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 인두겁을 쓴 살인마

 

□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으로

 

미제침략군은 군사시설물들과 군사인원들을 폭격한다는 구실밑에 조선전쟁 첫날부터 국제법의 규범들과 인도주의적원칙을 란폭하게 위반하면서 공화국의 도시들과 농촌들, 평화적산업시설들, 학교, 병원, 기타 문화시설들에 대한 전면적인 폭격과 함포사격을 가하여 공화국북반부를 재더미만 남은 페허로 만들었다.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미제침략자들의 폭격만행은 미군부우두머리들이 미리 작성한 계획과 지령에 따라 진행되였다.

전쟁사환군들의 지령에 따라 미군은 전쟁초기부터 《B-29》를 비롯한 각종 폭격기, 추격기, 전투기 등을 총동원하여 공화국북반부지역에 침습하여 모든것을 파괴해버렸다.

 2

○ 재더미로 된 주민지구

 

미제는 전쟁초기인 1950년 6월부터 8월까지의 기간에 벌써 연 2만 500대의 《B-29》를 출격시켰고 같은 해 10월 21일까지에는 연 5만대의 비행기를 띄워 공화국북반부의 도시는 물론 농촌과 산간벽지의 민가들까지 모조리 재더미로 만들었다.

우선 평양시를 비롯한 평화적도시들과 농촌들에 대한 미제공중비적들의 폭격만행은 실로 전대미문의것이였다.

평양시에 대한 미제공중비적들의 폭격만행은 1950년 6월 29일부터 시작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평양시를 폭격함에 있어서 시내중심은 물론  당시의 평천리, 상흥리, 양각리, 청암리, 미산리 등 교외 리들도 가리지 않고 폭탄을 던져 건물들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평양시의 폭격만행의 일부를 년도별로 보면 아래와 같다.

 

- 1950년

미제공중비적들은 6월 29일에는 27대, 7월 3일에는 연 60여대의 비행기로 평양시를 집중적으로 폭격하였다.

이 며칠사이에 미제공중비적들의 폭격으로 1 180여동의 살림집들이 완전히 파괴되고 수많은 평화적주민들이 살해되였다. 8월 7일 평양에 침입한 미제침략군 《B-29》폭격기 33대는 450개의 폭탄을 퍼부어 520여동의 살림집을 완전히 파괴하고 9월 4일 40여대의 비행기로 또다시 시내를 폭격하여 730여동의 살림집들을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 1951년

미제공중비적들은 1월 3일 해질무렵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밤새껏 야간폭격을 감행하여 평양시에 숱한 인적, 물적손실을 입혔다.

이에 대하여 국제련맹조사단은 《미제침략군과 리승만군이 감행한 만행에 대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썼다.

《전쟁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시내폭격은 계속되고있다. 그중에서도 1951년 1월 3일의 폭격은 제일 참혹하였다. 이날 미제의 <B-29>폭격기 80여대는 평양을 폭격하였다.

80여대의 폭격기들은 1월 3일 해질무렵부터 이튿날 정오까지 15분내지 20분간의 간격을 두고 계속적인 폭격을 하였다. 먼저 소이탄을 퍼붓고 다음에는 휘발유통을, 다음에는 대형폭탄을 퍼부었다.

또한 소이탄과 시한탄을 동시에 퍼부었다. 소이탄과 휘발유통으로 인하여 시내는 불바다를 이루었다.

이것은 또한 시민들이 구호사업을 진행 못하게끔 하는 수단이다. 그렇기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산채로 파묻혀죽었으며 질식되여죽었다. 수많은 시체들이 아직 그속에 파묻혀있다.

… 현재(1951년 5월) 파괴정도는 100%에 달하고있다. 그러나 남은것이 없이 파괴된 평양에는 아직도 야만적인 폭격이 계속되고있다. 조사단이 시내를 조사하던 날도 다섯번이나 공습경보가 울렸다.》

이것은 전쟁초시기 미제가 세운 《초토화작전》에 따르는 야만적인 폭격만행이였다.

