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추   억

 허 문 길

 

 

세월은 멀리도 흘러갔다.

벌써 근 50년이라는 긴 세월이 격류처럼 빨리도 지나갔다.

허지만 내 인생에 태여난 보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었던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은 어제런듯 생생하다.

그리고 그 고귀한 추억은 나를 오늘까지도 분렬된 강토가 동시대인들에게 짊어준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과제인 조국통일위업에서 자신의 인생좌지를 차지하고 그 길에서 피와 땀을 아낌없이 휘뿌리도록 끊임없이 깨우쳐주고 떠밀어주고있다.

 

1

 

둥글시계는 두점을 방금 쳤다.

동무들은 하나둘 자리를 뜨고 휑뎅그렁한 교실에 나 홀로 앉아있다. 열려진 창문으로는 맑고 신선한 미풍이 날아들어 초여름의 더위를 가셔준다.

나는 그적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학문탐구의 나날을 보내고계시는 김정일동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그토록 열망하던 배움의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과학의 세계에 휘말려들었던 나는 자기도 모르게 열려진 창문으로 먼 하늘을 내다본다. 야음이 서리여 우중충한 모란봉너머로 뭇별이 총총한 하늘이 남쪽으로 뻗어갔다. 나는 저도 모를 충동에 떠밀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리 남쪽으로 시커먼 구름장이 엉켜돌며 별빛 령롱하던 하늘을 메우고있다.

《장마가 지겠구나.》

나는 혼자소리를 내며 창문을 닫았다.

그러나 창가를 쉬이 떠나고싶지 않았다. 저 하늘밑에 두고 온 고향이 있다. 빛을 잃은 암흑이, 향기잃은 페허가 이밤에 시커먼 질곡에 휩싸여 허덕이고있다. 더더구나 지금쯤이면 우리의 한 학우가 고학의 설음을 삼키며 어느 한 골목길을 걷고있을것이다. 배움의 길을 찾아, 희망을 찾아…

(아, 남녘아…)

나는 조용히 부른다. 허나 내 가슴은 조용치 않다. 주먹이 으스러지게 잡힌다. 내가 이렇게 폭풍이는 가슴을 달래여 부르쥔 주먹으로 가슴팍을 누른채 창가에서 물러설줄 모르는데 등뒤에서 방문여닫는 소리가 났다.

이어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에 익은 발소리에 화닥닥 상념에서 깨여나 돌아섰다.

《!!…》

김정일동지께서 만면에 자애로운 미소를 함뿍 담으시고 조용히 걸어오신다.

내 마음은 단박에 부신듯 밝아졌다. 대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안으시는 정에 겨운 눈빛, 수수한 학생복차림을 하신 그이를 만나뵈오면 언제나 내 마음은 기쁨과 희망으로 부풀고 서려들던 만시름도 봄눈처럼 스르르 녹아내린다.

《도서관에서 교실이 밝은걸 보고 철규동무가 있을줄 알았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호수같이 잔잔하신 어조에 깊은 사랑을 담아 가볍게 나무람하신다.

나는 그이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인사를 먼저 받자 너무 송구해서 두볼만 벌개졌다. 이런 때면 나는 언제나 몸이 굳어진다. 그저 그이앞에 서면 어린애처럼 되고만다. 뒤날에 가서 생각하면 자기의 못난 처사에 울컥 화가 나기도 하지만 막상 이렇게 만나뵈오면 또 이렇게 되고만다.

《밤이 너무 깊었습니다. 철규동무, 몸을 아껴야지요.》

그이께서는 책상머리에 다가서시여 널려진 책을 차곡차곡 포개여 손수 가방에 넣어주신다.

그제서야 나는 그이의 앞으로 달려갔다.

《저는 괜찮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나는 진정을 담아 절절한 목소리로 아뢰였다. 그이의 슬하에서 어언 한해.

도대체 그이께서 먼저 댁으로 돌아가시는걸 본적이 없다. 아마 지금도 그이께서는 나를 돌려세운 다음에도 곧장 도서관으로 향하실것이다.

《내 념려는 아예 마십시오. 난 언제나 하루가 스물네시간이라는것이 늘 불만입니다. 허허…》

밝은 웃음을 지으시는 그이의 얼굴에 정녕 동트는 새벽같은 청신한 젊음과 줄기찬 열정이 넘쳐흐른다.

《그렇지만… 전 김정일동지께서 떠나시기 전에는 기숙사에 내려가지 않을터입니다.》

《허허… 철규동무가 이렇게 덧걸이를 할 때면 난 용빼는 수가 없거던. 좋습니다. 우리 함께 돌아가기로 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넓은 방안이 쩌렁하도록 호탕하게 웃으셨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기쁨에 겨워 대답했다. 학문탐구와 함께 우리 혁명의 전반에 걸쳐 지도의 손길을 펼쳐가시는 김정일동지께 다문 얼마만큼이라도 휴식을 드린다는것은 사실 쉽게 차례지지 않는 행복이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꾸렸다.

몇걸음 옮기시던 그이께서는 방문을 열다말고 나에게로 다시 돌아서시였다.

《그런데 철규동무, 난 요즈음 철규동무에게 충고를 주고싶은게 있습니다.》

웃음을 거두시는 그이의 말씀에 나는 저으기 긴장해졌다. 나는 눈길을 접고 은근히 땀줄을 움켜쥐며 그이의 말씀만 기다렸다. 그러나 나를 지켜보시는 그이의 밝은 안광은 언제나와 같이 내 마음 깊은 곳까지 환히 들여다보시듯 부드러움을 담으시였다.

《철규동문 누구보다도 몸을 귀중히 해야 할 사람이라는걸 잊고있는것 같습니다.》

《!…》

나는 우뚝 굳어졌다. 미제강점하의 남조선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살아오다가 배움의 길을 찾아 일본을 거쳐 조국으로 온 동무라고 하시며 각별한 정을 기울여주시는 김정일동지이시다.

