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의 사랑, 나의 행복

 

나는 지금 장농속에 정히 간직한 강반석혁명학원 졸업증과 졸업휘장을 꺼내여 펼쳐본다. 졸업증에는 강반석혁명학원 졸업생인 안해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2007년 10월 12일 만경대혁명학원, 강반석혁명학원창립 60돐 기념행사때 내가 안해를 대신하여 받은것이였다.

나는 때때로 안해의 모습이 그리워질 때면 이 졸업증과 졸업휘장을 꺼내보군 한다. 그리고는 강반석혁명학원 졸업휘장을 가슴에 달고 거울앞에 서보군 한다. 그러면 내 마음엔 학원복을 가뜬히 차려입은 처녀가 함뿍 미소를 짓고 조용히 들어선다.

나에게 늘 학원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시절처럼 살리라 다짐하던 만경대의 딸, 나의 안해의 모습이였다. 나는 안해에게 말한다. 우리 함께 당신에게 만경대의 정신을 새겨준 그곳으로 가보자고.

물론 이것은 상상이였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젊은 시절 나의 사랑이였으며 내가 어떤 어려운 일을 맡아나선대도 언제나 깊이 리해해주고 떠밀어주던 안해에게 늘 그렇게 말하군 했었다. 그를 조국을 위해 가정의 행복도 기꺼이 바칠줄 아는 강직한 녀성으로 키워준 만경대로 함께 가보고싶었던것이다.

내곁에는 이제 더이상 나의 청을 들어줄 그 안해가 없다. 그리고 그가 강반석혁명학원 원아였다는 사실은 차츰 세월의 운무속에 가리워지며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마저 희미해져가고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뜻밖의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어느날 나는 한 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였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녀인은 자기가 나의 안해 김은옥과 강반석혁명학원 동창생이라고 소개하는것이였다. 그 순간 나는 목이 꽉 메여오는것이였다. 수십년전에도 이렇게 안해를 찾아오는 녀동무들이 있었던것이다.

나는 격세지감을 느끼며 《은옥을 찾습니까?》 하고 엉뚱한 말을 해버렸다. 그때 수화기에서는 대답대신 가느다란 한숨소리만이 들려왔다. 나는 그만 자신이 실언을 해버린것을 깨닫고 떨리는 목소리로 낯모를 그 녀인에게 량해를 구하였다.

그러자 녀인은 흥분된 목소리로 이제 곧 만경대혁명학원, 강반석혁명학원창립 60돐 기념행사가 있게 된다는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학원의 일군들이 나를 만나려 한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그후 나는 안해의 동창생과 함께 학원일군들을 찾아갔다. 학원에서는 이번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으로 만경대혁명학원과 강반석혁명학원 졸업증과 졸업휘장이 새로 나오게 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니 세상을 떠나간 안해에게도 새 졸업증과 졸업휘장이 나오게 되였던것이다. 나는 갑자기 심장이 후두둑 뛰는것을 느끼였다. 학원일군과의 대화는 안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갔다.

안해는 나와 한고향내기였고 대학을 함께 다닌 동창생이였다.

나의 안해는 병으로 사망하는 순간까지도 내가 꼭 살아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안해를 잊어본적이 없었다. 감옥에서 적들은 늘 나에게 《너에게도 처자가 있을것 아니냐? 결심하라. 살겠느냐, 죽겠느냐?》고 묻군 하였다. 이 물음앞에서 나는 언제나 참된 삶을 선택하군 하였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안해에게 속삭이군 하였다.

《나에 대한 조국의 믿음, 강반석혁명학원 졸업생인 당신의 믿음을 지키는 길이 내가 진정 인간으로서 삶을 향해가는 길이요. 여보, 난 죽음으로써 삶을 선택하려오.》

원아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던 그날의 감격을 행복에 겨워 추억하며 자신이 강반석혁명학원 졸업생이라는 높은 긍지를 안고 살아온 안해, 아버지의 혁명정신을 이어 조국을 위해 굳세게 살아가겠다고 하던 안해, 언제든 함께 자기가 자라난 학원으로 가보자고 하던 안해였다.

안해의 사랑은 그리움속에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헌신적인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것은 없다.

나는 이 아름다움을 더럽힐수 없었다. 안해의 사랑과 믿음, 존엄을 지켜주고싶었다. 그래서 끝내 적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것이다.