7월 11일부터 8월 20일까지의 사이에 평양시에는 250회이상에 걸쳐 연 1만대이상의 미군비행기들이 날아들어 4 00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4 000여명의 시민을 살해하고 2 500명이상에게 중상을 입혔다.

7월 30일 하루동안에만도 《B-29》폭격기를 포함한 135대의 각종 미군비행기들이 비내리는 날씨를 리용하여 평양시내에 2 000여개의 각종 폭탄을 4시간동안 투하하여 529명의 주민을 즉사시키고 329명에게 부상을 입히였으며 840동의 살림집을 파괴하였다.

8월 14일 평양시상공에 날아든 650대의 미군비행기들은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1 547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2 020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980동의 살림집을 파괴소각하였다.

 

※  미공군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하여 평양시에서는 1951년 12월 31일 당시 8만여동이던 살림집중에서 6만 4 000여동이 파괴되였으며 1951년 한해사이에 4 768명의 주민이 살해되고 2 438명이 중상을 입었다. 전쟁전 46만 4 000명이였던 평양시의 인구가 1951년 12월 31일에는 18만 1 000명으로 줄어들었다.

 

- 1952년

미제침략자들은 3월 25일 《B-29》폭격기 24대를 포함한 63대의 비행기를 연 39회에 걸쳐 평양시 중구역, 선교구역, 력포구역에 침입시켜 1 37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120명이상의 주민들을 살해하고 124동의 토굴집과 기타 건물들을 파괴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7월 11일과 12일 새벽까지의 사이에 걸쳐 평양시내에 6 000여개의 나팜탄, 지뢰탄, 파렬탄, 시한탄을 떨구어 1 600동이상의 토굴집들을 파괴하고 수천명의 부녀자와 로인, 어린이들을 무참히 살해하였으며 주민밀집지대였던 서평양지구를 완전히 페허로 만들었다.

미제침략자들은  8월 10일 새벽 1시부터 4시사이에는 평양시의 주민밀집지대에 10여차의 맹폭격을 가하여 로인, 어린이, 부녀자들을 포함한 1 000여명의 평화적주민들을 학살하고 수많은 살림집과 토굴집을 파괴하였다.

미제살인귀들은 10월 8일부터 29일까지의 기간에 3 000대이상의 폭격기, 전투기들을 동원하여 평양시와 그 주변에 주야간 30여차의 맹폭격을 가함으로써 수많은 시민들을 살해하고 수백개의 토굴집과 살림집들을 파괴하거나 불태워버렸다.

 

※  미제침략군이 1952년 한해동안 평양시와 그 주변에 투하한 폭탄은 지뢰탄, 소이탄, 세균탄을 포함한 각종 폭탄 5만 2 380여개에 달했다. 이것은 당시 평양시의 면적이 52를 넘지 못하였다는것을 고려할 때 1당 1 000개이상의 폭탄을 떨구었다는것을 의미한다. 

 

- 1953년

1월 1일과 5일, 22일, 23일 미군비행기들은 평양시의 주민지구에 깊은 밤중에도 폭격을 련이어 들이대여 148명의 주민들을 살해하고 570여동의 살림집과 토굴집을 파괴하였다.

1월 24일 새벽 2시경에는 미군폭격기 수십대가 평양을 또다시 폭격하여 36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00여명을 폭사시키고 수백명의 주민이 한지에 나앉게 하였다.

 

※  미군은 전쟁 전기간 평양시에 1 400여회에 걸쳐 시민 한사람당 1개가 넘는 42만 8 700여개의 폭탄을 떨구었다. 

 

미제공중비적들은 평양시뿐아니라 공화국북반부의 주요도시들과 농촌들에도 악랄하게 폭격을 가하였다. 

1950년 7월 2일부터 8월 3일사이에는 200여대의 공중비적들을 침입시켜 함흥, 흥남지구에 수많은 폭탄을 투하하고 기관총사격을 가하여 수백명의 주민들을 살해하거나 중상을 입히였다.

