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짓밟힌 두 꽃망울
2002년 6월 남조선에서는 전쟁연습에 미쳐 돌아치던 미군장갑차의 무한궤도에 나어린 두 녀중학생이 무참히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우리 민족을 미제침략군에 대한 커다란 분노와 격분속에 휩싸이게 하였다.
《효순이를 살려내라. 미선이를 살려내라.》
《행정협정 개정하라. 죠지 부쉬 사과하라.》
《가자, 미대사관으로.》
…
그야말로 온 남녘땅은 반미열풍지대, 반미의 초불바다로 변하였다.
여기에 한편의 노래가사가 있다.
그래 마음껏 죽여라
어차피 너의 세상이니
우리를 다 죽인대도
아무 책임 없는것을
여기는 너희의 사냥터
미군의 재미난 놀이터
푸르른 이 강산마저
전쟁연습장일뿐
누이를 때려서 죽이고
아우를 칼로 찔러죽이고
롱아를 성추행하고
독극물도 버리고
그걸로 모자랐더냐
너희가 훈련하기에는
그래서 꽃같은 소녀
땅크로 죽였더냐
피물로 새겨놓으리라
너희의 씻을수 없는 죄
우리가 통일을 이루어내는 날
천배만배 되갚아주리니
그때 구걸하지 말아
네놈들 구차한 목숨
한 민족을 업수이여긴 대가를
한꺼번에 치르게 해주마
이 노래는 남조선의 대중음악가 윤민석이 나어린 녀학생들을 장갑차로 무참히 깔아죽인 미군의 범죄적만행에 대한 치솟는 분노를 안고 창작한 《또다시 너를 묻으며》이다.
윤민석이 신효순, 심미선녀학생들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무참히 살해되였다는 소식을 알게 된것은 2002년 6.15민족통일대축전이 끝난 직후였다고 한다. 어느날 그는 인터네트에서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였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있었다.
《… 효순이의 생일은 6월 14일이였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효순이는 미선이와 함께 친구생일놀이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지방도로는 몹시 좁았다. 학생들의 등교, 하교길임에도 인도가 따로 없어 사고위험이 늘 상존했던 곳이다. 효순이와 미선이는 재잘거리며 친구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 걷자니 느닷없이 굉음이 울리며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0여대의 미군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오고있었던것이다. 효순이와 미선이는 두려움을 느끼며 길옆으로 바싹 붙었다. 그때였다. 세번째 렬에 있던 궤도차량이 맞은편에서 오던 장갑차와 교차하기 위해 급하게 도로옆길쪽으로 방향을 돌며 돌진해왔다. 좁디좁은 길에서 더이상 피할데가 없었던 두 녀학생은 사고차량의 오른쪽궤도에 치여 그자리에서 즉사하고말았다. 그리고 땅에 쓰러진 어린 몸뚱아리들은 다시 그우를 밟고 지나간 장갑차에 의해 짓이겨졌다.》
두 녀중학생에 대한 살해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윤민석은 미군에 대한 치떨리는 울분과 북받치는 증오를 노래의 가사에 그대로 담았던것이다. 그리고는 노래제목밑에 《주<한>미군에게 고함》이라는 부제목까지 달아놓았다.
그는 노래에 덧붙인 《노래이야기》에서 《언제까지, 도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이들이 더 당하고 피흘리고 죽어야 우리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없는 자주통일조국에서 살수 있을가.》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면 언제 한번 만나본적도 없고 말 한마디조차 나누어본적도 없는 평범한 두 녀중학생의 죽음이 왜 온 민족을 미군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울분으로 끓어번지게 하였는가 하는것이다.
그것은 우리 겨레에게 반세기이상이나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 재난을 강요하여온 남조선강점 미군에 대한 쌓이고쌓인 원한이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더는 참을래야 참을수 없는 치솟는 분노를 폭발시켰기때문이였다.
2002년 6월 13일 미제2사단 44공병대소속 장갑차운전사 마크 워커와 그의 조수 페르난도 니노는 전쟁연습에 광분하던 나머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의 좁은 도로로 장갑차를 마구 몰아대다가 앞에서 길을 가던 두명의 녀중학생을 무자비하게 깔아죽였다. 그들은 바로 효순이와 미선이였다.
이날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길을 떠났던 효순이와 미선이는 미군장갑차의 무한궤도에 깔려 꽃망울도 터쳐보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오늘도 효촌리의 그 좁은 도로에는 침략군의 무한궤도가 짓뭉갠 어린 소녀들의 피자욱이 력력히 슴배여있다.
