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녀교수의 증언
김 호 성
1
유엔식량 및 농업기구(FAO) 본부가 자리잡은 로마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은 김일순은 푸른 하늘을 날고있다. 흰구름아래로 누런색을 띤 땅과 수림, 호수들이 보인다. 승객들은 자기들의 시야가 엄청나게 넓어진데서 오는 환성을 터뜨리며 들뜬 기분으로 유쾌한 이야기를 끝없이 나누지만 김일순은 무심한 시선을 시창에 보낸채 주위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돌리지 않았다. 중년기의 녀인들이라면 화장에 신경을 쓰련만 그의 얼굴에는 바르거나 그려붙여놓은 흔적이란 하나도 없다. 창백하게 느껴지는 기름한 얼굴, 약간 쳐들린듯 한 코마루와 움직일줄 모르는 눈동자의 초점은 도고함과 함께 찬 기운을 풍기고 가볍게 다물린 고운 입매조차 얼굴전체가 던지는 그늘로 하여 이상야릇한 절제감을 느끼게 한다. 미간의 잔주름만이 이따금 넓어졌다 좁아지군 하면서 심리의 숨결을 내비친다. 6년간 FAO에서 일하다 돌아오는 김일순이다. 생물세포공학계 권위있는 학자인 그는 실천을 통하여 과학적으로 검증된것외에는 그 무엇도 믿지 않는 녀자였다. 유전자의 배렬로 이루어진 세포와 세포의 결합으로 존재하는 생명체가 자연을 이루고 사회를 형성했다고 간주하는 다원주의의 신봉자, 종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간의 마찰과 분쟁까지도 갑작변이의 현상으로 분석평가하는 생물공학주의자이다. 인간에게 유익한것이 있다면 오직 과학뿐이라고 단정하는 여기에 온갖 사회적현상의 본질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는 그의 본질적약점이 깊숙이 자리잡고있었지만 자신을 인식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부인, 위스키를 마시지 않겠습니까?》
곁에 앉은 은발머리사나이가 스코틀랜드방언이 섞인 영어로 친절하게 묻자 김일순은 고맙다고 고개만 끄덕여보일뿐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동양녀인의 랭담에 어깨를 으쓱한 사나이가 위스키를 한모금 마시고나서 그냥 지분거렸다.
《세상남자들은 누구나 동방녀인을 좋아합니다. 그… 사실은 일본녀성을 말입니다.》
《어서 가세요, 그 섬나라 녀자들한테로. 부디 돌아갈 비행기표값을 남겨두고 말입니다.》
김일순은 영어로 타이르듯 말하고나서 미간을 찡그렸다. 술냄새만 맡으면 불쾌감이상의 신경질을 부리는 그였다. 《괴벽한》 그 성미로 하여 친근한 외국벗들에게까지 얼마나 무례한 인상을 주군 했는지 모른다. 인간의 높은 지성과 도덕적행위가 반드시 정비례하는것은 아니였다. 김일순은 자기 성격의 약점에 대해 늘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지만 이미 굳어진 타성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곁에 앉은 사내가 풍기는 술냄새때문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옹송그린 그는 눈을 감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였다. 뇌수라는 광야에서 명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흘러간 인생의 여러가지 사변들이 락엽인양 여기저기 날려가고 날려온다. 맥락이 닿지 않는 토막진 일, 세부들이 언뜻언뜻 추억의 언덕너머에서 숨박곡질을 하더니 하나의 생동한 화폭을 펼쳤다.
…여기저기 되는대로 솟아난 버럭산, 그사이로 난 울퉁불퉁한 버럭돌길, 맨발로 달려가는 애어린 소녀, 바람에 날리는 탄가루… 숨막히는 대기속을 헤치며 마침내 자기 집 마당에 이른 소녀는 폴싹 주저앉기라도 할듯 멎어버린다. 토방우에서 세살잡이 남동생이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술에 취한 아버지가 탄덩이같은 주먹을 쳐들고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나… 나때문에 이 꼴로 산다는거야? 죽어라, 다… 다 죽어 없어져야 고달픈 심사도 숨을 거둔단 말이다! …》
굴뚝모퉁이까지 쫓겨간 어머니는 두손으로 저고리고름을 쥔채 소리없이 울고있다. 머리채가 다 풀어헤쳐졌다. 하루세끼 죽먹듯 하는 아버지의 술주정에 편안한 날이 없는 어머니였다.
돌막집을 허물어내칠 기상인 아버지는 술에 풀어진 눈동자로 정신을 잃고 허둥거리며 어머니만 찾는다.
《어데 있어? 날 데려다 눕혀라. 망할 년같으니…》
주먹을 쳐든 아버지가 다시 어머니를 향해 비칠거리며 걸어가자 김일순은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가 앞을 막았다.
《엄마를 때리지 말아요! 아버진 나빠, 나빠! 죄없는 우리 엄마를 왜 때리나요?》
딸의 울부짖음앞에서 아버지는 두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뻗쳤던 주먹을 맥없이 내렸다.
《우리 엄마? … 난 누구냐? 아버지다. 아버지라고 불러라!》
《싫어! … 아버진 나빠!》
《허- 허허허… 어어어…》
아버지는 바들바들 떨며 선 어린 딸을 굽어보며 꾸역꾸역 속에 찬 울화를 토하고 부엌문앞에 털썩 주저앉아 두손으로 머리만 쥐여뜯었다.
그해 가을 아버지는 탄광일을 하다가 굴이 무너져 술을 더이상 마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어느 하루 그 아버지로 해서 울지 않은 날 없는 집이였지만 아버지없는 집은 허전했고 그때문인지 몰라도 어머니마저 병들어 누웠다. 림종을 앞둔 어느날 어머니는 딸을 머리맡에 앉히였다.
《일순아!》
《엄마!》
《우리 일순이… 엄마가 머리 빗겨줄가?》
참빗을 찾아든 어머니는 간신히 일어나앉았다.
《고운 내 딸아, 엄마 말 잘 듣지?》
《응.》
《일순아,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아라. … 아버진 좋은분이시다.》
그 말이 일순에게는 곧이들리지 않았지만 어머니 말이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안고 마지막으로 머리를 빗겨준 어머니는 사흘후에 눈물로 산 세상과 리별하였다. …
일순은 자기의 몸이 금시 천길나락으로 떨어지는감을 느끼며 소스라쳐 눈을 떴다.
