍듯이 례의를 차리려든다. 《안돼요. 이 수박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왕할아버지에게 보내주신거예요.》 할수없이 먼저 단물이 철철 흐르는 수박을 한입 베여무는데 장군님께서 보내주신것이여서 그런지 산꿀처럼 달고 시원하다. 당장이라도 잔등에서 흐르던 땀줄기가 잦아드는것 같다. … 내가 수박을 처음 본것은 열살때였다. 해방전 나는 성진(현재 김책시)에서도 살았었다. 그때 그곳에는 일제의 해군, 륙군부대들이 주둔하고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헌병놈들의 만행이 제일 심했다. 그놈들은 삼복철이면 해수욕장에서 한가하게 수영을 하고는 장막속의 그늘에 척 들어앉아 푸른색줄무늬가 쭉쭉 건너간 호박 비슷한것을 칼로 쪼개서 아귀아귀 처먹군 했다. 그날도 물속에서 물매미처럼 헤염치다 나온 헌병놈들은 심부름군이 가져온 공같은것들을 가운데 놓고 떠들썩거리고있었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잔뜩 호기심에 차서 그쪽을 흘끔흘끔 보았다. 《저게 뭘가?》 《호박 아니가?》 《아니야, 호박에 무슨 줄이 있니?》 수밤송이같은 머리들을 똬리처럼 모으고 한창 조잘조잘거리는데 도립병원 원장아들이 아는척 했다. 《자식들, 수박도 몰라? 저걸 칼로 쪼개면 빨간 단물이 나오는데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단말이야.》 역시 《도련님》이 다르긴 달랐다. 잠시후 심부름군이 손을 놀리자 둥그런 수박이 짜개지더니 정말 빨간 속살이 드러났다. 헌병놈들이 괴성을 질렀다. 《어- 요씨, 요씨!》 심부름군은 보기 좋게 쪼갠 수박들을 커다란 접시우에 올려놓았다. 헌병놈들은 좋아라고 게걸스럽게 수박을 먹기 시작했다. 맛이 좋은지 군복소매로 입귀를 연신 훔치면서 그냥 입에 쓸어넣는다. 그 몰골은 조무래기들의 홀쪽한 배를 자극하고도 남았다. 나도 입을 헤 벌리고 수박맛이 어떨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상상을 동원해도 도저히 실감이 오지 않았다. 한동안이 지나자 실컷 처먹은 놈들은 또다시 바다에 뛰여들어 수영을 하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놈들의 노는 꼴이 눈에 거슬렸다. 《에라, 우린 섭조개나 구워먹자!》 하고 내가 말하자 시무룩해진 아이들은 줄레줄레 따라나섰다. 그리고는 섭조개를 따다가 못쓰게 된 나무배에서 장작불을 피우고 굽기 시작했다. 아직 먹어보지 못했으니 그까짓 수박맛은 모르지만 아무렴 구운 섭조개맛에 비길가. 쳇! 그때 마지막까지 남아서 수박에 술까지 받쳐서 먹던 헌병 한놈이 비칠거리며 다가왔다. 《당장 끄라, 연기가 난단말이다!》 우리는 아까운 섭조개를 덤덤히 내려다볼뿐이다. 《요놈의 자식들, 좋다!》 그놈은 군화발로 백사장모래를 콱콱 차서 한창 섭조개가 익어가던 장작불을 꺼버렸다. 아이들은 작은 입술만 꼭 깨물었다. 그놈들이 가버린 다음 우리는 슬금슬금 포장을 친곳에 갔다. 그러던 우리는 실망하고말았다. 헌병놈들은 쪼개만 놓고 미처 먹지 못한 수박들에 모래를 가득 뿌려놓고 가버렸던것이다. 고약스럽기 그지없는 그 행동에 아이들은 다시금 입술을 꼭 깨물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잃었던 조국을 찾아주신 후 나는 열일곱살의 어린 나이에 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 하루는 삼복더위때 점심식탁우에 오른 수박을 보았다. 몇년전에 가슴에 맺혔던 일이 생각났다. (에라, 오늘은 어디 좀 먹어보자!) 나는 큼직큼직하게 쪼개놓은 수박 하나를 집어들고 입에 가져갔다. 그러자 빨간 속살이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내리는게 어찌나 달고 시원한지 눈깜짝할 사이에 네댓개를 요정냈다. 그날 나는 옆사람들을 크게 놀래우면서 배터지도록 수박을 먹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도 나는 해방된 남조선인민들이 보낸 수박을 자주 먹어보았다. 