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실화소설
추당섬의 꽃
허 문 길
우리 세대는 분렬시대에 태여났다. 분렬시대에 자라났다.
우리 세대는 태여날 때부터 통일의 노래를 자장가처럼 들어왔다. 평생토록 그 노래를 목메게 불러온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통일이란 무엇이기에 고향집마냥 따스한 정감의 시내처럼 불리우다가도 순간에 노호하는 바다처럼 격랑을 일으켜 가슴을 끓게 하느냐.
통일, 통일, 조용히 불러본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불리워지지 않는다.
눈시울이 젖어들고 주먹이 틀어잡힌다. 가슴에 용암이 솟구치고 젖어들던 눈굽에 불이 인다.
통일! 통일!
다시 불러본다. 목메여 부르짖는다.
통일이여 너는 무엇이더냐.
너는 과연 무엇이기에 우리 겨레 60년이 지나도록 그 열망속에 뜻을 모으고 피를 끓이고 세대를 이어가며 쓰러지며 숨지면서도 통일만세를 부르는것이냐!
너 무엇이기에 7천만의 심장에 비애와 환희, 사랑과 증오, 분노와 감격의 극에서 극에로 휘몰아치는 열파를 일으키며 너를 불러오는 길이라면 목숨도 서슴지 않는것이냐!
나는 이제 한 녀인의 가슴에 서리고 맺힌 분렬의 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저 한다.
혹자들은 이 글을 보면서 이렇게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무엇때문에 하필이면 기쁨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슬픈 사연을 펼쳐놓는가.
그러면 나는 그네들에게 말해주고저 한다. 분렬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통일이란 말이 가당할소냐. 분렬의 한이 없다면 통일운동이 애당초 있을수 있다더냐. 분렬의 슬픔을 에돌아서야 통일문학이 의미가 있을가. 아파도 숨차도 우리는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는 분렬이 토해놓은 아픔과 한을 절대로 덮어두어서는 안된다.
아, 통일! 통일이란 무엇이더냐. 통일이란 과연 무엇이더냐.
×
올해 추석이였다.
나는 멀리 북변의 동해가에 있는 고향마을을 찾았다. 려장을 풀어놓기 바쁘게 선친들의 묘소를 찾아가 인사를 올린 다음 고개 몇을 넘어 잊을수 없는 학창시절의 한 스승의 묘소를 찾았다.
동해 수평선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도롱봉이라는 자그마한 봉우리기슭이였다.
산기슭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계절의 바뀌움에 도전이나 하려는듯 푸르청청한 기운을 뻗치고있다. 하지만 사시나무며 단풍나무며 백양나무의 넓은 잎새들은 찾아든 계절을 마중하듯 빨갛고 노랗게 단장을 하고 훈풍에 살랑거린다. 어데선가 풍겨오는 들크무레한 돌배향기는 고향땅이 뿜어올리는 가을향취런가. 이따금 재빛산토끼들이 숲속에서 뛰여나와 쫑긋 귀쪽을 세우고 까만 눈알을 때룩거리다가는 잡관목이 뒤엉킨 숲새로 사뿐사뿐 뛰여가 숨고 머리우에서는 산새들이 지절대며 도회지에서 온 낯설은 나그네를 반겨준다.
고향에 올적마다 찾아오는 곳이라 나는 어렵지 않게 숲속길을 더듬어 선생님의 묘소에 이르렀다. 여러 사람들이 다녀간듯 알뜰히 다듬어진 봉분은 울긋불긋 꽃속에 정히 묻혀있었다. 한낮의 가을땡볕에 일부 다발들이 시들어져있었다.
나는 시들어버린 꽃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가지고간 향기그윽한 꽃다발을 상돌우에 올려놓았다. 그옆에 한편의 두툼한 소설책을 놓았다.
내가 얼마전에 써낸 장편소설이였다. 어쩌면 봉분의 주인과 엇비슷한 운명의 녀인을 그려낸 책이다. 평양을 떠나올 때 옛 스승의 령전에 바치고싶어 가지고 왔던것이다. 상돌옆에 마치도 영원한 위병마냥 서있는 대리석비의 글발을 입속으로 읽었다.
《이름 리제현
난날 1932년 5월 9일
사망한 날 2000년 5월 30일
묘주 제자일동》
나는 상돌우에 간단히 준비해가지고간 제물을 차려놓고 술도 부었다.
그리고는 고인을 추모하여 경건히 고개를 숙였다.
추석이란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는 명절이라고들 한다. 기다린듯 그리운 모습, 《추당섬의 꽃》의 아릿다운 자태가 눈앞에 삼삼히 떠오른다.
《오, 이게 누구냐?!》
다정한 목소리가 금시 귀전을 쩡 울린다. 인자한 눈길이 나를 어루쓰다듬는듯, 따스한 손이 내 두손을 담쑥 잡아주는듯, 그래서 쩡- 가슴도 울린다.
《선생님!》
나는 세월의 먼 지평선에서 망각의 아지랑이를 헤치고 령롱하게 들려오는 추억의 메아리에 귀를 강구고 오래도록 상돌앞에 굳어져있었다.
…
내가 리제현선생님을 알게 된것은 소학교 4학년에 금방 진급하였던 1958년의 어느 가을날이였다.
그날 우리 집에서는 덕천에서 의사로 있는 삼촌결혼식이 있었다. 삼촌어머니로 될 신부는 지둔지라는 펑퍼짐한 10리 등판너머에 자리잡고있는 동해고급중학교 녀교원이였다.
그런데 이날 나의 관심은 큰상을 받고 얌전하게 앉아있는 삼촌어머니가 아니였다. 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례의바르고 침착하게 자기의 직분을 수행하고있는 둘러리였다. 그 둘러리가 바로 나의 삼촌어머니와 여러해 같은 하숙방에서 지내온 같은 학교의 문학교원 리제현선생님이였다.