기류의 변동으로 비행기동체가 떨고있는게 알렸다.
뇌리에서는 어머니모습이 사라지지 않았고 흘러가버린 불우했던 과거가 보내오는 구슬픈 노래가 멎을줄 몰랐다.
7살때 4살 난 동생과 거지가 되여 거리를 방황했다. 전쟁통에 혈육을 다 잃은 고마운 할머니 한분을 만난것이 그들 남매에게 있어서 삶의 보금자리였다. 그때부터 일순의 피눈물로 적셔진 고학의 길이 이어졌고 동생까지 대학공부를 시켜 살림을 펴준 오늘에로 이어졌다. 주먹을 틀어잡고 입술을 물어뜯으며 남들의 수모를 받지 않는 인생이 되자고 몸부림쳤다.
김일순에게 있어서 추억이란 언제나 가슴아픈것이다. 머리속에 남은것이 있다면 술에 미친 아버지의 무지한 행동과 가난에 쪼들린 어머니의 숙명적굴종뿐이였다. 그의 운명은 부모들의 인생에 대한 항거였다. 남달리 뛰여난 두뇌의 혜택으로 과학의 세계에서 오늘을 살면서 김일순은 자기가 랭담한 인간이라는데 대해서 놀라본 일이 한번도 없었으며 남에게 자그마한 동정도 베풀지 않는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였다. 과학밖의 문제, 자기밖의 일에 대한 무관심도 이와 같은 성격의 론리에 기인된것이다.
2
고속도로의 각종 부호들과 수자들을 찍은 문자판들이 김일순의 시야로 쉼없이 날아오고 날아가버린다. 그는 소문없이 조용히 돌아왔다.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한 대학들에서 교수직을 가지고 유엔기구에서 다년간 일한 그여서 학계가 떠들썩 맞이할수 있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서울도착날자를 알리지 않았던것이다. 남동생 일진이 누이의 심정을 헤아려 입을 다물어준것은 참으로 다행이였다. 《통일부》에서 일한다니 누이와의 약속을 비밀사업으로 간주하는게 아닌지도 모른다.
《누님, 돌아온걸 축하해요.》
《고맙다. 처와 애들은 다 잘 있니?》
6년만에 만나는 오누이상봉인사치고는 너무도 짧고 담담했다. 붐비는 항공역을 나올 때까지 그들은 아무 말도 안했다. 승용차를 일진이가 몰고 나왔기에 이렇게 차안에 오누이만 앉아있다.
《일진아, 내가 부탁한걸 알아봤니?》
승용차 등받이에 기댄 김일순은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물었다.
일진은 오래간만에 누나와 다시 만난 기쁨에 도취되였는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다 그치였다.
《누님, 정치가 뭔지 아세요?》
《그건 내가 알 필요조차 없는 개념이다.》
《물론 그렇겠지요. 정치란 어찌 보면 부정하는것을 목적으로 하는것 같아요. 선대가 뿌린 씨앗에서 돋아나는것은 모조리 베버려야 하니까요?》
《그건 왜?》
《밭갈이를 하고나서 새 종자를 뿌리자는거지요.》
《수확도 해보지 않고 다른 씨앗을 뿌린다는건 무슨 소리고 그렇게 농사를 해서 남을게 뭐 있겠니?》
《누님, 생명공학의 법칙하구 다른게 정치예요. 정치란 멋진 공약이고 가혹할만큼 결단을 내리는 인간의 고급한 행위란 말입니다.》
《나에게 그런 강의를 하지 말아. 궤변투성이여서 어지럽다.》
《하하하, 그 궤변도 자꾸 되풀이하면 곧이들리는거예요. 그렇지요, 누님.》
김일순은 동생의 이야기에서 그 어떤 암시를 받으며 모르는체 되받아물었다.
《너처럼 례절바른 수다쟁이들이 <통일부>에 많으냐?》
일진은 그쯤한 야유는 끄떡하지 않는다. 오히려 김일순의 심리에 자극을 주려는듯 록음기까지 켜놓으며 어깨를 들썩이였다.
《누님, 누님은 민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민족?》
《북과 남, 우리 민족말이예요.》
엄청난 뜻밖의 질문이였다. 그조차 제 동생이 묻고있으니 대답을 피할수도 없기에 김일순은 자신없으나 솔직하게 고백했다.
《남남으로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민족이겠지.》
제 입으로 뱉아놓은 말이지만 김일순은 어찌된 까닭인지 심장이 바늘에 찔리운듯이 아파났다. 량심을 거역한것 같기도 하고 그 어떤 죄의식에 빠져드는것 같기도 한 압박감이 심리를 자극했던것이다. 세계에 널리 알려진 유럽대학강당에서 수많은 질문의 소나기를 받으면서도 당당히 교수의 명분을 과시해온 자기가 피를 나눈 동생의 물음앞에서 이다지 당황할수가 있는가. 하물며 누구나 쉽게 웨쳐대는 민족이라는 단순한 두 글자앞에서.
《옳아요, 누님. 언론들이 정치적악순환이라고 지청구를 해대지만 지나간 10년은 <빼앗긴 10년>, <되찾아야 할 10년>이라고 지금 <정부>는 버젓이 공언하지요. 어쩔수있어요? 권력의 의지를 누가 감히 꺾는단 말이예요. 그러니 공연한걸 알자고 하지 마세요. 6. 25때 북에서 남으로 흘러온 사람이 좀 많은가요? 김영준이라는 이름 석자를 가지고 어떻게 찾는다고 그러며 설사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 모르지 않나요?》
《이건 내가 처음 남을 위해주는 일을 하고싶기때문이다.》
《방금 말하지 않았나요, 남남으로 살아갈 민족이라구.》
《분명 이률배반이다. 하지만 심장이 가리키누나.》
《누님, 우리 기분을 돌려보자요. 어때요? 누님의 이름으로 연구소를 내오자요. 좋지요?》
동생이 화제를 전환시키자 김일순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는 이미 ○○대학교 생물공학연구소 소장 겸 교수로 취임할 결심을 하고있었던것이다.
김일순의 연구사업과 교수사업은 조용히 시작되였다.
