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론

 

시대적문제의 탐구와 민족적성격의 창조

-장편소설 《림진강》 제1부 《북녘의 녀인》에 대하여-

 

김 성 희

 

 

6. 15시대의 맥박을 안고 장편소설 《림진강》 제1부 《북녘의 녀인》이 나왔다.

시종일관 깊은 감명을 안겨주는 이 소설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시대적인 문제와 민족적인 성격, 아마도 여기서 그 비결을 찾아야 할것이다.

 

1. 문제없는 문제작

 

창작은 작가가 생활에서 뜻깊은 인간문제를 발견하고 커다란 사상정서적충동을 받은 때로부터 시작된다. 창작의 전과정은 작가가 작중인물들과 더불어 이 인간문제를 안고 모대기며 가장 옳바른 해답을 찾아내기 위한 열정적인 사색과 탐구의 과정으로 된다. 얼마나 사회적으로 의의있는 인간문제를 새롭게 찾아 제기하였는가. 그리고 그 문제를 자주적인간의 요구와 지향에 맞게 얼마나 정당하고 깊이있게 밝혀냈는가 하는것이 작품의 가치와 품격을 평가하는 첫째가는 표징으로 된다.

우리에게 커다란 감명을 준 장편소설 《림진강》 제1부 (허문길)가 우리를 매혹시키는 중요한 비결의 하나는 무엇보다먼저 작가가 제기한 인간문제에서 찾아야 할것이다.

이 소설은 제목이 말해주는바와 같이 외세에 의해 갈라진 혈육의 피눈물을 담아싣고 긴긴 세월 흐느끼며 흐르고있는 분렬의 상징 림진강을 생활무대로 하여 남편과 헤여져 북녘에 남은 한 녀인의 삶의 기록을 전하고있다. 그렇다면 주인공 오일녀의 인생행로에 심어진 인간문제는 무엇인가.

이 작품에는 오일녀만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운명의 길을 걷고있는 한복실과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남편과 헤여져 북녘에서 홀로 살아가는 과정에 부닥칠수 있는 가장 심각한 사회적문제는 마땅히 그들자신의 처지로부터 유발될수 있는 불신과 배척과 고독과 모욕이라는 문제점으로 설정할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오일녀와 한복실, 그 자식들이 겪는 불신과 배척에 대한 그 어떤 설정도 묘사도 없다. 그들이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있는 힘껏 일할 권리, 일한것만큼 보수를 받고 풍요한 삶의 행복을 누릴 권리, 자식들을 희망대로 키우고 조국앞에 떳떳이 내세울 권리를 그 누구도 침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라에서는 그들을 더욱 아껴주고 보살펴주며 하나를 바치면 열, 백을 더하여 평가하고 내세워주는것이다.

물론 약간의 설정은 있다. 소학교 교원이던 오일녀가 다시 교단에 서려고 하였을 때 그의 남편의 처사를 비난하며 배척하는 교장의 태도가 그것이다. 전쟁판에 유격대로 가게 된 사람이 해산하러 간 처를 데리러 남쪽으로 갔다가 행방불명되였으니 믿을수 없다는것이다. 이왕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그런 녀자를 골라넣겠는가, 학부형들이 들고 일어날것이다. …

후에 교장이 일녀에게 이때 일을 사죄하는것으로 되여있지만 우리는 그때의 사정으로 보아 교장의 립장도 충분히 납득되는 점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도 리당위원장인 김규수에 의해 일단 문제없이 풀리는것이다.

오일녀가 교단을 내려 굳이 샘골조합에 나와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자신의 결심이다.

(나는 교단에서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볼수 없다.

그러면 이제는… 그래… 이제부터 나는 전야에 한껏 땀을 뿌릴테다. 땀으로 낟알을 거두고 낟알로 나라앞에, 사람들앞에 떳떳이 나설것이다.

농사를 짓자, 내게는, 내 인생에는 그것이 유일한 선택이다. 이 손이 닳고 모지라지도록 농사를 짓자, 그래서 나라에 부담스러운 녀자가 되지 말자, 내 땀과 내 오륙으로 나라앞에서 내 몫을 하고 나의 로동으로 로적가리를 쌓아놓고 그 사람을 기다리자.)

이것이 그가 샘골조합에 들어오면서 맘속으로 다진 맹세이다.

그의 결심의 기초에는 구체적동기는 어떻든지간에 하여튼 남편이 남으로 나간것을 치욕으로 여기며 자기의 성실한 로동으로 나라를 받들어 떳떳이 통일의 날을 맞이하겠다는 눈물겨운 각오가 놓여있는것이다.

