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아버지의 약속
량 흥 일
《여보 령감, 마늘을 뽑아야지 어델 가시우?》
《날 보구 터밭에 앉아서 매생이 노질이나 하라는거요?》
《내 좀 말했수. 그게 령감이 할 임무라구. 여기가 공격출발진지예요.》
《제법이군. 의용군녀병사가 달라! 헌데 내가 직속상관이라는걸 잊었소.》
《이그, 거 그물바줄같이 꺼칠꺼칠한 손을 저리 치우시라구요.》
《바다에 나가보자구 그래. 오늘 뜨랄06호가 출항한다니까.》
《환장한게 아니우? 당장 평양에서 사람이 내려오고 떠나야 할 판에. 바다가 그리도 귀하우?》
《또또, 시앗싸움같은 소리만. 생물 한두름 가져오자구 그래. 성각이 그 사람이 오면 로친네솜씨를 보여야지.》
《에이구, 큰 배 선장을 서른해가 넘도록 했다지만 그 손에 들려온 생물맛을 본 일이 없수다.》
세월이란 참으로 무상하구나. 고향이 지척인 여기 수산사업소에 포연이 배인 군용배낭을 풀어놓은지도 어느덧 마흔일곱해가 지나갔으니…
바다우에서도 전후복구건설의 노래가 힘차게 울렸다. 제1차 5개년계획을 초과완수하고 전후 첫 훈장을 수여받던 감격, 출항과 귀항의 부두가에서 정다운 웃음 한가득 담고 바래주고 맞아주던 안해 한순녀의 아름다운 얼굴도 주름에 묻혀버렸다.
주경필은 바다기슭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골격이 든든한 돛대같은 체구에 입은 옷도 바다바람에 돛폭같이 나붓긴다. 희슥해진 수북한 눈섭밑에 자리잡은 재빛을 띠기 시작한 검은 눈동자에 상념의 안개가 흐른다. 수십년의 해풍은 그의 얼굴을 고동색바위모양으로 만들어놓았다. 주름패인 이마, 우뚝한 코마루와 광대뼈, 푹 꺼진 볼과 검고 흰 수염발에 자리잡은 꾹 다물린 입술…
인생은 세월을 거역하지 못한다.
피가 동이채로 끓던 30대, 바다의 범같던 기상이 백발속에 아쉬운 미련마냥 남아 자기를 돌아볼뿐이다.
바다를 보지 않으며 살자고 마음먹었던 그다. 가슴속에 원한을,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긴 그 바다에서 한생을 살아온 주경필이고보면 소금물에 상처를 잠그고 모진 아픔을 이겨온것이다.
그의 뇌리에서 뢰성이 울부짖는다. 눈앞으로 검푸른 파도가 먹이를 덮치는 사나운 새의 날개처럼 밀려든다. 우뢰가 하늘과 바다를 위압한다. 창끝같은 번개는 섬광을 번뜩이며 바다기슭 절벽을 세차게 들부셔댄다. 우르릉-꽝꽝- 대자연의 광란적인 칼부림에 땅도 바다도 몸부림친다.
주경필의 시야를 괴물같은 파도가 꽉 뒤덮는다. 그속에서 울려나오는 절망적인 목소리…
《여보-》
《경필아-》
《아버지-》
우뢰와 번개소리사이로 기관총이 울부짖는다.
《저 귀축같은 미국놈들이 바다에도 38°선을 그어놓은줄은 몰랐구나! …》
《여보! 해연이를… 부탁해요. …》
《얘야, 매사에 조심하거라. 아버지도 이젠 늙은 몸이 아니냐. … 에구, 날씨는 왜 이리도 스산한지.》
을씨년스러운 하늘을 바라보며 하는 어머니의 걱정어린 당부였다.
《어머니, 념려마세요. 해연이만 잘 봐주세요. 래일저녁에는 돌아와요.》
어머니의 잔등에 업힌 귀여운 딸애의 모습, 젖빛도는 보동보동한 볼에 입을 맞추던 안해의 모습.
《해연아, 엄마는 아빠와 함께 맛있는걸 가지러 간다. 그러니 그동안 할머니와 함께 울지 말고있어요.》
버들개지같은 오동통한 자그마한 손에 골뱅이를 쥐여주는 안해의 모습, 철없는 딸애는 그걸 입에 넣고 빨다말고 제 엄마를 향해 볼우물을 지으며 귀엽게 해쭉 웃는다.
이제야 갓 한살을 넘긴 어린 손녀애를 업은 어머니가 서있는 부두가가 점점 멀어지더니 아예 어둠속에 묻히고말았다.
어둠속을 퉁탕퉁탕거리며 25마력짜리 낡은 목선은 가난한 한가정의 운명을 걸머지고 천천히 잔파도를 헤가르며 나아갔다. 강화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서해어장인 연평도일대엔 수면을 덮은 크고작은 기관선들과 범선들에서 비치는 카바이드등으로 끓고있었다. 밤하늘은 구름에 가리워 별빛한점 없었다. 그물을 놓고 한숨 돌리며 담배를 붙여무는데 때아닌 남서풍이 일기 시작하였다. 밀물이 시작되면서 파도는 더욱더 사나워져 금시 배는 뒤집힐것만 같았다. 그속에서 자망을 걷는다는것은 목숨을 내대는 일이였다. 그렇다고 외상으로 당긴 그물을 버리자니 살점을 저미는것만 같았다.
주경필의 눈앞엔 뒤산처럼 높아지는 빚더미가 밟혀왔다. 하여 그는 목숨을 내대고서라도 그물을 거두려고 하였다.
《너 죽자고 그러니? 어서 발동을 걸고 연안쪽으로 대피해야지 그렇지 않다간 모두 물귀신이 되고말아!》
추상같이 울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경필은 정신을 버쩍 차렸다. 그렇다! 조금만 지체하면 세사람의 운명은 담보할수가 없다. 그런데 이때 요진통에 해금통이 깨여지는 격으로 닻줄이 세찬 파도에 못이겨 끊어지고말았다. 배는 가랑잎처럼 정처없이 밀려가기 시작하였다. 열대림의 코브라처럼 대가리를 쳐들고 멀리서부터 달려드는 사나운 파도는 작은 기관선을 마구 덮쳤다. 이 무지한 광란속에서 비록 발동은 걸리였으나 추진기는 허공에서 공회전을 하며 도저히 배를 전진시키지 못했다. 가까운 곳에 있던 범선들과 자그마한 기관선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먹물을 뿌린듯 한 무연한 공간에서 울리는 사람들의 아우성소리, 그 소리를 짓누르는 사나운 파도소리, 사정없이 밀려드는 집채같은 파도에 밀리여 향방없이 배는 밀려가고있었다.