《시험포전면적이 작지 않습니까?》
《땅을 허실하는것보다 더 큰 잘못은 없어요.》
《온실작물배치에는 연구대상밖의것도 적지 않습니다.》
《여긴 화초재배원이 아니예요. 필요한것만 필요해요.》
조교수와 함께 연구소의 실태를 돌아보고 강의실앞에 이른 김일순은 걸음을 뚝 멈추었다. 자습시간을 주었는데 연구생들이 무슨 일로 저리 떠들고있는가. 조교수는 제 잘못이기나 한듯 건기침만 깇는다.
강의실안에서 열기띤 목소리들이 비발치고있었다.
《제군들! <한국>의 정치실상은 이렇습니다. 6. 15시대를 부정하고있으며 <빼앗긴 10년>이라는 림계말뚝을 박으면서 <되찾아야 할 10년>이라고 얼빠진 고함을 지르고있습니다. 민족의 통일운동이 이렇게 좌절당하는것을 보고만 있어야 옳은가?》
김일순은 조교수에게 눈길을 돌렸다.
《연구소가 아니라 성토장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시국이 어수선하다나니…》
남자연구생의 흥분에 뒤이어 불만섞인 목소리들이 울린다.
《절대로 당국의 처사를 묵인할수 없소!》
《옳아요. 어떻게 안아온 6. 15시대였던가요?》
《력사를 되돌려세우려는자들을 무덤속으로 보내야 해!》
김일순이 강의실에 들어섰다.
강의실 한복판에 나서서 두팔을 쳐들고 기염을 토하던 연구생이 굳어진다.
《누구예요, 어디서 왔는가요?》
김일순은 조용히 물으며 다가갔다.
《교수선생님, 전… 연구생입니다.》
《내 보기엔 여기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예요.》
《우리는 지금…》
《그런 일은 여기서 하는게 아닙니다. 신성한 과학을 지키기 위해서 명령하는거예요. 나가요!》
서서히 높아진 김일순의 마디마디가 출입문을 가리킨 손끝에서 력점을 찍으며 끝났다. 그의 눈빛은 얼음장보다 더 차거웠다.
강의실은 폭풍이 지나간 뒤처럼 돼버렸다.
시국을 론한 연구생은 김일순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선생님, 민족이라는 생명체안에서 일어나고있는 변이현상을 외면할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교권을 행사한 김일순이지만 마음은 자못 무거웠다. 착잡한 심중속에서는 누가 옳은가를 묻는다. 이것 또한 오랜 교수생활과정에 처음 겪게 되는 이상야릇한 질문이였다. 자기로서 명백한 대답을 할수 없는것이 놀랍다 하여도 그와 같은 심리적모순이 리성을 압박했다.
3
로마에서 돌아온지 한달이 겨우 지났는데 지역대학들에서 련이어 강의를 요청해오기에 김일순은 거절할수 없었다. 대구를 첫 출장지로 택한 그는 서울역으로 나갔다. 차시간이 넉넉하기에 역앞에서 동생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일진은 먼저 나와 기다리고있었다.
《누님, 정말 집요하군요.》
《진지한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내가 찾지 못하면 어쩌겠어요?》
《그러면 너희네 <장관>님을 만나지.》
어렵지 않게 대답하는 김일순의 거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일진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님은 <통일부> 장관을 유전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생명체로 보시나요?》
《아무렴…》
억이 막히는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던 일진은 혼자서 웃기만 했다.
《웃긴?》
《그럴수밖에요. <대통령>은 만나지 않겠습니까, 교수님!》
《그를 어마어마한 존재로 묘사하지 말아. 적어도 내앞에서는… 고작해서 5년짜리 자리지킴이나 하는 <청와대> 주인이 뭐가 무서워서 만나지 못하겠니?》
《손들었어요, 누님. 내 힘껏 노력하지요.》
주동적인 방어로써는 누나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것을 깨달은 일진이 김일순이 보는 앞에서 두손을 쳐들었다.
경부선렬차는 대구에 정시로 도착하였다. 역홈에 경북지역 대학총장들과 학장들이 나와서 김일순을 맞이했다.
《교수선생님, 우리는 <국회>에 교육환경을 개선해줄데 대한 건의서를 제출하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전 강의하러 왔어요. 하지만 그 문제는 찬성해요.》
김일순은 택시를 타고 이미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밤이 깊도록 래일 진행할 강의안을 검토한 김일순은 실내복을 입은채 방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세상에 안 다녀본데가 없는듯싶다. 아프리카 쟝글속 원주민들과 함께 불무지앞에서 사냥한 구운 고기를 먹으며 그들의 노래를 들었고 야생적인 열정으로 몸부림치는 률동의 파도에 숨막히기도 했다.
김일순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약간 서두르며 외출복 안주머니에서 쪽빛비단에 싼것을 꺼내여 조심스럽게 펼쳤다. 어머니가 눈물많은 한생을 살다 일찌기 떠나면서 남긴 유물인 참빗이다. 참빗! …
그의 귀전으로 어떤 늙은이의 노여운 목소리가 공명을 일으키며 울렸다.
《뭐, 조선사람이라고? 얼굴이 비슷하면 조선사람이더냐? 말도 몰라 통역인지 뭔지 한걸 내세우는 사람인데…》
김일순의 입귀로 쉽지 않은 한가닥의 미소가 잔물결을 일으켰다. 조용히 눈을 감은 그는 명상이 깨여질가봐 꿈속을 걷듯 걸음을 옮겨 침대에 가서 앉았다.
이북의 온천마을에서 흘러간 10여일간…
김일순과 그의 일행은 FAO일로 온천마을이 자리잡은 벽계리로 가게 되였다.
그들을 맞이하려고 역에 나온 사람은 젊은 녀성관리위원장이였다. 해빛에 타서 감실감실한 둥근 얼굴에 능청기가 어린 서글서글한 눈동자를 가진 녀자인데 생긴것처럼 활달하였다.
《여러분, 이렇게 우리 농장마을을 찾아주셔서 정말 반갑습니다. 제가 벽계리관리위원장 김영순입니다.》
김일순과 일행은 녀성관리위원장과 함께 소형뻐스에 올랐다.
차창밖으로 한여름의 산간농촌지대가 그림처럼 흘러갔다.
