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파괴자
1) 로골적인 침략전쟁책동
□ 빈번히 감행되는 군사적도발사건
이 땅에 전쟁의 포성이 멎은 때로부터 벌써 수십년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미제는 조선전쟁에서 당한 쓰디쓴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공화국을 반대하는 군사적도발책동을 중단하지 않고 집요하게 감행해왔다.
이것 역시 미제가 이 땅에서 감행한 범죄중의 대범죄로 된다.
미제가 공화국을 반대하는 군사적도발책동에 계속 박차를 가해왔다는것은 조선전쟁이후부터 오늘까지 공화국을 겨냥한 미제의 군사적도발사건들이 수많이 저질러진 사실들을 통하여 확증할수 있다.
미제가 공화국을 반대하여 감행한 군사적도발사건들은 1968년 1월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 1969년 4월 《EC-121》대형간첩비행기사건, 1976년 8월 《판문점사건》 등을 비롯하여 수없이 많다.
그러면 몇가지 사실들을 통하여 미제가 공화국을 반대하여 어떻게 군사적도발을 감행해왔는가에 대하여 보기로 하자.
○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
1968년 1월 23일 조선동해의 원산앞바다에서는 공화국의 령해에 침입하여 정탐행위를 감행하던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조선인민군 해군에 의해 나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미제호전광들은 공화국의 령해를 정탐할데 대한 지령을 주어 《푸에블로》호를 공화국의 령해에 침입시키였다.
《푸에블로》호는 미중앙정보국 《에이트젤르나》소속 2편대 정탐선이다. 이 간첩선이 공화국령해에 침입한 목적은 북조선해안지역에 있는 군사대상물들과 전파탐지망을 알아내며 조선인민군 해군무력과 기타 무선통신을 도청하는것이였다.
당시 이 무장간첩선은 이미 한달전에 대서양과 태평양에서 《빙크루트》라는 암호로 진행된 정탐활동도 감행하였다. 그후 이 정탐선은 1968년 1월 중순 조선동해안에 도적고양이처럼 기여들어 항행하였다.
공화국의 령해에 침입할 당시 이 무장간첩선에는 함장을 비롯한 장교 6명, 병사 75명, 민간인 2명을 포함하여 총 83명이 타고있었다.
침략적인 정탐명령을 받은 미제의 무장간첩선은 공화국의 령해에 깊숙이 들어와 전파탐지기구와 각종 감시기구를 리용하여 인민군해군기지들과 해군지휘부들의 위치, 함선들의 편성과 전투능력, 항구들의 수용능력과 입출항하는 선박수, 전파탐지기와 통신결속소의 위치, 잠수함작전을 위한 해양음향측정, 령해에 있는 각종 군사대상물들과 공업배치상태 등을 정탐하면서 1월 23일에는 원산앞바다에 있는 려도로부터 7.6mile(북위 39° 17.4', 동경 127° 46.9')까지 접근하였다.
조국의 바다를 경각성있게 지키고있던 조선인민군 해군초소들에서는 이미 1월 21일에는 조선동해의 마양도해상에서, 1월 22일과 23일 새벽에는 려도근방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선박을 발견하고 그 움직임을 예리하게 주시하고있었다.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있던 인민군해군어뢰정과 경비함들은 비행대의 엄호하에 즉시 긴급출동하였다. 공화국의 영용한 해군함선들이 쏜살같이 접근해들어가면서 배의 국적을 밝히라고 하자 미제의 무장간첩선은 저들의 배가 《수로측량선》이라고 하면서 긴급히 내빼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인민군해군함선들의 맹렬한 추격에 너무도 바빠맞아 기관총까지 쏘아대면서 발악하였다.
그러나 《푸에블로》호는 인민군해병들에 의해 나포되여 원산항으로 끌려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였다는 급보를 받은 당시 미국대통령 죤슨과 전쟁사환군들은 극도로 당황하여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미쳐날뛰였다. 미국대통령은 즉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푸에블로》호와 그 승무원들을 돌려보내도록 《외교적경로》를 통하여 공화국에 압력을 가하는 한편 파렴치하게도 《푸에블로》호가 공해상에 있었다고 허위보도를 날리고 그에 대한 나포는 《국제법위반》이니 뭐니 하면서 조선측에서 《사죄》하고 승무원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법석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 어떤 외교적압력도 통하지 않게 되자 미제는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위협공갈로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하였다.