(몸을 아끼라…)

그이의 말씀을 되뇌이는 나의 가슴은 일시에 불덩이같은것으로 꽉 차들었다. 어느때 어느 누가 내 한몸을 이토록 봄볕같은 따뜻한 손길로 덥혀준적이 있었던가. 지각이 들기 전에 차거운 마가을 비내리는 음산한 길바닥에 홀몸이 되여 내쫓긴이래 나는 도대체 나를 걱정해주는 포근한 정을 모르고 살아왔다. 지어 나에겐 짧으나마 꿀맛같은 어머니의 애무를 받던 그 시절의 추억조차 구슬프게만 남아있을뿐이다. 나는 눈시울이 뿌예졌다. 가슴 허벼드는 추억이 떠올라 눈물어린 망막을 가득 채워준다.

…내가 태여난 고장은 여름이면 해당화가 곱게 피고 겨울에도 푸른 대숲이 싱그러운 해풍에 설레이던 령남땅의 어촌마을이였다. 태여난 고향은 꽃피는 고장이였건만 나의 어린시절은 너무도 을씨년스러웠다. 아버지얼굴도 모르고 자라난 나의 머리속에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것은 주름진 어머니의 눈물어린 얼굴이다. 원래 눈물이 많으시였는지 어머니는 나를 안아주실 때면 늘 우시군 하셨다.

《아가야, 아무리 쥐여짜도 네 작은 배를 채워줄수 없구나.》

《철규야, 어서 커라. 미국놈들이 아버지를 끌어갔단다.》

처량한 푸념을 꿈결처럼 들을 때면 나도 쿨쩍거리며 어머니의 지절지절한 눈굽을 슬그머니 손등으로 닦아준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의 이마에 눈물에 젖은 볼을 비비며 더 좔좔 눈물을 쏟아놓군 하였다.

어머니의 주름진 이마가 건듯 말아들리고 그 어진 얼굴에 감빛노을같은 웃음발이 피여나던, 그러나 그 웃음이 뼈에 사무친 통곡으로 터져오르던 잊을수 없는 그날이 또 생각난다.

… …

《깽깽이가 야단을 치겠구나!》

그날 아침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앉은 나는 환해진 동창을 보고는 이렇게 겁질린 소리를 내질렀다.

《원 자식두, 마나님이 들으면 변이 나겠다.》

머리맡에서 울리는 웃음기어린 어머니소리다.

《흥! 그까짓 깽깽이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며 이부자리를 개였다. 깽깽이란 우리네가 행랑살이를 하던 버클리라는 미국선교사의 녀편네에게 내가 붙여놓은 별명이였다. 머리칼이 새노랗고 눈알이 새파란 녀편네가 늦잠을 잔다 깽깽, 꼴단이 작다 깽깽, 심부름을 갔다오라 들볶으며 깽깽거릴 때는 정말 주인집 대문가에서 밤낮없이 깽깽거리는 털부숭이강아지와 신통한데가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살길을 찾아다니다가 이곳 바다가마을의 교회당 종지기령감이 살고있는 행랑집의 방을 한칸 얻어 살고있었다. 버클리집안의 청소며 정원관리며 빨래며 닥치는대로 일하면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갔다. 나도 일곱살에 접어들면서부터 일거리가 차례졌는데 여름이면 새벽 일찌기 깨여나 버클리가 타고다니는 조랑말이 먹을 새초를 한짐씩 베여들이는것이였다. 겨울이면 교회당에 나가 불을 때고 여기저기 심부름을 다니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날은 이상하였다. 새벽참이면 녀편네의 그 깽깽이가 싫어서 나를 조심조심 흔들어깨우던 어머니가 이날 아침은 별스럽게도 머리맡에 그냥 무릎을 세우고 앉은채 나를 내려다보며 주빗이 웃고있는것이다. 나는 볼부은 소리로 물었다.

《엄마, 왜 날 깨우지 않았나?》

《오늘은 꼴짐을 지지 말아. 종지기할아범이 돌아오는 길에 한짐 베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어서 세면하고 밥을 먹자.》

《체, 또 깽깽거리라구.》

《일없다.》

《안돼요!》

나는 고집스럽게 저고리소매를 부등부등 꿰지르고 낫을 찾았다.

《어머니말을 듣거라, 철규야.》

어머니의 얼굴이 일순간 노해졌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따뜻하고 애달픈 정이 가득차있었다. 하는수없이 나는 얼른 세면하고 들어왔다. 문지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눈이 퀭해지고말았다. 방안가운데 노전우에는 보리밥 한종지와 참대순나물, 고사리, 닥지싹 등 여러가지 산나물과 내가 여적 본적이 없는 납작한 물고기 한마리가 댕그란 접시우에 놓여있었다.

《엄마, 이건 뭐가?》

나는 닭알침을 꿀떡 삼키며 너무 희한해서 소리쳤다.

《원 자식두, 어서 이리 와앉아라. 오늘이 네 생일이란다.》

어머니는 그 무던한 얼굴에 노상 웃음을 지우지 못하고 벙글거렸다.

《생일이면 이런걸 먹나?》

어머니는 말없이 머리만 끄덕이였다. 검실검실한 눈에 서글픈 웃음이 비껴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기분이 좋아서 그 납작한 고기만 내려다보며 아무 소리나 마구 탕탕해대였다.

《힝! 생일이라는게 이런거라면 난 맨날 생일이면 좋겠다-》

나는 엉거주춤 밥그릇앞으로 다가가다가 어머니가 등디목을 내려서는것을 보고 《엄마, 같이 먹자. 이 숱한걸 내 혼자 다 먹나?》 하고 제법 어른스럽게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나는 먼저 먹었다.》

《거짓부리?!》

《어서! 마나님이 들어오겠다.》

《그까짓 마나님! 들어오면 뭐래. 제 밥 제 먹는데…》

《그래두 마나님은 이런걸 보면 좋아 안한다.》

이렇게 모자간에 뼈가 저려드는 이야기가 오가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깽깽이》가 뚱기적거리며 들어왔다. 큰소리 땅땅 치던 나였지만 오뉴월 염천더위에도 서리가 돋치게 할 그 파릿한 기상에 단박에 예기가 질렸다.