《저기예요. 우리 벽계리가 보여요.》
앞자리에 앉은 녀성관리위원장이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파아란 산기슭에 흰 양떼가 모여 풀을 뜯는것 같은 풍경이 바라보였다. 양떼가 아니라 농촌마을 살림집들이 그렇게 보였던것이다.
김일순은 짜릿한 향수를 맛보며 녀성관리위원장에게 통역을 시켜 물었다.
《내려서 걸으면 안될가요?》
《좋아요. 우리 고장은 걸으면서 봐야 제멋이랍니다.》
하늘은 맑고 대지는 푸르다. 아담한 야산을 감돌며 흐르는 한줄기 맑은 강이 길아래 골짜기로 흘렀다.
《온천휴양을 하면서 우리 농장마을도 돌아보십시오. 탁아소와 유치원, 소학교와 중학교랑… 그리구 농장살림집들도요. 산골이다보니 허물이 많겠지만 뭐라나요. 그건 다 제가 일을 잘못해서랍니다.》
노란 민들레꽃이 한벌 뒤덮인 강기슭에서 염소와 양들이 한데 어울려 풀을 뜯는다. 어데를 둘러보아도 목가적인 정서가 한껏 넘쳐나는 산촌풍경이였다.
김일순은 떠나올 때 일행에게 자기가 조선사람이라는걸 알리지 말것을 부탁했기때문에 관리위원장과 이야기할 때는 꼭 통역을 하게 하였다.
온천마을에 온지 사흘째 되던 날 석양무렵이였다.
김일순은 통역원을 데리고 관리위원장과 함께 벽계천을 구경하러 나섰다. 장마철에도 견딜수 있게 하천정리를 잘했다. 강뚝을 곧추 펴고 높이 쌓았다. 강뚝너머에서부터 농장의 강냉이밭이 벽계천을 따라 펼쳐져있었다. 강과 뚝사이 경계지역에 서너줄 되게 수수를 심은게 보이고 거기서 머리가 허연 늙은이가 부지런히 김을 매고있었다.
북의 농사형편이 어려운데다가 식량사정은 위험계선을 넘어섰다는 말을 자주 들어온 김일순이기에 로인을 만나고싶은 생각이 부쩍 머리를 쳐들었다. 관리위원장은 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만류하지 않고 따라섰다.
통역원을 앞세운 김일순이 로인에게 인사를 했다.
《로인님, 수고하세요.》
김매던 호미를 놓고 허리를 편 로인이 난데없는 《불청객》들을 덤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수고는 무슨…》
《이건 로인님의 개인땅인가 봅니다?》
로인의 희끗희끗한 장미가 꿈틀거렸다.
《내 나라엔 우리 땅은 있어도 개인땅은 없다네.》
《그럼 농장의 토지인가요?》
《아닐세. 해마다 묵여두는 땅이니 심을수밖에.》
《그러니 개인소유지요.》
《여보시오, 난 빈땅에 농사지어 나라에 바치는 늙은이네. 뭘 더 알고싶나? 손님으로 왔으면 대접을 후하게 받지 못했다 해도 돌아서서 흉이나 볼 생각을 해서는 어디 가서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우. 어서 가보시오.》
쓸데없는 호기심때문에 김일순은 마음씨 고운 온천마을의 늙은이한테서 한방망이 단단히 얻어맞았다.
며칠후 그 로인을 공교롭게도 벽계천에서 다시 만났다. 맑은 물에 머리를 감고 어머니의 유물인 참빗으로 한참 빗고있다가 《어험-》 하는 기침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 로인이였다. 늘 가지고 다니는 호미를 한손에 쥐고 얼핏 바라보는데 그 눈길에 노여움이 한가득 실려있었다. 순간 김일순은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며 참빗을 떨구었다.
(로인님은 내가 조선사람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알아보았어. …)
그의 뇌리에서 이 생각은 떠나지 않았고 끝없는 죄책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녀성관리위원장에게 자기의 속을 터놓았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러나요? 저하고 함께 가자요. 우리 아버지는 너그러운분이예요.》
《우리 아버지라니? …》
《그래요, 그분은 저의 아버지랍니다. 호호호…》
김일순은 관리위원장을 통하여 로인이 비경지에 곡식을 심어 한해에 2t이상의 낟알을 나라에 바친다는 소행을 들으며 따라섰다. 로인은 그날도 농장포전밭에서 일하고있었다. 딸이 귀에 대고 무엇인가 소곤소곤 이야기하자 천둥같이 화를 내며 호미가락을 내동댕이쳤다.
《뭐, 조선사람이라고? 얼굴이 비슷하면 조선사람이더냐? 말도 몰라 통역인지 뭔지 한걸 내세우는 사람인데…》
《아버지, 목소리를 좀 낮추세요. 누가 듣겠어요.》
《듣겠으면 들으라지.》
무지스럽고 조폭한 고함질로 들리는 소리에 김일순은 실망하며 멎어섰다.
《아버지!…》
《그만해라.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은 자기 민족도 똑똑히 사랑할수 없어. 미국놈들의 심부름군이나 하기 좋지.》
무지의 폭언이 아니라 리성의 항거였다. 김일순은 황급히 돌아서서 도망치듯 걸었다. 이남사회의 인식과는 상반되는 이 북녘사람들의 반미감정을 똑바로 느낄수 있었는데 그것은 결코 외곡된것이 아니였다. 농사로 늙은 평범한 늙은이의 심정이 저러할진대 공화국인민전체의 심리는 불달린 도화선의 화약처럼 폭발직전에 있을것이다.
그날부터 김일순은 하루라도 빨리 온천마을을 떠나고싶은 초조감을 지울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북녘땅에 들어선 때부터 느꼈던 제도와 리념이라는 정신적압박감과 함께 형언할수 없는 감정의 모순에 빠져있었다. 한피줄을 나눈 민족의 공통성과 차이점을 절감하게 될수록 일순은 제노라고 자부해온 자기라는 존재가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김일순은 목적도 향방도 없이 숙소를 나섰다. 한여름바람에 강냉이밭들은 푸른 물결처럼 일렁이고 숲의 향기속에서 새들의 고운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밟아볼수록 자기가 나서자란 고향과 같은 그 땅이였다. 냄새를 맡아봐도 구수한 고국의 향기였으며 귀를 기울여도 다정한 한민족의 노래소리가 분명히 들려왔다. 걸음을 멈추니 자기가 비탈진 강냉이밭머리에 서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아!-》 하고 놀라며 두눈을 슴벅이였다.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킨 그 로인이 네모방정하게 쌓아놓은 풀더미에 흙을 덮고있다. 일흔살을 넘긴 고령의 늙은이가 한시도 손에서 일감을 놓지 않고있다. 이것이 아마도 선량하고 정직하고 근면한 이 나라 백성의 성격이 아닐가, 그리고 그 무엇에도 구애되지 않는 남과 북, 우리 민족의 동질성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고 한맺힌 아버지의 생각으로 가슴이 아팠다.