《얘야, 아무래도 배가 해주쪽으로 밀려가는것 같다. 지금 밀물이 한창이니 그쪽으로 가는수밖엔 없구나.》
다른 배들도 침로를 그 방향으로 정했다. 대양우에 반점같이 떠있는 배들은 파도에 밀리여 정신없이 떠가고있었다. 사자밥을 진 인생들은 숨을 죽이고 부디 자기들의 생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고 또 빌고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 시간은 얼마나 흘렀는지.
갑자기 그들앞에 검은 형체가 나타나면서 시퍼런 탐조등 불줄기가 뿜어져나왔다. 미군경비함이였다.
(이젠 살았구나.)
경필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옛말에 날아가던 새도 사람에게 의탁하려고 하면 사람이 그걸 불쌍하게 여긴다고 했으니 이승과 저승의 문어구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를 그저 지나치지야 않을테지.
절망에 질렸던 사람들은 저마끔 거대한 미군경비함에 구원의 눈길을 던졌다.
《침로를 바꾸라. 여기는 해상분계선이다. 조금만 넘어가면 북조선해상지역이다. 빨리 침로를 바꾸라!》
구원의 사다리가 드리워지기를 바랐건만 뜻밖에 이런 서툰 조선말소리가 울려나올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아연하여 카바이드등을 흔들며 목청을 돋구는 사람들.
지옥의 대문으로 밀어던지는 악마의 목청은 확성기를 타고 그 소리를 짓누른다.
《배를 남쪽으로 돌리지 않으면 사격하겠다. 어서 돌리라!》
진득진득한 어둠속에서 방향을 분간할수 없고 또 물우에 뜬 쪽박같은 처지에 있는 배를 어디로 어떻게 돌린단 말인가.
때를 기다린듯 함선에서는 수많은 불줄기들이 뿜어져나왔다. 무지막지한 총탄들은 다 낡은 목선들을 채구멍처럼 만들어놓았다. 여기저기에서 물이 쓸어들어왔다. 사방에서 사람들의 아우성소리와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물이 들어온다!》
아버지의 웨침소리는 벌써 절망에 가까웠다. 그러나 미군함선에서 쏟아져나오는 불줄기들은 사정이 없었다. 갑자기 안해의 비명소리가 울려왔다.
《여보!-》
배의 앞코숭이에 앉아 파도를 이겨내던 안해의 앞가슴을 총탄이 헤집어놓았던것이다. 경필은 안해한테로 달려가려고 몸을 날렸으나 파도에 기우뚱거리는 배에 의해 허양 바다우에 떨어졌다.
《여보- 옥선이…》
그는 굴러내린 목통을 붙잡고 물속으로 가라앉는 배로 헤염쳐가려고 하였으나 허사였다. 다행히도 아버지가 안해의 곁으로 기여갔다.
《며늘애야. 정신을…》
아버지의 목소리도 도중에서 끊어졌다. 미국놈들의 함선에서 날아가는 불줄기가 그곳으로 집중되였던것이다.
《아버지-》
《경필아-》
《여보, 해연이를…》
주경필이 정신을 차린것은 공화국북반부가 아니라 해주만 앞에 있는 소수압도라는 섬이였다. 그 지옥속에서 구원을 애걸하던 숱한 어부들중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겨우 일곱명이였다.
아, 그 악귀같은 미국놈들이 내 나라를 두동강내더니 바다에까지 38°선을 그어놓고 이렇게 사람사냥을 할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주경필은 가슴이 찢어지다못해 당장 죽고싶은 생각뿐이였다. 산처럼 높아지는 빚더미도 빚더미지만 하루밤에 아버지와 안해를 잃었으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 어떻게 어머니앞에, 엄마를 기다리는 그 귀여운 까만 눈동자앞에 나선단 말인가. 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어민들에게 사격한 배는 인천항에 기지를 두고있는 미군경비함이였다. 그놈들은 주경필을 비롯한 꽃게잡이에 나왔던 어민들이 파도에 밀려가면 해주만으로 들어선다는것을 알았다. 하지만 남조선인민들을 사람값에도 치지 않는 그놈들은 풍랑에 밀리는 그들을 좋은 야간사격목표로 정하고 38°선이요, 해상경계선이요 하면서 사격을 가하였던것이다.
그 원한의 분계선이 생겨 이렇게 생주검을 당하는 사람들의 피는 남녘땅을 덮었다.…
물기어린 눈길을 들어 추연히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서있는 주경필의 뇌리에서는 그냥 뢰성이 울부짖었다.
조국해방전쟁… 인민군대의 진격에 패주하면서 미국놈들의 비행기가 쏘아대는 기총탄과 폭탄들, 매캐한 연기와 치솟는 화염속에 휘말린 집안으로 경필은 뛰여들었다. 어린 딸애를 몸으로 덮고있는 어머니의 잔등에 난 기총탄의 자욱과 분수처럼 솟구치는 붉은 피, 할머니의 피로 얼굴을 적시고 엄마만 애타게 찾으며 울부짖던 해연의 모습.
《아, 철천지원쑤 미국놈들이 우리 어머니마저 앗아갔구나!》 하고 땅을 치며 황소영각소리를 내지르던 그 시절의 자기 모습…
《해연아, 아빠는 갔다가 인차 온다!》
의용군으로 떠나는 주경필의 목에 꼭 매달려 해연은 발버둥질을 쳤다.
《싫어싫어. 아버지 가지 마. 엄마도 없구 할만도 없는데 나 혼자 무서워. 가지 마. 나 아버지하구 같이 있을래.》
《해연아, 아버진 가야 한단다. 아줌마와 함께 있으렴. 응?》
《싫어. 나 골뱅이 달라는 말 안할게, 아버지 가지마. 응?》
두눈가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하소연하는 어린 해연의 모습은 영영 지울수 없는 모습이였다.
《해연아, 아버진 골뱅이 가지러 가는게 아니란다.》
《그럼, 어데 가나?》
《아버진 이 땅에서 미국놈들을 몰아내려 간단다.》
딸애는 아버지의 말이 리해되지 않는다는듯 함뿍 물먹은 눈으로 경필을 바라보았다.
《그래, 미국놈들만 몰아내면 우리 해연이에게 맛있는거랑, 색동저고리랑 다 생긴단다.
아버지가 올 때에는 양코배기가 없는 땅에서 네가 살게 될게다. 그러니 울지 말고 기다려라. 응?》
마지못해 《응.》 하고 머리를 까딱까딱거리며 눈물을 흘리던 사랑하는 딸 해연이, 살점을 저미는 아픔을 안고 《아버지, 빨리 와야 해.》 하며 떨어지기 아쉬워하는 그애를 이웃아주머니에게 맡기고 돌아서는 주경필의 두눈에서는 피가 흐르고있었다.
아, 해연아.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해라. 허지만 네가 다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를 잃는것과 같은 비극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버지는 이 길을 떠나는것이란다.…
그렇게 떠나온 길이 이제는 50년이라는 세월로 멀어졌다. 아버지를 잃으면 절반고아이고 어머니를 잃으면 완전고아라는 말이 있다지만 해연아, 너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 잃은 고아의 신세이니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느냐.
