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한서린 신천
미제살인귀들이 신천군을 일시적으로 강점하였던 기간에 감행한 범죄적만행은 미제침략자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한 범죄의 무리였는가를 만천하에 보여주고있다. 미제침략군은 야수성과 잔인성에 있어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현대판식인종이고 포악한 살인마였다.
신천땅에서 감행된 야수적학살만행은 미제상전들의 살인명령에 따라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감행된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범죄적만행이였다.
미제침략군이 신천군에 기여든것은 1950년 10월 17일이였다.
당시 신천군주둔 미군사령관이란자는 이곳 주민들에 대한 대중적인 학살을 직접 조직하고 지휘하였으며 집행하였다. 이자는 1950년 10월 18일 신천군당청사앞 운동장에 모인 악질반동들에게 《나의 명령은 곧 법이다. 이를 위반하는자는 총살한다. 신천에서 살아움직이는 모든것을 재가루속에 파묻으라.》고 줴쳐대면서 《북조선을 공산주의위협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로동당원 및 그들의 가족, 친척들까지 체포, 처단하여야 한다. 빨갱이의 씨족을 멸살시키라.》고 지껄이였다.
미제침략자들이 신천땅에서 감행한 대중적학살의 범죄적특징은 녀성들과 어린이들까지 포함한 수많은 인민들을 대량적으로 살륙한데 있으며 그 학살방법이 가장 악독하고 잔인하였다는데 있다.
미제살인귀들은 우선 수많은 애국자들과 무고한 인민들을 집단적으로, 대량적으로 살륙하였다.
1950년 10월 18일 신천군당청사앞에서 감행된 학살만행을 보자.
그때 미제침략자들은 신천군당청사 2층에 갇혀있던 910여명의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4∼5명씩 결박하여 군당청사앞에 굴설되여있는 방공호와 길이 20m가량 되는 구뎅이안에 몰아넣고 벗긴 옷을 그들의 머리우에 씌우고 다시 벼짚으로 덮은 다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달아 태워죽이였다. 그리고 불길속에서 기여나오는 사람들을 발길로 차넣고 총탁으로 밀어넣던 나머지 나중에는 총으로 쏘아죽이였다. 이어 미제야수들은 사람들이 아직 다 죽기도 전에 방공호입구와 구뎅이를 흙으로 덮어 생매장하였다.
지어 미제야수들은 그 이튿날 학살현장에 나와 사진기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찍는 짐승도 낯을 붉힐 망동까지 부리였다.
그뿐이 아니다.
미제살인귀들은 그 다음날에는 320여명, 23일에는 30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군당방공호주변 전호와 구뎅이에 처넣고 생매장하거나 불태워죽이였다.
또한 1950년 10월 20일 미제살인귀들과 《치안대》놈들은 120여명의 녀성들과 많은 어린이들을 포함한 520여명의 인민들을 체포하여 옷을 전부 벗기고 전 신천군내무서 방공호에 몰아넣었으며 그 입구를 널판자와 흙가마니로 막은 다음 미리 그안에 장치해놓았던 폭발물을 터쳐 학살하였다.
신천강점 미제침략군은 1950년 10월말 애국자들이 감금되여있는 얼음창고에 나타나 그들을 집단학살하는 만행도 감행하였다.
미제야수들은 2개의 창고에 갇혀 먹을것과 물을 달라고 항거하는 애국자들에게 사나운 군견들을 풀어 근 한시간동안 물어뜯게 하였다. 그리하여 코와 귀가 뭉청 떨어져나간 사람,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리운 사람, 두눈알이 뽑히였거나 터져나온 사람, 창자를 그러안고있는 사람, 얼굴과 목의 살점이 떨어진 사람 등으로 창고안은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밖에서 그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며 흉물스러운 웃음을 짓던 야수들은 개를 불러내고 창고안에 휘발유를 뿌리게 하였다. 그리고는 수십개의 불방치를 창고안에 던져넣고 문을 닫았다. 두 창고에서는 삼단같은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미제승냥이들은 이런 방법으로 2개의 창고에서만도 1 20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다.
이 집단학살장소에서 시체속에 묻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한 녀성은 미제의 귀축같은 만행을 폭로하면서 미제침략자들은 인두겁을 뒤집어쓴 승냥이이다, 나는 눈에 흙이 들어간대도 무고한 인민들을 개밥으로 내몰아 참혹하게 죽이고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죽인 미제살인귀들의 만행을 절대로 잊을수가 없다고 분노의 웨침을 터치였다.
1950년 10월 하순부터 11월 하순까지의 사이에 미제야수들은 체포된 1 640명의 무고한 주민들을 30여차에 걸쳐 40여대의 미군용차에다 30∼50여명씩 싣고가 당시 신천군 룡문면과 남부면에 있는 저수지 또는 전호속에 몰아넣어죽였다.
