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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념의 노래와 함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혁명적인 노래는 투쟁의 대오에 높이 울리는 진군가이며 시대의 행진곡이다.》 우리 조국은 노래속에 흥하는 나라이다. 내가 조국의 품에 안긴 후 가장 인상깊었던것은 유치원아이들로부터 로인들에 이르기까지 노래를 즐겨부르고있는 사실이였다. 지하전동차나 궤도전차를 타면 가갸거겨도 제대로 발음할줄 모르는 어린애들이 《돌파하라 최첨단을》, 《우리 집사람》 등과 같은 선군시대의 명곡들을 류창하게 부르고있다. 장한듯이 노래를 부르는 그애들은 그 열성만으로도 어른들의 귀여움을 받는다. 철부지아이들이 그런 정도이니 어른들의 경우는 더 말할 여지도 없다. 일터에 가보면 쉴참에는 온통 노래판이다. 얼마전에 희천발전소건설자들을 축하하는 TV방송을 보았는데 확실히 우리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한다. 그들이 부르는 명곡들에는 강성대국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선군조선의 기상과 근로자들의 랑만적인 생활이 진실하게 반영되여있다. 남조선에서는 우리 공화국에서처럼 군민이 하나로 뭉쳐 랑만적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일하는 모습을 눈씻고 보아도 찾아볼수 없다. 그 사회에서는 노래가 거의나 인민대중의 향유물이 아니라 술집이나 카페에서 돈많은자들의 식욕을 돋구어주는 일종의 수단으로 리용되고있다. 그 현상만으로도 두 사회제도의 판이한 음악발전의 실상을 충분히 엿볼수 있다. 조국에 돌아온 다음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제일먼저 배운 노래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장군의 노래》,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동지애의 노래》 등이였다. 그 다음해인 2001년 2월명절과 태양절을 맞으며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경모의 마음을 담아 성의껏 준비한 예술소품공연을 진행하였다. 공연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람들의 절찬을 받았다. 여기서 힘을 얻은 우리들은 지난 10년동안 비전향장기수와 그 가족들의 노래모임을 해마다 계속해오고있다. 수십년동안 노래를 부르지 못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는것은 헐한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생활의 창가림을 슬쩍 들추어보면 별의별 우스운 일들이 많다. 유감스러운것은 다름아닌 우리 집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것이다. 어느날 내가 노래를 부르는데 웬일인지 가족들이 입을 싸쥐고 웃는것이였다. 처음에는 심상히 스쳐버렸는데 노래를 부를수록 그냥 키득거리는것이 아닌가. 나중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애까지도 깔깔 웃었다. 《왕할아버진 어른인데 틀리게 부르면 어떻게 해요?》 《?!》 내가 그 노래를 마지막으로 불러본것은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간수들의 눈을 피해 입속으로 가만가만 불러보군 하다나니 여러군데 음정이 틀린것도 몰랐었다. 그 실책이 오늘 드러난것이다. 그후 그 음정을 바로잡느라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러한 사정은 다른 집들에서도 어슷비슷했다. 그래도 우리들은 자신들의 년령은 생각지 않고 홍안의 시절처럼 힘든줄을 모르고 밤잠을 미루어가며 노래련습을 하군 하였다. 80대, 90대고령의 동지들은 자기를 빼놓을가봐 걱정스러워 누가 말하지 않아도 노래련습에 열심히 참가했다. 간혹 그의 건강을 념려하여 좀 쉬라고 하면 《내 걱정은 마시오. 독감방에서도 끄떡없었는데 제 조국에 와서 쓰러진다는게 말이 됩니까?》 하고 고집을 부린다. 그럴 때에는 모른척 하고 넘겨야지 자칫하면 《노여움》을 살수 있다. 지어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부터 삼륜차에 몸을 실었던 동지들까지도 침대에 누운채로 가족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 사실을 안 사람들은 역시 비전향장기수들의 정신세계가 다르다고 감탄하며 아마 그처럼 강의한 의지와 깨끗한 량심을 지녔기에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되였을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우리들은 지난 10년동안 비전향장기수들의 특색을 살린 예술소품종목들을 창작하여 연 260여회에 걸치는 공연을 진행하였다. 공연을 보고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껏 중앙예술단공연을 수없이 보았지만 이처럼 감동을 받기는 처음이라고 말한다. 모름지기 실지 있었던 소재를 가지고 창작하고 체험자들이 직접 출연했기때문에 대중의 호응을 받았을것이다. 비전향장기수들은 고령의 몸이지만 예술공연훈련을 근기있게 한다. 개별적인 종목을 맡은 동지들은 집에서 밤늦도록 련습한다. 비전향장기수예술소품공연종목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직접 창작한 노래와 시로 편성되여있다. 군인들과 근로자들의 크나큰 관심속에 진행되는 우리들의 예술공연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로 첫 막을 연다. 이 노래는 비전향장기수들이 제일 사랑하고 즐겨부르는 노래이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먼저 설화를 랑송한다.