주경필의 눈가에는 고향의 동구길에서 돌아올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며 눈물을 짓고있을 어린 해연의 모습이 사라지질 않는다.
×
젊은이들과 바다에서 사흘밤을 보낸 주경필은 만선의 기쁨을 안고 포구로 돌아왔다.
《고문선장아바이, 앞서가는 동혁이를 보시라요. 집에서 기다리는 새색시때문에 제정신이 아닙니다.》
주경필은 고무장화발을 철썩거리며 다부진 몸매로 굴러가듯 걸어대는 청년의 어깨를 툭 친다.
《이보라구, 급할 땔수록 슬금슬금 봐가면서…》
《그러문요… 아, 저 친구들이…》
《하하하… 동혁이 알겠지?》
놀림에 든 청년은 오른손으로 뒤통수를 문지르며 멋적게 웃었다.
《아바이, 언제 떠나십니까?》
《슬슬 봐가면서 때가 되면 가야지.》
《알리십시오. 우리 청년동맹에서도 기념품을 준비했답니다.》
《고맙네. 처보구 오금을 박으라구. 배가 돌아올 때에는 포구에 나와있으라구 말이네.》
《창피하다면서…》
《허-어- 그건 속에 없는 소릴세. 배사람이라는게 대가 없다구야.》
주경필이 집마당에 들어서니 토방에 앉아 왕골부채질을 하던 김성각이 벌떡 일어선다.
《이사람 성각이, 왔네그려!》
《형님!…》
전쟁이라는 준엄했던 싸움터에서 우정을 맺은 두사람이 손을 마주잡고 어린애들처럼 빙빙 돌아가는 모습을 보던 한순녀가 벼르고있었는지 물었다.
《여보 령감, 가져오마 한 생물은 어데 있수?》
주경필이 《아뿔싸, 내가 그걸 감감 잊고있었구만.》 하고 무릎을 치자 《서른소리할 때부터 까먹던 버릇을 일흔고개 넘기도록 못 고치니 쯧쯧…》 하며 한순녀가 부엌으로 들어간다.
《허- 내 저 입심에 노상 몸살일세.》
부엌에서 한순녀의 목소리가 날아온다.
《술상이 먼저나요? 밥상이 먼저나요?》
김성각이 목을 뽑으며 호기있게 대답한다.
《형수님, 순서를 삭갈려도 분수가 있지. 그야 응당 술상이지요.》
《에이구, 남정네들은 좋겠수다. 술술 넘어가는건 그리도 좋아들 하시니.》
주경필은 바다바람에 풍화된 바위같은 얼굴을 두손으로 쓸어내며 웃기만 했다.
한순녀가 초물자리를 깐 마루에 술상을 차려놓고 잔에 술을 부었다.
《형님, 난 며칠후에 내려오자구 했는데 아, 글쎄 어제 아침에 중대장이 나타나질 않았겠소.
<하사 김성각, 동문 아직도 대동강에 나가 낚시질을 하면서 제 집 바닥에서 딩굴고있는가. 그래 며칠동안 대동강에 나가지 못하면 동무한테 걸릴 고기들이 다른데로 달아날가봐 걱정이야. 명령을 받은게 언제야?> 하구 을러메는데 이건 꼭 까투리를 본 매였수다. 그래서 천방지축으로 달려왔지요.》
《중대장동진 잘 있나?》
《날이 갈수록 기가 더 펄펄해집니다. 어디서 찾아내고 들춰냈는지 평양서 살고있는 우리 중대출신 여섯명이 명절날마다 그 집에 모여앉군 합니다.》
김성각이 거수경례까지 하고 익살을 부리는통에 한순녀가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웃어댔다.
《중대장동지가 나를 역까지 나와 바랬수다. <성각이, 자네 중대의 막내니 어찌겠나. 어서 가 고집불통 경필이를 데려오게. 하루한시가 급하도록 보구싶어. 내 나이 몇인가, 기다리다 만나지 못하고 덜컥하면 어찌겠나.>
그 말을 들으니 우리모두가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요. 내 딸 해연이도 이제는 쉰하고도 세살은 더 넘겼으니…》라고 말하며 한순녀는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여보, 로친네 우는게 아니요? 허허, 성각이 내 임자 수에 넘어서 미닫이를 사이에 두고 우리 로친과 밤밝힌 일이 생각나나?》
《하하, 기막힌 상봉이였지요.》
《에이구, 그것만은 아직 모르겠수다. 속히웠는지 아니면 같이 짜구서 한 놀음인지.》
한순녀의 대답에 주경필이와 김성각은 목소리를 합쳐 2중창이나 하듯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제대되여 고향하늘이 바라보이는 강령반도에 뿌리박고 어로공으로 일하기 시작한지 세해째 되는 어느날, 평양에서 대학을 다니는 김성각이 찾아왔다. 아무 달, 아무 날에 이 동생이 결혼식을 하니 꼭 와달라는것이였다. 북에 친척도 없는 경필이라 하나밖에 없는 동생잔치야 만사를 제쳐놓고 간다고 장담하였다.
그날이 오자 경필은 큰상에 놓을 꽃게며 회감으로 제격인 넙치(광어)를 한짐 지고 평양으로 올라갔다.
흥부동골안에 있는 자그마한 단층주택에 들어서니 낯익은 성각의 어머니가 버선발로 달려나와 맞아주었다. 헌데 신랑쟁이인 김성각은 없고 별로 집안이 휑뎅그렁해보였다. 전후의 어려운 살림이라 잔치란들 뭐 있으랴만 그래도 친척들이 와있을게 아닌가. 이상하여 묻는 경필에게 어머니는 제 집처럼 마음을 푹 놓고 기다리라고, 성각이가 학교에 갔는데 저녁에 온다고 했다.
날이 어두워 밖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그때에야 마당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성각이 동무들 셋을 데리고 나타났다. 일일이 통성하고 웃고 떠들며 저녁상을 마주했는데 경필이가 가지고온 넙치, 꽃게가 거기에 올라있었다. 손님들앞이라 억지웃음을 지으며 어울렸는데 그들은 다 전쟁에 참가한 제대군인들이였다. 개중에는 첫눈에 띄우는 눈이 억실억실하고 활달해보이는 처녀도 있었는데 그 역시 의용군으로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했다는것이다.
끝없이 퍼내는 이야기… 기쁜것은 그들이 다 성각의 나이또래라 경필을 형님이라 부르며 성각이 못지 않게 자기의 래력을 잘 아는 그것이였다. 밤늦어 다들 헤여져간 다음 처녀만 남아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는데 김성각이 경필이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짜고짜로 《형님, 지금 나이 몇이요?》 하였다.
《왜? 서른하나지.》
《그러니 야단이지요. 형님때문에 난 장가도 못갑니다.》
《허허… 재미있군. 그래, 저 처녀가 색시될 사람인가?》
미닫이로 막힌 부엌쪽에서 달그락소리가 딱 멎었다. 엿듣는 모양이다.