미제는 파렴치하게도 《<푸에블로>호가 미국공민전쟁이래 바다에서 랍치된 첫 함선이다. 보복해야 한다.》, 《몽둥이를 휘둘러서라도 <푸에블로>호를 빼앗아와야 한다.》고 떠들어대며 어마어마한 침략무력을 조선반도에 집결시켰다. 미제는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레인져》호, 《요크타운》호를 비롯하여 순양함, 구축함 등 20여척의 대기동함선집단을 조선동해안일대에 집결시키는 한편 일본에 있는 여러 기지들에서 미제5공군소속의 각종 전투기 150여대를 남조선의 오산, 수원, 김포 등에 배치하였다. 이와 함께 732대의 전투폭격기, 정찰기, 수송기를 취역시키는데 필요한 예비역군인 1만 4 600여명을 모집하였으며 13만 3 000여명의 해군예비역군인들의 퇴역을 중지시켰다.
한차례의 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방대한 무력을 집결한 미제는 《<푸에블로>호를 돌려주지 않는 경우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할수 있다.》, 《원산을 폭격해야 한다.》고 위협해나섰다.
온 세계의 이목은 자그마한 나라인 조선으로 모아지고있었다.
바로 그 시각 공화국은 미제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단호히 대답해나섰다.
공화국의 자신만만하면서도 담대한 배짱앞에 미제는 《푸에블로》호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11개월이 지난 1968년 12월 23일 세계앞에 공화국에 대한 령해침입을 전적으로 시인하고 이를 사과하는 동시에 다시는 공화국의 령해를 침범하지 않는다는것을 담보하는 사죄문에 서명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당시 미국대통령 죤슨은 사죄문을 읽고나서 《미국이 생겨 력사에 남긴 사죄문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라고 비명을 질렀다.
바로 이것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이였다.
○ 《판문점사건》
조선에서 새 전쟁을 도발하기 위하여 미쳐날뛰던 미제는 1976년 8월 18일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에서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엄중한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그것이 바로 일명 《판문점사건》이였다.
미제는 이날 오전 10시 45분경 도끼를 가진 14명의 불한당을 내몰아 쌍방간의 아무런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할수 없는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의 나무를 제멋대로 찍으려고 시도하였다. 그 리유란 저들의 경계감시근무에 지장을 준다는것이였다. 이에 대해 인민군측은 즉시 비법적인 행위를 그만둘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불한당들은 북측 경비인원들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집단적으로 달려들었으며 미리 대기시켜놓았던 30여명을 현장에 들이밀며 란동을 부렸다.
그리하여 인민군측 경비성원들은 부득불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펄펄 나는 일당백의 싸움군으로 준비된 인민군군인들은 분별없이 날뛰는 미제침략군 도발자들에게 무자비한 반타격을 가하였다. 저들에 비해 너무도 비할바없이 적은 인민군경비성원들의 인원수를 얕잡아보고 덤벼들었던 미제침략자들은 성난 사자와 같이 몸을 날리는 인민군군인들의 무쇠주먹에 골통이 박살나고 팔다리가 부러져나갔다.
인민군경비성원들의 무비의 용맹성과 투지에 얼마나 혼쭐이 났던지 미군은 죽어너부러진 자기편 시체도 돌볼새없이 꽁지가 빳빳하여 제 소굴로 황급히 뺑소니치고말았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미제와 남조선당국은 마치도 기다렸다는듯이 공화국을 비방중상하는 대대적인 소동을 벌려놓으면서 그 책임을 공화국에 넘겨씌우려고 악랄하게 책동하는 한편 남조선강점 미군에게 《비상대기령》까지 내리였다.
이것은 이 사건이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르기 위하여 미제가 이미전부터 준비한 계획적인 도발행위라는것을 명백히 알수 있게 한다.
당시 미국대통령 포드는 마치 북이 이 사건을 일으킨것처럼 떠들면서 그 무슨 후과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법석 고아댔고 국무장관 키신져도 미국이 《자국인원들에 대한 공격을 용인하지 않을것》이라느니, 《그대로 보고만 있지 않을것》이라느니 하면서 그 누구를 위협해보려고 어리석게 책동하였다.
