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정수동의 이야기
리조 말엽 순조, 헌종, 철종의 3대 60여년간은 소위 《안동김씨》가 세도를 잡고있던 때였다. 이자들이 나라의 권세를 손아귀에 틀어쥐고 오직 저들의 부귀영화를 도모하기에만 급급하니 이로 말미암아 정사는 나날이 글러만 가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서 허덕이였다. 이렇듯 어지러운 시절, 더우기 구차하고 지체가 낮은 중인(봉건사회에서 량반과 상사람사이의 중간계급)의 집안에서 태여나 비록 뛰여난 재주를 지녔으나 뻗을 길이 막히고 크나큰 포부는 가슴에 품었어도 펴볼 자리가 없어 음울한 심사를 시와 풍자와 해학에 붙여서 50평생을 산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정수동이다. 그는 본래 동래정씨로서 이름은 지윤, 자(본이름외에 부르는 이름)는 경안이니 수동은 곧 그의 호(본명이나 자외에 부르는 별호)이다. 정수동은 리조 말엽에 가까운 1809년(리조 23대 순조 9년)에 서울의 하급관리인 역관(리조때 통역하는 사람이나 번역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의 집에서 태여났다. 출생당시 가정형편을 보면 생활은 넉넉하지 못하였지만 아버지의 영향밑에 글을 익히며 식자의 자질을 갖추게 되였다. 그러던차에 아버지가 일찌기 세상을 뜨게 되자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그의 어머니 최씨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모진 가난속에서 성장한 그는 성격이 호방하고 활달하였으며 기억력이 또한 비상하여 어린시절에 배운 지식으로도 까다로운 문장이나 리치를 능히 깨달을수 있었다. 특히 세상살이형편에 대한 설명과 분석은 그 누구에 못지 않게 능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시문과 이야기를 엮어나가는데서도 문인다운 인품과 예리한 익살군의 기질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성장하여 안해 김씨를 맞아들였으나 어머니의 고달픈 일손을 덜어드릴수 없었으며 결국 안해마저 삯바느질을 시켜 집안살림을 지탱해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벼슬길에도 오르지 않았으며 가난한 집안살림을 보살필념도 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다나니 일년 열두달치고 집에 있는 날이 며칠 안되였다. 친구들을 만나 글도 짓고 이야기장단을 펼치며 롱담과 해학으로 사방돌이를 하다나니 명산대천의 이름난 곳을 가보지 않은데가 없었고 묘향산에만도 두번이나 가서 지어 중노릇을 하였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한다. 그는 본래 천성이 활달해서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도무지 구애하는 법이 없는데다 또한 건망증도 대단하였다. 해산기미가 있는 부인을 위하여 약국으로 불수산을 지으러 가던 길에 친구를 만나 함께 금강산구경을 갔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어떤 곳에 가서는 문장짓기를 잘하여 소문이 났는가 하면 어느 고을에 가서는 부패한 관료들을 골탕먹인 익살군으로, 방랑문객으로 소문이 났다. 가난한 집안을 돌보지 않고 방랑문객으로 돌아가는것을 알게 된 아버지의 옛친구인 조두순대감은 그 집안의 곤궁함을 생각하여 정수동이를 사역원(번역 및 통역을 맡아보는 관청)에 넣어 일을 시켜보려고 불렀다. 때마침 정수동이가 집에 돌아와있었으므로 지체없이 대감을 찾아갔더니 집안형편을 묻고나서 시험삼아 오언시 백운을 지어보라고 하였다. 《짓기는 어렵지 않으나 대감께서 옳게 받아쓰시기나 할지 그걸 미처 모르겠소이다.》 정수동이 하는 말에 조두순대감은 허허 웃으며 《부르면 내 받아쓰지.》 하면서 종이를 펼쳐놓고 붓을 손에 잡았다. 