내가 둘러리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된 리유가 있었다.
둘러리가 담임하고있는 학급의 반장으로 있는 나의 맏형님이 이미 우리 형제들에게 자기네 담임선생님에 대한 자랑을 하였는데 거기에는 나로서는 두눈이 휘딱해질만 한 감동적인 사연이 있었던것이다.
그 사연을 간단히 적는다면 이러하였다.
선생님의 고향은 추당섬이라는 남해의 어느 한 섬마을이였다. 여름철에는 동백꽃이며 해당화 등 갖가지 꽃속에 섬마을이 묻혀 여간 아름답지 않다고 한다.
이 섬마을에서 태여나 열세살 어린시절부터 나라의 통일을 위해 뛰여다니다가 열일곱살에 그만 미군에게 체포되여 청주에서 옥살이를 하였다고 한다. 사형집행을 며칠 앞두고 때마침 진격하여온 인민군전사의 등에 업히여 감옥문을 나섰고 북녘으로 들어오게 되였다는것이였다.
《이를테면 <추당섬의 꽃>이거던!》
맏형은 마치도 자기 자랑을 하듯 우쭐해서 말끝에는 항상 이렇게 분명 누구에게서 들은 말로 선언하군 하였다.
《추당섬의 꽃!》
열세살 소녀시절에 벌써 통일애국위업에 나섰다니 얼마나 장하고 굉장한 영웅녀걸일가?
열세살을 눈앞에 바라보던 그 시절 나는 맏형의 자랑속에 떠오른 그 신비로운 남도의 녀걸의 모습에 스스로 흥분되여 자신을 비쳐보며 커다란 선망속에 리제현선생님을 그려보군 하였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에서 보니 리제현선생님은 내가 감히 범접을 못할 어마어마한 녀걸이 아니였다. 보통키에 상글상글 곱게 웃는, 얼굴이 말쑥하고 아담하게 생긴 그는 우리 옆집누나같았다.
그날 나는 마음속에 상당한 거인으로 자리잡아온 《추당섬의 꽃》과 말 한마디라도 건늬고싶은 심정을 참을길 없어 괜스레 바질거렸으나 끝내 번거로우면서도 잘 째여있는 촌마을 결혼식장이라 아쉽게도 기회를 만들수 없었다. 그러나 우연이라 할가, 필연이라 할가, 세월이 리제현선생님가까이로 철부지소년을 떠밀어주었다.
그것은 이모저모로 나에게는 행운이였다.
결혼식이 있은지 몇해가 지난 1962년경이라고 생각된다. 그때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지둔지고개너머에 있는 농업기술학교(당시 고급중학교가 국가적조치에 의하여 기술학교로 개편되였다.)에 입학하였는데 신통히도 리제현선생님을 담임으로 모시게 되였던것이다. 게다가 민청초급단체위원장으로 선거되고보니 아침저녁으로 리제현선생님과 만나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나는 어느날 호젓한 자리에서 삼촌어머니와 맏형에 대하여 그리고 삼촌결혼식날에 선생님옆에서 바질거리던 이야기를 하였다.
내 이야기에 《추당섬의 꽃》은 고운 눈에 금방 망울이 빠그라진 해당화같은 웃음꽃을 활짝 피워담고 기뻐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리제현선생님이 자기 고향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그리도 듣고싶어하는 소녀시절의 이야기를 적당한 기회가 생겨도 애써 피하는것이였다.
파편처럼 날아가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한줄에 꿰들고 봐야 맏형이 들려주던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이상스러운것은 내가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대에 나갈 때까지 그냥 하숙방을 지키고있었다는것이였다. 그런데 우연히도 어느해 설날을 앞둔 섣달그믐밤에 그 리유에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
이날 저녁에 나는 담임선생님을 모셔오라는 아버지의 령을 받고 하루밤 선생님을 모실수 있도록 웃방을 정결히 거둔 다음 선생님을 찾아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눈꽃이 희끗희끗 날리고 칼바람이 뼈속에 오싹 스며들었으나 나는 걸음도 가볍게 10리가 되는 등판을 넘어갔다.
하숙에서 독신으로 지내는 선생님을 설명절에 형제가 많은 우리 집에 모시고 함께 즐길 생각을 하니 부모님들이 무등 고맙기도 하였다. 그런데 눈보라가 이는 10리등판을 지나 하숙집의 토방에 오르던 나는 방에서 문득 새여나오는 흐느낌에 발목이 잡혀 선뜻 문을 열수가 없었다.
그것은 분명 우리 담임선생님의 울음소리였다.
(어찌된 일일가? 선생님이… 그것도 섣달그믐날밤에…)
나는 그때까지 늘 선생님의 명랑한 웃음과 맑은 모습에 습관되여왔던지라 처음 들어보는 선생님의 흐느낌에 가슴이 후두둑 떨리여 오도가도 못한채 토방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그날 저녁 방안에서 새여나오던 이야기가 세월이 멀리 지나간 오늘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벌써 몇번째요?
제현선생의 나이가 지금 몇이요. 아직도 분홍치마시절인줄 아오?
고집도 쓸데가 따로 있는게 아니겠소.》
다소 힐난기가 돋힌 간곡한 어조는 분명 교장선생님의 목소리였다.
(무슨 일일가? 왜 교장선생님이 노하셨을가? 그것도 래일이면 설날이 아니야.)
자기 담임선생님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흠잡을데가 없는분이라고 순진한 동심의 세계에서 살던 그 시절에 선생님의 울음소리와 선생님을 책망하는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는 그 진의가 어쨌든 나에게는 뜻밖이였다.
《교장선생님, 저를 위해주시는 선생님의 마음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저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를 용서하여주십시오.》
(용서라니? 그건 무슨 일이야.)
