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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푸른 하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국과 민족을 떠나서 인간의 참된 삶이란 있을수 없으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떠난 개인의 운명이란 있을수 없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가없이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분계선을 넘어 꿈속에서도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긴 때로부터 10년세월이 흘러갔다. 나는 자주 모란봉에 오르군 한다. 을밀대며 최승대, 모란봉의 아름다운 봉우리들에 오르느라면 새파란 하늘이 금시 나를 향해 다가오는듯싶다. 옥중의 수십년세월 얼마나 그리웠던 푸르른 내 조국의 하늘인가. 기나긴 옥살이나날 살아서 저 푸른 하늘을 마음껏 볼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처럼 오르고싶던 모란봉에서 평양의 푸른 하늘을 마음껏 바라보는 꿈아닌 꿈속을 헤매이고있다. 그 하늘을 행복에 겨워 바라보다가도 문득 아득한 저 멀리에서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부르며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던 동지들의 웨침소리가 울려오는듯싶어 금시 눈시울이 후더워진다. 감옥에서는 악착스레 막아버린 창문때문에 볼수 없는 상상속의 푸른 하늘에 고향하늘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을 실어보았다면 눈이 부시도록 파란 평양의 하늘에서는 무궁할 우리의 미래가 바라보이는듯싶어 가슴이 환희로 뒤설레인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태여나 첫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언제나 푸른 하늘을 머리우에 이고 산다. 하지만 누구나 그 푸른 하늘의 의미를 다 알고 산다고 말할수는 없다. 나 역시 좋은 시절에는 조국의 하늘이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조국을 마음의 기둥으로 삼고 투쟁해온 시련의 나날에 나는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이 있어 우리의 생도 있음을 뼈에 사무치게 깨달았다. 하여 조국에 돌아온 후 우리 인민이 즐겨부르는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들을 때면 그 시절의 자신이 돌이켜지군 한다.
민들레 곱게 피는 고향의 언덕에 하얀 연을 띄우며 뛰놀던 그 시절 아 철없이 바라본 푸른 저 하늘이 내 조국의 자랑인줄 어이 몰랐던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수십년의 인생체험을 통하여 푸른 저 하늘이 어떻게 조국의 자랑으로 되는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사람들이다. 바깥세상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바라보이는것이 하늘이지만 옥살이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그립기만 한것이 하늘이였다. 전향강요의 육체적고문과 정신적고문속에서도 이제 이것이 끝나면 푸른 하늘을 보리라고 생각하며 죽음을 이겨온 우리들이였다. 푸른 하늘을 바라볼수 있는 운동시간을 기다리며 무덤속같은 고독을 달래고 하늘을 바라보는 그 짧으나짧은 시간마저 빼앗기지 않으려고 목숨을 내대는 싸움을 하여야 하였다. 기아에 허덕이던 나에게 누군가가 4등식콩보리밥과 푸른 하늘중에 어느것을 택하겠는가고 물었다면 나는 서슴없이 푸른 하늘이라고 대답했을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보던 그 하늘은 3메터 높이의 콩크리트담벽으로 막힌 폭이 좁은 독거운동장(서로 접촉하지 못하게 칸칸이 막아 외통길로 된 곳)에서 기껏 머리를 젖히고서야 거무죽죽한 벽사이로 바라볼수 있는 뭉청 잘라진 토막난 하늘이였다. 하늘마저 담벽에 갇힌 옥중에서 그래도 그 한쪼박의 푸르름만이 이 가슴에 자유로운 삶에 대한 한가닥 꿈을 불러주고있었다. 1990년대초에 대전감옥에서 광주감옥으로 이감된 후 운동장에 서서 멀리로나마 무등산을 볼수 있었던것이 나의 34년 옥살이중에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우리는 무등산의 색갈이 변하는것을 보고 계절의 변화를 알아보군 하였다. 