《아니, 식전에 행랑어멈이 퍼더버리고있으면 어쩔테냐?》

양철판 맞긁는 소리를 지르던 주인녀편네의 눈살이 불현듯 꼿꼿해졌다. 방바닥을 본 모양이다.

《흥, 잘은 처먹는다. 이렇게 질탕거리니깐 배때기에 빌기가 서서 느물거리지.》

나는 무심결에 어머니의 얼굴을 곁눈질해보았다. 긴 속눈섭이 파르르 떨리고 아래입술이 옥물려졌다.

그때 녀편네의 악에 받친 소리를 들은 버클리놈까지 들이닥쳤다.

《뭣들이냐. 뭣들을 하는거냐?》

그놈은 문턱을 넘어서기 바쁘게 퉁방울같은 눈을 부릅뜨고 꽥 소리질렀다.

《저… 오늘이 우리 철규의 생일이길래…》

어머니가 두손을 쥐고 푹 목구멍에 꺼져드는 소리로 대답했다.

《생일?… 어허, 종살이주제에 생일이라? … 이년! 아이새끼생일 중한줄은 알아도 저 조랑말 배가죽이 쭈그러드는줄은 모른단 말이지.》

《아, 아니올시다. 그래서 꼴은 종지기할아버님이 대신해서… 워낙 애생일이 보리밥구경도 힘든 시절이 돼서 생일을 모르고 여덟이 되도록 지나왔습니다. 그게 늘쌍 가슴에 맺혀서 내 올해에는 기어이…》

《아아아- 잔말말구 아이를 내보내.

얘 철규야, 제깍 갔다오너라. 꼴을 멕여서 어물실으러 보내야겠다. 점심땐 숱한 손님들이 오겠는데…》

나는 훌떡 신발을 찾아신고 문고리를 잡았다. 그자리에 그냥 서있다가는 어쩐지 울것만 같았다.

그때 어머니가 달려나와 내 팔을 붙잡았다.

《놔요, 어머니!》

나는 순간 설음에 겨워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철규야!》

어머니의 엄한 부름에 나는 흠칫거리며 문고리를 놓았다. 어머니의 눈굽에 물기가 고여들고있었다.

《주인님, 저… 저렇게 애가 금방…》

《뭐가?》

그제야 주인놈의 텁숙한 눈섭이 버쩍 쳐들리더니 기가 뻗쳐 방바닥을 노려본다. 퉁방울눈에서 눈알이 금방 삐져나올것 같았다. 그놈은 구두발로 노전우에 겅정 뛰여올라 대뜸 그리도 군침을 삼키게 하던 고기를 지팽이끝으로 쿡 찔렀다.

《으흠, 도미로구나. 산신도 구경 못한다는…》

그러며 내 밥그릇과 어머니를 당장 삼켜버릴듯 번갈아 노려보았다.

《차려놓은 물건이 없어진다고 해서 집구석에 도적고양이 큰 놈이 있다 했더니 네년이였구나. 어, 고약한 년!》

그놈은 구두발로 밥식기를 걷어찼다. 신도들앞에서 십자가를 들고 거룩하게 《아멘》을 부르면서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맡겨야 선인이 되여 죽어서도 《하느님》의 품에 안긴다고 설교하던 그놈이 금시 피를 본 맹수처럼 날뛰기 시작하였다. 밥사발이 댕그르 굴러가고 찬거리들이 노전우에 지저분하게 널렸다.

《이게 무슨 짓이요!》

어머니가 분연히 나섰다. 언제나 슬픔을 담고 수심에 잠겨있던 어머니의 눈에 순간 불찌가 일었다. 그렇게 무서운 어머니의 얼굴은 본 일이 없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아이생일은 내 반지를 뽑아 차린거요.》 하며 어머니는 그놈의 지팽이를 홱 나꾸채서 무릎에 대고 뚝 꺾어 휭하니 문밖에 던졌다.

《이년이-!》

그다음엔 난 어떻게 되였는지 모른다. 다만 그놈의 우악스런 구두발이 어머니의 어깨와 잔등과 가슴팍에 비발치듯 떨어지고 그 구두발을 잡으려고 내가 달려들던 생각만이 있을뿐이다. …

이렇게 《하느님의 사도》라고 하던 미국의 악마들은 보리밥 한종지와 고기 한마리로 차려진 생일상에 고여있는 어머니의 크지도 못한 소원과 웃음마저 차던지고말았다. 이것이 우환이 되여 어머니는 몸져누웠다가 그해 늦은 가을에 돌아갔고 나는 마침 마음무던한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 공부절반, 일 절반의 새로운 생활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내가 공화국의 품에 안겨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으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너무 억이 막히시여 한동안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분통한 일입니다, 철규동무.》

그때 그이께서는 들먹이는 나의 어깨를 두드리시며 격노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남녘땅에 미국놈들이 있는 한 우리 인민이 당하는 불행은 끝장나지 않을것입니다. 남녘땅의 그 피맺힌 원한을 잊지 못하시여 수령님께서는 온 민족이 단합하여 남녘땅에서 미국놈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늘 가르치고계십니다.》

 

2

 

유난히도 별밝은 밤이였다. 끝없이 건듯 들린 하늘엔 흰비단필을 펼친듯 은하의 세계가 넓은 폭으로 가로질러갔는데 무수한 별들이 그속에서 속삭이듯 새롱거리고있었다. 교사를 나서니 대동강을 거슬러오르는 신선한 바람이 룡남산기슭의 향긋한 꽃향기를 실어와 가슴을 적셔준다.

《어떻습니까? 이젠 공부에 자신이 생깁니까?》

평화로운 정적, 포근한 안식에 잠긴 수도의 밤거리를 이윽토록 굽어보시던 그이께서 나를 돌아보신다.