나는 더욱 의아해졌다. 그리고 설전야에 담임선생님을 울리는 교장선생님이 민망스러워졌다.
《음-》
교장선생님의 긴 한숨소리, 성냥을 드르륵 그어대는 소리-
침묵이 무겁게 흐르고있었다. 담배연기를 풀썩풀썩 피워 올리는 교장선생님의 푸수한 얼굴이 금시 보이는듯싶었다.
(왜 모두 저러실가? 참…)
나는 들어서는 안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것 같아 되돌아서고싶었으나 그래도 선생님을 모셔가야 한다는 생각에 오도가도 못한채 그냥 문앞에서 떠날수 없었다.
이윽고 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내가 왜 제현선생의 마음을 모르겠소. 하지만 이것 보우. 이젠 세월이 길게 흘러가지 않았소. 그 사람이 살아있는지조차 선생도 모르고있지 않소. 그사이에 얼마나 복잡다단한 란을 치르었소. 그런데 생사여부도 모르고 세월의 기약도 없이 그 사람을 기다린다는게 너무 허무하지 않소.》
이렇게 이야기하는 교장선생님의 목소리는 무척 갈려있었다. 나도 어린 마음이지만 그 어떤 비상한 예감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찡해졌다. 온몸으로 더운 바람이 훑어오르는듯 하였다.
《그 사람은 살아있을겁니다. 그 사람은 살아서 저를 기다리고있을겁니다. 그 사람은 쉽게 넘어질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 그렇겠지. 제현선생을 마음에 둔 사람이라면야 아무렴 숙맥이겠소. 하지만… 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한들 지금도…》
교장선생님이 시름겹게 띠염띠염 이어가는 소리에 리제현선생님이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듯 다급하게, 그러면서도 고집스럽게 받는것이였다.
《기다릴겁니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제가 마지막길에 오를 때 멀리까지 바래주면서 굳이 언약하였습니다. 우린 10년이고 20년이고 서로서로 기다리겠노라 약속하였습니다. 교장선생님, 저를 용서하여주십시오.
이제 통일이 되면 저도 추당섬으로 돌아가야 되겠는데… 그 사람이 저를 찾아 문득 나타나면… 제가 머리를 얹고있으면… 저는 어찌됩니까?!》
《후! 선생두!… 다들 불덩이같은 사람들이야. 불덩이같은 사람들이야! 통일! 통일!… 어서바삐, 한시바삐 통일이 돼야 하겠는데…
왜 이렇게 통일의 문이 열릴듯말듯 하다가도 자꾸만 멀어져가는지…》
비통하게 그어지는 목소리. 다시 길게 내긋는 교장선생님의 한숨.
이어 간간이 새여나오는 리제현선생님의 흐느낌…
나는 대충 짚이웠다. 어린 마음에도 민족분렬이 가져온 겨레의 비극이 나의 몸에 와닿고 나의 페부에 아프게 자리잡는것이였다. 나는 끓어오르는 비분을 금할수 없었다. 문을 열고 뛰여들어가 리제현선생님의 팔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고싶었다. 그리고 저 하늘에 별처럼 떠올라 온 세상에 대고 외세에 의하여 갈라진 우리 민족이 당하고있는 이 가슴 미여지는 슬픔과 원한을 소리높이 부르짖고싶었다. 이 귀중한 련인들에게 다리를 놓아주자고 호소하고싶었다.
썩 뒤날에야 나는 이날의 사연을 석연하게 알수 있었다.
그날 저녁 교장선생님은 리제현선생님의 신랑감으로 나이지긋한 대학졸업생을 물색하여놓고 혼담을 꺼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리제현선생님은 처음에는 좋은 말로, 다음에는 질책하듯이 하는 교장선생님의 곡진한 권고를 끝내 눈물겹게 마다하였다.
그에게는 사춘기시절에 일생을 함께 하기로 언약을 다지였던 애인이 있었던것이다.
1949년 이른 봄철에 그들은 기다리겠다는 언약을 서로의 가슴속에 새겨주고 헤여졌다. 그때로부터 15년이 가까와오는 그때까지 선생님은 언약을 지켜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혼담에 매번 도리질하여왔던것이다.
나는 뒤날에 자주 이날 저녁 선생님들이 하시던 이야기를 되새겨보며 인간사랑의 참의미를 놓고 생각해보군 하였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이더냐.
사랑은 불이라고 한다. 무쇠도 녹이고 천연바위에도 구멍을 낸다고 한다.
사랑은 힘이라고 한다. 뢰성벽력도 휘여잡고 하늘도 움직인다고 한다.
사랑은 지혜라고 한다. 고목에도 꽃을 피워올린다고 한다. 사랑으로 자기 인생을 불태워가는 《추당섬의 꽃》! 휘여들지도 꺾이지도 않는 사랑으로 인생의 쓰고단 고초를 억척으로 이겨가는 녀인.
선생님에게서 님에 대한 사랑은 고향에 대한 사랑이였고 조국에 대한 사랑이였으며 통일에 대한 사랑이였다. 그 사랑에 대한 의지와 신념이 분렬에 대한 저주와 통일에 대한 갈망으로 굳어져 층암절벽에 뿌리내린 락락장송처럼 드팀이 없는것이리라.
리제현선생님의 고결한 사랑찬가와 더불어 통일조국에 대한 나의 신념과 의지도 커지고 다져지고 타올랐다.
통일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그러한 문제가 아니다. 통일은 이 나라 련인들의 사랑이고 이 나라 인민의 아름다움이다.
통일은 우리의 생활이며 우리 겨레의 삶이고 희망이다. 그것은 후손만대에 누려갈 행복이다. 더는 외면해서는 안되는 조선민족의 존재방식이다.
이것은 선생님에게서 물려받은 나의 통일지론이였다.