《… 짓이겨지고 피자박이 된 저들이 친구의 생일놀이에 간다던 우리 딸들이 옳으냐. 어느 놈이 이렇게 만들었느냐.…》
살인귀들에 대한 원한을 풀길 없어 몸부림치는 효순이, 미선이 부모들의 피타는 절규가 금시 들려오는듯싶다.
효순이와 미선이는 한마을에서 태여나 소꿉시절부터 다정하게 지내온 친한 사이였다. 미선이는 남달리 글짓기를 잘했고 효순이는 달리기와 그림그리기에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두 소녀는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남달리 극진하였다. 그리하여 효순이와 미선이는 두 가정에 있어서 둘도 없는 기쁨이고 행복이였다. 그들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였다.
그런데 미제살인귀들은 이제 막 꽃망울을 터쳐야 할 귀여운 그들을, 더구나 아직은 사람의 생명에 끝이 있다는것조차 모르는 나이의 애어린 꽃망울들을 다시는 영영 돌아올수 없는 죽음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던것이다.
이 치떨리는 살인범죄행위는 그 어떤 우연적인 실수나 부주의로 하여 빚어진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극도의 인간증오사상과 사람잡이기질을 체질화한 미제침략군이 지난 수십년세월 남조선에서 로골적으로 감행하여온 야만적이고 치떨리는 살인행위의 련속이였다.
남조선잡지 《말》(2002년 8월호)은 《못다 핀 꽃 두송이 미선이, 효순이》라는 제목아래 이런 내용의 글을 실었다.
《폭 3.3m의 좁은 그 길에 대형짐자동차와 군인들의 차량들이 끊임없이 질주했다. 그냥 서있기에도 무서운 도로였다. 효순이, 미선이가 사고를 당한 그 지점에 두 아이중의 한 아이의 신발 한짝이 떨어져있었고 미군들이 먹다버린 군인식량봉지가 떨어져있었다. 쫓기는 신발, 배를 채우는 식량봉지, 그것은 너무도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있었다. 미군들에게 이 땅의 민중들은 다만 언제든지 사냥가능한 한마리 쫓기는 짐승에 불과한것인가.…》
한편 이 잡지(2003년 1월호)는 이렇게 전하였다.
《2002년 6월 13일 비극적인 두 녀중생의 사망은 그간의 미군의 군사훈련관행에 비추어볼 때 예고된 사고였다. 훈련지역근방 주민들에게 사전통보, 진행도로점검, 통신시설정비 등 제반 준비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로폭보다 넓은 궤도차량을 동원한 훈련을 한다는것은 사고가 나도 좋다는 일종의 미필적고의에 가까운 살인행위이다.》
이를 통하여 알수 있는바와 같이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은 뜻밖에 일어난 살해사건인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살인과 범죄를 도락으로 삼아온 미군만행의 연장속에 일어난것이였다.
하지만 남조선강점 미군당국의 처사는 닭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격으로 뻔뻔스럽기 짝이 없었다.
사건당일 미군은 조사를 한다고 하면서 도적고양이처럼 어둠이 깃든 저녁에 살인현장에 나타나 그 지방 파출소에서 뒤늦게 달려온 경찰관은 사건현장에 접근하지도 못하게 하고 현장파악도 없는 상태에서 《운전사가 규정에 따라 제대로 운행했다.》느니, 《어쩔수 없는 사고였다.》느니 하면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녀학생들에게 잘못을 넘겨씌웠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여론을 기만하기 위해 남조선경찰과 《공동조사》를 약속해놓고 그것을 지연시켜오다가 6월 19일에는 난데없이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발표한다고 하면서 위조사진까지 내놓고 《가족에게 사과한다.》는 미2사단장의 한마디 말과 《단순한 교통사고》라는 변명으로 사건을 일방적으로 매듭짓고말았다.
더우기 유가족들이 범죄자들과의 면담을 요구했을 때 미군측은 《운전사가 정신적으로 심각한 충격에 휩싸여있어 불가능하다.》고 시치미를 떼였다. 그러나 그때 살인자 마크 워커는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뇌까리면서 휴가신청까지 하고 부대주변의 술집들을 찾아다니며 술추렴을 하고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미군당국은 유가족들로 하여금 사망자들의 장례를 빨리 치르게 하여 사건을 종결지을 속심밑에 《장례후에 유가족과 사회단체대표들과 면담을 하겠다.》고 거짓약속을 하고는 막상 장례가 끝나자 《면담약속을 한적이 없다.》고 딴전을 부리였다.