《네, 환해집니다. 자신이 생깁니다.》

나는 힘있게 대답했다.

《저에게 지금만 한 준비가 있었다면 세상물정을 바로 알고 보람있게 살았을것입니다.》

나는 서늘한 대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바위라도 단주먹에 부스러뜨릴 용기를 가지고 말씀드렸다.

《허허, 철규동무도 이제 보니 급한 성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조국통일을 이룩하자면 어렵고 힘든 길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참, 철규동무의 론문을 다 보았습니다. 비교적 론리가 정연하게 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나는 저으기 긴장해져서 온 심력을 다 모아 그이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이즈음에 나는 민청조직의 분공에 따라 통일운동에 대한 소론문을 준비하고있었다.

나는 남쪽에서 반독재투쟁에 관여했던 체험과 느낌을 가지고 나름으로는 틈새가 없도록 미끈하게 초고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조직에 제출하자니 미흡한 생각이 들어 그이의 고견을 듣고싶은 불같은 충동을 금할수 없어 김정일동지께 드리였던것이다.

으스름한 밤은 바람 한점 없이 소리없는 정적에 잠겨있다. 온 누리가 이 시각 혁명의 진속을 툭툭 빠개주시는 그이의 사리정연하신 가르치심에 귀를 강구는것만 같았다.

《통일운동의 과녁이 명백히 설정되여야 합니다. 그것은 첫째도 둘째도 미제침략자들입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은 미제국주의자들이 남조선땅에 있는 한 민족분렬과 남녘인민이 당하는 고통은 절대로 끝장날수 없다는것을 피로써 새겨주었습니다.

생각해보시오. 리승만독재<정권>은 무너졌지만 보다 포악하고 무지막지한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그 끈을 막뒤에서 누가 쥐고있습니까. 다름아닌 미제국주의입니다. 그러므로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서는 북남인민이 하나로 뭉쳐 우리 민족자주의 힘으로 미제침략자들부터 쫓아내야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디마디에 박력을 주시다가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

나는 통일운동의 귀중한 철리를 깨우쳐주시는 그이의 가르치심을 가슴속깊이 새겨넣었다.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세차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은 너무도 명백한 진리였고 정의였다. 문득 나의 눈앞으로 내 어린시절의 잊을수 없었던 추억의 한토막이 떠올랐다. 금물을 올려 번쩍거리는 지팽이에 도미를 꿰들고 덤벼들던 미국의 선교사 버클리. 어머니를 무참하게 숨지게 하고 나의 소중하고도 크지 않은 행복과 기쁨마저도 깡그리 빼앗아간 평생토록 지울수 없는 숙적. 원래 버클리집안은 3대로 남녘의 나의 고향, 경치좋은 바다가에 둥지를 틀고 미제의 대조선침략의 길잡이로, 하수인으로 복무한 선교사의 거룩한 탈을 쓴 원쑤들이였다. 버클리는 미제가 남녘땅에 《군정》통치의 막을 올렸을 때부터는 검은 도포마저 아예 벗어던지고 《군정청》의 흑막인물로 들어가박혔고 리승만독재《정권》의 막후조종자로서 암약하였다. 그놈은 리승만독재가 무너진 후에도 여전히 남조선의 권력층을 뒤에서 쥐고흔들면서 조국의 통일을 가로막고 분렬의 영원한 고착화를 위하여 동분서주하고있었다.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는 마땅히 이런 놈들부터 차던져야 할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리승만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승리의 열기에 들떠 이제는 남녘사회의 민주화도, 조국의 통일도 이루어질것이라는 환상에 도취되여있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나는 가슴속에서 쌍곡선치며 부풀어오르는 자책과 환희의 두 감정에 휩싸여들었다.

김정일동지의 열정에 넘친 말씀이 이어졌다.

《그러니 중요한것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는것입니다. 이 문제가 선이 굵직하게 강조되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김정일동지!》

나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힘차게 대답을 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걸음을 옮겨 교사앞 계단을 내리시였다. 계단량옆에서 내려비치는 푸릿한 수은등불빛을 온몸에 받으시며 천천히 계단을 내리시는 그이의 모습은 그지없이 부드럽기도 하고 한없이 엄숙해보이기도 하였다.

《철규동무.》

문득 그이께서는 비감이 어린 음성으로 부르시였다.

《오늘 신문을 보았습니까?》

《예, 보았습니다.》

나의 가슴이 순간 후두둑 들뛰여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늘 받은 신문에는 남녘땅에서 통일을 주장한 사람들을 또 수십명이나 체포투옥한 군사파쑈도당의 만행이 크게 실려있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은하수가 꼬리쳐간 먼 남쪽에서 이윽토록 시선을 떼시지 못하다가 《이밤은 어떻게 지내는지…》 하고 혼자소리로 무겁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그이의 그 모습앞에서 온 심장을 비틀어내는 괴로움에 짓눌리워 눈굽이 핑그르르해졌다.

(이 시각에도 차디찬 돌담벽에 몸을 맡기고 뙤창너머 반짝이는 뭇별들을 바라보고있을 남녘의 민주인사들을 그려보시는 김정일동지…

아, 이 깊은 밤 철창속 인사들생각에 걸음 옮기시지 못 하시는 김정일동지의 이 거룩한 영상을 남녘동포들이 알수 있을가?)

《너무… 너무 마음쓰시지 마십시오.》

가슴저린 생각에 잠겨들던 나는 이렇게 나직이 말씀드렸다. 그때 그이의 격동에 넘치신 목소리가 이밤에 칭칭 서린 으스름을 일격에 가셔던지듯 기운차게 울렸다.

《어서 빨리 그들에게 해빛을 줍시다. 가슴터지는 이 원한을 그대로 두고서야 우리가 무슨 조선의 혁명가들이겠습니까!》

그이께서는 힘차게 걸음을 옮기시였다.