1: 30년 40년 철창속에서 지나가는 한점의 바람결에도 떠나온 고향과 두고온 부모처자가 못견디게 그리울 때
2: 놈들의 악형에 온몸이 찢겨지고 죽음의 감방에 던져져 아픔과 굶주림속에서 시달려 더이상 일어날 힘이 없을 때
3: 아- 우리가 마음속으로 부르던 노래 부르면 불사신의 힘이 다시 생기고 교수대에서 동지들이 최후에 불렀던 노래 우리가 감옥에서 부르며 그 모든 옥중고초를 이겨내게 한 노래 1. 2. 3: 아,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우에 력력히 비쳐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
참으로 감회가 깊은 노래이다. 놈들의 고문끝에 쓰러졌던 우리들의 의식을 흔들어깨우던 희망의 노래, 사형장으로 끌려나가던 동지들이 목청껏 부르던 영생의 노래!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는 우리모두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계속하여 합창 《비전향장기수옥중투쟁가》를 부른다. 이 노래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그리며 김창원동지가 옥중에서 창작한 노래이다.
1. 캄캄한 철창속에 태양빛이 그리울 때 우리들은 그려보네 님의 영상 그려보네 반평생 갇히워서 밝은 빛을 찾으려고 간난신고 이겨내며 북녘하늘 쳐다보네 아
2. 통일조국 찾으려다 먼저 가신 령혼들아 그대 신념 함께 하며 옥중약속 지키리라 사랑하는 고향산천 너를 위해 싸워가리 님앞에서 다진 맹세 목숨바쳐 지키리라 아
뒤이어 출연한 비전향장기수 남성중창조는 고광인동지가 작사한 노래 《신념의 한길 끝까지 가리》를 기운차게 부른다. 1. 전사의 신념은 철창속에 불타던 그리움이고 날마다 수령님품을 찾던 심장의 목소리였네 아- 묻지를 말아 악형의 긴 세월 그 신념 없었다면 내 어이 이겼으랴
2. 철쇄는 이 몸을 묶었어도 신념은 묶지 못해 전향의 총구를 마주하고 수령님 만세 불렀네 아- 목숨을 내대 피젖은 인생길 그 신념 있었기에 이기고 돌아왔네
3. 지켜낸 신념이 있었기에 내 안길 조국이 있고 지나온 한생을 돌아보니 백발이 무겁지 않네 아- 장군님 주신 인생을 빛내며 신념의 오직 한길 끝까지 가리라
계속하여 남성중창은 집체작 《내 사랑, 내 삶의 품》으로 넘어간다.
