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고목에 꽃이 피였습니다

 

비전향장기수들은 대부분이 80대, 90대의 고령들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런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청춘을 되찾아 여생을 아무런 불편없이 행복하게 보내도록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신다.

우리가 조국의 품에 안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느날 갑자기 련락을 받고 고려호텔식당에 들어선 나는 깜짝 놀랐다.

식당 한가운데 큰 생일상이 차려져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내 생일이라는것이 아닌가?!

어떻게 알았는지 고려호텔 종업원들이 조국에서 맞는 나의 첫 생일상을 차린것이였다.

결국 나는 조국에 안긴 첫 순간부터 조국인민들의 진정어린 사랑을 받아안은것이다.

최하종동지의 안해도 가족과 함께 고려호텔에 찾아와 내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그는 수십년전 나와 한직장에서 생활을 함께 하였고 내 안해와도 인연이 있었다.

《김선생님, 변변치 못하지만 어서 드세요.》

그의 어조에는 이 세상에 없는 안해를 대신하여 나를 돌봐주려는 따뜻한 인정미가 다분히 배여있었다.

나는 그의 성의에 사의를 표하고 생일상과 마주앉았지만 목이 꽉 메여 음식을 삼킬수가 없었다.

오늘같은 날 안해가 살아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동안 나를 돌봐주느라고 수고를 한 여러 동지들에게 그의 손으로 생일음식이라도 정성껏 차려 인사를 했으면…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든든했다. 그렇다.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 비록 안해는 곁에 없지만 이렇게 동지들의 사랑이 나를 살뜰히 돌봐주고있지 않는가.

나는 자꾸만 괴여오르는 눈물과 함께 생일음식을 목으로 넘겼다.

식사가 끝난 후 돌아와보니 책상우에 활자로 찍은 생일축시가 정히 놓여있었다.

그 축시 역시 나를 무척 감동시켰다. 생일날에 이렇게 축시를 받아보기는 난생처음이였던것이다.

축시를 보내준 사람은 조국에 돌아온 후 고려호텔에서 처음 만나 사귀였던 시인이였다.

그때 우리들은 옥중생활이야기로부터 조국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과정에 우리는 서로 정이 들고 허물없는 사이가 되였다.

나는 그가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었고 시인도 나를 좋아하고 존경해주었다.

문자그대로 우리는 하루밤에 만리장성을 쌓은셈이였다.

그는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고려호텔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배려해주신 현대적인 고층살림집으로 이사를 오는 날에도 나를 찾아와 시 한편을 또 남기였다.

 

만 남

 

너무도 아득히 높던

선생님들의 삶을

너무도 가까이에서 목격한

나는 분명 행운아

 

활자화된 글이 아니라

따뜻한 온기가 흐르는 피부로

먼곳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 마주보며 듣는 눈과 귀로

심장에 오려붙인

선생님들의 뚜렷한 자화상

 

내 속에 성큼 들어서신 선생님들

어렵고 힘들 때면

귀에 익은 다정한 목소리로

길을 가리킬것이오니

나는 한생 보람찬 한길을 갈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확언하노니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아름답고 숭고한

인생과의 만남입니다

헤여짐을 모를 애국과의 만남입니다

 

비전향장기수들을 만나보고싶어하는 조국인민들의 마음은 대단하다. 하여 우리들은 조국에 온 후 많은 상봉모임에 참가하군 한다.

언제인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군인들과의 상봉모임에 갔었다.

씩씩한 군인들은 우리들의 예술소품공연도중에 비전향장기수들 매 사람을 한명씩 소개해줄것을 요청했다.

우리들이 한사람씩 무대우에 나와 소개될 때마다 그들은 회관이 떠나갈듯 한 박수갈채를 아낌없이 보내주었다.

예술소품공연이 끝났을 때였다. 름름하게 생긴 한 군관이 무대우로 올라왔다. 그는 정치일군이였는데 자기가 쓴 즉흥시 한편을 나에게 주었다.

 

신념의 청춘          

 

내 오늘 보았노라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우리 장군님 내세워주신

인간중의 인간

영웅중의 영웅

충신중의 충신들

 

만나보니 너무도 젊었구나

머리에는 백발이 날리여도

정신도 육체도 아직은 새파란

이들은 분명 20대의 청춘

 

누가 30여년 옥살이에

젊음을 빼앗겼다 하랴

누가 40여년 옥살이에

청춘이 시들었다 하랴

아, 나이 60에도 청춘을 자랑하는

축복이 아버지가 말해주노라

신념이 강할 때 인간의 육체는

영원히 늙지 않는다고

 

혁명가의 신념은 정신도, 육체도

영원한 청춘으로 지켜주는

인간생명의 기둥이여라!