어느덧 우리는 수은등불빛 휘황한 대통로에 나섰다. 향기로움을 담뿍 실은 꽃바람이 그이의 옷자락에 어리광치듯 매달려 가볍게 날렸다. 붉고 푸른 불빛이 아롱져 부서지는 아스팔트우로 차들이 경쾌한 동음을 날리며 미끄러져간다. 다시금 수도의 밤은 바닥없는 미궁에 가라앉으며 소리없이 깊어갔다. 그이를 모시고 발목이 시도록 걷고싶은 밤이였다.

(참, 대학구내가 왜 이리도 짧을가?)

나는 얼토당토치 않은 생각을 하며 아쉬운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덧 김정일동지와 헤여져야 할 길목에 이르렀던것이다. 나는 그이의 곁에서 떨어지기 아쉬운 감정을 누르며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인사를 올리려고 하였다.

그런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은근하신 목소리로 부르시였다.

《참, 철규동무.》

나는 모자를 벗어쥔채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우리 날이 밝으면 하루 대동강바람을 쏘이지 않겠습니까?》

《예?》

뜻밖의 말씀에 나는 어정쩡해졌다.

《허허… 왜 그렇게 놀랍니까? 싸움을 본때있게 할줄 아는 사람들은 휴식도 본때있게 할줄 알아야 합니다. 하루를 유쾌히 보냅시다.》

나의 가슴에는 금시에 아이들같은 환희가 그들먹이 차올랐다. 그렇게 휴식을 권해드려도 굳이 사양하시던 그이께서 하루를 내신다는것은 얼마나 경사로운 일인가. 그이를 배웅해드리고 기숙사에 들어선 나는 동무들에게 한시바삐 이 소식을 전해주고싶었다. 하지만 자정도 훨씬 넘은 밤이라 호실마다에는 이미 불이 꺼져있었다. 하는수없이 호실에 돌아온 나는 누를길 없는 흥분과 행복감에 사로잡힌채 한동안 침대곁에서 서성거리기만 하였다.

 

3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바람으로 학급반장인 리철석이부터 찾아갔다.

(그들도 이 소식을 들으면 들썩거릴걸! …)

나는 사뭇 명랑해져서 리철석의 호실문을 열었다. 다른 동무들도 방안에 빼곡이 앉아있는데 리철석은 그가운데에 주저앉아 손풍금의 멜빵을 고치고있었다.

《철석동무.》

나는 리철석의 손목부터 덥석 잡았다.

《?》

《이거 경사가 생겼소. 경사가 말이요!》

《경사라니?》

벙글거리던 동무들의 눈길이 나에게 쏠리였다.

《아, 글쎄… 참》

나는 내 말귀를 제꺽 알아듣지 못하는 리철석이 오히려 안타까웠다.

《차, 이런… 철규동무도 덤빌 때가 있구만!》

리철석은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하는 거동에 씨물씨물 웃었다.

《아, 글쎄 김정일동지께서…》

《예?》

그제야 리철석이도 정색해지더니 자세를 바로잡는다. 나는 잠시 숨을 길게 들이긋고는 걷잡을수 없는 흥분을 눅잦혔다. 그리고는 잠시 이 가슴벅차게 할 소식을 어떻게 전할가 머뭇거리다가김정일동지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휴식을 보내시겠다고 하셨단 말이요!》 하고 단숨에 말해버렸다.

《철규동무, 우리도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준비하고있지 않습니까.》

《아니?! 철석동무도 들었단 말입니까? 언제?》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황황히 물었다.

《벌써 달포전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네? 달포전이라구요?》

나는 더욱 놀랍고 의아쩍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이거 우리가 철규동무에게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사실은 다른 사업들도 원만히 보장해야 되겠기에 몇동무들만 준비해왔습니다.》

그러니 틀림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난 왜 그런 기미조차 모르고 지냈을가?

《어느날 김정일동지께서는 저 달력을 보시다가 오늘날자에 동그라미를 쳐주시더니 이날에 휴식을 조직해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며칠전에는 우리들의 준비까지 일일이 봐주셨지요.》

나는 방가운데 있는 둥근책상으로 다가가 달력을 살펴보았다. 정말 오늘날자에는 빨간색연필로 두번세번 동그라미가 그려져있었다. 그리고 그옆에는 《준비품》, 이렇게 크게 써있고 그밑으로 《손풍금, 뽈, …》 이렇게 휴식에 필요한것들이 활달한 글체로 적혀있었다.

《철규동무, 오늘은 진대통을 두드려봐야지.》

리철석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그 소리에 방안에는 폭소가 터졌다. 학급동무들은 어쩌다가 요행 한번씩 불러보는 나의 노래소리를 진대통 두드리는 소리라고 유쾌하게 놀려대군 했다. 하긴 그래서 난 노래라면 뒤통수부터 슬슬 긁는다. 항쟁의 거리를 누비던 시위대에서도 난 구호대라면 주먹을 불끈 쥐고 데리고 다녔지만 가창대라면 애초에 돌아앉군 하였다. 손풍금이 풍짝풍짝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삽시에 호실은 노래소리, 웃음소리, 악기소리로 떠나갈듯 했다.

《철규동무, 오늘은 꼭 불러야 하오. 성의껏 그이를 기쁘게 해드려야지.》

리철석의 의미심장한 말에 나의 생각은 깊어졌다. 정말 그이께서 모처럼 마련하신 이 기회에 오랜 나날 쌓이고쌓인 김정일동지의 피로가 대동강바람에 말끔히 씻겨내린다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그이께서 약속하시였다는 열시를 채우지 못하고 기숙사를 나섰다. 한발이라도 앞서가서 그이께서 제일 만족해할수 있는 경개좋은 곳을 골라내고싶었다. 우선 동무들에게 물어보니 모란봉에서도 그중 꼽히는 곳이 청류벽이라 한다.