1. 사랑은 사랑은 무엇이던가 내 고향 봄언덕에 진달래인가 꽃잎마다 풍기는 삶의 향기는 해빛으로 이 몸을 감싸주었네
2. 신념은 신념은 무엇이던가 내 마음에 뿌리내린 소나무인가 이 한몸이 재가 되고 이슬이 되여도 혁명절개 한생을 지키게 했네
3. 사랑과 신념은 태양이 준것 그 품속에 영원할 생의 메아리 철쇄로는 노래를 묶을수 없어 삶의 은인 그리며 우린 이겼네 아- 불타는 삶의 노래여 태양의 그 품에서 영원하리라
여덟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부르는 남성중창은 화음이 잘 맞고 정서가 풍부하여 젊은 사람들보다 더 잘 부른다는 평을 받고있다. 년령도 각이하고 몸상태도 서로 다른 비전향장기수들이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안삼불을 맞추자니 얼마나 피타는 노력을 기울였겠는가 하는것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다음순서는 비전향장기수들의 안해들이 출연하여 부르는 녀성중창 《김일성대원수님 고맙습니다》이다.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만을 태양처럼 믿고 오랜 세월 남편들을 기다리며 자식들을 키우느라 검은머리 파뿌리된 그들이 노래를 부를 때면 아무리 돌심장이라도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수 없다. 그들을 바라보는 비전향장기수들의 눈굽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우리들이 독감방에 갇혀있을 때 이처럼 늙은 할머니들을 꿈엔들 생각해본적이 있었던가. 젊은 시절 백옥처럼 희고 맑던 그들의 얼굴에 지금은 그물같은 주름살이 덮였어도 그들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녀인들은 이 세상에 없을것이다. 최선묵동지는 평생 노래를 사랑하고 노래와 함께 살아온 비전향장기수이다. 경기도 강화군에서 남의 집 머슴을 살던 그가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으로 1 500평의 땅을 분여받고 그 은덕이 하도 고마워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낮에는 해를, 밤에는 달을 벗삼아 밭갈이를 하면서 불렀다는 사연깊은 《밭갈이 노래》. 38년동안 감옥살이를 할 때 놈들의 갖은 고문에 견디기 힘들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기름진 제땅을 그려보며 그 노래를 불렀다는 최선묵동지. 마음속으로 불러야 할 노래를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부르다가 그만 간수에게 들켜 죽도록 얻어맞고 뒤수정을 차고 먹방에 갇히워서도 그는 《밭갈이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최선묵동지가 장고를 치면서 노래를 흥취나게 부를 때 안영기, 리경찬동지들이 북을 치며 방창을 하면 관중은 흥이 올라 으쓱으쓱 어깨춤을 추다가 약속이나 한듯이 재청, 삼청을 뽑아올린다. 그가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게 된것은 어린시절부터 부르고 또 부른 노력의 결실이라고 하지만 원래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것만은 틀림없다. 해가 바뀔수록 한여름철의 오이처럼 신선하고 기운찬 그의 목청에 우리 비전향장기수들도 깜짝 놀라군 한다. 무대에서 《밭갈이노래》를 부르는 최동지를 보면 마치 한생을 그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태여난 사람 같다. 장고장단에 맞추어 어깨춤을 들썩들썩 추는 그를 보고 누가 80고령의 로인이라고 하겠는가. 최동지는 거리에 나서면 사람들로부터 이름대신 《<밭갈이노래>할아버지》로 불리운다. 우리들은 앞으로도 그가 지금처럼 흥취나게 《밭갈이 노래》를 계속 부르기를 한결같이 바라고있다. 《밭갈이노래》가 끝나면 최선묵부부가 노래 《뻐꾸기》를 부른다. 왕년에는 전문예술단배우로 맹활약을 했던 안해와 천성적인 재능을 가진 남편과의 2중창은 전문배우들도 혀를 찰 정도로 수준이 높다. 그다음은 류운형동지가 아직도 재청, 삼청소리가 날아드는 무대우에 나선다. 알고있는것처럼 그는 감방속에서 《먹방의 노래》를 창작하였다. 옥중에서 계속 읊다가 조국의 품에 안긴 다음 TV무대에서 지팽이를 짚고 그 시를 랑송하였던 류동지였다.