1950년 7월 3일부터 8일사이에 4차에 걸쳐 수십대의 미군비행기들은 남포지구에 무차별폭격을 가하였으며 특히 6일과 8일 비가 내리는 날씨를 리용하여 남포시 14개 리중 11개 리에 200발의 폭탄을 퍼부어 558동의 살림집을 파괴하였다. 살림집들의 불붙는 연기는 1주일이상 계속되였다. 그리고 공중비적들은 기총사격을 가하여 400여명의 평화적주민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1950년 7월 5일 함흥시에 침습한 《B-29》폭격기 12대는  2 000m의 상공에서 맹폭격을 가하여 80동의 살림집을 파괴하였으며 8월초 사포지구에도 580여개의 폭탄을 떨구어 130동의 살림집을 파괴하였다.

미제살인귀들은 1951년 7월부터 8월 10일사이에 황해도(당시)일대에 폭격기와 각종 비행기들을 연 1만 8 685대 출격시켜 폭격과 기총사격을 퍼부었으며 미군함선들이 해안지대에 531차의 함포사격을 가하여 4 458동의 살림집들을 파괴하고 625명의 어린이들을 포함한 6 894명의 평화적주민들을 살해하였다.

미제는 1951년 11월부터 12월사이에 공중비적들을 연 1 363대 침입시켜 함경남도의 평화적도시와 농촌들에 1 923개의 대형폭탄을 투하하여 많은 살림집과 공공건물들, 공장, 기업소와 생산시설들, 농경지들을 파괴하고 1 930여명의 주민들을 살해하였다.

1952년 7월 11일부터 31일사이에 원산, 함흥, 청진 등에 달려든 미제공중비적들은 1만 8 000여개의 나팜탄, 지뢰탄, 파렬탄, 시한탄, 각종 폭발물들을 투하하여 수백, 수천명의 평화적주민들을 살해하였는가 하면 해안에 기여든 미해적무리들은 원산, 함흥, 청진 등 동해안의 여러 지역에 대한 함포사격을 가하여 많은 물적 및 인적피해를 가져다주었다.

1952년 7월 한달동안에 미제야수들은 자강도의 농촌들에도 1 000여개의 나팜탄과 6 000여개의 폭탄을 퍼부었으며 1952년 10월 8일부터 29일까지 황해도일대의 도시와 농촌을 5 000여회나 공습하여 수많은 평화적주민들을 살해하였다. 그 대부분은 로인들과 어린이들이였다.

1952년 10월 19일 밤 미제침략군은 98대의 중폭격기로 함흥시와 그 주변에 대한 야만적인 폭격을 감행하여 수백명의 평화적주민들을 살해하였으며 1953년 1월 24일 함흥시에 날아든 《B-29》폭격기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2 112명의 녀성들과 어린이들이 무참히 희생되였다.

이렇듯 미제침략군은 평양은 물론 함흥, 남포, 청진, 원산, 사리원, 혜산 등 공화국북반부의 여러 도시들과 농촌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감행하였다.

 

※  미제가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미군은 전쟁을 도발한 이후 330일동안에만 하여도 연 20만 180대의 비행기를 출격시켜  8만 9 400t의 폭탄과  9 052만 5 000발의 기총탄,  24만 7 000여개의 로케트탄, 700만Gal의 나팜탄을 공화국북반부지역에 퍼부어 거의 모든 도시와 농촌을 재더미로 만들었다. 그리고 1952년 한해동안에 공화국북반부 전지역에 20여만개의 대, 중, 소형폭탄을 투하하였으며 5억여발의 기총탄과 약 40여만발의 로케트탄을 발사하고 1 500여만개의 나팜탄을 떨구었다.

 3

○ 페허로 된 평화적산업시설

 

미제공중비적들은 트루맨과 미합동참모본부가 비준한 계획에 따라 수풍발전소를 비롯한 전국각지의 발전소와 그 시설물들을 폭격하는 만행도 감행하였다.