미제야수들과 반동들은 신천군 북부면 석당리에 있는 석당교에서도 2 000여명의 애국자들과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당시 살인귀들은 다리어귀에 서있던 수백명의 사람들을 짐승몰듯 다리가운데로 몰고가서는 그속으로 군용차를 마구 몰아댔다. 결과 다리가운데 들어섰던 사람들은 미처 몸을 피할새없이 그대로 군용차에 깔리거나 다리밑으로 떨어져죽었다. 일부 살아남은 사람들이 군용차를 피하여 다리앞으로 뛰여가자 미리 대기하고있던 미제야수들은 그들을 향해 기관총사격을 가하였다.
석당교는 순간에 인간도살장으로 변했으며 그밑으로 흐르던 서강물은 무고한 사람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한 주민은 이렇게 증언하였다.
《그때 제가 놈들에게 끌리워 사형장으로 나갔을 때에는 이미 그곳에서 총살당한 수백명의 시체가 있었다. 미국놈들이 패주한 후에 석당교에 나가보니 그곳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밀물에 밀리워 둥둥 떠다니였는데 어찌도 많은지 강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미제살인귀들이 신천에서 감행한 야수적인 학살만행은 그 방법에 있어서 짐승도 낯을 붉힐 정도로 잔인하기 그지없는것이였다.
1950년 10월 18일 아침 신천군 원암리에 나타난 미제침략자들은 박도상농민을 마구 두들겨패고는 그의 코를 쇠줄로 꿰여 한끝은 오른쪽귀에, 다른 끝은 왼쪽귀에 련결시켜놓았으며 심지어 손바닥에도 구멍을 뚫고 쇠줄을 꿰매여놓았다.
이 야수적만행에 대해 로인의 며느리인 리옥봉녀성이 항거해나서자 미제야수들은 그를 뒤산에 끌고가 밤나무에 비끄러매고 칼로 젖가슴을 도려내고 란도질을 했을뿐아니라 국부에 말뚝을 박아넣고 거기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달아놓는 잔인한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것도 성차지 않아 미제살인귀들은 박도상농민의 등에 《빨갱이》라는 글을 써서 붙이고 그가 받은 열성농민표창장을 이마에 못으로 박아붙여 마을로 끌고다니다가 아들과 세 딸이 보는 앞에서 도끼로 팔다리를 자르고 목을 잘라 무참히 학살하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도 팔다리를 찢어죽였으며 세 딸도 흙구뎅이속에 처넣고 야수적으로 생매장해죽이였다.
미제살인귀들은 이러한 잔인한 방법으로 신천군 문화면 화산리(당시)의 양용녀녀성도 살해하였다.
그때 미제야수들은 그가 구월산인민유격대에 대한 비밀을 대지 않는다고 하여 그의 머리태를 잘라버리고 머리카락을 잡히는대로 쥐여뜯어냈으며 더 뽑아낼 머리카락이 없게 되자 이번에는 그의 옷을 찢어벗기고 불에 달군 인두로 젖가슴을 지지였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를 의자등받이뒤로 잡아젖힌 다음 이마에 대못을 대고 쇠망치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신천군 정미공장 로동자였던 주준일에 대한 학살만행도 역시 미제야수들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사람잡이에 환장이 되여 돌아가던 미제야수들은 주준일을 붙잡아놓고 식량과 정미설비를 감춘 곳을 대라고 악착스럽게 고문을 가하였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를 굴복시킬수 없게 되자 야수들은 2대의 소달구지를 끌고와 그의 손발을 량쪽 소달구지에 묶어놓고 팔다리를 찢어죽이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이처럼 미제침략자들은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학살방법으로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열성농민이라고 하여 죽이고 교원이라고 해서 죽이고 식량이 있는 곳을 대지 않는다고 하여 죽이는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였다.
미제야수들은 미성년과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치떨리는 범죄행위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1950년 12월 3일 미제침략군 병사 2명은 신천군 원암리에 있는 창고에 감금되여있던 부녀자들중에서 녀성교원과 젊은 녀성 1명을 끌어내여 강간하고 즉석에서 총살하였다.
또한 미제침략자들은 신천면에 살고있던 처녀들과 부녀자들을 체포하여 강간하였고 애기어머니들에게서 갓난애기들을 26명이나 강제로 떼내여 뒤산에서 생매장하여 죽이였다. 대창려관에서도 거기에 감금되였던 20살미만의 나어린 녀학생들을 권총으로 위협하다가 강간한 후 끌고나가서 총으로 쏴죽였다.
미제침략자들은 신천군 온천면 운봉리(당시)에 살던 22살 난 처녀를 저들의 노리개로 만들려다가 거절당하자 야수적인 고문을 들이대였다. 그래도 그가 순종하지 않자 나무에 결박하고 국부에 말뚝을 박아 처참히 죽였다.