다음해 나는 군사복무를 위하여 선생님의 슬하를 떠나게 되였다. 나는 그때 코수염도 없는게 선생님의 일신상문제에 끼여드는게 잔망스럽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열백번 다시 재여보았다.
마침내 선생님께 이제는 하숙생활을 그만둬달라고 청을 올리는게 제자의 도리에 어긋날수 없다는나름으로의 판단이 굳어지자 작별의 시각을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학교를 떠나던 날 적당한 기회를 노리며 마음을 도스르고있는데 선생님이 여러밤을 패워 손수 뜨개바느질로 만들고 수까지 정갈하게 놓은 세면도구주머니와 만년필을 내놓으며 이렇게 당부하는것이였다.
《건강해서 복무를 잘하고 돌아와.
그리구 아무 글이라도 많이 읽고 많이 쓰는걸 잊지 말아.
하지만 이 만년필촉이 닳아서 못쓰게 될 때까지 출판사에 글을 보내지 않겠다는것을 약속해줘.》
《선생님, 선생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겠습니다.》
만년필을 나의 웃주머니에 찔러주던 인자한 눈길이 석별의 정을 고즈넉이 담고 이윽토록 나를 지켜보는것이였다.
《그런데 혹 동무가 초소에 서있을 때 통일이 되지 않을가?》
《예?…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불쑥 꺼내놓은 선생님의 심중의 말에 코잔등이 쩌릿해져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뭉클해오르는 격정을 터쳐놓았다.
《그때면 아마도 선생님은 고향으로 가시겠지요?》
나의 소리에 선생님은 잠시 말없이 나의 손목을 꼭 잡는것이였다.
《그래… 그래야 할가보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니깐. 그때면 전라남도앞바다에 있는 추당섬에 와서 나를 찾아요. 해당화가 많아서 <해당화고을>이라고 불리우는 꽃동네야. 다른건 몰라도 감과 대순은 실컷 대접할수 있어요. 우리 동네는 인심이 후하기로 소문이 났어. 마을입구에서 세번째 집이 우리 집이야. 꼭 와요. 내 초청을 잊지 말아요.》
간절한 한가닥의 희망을 안고 그 고운 눈에 희망과 즐거움을 담고 하시는 선생님의 초청에 나는 눈굽이 화끈해올랐다.
쌀알같은것들이 일시에 속눈섭에 맺혔다.
내가 며칠밤 바재이며 준비해왔던 청은 꼭지도 뗄수 없었다. 너무도 절절하고 너무도 아름다운 선생님의 념원과 지향앞에서 내가 제나름으로 옳았다고 생각했던것들은 너무도 보잘것없는것이였다.
두고온 님과 고향을 그리는 그 결곡하고도 정바른 마음에 어찌 재가루를 날릴수 있으랴.
《선생님, 꼭 가겠습니다. 추당섬, 꽃동네, 마을입구에서 세번째 집… 가구말구요.》
나는 목메인 어조로 이렇게 약속하였다.
×
그때로부터 무정한 세월은 하염없이 년륜을 감고 덧감아갔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통일의 날만은 의연히 그냥 뒤전으로 밀려났다.
나는 군사복무에 이어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중앙기관에서 사업하게 되였다.
어느해 봄날 출장길에 고향에 들린적이 있었다.
그때까지도 리제현선생님은 여전히 내가 다니던 기술학교(이후로는 고등중학교, 현재는 중학교로 바뀌여졌다.)에서 교편을 잡고 독신생활을 하고있었다.
나를 반기는 선생님의 얼굴은 어제날처럼 상냥하고 밝은 미소로 빛나고 목소리는 사뭇 유정하고 정겨웠다. 달라진게 있다면 하숙방이 두칸짜리 살림집으로 늘어난것과 선생님의 옷차림새였다. 그전에는 자주빛저고리에 담록색치마를 즐겨입군 하였는데 색갈이 바뀌여져 밤빛치마에 진회색의 저고리를 입고계시였다.
나는 그 옷차림에서 이전보다 훨씬 무게있고 준수해보이면서도 젊음이 비꼈던 생기가 사그라진 모습을 보는것 같아 어쩐지 서글퍼졌다.
옷의 바뀌여진 색갈이 선생님에게서 청순하고 희망차던 청춘시절을 앗아간듯싶었던것이다.
《아유, 온다는 소식두 없이. 평양에서 일을 한다는 소식을 종종 듣군 해.》
《선생님, 세월이란 살같다고들 하더니 참 빠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칠칠하던 머리에도 흰오리가 생겨났군요.》
《호호… 자기도 이젠 서른줄을 썩 넘어가지 않나. 나도 이제 쉰고개를 쳐다보거던.》
선생님은 여전히 나를 살뜰하게 불러주며 내 손목을 꼭 잡고 반가와 어쩔줄 몰라하였다.
우리는 밤깊도록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학교시절에 선생님을 애먹이던 이야기며 내가 서툴게 쓴 작문을 선생님이 학급마다 돌아가며 읽어주고는 우리 학교에서 큰 작가가 나올것이라고 해서 우쭐해졌던 이야기… 가지많게 뻗어가는 이야기에 취해들던 나는 벽시계가 한점을 때릴 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선생님의 두손목을 감아쥐고 오래전부터 여쭈려고 하다가 이런저런 리유로 그냥 묻어두고온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때에도 존경하여마지 않는 스승의 일신상문제라 좀 서슴어지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이제는 두루두루 체험을 쌓아 인생에 대한 일가견도 가지고있고 또 사회적인간의 무게도 가지였다는것으로 자기를 고무하면서 사제간이라는 간격을 뛰여넘어서고야말았다.