김성각이는 경필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예, 처녀가 어때요. 마음들어요?》
《괜찮아보이는구만. 시원시원하고 잘 생기고 제대병사라지? 직장은 어디구?》
《1병원 간호장이랍니다.》
《직업도 좋구만.》
《그래, 마음에 든다는거지요?》
《난, 저런 처녀가 제수되여준다면 의견이 없네. 찬성이네.》
김성각은 히쭉벌쭉 좋아하였다.
《형님, 그럼 됐수다. 이 동생 장가를 좀 보내주시우.》
《아니, 이건 무슨 홍두깨야? 그래서 내 올라오질 않았나.》
김성각이는 대번에 심각해졌다.
《형님, 서른 넘은 형님이 독신인데 이 동생이 어떻게 먼저 간단 말이요. 조상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요. 이 동생 손해볼셈치구 에, 저 처녀가 마음에 든단 말이지요.》
《뭐, 뭐?》
주경필은 대경실색을 했다. 쪼간이 있었구나. 눈치가 이상하다 했더니. 그동안 편지로, 인편으로 장가권유가 있었다. 물론 그의 사업소에서도 그랬다. 그때마다 경필은 어린 딸 하나 남겨놓고 희생된 안해생각이 가슴에 사무쳐 귀등으로 스쳐버렸다. 삼단같이 풀어진 머리칼사이로 한번 솟구쳤다 사라지던 하얀 얼굴, 《여보-》 실나리같이 끊어지던 마지막 목소리, 아아, 파도소리… 비소리… 총성… 울부짖는 아우성소리…
《난 가겠네.》
주경필이 움쭉 일어섰다.
김성각은 그의 팔을 꽉 잡았다. 그의 입에서는 처음 듣는 맵짠 음성이 튀여나왔다.
《마음대로 하시우. 그러나 도덕은 지켜야 하우. 처녀를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만나보고 거절하든가 리해시키든가, 그게 인간이 아니겠소.》
주경필은 풀썩 주저앉았다.
김성각은 부엌에 내려가 뭔가 수군거리더니 이어 부엌문이 열렸다닫겼다.
《성각동무!》
처녀의 기겁한 부름이 들려왔다. 그다음은 고요한 정적. 어머니는 아까 어느새 나가버린 모양이다. 방 한칸에 잇달린 부엌을 통한 유일한 출입문 하나, 방뒤벽에 유리를 끼운 작은 뙤창-이것이 전부다.
주경필은 그 뙤창너머로 내다보이는 눈내리는 밤전경을 멀거니 바라보고있었다. 어처구니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부엌에서 출입문을 두드리는 소리, 밀었다당겼다 하며 흔드는 소리. 《아이, 정말. 성각동무-》 짜증과 안타까움에 젖은 처녀의 목소리. 밖으로 열쇠를 잠그고 달아난것이다.
아아, 이런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각이 두고보자. 내 너를 그저… 아무리 욕설하고 펄펄 뛰였댔자 소용이 없다. 철창속에 갇힌 호랑이신세다. 고요하다. 야릇하고 긴장한 침묵이 미닫이를 뚫고 오고갔다. 몇시간이나 지났는지. 부엌에서는 숨소리 하나 없다. 경필은 처녀가 쪼그리고 앉아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울음을 삼키고있는것으로 생각되였다. 처녀가 불쌍해보였다. 자정이 되여오는데도 성각이와 어머니는 나타날 기미가 아니다. 평양에 큰집, 작은집, 사촌들이 많다더니 거기 가서 쉬는것이 분명하다. 불쌍한건 외토리 이 경필이와 저 처녀밖엔 더 있는가. 성각인지 《왈칵》인지 너 어디 두고보자.
《처녀동무.》
주경필은 용기를 내여 불렀다. 대답이 없다. 한동안이 지나서 또 불렀다. 역시 응답이 없다. 야릇한 침묵만 괴괴히 흐를뿐…
《응?!》
경필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미닫이를 드르륵 열었다.
부뚜막앞에 무릎을 감싸고 오도카니 앉아있던 처녀가 고개를 힐끗 돌렸다. 전등빛에 처녀의 어글어글한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우는것이 아니라 무슨 명상에 잠겨있던 안색이였다.
《방으로 올라오십시오.》
《괜찮습니다.》
《부엌에서 밤을 샐수야 없질 않습니까?》
《일없습니다. 성각동무의 <환대>가 이게 다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의외로 처녀는 수집음이나 부끄러움은 조금도 없었다. 전쟁의 불길속을 헤쳐온 병사가 아닌가. 처녀는 냉큼 일어나 가마를 들어내고 집게로 구멍탄을 갈아대며 상냥하게 말했다.
《동지, 쉬십시오. 제 걱정은 마시고.》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미닫이를 사이에 두고 점점 허물없이 깊어졌다. 언제부터인지 주경필은 방안웃목에 비스듬히 기대여 앉아있었고 한순녀는 아래목에 얌전히 앉아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그밤은 길었던지 짧았던지…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많이 했던지 허허… 깔깔… 웃기도 했던것 같다. 그 많은 이야기들중에서도 지금까지 머리에 박혀있는 대화는 이런것이였다.
《동무나 나나 다같이 고향이 남쪽이요. 그러니 우리의 책임이 크오.》
《그래요. 나도 해연의 친엄마가 되여 행복하게 살 그날을 위해서 힘껏 일하겠어요.》
날이 밝자 뛰여든 성각이는 반반한 장판바닥을 보고 인상을 찌프렸다가 경필이와 순녀의 표정을 보고는 히쭉거렸다. …
《임자 <왈칵>성미에 걸려 <왈칵잔치>를 했었지. 참, 아름다운 추억이야.》
×
밤이 깊도록 두사람은 지나간 일들을 더듬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속에 잠겨들었다.
《형님, 서울에 나갈 때 영웅메달을 달구 나가시우. 해연이에게는 아버지의 가장 큰 선물로 될게 아니겠소.》
《허허.》
《50년세월이 지나서 아버지와 딸이 상봉한다니 정말 기가 막힌 일이외다.》
《예서 배길로는 한시간도 안걸릴 지척이건만… 해연이가 날 만나면 얼마나 원망하겠나. 알아보기나 하겠는지.》
《피줄이야 어디 가겠소. 중대장은 형님이 올라올 때 나무에 새긴 조선지도를 꼭 가져오게 하라구 신신당부합디다.》
《그걸 여직 잊지 않고있던가?》
《잊다니요. 우리가 자손들한테 진 빚이 거기에 깃들어있수다.》
《그렇지!》
주경필과 김성각은 잊을수 없는 병사시절을 더듬고있었다.