 

나도 그대들처럼 살리라

장군님 따르는 길에 로쇠를 모르는

영원한 신념의 강자

영원한 장군님의 청춘으로 살리라!

 

나는 이 시를 자주 읽어보군 한다. 그러면 군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 결심을 더욱 굳히게 된다.

군인들과 근로자들만이 아니라 대학생들과의 상봉모임도 자주 있군 한다.

지난해 가을 나는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학생들과의 상봉모임에 갔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것처럼 수기집 《태양가까이에서》, 《생이란 무엇인가》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하여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지간히 당황했었다. 어이없는 일이였다.

옥중에서 놈들의 별의별 고문과 위협앞에서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내가 다름아닌 조국의 품에 안긴 오늘 교장선생님앞에 나선 소학교학생처럼 움츠러들줄을 어찌 알았으랴.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수백쌍들의 눈동자에 따뜻한 기대와 믿음의 빛이 어려있는것을 보자 가슴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그리하여 나는 옥중에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굴하지 않고 싸우다 먼저 떠나간 동지들의 투쟁을 기록으로 남기는것을 동지적의리로 간주하고 글을 썼을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부언했다.

《사실 난 소설을 쓸줄 모릅니다. 또 설사 쓸수 있다고 하더라도 쓰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수기를 쓸것입니다. 그것은 동지들의 투쟁을 사실그대로 전하고싶어서입니다.》

상봉모임이 끝나자 한 학생이 《영원한 교과서》라는 시를 랑송하였다.

 

영원한 교과서

 

비전향장기수-

하많은 뜻이 실린

여섯 글자입니다

옥살이 34년-

천만의 아픔이 엉킨

두자리 수자입니다

 

해빛밝은 강의실에서

우리 번져온 력사와 문학교과서

거기서 익힌

이프성새

바스띠유감옥

오스벵찜수용소

악명높았던 그 지옥들에도

비전향장기수는 없었습니다

 

허나 분렬된 이 땅

미제야수의 발톱이 박힌 남조선

광주와 대구, 대전, 전주

15척 담장안 0. 75평 독감방에서

세계기록을 돌파한

비전향장기수들이 조용히 솟아올랐나니

 

인간은 공기와 쌀로 사는것이 아닌

넋으로 사는 존재임을

인생은 보석이나 명예가 아닌

신념으로 빛나는것임을

아, 우리 장군님과 조국을 위해 바친 삶이

얼마나 긍지롭고 푸르른가를

한생으로 떳떳이 깨우쳐준 그대!

 

태양의 가장 가까이 빛나는

별들의 빛나는 행복을 가르치며

우리 인생의 걸음걸음 이끌어준

비전향장기수!

그대는 살아있는 교과서

우리 삶의 영원한 교과서입니다!

 

시랑송이 끝나자 강당이 떠나갈듯 한 박수갈채속에서 나는 학생이 넘겨주는 시를 얼결에 받아버렸다. 그날은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이다.

나는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이 시를 때없이 들여다보군 하는데 그 시는 차라리 내가 비전향장기수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참된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학생들과의 상봉모임이 있은지 거의 한달이 지났는데 이번에는 김형직사범대학 어문학부에서 나를 초청하였다.

역시 이 대학 학생들의 질문내용도 앞선 대학생들과 다를바 없었다.

그날 나는 그전처럼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내 수기집이 체험자가 쓴 글이기때문에 실감이 있다고 한다.

나도 부정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옥중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수기집들은 이 세상에 태여나지 못했을수도 있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먼저 간 동지들앞에 지닌 영원한 의무가 나를 떠밀고있다. 바로 이것이 수기를 실감있게 쓸수 있은 추동력이였다.…

그다음 나는 내가 늘 생각하고있던바를 터놓았다.

…학식은 술이 아니여서 입에 부어넣을수는 없다. 젊은 시절의 한시간은 나같은 로인의 열시간보다 더 값있고 귀중하다.

나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인것만큼 지식으로 조국에 어느 정도 보탬을 주었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34년이라는 긴긴 세월 독감방속에 갇혀있다보니 한가지의 지식도, 한삽의 흙도 조국의 번영에 이바지하지 못했다. 생각하면 가슴아프고 죄스럽기만 하다.

