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정다운 사람들

 

누구의 목소리였던가? 다정하고 진정에 넘친 목소리.

《오래 기다리시지 않았습니까?》

회의장에 들어설 때나 혹은 산책길을 걸을 때나 내 마음속에 유정한 메아리마냥 울리여오며 행복에 젖어들게 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이 온 얼굴에 함뿍 미소를 지은채 어딘가 내 가까이에 서있을것만 같아 나는 얼결에 주위를 휘둘러본다.

그 목소리의 임자는 보이지 않아도 정겨운 그 속삭임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그간 건강은 어떠하십니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늘 선생님들이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생님들, 어서 앞서십시오. 장군님께서 사랑하시고 내세워주시는 선생님들이 응당 앞에 서셔야 합니다.》

문득 그가 우리들의 뒤에 서있는 환영이 자꾸만 든다.

정든 사람은 언제나 마음속에 함께 있는 법이다. 하여 그들은 어제가 마치 오늘이기나 한듯 마음속에 불쑥불쑥 웃으며 찾아들군 한다.

그러면 나의 추억은 먼저 2000년 9월 2일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조국의 품에 안기던 그날에로 거슬러간다. 그날의 그 순간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 다시 태여나는 환희의 순간이였다. 뜨거운 두손 내밀어 우리를 불러준 조국의 품속에 안기는 행복의 순간이였다.

우리는 그냥 꿈에 취해 눈부신 꿈길을 걷듯 휘청이며 꿈속의 세계를 향해 가슴 울렁이며 다가갔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였다. 우리를 힘껏 안아주는 뜨거운 그 손이 몸에 닿을 때 우리는 드디여 너무도 그리워 꿈세계처럼 그려보던 조국의 품속에 안긴것을 알았다. 꿈을 현실로 안겨주는 조국이 너무도 고마워 수십년 말라버렸던 눈물은 옷자락을 흠뻑 적시며 샘처럼 쏟아져내렸다.

그때 분계선을 넘어서는 우리의 손을 뜨겁게 잡아준 사람이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 때없이 찾아드는 그 일군이다. 그리고 그 정다운 목소리의 주인이다.

《장군님께서 선생님들을 모셔오라고 저희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건강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 장군님께서는 건강하십니다. 장군님께서 선생님들을 기다리고계십니다.》

그 일군은 온 얼굴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들의 손을 다정히 쓸어만지였다. 너무도 겸허한 자세였다.

우리들을 태운 차는 온 나라 인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개성, 사리원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섰다.

우리들이 어버이수령님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갈 때 그는 우리뒤에서 걸었다. 그를 뒤에서 걷게 하는것이 아무래도 미안한 생각이 들어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 일군은 자꾸 우리를 떠밀며 앞세워주는것이였다.

《선생님들, 어서 앞서십시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금 혁명적지조를 지키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선생님들을 기다리고계십니다. 장군님께서 사랑하시고 내세워주시는 선생님들이 응당 앞에 서셔야 합니다.》

그는 끝내 우리들이 앞서 걷기 시작해서야 다시 걷기 시작하는것이였다. 나는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면 그는 어서 앞서라고 손짓하며 정깊은 미소를 지어보이는것이였다. 거기에는 가식이 없었다. 그 몸짓, 그 미소에는 진실한 마음만이 어려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눈에 비낀 그 일군의 첫 모습이자 영원한 모습이다.

감옥에서 매일 젊은 간수들이 머리 희끗한 수인들을 보고도 《이 새끼, 저 새끼》라고 하며 갖은 악담을 퍼붓는것을 몇십년동안 보고 들으며 살다보니 욕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욕설의 문화》에 익숙되여온 우리였다.

남녘의 감옥에서 쓰는 《언어사전》에는 인간이 만든 악의에 찬 언어만이 올라있는듯싶었다. 감옥에서 사는 사람들사이에는 인간적륜리란 존재하지 않았다. 교도소 관리들사이의 관계라든가 각종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온 수인들사이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철저히 적대적이였다. 교도관들사이에는 상급과 하급사이에 관직을 빼앗기 위한 다툼이 끊임없고 일반수인들속에서는 하찮은 리익을 위해 주먹질과 고자질이 그칠새 없었다. 감옥은 악한들의 천국이였다.

그런데 감옥에서 나온 후 남조선사회를 알게 되면서 나는 감옥의 륜리란 다만 남조선사회륜리의 축소판에 불과한것임을 잘 알게 되였다. 아니, 차라리 감옥쪽이 더 나은것 같았다. 사회는 은페된 악한들의 세계였다. 권력자들은 마키아벨리의 정치원리라든가 니체의 권력의지의 정신, 현대 서방세계의 온갖 엘리뜨주의자들의 사상에 감염되여 그것을 진정한 인간주의로 묘사하면서 대중에 대한 복무자가 아니라 철저한 지배자로 군림하고있었다. 나는 우리를 그토록 존경과 사랑을 담아 대해주는 그 일군을 보면서 차츰 그의 품성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가까이 모시고 일하면서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본받아 체질화된것임을 알게 되였다.

정해진 시간에 꼭 도착하고도 우리앞에 다가서며 하는 첫말은 늘 《기다리게 하여 미안합니다.》이다. 그는 언제나 우리를 만나면 《건강은 어떠하십니까? 건강하셔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선생님들이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십니다.》라고 말하며 우리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군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비전향장기수들의 건강을 항상 걱정하고계신다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은 또다시 무한한 삶의 행복에 젖어들며 장군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 건강관리를 더 잘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군 한다.