전향을 않는다고 먹방에 가두어넣고 앞수정, 뒤수정, 총대수정 물고문, 전기고문, 비행기고문 몽둥이소리, 신음소리 그칠 날 없네 동무여 굴하지 말자 기어코 이기리
밤고요 하늘고요 담안도 고요고요 고요한 먹방에 고요히 누워있으면 솟아오르는 분노, 불타는 심장 수정을 녹이네 철창을 녹이네
먹방의 젊은이여 고향이 어디메뇨 담너머 어둠너머 저 멀리 북쪽하늘 향도성 반짝이는 평화로운 땅 인민이 다스리는 자유로운 땅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 계시여 우리는 이기리, 반드시 이기리
관중들은 숨소리를 죽인채 류동지의 시를 듣는다. 귀로 듣는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심장으로 듣는다. 시랑송이 끝나면 우뢰같은 박수가 터진다. 후날 한 이름있는 예술인은 우리를 찾아와 《예술이란 실지 체험자가 작품을 창작하고 연기할 때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고 할수 있습니다.》라고 격정에 겨워 말하였다. 그렇게 말할만도 하다.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고 시를 읊는 그의 눈동자는 별처럼 빛나고 입에서는 먹방에서 체험했던 심정을 담은 시어가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류동지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그 시를 그처럼 절절하게 읊을수 없을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불행하게도 그는 독감방에서 입은 고문의 후과로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간혹 TV화면에서나 볼수 있을뿐 그가 지팽이에 의지하여 시를 읊는 모습을 다시는 볼수 없다. 그렇지만 비전향장기수들의 가슴속에는 류동지의 모습과 더불어 그 귀익은 랑송소리가 영원히 울리고있다. 80대고령의 리두균동지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비전향장기수들에게 베풀어주신 하해같은 사랑에 감동하여 시 《나의 어머니시여!》를 읊어 관중들의 마음을 크게 격동시켰다.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머리에 하야니 서리 내리도록 이 아들의 옥바라지 해준 어머니 떠나온 남쪽땅에 있었습니다
잊혀지지 않습니다 옥살이 30년 되던 해 지팽이 짚고 면회온 어머니 찢겨진 이 몸 아프게 어루쓸며 -이기고 나오기만 해라… 하시던 말씀
이기고 나오기만 해라… 아! 이기고 나오면 페인된 아들을 그 작은 가슴에 안아 어떻게 해줄려 하였습니까?
그날의 말씀 끝까지 지켜 그날의 정깊은 얼굴 끝까지 그리며 이기고 감옥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이 세상에 아니 계신 어머니 다시는 불러볼수 없다 생각했건만 날마다 그리워 찾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고향어머니 한생 꿈조차 꾸지 못했던 분렬장벽에 길을 열고 어서 오라 한몸에 안아준 어머니 수십년세월 이 아들을 기다려온 그런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그 어머니 붉은 당원증을 안겨주었습니다 아들중에도 훌륭한 아들에게만 주는 조국통일상도 영웅메달도 다 주었습니다
고향어머니 사랑은 끝났어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 아,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당 나는 영원히 어머니로 모시렵니다
30년간 옥살이한 90대고령의 신린수동지는 장군님을 모시고 사는 이 격정을 누를길 없어 자작시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를 예술소품공연에서 격조높이 노래하였다.
인류력사가 생겨 수수만년 전쟁력사가 생겨 수수천년 사람들이여! 우리 언제 비전향장기수귀환이란 말을 들어보았던가
통일전선의 길에서 싸우다가 체포된 우리들이 캄캄한 독감방에서 갖은 옥고를 다 겪고있을 때 그리도 가슴아프시여 통일애국투사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그토록 심려하시던 어버이수령님 …
하기에 우리는 목메여 부릅니다 검은머리 백발이 되도록 수령님과 장군님만을 믿고 한평생 우리를 기다려온 안해들과 함께 목메여 노래 부르옵니다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 장군님을 믿고 삽니다 천년세월 흐른다 해도 김정일장군님만을!