김일순은 삽을 찾아들고 로인이 하는대로 다른 풀무지에 흙을 덮기 시작했다.
《게 누군가?》
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접니다, 로인님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로인은 아무 말도 안했다. 거친 숨결과 함께 풀더미우에 흙을 덮어 다지는 삽소리만 투덕투덕 울린다.
두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일만 했다.
《좀 쉬세나.》
일순에게 다가온 로인의 목소리에는 이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그러면서도 그렇게도 받고싶었던 아버지의 정이 한가득 고여있었다. 고개를 쳐든 김일순은 로인의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조선말단어에서 제일 싫어하는 《아버지》라는 말이 터져나오는것을 겨우 참았다.
《임자, 강가에서 머리를 빗던 그 빗을 보여주겠나?》
김일순은 얼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참빗을 꺼냈다.
《여기 와 앉으라구.》
로인은 잔디우에 가지고나온 수건을 펴고 김일순을 청했다.
《고마워요, 로인님.》
《오래된 참빗이구만. 허, 지금 젊은이들이야 이런 빗을 구경 못하지. 정말 좋아. 보기만 해도 동백기름냄새가 나구 칠흑같은 머리카락이 보이는것만 같구만.》
그리도 엄하고 무서웠던 로인이 이토록 다정다감할줄을 몰랐다. 김일순은 미소를 지은채 마디진 로인의 손에 들린 자기의 참빗만 보았다.
《임자, 이 땅을 떠나 타향에서 살겠지?》
《아닙니다. 서울에서 사는데 생물공학박사로 지금은…》
《좋구만. 장할세.》
《제가요? 저야 남쪽의 학자구 그 <유엔>…》
《뭐라나? 조선사람인데야. 난 임자를 저기 강가 수수밭에서 만났을 때부터 제 피줄이라는걸 알았다네.》
《어떻게 그걸…》
《눈동자지… 우리 씨종자들은 눈만 봐도 알아. 맑고, 곱고 생신해.》
김일순은 제 볼로 흐르는것이 눈물이라는것도 알지 못했다. 어찌 보면 속되다고 해야 할 《씨종자》라는 말이 지금같이 친근하게 들리리라고 생각이나 했던가. 욕도 남다른 부모들의 꾸짖음이여서 울면서 그 품에 안기지 않는가.
로인은 참빗을 그지없이 소중한 물건처럼 두손으로 꽉 싸쥐고 말했다.
《여긴 내 고향일세. 짐승도 죽을 때는 제 굴을 찾는다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내 동생 그녀석도 살아만 있다면 고향하늘을 바라보며 울고있을거네.》
《동생이라면… 그분이 어디 계십니까?》
《내 손아래 아우였지. 1950년 초겨울 그 란리통에 헤여졌어. 들리는 소문엔 개성근처에서 어떤 계집애 손을 잡고 남으로 가는걸 보았다는걸세. 그때 열한살이였네. 이젠 그 녀석도 나같은 늙은이가 됐겠는데… 60년세월이 돼오도록 우린 만나지 못하는구만. 살아만 있다면 남들처럼 금강산에 가서 잠시라도 만나보련만. …》
백발을 떠인 로인의 가슴아픈 하소가 페부를 찔러 김일순은 목이 메였다. 위로의 말을 찾으려 했지만 눈물만 앞섰다.
《임자, 며칠후에 떠난다지?》
《그렇습니다.》
《가기 전에 꼭 우리 집에 오라구. 한끼래도 한밥상두리에 모여앉아보세나. 어쨌든 우리야 한겨레가 아닌가. 허, 노래에도 있더구만. 통일잔치날을 보고싶어. 정말 보고파!》
여생도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의 평생소원을 풀어주지 못한단 말인가. 김일순은 로인을 통해 동생되는 사람의 나이며 생년월일과 함께 필요한 자료들을 기억한 다음 온천마을을 떠났다. …
김일순은 자기 손에 들린 참빗을 굽어보며 괴로운 심정을 한숨으로 내뿜었다.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던 로인인가. 7살때 잃어버린 눈물을 40여년만에 흘리게 한, 아버지라고 부르고싶었던 로인이였다. 그런데 그처럼 커다란 감정이 소실과 망각속으로 사라졌는가? 로인의 혈육을 찾아주겠다는 도의심이 한갖 의무감의 허울로 변해버렸다.
자리를 옮겨 쏘파에 가서 몸을 잠근 김일순은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며 천정을 쳐다보았다.
근면과 정직이 이 민족의 우점이라면 변하기 잘하고 지구성이 부족한 나는 뭐라고 해야 하는가. 민족을 이루는 유전자들에 그와 같은 취약한 형질이 남아있어서야 되겠는가.
김일순은 객관적연구대상이였던 유전자들에 처음으로 자기라는 존재를 포함시켰다.
그것은 생물세포공학의 견지가 아니라 사회력사적인식, 민족에 대한 자기나름의 새로운 인식이였다.
4
며칠전 김일순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동생에 대한 환멸감을 쓰겁게 맛보았다. 그처럼 간절하게 부탁한 김영준이라는 사람의 행적을 찾아줄 대신 약삭바른 대답뿐이였다. 질질 늘구어 물러나앉게 하자는 속심이 분명했다. 이거야말로 버릇없는 하늘소가 반질반질 주인 쳐다보는 꼴이 아니고 뭔가?
《네가 누이를 이쯤 데리고 놀았으니 이젠 내 차례겠지?》
성미가 독한 김일순은 야멸찬 말을 골라서 물었다.
급해난 일진은 에둘러댔다.