그런데 그것도 늘 볼수 있는것은 아니였다. 무등산봉우리는 계속 구름에 가리워있어 1년치고 볼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날이 좋아 산너머의 푸른 하늘이 보일 때면 넋을 잃고 바라보며 평양하늘을 그려보군 하였다. 그런데 운동시간은 너무도 짧아 《운동 그만, 입방!》 하는 간수의 째지는듯 한 악청에 모처럼 가슴가득 차오르던 정서는 이내 산산이 깨여지군 하였다. 그런 날이면 맑게 개인 가을날 동무들과 함께 찾군 하던 대성산식물원의 코스모스꽃 활짝 핀 오솔길이 애틋하게 그려졌다. 또 파란 봄하늘이 펼쳐진 고향의 뒤동산에 올라 누나와 함께 나물도 뜯고 진달래꽃도 꺾으며 노래부르던 옛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군 하였다. 조국의 푸른 하늘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나의 머리속에 제일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는것은 1971년 대구감옥에서 알게 되였던 김세진동지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동지는 오래동안 조국통일운동을 하다가 부인과 대학에 다니던 아들 그리고 학교선생을 하던 딸을 포함하여 온 가족과 함께 체포되여 옥살이를 하고있었다. 나와 알게 되였을 때 김동지는 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사형수감방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고있었다. 드디여 사형집행의 날이 왔다. 아침일찍 청소부들이 《넥타이공장》(사형장)을 청소하느라 분주히 돌아쳤다. 우리들은 오랜 감옥생활의 경험으로 어느날 누가 교수대에 오르게 되는가 하는것을 예민하게 감각하군 하였다. 감방안의 수감자들은 모두 눈감고 조용히 앉아 밖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대구감옥 사형장건물안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꼭대기에 자그마한 창문이 한개 있었는데 그 아래쪽에는 폭이 좁은 책상과 허줄한 의자가 놓여있었다. 가운데의자에는 의례히 그러하듯 사형집행관인 감옥소장이 앉고 량옆에는 사형집행감독자인 검사와 감옥 부소장, 사형집행후 죽음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과장 그리고 목사가 앉아있었다. 왼쪽벽에는 때묻은 올가미가 흔들거리는 교수대가 있었다. 여기로 손에 수갑을 찬 사형수인 김세진동지가 당당한 자세로 걸어들어왔다. 흔히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반정신이 나가 허둥인다지만 그는 너무도 태연한 자세로 교수대를 향해 걸어갔다. 사형집행관은 사형수에게 재심신청(사형판결이 부당하다는 의견서)이 기각되였음을 알렸다. 다음 사형수의 사진과 본인을 대조해본 후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서있던 김세진동지는 머리를 건뜻 쳐들며 《죽기전에 푸른 하늘을 보고싶다.》고 말하였다. 사형수의 너무도 뜻밖의 대답에 교형리들은 자기들의 귀를 의심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최후의 소원치고는 너무도 소박하고 감상적인것으로 느껴지는것이였다. 한참이나 쑥덕공론을 한 사형집행관놈은 《사형집행규정에 사형수의 머리에 보자기를 씌우게 되여있으므로 하늘을 볼수 없다.》 하고 떠듬떠듬 뇌까렸다. 그러는 놈들을 향해 김동지는 웨치듯 말하였다. 《왜 볼수 없단 말이냐. 마지막소원도 안들어주면서 이런 놀음은 왜 벌리는거냐.》 그의 목소리는 준절했다. 《나는 비록 죽지만 내 조국의 하늘은 언제나 푸를것이다. 그리고 저 푸른 하늘을 두동강 낼수 없듯이 분렬된 이 땅은 꼭 하나가 될것이다. 나에겐 통일의 그날 저 푸른 하늘아래서 우리 동포형제가 서로서로 끌어안고 춤을 추는 모습이 환히 안겨온다.》 김동지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당황한 사형집행관놈은 교형리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손짓을 하였다. 사형집행을 서두르라는것이였다. 김세진동지는 마지막순간에 사형장건물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목청껏 웨치였다. 《김일성장군 만세! 내 조국의 푸른 하늘이여, 영원하라!》 조국에 드리는 전사의 마지막인사였다. 