조국의 품에 안기여 처음으로 옥중수기집 《태양가까이에서》를 출판하였을 때였다.

나는 책표지에 나의 이름을 수표하여 그 일군에게 드리였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례의에 불과한것이였다. 나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언제나 바쁘신 시간을 보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사업하는 일군이 변변치 못한 저의 글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는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후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은정어린 70돐생일상을 전달하기 위해 우리 집에 왔었다. 그때 나는 그 책을 보내드린것은 저의 례의일뿐이니 일이 바쁜데 수기집을 읽는데 시간을 랑비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저의 솔직한 심정이였다.

하지만 그가 《아닙니다. 아무리 바빠도 옥중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만을 믿고 싸운 선생님의 옥중수기를 꼭 읽어보렵니다.》라고 이야기할 때에는 너무 당황하여 나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나는 그를 바래우며 낮은 목소리로 《시간이 아까운데 그 책을 제발 읽지 말아주십시오.》라고 간청하듯 이야기하였다.

그로부터 얼마간 시일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어느 한 행사장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였다. 그는 나를 보자 환한 미소를 짓고 다가왔다.

《김선생님, 나에게 보내주신 수기집을 감동깊게 보았습니다.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마음속에 인생의 본보기로 새겨집니다.》

바쁜 시간을 내여 변변치 못한 책을 읽어준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과분한 칭찬까지 하여주니 나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는 수기의 내용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였다.

《수기들중에 <정월대보름달>을 읽느라니 고광인동지의 결혼식날 선생님이 한 축사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오래전의 그 일을 그가 잊지 않고있었다는것이 놀라왔다.

2001년 2월 8일 고광인동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어린 사랑의 결혼식상을 받아안게 되였다.

그날 내가 축사를 하였다. 나는 그때 우리들은 창문없는 먹방에서 수십년동안 정월대보름달을 보지 못해서 그런지 로총각들이 많았는데 고동지가 정월대보름달을 보더니 오늘은 결혼식을 한다고 서두를 떼고 신랑, 신부는 생활을 시처럼 아름답게 가꾸어 후세의 사람들에게 사랑의 노래로 남겨줄것을 부탁한다고 말하였다. 나도 잊을번 한 이야기였는데 그는 깊이 새겨두고있었다.

《선생님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우리들을 위하는 마음이 마디마디에 슴배인 그 일군의 말이였다.

그만이 아니였다. 우리들의 생활상편의를 위해 자주 찾아오는 일군들을 대할 때면 그 겸손함과 사려깊은 마음에 늘 머리가 숙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우리를 만나면 늘 먼저 인사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되는 경우에는 우리가 먼저 수저를 든 다음에야 수저를 들군 하였다.

그들은 늘 우리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었다.

남조선사회에서라면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 거기서는 상급이 상대가 년령상 아래이든 우이든 관계없이 턱짓으로 가리키며 반말을 하는것이 보통이였다. 그쯤해야 자기 몸값이 오르는거라고 생각하는 저급한 심리의 표현이였다. 또 하급자들의 가장 좋은 술안주는 상급을 비난하는것이였다.

그러다보니 사회에 단합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기관이나 단체도 모두 리합집산의 허줄한 무리에 불과하였다.

나는 우리 일군들의 모습에서 우리 조국의 일심단결의 비결에 대하여 생각해보군 한다. 지금 온 세계가 우리의 일심단결을 원자탄이나 수소폭탄보다도 위력한 최강의 무기라고 말하고있다. 나는 우리의 일심단결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키워주신 우리 일군들의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에 의해 더욱 공고해지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국의 품에 안긴 후 10년동안 나는 우리 일군들의 모습을 보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혁명의 천하지대본은 일심단결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깊이 새겨보게 되였다.

동지애로 시작된 우리 혁명을 동지애로 이끌어가시려는것은 우리 장군님의 뜻이다.

어느해 당창건기념일 김일성광장에서 있은 평양시 청년학생들의 홰불시위행사때 나는 도도히 굽이쳐가는 동지애의 글발을 바라보며 우리의 일심단결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동지애의 사상에 의해 저 불의 바다처럼 꺼버릴수도 막을수도 없는 위대한 힘이라는것을 절감하였다.

언제나 병사들과 인민들을 찾아가시고 그들을 나의 병사, 나의 동지라고 불러주시며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동지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오늘 온 나라의 가풍이 되였다.

며칠전에도 처음 보는 한 젊은 일군이 우리에게로 왔었다.

《오래 기다리시지 않았습니까?》

그 젊은 일군의 첫인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그 다정하고 진정에 넘쳐있는 목소리는 조국에 온 후 우리를 처음 맞아주던 그 일군의 목소리를 그대로 련상시키는것이였다.

《선생님들, 어서 앞서십시오. 장군님께서 사랑하시고 내세워주시는 선생님들이 응당 앞에 서셔야 합니다.》

그 일군의 목소리를 오늘은 젊은 일군들의 다정한 목소리에서 다시 듣고있다. 언제나 우리들의 뒤에 자기를 세우는 그들.

나는 마음속진정으로 자주 우리를 찾아오는 일군들, 경애하는 장군님 가까이에서 일하면서 사업작풍도 품성도 동지애의 화신이신 우리 장군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참다운 일군들의 모습앞에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고싶다.

그리고 이제는 나라를 위해 별로 할 일도 없는 우리들을 위해 이처럼 일군들을 보내주시며 친어버이심정으로 돌보아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사랑에 백발의 머리를 깊이 숙여 큰절을 올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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