《너무 성내지 말아요. 남북대화의 전망도 없어요. 누이가 희망을 가지는 금강산에서 <리산가족>상봉도 더이상 마련되지 않을거예요.》
《난 변덕스러운 그따위 정황이나 네 입을 통해서 듣자는게 아니다.》
《이 땅의 정치파동이란 주식시장보다 더해요. <리산가족>상봉문제 같은걸 들고다니면 문제되거던요?》
《누가? 내가? 아니면 네가?》
《…》
《좋아. 내 다시는 너에게 어떤 부탁도 하지 않으마.》
강의와 실험지도를 끝낸 김일순은 연구소의 자기 방에서 피로를 풀기 위해 아무 책이나 집어들었다. 표제도 보지 않고 갈피를 번지고 눈길을 박았다. 《북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한 <주적>》이라느니, 《이제 <행정부>의 <해볕정책>의 진의도를 물어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로 반죽한 반공화국대결선전이였다. 우익보수계악담꾸러기의 말공부질인데 글줄마다 살기가 번쩍인다. 필자라는 사람은 제딴의 수자와 사실을 렬거하면서 북의 《붕괴》는 시간문제이므로 고립과 제재의 도수를 높여야 한다는것, 그러자면 일미동맹을 보다 강화하는것이 필요하다고 력설했다. 우물안의 개구리가 제법 세계정치의 구도를 바꾸기라도 할듯 요란스럽게 울어대니 가소로운 일이다. 북의 실상을 보지도 못한 주제에 《반공》광증에만 열을 올리다보니 정신이 나갔는지 현 《정부》에 대해서까지 《어정쩡한 <청와대>는 정치바보노릇을 더이상 하지 말라.》고 제법 삿대질이다. 《한국》이라는 땅우에 이같이 서식하는 무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궤변이라는 직업으로 밥동냥해먹으면서 불법무도한 행위를 서슴지 않으니 남보기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보기조차 싫은 책을 집어내던진 김일순은 화김에 벌떡 일어섰다.
그때 문두드리는 소리도 없이 일진이가 들어왔다.
이건 또 무슨 꼴불견인가. 꼭 어리광대같은 차림이다. 격자무늬의 양복저고리 앞섶은 헤쳐졌고 목에 매달린 검은색 넥타이가 어깨쪽에 올라가 매달렸다. 거기다 연청색진바지까지 입어놔서 길거리 망종같은데 머리에 썼던 중절모를 벗어 앞가슴에 가져다대며 정중하게 허리부러진 인사를 한다.
《누님, 안녕하셨어요? … 이 못난 동생 인사를 드립니다.》
양복주머니에 두손을 찌른 김일순은 놀랍고 억이 막혀 마주보기만 할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술을 마시다니? 40고개를 넘어서도록 술냄새를 피워보지 못한 동생이였다. 그것이 설사 누이의 엄한 요구라 해도 동생자신이 술곁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고 그때문에 사랑스러웠던 동생이 아니였던가.
《누님, 왜 그렇게 보기만 해요? 나를 기다렸지요?》
《너 그게 무슨 꼴이냐?》
《헤헤… 멋이 있지요?!》
《그만해! 술을 마셨구나.》
마디마디 씹어대는 누이의 말에 일진은 휘청거리는 몸을 간신히 유지했다.
《마셨어요.》
《술을 마셔?》
《마셨어요.》
《정신있니?》
《마셨단 말이예요, 마셨단 말이예요!》
중절모자를 한손에 든 일진은 발까지 구르며 고함질렀다.
자제력을 잃은 김일순은 번개치듯 일진의 귀쌈을 후려갈겼다.
《네가 이젠 이 누이앞에서까지 추태를 부리는구나. 내가 말했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가 너와 네 아들, 손자까지 마실 술을 다 마시고 갔다고 내가 말했지? 못난 아버지같이 살지 말아야 할 너고 엄마처럼 눈물로 세월을 보내서는 안될 나라구! 사람이면, 말귀를 알아들을 인간이라면 우리들이 한 인생약속을 어찌 잊는단 말이냐?》
왼손으로 볼을 싸쥔 일진은 고개를 숙이고 서있다. 온몸을 말 못할 울분으로 떨고있다. 이따금 헉헉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두어깨가 마주 오르내린다.
《누님, 누님이 내 귀뺨을 치면서 그 손이 떨리지 않아요? 예?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닌 누님이 나를 때리는가 말이예요?》
《너한테는 내가 아버지이고 어머니다.》
일진은 발을 다시한번 힘껏 구르고나서 고개를 쳐들었다.
《나에게 부모님들을 찾아주세요, 존경하는 누님. 불쌍한 령혼이 된 그분들을 찾아달란 말이예요.》
눈물이 번들거리는 얼굴로 일진은 누이에게 한걸음씩 다가왔다.
《너 지금 제정신이냐?》
다급한 일순은 어쩔수없이 뒤걸음치며 동생의 만용을 저지시키려고 소리질렀다.
《나가라! 여기가 어딘줄 알고? 신성한 과학연구장소다. 술집으로 알고 찾아왔다면 썩 나가!》
《신성하구말구요. 누님은 그 과학이 신성한지 몰라도 인간 김일순은 결코 신성할수 없어요. 그래요!》
《네가 이젠 감히 나를 모욕해? 아!…》
《모욕이라면 참으세요. 그러나 무섭고도 가혹한 진실을 봐야 해요.》
《듣기 싫다! 주정뱅이한테서 진실은 무슨 진실?》
일진은 말없이 품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여 책상우에 놓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보세요! 누님이 간절히 부탁했고 알고싶었던 진실이 여기에 있어요.》
혐오감과 분노의 대상이였던 동생의 돌변하는 태도와 웨침에 김일순은 석상처럼 굳어졌다.
일진이 내놓은 종이장에 선뜻 다가설수 없었다. 거기에 그 어떤 운명의 선고가 적혀있을것만 같았다.
설마 내 동생이 의절을? 아니… 아니, 그럴수는 없다. 그애 입에서 돌아가신 부모님들에 대한 말이 어떻게 기염처럼 뿜어나왔을가. 4살때부터 이날까지 업어키우고 품에 안아 자래워 대학공부까지 시킨 내가 아닌가. 이 누이는 오늘까지 독신으로 살지만 집안의 대를 잇자고, 사내여서 가정까지 이루어주었는데 부모를 대신한 나를 무슨 까닭에 그다지도 핍박하는가.