《선생님, 저에게는 오래전부터, 정확히 말씀드리면 기술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그믐밤부터 선생님께 꼭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기술학교때?… 그게 무슨 부탁인데… 꽤나 력사가 있구만. 어서 말해요.》
리제현선생님은 별로 심각하게 말을 떼는 나를 호기심 짙은 눈으로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면서도 예나제나 상대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따스한 미소로써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다른게 아니구… 그 그믐밤에 저는 설을 함께 즐기자고 선생님을 모셔오라는 아버지의 분부를 받고 지둔지등판을 넘었댔습니다.》
《그래?… 아유, 그런 일이 있었구만. 동무네 부모님들은 무척 인정이 깊고 다심한분들이였지.》
리제현선생님은 아득히 멀어져간 옛시절에로 돌아간듯 즐겁고도 감회깊은 어조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왜 그 얘기를 이제야 하누? 그리구 왜 그날 저녁에 나를 만나지 않구 그냥 돌아갔나. 참, 동무네 집에 가서 어머님이 빚어주는 송편을 먹는건데. 섣달그믐에 10리등판을 넘어왔다가 혼자 가자니 오죽했겠나.
내가 그날 누구네 송년모임에 갔던 모양이지.》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날 밤에 하숙집에 계시였습니다.》
《그래? 그런데?… 문을 벌컥 열고… 동무야 언제나 그렇게 들어서군 했지.》
그 시절을 더듬는 선생님의 어조는 더없이 명랑하였다.
나도 속이 훈훈해왔다.
《교장선생님도 계시더군요. 저는 그날 밤 저 토방에서 문을 열려다가 선생님이 흐느껴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차마 들어설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아유, 저걸 어쩌나. 내가 교장선생님앞에서 흐느끼더라구. 왜 울었을가?》
리제현선생님의 얼굴에 차츰 미소가 엷어지더니 두눈이 잔조롬해졌다.
옛시절에로 추억의 사색을 모아가는 선생님의 희맑은 얼굴에 점차 수집음과 애모, 괴로움과 비애의 복잡한 빛갈이 언뜻언뜻 바뀌여 스쳐갔다.
잠시후 선생님은 고개를 깊이 끄덕이더니 사려깊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생각나는구만. 김동호교장선생님이 찾아오셨지. 좋은 분이시였어. 군인민위원회에 소환되여 교육부장으로 사업하시다가 몇해전에 돌아가셨지.
음… 생각이 나요. 그날 내가 좀 울었던것 같애.… 그래서 그 추운 그믐날에 지둔지등판을 넘어왔다가 혼자서 돌아갔구만.》
선생님은 자못 랑패스러운듯 그러면서도 서글프게 옛적 일을 더듬으며 혀를 찼다.
《선생님, 그때로부터 선생님이 그리워질 때면 늘 그날 저녁이 생각나군 하였습니다. 두분이 나누시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원… 그게 무슨 마음쓸 얘기거리가 된다구. 다른 얘기나 들려줘… 참, 문학은 걷어치운게 아니겠지. 난 그래두 동무에게 크게 기대했는데…》
리제현선생님은 말머리를 돌려 나한테로 고삐를 슬쩍 넘겨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더는 기회를 놓치고싶지 않았다.
《아, 물론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이제는 그때로부터 또 그만한 긴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이제라도 고쳐 생각해보시고 결단을 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힘들게 떼놓은 말이지만 오랜 세월 묻어둔 이야기라 그리 힘들지 않게 슬슬 풀리는게 다행스러웠다.
《결단?… 그러면?…》
《이제라도 가정을 무었으면 합니다. 선생님이 승낙만 하시면 저희들이 나서겠습니다. 모두들 걱정합니다.》
나는 당장 이자리에서 답변을 듣고싶어 급한 어조로 받아넘겼다.
고개만 끄덕여주어도, 아니 반승낙정도라도 주시였으면…
사실 리제현선생님에게 가정을 안겨드리는 문제로 하여 숱한 사람들이 걱정하고 마음을 모아온다. 어린시절부터 나라를 위하여 산전수전을 다 겪어왔고 북녘땅에 들어와서는 아이들에게 한생을 꼬바기 바쳐온 선생님을 행복하게 해드릴수 있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고싶어하는것이 우리 고향사람들의 하나같은 심정이였다. 가까이로는 리에서 민주선전실장사업을 하시던 나의 아버지도 선생님께 알맞는 똑똑하고 수준있고 인물체격이 그쯘한 배필을 수소문하느라고 늘쌍 왼심을 썼다. 덕천에 계시는 삼촌어머니와 대학을 졸업하고 기계공장지배인으로 사업하는 큰형도 그리고 선생님의 슬하에서 키도 마음도 부쩍 커온 우리네 동창들도 모처럼 모여앉으면 언제나 리제현선생님을 화제에 떠올렸고 그 뒤끝에는 여적 홀로 사는 선생님의 여생을 행복하게 해드릴 의논이 뒤따르군 했다.
《그래?… 말만 들어도 모두들 고마와. 난 정말이지 북녘땅에 와서 고마운분들속에서 마음 편히 살아왔어. 난 행복해. 뭐 행복이라는게 별거일가?》
선생님은 아직도 처녀시절의 고운 빛갈이 그대로 남아있는 반듯한 얼굴에 다소 열적은 미소를 담으며 진심으로 고마와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엷은 미소에 가리워진 선생님의 애절한 비애와 한을 또 스쳐넘길수 없어 슬며시 화제를 넘기려는 선생님을 향하여 저도 모르게 격렬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행복하다구요? 마음 편히 살아오셨다구요?! 저희들도 이제는 선생님의 마음속고뇌를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선생님, 결심을 바꾸어주십시오.》
《결심을 바꾸라고?… 그날 밤에 다 들었다면서…》
《선생님! 그게 어느 고망년적 일입니까?》
《그러면… 난 그 사람을 버리는게 아닐가?》
《참, 선생님두… 이거야… 좀 다른 문제가 아닙니까. 분렬로 생겨난 피할수 없는…》
《아니, 아니야. 난 그럴수 없어. 십년이 지나구 또 십년이 지나도… 그 사람은 나의 희망이구 내 한생의 빛이야. 그걸 내버리면 난 뭐가 되지? 살아도 죽은 넋이고, 행복에 대한 꿈도 꺼지구말지. 그리고… 통일에 대한 희망마저 포기하는거야. 그러면 이 제현에게 뭐가 남을가.