혁명가의 고결한 최후였다. 남조선에 고향을 둔 그를 어느 한 중앙기관의 정무원으로 키워주시고 살뜰히 보살펴준 그 사랑의 품에서 불의와 타협을 모르고 신념과 의리를 지켜 목숨도 서슴없이 내대는 혁명가로 자라난 그는 생명의 마지막순간 조국의 하늘을 마음속에 품고갔다. 위인을 모신 우리 조국이 세세년년 무궁번영하기를 바라며… 감옥에는 수많은 옥중일화들이 있다. 사형수들의 최후진술, 최후순간에 대한 이야기도 허다하게 전해져온다. 어떤 일반범사형수는 최후시각에 《고기국에 흰쌀밥을 실컷 먹고싶다.》고 하였고 담배를 몹시 좋아하는 폭력배출신의 살인범은 《마지막으로 담배 한대 피워보고싶다.》고 하였다지만 우리 통일애국렬사들은 생명의 마지막순간에도 조국의 푸른 하늘을 그려보며 위대한 수령님 만세, 조국통일 만세를 소리높이 부르며 갔다. 남조선에 있을 때 0. 75평 독감방에서 코스모스꽃 활짝 핀 대성산식물원의 오솔길을 그려보던 내가 얼마전 옛시절의 동창들과 함께 대성산식물원에 모여앉아 학창시절을 뜨겁게 추억하였다. 모두 조국해방전쟁의 준엄한 나날 인민군대에 탄원하였던 전쟁로병들이다. 서로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10대소년시절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애썼으나 홍안의 옛 모습은 찾을길이 없었다. 우리는 식물원의 아름다운 꽃과 진기한 식물, 맑고 깨끗한 공기에 대한 찬사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도 나의 시선은 맑게 개인 푸른 하늘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그러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벗들에게 나는 내 나라의 하늘은 바라볼수록 생각이 깊어지는 하늘이라고 하면서 김세진동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나의 벗들은 새삼스레 조국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국위해 한목숨 서슴없이 바친 렬사들의 넋이 깃든 하늘을 바라보며 그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누군가가 선창을 뗀 노래가 합창으로 번져갔다. 우리모두는 어깨를 겯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의 노래소리는 가없이 창창 열린 하늘로 끝없이 메아리쳐갔다. 노래를 부르는 나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고인다. 인생말년에 그렇게도 보고싶던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다시 볼수 있도록 크나큰 사랑으로 품어주신 우리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이 사무쳐온다. 장군님의 사랑의 품을 떠나 우리 인민이 어찌 이처럼 맑고 푸르른 하늘아래서 노래부르며 살수 있었을것인가. 김동지가 최후의 시각에 그려본 푸른 하늘, 그것은 조국의 모습이였으며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자애로운 품이였다. 최후의 시각에마저 끝내 그리운 푸른 하늘에 대한 소원을 풀지 못한채 떠나간 김동지의 몫까지 담아 나는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이 노래 부르며 나는 위대한 덕망과 사랑의 화신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을 떠난 개인의 운명이란 있을수 없음을 다시금 새삼스럽게 생각해보았다. 그 품이 있기에 지난날 천대받고 멸시받던 근로인민의 아들딸들이 오늘은 김일성상계관인으로, 원사, 교수, 박사로 삶을 빛내이고 한뉘 감옥에서 늙어온 나도 조국통일상수상자로, 공화국영웅으로 떠받들리우며 행복을 누리는것 아니랴.
이 세상 그 어디나 하늘은 있어도 너보다 푸른 하늘 어디 가 찾으랴 아 은혜론 해와 별 찬란히 빛나는 내 나라의 정든 하늘 안고 살리라
우리의 운명도 미래도 다 어려있는 내 나라의 푸른 하늘, 우리의 장군님 선군의 보검으로 지켜가시기에 더더욱 푸르른 저 하늘로 한생을 끝까지 조국위해 바쳐갈 마음을 싣고 노래는 끝없이 메아리쳐갔다. 오늘도 날은 쾌청하게 개이여 나는 서둘러 모란봉으로 향한다.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다. 이제 을밀대에 올라서면 맑고 푸른 평양하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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