그러니 대학생동무들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의 그 마음까지 다 합쳐 더 많이 배우고배워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한 대진군의 앞장에 서있기를 바란다.…

《동무들, 제발 시간을 아끼고 귀중히 여겨주십시오.》

이것은 학생들에게 하는 부탁인 동시에 그들보다 남은 여생이 길지 않은, 그래서 한초한초의 시간을 쪼개며 어머니조국을 받들어가려는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의 맹세이기도 하였다.

상봉모임이 끝난 후 현관앞에서 차를 타려고 하는데 학부장선생이 찾았다.

웬 일인가 해서 돌아보니 그는 사람좋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학생들이 선생님 손을 한번 잡아보고싶다고 합니다.》

나는 얼핏 손을 내려다보았다. 오래동안 놈들의 악형속에서 나를 지켜주느라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고 그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손보다 곱지 못하고 투들투들한 손이였다.

잠시 망설이는데 벌써 수십명의 대학생들이 와르르 달려들어 내 손을 꽉 움켜쥐는것이였다.

《선생님!》 하고 나를 쳐다보는 대학생들의 눈가에는 맑은 이슬이 맺혀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굽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속에서 나는 김형직사범대학 어문학부 학생들이 장군님께서 아시고 온 나라 인민이 사랑하는 훌륭한 문필가들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과 한사람, 한사람 뜨겁게 손을 잡았다.

그후 하루는 한 녀대학생이 찾아와 자작시 《나도 선생님곁에…》를 두고갔다.

 

나도 선생님곁에…

-김동기선생님에게 드리는 시- 

 

나는 남몰래 서보았습니다

불처럼 뜨겁고 철처럼 굳센

선생님곁에 나도 설수 있을가

남몰래 재이며 서보았습니다

 

하건만 나의 불은 선생님처럼

하건만 나의 철은 선생님처럼

뜨겁지도 못하고 굳세지도 못하여

그곁엔 갈수 없어 망설였습니다

 

내 정녕 그곁에 갈수 없을가

선생님 뵈옵던 그 첫날에

무작정 달려가 청했습니다

선생님, 손 한번 잡아봅시다

 

선생님 따뜻이 웃어주시며

소탈하게 나의 손 잡아주실 때

나는 그만 놀라워 서버렸어요

놀랄수 없는것에 놀랐습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따스한 온기

부드럽게 어려있는 그 손길은

친정집 아버지와 다름이 없고

때없이 잡아보던 친우들 손길

 

인간이 올수 없는 험난한 길을

34년 긴긴 세월 어둠속에서

식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고

불처럼 철처럼 오신 선생님

 

나처럼 피가 뛰고 나처럼 숨쉬는

평범한 인간임을 알았습니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 《인간》이 올수 없는

그 길을 헤쳐온 인간임을 알았습니다

 

눈에도 삼삼한 선생님모습은

귀에도 쟁쟁한 선생님음성은

나를 불러 그곁에 세워줍니다

나도 몰래 발걸음은 달려갑니다

 

선생님 내곁에 가까이 있어도

쉽게는 갈수 없는 멀고 험한 길

부끄러운 마음안고 떠났습니다

멀어도 힘들어도 가고싶어서…

 

시는 대번에 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한편 아쉬운 점도 있었다.

내가 어떻게 온 나라가 다 아는 비전향장기수로 될수 있었는가. 그것은 두말할것없이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제일로 아끼고 위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하늘같은 은정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에는 나에 대한 존경은 있어도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공화국영웅으로, 조국통일상수상자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경모의 정이 좀 부족한것 같았다.

우리는 시 한편을 써도 한걸음을 걸어도 오로지 우리의 운명이시며 미래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지난 10년동안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존경하고 친자식의 심정으로 돌봐주고있다.

조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나는 담당의사에게 이렇게 물은적이 있었다.

《선생님, 이렇게 자주 검진을 해야 합니까?》

그때 나는 며칠째 몸에 아무런 탈이 없기에 병원에 가지 않고있었다.

어느날 전화종소리가 울리기에 무심결에 수화기를 드니 담당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동기선생님, 왜 병원에 오시지 않습니까?》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여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단말인가. 아프지 않으니 가지 않았는데…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그의 말소리에는 거절할수 없는 요구가 깃들어있었다.

할수없이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좀전에 전화를 할 때에는 꽤 엄한것 같더니 막상 만나니 오랜만에 부모를 만난 친자식처럼 반가워하며 검진을 시작하는것이였다.

드디여 검진이 끝났다.

《선생님, 정상입니다.》

담당의사는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가 공연히 부산을 피운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의사선생님, 이렇게 자주 검진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의사의 눈에 숙연한 빛이 떠올랐다.