나라에서는 이러한 그의 성실한 로동과 땀을 귀중히 받아주고 그를 분조장, 작업반장으로, 나중에는 관리위원회 부위원장으로까지 내세워주며 온 마을의 존경과 사랑속에 긍지높이 살도록 돌보아주었다.

은혜로운 사회주의제도는 그의 외아들 최동민에게도 값높은 삶의 앞길을 열어주었다. 동민은 려봉구의 아들 웅이, 웅세들과 친형제가 되여 자라났다. 어느해 려봉구는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원하러 물에 뛰여들었다가 자기의 친아들인 웅이보다 먼저 동민을 구해주고 사랑하는 아들 웅이를 잃었다.

웅이대신 생명을 얻고 자란 동민은 공부를 잘하여 중학교를 마치면서 대학추천을 받았다.

그는 대학추천을 웅세에게 양보하고 군돌격대에 입대하여 사랑하는 고향땅에 청춘의 구슬땀을 바쳐간다. 발전소건설을 위한 보람찬 투쟁속에서 그는 옥선이와의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웠고 불의의 사고현장에서 수많은 동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귀중한 생명을 서슴없이 바쳤다. 그는 온 고향땅이 자랑하는 영웅이 되였고 그의 안해 옥선이는 그가 남긴 딸과 함께 부모없는 어린애들까지 데려다 키우며 고결한 의리를 다한다.

최동민의 성장과 보람찬 로동생활, 영웅적위훈과 영생하는 삶의 전 과정을 보면 그는 남들과 꼭같이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의 혜택을 받아안았고 따뜻한 동지적사랑과 믿음속에서 한점의 그늘도 모르고 살았다. 그가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와 생리별하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속에 산다는것인데 사실 이 문제로 말하면 전쟁시기 원쑤들에게 부모를 빼앗긴 그 무수한 전사자, 피살자들의 자녀들과 대비해볼 때 오히려 행복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는 그래도 살아있는 아버지를 기다리고있는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한복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일녀의 남편 최호삼과 달리 그의 남편은 미군의 원자탄위협에 속히워 제발로 남으로 나갔다. 그러길래 한복실은 깊은 죄의식에 시달리고있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한복실에게도 하등의 차별없는 은정의 손길을 뻗치여 그를 조합의 핵심으로, 분조장으로 키우며 6. 15가 마련해준 흩어진 가족상봉장에서 남편과 떳떳이 만날수 있게 해주는것이다.

보다싶이 북녘의 녀인들은 사회주의제도하에서 아무런 차별없이 보람찬 생활을 누려간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들은 남편없이 홀로 살아야 하는 고독한 처지에서도 역시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있었다.

고마운 사람들이 그들에게 정을 주고 새 가정을 꾸릴것을 권고하기도 하였다. 오일녀가 마음속의 짐을 덜고 새 생활을 꾸리도록 해주려고 그의 남편 최호삼이 이미 죽었다고 한복실이 꾸며낸 거짓말과 천리길을 찾아와 재가를 권고하는 장진시형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깊고 인상적이다.

오일녀와 한복실이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새 남편을 만나 가정을 다시 이룰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들이 남편을 위하여 끝까지 지조를 지키는것은 그들자신의 선택이였다. 그들이 남편과 헤여져살아야 하는 그 고통의 몸부림은 조국분렬의 운명적인 수난이였다.

이리하여 소설은 오일녀나 한복실의 남편들이 지난 전쟁시기 남으로 나갔다는 설정을 제외한다면 우리 제도하에서 살고있는 보통의 평범한 근로녀성들의 생활과 투쟁에 대한 이야기로 엮어지게 되였다.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그 어떤 심각한 문제성도 없고 남들처럼 일하고 남들처럼 평가를 받으며 남들처럼 고마운 제도의 혜택속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형상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소설에 정말로 아무런 문제성도 없는것이며 주인공들의 생활선에는 그 어떤 운명적인 인간문제도 얽혀있지 않겠는가. 아니다. 바로 여기서 작가의 철학적발견이 시작된다. 남들과 다른 처지에 있는 그들이 남들과 다름없이 살수 있다는것, 자기들의 로동생활과 창조적삶을 개척해나가는데서 남편들이 남으로 나간 녀인들이라는 남다른 처지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바로 여기에 조선로동당의 광폭정치, 인덕정치의 위대성과 생활력을 보여주는 의의있는 인간문제가 있는것이며 이 소설을 문제없는 문제작으로 빛뿌릴수 있게 한 근본요인이 있는것이다.