그런데 날이 감에 따라 미군범죄자와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의 도수가 높아지자 미2사단장과 대변인이라는자는 련이어 방송에 나타나 《최종조사결과 누구에게도 과실을 물을만 한 잘못을 발견할수 없었다.》, 《아무도 책임질 일이 없다. 사고차량관련자들은 영내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있다.》고 고아대였다. 지어 미국대사라는자는 사건에 대해 《이미 피의자 2명이 미군법정에 기소된 상태》이기때문에 《<한국>은 더이상 간섭하지 말라.》고 훈시질을 하였으며 남조선강점 미군사령부는 그 무슨 《성명》이라는것을 발표하여 남조선언론에 공격의 화살을 돌리면서 마치도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하여 남녘겨레의 반미감정이 터져나오는듯이 여론을 오도하기까지 하였다.
한편 미군은 의정부지청에 사고차량의 운전사들을 출두시켜 조사를 받도록 하겠다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집어던지고 《제3의 장소에서 조사를 받도록 하겠다.》고 고집하다가 나중에는 《두 병장의 안전을 고려》하여 출두시키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 이후 지청에 나타난 범죄자들은 《신변안전담보》를 운운하며 검찰의 조사를 거부하고 우롱하면서 오히려 고압적인 자세로 나옴으로써 남조선각계의 치솟는 격분을 불러일으켰다.
미군의 오만성과 파렴치성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군은 7월 3일에는 그 무슨 《독립기념일》이요 뭐요 하면서 원한서린 의정부상공에 축포를 쏴올리고 《불꽃놀이》를 함으로써 남녘겨레의 반미감정을 더욱 폭발케 하였으며 7월 19일에는 그 무슨 《리취임식》놀음을 벌려놓고 살인두목인 이전 미2사단장에게 《훈장》까지 주어 미국으로 빼돌림으로써 사건을 시급히 종결, 은페시키려고 책동하였다.
또한 남조선《국방부》를 내세워 《공무집행중이였으므로 재판권이양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식으로 밀막아버렸으며 그후에는 그 무슨 《공문》이란데서 《재판권을 포기하는 선례를 만들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판사, 검사, 변호사, 방청인 등이 모두 미국인들로 구성된 저들의 《법정》에서 미군범죄자에 대한 기만적인 1차재판놀음을 벌려놓고 두 녀중학생을 무참히 깔아죽인 범죄자들에게 뻔뻔스럽게도 무죄선고를 내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를 강력히 규탄하는 남녘겨레의 드센 반발에 부딪치자 2차재판은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떠벌이면서도 《미군장갑차 녀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범국민대책위원회)가 신청한 500여명의 방청요구를 랭정하게 거절하였으며 그나마 승인하였던 《민주로동당》 대표의 방청마저 재판전날에 갑자기 취소시켜버렸다.
나중에는 끝끝내 나어린 녀학생들을 무한궤도로 무참히 짓뭉개버린 범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고도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이라는자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기자회견놀음을 벌려놓고 《배심원들이 증거를 철저히 심사한 결과 법적으로는 잘못이 없다고 판단하였다.》고 하면서 《투명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떠벌여댔다.
이 얼마나 파렴치하고 오만무례한짓인가. 남조선강점 미군당국의 이와 같은 처사는 철두철미 남녘동포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우롱이고 모독이며 피해자들을 또 한번 죽이는 잔악무도한 행위였다.
하지만 미군이 제아무리 교활한 기만술책을 다 동원하여 두 녀중학생을 장갑차로 깔아죽인 살인행위를 덮어버리려 해도 거기에 속아넘어갈 인민들이 아니였다. 그것은 그들이 남녘땅을 강점한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갖 살인범죄만을 일삼아온 남조선강점 미군의 실체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하기에 두 녀중학생살해사건은 살인자들에 대한 무죄판결을 계기로 남조선전역을 반미의 도가니로 세차게 끓어번지게 하였다.
※ 기만적인 《합동조사》결과가 발표된 때로부터 남조선각계의 반미기운은 더욱 높아지게 되였다. 하여 남조선에서는 140여개의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미군장갑차 녀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와 같은 대중적반미련대단체들이 련이어 조직되였으며 미제2사단을 비롯한 미군기지들에서의 항의행동들이 날을 따라 급속히 확대되였다.