그렇게 언제나 나를 이끌어주던 안해였건만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다.

나는 안해를 몹시 사랑하였다. 정도 정이였지만 일찌기 부모의 정을 모르고 자란 한 연약한 녀인의 부모가 되여주고싶은 마음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도 나를 남편으로서뿐아니라 아버지처럼 존경하며 따랐다. 그런데 25살의 한창나이에 헤여진것이 영원한 리별이 되였다. 조국에 돌아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가 생각날 때마다 오랜 세월 그가 홀로 어떻게 살아왔을가 하고 생각해보군 하였다. 그에게 사랑과 정을 다 주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안해가 살아서 학원창립기념행사에 참가할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여지는듯 아파났다.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시울을 적시였다.

그후 당창건기념일이였다. 우리 집으로 몇사람이 찾아와 나에게 만경대혁명학원, 강반석혁명학원창립 60돐 기념행사참가증을 전달하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이 깃든 안해의 혁명학원졸업증과 졸업휘장을 수여하는것이였다.

안해가 학원을 졸업한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이날 나는 안해를 대신하여 졸업증을 수여받았다. 안해가 살아서 이 졸업증을 받을수 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으랴 생각하니 졸업증의 김은옥이란 이름이 내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들었다.

그후 나는 만경대혁명학원, 강반석혁명학원창립 60돐 기념행사에 참가하게 되였다.

행사전날 4. 25려관에 도착하니 마중나온 그곳 일군은 내가 이번 행사에 참가하게 된것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호실에 들어서니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였다.

장령들도 있고 대좌, 상좌견장을 단 군인들도 많았다. 그들은 서로가 나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해주려 하였다.

그때 나는 혁명학원휘장을 달지 않고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서로 수군거리며 이야기하고있었다.

내가 혁명학원졸업생이 옳은가 하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궁금증을 풀려는듯 그중 한사람이 《휘장은 아직 수여받지 못했습니까?》 하고 질문하였다.

내가 이미 수여받았다고 대답하자 그 사람은 반가워하며 《몇기 졸업생입니까?》 하고 질문하였다.

나이를 보아 동기생일수 있다고 생각한것 같았다.

부득이 나는 내가 행사에 참가하게 된 사연을 설명하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안해의 덕분에 이번 행사에 참가하게 되였다고 말하자 모두가 유일하게 학원졸업생이 아닌 나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몹시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손을 잡으며 《우린 모두 혁명학원출신입니다. 혁명학원출신들은 한가정이나 같습니다.》라고 하면서 나에게 안해의 강반석혁명학원 졸업휘장을 달고 다니라고 하였다. 그래도 나는 래일 천천히 달겠다고 하며 그자리를 모면하였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내 옆자리에 누웠던 대좌가 혁명학원졸업휘장을 보자고 하여 꺼내주었더니 그는 대뜸 그것을 나의 오른쪽가슴에 있는 조국통일상메달아래에 달아주는것이였다.

내가 어색한 표정을 짓고 혁명학원졸업휘장을 내려다 보는데 어느새 보았는지 호실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는것이였다.

복도로 지나갈 때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면서 강반석혁명학원 졸업생인 비전향장기수라고 속삭이고있었다.

아침식사후 뻐스쪽으로 걸어가는데 60대 후반 할머니들 10여명이 내앞을 막고 둘러서는것이였다. 그중 한사람은 내 가슴을 주먹으로 치고 울면서 은옥이는 어디다 두고 혼자 왔는가 하는것이였다.

다른 녀성들도 내 팔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만경대혁명학원 분교에서 나의 안해와 함께 친형제처럼 지내던 녀인들이였다.

한참만에야 나는 그 녀성들중의 몇사람을 알아보았다. 우리 집에 안해를 찾아오던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생기발랄한 모습은 간 곳 없고 백발의 할머니들이 내앞에 서있었다.

은옥이도 지금 살아있다면 이렇게 머리 흰 할머니가 되였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고있는 사이 뻐스는 4. 25문화회관에 도착하였다. 안해의 강반석혁명학원 동창은 말할것도 없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마저 조국통일상과 함께 사연깊은 졸업휘장을 단 나와 사진촬영을 하자고 모여들었다. 안해의 동창들은 은옥이의 남편을 보면 은옥이를 보는것 같을것이라고 하면서 사진을 여러장이나 함께 찍었다.