대화시 《충성의 안경집》은 1982년 대전감옥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을 가지고 창작하였는데 그 시도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1: 밤은 깊어간다 어버이수령님 탄생 70돐을 한해 앞둔 주체70(1981)년 여기 대전감옥의 밤은 밑바닥도 없이 깊어간다 2: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남 다 자는 깊은 밤 누가 들을세라 사르락사르락 그 무엇을 연마하는 소리 벌써 여러날째 쉬임없으니 저 소리는 과연 무슨 소리인가 3: 아니 이 밤중에 저게 무슨 소리인가. 4: 여기 11방 김선명동지가 안경집을 만드는 소리지요. 전체: 안경집? 1: 무슨 안경집을 만들기에 저리도 극성인가. 2: 그래서 며칠전 운동시간에 내 물었댔죠. 그게 무슨 안경집인데 그리 극성인가구요. 전체: 그래서? 2: 그저 웃기만 하더군요. 대답은 없이… 1: 가만 가만, 래년이 어버이수령님 탄생 70돐! 그러니 혹시? 3: 그렇지, 김선명동지는 수령님께서 안경을 끼시고 집무를 보신다고 마음 써왔었지. 그러니 그건… 4: 어버이수령님께 올리는 선물을 마련한다는 그거요? 3: 글쎄, 그런 짐작이… 김선명: 동지들 짐작이 옳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지들에게 저의 속궁냥을 말할수 없었지요. 그런 선물이야 자재도 기술도 최고의것으로 되여야 할텐데 저에게는 욕망 하 나뿐이지요. 그러니 제가 어찌 그것을 감히 말할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기어코 수령님의 생신날전에 그것을 만들것을 결심했습니다. 정성이면 돌우에도 꽃을 피운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오직 그 말을 밑천으로 일에 달라붙었습니다. 3: 백여일 장장 모든 방들이 밤이기를 그만두었다 쓸고 닦고 붙이고 바르고 이 모든 충정의 헌신성에서 손가락같은 못이 바늘침, 송곳으로 되였고 하루 두장 겨우 차례지던 종이들이 모여서 콩보리밥에 이겨지고 저 아마존강의 악어가죽처럼 질긴 각질로 변해갔다 4: 광택찬란한 보석알들이 김선명동지의 거친 손바닥안에서 한알 두알 태여났다 빨간 홍옥에 비취색 푸른 청옥 그것들을 손으로 당겨대는 나이론실톱으로 알알이 잘려진 하나의 치솔대의 쪼각을 얼마나 갈고 닦고 또 닦고 문대였으면 그리도 광택찬란한 눈부신 보석알로 되였던것인가 1: 감옥밥이란 눌러서 두어숟가락 통채로 삼키여도 배에 기별이 없다는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더구나 그 콩보리밥에서 한알 두알 던다는것은 제 살점을 떼는것처럼 힘든것임 을 온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 2: 아, 그런 콩보리밥조차 우리의 주인공은 먹지를 않고 안경집 종이 이기는데 쓸 풀로 다지고 또 다졌으니 그래도 그 풀로 만들어진 안경집이 그늘속에서 자리잡아가는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아 배고픈것까지도 까맣게 잊고있던 그 순간의 기쁨은 천냥을 주고도 살수 없는 그것이였다 전체: 억만냥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그것이였다 3: 세멘트밑바닥에 치솔대를 갈아 콩알만 하게 하던 갈라터진 손바닥의 상처는 그 얼마였으며 닳아빠진 손톱의 상처는 그 얼마였던가 허나 그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때로 말하면 온 감옥에 군사불한당놈들이 마구 날쳐대던 때여서 이 일이 발각되면 안경집과 목숨을 바꾸어야 했으니 그는 온 긴장속에서 시간을 쪼개며 목숨을 걸고 충정의 선물을 마련하고있었다 4: 그날 동지들의 지지와 성원은 얼마나 컸으랴 아껴쓰던 종이들도 보내여주고 얼마 되지 않는 콩보리밥도 보내주며 모든 동지들이 지원했으니 아! 그리하여 정성에 피여난 돌우의 꽃이였던가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올릴 안경집! 전체: 충정의 안경집은 드디여 마련되였다 김선명: 이것이 안경집 모조품입니다. 조국의 품에 안기여 안경집이 평양에 와있다는것을 알고 감격하여 울었습니다. 1: 충정의 안경집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손길아래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쳐 그리고 조직과 집단의 성원속에서 두번 바다를 건너 산을 넘어 끝내는 어버이수령님께 올리게 되였습니다. 4: 이것만 보아도 우리 전체 인민들의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흠모심이 얼마나 뜨거운것입니까. 참으로 우리의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은 하늘이 낸 위대한 영걸이시며 전체: 우리모두의 영원한 태양이십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것이 있다. 김선명동지의 할아버지는 리조시기 병조판서였고 할머니는 공주였다. 결국 곰팡내가 풍기는 봉건량반가정에서 견실한 사회주의자가 태여나고 45년간 감옥살이를 한 세계최장기수가 나온것이다. 다음순서는 주체83(1994)년 전주감옥에서 위대한 수령님서거 추도식을 거행했던 사실을 엮은 대화시 《철창속당세포》이다. 이 대화시는 비전향장기수들이 지닌 수령결사옹위의 높은 정신력을 보여준 작품이다.