그러다보니 수박맛을 잘 알게 되였을뿐만아니라 어떤 수박이 맛있고 맛이 없는가 하는것을 구별할수 있었다. 0. 75평 독감방에 갇혀있을 때는 수박맛을 전혀 볼수 없었다. 그때는 삼복철이였는데 통풍이 전혀 되지 않는 독감방에서 몸이 물주머니가 되여 헐떡거렸다. 피뜩 간수책상우에 놓여있는 수박이 눈에 띄였다. 저절로 수박생각이 났다. 독자들은 비전향장기수들은 신념이 강한 사람들이니 그쯤한 유혹은 쉽게 물리치겠거니 하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사실은 우리도 평범한 인간들이다. 그 찜통같은 감방속에 꼼짝않고 들어있자니 지난날 수박을 먹던 일이 왜 떠오르지 않겠는가. 그 모든 인간적욕구를 이겨내고 자신을 지켜내자니 그렇듯 힘든것이다. 마침 간수란 놈이 수박을 먹고싶었던지 고함쳤다. 《야, 소지(청소부), 수박을 물탕크에 갖다 넣어!》 내가 물뜨러 나가보니 물탕크에는 여러개의 수박이 물우에 둥둥 떠있었다. 그것을 칼로 쪼개서 시원하게 먹어보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생각하면서도 절대로 다칠념을 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을 손에 넣으면 무르익은 과일마저 나를 전향시키기 위한 매개물로 재빨리 변하기때문이다. 무더운 한낮이 되자 간수는 소지를 시켜 수박을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소지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박을 칼로 쪼개는것을 보지 않으려고 강잉히 머리를 돌려버렸다. 간수는 우리가 보란듯이 수박을 처먹다가 갑자기 관세음보살로 둔갑한듯 소지보고 한두쪼각을 먹으라고 선심을 썼다. 《어때, 맛이?》 소지는 쩝쩝 소리내여 먹으면서 달고 시원하다고 아첨을 떨었다. 그러자 간수는 독감방쪽을 흘깃 넘겨다보며 《빨갱이새끼들은 전향하면 수박도 먹을수 있는데 이 삼복더위에 땀흘리고있으니 갈데 없는 바보들이야.》 하고 지껄이였다.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은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어느날 아침 소동이 일어났다. 알고보니 물탕크에 있던 수박 한개가 없어졌다는것이다. 《이 빨갱이새끼들, 어느 놈이 훔쳐갔어?》 악에 받친 간수는 매 독감방을 조사하는가 하면 변소까지 검사했다.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자 간수는 빨갱이새끼들은 수박껍질까지 먹는 야만이라고 욕질한다. 그런데 그날 검방을 왔던 간수가 소지방변소에서 수박껍질을 발견했다. 그통에 삽살개처럼 알랑거리던 소지들이 간수들에게 마른명태패듯 늘씬하게 얻어맞았다. 내가 다시 수박을 먹어보게 된것은 출옥후였다. 하루는 안면있는 한 회사사장이 승용차를 끌고 《통일의 집》에 찾아와 무등산에 가보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무등산은 전라남도 광주시에 있는 해발 1 187메터 되는 산이다. 광주감옥에 있을 때 운동장에서 바라보던 산이기에 나와 인연이 없는 산은 아니다. 나는 본시 구경하기를 좋아하는편이여서 그 사람의 청을 쾌히 수락하였다. 승용차는 망월동묘지쪽으로 가다가 광주호주변의 차길을 타고 살같이 달리였다. 무등산으로 오르기 위해 광주천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그전에 사장은 정각을 구경하고 가자면서 차를 세웠다. 차길에서 30메터 떨어진 곳에 약 7메터 높이의 비가 있어 가보았는데 송강 정철의 유명한 《관동별곡》의 가사비였다. 비뒤면에 《송강 정철가사의 터》라는 글이 새겨져있었다. 사장이 하는 말이 한때 그는 여기 담양에서 정배살이를 했다고 한다. 정철은 16세기뿐아니라 우리 나라 중세문학사의 전기간에 걸쳐 가장 우수한 국문시가작품을 남긴 시인의 한 사람이였다. 