당시 남조선의 각 언론사들의 인터네트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게시되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자주독립을 웨칠 때이다.》
《다 필요없으니 효순이, 미선이를 살려내라.》
《양키놈들, 사람 죽여놓고 무죄라니?》
《살인혐의가 무죄라니? 그럼 순전히 녀중생들 잘못이란 말인가? 녀중생들이 죽고싶어서 일부러 장갑차에 뛰여들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런가 하면 《미군철수국민운동본부》는 《장갑차로 녀중생들을 깔아죽인 미국놈들 때려잡자》, 《살인마군대 주<한>미2사단을 즉각 해체하라》, 《미국놈들 필요없다. 안 나가면 몽둥이찜질로 쫓아내자》, 《미군놈들 살인만행 한두번이 아니다. 미군놈들 몰아내 우리 아들딸목숨 지켜내자》와 같은 투쟁구호를 제시하여 남조선인민들을 반미투쟁에로 힘차게 불러일으켰다.
이에 불안을 느낀 미제침략군은 남조선의 경찰경비병력을 몇배로 증강하는 한편 완전무장한 저들의 헌병들까지 동원시켜 기지봉쇄작전에 들어갔으며 투쟁참가자들에게 무차별적인 탄압을 가하였다.
미2사단정문앞에서의 미군살인만행규탄 대규모집회들과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물대포를 쏘아대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헌병들을 내몰아 사격태세를 취하게 한 사실과 살인사건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한 대회참가자들을 곤봉과 방패로 내리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게 하고 그들의 투쟁을 취재하던 《민중의 소리》방송 기자 2명에게 무지막지한 폭행을 가한 사실은 그 대표적실례들이다.
미군의 폭행을 직접 체험한 기자 한유진은 감금당시 미군이 팔과 다리를 뒤로 꺾고 목을 눌러 숨통을 조이는 등 비인간적만행을 감행하였다고 하면서 《이러니까 녀중생들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또한 감금되여있는 동안 미군이 손을 묶은 쇠사슬을 풀어주지 않고 심지어 위생실에 가겠다는 요구마저 들어주지 않아 《차라리 죽여달라.》고 소리치며 항의했다고 실토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미군기지내에서 기자들을 잡아간것은 남조선경찰이라고 하는 미군측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분명히 미군이 폭력을 행사하였으며 미군의 류치장에 갇힌 2시간후에야 경찰을 볼수 있었다.》라고 까밝혔다. 다른 한 기자인 리정미는 뚫린 철조망을 통해 미군기지로 들어가 촬영하고있는데 갑자기 무장한 미군과 군견이 달려들어 자기에게 폭행을 가한 후 손을 묶어 류치장으로 끌고갔다고 폭로하면서 미군은 폭언도 서슴지 않았으며 그에 항의하는 자신을 넘어뜨리고 머리를 강제로 들어올려 사진을 찍는 등 포악한 인권유린행위를 감행하였다고 규탄하였다.
한편 당시 폭행당한 기자들의 변호를 맡았던 남조선의 한 변호인은 미군의 인권유린행위에 대해 이렇게 단죄하였다.
《미군이 기자들을 련행할 때 두팔, 두다리를 꺾고 특수쇠바줄을 리용해 결박했다. 결박한 손목은 피가 통하지 않아 퉁퉁 부어올랐다. 미군의무병이 상태를 살펴보고 풀어주라고 이야기를 했음에도 미군은 풀어주지 않았다. <한국>경찰이 신병인도를 위해 기자들의 상태를 살펴보았을 때 너무 심각해서 가위로 쇠바줄을 자르려고 했지만 가위날이 부러지기만 했다. 미군이 가지고있던 절단기를 줄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경찰은 그들을 이송하면서 근처의 공무가게방에서 재단기로 절단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것이 어찌 두 녀중학생에 대한 살해사건을 계기로 감행된 미군의 범죄적만행이라고 하겠는가.
미제침략군의 범죄적만행은 2000년대에 들어선 불과 몇해사이에만도 수많이 저질러졌다. 2001년 7월 남조선의 한 무고한 주민은 미군기지주변의 고압선에 감전되여 팔다리가 절단되고 종당에는 미제침략군에 대한 저주를 품은채 세상을 떠났다.