난 그럴수 없어. 목숨보다 중한게 언약이지. 내 나이에 사랑의 언약이라는 말이 우습기는 해도 어찌겠나. 난 죽어도 그걸 베고 죽을테야.》
이렇게 분명하게 이야기하며 창밖을 보는 선생님의 모습은 더없이 추연하였다.
나는 금시 눈앞이 뽀얗게 흐려져서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가슴속에서는 딱히 무엇이라고 말할수 없는 의분과 안타까운 심회가 꽉 차들어 선생님의 가슴에 이마를 박고 엉엉 소리내여 울고싶던 기술학교시절로 되돌아간듯싶었다.
다시 이어지는 선생님의 쓸쓸한 이야기가 머리우에서 우뢰처럼 가슴을 쾅쾅 흔들었다.
《중앙기관에서 일을 본다니 고향에 들리기가 쉽지 않겠지. 지레 부탁을 해둘가.
이제 만약 통일이 되기 전에 내가 죽게 되거들랑 날 대신해서 내 고향을 찾아주렴.》
《선생님, 그런 말씀이라면 거두십시오!》
나는 그 어떤 가슴터지는 오열에 휩싸여 부르짖었다.
《선생님! 그래서는 안됩니다. 선생님을, 저기서는 그분이 선생님을 기다리고계시겠는데… 선생님은 어찌하시든지 통일을 기다려온 그 소원을 풀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내 손목을 잡고있는 손에 힘을 주는것이였다. 속눈섭이 바르르 떨고 눈가에 맑은 방울이 맺혀올랐다.
《고마와. 난 죽을 고비도 넘어보았고 뼈를 바스는 고통도 당해본 사람이야. 하지만 솔직한 말로 통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이 고통에는 비길바가 아니였어. 이 고통도 이겨가야지. 그날이 오겠지. 오구말구. 난 믿어. 그리구 꼭 그날을 보구파.
그래도 사람의 일을 어떻게 알겠나.
그런즉 옛 담임의 부탁을 아직은 실없는 소리라 생각하구 들어두어요. 추당섬에 가면 내가 한생토록 통일을 기다렸고, 그 사람을 기다렸다구 말해줘요.
그리구 이 북녘의 바다가 산촌마을에 숱한 아들딸들과 부모님들이 생겨나 나를 딸처럼 누나처럼 어머니처럼 귀하게 아껴주었다구 전해주렴.》
《선생님!》
나는 끝내 선생님의 두손에 얼굴을 묻고 후더운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무슨 말을 더하랴. 무슨 위안이 더 필요하랴.
평생토록 분렬의 한을 안고 통일의 희망속에 허위단심 살아가시는 선생님, 통일을 믿어마지 않기에 옛 애인과의 상봉도 굳이 믿어마지 않으신 선생님.
어떻게 선생님의 마음속에서 옛 애인의 모습을, 옛 애인의 숨결과 목소리를 지우게 할수 있으랴.
어찌 선생님에게서 애오라지 가슴가득히 채우고있는 통일에 대한 애끊는 갈망과 신념을 가셔버리게 할수 있으랴. 어이 행복에 대한 선생님의 순결무구한 주장과 꿈을 바꾸게 할수 있으랴. 선생님에게 있어서 애인과의 만남은 곧 통일이요, 통일은 곧 만남이기에 그를 버림은 나라의 통일에 대한 배신이다. 민족의 재결합을 바라는 7천만의 의지에 대한 반역이요, 통일된 조국앞에서 범죄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소녀적부터 몸바쳐왔던 성스러운 위업에 대한 무시이다.
아! 아! 아름다와라! 고결하여라! 숭엄하여라!
나는 마치도 인간아름다움의 아득한 상상봉에서 울리는 고결한 인간찬가를 듣는듯싶었다.
인간은 어찌되여 이렇게도 아름다울수 있으랴. 인간은 어찌되여 이렇게도 숭고할수 있을가.
그렇다! 그것은 인간아름다움의 눈부신 정화였다. 인간의 고귀함의 극치였다. 인간이 도달할수 있는 사랑의 절정에 오른 한 녀인의 만길 호수같은 심장속에서 분출된 사랑의 찬가, 인간찬가였다.
이 인간찬가의 무궁함을 짓밟으려는것은 어떤 리유든지 최대의 불륜이며 인간의 성스러운 의미를 말살하는 도전이다. 분렬과 통일이라는 정치의 개념으로 거창하게만 느껴지던 의미가 이 순간 나의 페부에 너무도 가까이 그리고 너무도 쉽고 절절하게 사무쳐들었다.
통일이란 이 나라 련인들의 사랑을 지켜주는것이다!
분렬이란 이 나라 련인들의 사랑을 깨치는것이다!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아나선 놈이 바로 외세와 외세의 장단에 춤을 추는 매국역적들이다.
나는 비로소 선생님의 넋속에 억척보루마냥 솟아있는 필생의 표대를 똑똑히 깨달았다.
나는 눈물속에 선생님의 두손목을 부여잡고 작별을 고하였다.
(선생님의 그 불같은 마음이 꺼지지 않는 한 님과의 상봉은 기필코 이루어질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시여 그날을 마중하시라. 아, 선생님이시여!)
×
애끊는 희망과 그리움속에서 세월은 50년이나 선생님의 평생에 길게 가로놓여있었건만 우리 제자들은 끝내 님과의 상봉의 오작교만은 놓아드리지 못하였다.