장마초입이 돼서 날씨는 꽤 물쿠었다. 그래도 기분은 하냥 상쾌하고 걸음엔 날개가 돋쳤다. 나는 단숨에 룡남산언덕을 넘어 모란봉기슭에 잡아들었다. 푸름이 청청한 수림은 맑고 싱싱한 기운을 취할듯 안겨준다. 어데선가 풀매미의 간드러진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매음-맴-맴-

제법 여무진 소리에 나는 히죽이 웃었다. 나는 록음방초가 우거진 수려한 산천에 한결 이채를 돋구는 그 소리에 이끌려 숲속을 찾아들었다. 아름드리 밤나무밑에 이르러 풀매미가 난딱 앉아있는 가지를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였다.

《울어라, 울어! 더 기운차게 울어대라. 환영곡처럼 멋들어지게 말이다!

이제 너희들도 어떤분을 모시게 되는지 알게 될게다.》

… 문득 들려오는 은은한 노래가락이 또 걸음을 붙잡는다. 한패의 처녀대학생들이 산듯한 교복을 받쳐입고 노래를 부르고있다. 숲속에 고요히 흐르는 처녀들의 노래소리는 대동강물결처럼 맑고도 은은하게 내 가슴에 스며들었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나는 그 청아한 선률처럼 그리움에 사무쳐드는 가사를 새겨들으며 부풀어오르는 감개를 금치 못하였다. 숭엄하면서도 어덴가 절절한 향수에 잠기게 하는 노래의 서정깊은 세계도 다감하거니와 보다는 김정일동지께서 즐겨하시고 사랑하시기때문이였다. 행복의 꿈나라에 그윽히 잠겨든 수도의 거리에 정다운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저 노래가 은은하게 깃을 내릴 때면 그이께서는 바쁜 걸음을 멈추군 하신다. 그럴 때면 예지로 빛나던 그이의 눈가에도 아늑한 감회가 젖어오르고 입가에서는 저 노래소리가 나직이 흐르군 하였다. 이곳에 오르시여 모란봉을 젖빛안개마냥 유유히 휘감아메우는 저 노래를 들으시면 김정일동지께서는 또 얼마나 기뻐하시랴. …

《아차, 잊었군. 노래를 골라야지. …》

나는 제풀에 싱겁게 웃고말았다. 할수 없지. 진대통 두드리는 소리같아도… 오히려 내 목청으로 《사향가》를 불러드린다면 그이께서는 재청까지 요청하실지도 모르지. …

나는 어느새에 모란봉정각을 넘어서 청류벽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첫눈에 보매 과연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 오시여 한껏 즐겨주실 그이의 인자하신 모습을 방불히 련상해보는 나의 마음은 그저 환희에 넘쳤다. 열시반쯤 돼서 리철석의 듬직한 몸집이 정각옆에 나타났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나는 한달음으로 마중을 갔다.

《?!…》

리철석이만 뛰여오고있다.

《그러면? …》

나의 기분은 졸지에 흐려졌다. 그이께서는 아마 또 다른 사업이 제기되신거겠지. 나는 서운해지는 마음을 이렇게 달래이며 리철석에게로 천천히 마주갔다.

《철규동무, 어서 갑시다. 김정일동지께서 기다리십니다.》

《예? 어디 말입니까? 그럼 그이께서는…》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어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그이께서는 철규동무가 청류벽에로 갔다는 말을 들으시고 장소를 다른 곳으로 찾아보자고 하셨습니다.》

《예? 그럼, 오셨습니까?》

나는 대뜸 환희에 넘쳐 큰소리로 물었다.

《오시지 않구요. 지금 야외극장쪽으로 향하고계십니다. 그쪽에 해당화가 많거던요.》

《해당화요?》

《예, 김정일동지께서는 청류벽이 절승이긴 하지만 해당화가 없는게 유감이라고 말씀하셨답니다.》

《해당화가 없다구요?》

김정일동지께서는 해당화는 철규동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고 하시면서 오늘은 뭐니뭐니 해도 해당화가 많은 자리를 찾아보자고 하셨지요.》

《해당화!》

나는 그만 온몸이 쩌릿해져서 걸음을 멈췄다.

《아니? 왜 그럽니까, 철규동무?》

리철석이 물기가 확 내돋치는 나의 눈을 보고 덩달아 시큰해져서 물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이렇게 종작없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떨군채 발을 내짚었다. 다리가 후들후들거려졌다. 해당화… 해당화…

그 아름다운 꽃이 추억의 저 먼먼 기슭에서 물결에 실린듯 당실당실 춤을 추며 다가온다.

나는 더는 허둥거리는 걸음을 주체 못하고 발을 세웠다.

《철석동무, 제 한번은 김정일동지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해당화라고, 그 꽃을 볼 때면 해당화피던 고향마을을 보는것 같다고 말씀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리철석이 불쑥 나의 주먹을 뜨겁게 잡는다.

《우리 언제면 그이의 그 깊으신 뜻을 헤아릴수 있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추근히 젖어있었다.

우리는 야외극장으로 가는 내리받이에서 동무들과 함께 오시는 김정일동지와 마주치게 되였다.

《아 철규동무, 어서 오시오. 철규동무의 솜씨를 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나의 인사를 정겹게 받아주시며 즐겁게 웃으시였다.

《아니, 김정일동지께서 만돌린을 타십니까?》

그이의 손에 들려있는 만돌린이 언뜻 눈에 들어 나는 이렇게 물으며 웃었다.

《하하, 철규동문 나를 과소평가하는구만. 이제 이 만돌린에서 스무가지 장끼가 나올 땐 철규동무도 노래 한번 하고픈 생각이 부쩍 날게요. 하하…》

그이의 웃음소리에 화답이나 하듯 숲속의 새들이 푸드득 날아올랐다. 우리는 그이를 모시고 떠들썩 웃으며 해당화가 모락모락 소담히도 피여있는 양지바른 기슭에 내려섰다. 떨기떨기 불타는 꽃송이들이 불시에 눈굽을 지지며 안겨든다. 해당화! 오, 해당화! 나는 목이 꺽 메여 김정일동지의 숭엄한 영상을 우러러 삼가 옷깃을 여미였다.