10월 12일 4. 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기념보고대회에 참가한 나는 안해에게서 몇번 들었던 기억이 있는 만경대혁명학원에 깃든 백두산위인들의 불멸의 령도업적에 대하여 다시금 들을수 있었다.

방후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1947년 10월 12일 만경대혁명학원을 창립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후 백여차례의 현지지도를 하시였으며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언제나 원아들속에 계시면서 제복도안도 만들어주시고 생일상도 차려주시며 친부모도 주지 못할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만경대혁명학원과 강반석혁명학원의 교육수준을 보다 더 높이기 위해 현대적인 교육설비들을 수많이 보내주시였으며 원아들에게 주실수 있는 온갖 사랑과 배려를 다 돌려주고계시였다.

나는 기념행사에 참가하면서 내가 몇십년동안 생활하였던 남조선사회의 본질을 더 명백히 알게 되였다.

남조선은 리명박패당에 이르기까지 외세에 굴종하는 사대매국노들에 의해 민족의 참다운 력사가 외곡되여온 사회이다. 일제의 식민지통치시기 일제의 앞잡이가 되여 그 더러운 손을 수많은 애국자들의 피로 물들여온자들이 해방후에는 뻐젓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 애국자들을 또다시 감옥에 넣으면서 시작된것이 이른바 남조선의 정치사였다. 그러다보니 오늘도 남조선에서는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들이 통일애국세력을 죄인으로 몰아 처형하면서 민족이 아니라 저자신을 위한 치부의 력사를 되풀이하고있다.

하지만 오늘 공화국에서는 항일혁명투쟁의 나날에 희생된 혁명가의 유자녀들이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핵심적역할을 하고있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혁명학원졸업생들과 함께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게 되였다.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목숨바쳐 싸운 혁명가유자녀들을 이 영광의 자리에 불러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며 나는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지금 내옆에 서있는 안해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어버이사랑속에서 오늘 또다시 혁명학원의 졸업생으로 새 졸업증을 안고 이자리에 나와 함께 서있었다.

그 영광의 사진을 전달받던 날 저녁 나는 처남과 친척들을 집에 불렀다. 친척들은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몹시 기뻐하였다.

나는 안해의 유해앞에서 마음속으로 학원창립 60돐 기념행사에 참가했던 일들을 알려주고 동창들의 안부도 전해주었다.

나는 강반석혁명학원의 초청으로 원아들과의 상봉모임에 참가하였다. 붉은 줄을 두른 단정한 제복을 차려입은 처녀들의 모습을 보느라니 사진속에서 보았던 학원시절의 내 안해를 보는것 같았다. 내가 학원을 떠날 때 원장선생은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혁명학원출신들은 모두 한가족입니다. 학원을 제 집처럼 생각하고 부인이 보고싶을 때마다 언제든지 찾아와주십시오.》

은옥은 추억속에서가 아니라 혁명가유자녀들에 대한 우리 당의 뜨거운 사랑속에서 만경대의 딸로, 자랑스러운 혁명학원졸업생으로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난셈이였다.

나는 양복을 정히 입고 안해의 학원졸업휘장을 가슴에 달아본다. 그리고 안해의 이름이 새겨진 새 졸업증을 또다시 펼쳐본다. 그러면 안해는 오늘도 나와 함께 있는듯싶다. 혁명학원졸업생들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속에서 그는 이 세상에 다시 태여난 몸이였다. 그렇다. 그는 오늘도 내곁에 있다. 안해로서만 아니라 만경대의 혁명정신을 지닌 만경대의 딸로 언제나 내곁에서 나를 고무해주며 떠밀어주고있다.

안해에게 만경대의 혁명정신을 심어주시고 혁명렬사의 후손답게 살아가도록 이끌어주고 오늘은 또다시 영생의 삶을 안겨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은 친혈육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줄수 없는 사랑을 다 안겨주시는 위대한 어버이의 품이였다. 그 품이 있어 우리의 사랑과 행복은 영원한것이다.

오늘도 안해는 학원복을 입은 처녀시절의 그 모습으로 내 마음속에 조용히 들어서며 속삭인다.

《나와 함께 내가 자란 그곳 만경대로 가자요.》

참된 사랑은 영원하다. 참다운 애인은 참다운 혁명동지이다.

인간으로서 나의 참다운 사랑, 참다운 행복을 위하여 나는 영원히 안해의 그 손을 놓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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