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축 복 아

 

우리들이 조국의 품에 안겨 두해째 되는 7월 어느날 리재룡동지의 가정에 큰 경사가 났다. 어제날 남조선의 감옥에서 영원한 총각으로 세상을 하직할번 했던 그의 가정에 이날 새 생명이 태여났던것이다. 이것은 그만의 기쁨이 아니였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 아니 온 나라 인민들이 수십년 옥중고초를 불굴의 신념과 의지로 이겨내고 조국의 품에 안긴 비전향장기수들속에 첫 아기가 태여났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에 설레이였다.

우리는 그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했으면 좋을지 몰라 그저 벙글벙글 웃고 떠들며 리재룡동지부부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였다. 하지만 더욱 큰 경사는 다음에 일어났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태여난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시였던것이다.

《온 나라 인민들의 축복속에 태여난 애기이름을 축복이라고 지어줍시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8년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강산은 변해도 그날의 감격은 오늘도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정을 더욱 뜨겁게 해주고있다.

누구나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마련이다. 이름에는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들의 간절한 소원이 깃든다. 그래서 이름처럼 산다는 말도 있는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가 신분에 의해 결정되던 봉건시대에나 망국민의 수치를 안고 살아야 했던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 이 나라 백성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 험난한 세월을 살아가는 자식의 가긍한 모습은 부모의 가슴에 맺힌 아픔이고 슬픔이였으며 이지러진 삶을 사는 자식은 부모의 근심이였다.

이름에는 시대의 정서가 반영되기마련이다. 바우니, 몽득이니 하고 마구 지어버린 이름아닌 이름으로 불리워지던 버림받은 천덕꾸러기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녀인들의 운명은 더욱 비참한것이였다. 녀화란 말이 있어 아침에 일찍 길에 나서 녀자를 만나는것을 꺼리였으며 녀필종부라고 녀자들은 자기를 한 남자의 부속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여 부모들은 딸을 낳으면 서운히 여기며 이름조차 지어주려 하지 않았던것이다. 민족수난의 력사속에서 이 나라 딸들의 이름은 매 가정의 불행의 대명사처럼 되였다. 그러다보니 이름으로 보는 녀성의 력사는 서러움의 력사였다. 하지만 오늘 우리 후대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의 품속에서 아름다운 미래의 주인공들로 태여나 만복을 받아안으며 행복하게 자라나고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름 지어주신 축복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만이 받아안은 축복이 아니였다. 온 나라 인민이 받아안은 축복이였다.

축복이 아버지 리재룡동지는 그날 울고 또 울었다. 인생 황혼기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이름을 가진 딸을 받아안은 그날은 정말 축복받은 날이였다.

그의 인생에 세번째로 축복받은 날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남조선에서 어려서부터 칠성판을 등에 진 소년어부였던 그가 표류도중 공화국의 따뜻한 품에 안기였던것이 첫 축복이였다. 두번째 축복은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동지적사랑과 혁명적의리에 의해 또다시 조국의 품에 안긴것이였다. 늙은 총각이였던 그가 가정을 이루고 축복이의 아버지로 된것은 인생에 세번째로 받아안는 희한한 축복이였다.

한 시인은 시 《6. 15옥동녀》에서 축복을 6. 15의 은혜로 이 땅에 태여난 아기라고 노래하였다.

우리는 축복을 《6. 15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6. 15가 있어 축복이도 있다는 뜻이다.

축복은 우리 인민뿐아니라 온 세계가 다 아는 이 나라의 딸이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을 담아, 사랑을 담아 지어주신 이름그대로 축복은 이 세상 만복을 다 받아안으며 무럭무럭 자라나고있다.

젖살이 보동보동 오른 볼에 보조개를 지으며 재롱을 부리던 축복이는 어느덧 예쁜 소녀로 자라났다. 그애는 김정숙탁아소와 창광유치원을 거쳐 지난해 창전소학교에 입학하였다.

2009년 4월 1일 창전소학교에 입학하는 날 축복이는 아침일찍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학교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에 꽃다발을 드리였다. 리재룡동지는 어린시절 남조선에서 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였다.

개학식에서 축복이는 입학생들을 대표하여 토론했는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아버지처럼 경애하는 장군님께 충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의다지였다.

축복이는 벌써 소학교 2학년생이 되였다.

옛날부터 자식이 자라는것을 보면 자신이 늙었음을 알게 된다던 말뜻이 이제야 리해되는것 같다.

조국의 품에 안긴지 벌써 10년이 되였다는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축복이가 벌써 소학교 2학년생이라니 별수없이 그 10년세월을 인정해야 할것 같다.

