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날로 증대되는 남조선강점 미군범죄
1) 세인을 경악케 한 살인만행들
□ 광주인민학살의 원흉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침략군은 지난 세기 80년대에도 남녘겨레들에 대한 살인범죄적만행을 끊임없이 감행하였다.
악명높은 《유신》파쑈독재의 원흉이 심복의 총에 맞아죽은 1979년 《10월사건》직후 남조선에서는 민주세력의 진출이 급격히 높아졌다. 이와 반면에 남조선지배층안에서는 혼란이 계속되였으며 파쑈통치의 경제적지반은 더욱 약화되였고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통치는 밑뿌리채 뒤흔들리게 되였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및 경제적혼란속에서 미제와 남조선의 《유신》잔당들은 어떻게 하나 사태를 수습하고 《유신》파쑈독재체제를 유지해보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였다.
미제의 비호밑에 1979년 12월 12일 《숙군쿠데타》를 통하여 군권을 탈취하고 《유신》잔당의 두목으로 나타난 극악한 파쑈독재자 전두환은 전례없이 군사파쑈통치체제를 강화하였으며 그에 장애로 되는 모든 세력들을 모조리 제거하기 위하여 파쑈적탄압의 선풍을 일으켰다. 《10월사건》이후 첫 두달동안에만도 2만 5 560여명에 달하는 무고한 남조선주민들이 검거, 구속되였다.
이에 격분한 남조선의 각계각층은 《유신체제》와 그 잔당들을 청산하고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결연히 일떠섰다.
이에 바빠맞은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은 남조선인민들의 민주화지향에 5.17군사파쑈폭거로 도전해나섰다.
군사파쑈도당은 1980년 5월 17일 밤 《비상국무회의》를 벌려놓고 이미 실시하고있던 《비상계엄령》을 17일 24시부터 제주도를 포함한 남조선전역에 확대실시하는 폭압조치를 취하였다. 그리고 《계엄포고》 10호를 발포하여 남조선의 정당, 《국회》활동을 비롯한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출판보도물에 대한 엄격한 사전검열제를 실시하였으며 대학들을 휴교시키고 로동자들의 태업과 파업을 금지시켰다.
5.17군사파쑈폭거는 남조선에서 새로운 파쑈화의 서막을 알리는 일대 파쑈광란이였고 또 하나의 《정권》강탈음모였으며 군사정변이였다. 5.17군사파쑈폭거로 하여 온 남녘땅은 암흑의 천지로, 인권과 민주가 없는 거대한 감옥으로 전변되였다.
이렇게 되자 남녘겨레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대중적봉기를 일으키는것으로써 군부독재정치에 대한 치솟는 분노를 터뜨리고야말았다.
봉기는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시위투쟁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비상계엄령 해제하라》, 《유신체제 철페하라》, 《전두환은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웨치며 일떠선 청년학생들의 애국적진출은 삽시에 온 광주땅을 휩쓸었으며 여기에는 남녀로소 할것없이 시안의 모든 주민들, 지어 주변의 로동자, 농민들까지 합세하였다. 그리하여 투쟁참가자수는 며칠사이에 무려 수십만명에 이르렀다.
봉기는 무장항전으로 넘어가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봉기군중들은 남조선군과 경찰, 《향토예비군》의 무기고들을 습격하여 수천정의 무기와 수십만발의 탄약을 빼앗아 무장하였을뿐아니라 《계엄군》의 많은 땅크와 장갑차, 군용자동차들까지 빼앗아타고 기세충천하여 싸웠다. 봉기자들은 시안에서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 시청, 경찰국을 비롯한 지방통치기관들과 수많은 어용기관들을 습격, 파괴, 점거하였으며 광주시를 완전히 자기들의 통제밑에 넣었다. 당시 항쟁의 거세찬 불길은 전라남도의 26개 시, 군가운데서 목포, 화순, 라주, 장성, 담양, 함평 등 17개 시, 군에로 급속히 번져갔다.
※ 당시 봉기에 참가한 군중의 최대규모는 30여만명이였는데 이것은 광주시의 전체 인구의 41%에 해당하며 1960년 4.19봉기때 광주에서 폭동에 참가했던 군중의 10배에 달하였다. 여기에는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소상인, 종교인, 일부 기업가, 《공무원》 등 각계각층이 다 참가하였으며 지어 어린이, 부녀자, 늙은이들까지 투쟁에 합세하였다.