흥미있는 휴식의 막을 열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오락회의 종목이 바뀔 때마다 내 이름을 부르시며 기어이 휴식의 주인공으로 내세워주군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이의 고마운 정에 눈시울이 달아오르고 목구멍이 찌르르해졌다. 그래서 노래경연이 열릴 때에는 단단히 채심하였다.

(일이 꺼꾸로 돼간다. 이제라도 그이를 즐겁게 해드리자.)

나는 노래경연이 선포되자마자 성큼 복판으로 나갔다.

《첫 노래는 내가 하겠습니다.》

우정에 넘치던 눈길들이 휘둥그래졌다. 이런 곳에서는 의례히 꼬리를 사리던 내가 련상되였던 모양이다. 아닌게아니라 말까지 떼놓고보니 몸처신이 거북해지기도 했다.

《좋소! 이건 정말 경사가 될만 한 일이요.》

김정일동지께서 고무해주시듯 큰소리로 웃으시며 선참으로 박수를 보내주셨다.

내가 어울리지 않게 감정을 잡는데 그이의 활달하신 목소리가 들렸다.

《자, 내가 전주를 떼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만돌린을 가슴앞에 올리시더니 《철규동무에겐 이 노래가 제일 통할거요.》 하고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씀하시며 남녘에서 오래전부터 불리우던 노래의 전주를 떼주시였다.

나는 선뜻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그이께서 말씀하신것처럼 나는 이 노래만은 유독 좋아했다. 우선 비장해서 좋고 사나이의 끓는 피가 있어 좋았다. 음정이 내 생각에도 불안하고 떨렸지만 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걸걸한 목소리를 량껏 뽑으며 불렀다.

 

보아라 피에 젖은 남조선땅을

우리 부모형제가 목숨걸고 싸우는 땅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목소리를 합쳐주시였다. 모두가 일어났다.

 

일어나라 조국의 아들딸들아

조국의 운명이 우리 힘에 달렸다

 

우렁찬 노래에 기세를 얻은듯 쏴- 수림이 설레인다. 나에게는 이 수림이 삼남의 대숲처럼 보였다. 설레는 숲을 거슬러 내 고향 바다가의 정다운 파도가 굼실거리며 밀려오는것 같다. 그우로 김정일동지께서 타시는 만돌린에 맞추어 부르는 장엄한 노래가 폭풍처럼 밀림을 휩쓸며 울려간다. …

어느덧 정오가 되였다. 정자나무그늘아래 점심이 차려졌다. 우리는 김정일동지를 모시고 잔디밭에 둘러앉았다. 열두어명 동무들이 모여앉으니 그저 그이를 세대주로 모신 오붓한 식솔같다. 이 단란한 분위기에 나는 또 눈뿌리가 찌르르해왔다. 이렇게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자리가 나의 기억엔 없다.

《철규동무, 이리 나앉으시오. 오늘은 동무가 주인이요.》

김정일동지의 말씀에 나는 주춤거리며 나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이 훌륭한 좌석의 주인이 될수 있는가? …

나에게로 이윽히 시선을 주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내옆자리로 오셨다. 나는 얼른 눈지방을 훔치고는 그이의 옆으로 나란히 앉으며 애써 웃었다.

《자, 다들 다가앉으시오. 이 기쁜 날에 허물될게 뭐 있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수 손칼을 드시고 새파란 무늬가 아롱아롱한 수박을 짜개시였다.

 나는 급급히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헝클어진 나의 몸상태를 둘러보신 그이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철규동무, 오늘은 그저 내 하라는대로 눌러있소.》 하시며 옷자락을 잡아내리시였다. 그이께서 손을 오르내리실 때마다 발깃한 속살이 드러난 수박쪼각이 이편저편으로 갈라지면서 들큰한 향기를 풍겨준다. 그이께서는 쪼각쪼각 열두쪼각이 되자 그중 큰것으로 골라 맨 선참으로 내앞에 내미시였다.

나는 너무도 황송스러워 손을 오히려 뒤켠으로 감추며 뒤로 물러앉았다.

《그러지 말고 어서 들라구.》

그이께서는 나의 손에 기어이 수박을 들려주시고야 빙그레 웃으시며 다른 동무들에게도 권하시였다.

그때였다. 매음-맴맴맴- 풀매미가 바로 머리우에서 귀따갑게 울어댔다.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허허, 저놈 보지. 너도 기쁜 모양이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유쾌하게 말씀하시며 해빛같이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다. 삽시에 잔디밭우에 다양한 봄기운이 떠돌고 노을같은 웃음발이 찰랑이며 흘렀다. 그이께서는 다시 화기가 피여오른 내 얼굴을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다가 나의 오른손을 살그머니 자신의 가슴앞으로 당기시여 두손을 꼭 감싸안으시였다. 그리고는 은근하신 어조로 《축하하오, 철규동무! 내내 건강하시오.》 하시며 손을 흔들어주시였다.

나는 너무도 뜻밖의 사랑과 은정에 넘치는 고마우신 축하에 어리둥절해졌다. 아무리 뒤집어 생각해야 축하를 받을만한 일이 없었다. 동무들도 이 감격스러운 순간에 그저 어리둥절해져서 김정일동지의 모습과 나의 얼굴을 살피였다.

《철규동무.》

그이께서는 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여전히 은근하신 어조로 말씀을 이으셨다.

《오늘이 바로 동무의 생일입니다.》

《예?》

나는 그 말씀에 솟구치듯 일어났다. 생일! 생일이라니?!

《동무들!》

문득 그이의 정에 넘치시던 목소리가 퍼그나도 갈리시였다.

《우리 너무 일찍 떠나가신 철규동무의 부모님들을 대신해서 그리고 철규동무와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앉지 못하는 남녘학우들을 대신해서 철규동무의 생일을 축복합시다.

차린건 없어도 생일상이라 생각해주시오, 철규동무!》

순간 나는 심장이 뚝 멈춰서는것만 같았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수림이 기울떡거리였다.