축복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있다.

축복이는 유치원때부터 글을 읽고 쓰기도 했다.

유치원 낮은반때 축복은 일기장에 《나는 오늘 선생님과 함께 우리 말 공부를 하였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큰 사랑을 안겨주시던 대원수님은 영원히 우리 어린이들과 함께 계십니다. 김정일원수님은 대원수님과 꼭같으십니다.

원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고운 옷과 꽃과자, 꽃사탕이랑 많이 보내주시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모두가 무럭무럭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보내주신것입니다.

나는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원수님께서 바라시는대로 우리 말 공부와 셈세기공부를 잘해서 아버지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썼다.

얼마나 글을 곱게 잘 썼는지 나는 놀랐다.

2008년 생일을 맞이하여 축복은 경애하는 아버지장군님께 편지를 올리였다.

 

보고싶은 아버지장군님께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장군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창광유치원 높은반에 다니는 리축복입니다.

이제 몇밤만 더 자면 아버지장군님께서 내 이름을 지어주신 날입니다.

한밤 두밤 손꼽아 기다리며 아버지장군님이 너무도 보고파서 태여나 첫 편지를 씁니다.

내가 편지를 쓴다고 하니까 엄마랑 아빠랑 네가 정말 컸구나 하면서 나를 꼭 안고 자꾸만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편지를 쓰는데 엄마랑 아빠랑 왜 울가?

너무너무 고마우면 눈물이 나는것 같습니다.

아버지장군님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유치원에서 콩우유랑 맛있는 간식도 많이 먹고 키도 크고 몸도 뚱뚱해졌습니다.

이제는 편지도 척척 잘 씁니다.

또 9. 9절명절날에는 노래를 부르면서 피아노독주까지 합니다.

그래서 우리 유치원에는 내가 탄 빨간 별이 많습니다.

내 빨간 별이랑 피아노타는거랑 아버지장군님께 다 보여드리고싶습니다.

아버지장군님.

나는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나는 앞으로 글짓기랑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우리 아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버지장군님!

밥도 많이많이 잡수시고 잠도 꼭꼭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장군님 꼭 건강하십시오.

       주체97(2008)년 7월 6일

             리축복 올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령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축복이의 편지를 보아주시고 사랑의 친필을 보내주시였다.

《2008. 7. 23 김정일》

이 소식이 전해지자 축복은 물론 우리 비전향장기수들모두가 눈시울을 적시였다.

축복은 우리 비전향장기수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 존재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축복이에게 피아노를 보내주시였다. 지금 그는 평양학생소년궁전 피아노소조에서 음악적재능을 꽃피워가고있다.

축복은 노래를 부르기 좋아한다. 리재룡동지의 집에 놀러 가면 축복은 《큰아버지, 제가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하고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부른다. 도무지 어린이답지 않은 그 의젓한 모습을 나는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군 한다.

공화국창건 60돐기념일때 우리 비전향장기수들과 가족들은 전국유치원어린이들의 예술소조종합공연에 초청받았었다.

초대석에 앉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공화국의 품속에서 자라난 유치원어린이들의 뛰여난 재능과 높은 예술적기량에 감탄하였다.

공연 마지막장의 무대가 열리였을 때였다.

축복이가 사뿐히 걸어나와 얼마전에 아버지장군님께 올린 편지를 랑송하였다.

《아버지장군님! 밥도 많이많이 잡수시고 잠도 꼭꼭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장군님 꼭 건강하십시오.》라는 편지의 마지막구절을 또릿또릿한 맑은 음성으로 랑송할 때 여기저기서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철창속에서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았던 우리들이 어린 소녀의 그 한마디에 왈칵 눈물의 보를 터뜨리고말았다. 장군님의 건강은 축복의 바람이자 우리 비전향장기수모두의 간절한 소원이였던것이다.

편지를 랑송한 축복은 단정한 걸음으로 피아노앞에 가앉아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축복의 피아노반주에 맞추어 아이들이 노래를 합창하였다.

2절이 끝났을 때 축복은 합창단앞으로 걸어나와 《세상에 부럼없어라》 3절을 선창하였다.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공연이 끝나자 관중들은 무대우에 올라가 축복이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축복이는 꽃속에 파묻혔다.

세계적인 인기가수라도 그런 축하를 받을것 같지 않다.

나는 무대에 뛰여올라가 축복을 품에 안고 《경애하는 장군님,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소리높이 웨치고싶었다. 축복이가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른데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축복이는 세상에 태여나서부터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익혀왔다.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는 노래였던것이다.