지난 시기 오일녀의 운명과 비슷한 형상을 창조하는 작품들에서는 갈등설정과 극성추구에서 일정한 도식이 있었다. 그것은 일부 편협한 사람들에 의해 들씌워지는 모욕과 배척을 받으며 그들이 겪는 심리적고충과 동요, 갈등을 예리화하여 보여주는것이다. 때로 의식적인 암해분자들과의 적대적갈등을 깔아놓고 극을 날카롭게 끌고나가기도 하였다. 작품의 끝부분에 가서 고마운 손길에 의해 주인공들의 운명적인 곡절은 원만히 풀리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들의 인생행로는 심각한 정신적고통속에 흘러갔다.

장편소설 《림진강》은 이런 도식에서 벗어나 북녘에 살고있는 녀주인공들을 둘러싼 사회적관계속에서는 사실상 아무런 갈등도 설정하지 않았다.

앞부분에 얼핏 설정된 북지소학교 교장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갈등이라고도 볼수 없고 소설의 기본선을 이루는 오일녀의 농장생활이전의 이야기로서 극히 부차적인것이다. 오일녀도 그의 아들 최동민도 리당위원장 김규수나 관리위원장 려봉구, 려웅세와 옥선이 등 아름다운 인간들의 극진한 동지적사랑과 믿음속에 창조적로동의 자유와 보람을 마음껏 누리고있다.

이들에게 돌려주는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은 참으로 눈물겹다. 그것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며 지극한 헌신이다. 동민을 위해 려봉구는 자기 친자식을 바쳤고 또 옥선이는 일생의 사랑을 바쳤다.

작가는 이 그지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인정세계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조선로동당의 광폭정치가 얼마나 은혜롭고 고마운것이며 그것은 북과 남 온 겨레의 화해와 협력, 대단결의 확고한 기치이라는것을 힘있게 천명하고저 했던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극적체험은 두갈래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고마운 제도, 고마운 사람들이 안겨주는 은정에 대한 뜨거운 감동이다. 다른 하나는 그럴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남녘의 혈육과 통일에 대한 갈망속에 젖어드는 설음이다. 그만큼 생의 매 갈피에서 그들이 받아안는 충격과 체험은 비상하고 심각하다.

사회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지만 진짜문제는 바로 그들의 내면세계에, 극적체험세계에 있었던것이다.

작가는 주인공들이 겪는 그 두갈래 체험의 세계를 깊이 파고들면서 단순히 민족분렬의 비극과 고통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어버이라 부르는 사회주의대가정에 대한 긍지높은 찬가를 읊고있으며 정과 정으로 결합되고 서로 돕고 이끄는 그것이 바로 조국통일의 담보라는것을 깊이있게 형상하고있다.

오일녀가 동민에게 하는 이런 말이 있다.

동민이가 자식들을 키우는데 어머니들이 바친 오만자루품을 어떻게 갚아드릴수 있을가고 하였을 때 일녀는 어떻게 답변하였던가.

《누가 딱히 눈을 흘기지도 않고 먹을것, 입을것을 안 주는것도 아닌데 노상 마음은 불안하구 어디 가서나 쥐구멍을 찾는 심정이였어.

마음도 몸도 가누기 어렵던 그 시절에 나를 살려주고 다시 일떠서도록 힘을 주고 래일을 준건 고마운 당이고 나라였지. 당에서는 내가 자기 설음에 노그라질세라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을 주구 믿음을 주구 마음껏 일하도록 세심히 돌봐주셨지.…

동민아,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말아. 난 네가 우리 수령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회주의대가정에 안겨 이렇게 끌끌하게, 멋지게 자라서 동무들과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는것만으로도 오만자루 품값을 다 보상받았다.》

일녀의 이 말속에 그가 찾은 인생의 모든 교훈, 모든 진리가 다 집약되여있다.

작가는 더 나아가서 이처럼 고마운 당, 고마운 사회주의 대가정속에 살고있는 분렬세대의 의무와 삶의 륜리문제를 심오히 제기하고있다.

사랑과 믿음은 받기만 하면 지켜지는것이 아니다.

당의 사랑과 믿음은 그 어떤 보상을 바라는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고맙게 느끼고 뜨겁게 받아들이자면 마땅한 량심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

일녀도 일녀지만 돌격대장 동민의 형상에는 바로 이 보답의 륜리, 량심의 의무에 대한 문제가 선명히 체현되여있다.