… 김성각이 주경필을 알게 된것은 전쟁이 일어난 이듬해 가을이였다. 척 보는 순간에 벌써 힘꼴이나 꽤 쓸것 같아보이는 커다란 키꼴과 붉고 굵은 힘살들이 불끈거리는 팔뚝, 과묵하면서도 대하기가 퍽 어려워보이게 하는 청동구리빛 얼굴과 푸릿푸릿한 구레나룻, 충혈이 져서 푹 꺼져있는 쌍가풀진 두눈, 좀해선 열릴것 같지 않은 두툼한 입술… 고급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전선으로 달려나온 열여덟살의 자기보다도 여섯살이나 우인 그는 몇달전에 의용군으로 입대하였다고 한다. 자기 책임운전사를 처음에는 어렵게만 생각하였으나 항용 생사를 같이하는 결전장에 나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포화속에서 그들의 우정은 더욱 두터워졌다.
주경필은 원래 배사람이여서 그런지 웬간해서는 말이 없었지만 속은 바다처럼 깊었고 그릇 역시 넓어보였다. 또한 일단 운전대를 잡고 적기들의 폭격속을 뚫고나갈 때면 두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으며 죽음도 서슴지 않았고 생활에서는 방정한데도 있었다. 나이에 비해 퍽 겉늙어보이는 그의 마음은 달아오른 랭각기처럼 훈훈하였고 속은 들여다볼수록 깊이를 알수가 없었다. 해방후부터 입대전까지 인천앞바다에서 25마력짜리 기관을 놓은 배를 타고 살아온 그여서 그런지 기계물계에서는 제 손금처럼 훤했다.
그들사이의 우의는 삶과 죽음의 결전장에서 피여나는 아름다운 꽃을 방불케 하였다.
주경필은 성각에게 차기관에 대해서 까끈한 정을 쏟으며 배워주었다. 김성각은 해방전이나 해방후나 가난의 쪽박을 차고 파도우에 운명을 맡기며 살아오느라 우리 글도 모르고 자라온 주경필에게 우리 글을 배워주었다. 정말이지 그들은 다정한 《친형제》를 방불케 하였다. 주경필은 우리 글을 천천히 받아물었고 김성각은 자동차기술을 흡진기처럼 빨아들이였다. …
밤! 검은 하늘가에는 떼구름이 산봉우리에 걸터앉을듯 배회하고 사위를 에워싸며 칠흑같은 어둠이 음침하게 조여들었다. 번쩍! 조명탄의 눈부신 백광속에 순식간에 통채로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산골짜기, 그 서슬에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위장망을 쓴 포탄수송대의 종대, 새벽에 전선으로 포탄을 운반할 임무를 받은 중대군인들은 모두 운전칸에서 쪽잠에 들어있었다.
선잠에서 깨여난 김성각은 옆자리에 보이질 않는 주경필을 찾았다.
(어데 갔을가?)
눈을 비비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은페부안에서 굵직하면서도 큰 허우대를 구부리고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주경필을 발견했다.
무릎우에 놓인 펼친 학습장크기의 판자, 락심천만한 기색으로 그것을 들여다보는 주경필의 구름낀 얼굴, 이것은 김성각의 마음에 의문의 파도를 몰아왔다.
《경필동지, 뭘합니까?》
그제야 성각을 발견한 주경필은 갈구리같은 손을 목덜미에 가져가며 소년처럼 어색한 웃음을 띠웠다.
《오?! 성각동무구만. 별게 아니야. 그저 장난질을 좀 해보느라구…》
그의 손에 들린 피나무판자에는 뜻밖에도 조선지도가 새겨져있었다.
순간 김성각은 며칠전에 주경필이가 자기에게 공책을 들고 왔던 때가 생각났다.
《경필동지, 모를 글자가 있습니까?》
그러자 경필은 어색한 기색을 지으며 뜨직하니 입을 열였다.
《아니, 그래서가 아니구…》
한참이나 갑자르던 그는 용기를 낸듯 공책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사람, 여기에 우리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좀 그려달라구.》
《예-에?!》
성각은 천만뜻밖의 부탁이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도는 해서 뭘하려고 그럽니까?》
《나야 이 나이되도록 제 나라 글자도 모르며 살아온 놈이 아닌가. …
인민군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제 이름자를 알게 되였고 또 오늘은 우리 글을 읽고 쓰게 되였지. 그런데 난 아직 우리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있네.》
공책에 그려준 조선지도가 오늘은 이렇게 피나무판자우에 새겨지고있는것이다.
판자우에 서툴게 새겨진 우리 나라의 모양새, 만과 반도가 복잡한 서해안지대에 헛칼질로 생긴 흉한 허물, 정말이지 아이들의 장난질이라고 보아야 정확할것 같았다.
《쉽질 않구만. 벌써 세개째나 망쳐놓았어.》
한숨을 푹 내쉰 주경필은 판자를 들어 한쪽구석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는 옆에 놓인 손때로 얼룩진 검은 방수천담배쌈지를 들었다. 그는 굵고 두툼하며 콩알같은 장알들이 다분히 박힌 투박한 손으로 어느새 맵시있는 엄지손가락굵기의 담배를 말아냈다. 희끄무레한 담배연기가 은페부안으로 서서히 퍼져갔다. 공급용《차렷》담배보다도 이 마라초를 더 좋아하는 그였다.
《우리 <배놈>들한테는 이 마라초가 제일이야. 이렇게 한대 피워야 담배를 피운것 같기도 하구, 또 가슴속옹이도 대번에 쓸어가는것 같으니까.》
이것은 마라초연기가 싫어서 김성각이 가져온 가치담배를 밀어내며 한 그의 말이였다.
《하필이면 왜 까다로운 지도를 새기려고 그럽니까?》
성각은 몸세까지 써보이면서 승이 나서 제 속을 뒤집어보였다.
《남의 속은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말라구. 난 그저 우리 나라 지도가 꼭 필요해서 그래.》
경필은 끄트머리까지 빡빡 빤 담배꽁초를 포탄깍지재털이에 비벼끄고는 자리에서 움쭉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장마철 흐린 날같은 얼굴에 한숨을 푹푹 내쉬며 나가는 경필의 뒤모습은 김성각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
그후 어느날 30리길을 달리다싶이 갔다오다나니 김성각의 몸은 온통 땀으로 젖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없이 얼굴에서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군복팔소매로 벅벅 닦으며 주경필을 찾았다. 자동차의 위장상태를 살피는 그에게 다가들자부터 김성각은 희색이 만면하여 익살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경필동지, 오늘은 나한테 한턱 내십시오.》
《왜?! 사단에 갔다오더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 혹시 새 차를 받은게 아니야?》
《챠, 제가 새 차를 받았다면 경필동지한테 내라고 하겠습니까. 그래 내겠습니까, 안 내겠습니까?》
《아, 매도 알고 맞으랬다구, 그래 무슨 내용인지 알아야 턱을 내던 뭘 내던 할게 아닌가.》
단마디로 거절하다싶이 하는 그의 말에 성각은 일이 글렀다는 생각으로 운전칸으로 올라가는 발판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위장망에 꽂혀있는 가둑나무잎사귀를 둬개정도 뽑아서 활활 부채질을 해댔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는지 그는 모자를 벗어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뻑하니 닦았다.