신천군 가산면 룡두리(당시) 녀맹위원장 박화선녀성을 체포한 미제야수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더러운 수욕을 채우려다가 완강한 항거에 부딪치자 마구 구타하여 쓰러뜨리고 코와 귀에 쇠줄을 꿰여 끌고다니다가 딸과 함께 구뎅이에 처넣어 생매장해죽였다.
신천군주민들에 대한 미제의 야수적학살만행은 인민군대의 재진격이 시작되자 더욱 발광적으로 감행되였다.
특히 원암리 밤나무골의 화약창고에서 감행한 미제침략군의 살인만행은 미제야말로 인두겁을 쓴 야수의 무리라는것을 더욱 뚜렷이 보여주었다.
1950년 12월 7일 원암리 밤나무골에 나타난 미제승냥이들은 어머니와 아이들이 같이 있는것은 너무도 행복하다고 하면서 화약창고에 갇힌 어머니들의 품에서 어린것들을 강제로 떼내여 따로 가두었다.
그리고는 갈증으로 목이 타 물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휘발유를 주어 그것을 마시고 가슴을 쥐여뜯으며 죽게 하였다. 또한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의 머리우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으며 사이다병에 휘발유를 넣어 그것을 던져 폭발시켰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수류탄을 마구 던져넣었다. 이렇게 해서 400명의 어머니들과 102명의 어린이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이처럼 신천에서 미제살인귀들은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어린이, 늙은이, 녀성을 가리지 않고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무참히 학살하였다.
그 천인공노할 학살방법의 일부를 보자.
· 휘발유를 뿌리고 산채로 태워죽였다.
· 귀와 코를 자르고 눈알을 뽑고 피부를 벗겨 학살하였다.
· 도끼로 찍어죽이고 그 시체를 불살랐다.
· 사람들을 대량적으로 생매장하였다.
· 불에 집어넣어죽였다.
· 사람의 코를 꿰여 끌고다니다가 죽였다.
· 나무에 달아매여죽였다.
· 오관을 파괴하여죽이고 팔다리를 찢어죽였다.
· 아이들의 배를 터치고 목을 눌러죽였다.
· 달군 인두로 머리와 젖가슴을 지지며 량손가락을 칼로 잘라죽였다.
· 이마복판으로부터 배까지 톱으로 켜서 죽였다.
· 나무가지에 거꾸로 달아매고 머리밑에 불을 놓아 태워죽이였다.
· 창고에 집어넣고 사나운 개를 넣어 물어뜯게 하여 죽였다.
· 머리나 등에 못을 박아죽였다.
· 전신을 달군 인두로 지지다가 나중에는 괭이로 찍어 살해하였다.
※ 미제침략자들은 당시 신천군 궁흥면 만궁리에서 리인구의 87%를 학살한것을 포함하여 신천군에서만도 군인구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3만 5 383명을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그가운데 남자는 1만 9 149명이고 녀자는 1만 6 234명이다.
신천에서 감행한 미제야수들의 야만성에 대하여 1952년 3월 신천살륙현장을 조사했던 국제민주법률가협회조사단은 《조선에서의 사건은 전쟁이 아니라 범죄였다.》고 규탄하였다.
참으로 미제침략자들이 신천땅에서 감행한 치떨리는 학살만행은 세상에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야수적이고 극도로 잔인한 인간살륙전이였다.
* 자료;
일시적강점지역에서 감행한
미제의 야수적학살만행 통계
| 지방이름 | 학살한 수 |
지방이름 |
학살한 수 |
| 신 천 |
3만 5 383명 |
선 천 |
1 400여명 |
| 양 양 |
2만 5 300명 |
재 령 |
1 400여명 |
| 안 악 |
1만 9 072명 |
박 천 |
1 400여명 |
| 평 양 |
1만 5 000여명 |
토 산 |
1 385명 |
| 은 률 |
1만 3 000여명 |
개 천 |
1 342명 |
| 해 주 |
6 000여명 |
봉 산 |
1 293명 |
| 벽 성 |
5 998명 |
순 천 |
1 200여명 |
| 송 화 |
5 545명 |
장 연 |
1 199명 |
| 평 산 |
5 290여명 |
송 림 |
1 000여명 |
| 은 천 |
5 131명 |
사리원 |
950여명 |
| 안 주 |
5 000여명 |
초 산 |
900여명 |
| 태 탄 |
3 429명 |
락 연 |
802명 |
| 연 안 |
2 450명 |
정 주 |
800여명 |
| 강 서 |
1 561명 |
함 주 |
648명 |
| 철 원 |
1 560명 |
원 산 |
630명 |
| 남 포 |
1 511명 |
단 천 |
532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