※ 미제는 8월 19일에는 《판문점사건》을 《설명》한다는 이른바 《서한》이란것을 유엔안보리사회에 제출하고 성원국들에 공식문건으로 배포할것을 요구하였으며 20일에는 포드와 키신져가 또다시 《성명》이라는것을 발표하고 공화국에 대해 그 무슨 《해명》을 요구하면서 만약 이것을 《거부》할 때에는 그 무슨 《조치를 취할것》이라고 떠들어댔다.
한편 미제는 《위기사태》를 토의하기 위해서만 열게 되여있는 《최고위급안보그루빠회의》를 18일과 19일 련일 두차례나 벌려놓고 그 어떤 군사적《대응조치》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떠들어대면서 공화국을 위협해나섰다. 그리고는 당시 극동문제담당 국무차관보라는자를 책임자로 하는 《실무그루빠》라는것을 만들어 이 사태를 다루게 하였다.
미제는 사건의 책임을 공화국에 넘겨씌우려고 책동하면서 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모험적인 군사행동을 서슴없이 감행하는데로 나갔다.
이와 함께 남조선과 그 주변에 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면서 이 지역의 륙해공군을 전투태세에 들어가게 하였다.
※ 미제는 19일 낮 12시를 기해 남조선강점 미군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려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하였으며 같은 날 일본주둔 미공군과 미해군 제7함대도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그리고 21일에는 일본주둔 미제침략군도 《경계태세》에 들어갔고 22일에는 포드의 명령에 따라 남조선 전해역에 《비상경계령》이 선포되였다.
미제는 이와 함께 미국본토와 일본기지들에 있는 저들의 륙해공군무력을 남조선에 출동시켰다.
20일 오끼나와에 기지를 둔 미제3해병사단의 1 800여명을 선발대로 남조선에 들이밀었고 19일과 20일사이에는 오끼나와의 가데나공군기지로부터 《F-4》비행기 1개 대대(18∼20대)와 미국의 아이다호주의 공군기지에서 《F-111》비행기 1개 대대(15대)를 남조선에 들이밀었으며 《B-52》전략폭격기들에 출격명령을 내려 그것들이 괌도에서 남조선상공에 날아들어 련일 폭탄투하연습을 하게 하였다. 또한 22일에는 포드의 명령에 따라 100여대의 항공기와 유도미싸일 그리고 수천명의 병력을 실은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주력으로 한 미제7함대의 《기동타격함대》가 조선해역에 출동하였다. 극도에 이른 미제의 전쟁도발책동에 발을 맞추어 남조선당국은 련일 이른바 《국방위원회와 국무위원회 합동회의》, 《국무회의》라는것을 벌려놓고 사건의 진상을 외곡하려고 책동하는 한편 《정부》의 《특별성명》과 어용단체들의 《성명》이란것을 발표하게 하여 공화국을 비방하였다. 또한 《즉각적인 응징조치》를 취하겠다느니 뭐니 하면서 남조선군에 《경계태세》명령을 내렸으며 전연에 있는 남조선군을 완전무장시켜 공격진지에 전개시켰다.
이로 하여 우리 나라에는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터질수 있는 위기일발의 사태가 조성되게 되였다.
이에 공화국의 전체 인민군부대들과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를 비롯한 전체 인민들은 미제가 또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정의의 전쟁에 일떠서서 침략자들에게 섬멸적타격을 가할 불타는 일념을 안고 전투태세에 들어갔으며 한손에는 마치와 낫을, 다른 한손에는 총을 튼튼히 틀어쥐고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 모든 단위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켜나갔다.
공화국의 이러한 불패의 위력과 단호한 혁명적립장, 만단의 전투태세앞에 완전히 기가 꺾인 미제는 또다시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고말았다. 8월 28일 미제는 군사정전위원회 제381차회의에서 판문점공동경비구역의 경비질서변경에 대한 공화국의 정당한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다.
○ 반공화국 공중정탐행위
이미 1969년 4월 《EC-121》대형간첩비행기사건을 통하여 패배의 쓴맛을 본 미제는 거기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에 그 이후에도 새 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반공화국공중정탐행위를 계속 감행하였다.