그는 사랑하는 옥선이에게 말한다.

《선이동무, 그러니 나는 한몫만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요. 열몫, 스무몫을 맡아야 한다 이거요. 이제 여기로 돌아오실 아버지의 몫, 어머니 몫 그리고 나를 대신하여 비명에 숨이 진 웅이 몫 그리고 고마운 이웃님네들 몫, 이것만이 그분들에게 바치는 나의 지성이고 보답이 될려는지… 그래서 나는 아무리 일해도 성차지 않소. … 난 열배, 스무배로 일해야 해.》

동민은 이렇게 스스로 량심의 의무를 지니고 창조의 나날을 혁신으로 수놓았으며 통일을 위한 보람찬 위업에 한몸을 바치고 빛나게 생을 장식하였다.

그는 조국통일에 생을 바친 영웅이였다고 할수 있다. 그것은 그가 통일의 날을 그리며 고향에 발전소를 세우기 위해 일하였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가 영웅적으로 희생된 계기가 바로 조국통일위업과 맺어져있기때문이다. 드디여 발전소언제건설이 끝나고 돌격대원들은 제 집으로 돌아갈 시각이 왔다. 그러나 동민에게는 새로운 과업이 나섰다. 굴을 통해 물길을 돌려놓았기때문에 림진강수원이 줄어서 남녘땅의 농경지들이 피해를 받을수 있게 되였으므로 한번 전기를 일군 그 물길을 다시 되돌려 남녘땅에 보내주는 새 공사가 제기되였다. 그것은 남녘동포들에게 보내는 동포애적사랑의 헌신적로동이였으며 바로 여기서 동민이 희생되는것이다. 그는 통일을 위해 순직한 영웅전사였다.

작가는 일녀, 동민이네들의 이러한 숭고한 모습을 통하여 애국에 살고 통일에 사는 6. 15시대 인간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감명깊게 보여주었다.

 

2. 민족적성격의 매력

 

6. 15시대의 문학은 그 어느 문학보다도 민족성을 내세우고 민족적특성이 뚜렷한 형상을 창조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높은 민족적자존심을 가지고 자주통일의 한길에 몸바쳐나서도록 고무추동하여야 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 였다.

《문학작품에서는 우리 인민이 지니고있는 아름답고 고상한 민족적성격을 깊이있고 풍부하게, 진실하고 생동하게 그려내야 한다.》

민족적성격이 잘 살아난 형상이여야 조선사람의 비위와 정서에 맞고 작품의 사상예술적가치도 높아진다.

장편소설 《림진강》에서 우리가 받아안은 매혹과 감동에서 기본을 이루는것이 바로 작중인물들의 성격에 뚜렷이 체현된 조선민족고유의 아름답고 고상한 성격적특질들이다.

작가는 작품의 종자와 사상주제적과제로부터 출발하여 인물들이 지닌 성격적특질들을 예술적으로 전형화하는데서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하나의 공통된 미관에 따라 아름답게 내세울수 있는 그러한 민족적성격을 보여주는데 각별한 관심을 돌렸다.

그가운데서도 우리 민족이 지닌 고결한 인정과 의리의 세계를 잘 그려내는데 초점을 두었다.

주인공 일녀는 물론 리당비서 김규수와 관리위원장 려봉구, 농장원 한복실과 일녀의 아들 최동민, 그의 애인 옥선이, 려봉구의 아들이며 동민의 친구인 려웅세 등 등장인물들의 성격형상에서 풍겨나오는 독특한 인정미는 우리 인민이 전통적으로 간직하고 대대로 이어가는 고상한 민족적성격의 발현이다.

이러한 인정, 의리를 가장 뚜렷하게 체현하고있는 인물을 다름아닌 김규수로 설정한것은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험난하고 복잡한 력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온 민족을 사상과 정견,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단합과 조국통일의 한길로 이끌어나가는 향도의 기치는 애국애족의 조선로동당이며 그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을 대변하고있는것이 바로 당일군들이다.

김규수는 오일녀와 한복실을 비롯한 남편들이 남으로 나간 녀인들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편견과 몰리해를 인내성있게 깨우쳐주고 바로잡아주면서 그들모두를 따뜻하게 지켜주고 이끌어준다.

김규수에게서 이것이 바로 최고의 당적원칙, 혁명적원칙, 계급적원칙이였다.