이리하여 두사람이 마주앉아 정수동은 연해 부르고 조두순대감은 연방 이를 받아써서 밤을 새워 마침내 이루어진것이 바로 지금에 전하는 정수동의 시집 《하원시초》속에 수록되여있는 유명한 백운시이다. 받아쓰기를 마치고 다시한번 쭉 내려읽어보니 과연 주옥같은 시편이라 조두순대감이 칭찬하기를 마지않으면서 《이만하면 정수동이 시인이라고 할수 있겠지.》 하니 정수동은 《그만치 받아쓰시니 대감은 대제학(봉건유교교육을 맡아보던 중앙관청들인 홍문관과 예문관의 정2품벼슬)을 하실만 하외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정수동은 그 시험에서 합격을 받고 그의 주선으로 사역원의 참봉을 하게 되였다. 이것이 그의 첫 벼슬이자 마지막 벼슬이였다. 그는 사역원의 참봉을 하는 과정에 봉건관료들과 사귀게 되면서 그들의 탐욕과 불의적인 내막을 더 잘 알게 되였다. 특히 상부에 아부아첨하고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돌아치는 벼슬아치들의 꼴이 역겨웠고 지어 불쌍하게 여겨졌다. 더구나 글귀도 잘 알지 못하면서 남의 잘된 글을 시비질하고 경박하게 놀아대는것이 더욱 역겨워 같이 일하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리하여 자기스스로 사역원에서 나오고말았다. 사역원을 그만둔 다음에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어리석은자들과 아부아첨하는자들, 부패타락한 관료들을 골려주기도 하고 선비량반들이 문장짓기를 할 때엔 한마디 명문장으로 그들을 아연실색케 하였으며 이야기판이 벌어지면 능청스러운 익살과 재담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량반관료나 욕심쟁이, 린색한을 골탕먹이군 하였다. 하기에 서울장안에서 정수동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의 시문과 문장력에 감탄하지 않는 선비들이 없었다. 그에 대한 소문이 더 요란스레 난것은 그의 능란한 해학과 익살때문이였다. 정수동이가 시문과 해학, 익살에서 널리 알려지고 또 잠시도 가만히 있는 성미가 아니라고 하여 누군가가 《정수동》이라고 부른것이 오늘까지 익살군, 재담가로 그 별호가 고착되여 전하여오고있다. 정수동은 실재한 인물로서 50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문장가, 시인으로 보다는 익살군, 재담가로서의 명성이 더 잘 알려져있다. 정수동의 이야기는 많은것이 기사화되지 못하여 류실되였지만 그의 재담가, 익살군의 기질과 체취는 적지 않은 재담들에서 그대로 엿볼수 있다. 정수동의 이야기에서 량반관료배들과 돈벌레, 린색한자들과 욕심쟁이들을 통쾌하게 골려주는 풍자재담들은 오늘도 적지 않게 전해지면서 당대의 불의적인것을 고발하고있으며 익살군의 기질을 충분히 엿보게 하여준다. 물론 재담가, 익살군으로서의 정수동의 이야기는 많지 못하지만 봉이 김선달이 활동한 시대상과 거의 같은 시기로서 이야기군, 재담가로서는 두사람이 쌍벽을 이룬다고 볼수 있다. 뿐만아니라 풍자시인 김병연(삿갓)의 일화와 함께 풍자기질도 상통한것으로 하여 당대의 사회상을 해부하고 풍자비판하는데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고 볼수 있다.
- 량반관료배들을 골려주다
정수동의 이야기에는 량반관료배들의 권세와 략탈상을 풍자해학한 재담들이 적지 않다.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와 상통하지만 재담적구성과 전개방식, 풍유적인 수법에서는 차이를 보여준다. 봉이 김선달의 풍자재담은 사건적으로 다분히 전개되여있고 봉건관료들의 략탈행위와 죄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면서 정면풍자와 해학이 강렬하게 분출되는것이 보편적이라면 정수동의 이야기는 보다 짧고 단도직입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은유적으로 기지있게 풍자해학을 실현하는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정면풍자보다는 은유적수법으로 대상을 통쾌하게 조롱하고 야유하는것이 바로 그의 독특한 풍자기질로 된다는것을 찾아볼수 있다.