《에라, 할수 없지. 먼저 선부터 보이는수밖에…》
그는 왼쪽허리에 매달린 군용가방을 열고 펼친 학습장크기만 한 종이장을 꺼내들었다.
《자, 이거면 한턱 내겠지요?》
종이장을 받아쥐는 주경필의 얼굴은 대번에 환해졌다.
《?!… 아니, 이걸 어데서 구했나?》
종이장은 다름아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교육용으로 내주는 우리 나라 지도였다. 지도에는 크고작은 섬들과 만, 반도는 물론 도로와 철길들까지 빠짐없이 표기되여있었다.
주경필은 참으로 희한한것을 발견하기라도 한듯 입을 반쯤 벌리고 지도만 들여다보았다. 얼굴에는 잔주름발들이 가신듯이 사라져버렸다.
지도를 들고 기뻐하는 주경필의 모습을 성각은 흐뭇하니 바라보았다.
《하, 경필동지가 이 조선지도를 몹시 가지고싶어하길래 사단에 갔다오는 길에 하나 얻어가지고 왔지요.》
《아니, 그럼!…》 하며 그는 금덩이라도 받은듯 황송해하며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이사람, 그래 내 고향 인천은 어데쯤에 있나?》
《바로 여기가 인천입니다.》
주경필은 한동안 미동도 없이 감회깊은 눈길로 그곳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어린 딸 해연의 모습이 안겨왔다.
《아버지, 빨리 와야 해.》 하며 눈물을 흘리던 사랑하는 딸, 지금도 동구길에서 《아버지-》 하고 목청껏 부르며 자기를 기다릴 그 귀엽고 불쌍한 모습이 안겨들었다. …
한동안 지도를 훑어보던 그는 네면기슭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런데 이 고기그물같이 좌우상하로 건너간 선들은 뭔가?》
《하하하, 그건 고기그물이 아니라 위도와 경도라는것입니다.》
경필은 듣고도 모르겠다는듯 《위도와 경도? … 그건 또 뭘하는건가?》 하고 되물었다.
《경필동지, 그걸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좀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구 또 경필동지가 처음 듣는 말들도 많구요. 그러니 단마디로 설명한다면 이렇게(지도를 가리키며) 동서로 지나간 선은 위도, 이것처럼 북남으로 내려간 선은 경도라고 합니다. 이것들은 우리 나라가 어디에 위치하고있는가를 표시하는것이라고 간단하게 리해하면 됩니다.》
경필은 아직도 아리숭하다는듯 한참이나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불쑥 이렇게 물었다.
《그러니 이 위도선이라는 곳에 38°선도 있겠구만?》
김성각은 그가 조금씩 리해하는듯싶어 활기를 띠며 설명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는 이렇게 북위 43° 00' 36"에 있는 함경북도 온성군 풍서리와 남위 33° 06' 43"에 위치한 제주도의 서남쪽에 있는 마라도사이에 놓여있답니다. 바로 여기 황해도 옹진군으로부터 강원도 양양군으로 쭉 가로질러간 위도선이 바로 38°선이구요.》
한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며 눈을 감고있던 주경필은 갑자기 손에 든 지도를 성각에게 쑥 내밀었다.
《나한텐 이런 지도는 필요없네.》
《?!…》
김성각은 얼굴에서 웃음을 싹 가셔버렸다. 그가 무엇이라고 말하였는지 다시금 곱씹어보았다. 방금전까지 멋있는 지도를 얻게 되였다고 입이 함박꽃처럼 벌어졌던 사람이 갑자기 영문없이 달라질수가 있는가.
《갑자기 왜 그럽니까?》
주경필은 옆에 위장용으로 무져놓은 소나무아지와 가둑나무잎우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담배쌈지를 꺼내들었다.
《미안하네. 나에겐 이 위도인지 경도인지 하는 그물같은것들이 있는 지도는 필요없네.》
김성각은 놀라운 기색으로 그의 옆에 붙어앉았다. 공부를 못한 그가 위도와 경도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그럴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경필동지, 이건 세계적인 공통선이란 말입니다.》
경필은 마라초를 말며 그의 말을 밀막았다.
《세계적이구 국내적이구간에 난 그 38°선이 있는 지도는 필요가 없어. 그리구 또 그걸 내 딸에게 주고싶지도 않구. …》
성각은 그제서야 그가 지도를 마다하는 리유가 짐작이 갔다.
《그러니 이 분계선때문에 그럽니까?》
주경필은 얼굴에 괴로운 빛을 지으며 담배를 빨았다.
《그 저주로운 분계선이 있어 나는 한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안해를 잃었네. 또 귀여운 내 딸애는 지금 남의 집에 남아있고…
두눈을 부릅뜨고 살아도 이놈의 분계선은 우리에게 죽음의 덫만을 숨겨놓고있었단 말일세.》
고통스럽게 울리는 주경필의 목소리에 성각은 등골에 찬 기운이 서리는듯싶었다.
《?!…》
주경필의 눈시울은 벌써 물기가 서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모든것을 터놓았다. 사나운 파도속에서 구원을 부르짖는 어부들을 사격대상으로 기총탄을 퍼부은 미제살인마들에 대하여, 그 승냥이들이 쏘아대는 기총탄에 어린 손녀애를 구원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진 어머니에 대하여, 아버지의 목을 꼭 그러안고 떨어지지 않겠다고 애원하던 세살잡이 해연에 대하여…
김성각은 눈굽을 훔쳤다. 미제살인마들에 대한 천백배의 증오심이 밀물처럼 가슴속에 차올랐다.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은 지도우에 그어진 38°선을 태워버릴듯 이글거렸다. …
《그때에야 난 형님이 왜서 그 피나무판자에 조선지도를 새겼는지 알았수다. 단순히 어린 해연이와 헤여질 때 한 약속만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땅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우리들과 다시는 빼앗겨서는 안될 내 나라의 모습을 그애의 가슴속에 새겨주고싶어서가 아니였겠소.》
《그랬었지. 그런데…》
《참 형님, 거 <처벌>받던 일이 생각나시우?》
《허, 그걸 내가 왜 잊겠나.》
눈귀를 쪼프리던 주경필은 대뜸 그때의 일이 생각났던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참, 그때 혼이 났었지.》
…주경필은 운전칸에 앉아 부지런히 지도를 새기고있었다. 짬만 있으면 이 일을 하는 그였다. 이제 전쟁이 승리하면 미제를 몰아낸 내 나라, 내 조국땅과 함께 이 판자에 새겨진 우리 나라 지도를 안겨주리라.
누군가 뚜걱뚜걱 다가오더니 운전칸문을 홱 잡아챘다. 곤색승마복바지에 대위견장을 단 날파람있게 생긴 중대장이 눈을 지릅뜨고있었다.