1952년 6월 23일과 24일 이틀동안에 걸쳐 수백대의 미군비행기들은 수풍발전소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하였고 장진강, 부전강, 허천강발전소들을 폭격하여 발전소와 발전소언제들을 혹심하게 파괴하였다.

미제의 수풍발전소폭격에 대한 세계적인 지탄의 목소리가 울려나오는 가운데 수풍발전소폭격을 규탄하여 영국공산당 정치위원회는 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세계평화리사회에서 채택한 조선전쟁종결문제에 관한 결의문에서도 압록강연안 발전소에 대한 폭격은 조선정전담판의 성공을 더욱 곤난하게 할 의도밑에 감행된 고의적인 도발행동이라고 규탄하였다.

1953년 5월 13일과 14일 이틀동안에 걸쳐 평안남도 순안군(당시)의 어느 한 저수지에 달려든 36대의 미군전투폭격기들은 네차례에 걸쳐 이 저수지제방과 수문을 목표로 40여개의 폭탄을 떨구었다. 결과 저수지의 물이 그 주변의 20개 리 70여개 부락에 범람하여 800여호의 농가가 파괴 또는 류실되였으며 400여명의 농민들이 사망되였거나 행방불명되였다.

미제는 평화적산업시설들을 파괴함에 있어서 공장, 기업소들에 대한 폭격과 포격만행도 감행하였다.

특히 평화적인 산업이 집중되여있는 남포지구의 산업시설에 대한 폭격은 더욱 혹심했다.

미제공중비적들은 1950년 7월 3일, 6일, 8일 세차례에 걸친 폭격으로 남포제련소를 완전히 파괴한데 이어 8월 5일에 8대의 비행기로 판유리공장을 폭격파괴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의 폭격으로 이밖에 당시 흥남비료공장, 성진제강소, 강선제강소, 문평제련소를 비롯한 수많은 공장, 기업소들과 산업시설들도 혹심하게 파괴되였다.

조국해방전쟁의 3년간 미제공중비적들의 무차별적인 폭격만행으로 하여 황해제철소는 완전히 페허로 되였다.

 

※  전쟁기간에 미제의 공중비적들은 2만 4 000여개의 대, 중, 소형폭탄을 투하하여 공장설비의 75%이상, 특히 용광로의 설비는 85%, 해탄로의 설비는 82%이상 파괴하였으며 살림집건물을 전부 파괴하였다. 황해제철소는 미제의 만행에 의하여 무려 약 9억만원(구화페)에 해당하는 손실을 보았다.

 4

○ 파괴된 교육, 문화, 보건기관

 

미제공중비적들은 공화국북반부의 교육, 문화, 보건기관들에 대한  범죄적인 폭격만행도 감행하였다.

1951년초에 이르러 공화국북반부의 학교, 병원, 극장, 휴양소, 문화회관은 미제의 공중비적들에 의해 거의 전부가 파괴되였다.

미제침략군은 전쟁이 끝나는 마지막날까지 공화국북반부의 교육문화발전을 억제하고 우리 민족이 이룩해놓은 찬란한 문화전통과 그 재부를 말살하려는 목적밑에 파괴행위를 계속 감행하였다.

 

※  미군의 야수적폭격으로 하여 1951년 5월까지 평양시에서는 종합대학과 단과대학 6개, 소학교 43개, 중학교 20개, 전문학교 5개, 기술전문학교 4개, 성인학교 20개 등 99개의 학교가, 남포시에서는 각급 학교 24개, 개천시에서는 고급중학교 1개와 중학교 6개, 소학교 31개, 강계시에서는 사범학교 2개, 림산학교 1개, 고급중학교 1개, 소학교 4개, 사리원시에서는 11개의 학교가 무참히 파괴되였다.

 

1952년 6월 15일 27대의 미군비행기들은 김책시를 폭격하여 도서관과 3개의 문화회관을 불태워버렸으며 7월 3일에는 함경북도 고무산골짜기에 있는 소학교까지 폭격파괴하였다.