(생일! 생일!)

아, 나는 왜 그 생각을 잊었는가. 그러니 내가 한해전에 말씀드린 생일을 그이께서는 한시도 잊지 않고계셨구나!

김정일동지!》

나는 와락 김정일동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터질듯 한 흥분을 묵새기기에는 내 가슴이 너무나도 작았다. 나는 소리내여 울었다. 아이들처럼 턱을 우들우들 떨며 울었다. 울고싶어도 눈물을 받아줄 따뜻한 품이 없어 타는 가슴만 쥐여뜯던 나였다. 갑자기 《철규야!》 하는 은은한 메아리가 들려온다. 너무도 애모쁜, 흉심을 흔드는 그 소리에 목메이는 사랑이 해살처럼 잦아들던 내 가슴은 지져내듯 쓰라려왔다. 그 메아리속에 감빛노을이 피여나던 어머니의 얼굴이, 그리고 그 납작한 도미가 헤염치듯 가까이 다가온다.

《어머니, 철규가 생일상을 받았어요. 김정일동지께서 차려주신 생일상을 말이예요!》

나는 마주 달려가 어머니를 부둥켜안으며 속삭이듯 말한다.

《철규야!》

어머니도 목이 메여 쉬이 말을 잇지 못한다.

《이 못난 어미는 네 생일에 보리밥 한종지도 끝내 들리지 못했는데 그이께서 글쎄…》

어머니는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어내며 그 거칠어진 손길로 나의 어깨와 잔등을 쓰다듬어주신다. …

눈물에 함싹 젖은 어머니의 모습이 몽몽한 운무속으로 사라져갔으나 그 부드러운 감촉은 그냥 나의 온몸을 달쿠어준다.

《철규동무!》

나는 고개를 들었다. 물기어린 은혜로운 눈길이 나를 포근히 감싸주시는데 그이의 자애로운 손길이 아직도 나의 잔등을 얼쓸며 오르내린다.

김정일동지!》

나는 그냥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그이를 우러러 몸을 바로잡았다.

《평생을… 평생을 변치 않으렵니다.》

나는 가슴속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맹세를 드렸다. 울대가 화끈해왔다. 이렇게밖에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격동을 표현할수 없는것이 한스러웠던것이다.

《철규동무.》

그이께서도 나의 어깨를 다시금 힘있게 끌어안아주시였다.

《철규동무, 우리 일생을 변치 말고 수령님께 바칩시다. 우리는 오로지 수령님의 위업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이 세상에 태여난 조선혁명의 청년전위들입니다. 혁명의 바통은 바야흐로 우리가 받아쥘 때가 되였습니다. …

조국통일위업도 우리가 주인이 되여 실현하여야 합니다.

동무들!》

그이께서는 한걸음 나서며 오른주먹을 불끈 쳐드시였다.

《우리 한몸바치고저 떨쳐나선 혁명의 길을 나와 함께 끝까지 달려봅시다!》

《알았습니다!》

그이를 옹위해선 우리들은 하나같이 주먹을 높이 쳐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서히 몸을 돌리시여 남쪽하늘 멀리에로 불길이 펄펄 뿜어져나올듯싶은 눈길을 보내시였다.

맑은 하늘, 해빛 눈부신 삼천리…

저 지평선과 수평선이 얼싸안는 곳에서 시커먼 구름장들이 분노하신 그 눈길에 짓태워져 금시 불뭉치가 되여 떨어지는것만 같았다. 나도 섬광이 빛발쳐가는 그이의 눈길을 따라선다.

바리케드.

피흐르는 란투장.

매캐한 최루탄가스.

거꾸러진 리승만의 동상.

거치른 현해탄을 넘던 그 준엄한 밤들이 얼씬얼씬 비껴왔다. 남조선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전구를 넘어 나는 얼마나 분에 넘치는 행복의 품에 안겨있는가.

나는 온 남녘이 다 보도록 우리의 영명하신 김정일동지께서 안겨주신 이 은혜로운 사랑을 저 하늘 높은 곳에 우쩍 들어올리고싶었다. 그리고 목청을 다해 소리치고싶었다.

《남녘동포들!

이것은 내 혼자 받아안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 남녘이, 온 남녘이 받아안은 우리의 영명하신 김정일동지의 은혜로운 사랑의 해발이다. 우리의 통일위업에 대한 김정일동지의  축복이다.》

유난히도 해빛찬란한 하늘에 눈같이 흰 구름이 유유히 흘러간다. 피빛같이 빨간 해당화꽃송이가 6월의 훈훈한 바람결에 떨기떨기 흔들며 춤을 추고있었다. 

 

×

 

지금도 나는 이따금 모란봉에 오른다. 오늘도 해당화가 붉게 타는 그 잊을수 없는 잔디밭에 앉아 그날의 추억에 잠겨든다.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물어본다.

《그대는 자기의 좌지를 차지하고있는가?》

그러면 나는 뜨거운 명상에 사무쳐들며 조용히 부르짖는다.

《나는 오늘도 좌지에 서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그날에 새겨주신 내 운명의 목표-미국놈을 과녁으로 한 우리의 통일위업의 용용한 전진이 계속되는 한 나는 영원히 통일위업의 한 병사로 자기의 전투좌지를 떠나지 않을것이다.》

지금도 남녘땅에는 버클리후예들이 권력의 요진통을 주무르면서 전조선땅을 제놈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악착하게 날뛰고있다. 하지만 조국통일의 전도는 양양하다. 바야흐로 통일의 려명이 밝아오고있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불면불휴의 령도로 마련하여주신 6. 15의 해발이 오랜 세월 얼어붙었던 대결의 얼음벽을 녹이면서 《우리 민족끼리》의 새시대를 펼쳐놓았다. 마침내 성큼 다가오고있는 통일의 축포성이 터져오르는 그 시각을 향하여 나는 더더욱 마음의 탕개를 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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