2000년에 선생님은 소녀시절의 옥살이에서 생겨난 심장탈의 후유증으로 신고하다가 통일의 꿈을 안은채 세상을 떠났던것이다.
선생님이 키워낸 수많은 제자들과 학부형들이 찾아와 선생님과 눈물속에 영결하였다.
유품을 정리할 때 우리는 처음으로 다섯권으로 된 두툼한 선생님의 일기장을 보았다.
한 녀인의 다난다사한 운명사가 응축되여있는 소중한 유산이였다. 거기에는 대학졸업증을 받아안았을 때며 첫 교단에 오르던 날이며 제자들의 편지를 받았을 때며 인민교원의 영예로운 명예칭호를 받을 때며 인생의 아름다운 나날들이 격조높은 시구절로 엮어져있었다.
그리고 해마다 찾아오는 생일마다, 명절마다 내 고향의 마음씨 무던한 학부형들이 저저마다 차려주던 성의고인 식탁이며 자그마한 하숙집에서 그칠길 없던 제자들의 웃음소리, 노래소리, 글읽는 소리가 랑랑히 울리고있었다.
한마디로 일기장은 남해의 고운 딸을 받아들여 인민의 사랑받는 녀인으로, 인민교원으로 내세워준 은혜로운 품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와 고마움의 송가였다.
한생의 날과 달을 값지게 엮어온 한 녀인의 행복한 생활이 비낀 아름다운 인간서사시였고 빛나는 삶이 뿌리내리고 꽃핀 북녘땅에 대한 찬가였다.
하지만 일기장의 글귀마다에는 우리 제자들의 가슴을 허비는 아픔도 있었으니 그것은 자신이 받아안은 소중한 행복과 삶의 가치를 남녘의 애인과 친지들과 함께 나누지 못하는 비분이였고 두고온 사람들에 대한 애모쁜 그리움이였다. 그리고 이 땅의 수백수천만 사람들에게 뼈아픈 재앙을 끼쳐놓은 외세와 반통일분자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저주였다.
일기장의 페지들에는 피와 눈물과 환희가 교차된 우리 조국의 준엄한 력사가 흐르고있었다.
분렬로 터갈라진 민족의 아픔과 그 아픔을 가셔내기 위한 내 나라, 내 민족의 몸부림이 있었다.
애인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는 애바른 속삭임들, 두고온 혈붙이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들수 없었던 무수한 밤과 밤들…
삼천리강산에 통일의 환희가 폭발적으로 치달아오르게 한 7. 4공동성명과 4. 19인민봉기며 남녘의 리재민들에게 실려가던 비단천과 옥백미며 남녘에서 찾아온 통일의 사절들, 남녘의 거리와 포도들에, 백두와 한나의 마루에 드높이 울려퍼지던 통일의 함성… 누가 말했던가. 열렬한 사랑은 불타는 증오를 낳는다고.
옳다. 사랑과 증오-그것은 하나의 심장속에서 응축되고 타오르는 두갈래의 감정표현이다.
눈앞에 온듯싶던 그 통일의 기대가 열풍을 맞는 얼음벽처럼 와그르 무너져내릴 때의 쓰라린 좌절감과 그로부터 솟구쳐오른 녀인의 피타는 노성.
《저 통일의 원쑤들을, 저 오랑캐들과 역적도배들을 어쩌면 좋담! 저놈들의 정수리에 불을 내려다오! 이 땅에 또다시 통일성전의 폭풍이 몰아친다면 서슴지 않으리라, 내 한몸그대로 번개처럼 타오르리라. 나의 제자들모두를 통일성업의 투사들로 키워내리라!…》
끝없이 이어져간 분노와 증오의 웨침… 일기장은 그대로 사랑과 증오의 련시였다. 사랑이 열화같기에 증오 또한 격렬한 생의 서사시였다.
우리들은 분렬의 아픔을 순간순간마다에 씹으며 한생토록 통일의 열망속에 살아온 선생님의 생전의 희로애락이 담겨져있는 그 일기장을 의논끝에 선생님의 머리맡에 소중히 묻었다. 그리고 기어이 조국을 통일하고 선생님을 앞세우고 이 일기장을 남해의 추당섬의 사람들에게 전해줄것을 약속드리였다.
대리석비문을 새길 때 제자들이 저마다 묘주로 자기 이름을 올려달라고 떼를 써서 결국 《묘주 제자일동》이라는 조상전래에 류례가 없는 글발이 추모비에 새겨지게 되였다.
뒤날 나는 어린시절부터 소망하였고 나의 귀중한 은사도 기대속에 축복해주었던 작가의 인생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순서가 바뀌는 이야기 같은데 나는 이미전에 선생님이 주신 만년필에 두번이나 닳아버린 만년필촉을 갈아대고서야 출판사에 글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두개의 만년필촉을 닳아빠지게 하는데 아마도 10년세월은 걸렸던듯싶다.
사람들은 나더러 통일작가라고 불러주기도 한다. 내가 쓴 소설들이 거의다 통일위업에 바쳐진 의로운 삶을 다루었다는 의미가 있을것이다.
나는 그러한 부름말이 싫지 않다. 오히려 우리 시대의 가장 절박한 민족사적과제를 끌어안고 모대기는 한 문필가에 대한 례찬으로 고맙게 받아들이군 한다.
옛 스승앞에서 마음속으로 다졌던 약속이 나를 통일위업을 자기 인생으로, 거기에 이바지할 소설창작에로 떠밀어주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통일주제의 새 작품을 시작할 때면 리제현선생님을 생각하군 한다.