1952년 7월 19일 미제공중비적들은 평양제10소학교(당시)에서 공부하고있는 학생들과 교정에서 뛰놀고있는 수백명의 학생들에게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80여명을 그자리에서 숨지게 하고 6개의 교실을 완전히 파괴하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미제는 1952년  9월 16일 사리원시부근에 있는 고아원에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18명의 고아를 살해하고 건물을 파괴하였으며 29일에는 창성군에 있는 애육원과 유자녀학원에 12대의 비행기로 맹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건물들을 완전히 파괴하고 수많은 어린이들을 살해하고 부상시켰다.

이러한 미제공중비적들의 폭격, 포격만행에 의하여 공화국북반부의 교육시설들은 거의다 파괴되였으며 남은것은 안전지대에 건설된 일부 가교사와 지하교실뿐이였다.

 

※  미제에 의하여 전쟁기간 파괴된 학교수는 3 746개이며 교실수는 2만 4 804개이다. 이것은 전쟁전 학교수의 72%, 교실수의 88%에 달하는것이다.

 

미제공중비적들은 적십자표식이 있는 건물들과 병원은 공격하지 않기로 되여있는 국제협약마저 짓밟고 보건기관들에 대한 파괴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미제공중비적들은 1950년 7월 13일 원산시안의 여러 병원의 지붕우에 적십자표식을 한 기발들이 펄럭이고있었으나 오히려 그것을 목표로 맹폭격을 들이대였으며 그 결과 병원들에는 피가 랑자하여 발을 옮기기조차 힘들 지경이였다.

1951년 1월 3일과 4일 미제공중비적들은 평양중앙병원지붕우를 30m의 저공으로 날며 폭탄을 마구 투하하여 병원을 파괴하고 페허로 만들었다.

미제는 1951년 2월 강계시병원에 대한 폭격을 감행하여 의사와 환자 200여명을 살해하였으며 9월 23일에는 안변군에 있는 양로원을 완전히 파괴하고 로인 27명을 살해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1951년 10월 13일 성천군료양소에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33명을 살해하고 50동의 건물을 파괴하였으며 16일에는 강계시에 대한 무차별폭격을 감행하여 적십자병원을 파괴하고 치료중에 있던 33명의 환자와 17명의 어린이의 생명을 앗아갔다.

17일에는 평안북도의 어느 한 병원과 아동공원에 대한 야간폭격을 감행하여 134명의 어린이와 26명의 환자를 살해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의 날강도적인 폭격에 의하여 1951년 한해에만 하여도 평양시에서는 32개의 병원과 진료소가, 사리원시에서는 16개의 병원과 진료소가 파괴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극장, 영화관을 비롯한 문화시설들에 대한 파괴행위도 서슴없이 감행하였으며 심지어 교회당도 마구 폭격하였다.

1951년 1월부터 6월까지의 사이에 미군폭격기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의하여 평양모란봉극장을 비롯하여 평안남도도립극장, 평양국립극장, 함흥영화관, 함경남도도립극장, 원산시립도서관, 강원도 철원도서관, 황해도 장연영화관 등이 혹심하게 파괴되였으며 7월 하순부터 8월 중순사이에는 평양시립극장을 비롯하여 평양시내의 2개의 영화관과 원산영화관, 강서영화관이 완전히 파괴되였다.

1951년 7월 30일 미제야수들은 평양교외에 있는 국립영화촬영소(당시)에 수십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파괴하였으며 8월 14일에는 당시의 평양해방투쟁관, 평양레코드제작소, 국립예술극장을 폭격하여 파괴하였다.

 

※  전쟁기간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평양시에서는 9개의 극장과 20개의 영화관, 64개의 교회당이, 사리원시에서는 1개의 도서관, 4개의 문화회관, 4개의 교회당이, 안악군에서는 2개의 교회당이, 강계시에서는 4개의 교회당이 파괴되였다.