그해 8월 미2사단소속의 땅크는 짐차와 전주대를 들이받아 차를 마사뜨리고 정전사고를 일으켰으며 그해 11월 19일에는 같은 소속의 미군장갑차가 마주 오던 짐차와 승용차 등 3대를 들이받아 남조선주민 9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2002년 8월 17일 미륙군의 한 녀장교(소위)는 서울시 룡산구 리태원동에서 승용차로 택시를 들이받고 달아나다가 붙잡혔다.
그러나 미군범인은 《큰 사고가 아니여서 피해자가 가라고 손짓하는줄 알고 그냥 갔다.》고 철면피하게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였다.
9월 14일 저녁 3명의 미제침략군은 서울지하철 전동차안에서 미군장갑차에 무참히 깔리워죽은 녀학생들에 대한 추모행사를 알리는 선전물을 나누어주던 남조선의 이전 《국회》의원에게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주먹질을 하여 코뼈를 부스러뜨리고 완전히 만신창으로 만들어놓아 그가 끝내 병원에 실려가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폭행을 저질렀다.
또한 9월 16일 남조선강점 미2사단소속의 한 미군은 밤중에 승용차를 몰고가던 한 주민을 군용차로 들이받아 그자리에서 숨지게 하였으며 그해 11월 29일에는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미군부대소속의 한 미군사병이 부대가까이에 있는 술집앞에서 지나가던 주민에게 트집을 걸며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마구 때려 안경을 깨뜨리고 상처를 입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12월 15일 새벽 승용차를 미친듯이 몰아대던 3명의 미제8군소속 사병들은 뒤따라오던 승객들이 그에 항의하자 그들을 때리고 달아나는 범죄를 감행하였다. 이자들은 경찰에 붙잡힌 후에도 자기들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하였다. 또한 미2사단소속의 한 미군사병은 2002년 12월 31일 밤 11시경 동두천 보산동에서 한 녀성에게 달려들어 무지막지한 폭행을 감행하였다.
뿐만아니라 2003년 2월 18일 저녁 경기도 동두천시에서는 미군 2명이 시내를 싸돌아치다가 외국인전용술집의 종업원숙소에 몰래 기여들어 금품을 훔쳐가지고 달아나다가 붙잡혔다.
그해 5월 27일 새벽 미8군사령부소속 미군 3명은 룡산 미8군사령부정문앞에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료금을 요구하는 운전사에게 달려들어 그의 팔을 묶어놓고 도망쳤다.
그중 미군 한명이 길가던 주민에게 붙잡히자 나머지 미군은 되돌아와 병으로 택시운전사의 머리를 내리치며 란동을 부렸다.
또한 같은 해 12월 7일 부산시 부산진구 련지동에 있는 미군 9명은 어느 한 식당앞길에서 식당주인과 그의 동료에게 달려들어 깨진 유리고뿌로 그들의 목을 마구 찌르는 등 집단폭행을 가하였다.
또한 2006년 11월 5일 광주비행장에 주둔했던 방공포련대 2대대소속의 한 미군병장은 이날 새벽 광주시에서 림 아무개 녀성의 머리를 흉기로 내리쳐 그에게 심한 부상을 입혔다.
그리고 2007년 1월 14일 새벽 미군 한명은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의 한 골목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할머니(67살)의 얼굴을 때리고 두차례에 걸쳐 성폭행하는 야만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그해 3월 17일 밤 미2사단소속 미군 3명은 경기도 의정부의 한 술집에서 유리진렬장을 마스면서 란동을 부리던중 이를 말리는 종업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또한 그해 4월 5일 미2사단소속 미군 2명은 녀성경찰관을 성폭행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2008년 2월 14일 경기도의 오산미공군기지에 둥지를 틀고있는 미군사병들은 그곳에서 운전사로 근무하고있는 남조선로동자 2명에게 달려들어 수갑까지 채워놓고 군화발로 마구 짓밟고 목을 누르는 등 잔인한 폭행을 가하였다. 또한 2월 20일 한 미군사병은 19살 난 녀성에게 달려들어 성폭행을 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도저히 참을래야 참을수 없는 미제침략군의 이와 같은 범죄적만행은 오늘 남녘동포들속에서 《미군철수》, 《양키는 제 집으로》라는 반미의 웨침소리가 세차게 울려나오게 하고있다.
남조선강점 미군은 그 무엇으로써도 나어린 두 녀중학생을 무참히 살해하고 우리 겨레에게 형언할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준 범죄적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