《선생님, 감옥에서 악화된 비전향장기수선생님들의 건강을 회복시키라는것은 우리 장군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그제서야 의사, 간호원들이 몸에 열이 조금만 나도 왜 즉시 구급차를 타고 달려오군 했는지, 며칠에 한번씩 꼭꼭 어김없이 검진을 하고 처방을 하군 했는지 깨달았다.

아, 장군님의 사랑은 순간순간마다 내 몸에 와닿고있구나!

그후부터 나는 더는 의사선생님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장군님께서 우리들때문에 심려하시지 않도록 검진날자를 꼭꼭 지키군 한다.

하루는 동진료소 소장과 의사선생님들이 나를 찾아왔다.

《이 보약은 저희들이 약재를 직접 재배하여 만든 보약인데 성의로 받아주십시오.》

진료소소장이 보약들을 한아름 내여주며 하는 말이였다.

나는 사양했다.

《일없습니다. 장군님께서 우리들에게 귀한 보약들을 자주 보내주고계시니 전쟁로병이나 영예군인들에게 보내주십시오.》

그랬더니 그는 《그들에게도 다 보냈습니다. 그러니 받아주십시오. 비전향장기수선생님들이 오래오래 앉아계셔야 사람들이 기뻐합니다.》라고 하면서 끝끝내 보약을 안겨주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식료상점과 평양제1백화점 판매원동무들은 정상적으로 강서약수를 집에까지 날라다준다. 삼복더위때에 땀을 흘리면서 약수를 가져다주는 그들을 볼 때면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

매번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해주어도 그들은 방긋 웃으며 《저희들이 하고싶어서 하는 일이니 그런 걱정은 마십시오.》라고 한다.

옥중에서는 마실 물도 주지 않아 갈증을 이겨내기가 몹시 힘들었는데 지금은 고마운 사람들의 덕으로 룡악산샘물과 옥류약수, 강서약수를 마음껏 마시고있다.

비전향장기수들은 대부분이 오랜 옥중생활과정에 위를 상한 사람들이다. 거친 음식을 먹으면 소화시키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오늘은 강동군 구빈리염소목장에서 직송해주는 산유를 정상적으로 공급받고있다.

새벽일찍 신선한 산유를 싣고 염소목장을 출발한 자동차는 먼길을 돌아 여러 시간동안 달려온다.

그들의 성의가 깃든 산유를 마신 비전향장기수들은 위아픔도 모르고 혈색도 좋아졌다.

병치료보다 마음치료가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조국인민들의 정성에 이제는 건강상태가 무척 좋아졌다.

남조선에 있을 때 갖은 악형과 고문에 시달려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던 우리들은 오늘 장군님의 끝없는 사랑과 그이의 뜻을 받든 사람들에게 떠받들려 장수자로 되고있다.

행복은 날마다 늘어나고 우리는 날마다 젊어진다.

멀리 지방에서 살고있는 사람들도 자기들의 심정을 담은 편지들을 보내오고있다.

지난 10년동안 나는 교원, 학생들로부터 수백통의 편지를 받았다.

평안북도 벽동군 송련리 창주분교 김경수선생, 만포시 봉화중학교 학생들…

그들은 편지마다 장기수할아버지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쓰고있다.

또한 수기집 《태양가까이에서》, 《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독후감을 쓴 편지들도 받았다.

감나무중대 정치지도원 손경실, 함경남도 단천시 최수천, 황해북도 황주군 안상길, 황해북도 수안군 신춘남…

편지를 받을 때마다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대체 내가 사람들로부터 보약을 받고 편지를 받을만 한 공을 세우기라도 했단 말인가.

나는 길영조영웅이나 김광철영웅처럼 최고사령관동지의 안녕과 동지들을 위하여 한목숨바친 자폭영웅도 아니다.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위훈을 세운 로력영웅이나 세계의 하늘가에 람홍색공화국기를 휘날린 인민체육인도 아니다.

다만 독감방에서 수십년세월 혁명적신념을 지켜싸웠을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를 그토록 존경하고 조금이라도 더 돌봐주려고 애쓴다.

그래서인지 늙고 병약한 내 몸에도 젊은 시절처럼 힘이 생기고 건강도 10년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이를테면 인생의 고목에 생신한 꽃이 피여난셈이다.

내 이제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바라는것이 있다면 애오라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부디 건강하시는것뿐이다. 하기에 우리들은 아침에 잠을 깨서도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도 때없이 방에 정중히 모셔진 장군님의 초상화를 우러르며 마음속인사를 드리군 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 부디부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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