소년고아로서 10대초부터 고기잡이배를 타야 했던 리재룡동지가 공화국의 품에 안겨 처음 배운 노래가 이 노래였다. 그를 구원한 해병들은 고기비린내 역하게 나는 옷을 입은 더벅머리소년을 자기 친동생처럼 돌보아주었다. 소년이 난생처음 받아보는 사람대접이였다. 그때 병사들은 노래를 배워주었다. 소년은 세상에 부럼없이 자라는 공화국북반부 소년들의 행복한 생활모습이 비낀 그 노래를 가슴속깊이 새겨두었고 입버릇처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후 그의 생활은 곧 그 노래의 가사처럼 흘렀다.

그는 남조선의 옥중에서도 이 노래를 부르며 조국을 그리였고 출소후 《한총련》집회때에도 이 노래를 불렀다.

하여 남조선에서는 리재룡동지라면 《세상에 부럼없어라》로 통하게 되였다.

아버지가 처음 부르던 노래를 오늘은 딸 축복이가 부른다. 축복의 이름이 사람들속에 널리 불리워지고 그애가 만사람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절로 즐거워지군 한다.

하루는 고향에서 친척 한사람이 왔는데 마침 리재룡동지가 딸의 손목을 잡고 우리 집에 들어왔었다. 그때 그 친척은 그애가 축복이라는것을 알고 몹시 기뻐하며 나에게 축복이와 사진 한장 찍고싶다고 하였다. 그는 그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고향사람들에게 자랑하겠다고 하며 가지고 갔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그 사진을 본 많은 사람들이 이게 진짜 축복이가 아닌것 같다고들 하여 하마트면 언쟁이 일어날번 했다고 하는것이였다.

어느 명절때 그 사람은 또다시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는 다시한번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이미 들은 소리가 있는지라 빙긋 웃으며 축복이를 데려오게 하였다. 이번에는 사진을 크게 해서 보내주었다.

얼마후 그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그 사진을 멋진 큰 액틀에 넣고 걸어놓았더니 《진짜 축복이 맞아?》 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진짜 축복이구나.》 하며 그와 축복이 함께 찍은 사진을 부럽게 바라본다고 하는것이였다.

축복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꼭 전해달라는 부탁까지 왔다.

비전향장기수들의 상봉모임 및 예술소품공연이 있을 때 축복이도 함께 가는 경우가 드문하다.

구장군 룡등, 룡수탄광 탄부들과의 상봉모임 및 예술소품공연때 축복이도 함께 갔다.

예술소품공연때 축복이가 《탄부아저씨들, 축복이 인사드립니다.》라고 하며 허리숙여 인사하자 관중석에서는 박수소리와 함께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터져올랐다.

축복이가 부모들과 함께 《축복받은 나의 삶》을 부르자 관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재청도 하고 꽃다발을 들고 무대우에 뛰여오르기도 하였다.

어떤 괴짜같은 사람은 축복이를 목마태우고 무대우에서 한참이나 빙글빙글 돌았다.

축복은 지정곡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불렀다.

노래제목처럼 축복은 세상에 부럼없는 아이였다.

축복은 그날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썼다.

 

7월 9일 목요일 개임

나는 오늘 할아버지들과 함께 룡등탄광에 갔다.

상봉모임이 끝나고 예술소품공연때 탄부아저씨들앞에서 노래 《축복받은 나의 삶》을 부르고 《탄부아저씨들, 석탄을 더 많이 캐주세요. 그래서 아버지장군님께 꼭 기쁨을 드려주세요.》 하고 이야기했다.

탄부아저씨들이 달려와 나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번쩍 들어올렸다.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앞으로도 노래를 잘하여 강성대국건설에 떨쳐나선 아빠, 엄마들을 고무해주겠다고 결심하였다.

얼마나 대견하고 기특한 아이인가. 속은 벌써 다 자란 어른이다. 축복은 강성대국건설에 노래로 이바지하고있다.

아이들이 크는것을 보면 제 나이 먹는것을 안다지만 우리들은 축복이의 웃는 모습을 보며 나날이 젊어지고있다. 나는 귀여운 우리의 6. 15복동이를 볼 때마다 고목과도 같은 우리 인생에 새 생명의 축복을 안겨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그리며 삼가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고 또 드린다.

그리고 축복이에게 말한다.

축복아, 더 활짝 웃어다오. 마음껏 더 아름답게 노래 불러다오. 우리는 너의 그 웃음속에서 내 조국의 미래를 본다. 너의 운명을, 세상에 부럼없는 너의 행복한 미래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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