지난해 새 장편소설을 쓸 때에도 주인공의 성격형상은 물론 작품의 갈피갈피에 선생님의 상냥한 웃음과 유정한 음성, 애절하고도 웅심깊은 통일의지와 신념, 행복에 대한 선생님의 고결한 주장, 통일찬가로 엮어진 님과의 련정의 노래가 은은한 메아리로 음향을 날리도록 왼심을 썼다.
나에게는 삶의 모퉁이들에서 이러저러하게 짊어진 인생의 채무중에서 미처 갚지 못한것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제일 무겁게 자리잡고있는것은 리제현선생님의 부탁이다. 그 부탁과 함께 선생님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그렇다! 선생님은 우리곁을 떠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 한적한 산기슭이 아니라 우리 제자들의 가슴속에 묻혀있다. 선생님의 넋은 우리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오늘도 우리모두를 통일의 한길로 떠밀며 살아 빛나고있다.
마침내 겨레의 통일숙원, 님과의 상봉을 그리도 애타게 기다리던 우리 선생님의 평생의 뜻이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에 비껴 북남삼천리에 피여나고 그 광휘로운 빛을 따라 7천만이 분렬의 마지막아성을 짓부시며 통일의 날을 향하여 도도히 굽이쳐가고있다.
나는 굳이 믿는다. 선생님이 그리도 일편단심 갈망하여오던 통일의 그날이 오리라는것을!
통일운동은 시대의 타종에 떠밀려 전진하는 우리 민족력사의 수레바퀴이다.
그 힘 꺾을자 있으랴.
한바퀴… 또 한바퀴…
역풍을 맞받아 피어린 자욱자욱을 새겨가는 길은 험준하여도 승리의 종착점은 기필코 오리라.
그날이면 나는 리제현선생님의 생전의 부탁대로 남행렬차에 몸을 싣고 전라도앞바다의 추당섬으로 향할것이다. 갖가지 꽃에 묻힌 꽃동네, 마을입구로부터 세번째 되는 집…
비록 거기서 선생님은 마중해주시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좋다. 선생님의 고향사람들에게 님을 기다려 평생을 홀로 살아온 《추당섬의 꽃》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선생님의 그날의 부탁을 한구절도 빠뜨림이 없이 그대로 전해줄것이다. 인심후하기로 소문났다는 추당섬사람들에게서 감과 대순나물대접도 받고싶다.
그날을 그려보느라면 나의 심경도 더없이 숙연하면서도 초조하여진다. 나의 머리에도 세월의 흐름이 남긴 흔적이런듯 흰서리가 오리오리 내리기 시작한것이다. 결단코 통일을 한으로 남긴채 떠나간 전세대들처럼 우리도 쓰라린 비분을 씹다가 분렬된 겨레의 슬픔을 그대로 후대들에게 넘겨준채 그렇게 이 땅을 하직할수는 없다.
묻노니 이 땅 삼천리에 리제현선생님과 같이 통일을 마음속으로 부르고부르다가 그 한을 풀지 못한채 그 한을 고이 묻어안고 숨진 련인들은 그 얼마이려나. 그 한을 안고 아직도 통일의 그날을 애타게 부르는이들은 또 얼마랴.
일찌기 1970년대에 남녘에 고향을 둔 우리의 한 시인이 피타게 불렀던 시 한구절이 생각난다.
내 스물이 되기 전에 떠나온 고향집을
서른이 넘어서도 들어서지 못한다면
…
지구의 수억만년 변함없는 공전이여
우리는 장수의 노한 칼을 뽑아들고
너를 멈춰세우리라
분렬된 민족의 비통한 울분을 세상을 향해 뢰성처럼 터뜨리던 그 시인도 이제는 서른도 두고패 넘어 여든을 바라보는 인생의 황혼기에 살고있다.
사람들이여, 그대가 정히 이 나라에 태를 묻고 이 나라의 공기와 물을 마시며 자라난 이 나라의 씨가 분명하다면 이네들의 꿈과 한을 욕되게 하는자들을 절대로 용서치 마시라. 분렬의 한을 풀지 못한채 스러져간 우리의 마음착한 련인들의 이름으로, 통일의 그날을 학수고대하는 7천만의 이름으로 그런자들에게 철추만을 안겨주라.
그렇게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렇게도 고결한 인생을 지르밟는 민족의 역도들은 이 땅의 족보에서, 아니 지구의 지경밖으로 영원히 추방하라.
반세기를 넘어오며 순간순간을 분렬의 한, 통일의 희망으로 애간장을 태워온 우리의 고결한 련인들을 살아서 만나게 하자!!!
나는 저도 모르게 쇠물처럼 끓어오르는 비분에 잠겨 석양의 빛을 받아 붉은 색조가 어린 대리석비의 글발을 더듬는다.
…
묘주 제자일동
무심히 읽히지 않는 글발에 눈길을 박은채 나는 자기 가슴에 밀물처럼 차드는 시대적사명감, 묘주로서의 의무를 무겁게 느낀다.
진정으로 선생님의 혼백을 지켜주어야 할 묘주라면 봉분이나 다듬고 상돌우에 꽃다발을 드리는것으로 자기 책임을 다한다고 만족할수 있으랴.
통일, 통일된 삼천리를 안아오는것만이 선생님의 평생의 한을 풀어드리는 최선의 의리이고 도덕이고 량심이다.
아, 나도 성스러운 통일위업에 가늘어도 제 목소리 합치리라. 도도히 굽이치는 통일대오에 크지 않아도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리라!
나는 마음속깊이 선생님께 작별인사를 올리였다.
《선생님! 추당섬으로 가는 남행렬차의 기적소리가 6. 15에 떠밀려 가까이에서 들려오고있습니다.
저도 평생을 그 렬차를 밀고가는 한점의 불꽃으로 태워가렵니다. 그날은 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나는 저 멀리 눈부리 아스란하게 뻗어간 동해, 남해로 이어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도롱봉을 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