이뿐만아니라 미군의 폭격으로 신의주시에서는 15개의 교회당이 파괴되였다.

 5

○ 불속에 잠긴 력사 및 문화유적

 

미제는 군사적목표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옛 사찰, 고분, 루각, 성문들도 가차없이 폭격파괴하였다.

수천년력사를 통하여 우리 민족이 이룩하여놓은 문화유적은 나라의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으로 되는 동시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되는 력사적창조물이다.

때문에 1949년 8월 12일부 제네바협약에 대한 보충의정서(의정서 1) 제53조와 보충의정서(의정서 2) 제16조에는 민족의 문화 및 종교적유산으로 되는 력사적유물, 예술작품, 례식장을 파괴하는 그 어떠한 적대적인 행위를 감행하는것을 금지할데 대하여 지적하였다.

그러나 인류문명의 파괴자인 미제는 국제협약을 란폭하게 위반하면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들에 대한 폭격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1951년 1월 3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모란봉의 영명사에 수많은 폭탄과 소이탄, 휘발유통을 투하하여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5월 6일에는 고대건축유적인 사찰들이 있는 금강산일대에 많은 량의 나팜탄과 소이탄을 투하하여 가장 경치좋은 곳에 있던 옛 사찰인 장안사의 건물 700칸을 불태워버렸다.

1951년 6월 13일, 14일 2일간에 걸쳐 미제공중비적들은 고산군 설봉리에 대한 맹폭격을 감행하여 석왕사를 파괴소각하였다.

그리하여 석왕사의 응진전과 호지문, 대웅전과 팔상전을 비롯하여 50채에 달하는 웅대하고 호화스러웠던 건물들은 일시에 재더미로 되고말았다.

1951년 6월 25일 또다시 금강산일대를 폭격하여  대웅전을 비롯한 신계사의 목조건물들도 모조리 불태웠다.

미제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하여 백운사도 파괴소각되였으며 내금강의 중심부에 자리잡고있던 표훈사도 심히 파괴되였다.

특히 미제는 금강산 4대사찰가운데서 가장 컸으며 금강산에 있는 총 60여개 사찰의 중심이였던 유점사를 완전히 재더미로 만드는 귀축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40여동의 크고작은 건물들과 돌등, 9층탑 등이 완전히 재더미로 되였으며 금강산의 4대사찰은 불타버렸거나 못쓰게 되였다.

전쟁기간 묘향산에 있는 보현사의 대웅전, 만세루, 심검당 등 여러채의 중심건물들이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불타없어졌을뿐아니라 해주의 부용당과 안주의 백상루, 성천의 동명관, 강계의 인풍루, 희천의 위성관, 평양의 숭령전과 숭인전도 그 형체를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이처럼 미군의 야만적인 폭격만행에 의하여 웅장화려하고 우아하던 공화국북반부의 민족문화유산들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불타버리고말았다.

이렇듯 전쟁력사에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온갖 야수적방법과 범죄적수단들을 다 동원하여 우리 민족을 멸족시키려고 한 미제의 만행은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극악무도한것이였다.

 

※  지난 조선전쟁 3년간에 미제는 공화국북반부상공에 공군비행대를 80만회, 해군비행대를 25만회이상 출동시켰는데 그의 85%가 평화적주민들과 민간대상물들에 대한 폭격이였다.

 

※  미제는 전쟁 3년간 공화국북반부의 1당 평균 18개의 폭탄을 투하하였는데 미제공중비적들이 공습하여 투하한 폭탄과 나팜탄만 하여도 근 60만t에 달한다. 이것은 태평양전쟁시기 일본본토에 떨군 폭탄(16만 1 425t)의 3.7배이상에 맞먹는 량이다.

 

이상의 사실은 미제침략자들이야말로 전대미문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으로 공화국북반부의 도시와 농촌을 재더미로 만들고 황페화시킨 극악한 파괴자, 범죄자들이라는 명백한 실증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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