김일순은 넋없이 책상우의 종이장만 바라보았다. 과학자로서 명예라는 만족속에 살았지만 고독한 인생이였다. 인간이고 녀성이면서도 사랑이라는 말조차 느끼지 못하며 50대에 이르렀다. 《한국》땅에 술 안마시는 똑똑한 남자는 없다고 생각하며 가정을 단념한 그였다. 일진은 김일순에게 있어서 유일한 혈육, 인생의 지지점이였다.
내가 그를 때렸다. 마흔살도 썩 넘긴, 처와 가족을 가진 동생에게 매를 들다니… 나라는 녀자의 후회는 언제나 이런거야.
김일순은 책상앞에 다가가 두손으로 짚으면서 종이장을 내려다보았다.
글줄을 더듬어나가던 그의 두눈은 시신경이 마비가 온듯 허둥지둥 방황했다. 6개 나라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능력의 소유자인 그가 모국어앞에서 글자 한자한자 뜯어 읽으며 뜻을 음미하려고 몸부림쳤다.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에 불과한 그리고 이북적십자사에서 의뢰하였다는 내용이 첨부된 문장이 전부인데 김일순은 손더듬을 하며 안경까지 찾아들고 읽고 또 읽었다.
《무… 무섭고도 가혹한 진실을 봐야 해요!》
일진의 목소리가 귀전을 후려쳤다.
《아!…》
더이상 자신을 지탱할수 없게 된 김일순은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었다. 텅 빈 머리속에 배고동소리같은 소음이 꽉 차서 아무것도 식별할수 없을 지경이였다. 아득히 먼 버럭산골안에서 가슴치는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립구나! 아, 보고싶구나! …》
술만 마시면 집안을 울음판으로 만들던 아버지의 넉두리 아닌 심혼의 탄식이였다.
《일순아, 이리 오렴. 엄마가 손을 한번 잡아보자꾸나.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아라. 아버지는 좋은분이시다.》
그리도 눈물많던 어머니였지만 림종의 시각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할 때엔 빛을 잃어가는 눈동자에 애절한 당부만을 담았다.
동생이 꺼내놓은 종이는 이북적십자사에서 보내온것이였다.
아버지의 이름은 김영준이였고 벽계리로인이 찾던 그 사람이다. 어머니의 이름은 오복순, 아버지보다 두살 우였으며 1950년 초겨울 피난민들의 소용돌이속에서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이남땅에 흘러온 그 소녀였다. 이북적십자사는 부모들의 사망년대를 정확히 제시하고 그들이 남긴 남매가 서울에 살고있으니 꼭 찾아서 흩어진 가족상봉때 북에 있는 혈육들과 만나게 해줄것을 의뢰해왔다.
《이게 사실이냐?》 하고 일순은 맥없이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나도 처음 이북적십자사에서 보내온 의뢰서를 보고 믿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그래서 내가 알아볼수 있는껏 알아보았어요. 틀림없더군요. 아버지와 함께 남으로 내려왔던 한사람이 전후엔 미국으로 간 모양인데 그 사람이 늘그막에 고향인 이북에 가서 아버지의 소식을 알린것 같애요.》
김일순은 어떻게 사실이 밝혀졌는가 하는것보다 다른것을 생각하고있었다. 남남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혈육으로 다가오는 무시할수 없는 엄연한 현실, 가혹한 진실앞에서 김일순은 동생이 왜 술을 마셨으며 분별없다고 할만큼 누이에게 대든 심정이 리해되였다.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가 마신것은 술이 아니였다. 민족분렬의 수난자로서 피눈물을 마시였다. 하지만 그 아버지가 세상빛을 보게 한 딸은 술주정뱅이 아버지라고 허구한 한생 저주하며 살아왔다. 이보다 참혹한 비극중의 비극이 또 어데 있겠는가.
아! 불쌍한 나의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이 효도할 사이도 없이 비명에 가슴쓰라린 한만을 안고 왜 그리 일찍 가시였어요. 이 딸이 무릎꿇고 천번만번 용서를 빈들 살아생전처럼 어찌 듣는단 말인가요. 저에겐 부모님들의 사진조차 한장 없습니다. 원망만을 가슴에 안고 40년이 넘도록 추석도 몰라본 불효자식이였습니다. …
김일순은 무릎꿇고 앉은채 두손을 모아잡고 고개를 쳐들었다.
불쌍한 나의 아버지, 어머니. 이 딸이 살아있는 한 부모님들의 유골이 고향땅에 묻혀 저승에서라도 한을 가시고 안식을 누리게 하렵니다.
령혼을 불러 마음속맹세를 다지는 김일순의 가슴속에서는 누구에게로 향하는지조차 알수 없는 증오가 타번지고있었다.
5
과학을 떠난 사유가 시작되고있다는것을 느낄 때마다 김일순은 자기와 함께 인간이라는 존재의 변화무쌍함에 신비로운 감정까지 가지게 되였다. 통일이라든지 민족이라든지 하는 사회적문제는 그에게 있어서 돌이나 쇠붙이같이 무관심한것이였고 《국회선거》라든가 《대통령취임식》 같은것은 TV방송에서 알리는 일기예보보다도 하찮게 여기였다. 이러한 무관심과 과학연구에서 얻는 자기만족이 얼마나 많은것을 잃고 살게 하는가 하는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김일순은 《통일부》에 북에 있는 혈육을 만나겠다는 요청서를 제출하였지만 부결당하였다. 이에 반발심을 눅잦힐수 없었던 그는 즉시에 학계의 거물급교수로서의 풍모를 가지고 기자회견마당에 나가 《나는 혈육을 만나고싶다.》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특유한 민감성으로 하여 흥분과 폭발이 빠른 대학생들, 지식층들측에서 즉시 반응을 일으키며 《우리는 김일순교수를 지지한다》는 산발적이고 소규모적인 집회들이 대학교들과 기자구락부 같은 곳에서 련일 열리였다. 《정부》에 의하여 북남관계가 차단된 정치환경에서 이와 같은 사태는 사회의 분위기를 팽팽하게 만들었다.