한편 광주의 항쟁용사들은 독재없는 새로운 민주질서를 세우기 위하여 투쟁핵심들로 《시민위원회》, 《민주투쟁위원회》 등 자치조직을 내왔으며 자위적인 무장조직인 《시민군》, 《특별경계부대》, 《돌격대》를 무었다. 그리고 전두환을 비롯한 《유신》군사파쑈잔당들의 죄행을 폭로규탄하는 대규모적인 군중집회를 가지고 시위군중들을 각성시켜나갔다.
당시 어느 한 항쟁용사는 결전장으로 나가며 이런 혈서를 남기였다.
애국의 선혈로 적습니다
심장으로 웨치고 피로 다짐합니다
육신이 동강나고 뼈가 가루되여도
생명보다 귀중한 자유를 위하여
꿈에도 소원인 통일을 위하여
민주의 기발을 내리지 않고
손에 든 총을 놓지 않고 싸우렵니다
참으로 광주인민봉기는 반민족적이며 반민주적인 독재《정권》의 파쑈적전횡에 대한 남녘동포들의 쌓이고쌓인 분노의 폭발이였으며 자주, 민주, 통일을 갈망하는 겨레의 강렬한 지향과 단호한 결심의 분출이였다.
하지만 광주인민봉기는 미제의 배후조종과 그의 사촉을 받은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의 진압책동으로 말미암아 좌절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제는 광주인민봉기를 진압할데 대한 살인지령을 내리고 방대한 무력을 투입하여 봉기진압작전을 직접 배후조종한 장본인이며 살인원흉이다.
광주에서 인민봉기가 일어나고 그것이 다른 지역으로 급속히 확대되여가자 이에 겁을 먹은 미제는 5월 22일 백악관에서 광주사태를 토의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긴급히 소집하고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 윅캄을 불러들여 광주인민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할데 대한 전대미문의 살륙작전계획을 작성하였으며 회의결정에 따라 미국방부는 남조선미국《련합군사령부》에 직속된 남조선군 2개 사단을 광주인민봉기를 탄압하는데 동원하는것을 허용하고 그에 대한 지휘권을 남조선군부에 넘겨준다는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그리하여 광주살륙작전에 땅크, 장갑차, 대포, 미싸일 등 현대적인 살륙수단들로 무장한 공수특전대의 5개 려단과 수개의 보병사단, 기갑부대, 항공부대 등이 투입되게 되였다.
미제의 우두머리들은 미국은 《안보공약》을 확고히 지킬것이라느니, 이렇게 하는것은 미국의 《인권정책》과 배치되지 않는다느니 뭐니 하고 떠벌였으며 지어 당시 안보담당 대통령특별보좌관이였던 브레진스키란자는 《무쇠주먹으로 광주의 폭도들을 진압해야 한다.》고 하면서 미군까지도 폭동진압에 동원시킬것이라고 피대를 돋구었다.
또한 미제는 남조선강점 미군을 임의의 시각에 봉기진압작전에 출동시킬수 있도록 비상동원상태에 들어가게 하는 한편 5월 23일 항공모함 《코랄씨》호를 비롯한 많은 해군함선들을 전라남도앞바다에 급파하고 하늘에는 공중경보통제기 《E-3A》를 출동시켜 봉기자들과 남조선주민들을 위협하였다.
그리고 남조선의 군사파쑈도당에게 환각제중에서도 일명 《흉악한 약》, 《살인약》으로 불리워지고있는 특수환각제를 넘겨주어 《계엄군》에게 먹여 광주인민봉기진압에 내몰게 하였다.
미제의 이러한 적극적인 뒤받침과 배후조종에 의해 남조선의 군사파쑈도당은 광주에서 력사에 류례없는 인간살륙만행을 감행하였다.
살인마들은 총살, 타살, 도살, 교살, 화형, 생매장 등 상상조차 할수 없는 야수적인 방법으로 봉기자들은 물론 그 동정자들과 가족들을 마구 학살하였다. 거기에는 나어린 소년도 70나이의 로인도, 만삭이 된 임신부도 녀학생들도 례외로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온 광주땅은 피로 물들여졌다. 광주의 거리거리와 골목마다에서는 시체가 쌓이고 피가 랑자하게 흘렀다.
※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사이에 80만의 주민들이 사는 광주시에서 무려 5 000여명이 학살되고 1만 4 000여명이 부상당하였으며 수만명이 체포되는 력사상 류례없는 참상이 빚어졌다. 광주에서 학살된 인원가운데서 총기에 의해 사살당한 수는 2 600여명, 장갑차 등에 깔려죽은 수는 150여명, 생매장당한 수는 1 070여명, 화장당한 수는 920여명, 대검에 찔리우고 총탁에 맞아죽은 수는 330여명이나 되였다.