《관동별곡》은 1580년에 정철이 창작한 가사인데 《송강가사》에 실려있다. 가사는 그가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되여갔을 때 세계에 이름높은 명승지인 금강산일대를 구경하면서 기묘하고 장엄한 자연의 풍치에 감탄을 금치 못하여 지은것이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암송했던 시여서 무디여진 기억을 더듬으며 잠시 옛 가사를 읊어보았다.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 은같은 무지개 옥같은 룡의 초리 섯돌며 뿜난 소래 십리에 잦았이니 들을제난 우레러니 보니난 눈이로다 … 천심절벽을 반공에 세여두고 은하수 한 구배랄 촌촌히 버혀내여 실같이 풀쳐있어 뵈 같이 걸었이니 도경 열두구배 내보매난 여러히라
나는 정각에 올라 광주천과 멀리 보이는 무등산을 바라보았다. 모름지기 송강도 이 외진 담양땅에서 광주천과 무등산을 바라보며 정배살이의 쓸쓸한 심정을 달랬으리라. 나는 옛 선비의 심중을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정각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얼마후 승용차는 무등산골짜기를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말없이 창밖의 산천을 감상했다. 산높이에 비하여 계곡은 급하지 않고 그런대로 농경지가 있었다. 한참 달리다가 차가 멈춰섰는데 길옆에 수박밭이 펼쳐져있었다. 잘 익은 수박들이 한눈에 안겨들었다. 그때 가까운 원두막에서 나온 로인이 다가와 《어서 오십시오.》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것이였다. 나는 장사군들이 일상적으로 건네는 인사처럼 생각하고 《수고하십니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눈치를 보니 사장은 원두막로인을 잘 알고있는것 같았다. 사장은 로인에게 나를 가리키면서 《김선생님은 34년간 옥중생활을 하시다 얼마전에 출소하신 비전향장기수입니다.》라고 소개했다. 로인은 정중하게 머리숙여 인사를 하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오늘 이렇게 저의 원두막을 찾아주신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하고 반가워하였다. 이윽고 로인은 손님들을 위해 따로 만든 멍석을 손수 펴고 우리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할아버지, 옥중에서 수박구경도 못하고 삼복더위때 땀만 흘리시던 김선생에게 유명한 무등산수박맛을 보여드리려고 이렇게 모셔왔습니다.》 사장이 하는 말이였다. 로인은 얼른 《아무렴요, 비전향장기수선생님한테 무등산수박맛을 보여드려야지요.》라고 하더니 수박밭으로 나갔다. 사장은 나에게 《무등산수박맛은 최고여서 일반사람들은 맛보기 힘듭니다.》라고 설명했다. 보통수박 한개값보다 무등산수박값은 두배가격이라고 했다. 그때문에 수박재배자들은 무등산수박씨를 가져다 재배해보았지만 무등산 토양과 해빛, 공기 등 자연이 주는 영향때문에 본래의 수박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지나 로인은 일반수박보다 약간 긴 원추형모양의 수박 한개를 따가지고 왔다. 로인은 귀한 손님을 위해 고르기는 했는데 잘 골라왔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칼로 수박을 솜씨있게 잘랐다. 빨간 속살은 보기만 해도 군침을 삼킬 정도로 먹음직스러웠다. 로인은 수박 한쪼각을 나에게 주었다. 《수박색을 보니 맛있을것 같습니다. 어서 맛보십시오.》 나는 수박을 먹기 시작했다. 소문처럼 달고 물이 많았다. 나는 로인에게 《같이 듭시다.》 하면서 수박 한쪼각을 권했다. 