소설에 그려진것처럼 전쟁의 포화가 멎고보니 숱한 문제거리들이 생겨나고 집집마다 전쟁이라는 《괴물》이 파헤쳐놓은 상처에 울고있었다. 그 우는 리유는 층층백천가지인데 그의 가슴을 제일 고통스럽게 옥죄이는것은 전쟁통에 여러가지 리유로 남편을 잃고 아들딸을 잃은 사람들이다. 이중에서도 그의 뒤덜미를 거머쥐고 언제나 불안스럽게 하는것은 남편들이 남으로 나간 사람들의 문제이다.

그들의 남편들을 보면 죄를 짓고 도망간자들도 있지만 그것은 극소수이고 대체로 위협과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때로는 일녀의 남편 최호삼이처럼 공교롭게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행길에 올랐다가 여직 소식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이것으로 하여 사람들이 서로서로 울타리를 치고 도무지 융합되지 않는것이다. 애초에 미국놈들이 이 땅의 허리에 38°선이라는 치욕의 분계선을 그어놓을 때도, 전쟁시기에 착하고 근면한 사람들을 협박과 얼림수로 꼬여 남쪽으로 끌고갈 때도 사람들의 마음을 천갈래만갈래로 찢어 민족의 화합을 영원히 막아놓으려는 간특하고 심술스러운 흉심을 가지고있었을것이다.

김규수는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모두를 하나로 묶어세우며 눈물과 한숨을 털고 일어나 보란듯이 새 생활을 꾸리고 통일의 새날을 앞당길것인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파괴된 고향땅을 기름지게 가꾸어 사람들을 배부르게 해주고 아이들에게 감살이 오르게 해주는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그가 자신없어하는것은 한가지였으니 저 일녀와 같은 녀인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서 멍든 심장의 종처를 아물게 해주는것이다.

《어쩌면 좋을가. 그 무슨 묘안이 없을가? … 아니… 방법이 따로 없다. 혈붙이처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것이다. 묘방이란 따로 생겨날수 없다. 원칙도 인정도 방법도 그거다!》

김규수는 이런 신념을 안고 꾸준히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또 다닌다. 그자신이 전쟁이 남겨준 상처를 안고 지팽이를 짚어야 걸을수 있는 불편한 몸이였지만 일녀의 옹이진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고 사람들속에서 떳떳이 머리들고 일할수 있게 해주려고 먼 샘골마을을 찾아 그가 다닌 걸음은 얼마였던가.

그는 북지소학교 교장과 같이 일녀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꾸준히 당의 뜻을 해설해주며 자신의 시범으로 일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절대로 차별하지 않을뿐아니라 오히려 더욱 큰 믿음과 사랑으로 각별히 보살펴주는것이다.

작가는 그가 지닌 이러한 도량과 인정미를 그 어떤 당적 의무감이나 사람들앞에서 자기를 돋보이려는 의도에서 흘러나온 처세술이 아니라 마음속깊이에서 우러나온 참된 인간성, 인정미의 발현으로 그리였다.

이리하여 김규수는 우리 민족고유의 인정과 의리를 체현한 《우리 사람》으로 안겨오는것이다.

이렇게 조선로동당의 광폭정치, 인덕정치의 대변자인 김규수의 성격이 민족적바탕우에서 전형화됨으로써 그와 련결된 주요인물들의 모든 형상은 민족고유의 성격적특질을 체현한 인상깊은 성격으로 그려질수 있었다.

당이 준 사랑과 믿음의 해발아래서 전쟁전보다 더 아름답고, 억세게 성장한 오일녀, 한복실의 성격은 그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이 녀인들의 성격형상에서 민족적특성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외유내강이라는 말 한마디로 다 규정할수 없다. 그들에게는 고마운 당과 사회주의제도의 품속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다듬어진 보다 훌륭한 성격적특질들이 체현되여있다.

민족성도 고정불변한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와 더불어, 생활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발전하는것이다.

오일녀나 한복실은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녀성의 고유한 미덕으로 높이 일러온 소박하고 부드러운 인정미와 근면하고 성실한 품성, 순결한 지조와 량심 같은 아름다운 품성들을 지니고있다.

야속한 남편들이지만 그들에 대한 사랑만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자기 한몸을 고스란히 지켜가는 이 녀인들에게는 남다른 고통과 슬픔을 꿋꿋이 이겨가는 강인한 의지와 대쪽같은 절개가 있어 더욱 아름답다.