《뭐요?》
주경필은 엉겁결에 뛰여내려 차렷자세를 취했다.
《이건 뭔가 말이요? 누가 자라는 명령을 어기고 이따위 장난질을 하라고 했소. 엉? 차정비는 다됐소?》
《그렇습니다.》
《보기요. 기관 열엇!》
주경필은 기관뚜껑을 열었다. 고개를 기웃하고 여기저기 살펴보고 손가락이 들어가는데까지 때를 벗겼나 문대보던 중대장은 알뜰한 정비에 할 말이 없자 벌컥 어성을 높였다.
《조수는 어딜 갔소?》
《예, 방금 물뜨러 갔습니다.》
《그걸 가져오시오!》
《뭘 말입니까?》
《날 무슨 눈뜬 소경으로 아오? 운전칸 의자밑에 감춘걸 가져오시오!》
주경필은 당황해하며 나무판자를 꺼내왔다. 그것을 대충 들고 보던 중대장은 도로 줄념을 않고 그냥 큰소리를 내질렀다.
《누가 이런 깎개질을 하라고 했소. 분대장이요? 소대장이요? 동무, 지금 무슨 시간이요?》
《낮잠시간입니다.》
《전투준비시간이요. 그래, 이 하찮은 장난질때문에 오늘 새벽에 차를 벼랑턱으로 몰고갔댔소?》
《아니? 저…》
사실 오늘새벽 수송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운전대를 잡은 주경필은 감겨드는 눈까풀을 이기지 못해 깜빡하니 눈을 감았던적이 있었다.
《아, 경필동지!-》 하는 김성각의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차가 굽인돌이에서 돌지 못하고 곧추 나가는것이였다. 급기야 조향륜을 틀었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으면 철령의 천길낭떠러지에 곤두박질을 할번 하였었다. 그것이 뒤에서 차를 몰고오던 중대장의 눈에 걸렸던 모양이다.
중대장은 기가 올라 꾸짖었다.
《무슨 변명인가. 동문 오늘부터 한주일동안 처벌이요. 알겠소?》
《알았습니다.》 하고 주경필은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무나도 억울했다. 어쩌면 이리도 인정사정이 없단 말인가. 그리고 어린 해연이와의 약속을 위해 새기는 지도를 두고 깎개질이라니… 도무지 자식을 가진 부모의 심정이란 꼬물만치도 모르는 목석인것 같았다.
그때 물바께쯔를 든 김성각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상등병, 동무가 조수요?》
《그렇습니다. 중대장동지, 사실 저 지도는 사연이 깊은… 》
김성각은 중대장이 꽥 소리치는 바람에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뭐요. 비호하는가? 동문 몇살이요?》
《열아홉살입니다.》
《흥, 밥보다 잠이 더 달 때로군. 그래 밤에 운전사는 눈에 달이 떠서 운전하는데 동문 곁에 앉아 졸 작정이요? 조수가 졸면 운전사도 같이 졸아. 졸음이 전염병인줄 모르오? 당장 병실로 돌아갓! 그리구 오늘부터 한주일동안은 내가 이 차를 몰겠소. 내곁에서도 그렇게 졸다가는 경칠줄 알라구!》
중대장은 두부모를 썩둑 자르듯이 이런 말을 남기고는 잰 걸음으로 가버렸다. 중대장인 최정삼은 주경필과 같은 나이였는데 중국동북해방전쟁에 참가한 사람이였다. 그는 자기 조국땅에서 전쟁이 일자 제일 선참으로 달려나왔다. 전장에서 근 5년동안을 싸우면서 화약내깨나 맡은 사람이여서 그런지 모든것이 간단명료하였고 명령 하나밖엔 몰랐다. 싸움판에서 굳어진 거치른 성격은 그의 행동에서 인정사정을 보지 않았다. 그래서 중대군인들은 그를 보고 뒤에서 독하다고 수군거렸다. 본인도 그것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조금도 그것을 탓하질 않았으며 오히려 자기의 장점으로 여기는것 같았다.
어느새 중대부쪽으로 사라지는 중대장을 바라보는 주경필과 김성각의 얼굴에는 맹랑한 빛이 어렸다.
《에이, 한주일동안 땀을 뽑게 됐군.》 하며 김성각은 그가 간쪽에 대고 입을 삐죽거렸다.
그날부터 주경필은 중대장의 말대로 처벌을 받았다. 그가 받은 처벌은 하루 스물네시간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갱도안에 있는 병실에서 잠을 자는 《잠처벌》이였다. 처음엔 처벌치고는 너무 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당하고보니 그렇지 않았다. 남들은 피를 흘리며 싸우는데 푹신한 침대에 잔등을 묻고 잠이나 자자니 마음속에선 불이 일었고 전우들을 보기가 따분하였다. 처음 하루이틀은 그간 몰린 피로로 하여 그런대로 잠을 자느라고 하였지만 그다음부터는 엉치와 잔등이 쑤셔나기 시작했다. 중대장의 명령에 의하여 식사도 직일병이 날라다주어 병실에서 먹어야 하였다. 한걸음이라도 병실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직일병이 딱 막아나섰고 잠자리에 눕지 않고 서성거리면 또 누워야 한다고 성화를 먹였다. 자기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루가 미칠것만 같아 할수없이 침대에 누우면 눈은 도저히 감길줄을 몰랐고 억지로 감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새록새록해졌다. 정말이지 처벌이면 이보다 더한 고통을 주는 처벌이 또 어데 있겠는가. 오직 원망의 대상은 인정이라곤 강대처럼 말라버린 중대장뿐이였다. …
가렬처절하던 조국해방전쟁은 드디여 우리 인민의 승리로 끝났다. 승리의 기쁨이 전선과 후방, 이 나라의 고지와 고지마다에 넘쳐나는데 중대장인 최정삼이 그를 불렀다.
그가 중대부로 들어서자 최정삼은 뜻밖에도 그에게서 회수한 그 지도를 내주었다.
《자, 받소. 동무가 딸 해연에게 주겠다고 새기던 그 지도야.》
《예?!》
순간적으로 주경필은 머리가 뗑했다. 모든것이 믿어지질 않았고 또 믿고싶질 않았다. 엄격한 중대장이 여직 그 지도를 건사하고있었다는것도 의문스러웠지만 더우기는 모든 사연을 다 안다는것이 이상스러웠다.