1: 우리 당이 어찌하여 그토록 위대한가 2: 우리 당은 어찌하여 그토록 강철의 당인가 3: 오- 그것은 우리 당에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전체: 높이 모셨기때문 4: 그리하여 세상에 없는 비전향장기수라는 말도 생겨났으니 1: 우리는 우리 당규약의 요구대로 철창속에서도 당생활을 중단하지 않았다 전체: 당세포생활을 계속하였다 2: 어렵고 힘들 때마다 그것을 이겨내도록 이끌어주고 고무해주던 당세포 4: 적들의 악착한 전향횡포도 1: 적들의 살인고문도 3: 그리고 그 모진 추위와 주림도 이겨낼수 있도록 이끌어주던 우리 당세포 1: 당세포나날에 있었던 이야기 수령님서거 추도식을 준비하던 때의 이야기를 우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3: 수령님을 너무도 뜻밖에 잃은 천고의 비통속에 모대기던 그밤에 세포비서동지의 통방이 왔다 1: 수령님서거 추도식을 진행하기 위한 분공조직입니다. 복창할것… 첫째. 전체: 첫째. 1: 수령님을 영결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단식한다. 전체: 우리는 단식한다. 1: 둘째. 전체: 둘째. 1: 추모댕기는 왼쪽가슴에 달되 검은 띠로 한다. 전체: 추모댕기는 왼쪽가슴에 달되 검은 띠로 한다. 1: 셋째. 전체: 셋째. 1:마지막추모모임을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시고 그옆에 공화국기발을 세우 고 하며 수령님초상화는 감옥안에서 어렵게 입수한 《말》잡지에 모셔진 초상화로 하되 그 초상화둘레는 출판물들에서 한송이 두송이 오려낸 가장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한다. 전체: 아! 수령님초상화를 모시고 진행된 철창속추모회 2: 이것은 그대로 수령님께 지키는 전사의 도리, 전사의 의무였나니 4: 우리는 세포분공을 집행하고저 결사의 각오로 달라붙었다 1: 차입된 출판물들에 있는 모든 꽃들이 수집되였다 어느 꽃이 아름다운가, 이 꽃 저 꽃 만져보기를 그 몇십번 3: 아! 수령님을 가장 정중히 모시려는 오직 하나의 마음으로 우리는 수령님을 그리는 비통한 심정을 안고 소리없이 눈물을 삼키며 밤과 밤을 이어 모든 정성을 아끼지 않았으니 2: 이런 충정의 열정속에서 드디여 우리 수령님초상화는 가장 아름다운 꽃테두리속에 정중히 모셔질수 있었다 4: 그렇게 준비한 초상화를 모시고 우리는 감옥안에서 수령님영결식을 가장 뜨겁게 가질수 있었다 3: 그렇게 장식한 초상화를 우러러 수령님추모회를 가지던 그밤에 그토록 환하신 수령님을 우러러 아, 우리의 수령님은 절대로 가시지 않으셨다 2: 우리 수령님 쌓으신 업적이 위대하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수령님위업을 꿋꿋이 이어가고계시기에 우리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백천번도 더 뜨겁게 외우며 우리 수령님 그대로이신 장군님을 더 잘 모실 결심 그 초상화앞에서 다지고 또 다지였다 1: 우리가 그렇게 우러르며 뜨겁게 결심을 다지던 그날의 그 초상화가 바로 전체: 바로 이 초상화입니다. 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전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대화시가 끝나면 조국의 품에 안긴 후 새 가정을 이룬 비전향장기수들이 안해들과 함께 리인모동지의 시 《사랑에 대한 생각》을 부른다. 이때 사회자는 다섯쌍의 부부를 소개한다. 45년동안 옥중투쟁을 한 80대의 최장기수 김선명동지부부, 홍명기동지부부, 70대인 함세환, 김영달동지부부, 비전향장기수중에 유일한 60대인 축복이 아버지인 리재룡동지부부를 소개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요란한 박수가 터져오른다. 비전향장기수들중에서 제일 나이가 적은 리재룡동지는 결혼한 뒤 귀여운 딸(축복)을 보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친히 딸이름을 축복이라고 지어주시고 친필서한까지 보내주시였다. 