이와 함께 작가는 이 녀인들이 단순히 한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와 집단을 위한 공동로동과 투쟁의 일선에 용약 떨쳐나서 대중의 선도자, 조직자로서의 과감한 용기와 능력의 소유자로 성장하는것을 그려주었다.

눈물과 한숨을 홀로 안고 묵새기며 견디여내는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딛고 일어나 조합의 핵심일군, 로력혁신의 선구자가 되고 나아가서 대중의 신망과 존경을 받는 관리일군으로 성장하는 일녀의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내성적이면서도 오돌찬 일녀의 성격과는 달리 복실의 성격도 민족적특질의 다른 한 측면을 보여준다. 설음에 눌리우지 않고 왁살스레 그것을 드잡고 일어나 제 손으로 토벽을 찍어 새 집을 세우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새땅을 일구며 고향땅에 새 생활을 일떠세우는데 앞장서는 복실의 형상은 매우 사랑스럽다.

일녀를 위해 왼심을 쓰는 그의 인정세계도 웅심깊다.

작가는 이러한 오일녀, 한복실의 형상속에 민족분렬이 안겨준 고통과 설음이 아무리 클지라도 우리 민족은 그것을 이기고 기어이 통일의 소망도 이루고 남부럽지 않은 풍요한 삶의 터전을 가꿀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안겨준다.

이들이 이렇게 자랄수 있은것은 역시 김규수와 같은 인물들에게 구현된 어머니당의 은정어린 사랑과 믿음의 손길이 있었기때문이라는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작품에서는 동민과 옥선이 같은 새 세대의 형상에서도 민족적특질을 유감없이 구현하였다.

이들도 역시 민족고유의 뜨거운 인정과 의리의 소유자들이다. 특히 옥선이의 형상은 우리를 끝없이 매혹시킨다. 그는 최동민의 애국의 열정과 헌신성에 이끌려 순결한 사랑으로 화답해나선다.

발전소공사가 끝난 뒤 모두가 제 집으로 돌아가게 되였을 때 돌격대 대장 최동민만은 물길을 남쪽에 돌려주기 위한 공사에 몸바치기 위하여 계속 남아있을 결심을 다졌었다.

이때 옥선이는 자기가 먼저 《헤여지지 말자요 옥.》이라는 쪽지편지를 남기여 뜨거운 사랑의 약속을 주었다. 그리고 최동민이 영웅적으로 희생된 뒤에도 그가 남겨준 새 생명의 씨앗을 몸속에 고이 품은채 일녀를 찾아오는것이다.

그는 유복자를 낳았고 또 부모없는 쌍둥이고아들을 데려다 키우며 이 곡절많은 가정의 영원한 며느리로 살아간다.

우리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가는 적지 않은 새 세대 청년들이 퇴페적이고 썩어빠진 생활방식에 물젖어 허영과 동물적향락의 시궁창에 굴러떨어진 모습을 그려준 많은 작품들을 대하고있다. 성해방이 개인생활에서의 그 무슨 《자유》의 실현처럼, 《인간성》의 요구인것처럼 광고하고있는 자본주의세계에서 남녀간의 애정과 결혼, 가정생활이라는 개념은 완전히 서방식가치관에 의해 그릇되게 외곡되고 매도되고있다. 이런 속에서 민족적인 륜리의식은 형편없이 황페화되고 말과 글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로골적인 향락주의적생활의 묘사가 소설들에 차넘치고있다. 개인주의, 리기주의가 판을 치는 이러한 형상속에서 우리는 《세계화》의 밀물속에 침몰되고마는 민족성의 구슬픈 그림자를 본다.

장편소설 《림진강》은 이러한 온갖 페단에 경종을 울리고 아름다운 민족적성격, 민족적생활의 화폭을 그려냄으로써 우리 민족문학발전에 청신한 기류를 불어넣은 작품의 하나라고 자부할수 있다.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독자들은 이처럼 아름답고 슬기롭고 굳세고 열정적이고 고결한 민족의 한 성원이라는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분렬주의자들의 책동에 맞서 자주통일의 길에서 용기백배하여 싸워나갈 애국의 투지를 가다듬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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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림진강》은 조국통일주제문학의 화단에 꽃핀 성과작의 하나로서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리념을 지켜나가는데서 큰 역할을 할것이다.

이제 소설의 제1부 《북녘의 녀인》이 창작되였다.

그렇다면 다음 창작될 제2부 《남녘의 사나이》는 또 어떤 화폭을 펼쳐보여줄것인가.

큰 기대를 안고 우리는 작가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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