원래 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략과 전쟁에 앞서 정탐행위를 감행하는것은 미제의 상투적수법이다. 현시기 미제의 정탐행위의 주되는 촉수는 공화국에 돌려지고있다. 미제는 정탐행위를 통하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계획을 세우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려 하고있다. 이를 위하여 미제는 이미 1994년 12월 공화국령공에 감시정찰용직승기를 들이밀었으며 2003년 3월에는 최신형전략정찰기 《RC-135》를 조선동해의 경제수역상공에 침입시켰다. 《RC-135》기는 최첨단전자 및 광학정찰기재로 1 000여km까지의 상대측 종심을 정찰하는 비행기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 정찰기는 공화국령공에 침입한 그때 벌써 조선인민군 공군의 위력앞에 혼쌀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는 그후에도 《U-2》고공전략정찰기, 《RC-12》, 《RC-7B》, 《RC-800》, 《RF-4C》전술정찰기, 《RC-135》전략정찰기, 《E-3》지휘기 등과 같은 각종 사명의 전략 및 전술정찰기들을 대량투입하여 공화국에 대한 공중정탐행위에 계속 광분하였다.
미제침략군이 최근년간에 감행한 반공화국공중정탐행위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2004년 1월부터 6월까지 미제는 총 1 200여차에 걸쳐 공화국에 대한 공중정탐행위를 감행하였다. 이해 12월 한달동안에 감행한 공중정탐행위회수는 무려 180여차에 달하였다. 또한 미제가 2005년 11월에 들어와 각종 사명의 전략 및 전술정찰기들을 동원하여 공화국에 대한 공중정탐을 감행한 회수는 무려 210여차에 달하였고 2006년 한해동안에 감행한 회수는 도합 2 200여차에 달하였다. 이것은 매일 평균 6대의 정찰기들을 동원한것으로 된다. 그런가 하면 미제는 2007년 1월부터 5월까지의 사이에만도 540여차의 공중정탐행위를 감행하였으며 2008년 상반년기간에는 도합 1 000여차에 달하는 공중정탐행위를 감행하였다. 지어 미제는 지난해 2월에만도 180여차(남조선군 70여차)에 달하는 반공화국정탐행위를 감행하였다.
오늘 공화국을 겨냥한 미제의 정탐행위는 하늘과 땅, 바다에서 모두 감행되고있다.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몇해전 미중앙정보국은 공화국에 대한 정탐문제를 전문적으로 맡아보는 새로운 부서를 내왔고 미국방성은 미국본토, 하와이, 괌도에 있는 미군정찰부대들을 남조선과 일본으로 긴급 이동배치하였다고 한다.
미제침략군의 이러한 정탐행위가 공화국에 대한 침략적인 전쟁도발준비를 위한 조치라는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이것은 공화국을 침략하기 위한 미제의 전쟁도발책동이 더욱 본격적인 단계에 이르고있으며 제2조선전쟁발발의 위험이 더욱 증대되고있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미제가 조선반도에서 새로운 침략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찾기 위해 제아무리 침략과 범죄의 검은 이발을 갈아도 그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미제는 1950년대의 조선전쟁과 40여년전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 등에서 저들이 당한 쓰디쓴 참패와 교훈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조선신문 《중앙일보》(2005년 7월 26일부)에 실린 《<푸에블로>호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된 아래의 글을 인용하고저 한다.
《평양 대동강에는 미해군함정 <푸에블로>호가 전시되여있다.
현장에서 이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심경은 어떨가. 굴욕감과 분노가 뒤섞인 착잡함같은것 아닐가싶다.…
대동강에 <푸에블로>호가 모습을 드러내던 날 북의 <로동신문>에는 이런 격문이 실렸다.
<미국과 전투를 벌려 19세기에는 <셔먼>호를, 20세기에는 <푸에블로>호를 전리품으로 만들었다. 21세기의 전리품도 여기에 가져다 놓으리라.>》
만일 미제가 지난날의 교훈을 망각하고 《제2의 조선전쟁》의 도화선에 끝끝내 불을 지른다면 미제는 제가 지른 불에 제가 타죽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