당시 시민들을 땅크로 깔아죽이고 화염방사기로 불태워죽이고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내동댕이치고 처녀들의 젖가슴을 도려내여 죽이는 끔찍한 참상을 직접 목격했던 한 미국인은 그런 만행이 《나치스의 잔학행위》를 뛰여넘는다고 규탄하였다.
미국의 사촉을 받은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의 야수적인 살륙만행에 대하여 외신들은 수난당한 광주를 가리켜 《피의 목욕탕》, 《망령만이 배회하는 죽음의 도시》라고 하였으며 세계의 수많은 방송들은 광주사태에 대한 보도를 전하면서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TV앞으로 오지 말라고까지 경고하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잡지 《커버트 악센 인터데이숀 부테틴》은 《전라도대학살만행은 <한국>력사에서나 미국외교사에서나 류례가 없는 사건이였다.》라고 규탄하였으며 1980년 6월 30일부 《로스안젤스 타임스》지는 《<한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향이 이처럼 야만적인 공격을 당한적은 없었다. 광주의 류혈사태에 비하면 1961년쿠데타는 들놀이와 같은것이다.》라고 하였다.
미제는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시종일관 부인해왔지만 그 무엇으로써도 광주학살사건의 주범으로서의 자기의 범죄적정체를 가리울수 없었다.
미국신문 《져널 오브 코머스》가 1996년 2월 27일부에 공개한 미국무성의 비밀문건내용들을 놓고보자.
신문이 공개한 1980년 5월 8일부 크리스토퍼 미국무성 차관(당시)의 서명이 있고 남조선주재 미국대사관앞으로 보내진 극비전보에는 미국이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남조선의 계획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명백히 씌여져있다. 신문은 당시 남조선주재 미국대사가 남조선군부에 광주대학살작전과 군의 투입을 지지하는 립장을 전달했다고 미국무성에 통보한 극비전보내용도 전하였다.
한편 일본잡지 《세까이》(1980년 8월호)는 광주시를 피바다에 잠그고 무등산을 시체더미로 뒤덮은 5.18광주학살때 미8군소속 직승기들은 굶주린 독수리떼처럼 광주상공을 날아치며 주민들이 모인 장소들에 무차별기총소사를 했다고 전했으며 광주사태를 직접 목격한 미국《평화군》 성원 스테븐 클라크도 《미국은 남조선의 광주와 다른 도시들에서 일어난 인민봉기를 진압하는 공범자라는것을 우리는 확인한다.》고 증언하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 있는 교포단체인 《재미구국향군》이 발간한 잡지 《구국향군보》는 《광주민주시민대학살의 모든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규탄하였다.
이상의 사실은 미제야말로 광주인민봉기를 류혈적으로 진압한 주범이며 살인원흉이라는것을 적라라하게 폭로해주고있다.
미제가 광주인민봉기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의로운 항쟁용사들을 야수적으로 살륙한 그 밑바탕에는 남조선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의 흐름을 가로막고 남조선을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려는 범죄적의도가 깔려있었다.
당초에 미제는 남조선사회의 자주화, 민주화를 제일 위험시하고 경계하여왔다. 이것은 광주학살사건직후 당시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이라는자가 《<한국>민의 국민성은 들쥐와 같으며 누가 지도자가 되건 그 지도자를 따라갈것이다. <한국>에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라는 폭언을 마구 줴친 사실만 보아도 명백히 알수 있다.
광주의 《피의 5월》, 그것은 남녘의 겨레들에게 있어서 지난 시기 미제에 대해 환상을 품어온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뼈저리게 뉘우치게 한 교훈의 5월이였으며 남조선강점 미군이야말로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침략자, 살인자, 범죄자라는것을 더욱 명백히 깨닫게 한 진리의 5월이였다.
◇부록◇
1980년대 미군범죄자료
남조선당국이 공식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남조선강점 미군은 1980년에는 531건, 1985년에는 1 674건, 1986년에는 954건, 1987년에는 1 171건에 달하는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
그 일부를 자료적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 1980년
11월 10일 경기도 평택군(당시) 팽성읍 안정리 대영려관에서 미륙군 545부대소속 하사 데이비드가 윤미영녀성을 강간하고 목졸라죽였다.
▲ 1982년
1월 21일 대구시 남구 리천1동에서 택시를 타고가던 미군사병 두명이 운전사를 흉기로 때려 부상을 입힌 후 현금 2만원을 빼앗아가지고 도주하였다.