그는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나중에는 자기도 한쪼각을 먹으면서 《내가 이 무등산수박밭의 주인이지만 이렇게 수박이 맛있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아마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무등산수박도 알아주는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인심이 좋으면 물맛도 달다더니 그런 듣기 좋은 말을 들으니 수박맛이 곱절 더해지는것 같았다. 나는 로인에게 물었다. 《수박농사를 얼마나 하셨습니까?》 로인은 한동안 멀리 무등산봉우리를 바라보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그의 조상은 대대로 무등산에서 살면서 수박농사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생계를 유지할수 없어 담양 최지주의 논밭을 소작으로 부치면서 생계를 겨우 유지했다. 일본놈들이 망하고 나라가 해방되였으니 좀 살수 있겠다 하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껌을 질근질근 씹으며 미군이 들어오고 리승만역도까지 너무 날치니 왜정때보다 살기가 더 힘들었다. 미군과 리승만도당을 반대하는 전라남도인민들의 투쟁이 무등산을 근거지로 크게 번지여 괴뢰군과 경찰의 탄압과 감시가 심하였다. 삼복더위때면 경찰들이 무리로 달려들어 수박들을 략탈해가기때문에 그것을 팔아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의 생활형편은 더욱 곤난해졌다. 1950년 여름 이곳 무등산지역은 남으로 진격해나온 인민군대에 의해 해방되였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토지개혁이 실시되여 그의 아버지도 땅을 분여받았다. 아버지는 너무 기뻐서 땅을 주신 김일성장군님께 자기네 조상이 대대로 재배해오던 무등산수박을 올려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마을사람들과 의논하였다. 모두가 적극 호응해나섰다. 후에 안데 의하면 마을사람들이 정성껏 가꾼 무등산수박을 위대한 수령님께 올렸다고 한다. … 로인은 그날의 감격은 50년세월이 흘러도 잊을수 없다고 하면서 나라가 통일되면 자기가 제일 크고 잘 익은 무등산수박을 김정일장군님께 드리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반세기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세계를, 수령님의 은정이 낳은 위대한 생활력을 감명깊게 느끼였다. 한동안이 지나 돌아가려고 차문을 열고보니 어느 사이에 로인은 큼직한 수박 두개를 뒤좌석에 슬그머니 놓아두었었다. 로인의 주글주글한 얼굴에 웃음발이 그려졌다. 《김선생님, 가서 맛이라도 보십시오.》 나는 로인과 오랜 친구처럼 뜨겁게 포옹했다. 로인은 헤여질 때 눈물이 글썽해서 부탁하였다. 《선생님, 고향에 가시면 경애하는 장군님께 저의 인사를 올려주십시오.》 이제는 10년세월이 넘었지만 나는 장군님께 자기가 가꾼 무등산수박을 올리고싶은 간절한 소망을 안고사는 그 로인을 잊지 않고있다. … 지난해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삼복철이 되자 비전향장기수들에게 크고 단 수박을 보내주시였다.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려면 죄스러운 생각이 들군 한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제 집에 들어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삼복더위를 가시고있는데 장군님께서는 삼복철강행군을 이어가고계시지 않는가. 만일 그럴수만 있다면 그이께서 잠시라도 더위를 가시도록 금방 쪼갠 빨간 수박을 삼가 올리고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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