김일순은 평생 어긴적 없는 일과대로 계획된 강의와 연구생들의 실험실습을 지도했다. 그의 주위에는 학구열에 불타는 수십쌍의 눈동자들이 따른다. 전자현미경을 통하여 펼쳐지는 세포공학의 세계, 유전자들의 운동과 각이한 형태의 변이현상… 소형마이크를 손에 든 김일순은 TV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십시오. 그 어느 생명체든 환경의 지배를 받기마련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지구의 력사가 말해주며 오늘날 우리가 찾아낸 공룡과 털코끼리화석이 증명합니다. 환경의 지배속에서 생명체는 종의 보존과 증식을 위한 변이를 일으키는데 그것이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됨으로써만 종의 보존과 증식이 가능하고 불리한 변이현상인 경우에는 종의 파멸을 초래합니다.》
이때 문밖에서 청높은 소리가 울린다.
《못 들어갑니다. 선생님은 강의중입니다.》
어느 학생인가가 지키고있던 모양이다. 귀에 익은 목소리다. 김일순은 정확한 기억력으로 그 학생이 누구라는것을 알아냈다. 남에 돌아와 첫 강의를 하던 날 강의실에서 정치문제를 론하여 쫓겨났던 학생이다.
《우리는 교수선생을 꼭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우리 단체의 의사를 권고하자는겁니다.》
《강의시간에는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우리 말을 들어서 교수선생이 나쁠것이 없기에 이렇게 하는겁니다.》
김일순은 어떤 사람들이 찾아들었는가를 짐작할수 있었다. 이 땅에는 아래우도, 설자리, 앉을자리도 가려보지 못하는 무리하고 분별없는 단체와 그런 명목을 띤 인간들이 수없이 많다.
그는 마음속으로 제자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보내면서 강의를 계속했다.
《사회학적으로 고찰할 때 민족의 발전, 사멸, 동화의 과정도 변이현상과 결부시킬수 있습니다. 민족을 이루는 유전자들이 불리한 방향으로 변이를 일으킬 때 즉 민족성을 잃거나 부패와 타락과 같은 렬세가 커지여 더는 유지할수 없을 한계점에 이르면 사멸이라는 결과가 초래되거나 동화되여버립니다.》
강의실에 세 사나이가 들어선다. 그중 한사람의 손에는 수자식록화촬영기까지 들려있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도 있듯이 저들의 비렬한 행위를 가리우려고도 안한다.
김일순은 학생들앞으로 한걸음 더 나가며 강의를 계속했다.
《방금전에 제가 말한 병든 유전자들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는 제딴의 본능적인 방위력을 가지고있습니다.》
김일순의 강의는 청강생들의 가벼운 웃음으로 더욱 활기있게 계속되였다.
불청객들은 세포공학의 권위있는 학자가 란장판이 된 강의실에서 당황해하는 모습을 찍어가려고 왔다가 오히려 난감해졌다,
《교수선생, 래일 우리 협회에 와주십시오. 귀빈으로 맞겠습니다.》
체면을 지키려고 마지막으로 내든 주패장마저 일순은 가볍게 물리쳤다.
《기다리지 마세요. 그 시간에 나는 <청와대>에 가있을테니까요.》
학생들은 부드러운 언어로 조화된 스승의 도고한 기상에 박수까지 쳤다.
《교수선생, 당신을 두고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이름난 세포공학자라고 하겠지요.》
《<한국>학계의 마녀라고 합니다.》
《고작해서 그건가요? <정부>가 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나는 마녀가 아니라 마귀왕이 될수도 있어요.》
불청객들은 어쩔수 없는 상태앞에서 씨근씨근 제풀에 화를 내다가 물러가버렸다.
강의를 결속하면서 김일순은 생명세포공학의 전망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펼쳐보이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학생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민족구성원으로 개개가 생신하고 진취적이며 쉽게 변하지 않으면서 지구성을 가진 훌륭한 유전자들이 되여주길 바랍니다.》
청강생들은 김일순의 진심의 부탁을 들으며 감격을 금치못했다. 그들속에서 한 학생이 일어났다. 불청객들을 막아나섰던 학생이다.
김일순과 눈길이 마주치자 그는 사뭇 경건한 눈길로 바라 보았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그러자 학생들이 모두가 일어서서 박수를 보낸다. 별같이 빛나는 눈동자들, 이들에 의하여 민족의 장래는 밝은것이다.
그치지 않는 박수속에 김일순은 깊이 허리숙여 인사를 했다.
류다른 감회를 자아낸 하루도 저문다.
실험실에 혼자 남아 자기의 연구자료들을 검토하고있던 김일순은 문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학생들을 대표하여 존경을 표시한 그 학생이 일진을 데리고 나타났다.
《선생님, 손님이 왔습니다.》
며칠사이에 얼굴이 수척해진 일진이다.
김일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님, 전 처와 자식들을 데리고 아버지, 어머님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가서 살렵니다.》
일진의 결심은 이미 움직일수 없는것이 되였다. 무슨 일이나 누이와 꼭 토론하고 행동하던 동생인데 이렇게 변했다. 노염이라기보다 장하게 여겨졌다. 김일순은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나때문에… 욕 많이 했지?》
《누님에게는 제자들이 있지만 부모님들은 외롭지 않나요?》
《고맙다.》
김일순은 갈린 소리로 말하고나서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가면 부모님들께 살아있는 우리가 한을 꼭 풀어드린다고 말씀드려주렴.》 하고나서 일순은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 저희들은 오늘저녁 선생님을 위해 야회를 마련했습니다.》
학생의 정다운 목소리에 울고웃으며 김일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어요.》
《좋은 말씀 많이 듣고싶습니다.》
《지금 가야 하나요?》
《네.》
《잠간, 내 한가지 일을 할게 있어요. 별로 큰것은 아니지만, 편지를 쓰면 돼요.》
김일순은 책상에 앉아 편지를 썼다. 그리고는 그것을 학생에게 보였다. 학생은 그 편지를 읽었다.
《<청와대> 앞.
<대통령>각하, 6. 15정신은 우리 민족의 통일애국정신이며 시대의 지향입니다. 독재의 언제를 아무리 높이 쌓는다 해도 분단력사를 끝장내려는 민중의 거세찬 대하를 가두지 못합니다. 나는 과학자로서 각하께 정중히 권고합니다. 어느 군주도 대통령도 황제도 민족보다 오래 살지 못했고 살수 없다는것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