▲ 1983년
3월에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에 참가한 미제침략군이 경기도 리천군(당시)에서 녀중학생 한명을 강간하였다.
6월 3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당시)에서 미군화물자동차운전사가 차를 미친듯이 몰고가다가 수원려객사업소 뻐스를 들이받아 6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 1984년
7월 4일 서울시 룡산구 리태원동 《철마구락부》의 3층에서 술을 마시던 미제야수는 흥미거리로 수류탄을 던져 여러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건물내부를 파괴시켰다.
7월 25일 서울시 룡산구 리태원동에서 사는 리순임녀성의 집에 달려든 미제침략군 흑인사병 두명은 그를 위협한 후 현금 200만원이 든 가방을 훔쳐가지고 도주하였다.
8월 8일 미제8군소속 병장 제임스 스노 등 두명이 서울시 룡산구 리태원동앞길에서 택시운전사 하재수(37살)에게 달려들어 현금 8만원을 빼앗아가지고 도주하였다.
10월 25일 차를 마구 몰고가던 미제침략군 화물자동차운전사가 경기도 려주군 가남면 가남휴계소앞 고속도로에서 수원관광뻐스사업소 안내원 리명숙(24살)을 깔아죽였다.
▲ 1985년
1월 19일 미군흑인사병 로버리 슬허든 등 3명이 뻐스안에서 란동을 피우다가 이에 항의하는 한 주민을 집단폭행하여 중상을 입혔다.
2월 19일 미제침략군 사병 마이클 하멜이 어느 한 려관접대원녀성을 강간하려다 반항에 부딪치자 목졸라죽였다.
11월 마약에 취한 미군사병들이 사격놀음으로 길가던 한 중년녀성을 쏘아죽였다.
▲ 1986년
3월 5일 《팀 스피리트 86》합동군사연습에 참가한 미제25사단 포병대대소속의 여러명의 사병들이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초등학교교원인 임신 6개월의 리 아무개 녀성이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것을 랍치하여 야산에서 집단륜간하고 무참히 죽였다.
11월 14일 미제침략군 사병 6명은 서울시 룡산구 리태원동 네거리에서 지나가던 택시를 세우고 운전사 김만수(45살)에게 무턱대고 트집을 걸어 집단구타하였으며 이에 항의하는 다른 주민들에게 칼부림을 하여 4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11월 26일 미제침략군 사병 두명은 경기도 동두천에서 돈을 강탈하기 위해 택시운전사 박전동을 살해하였다.
▲ 1987년
10월 3일 미제침략군야수들이 경기도 파주군(당시) 파주읍 연풍리에서 주민들과 싸움을 벌려 4∼5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12월 22일 대구시 남구에 있는 한 유흥장에서 미제침략군 사병 한명이 종업원 고 아무개(25살) 녀성에게 불친절하다는 구실을 붙여 마구 때려 심한 상처를 입혔다.
▲ 1988년
1월 6일 미제공중비적들이 저공비행훈련을 벌려 경상북도 상주군(당시) 락동면 북황리의 200세대의 지붕, 유리창이 날아나거나 깨졌으며 벽이 갈라지는 등 3 500여만원의 피해를 주고 주민 4명이 유리쪼각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2월 1일 사복차림의 미제침략군 30명이 경상북도 포항시내의 미제침략군부대앞에서 지나가던 뻐스를 세우고 저들의 요구에 응할것을 강요하다가 항의하는 승객 3명을 구타하여 중상을 입히고 운전사를 실신시켜 다른 뻐스와 충돌하게 하였으며 항의하는 다른 주민들도 구타하였다.
2월 23일 새벽 미제침략군 사병 머리, 밀리, 로저 등이 서울시 룡산구에서 김한복(42살)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경기도 성남시까지 가서는 료금을 요구하는 운전사를 구타하였다.
5월 8일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에서 미제침략군 사병 사이츠가 차를 미친듯이 몰아 뻐스를 기다리던 한 녀인과 그의 딸을 깔아죽였다.
6월 19일 미제침략군 사병 4명이 저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 택시운전사에게 모욕적으로 물을 끼얹고 그에 항의하는 운전사와 그의 동료들을 구타하였으며 통보를 받고 출동한 미군헌병들은 저들의 행동은 묵과하고 오히려 택시운전사들을 결박하고 구타하였으며 지어 장갑차로 택시를 깔아뭉개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6월 25일 새벽 서울시 도봉구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미제침략군 사병 크린크 마스 등 4명이 주민 김희수 등을 무턱대고 구타하여 다리를 꺾어놓았다.