그 감격을 안고 축복이가 부모와 함께 노래 《축복받은 나의 삶》을 부르겠다고 소개하면 리재룡동지는 《저는 30년세월 감옥에서 인간의 모든것을 짓밟히고 늙은 총각으로 버림받았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가정과 축복이에게 돌려주신 이 크나큰 영광을 어찌 잊을수 있겠습니까. 하기에 저의 가족은 <축복받은 나의 삶>노래를 높이 부르며 충정의 한길을 변함없이 갈 굳은 결의에 넘쳐있습니다.》라고 눈시울을 적시며 이야기를 한다. 2002년 8월 15일 서울에서 진행된 민족통일대축전사진전시회에 전시된 사진중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필서한사진과 축복이네 가족사진도 전시되여 남녘동포들의 찬탄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 경모의 정을 표시하였으며 축복이 아버지에게 축복이를 잘 키워달라는 부탁을 보내왔다. 축복이의 노래수준은 보통이 아니다. 그가 챙챙한 목소리로 《축복받은 나의 삶》을 부르고나면 흥분된 관람석에서는 폭풍같은 재청소리가 터져나온다. 축복이 어머니의 고향은 황해남도 해주시이다. 그래서 자주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달랑거리며 외할머니집에 간다. 하지만 아버지의 고향은 남강원도 양양군이여서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하고있다. 《어른들이 말하는데 우리 아버지고향은 멀지 않대요. 이제 통일이 되면 난 아버지의 고향에 간답니다.》 축복이의 자신심이 넘친 대답이다. 《고향의 봄》을 춤추며 노래부르는 귀여운 축복이의 머리우에 만장의 박수갈채가 축포마냥 쏟아져내린다. 비전향장기수들의 예술공연곡목에는 이외에도 그들의 젊은 며느리들이 출연하는 기타병창 《래일을 믿으라》도 있다. 예쁘게 생긴 녀성들이 아름다운 조선옷을 입고 률동을 겸한 기타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솜씨는 어느모로 보나 손색없는 수준급이다. 그들의 열성도 시부모들 못지 않게 높다. 시부모들의 년령이 많다보니 집안살림을 도맡아안고 제일 수고가 많은것은 바로 며느리들이다. 그들은 시간을 아끼느라 여가시간이나 차를 타고갈 때에도 계속 련습한다. 집살림도 잘하고 시부모공대도 잘하는 며느리들을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무척 고와하고 아껴준다. 공연의 마감에 우리들은 관중들과 함께 합창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를 부른다. 공연이 끝나면 관중들은 장내가 떠나갈듯이 박수갈채를 보내군 한다. 이렇게 우리는 지난 10년동안 군부대, 공장기업소, 농촌, 학교 등 여러곳을 찾아다니면서 예술소품공연을 하였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반영은 대단하였다. 앞에서 이미 량해를 구했지만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노래를 부르면 얼마나 잘 불렀겠는가. 그래도 사람들은 우리가 앞으로도 혁명의 노래를 부르며 변함없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전사로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고있다. 그 믿음, 그 기대를 가슴에 새기고 우리들은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신념의 맹세를 담은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며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한 투쟁에서 비전향장기수의 영예를 빛내여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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