《내 그때 한주일동안 동무의 차를 끌면서 조수한테서 다 들었소.》
《!…》
《하지만 그때 동무는 너무도 일면적인것에만 치우쳐있었소. 왜냐면 우선 첫째, 우리는 이 전쟁에서 꼭 승리해야 한다는것, 둘째, 규률이 없는 군대는 백전백패한다는것, 셋째, 전쟁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한다는것, 이것을 동무는 몰랐소. 그 근거는 어린 딸에게 하나된 이 조국강토를 안겨주겠다고 지도를 새길 생각은 하면서도 어떻게 하나 단 하나의 사고도 없이 싸우는 전선에 더 많은 포탄과 탄약을 공급하여 미국놈들을 족살내고 남녘땅을 해방하겠다는 생각이 부족했다는거요.》
《?!…》
최정삼은 자기앞에 놓인 책상앞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리고 동무에게는 일점혈육인 어린 딸이 기다리고있소. 그것도 아버지의 전사통지서가 아니라 자기에게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를 앗아간 분계선을 없애고 돌아오는 건장한 아버지를 말이요. 그래, 동무가 자그마한 실수로 목숨을 잃는다면 미국양키들이 살판치는 고향땅에서 그애가 어떻게 살아가겠는가를 생각해봤는가. 우리에게는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서, 부모로서 해주어야 할 일이 많고 많지만 그보다도 그애들에게 하나된 조국땅을 안겨주어야 할 무거운 책임감이 있단 말이요!》
《!…》
주경필은 화끈하게 달아오른 두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저 랭혈적인 자그마한 체구에 저렇듯 용암처럼 뜨겁고 열렬한것이 자리잡고있었단 말인가. 여직껏 한쪽눈으로만 그를 보아온 자신에 대한 죄스러움과 그의 고마움이 엉켜 가슴속에 그들먹하였다.
최정삼은 책상밑에서 피나무판자들을 한아름 안아 주경필앞에 놓았다. 그리고 그우에 돼지가죽으로 만든 공구주머니같은것까지 척 올려놓았다.
순간 주경필은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매 피나무판자마다에 조선자연지도가 그려져있었다. 그리고 가죽주머니에는 파손된 차기관의 변대를 두드려서 만든 여러 형태의 크고작은 《판화칼》들이 나란히 누워있는것이 아닌가.
《자, 이제부터는 미국놈들을 이긴 승리한 인민답게 이 그림을 따라가면서 더 크게, 더 멋있게 새기라구. 그리구 앞으로 조국이 통일되는 날 우리 함께 동무의 고향인 인천에 가서 해연에게 안겨주자구. 알겠나?》
《!…》
최정삼의 말은 뜨겁고도 절절하게 울리며 주경필의 흉벽을 세차게 두드렸다. 아, 이 지도는 나라는 개인이 그리고 있는것이 아니였구나. 바로 38°선이 없고 외세가 없는 우리 조선지도는 나만이 아니라 온 중대, 아니 온 나라 인민이 피로써 새기고있었구나!
며칠후 주경필과 김성각은 중대장을 찾았다. 그들은 제대명령을 받았던것이다. 성각은 대학으로 가게 되였지만 경필은 이렇다한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다가 인천이 바라보이는 강령반도에 가서 살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들은 중대장 최정삼이 보이질 않아 그를 찾아 고지의 정점까지 올랐다. 그런데 최정삼은 화염에 그슬린 바위우에 앉아 멀리 검은구름이 밀려드는 남쪽하늘가를 바라보고있지 않는가. 그의 눈에서는 뜻밖에도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전승의 기쁨으로 들끓고있는 이때에 감정이 없다던 최정삼의 눈에서 눈물을 보는것은 천만뜻밖의 일이였다. 아마 중대군인들과 헤여져야 하는 석별의 정이 금강석같은 사나이의 가슴을 울렸을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중대장동지!》
나지막하게 울리는 주경필의 목소리에 최정삼은 눈굽을 훔치며 돌아섰다.
《무슨 일이요?》
《저흰 오늘 제대…》
《아하, 그렇지, 제대되지.》 하며 그는 다시 돌아섰다.
《가슴이 터지오. 이 가슴이 말이야. 저 미국놈들을 모조리 쳐없애고 고향에 가보자고 3년동안 피를 흘리며 싸웠는데.
동무는 어린 딸애가 기다리는 고향땅으로 못가게 되였으니… 아, 해연의 운명은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
《내 이 어깨에 총대를 메고 국민당놈들과 싸우면서 남의 땅은 섬 하나를 남겨두고 모조리 해방하면서도 자기 조국땅은 다 찾지 못했으니… 아, 이 염통이 터져와 도대체 참을수가 있나.》
주먹으로 바위를 내려치는 중대장, 그의 불끈 틀어쥔 주먹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
《중대장동지!》
《우린 빚을 졌어. 해연을 비롯한 우리 자식들에게 너무나도 큰 빚을 졌단 말이야.》
주경필과 김성각의 코언저리는 쩌릿해졌다. 언제나 용맹하고 참대처럼 굳으며 랭정하던 그의 얼굴에서 비통한 눈물을 보는 순간 전승의 기쁨과 함께 솟구치는 괴로움과 절통감이 또다시 그들의 온몸을 쑤셔댔다.
《주동무, 떠나라구. 고향이 바라보이는 곳에 가서 힘껏 일하라구. 우리가 이 땅우에 부강한 내 조국을 건설하는 길이 바로 조국을 통일하는 길이야. 고향에 있는 해연을 그리며 자기의 땀으로 이룩한 창조물을 높이 쌓고 소리치라구. <해연아, 이 아버지가 기어이 조국을 통일하여 너에게 안겨주마.> 하고 말이야.》
《중대장동지!》
주경필과 성각은 꺼억꺼억 목구멍에 치미는 울음을 참으며 최정삼을 부둥켜안았다.
×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발표후 처음으로 평양과 서울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북과 남사이의 흩어진 가족 및 친척방문으로 서울로 떠나는 주경필을 바래우러 최정삼과 김성각은 물론 한순녀와 자식들이 비행장에 나와있었다.
최정삼은 주경필의 거칠한 손을 뜨겁게 잡았다.
《임자, 듣자 하니 그 지도를 두고가려구 생각했댔다면서?》
《실은 이 땅에 그 저주러운 분계선이 아직도 남아있기에…》
최정삼은 그의 말을 밀막았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아니, 무조건 가지고 가서 해연에게 꼭 전해주라구. 분렬의 아픔을 안고사는 우리이기에 외세가 강요한 38°선이 없는 이 지도를 똑바로 보며 살아야 한단 말이야. 내가 말하고싶은건 분계선이 없는 우리 조국, 진정한 내 나라의 참모습을 가슴에 안고 우리 민족끼리 마음과 힘을 합쳐 싸워나간다면 우리 대에 꼭 통일을 이룩할수 있다는걸세!》
《형님, 중대장동지의 말씀이 옳수다. 우리한테야 반세기나마 북과 남사이에 얼어붙었던 불신과 대결의 동토대를 한순간에 녹여버린 6. 15공동선언이 있질 않소. 그러니 꼭 해연에게 그 지도를 주시우.》
마디마디 힘과 확신이 배인 그들의 말은 주경필의 가슴속에 세찬 충격을 안겨주며 새겨졌다.
《중대장동지!…》
주경필의 마음은 어느덧 밝아오는 통일의 려명과 함께 사랑하는 딸과 만나고있었다. 바로 사랑하는 딸과 함께 락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삼천리조국강토를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