8월 3일 인천항에 정박중이던 미해군함선 《뉴져지》호소속 미해군 7명이 서울시 리태원동에 있는 한 식당에서 개를 끌고들어가는것을 막았다는 리유로 김광석 등 3명을 집단구타하였다.
9월 24일 미제8군소속 사병 스페인소 앤소니 등 4명의 미군이 경기도 동두천에서 택시를 타고 서울까지 가서는 료금을 요구하는 운전사를 술병으로 까고 도주하였다.
9월 25일 서울시 룡산구 리태원동에서 택시운전사 리한주(44살)가 미제8군소속 사병 모슬리 코리드래곤이 택시를 찌그러뜨리는데 항의하자 미제침략군은 그의 목을 졸라매고 구타하였다.
9월 25일 미제8군 44공병중대소속 사병 인그랜 다니엘이 서울시 리태원동 시장앞길에서 길가던 주민 최충수(27살)에게 무작정 달려들어 목을 조이는 등 심히 구타하여 중상을 입혔다.
10월 16일 미제침략군 사병 4명이 서울시 룡산구 리태원동에서 택시운전사를 폭행하는데 대해 길가던 주민 100여명이 항의하자 미군 40여명을 끌고와 주민들을 병으로 까는 등으로 폭행하여 김우건(39살)이 병쪼각에 머리를 찔리는 등 5명이 중경상을 당하였다.
11월 14일 미제2사단소속 상병 로져스 등 2명이 대전시에 있는 《백송회관》에서 술을 마구 퍼마시고 값도 내지 않고 달아나다가 그에 항의하는 주민 김영배, 리규화를 폭행하여 상처를 입혔다.
11월 28일 미제침략군 화물자동차운전사가 차를 미친듯이 몰다가 서울시 중구 장충공원앞에서 택시 3대를 련이어 들이받은것을 경찰이 단속하려 하자 무선기를 빼앗고 항의하는 택시운전사들을 폭행하고 도주하였다.
12월 3일 서울시 룡산구에 있는 미제침략군가족 피어크 등 6명이 중구 을지로7가 운동복상점에 들어가 옷을 훔쳐가지고 도주하다가 이를 단속하는 주민 박윤식(44살)을 때려 상처를 입혔다.
▲ 1989년
1월 21일 미제8군소속 사병 스티븐 아르미첼이 택시를 타고도 료금을 내지 않고 오히려 운전사 정범택(32살)을 구타하였다.
2월 10일 미제침략군 사병 브루스 하레이더는 주민 정판용(54살)이 자기의 기분을 거슬리게 한다고 하여 때려죽였다.
2월 18일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미제침략군 595중대앞길에서 이 부대소속 상병 술레현이 택시를 타고도 돈을 내지 않고 운전사를 구타하고 도주하였다.
2월 20일 미제침략군 사병 죤 비 윌슨이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주민 윤춘근(33살)이 자기가 공기총으로 녀성들을 쏘려는것을 보고 소리를 쳤다고 하여 그를 쏘아 부상을 입혔다.
4월 25일 미공군 제8정비대대소속 사병 제임스, 발리 등은 길가던 장한진(25살) 등 2명을 리유없이 구타하여 중상을 입혔다.
6월 1일 미공군 군산기지 헌병대소속 중사 로보트 지 토마스 등 네명이 길가던 차병기(37살)의 3형제를 리유없이 마구 구타하였다.
6월 10일 미제2사단소속 사병 두명이 서울에서 경기도 파주군(당시)까지 택시를 타고가서 운전사의 뒤머리를 흉기로 때려 실신시킨 다음 현금 7만 6 000원을 빼앗아가지고 도주하였다.
6월 19일 전쟁연습에 돌아치던 미군직승기가 경기도 화성군(당시)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오던 손달근(30살) 등에게 기총사격을 퍼부어 부상을 입혔다.
7월 6일 미제2사단 보병 2대대가 발사한 박격포탄이 사격장으로부터 600m 떨어져있는 논밭에 떨어져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장파리(당시)에서 사는 조남천(76살)로인이 죽고 조남민(74살), 심영진(75살)이 부상을 당했다.
8월 14일 부산시 련지동에서 미제침략군 공병부대소속 사병 엔더슨 로스, 플로이드 로고트 등이 리 아무개(20살) 처녀를 부근에 있는 한 려관에 끌고가 강간하려다 실패하자 그를 폭행하고 려관에 있던 다른 4명도 구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