남의 돈 7만냥과 자기 돈 한푼
이 설화는 남의 돈 7만냥을 받아먹고도 모르는척 하는 한 대감의 고약한 부정면을 통쾌하게 발가놓은 이야기이다. 어느날 정수동은 조정에서 일을 보는 량반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자기네 동네에서 울타리를 제일 높이 쌓아놓고 사는 상국(령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통털어 이르는 말) 김홍근이 남의 돈 7만냥이나 받아먹고서도 처리를 바로해주지 않아 그 당사자가 속상해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 친구는 이 사실을 자기만 알고있으니 절대 소문을 내서는 안된다고 정수동에게서 다짐을 받고는 《하긴 자네 솜씨면 대감이 삼켜버린 그 돈을 뱉아놓을수도 있게 하련만.》 하고 말을 하였다. 정수동은 아무리 높은 대감인들 사리에 어긋나는노릇을 해서야 무사치 못할게 아닌가고 하면서 그 이튿날 아침 대감의 집을 찾아갔다. 마당에 들어가보니 아직 덧문이 열리지 않은지라 퇴마루에 걸터앉았는데 행랑방쪽에서 어린아이의 우는 소리가 나더니 행랑어멈이 다급히 문을 열고 나왔다. 행랑어멈은 정수동을 보자 귀인을 만난것처럼 반가와하면서 우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급히 여쭈는것이였다. 《야단났수다. 이 어린것이 죽을것만 같은데 무슨 방책이 없을가요?》 정수동은 무슨 일인지 알수 없어 왜 그러는가고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어멈이 《저 어린것이 돈을 먹었사와요. 그걸 꺼내지 못하면 아마 죽을거예요.》 하며 걱정을 하였다. 정수동은 어멈이 너무도 급해하며 말하기에 《그애가 남의 돈을 얼마나 훔쳐먹었기에 죽을 지경이 되였나?》 하고 다시 물었다. 정수동의 그 물음에 어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얼굴을 찡그리며 《아니, 남의 돈을 훔쳐먹다니요? 제 애비가 준 돈 한푼을 입에 물고 놀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는걸요.》라고 하는것이였다. 《제 돈 한푼을 삼킨것을 가지고 뭘 그리 야단인가. 걱정할것없고 그저 아래배나 슬슬 문질러주게.》 그 소리를 듣고 행랑어멈은 《정말 그렇게 하면 일없을가요?》 하고 되묻는것이였다. 그러자 정수동은 큰소리로 《아니, 어느 댁 대감은 남의 돈 7만냥씩이나 받아먹고도 뜨뜻한 아래목에 앉아 아무 탈없이 배만 슬슬 문지르고있는데 제 돈 한푼 먹었다고 죽는단 말이요? 설사 죽는다치면 남의 돈 7만냥을 삼킨 대감이 먼저 죽을게 아니요?!》라고 하였다. 그때 안방에서 대감의 《에헴!》 하는 기침소리가 나는지라 정수동은 마루끝에서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자기가 하는 말을 방안에서 주인대감도 다 들었을것인데 구태여 그를 만나볼것도 없었다. 그래 정수동은 그냥 돌아와버렸다. 안방에서 정수동이 하는 말을 다 들은 대감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정수동이라면 서울시내의 선비와 량반관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자기 내막을 속속들이 다 알고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하고 망설이던 대감은 아쉽기는 해도 소문이 나기 전에 7만냥의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고말았다고 한다. 보는바와 같이 설화는 남의 돈 7만냥을 훌떡 삼킨 대감을 재치있게 골려준 정수동의 능숙한 수완과 기지, 풍자해학적인 수법을 잘 보여주고있다.
달아나버린 감사
언제인가 정수동은 산지사방을 돌아다니다가 산천경개가 좋은 이웃고을에 머물러 고을관리들과 한담도 하며 친하게 지내였다고 한다. 고을원과 관리들은 정수동이 아는것이 많고 말주변도 좋아 그와 사귀기를 좋아하였고 그의 능숙한 수완에 늘 감탄하군 하였다. 그러던차에 이 고을로 감사가 내려온다는 통지가 왔다. 고을관리들은 감사가 내려온다니 길부터 잘 닦아놓아야 하겠는데 날자가 얼마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정수동이 사람들을 끄는 묘기를 가지고있으니 그 재간으로 사람들을 불러내여 길닦기를 시키면 되지 않겠는가고 의논하고 그에게 돈을 주면서 이 일을 맡아 빠른 시일안에 끝내줄것을 부탁하였다. 정수동은 그들에게서 돈을 받아쥔 다음 재미나는 우스개소리와 옛말을 하겠으니 다들 모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정수동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것을 본 고을관리들은 이젠 일을 쉽게 해제끼게 되였다고 안심하고는 점심때가 되자 제볼장을 보려고 사라졌다. 정수동은 한나절동안 우스개소리로 사람들을 웃기고나서 시장기가 났던지 오늘은 이만하고 좀 쉬였다가 한바탕 또 해보자고 하고는 주막집에 찾아들어가 받은 돈으로 술판을 벌려놓았다. 이렇게 며칠을 지내다나니 이젠 길닦기하는데 쓰라고 준 돈도 거의다 써버렸을뿐아니라 길닦기도 하지 못하였다. 어느덧 감사가 행차하는 날이 왔다. 사인교(네사람이 메는 가마)를 타고 고을길에 들어선 감사는 길닦기를 하지 않아 가마가 들추는데다가 돌에 걸려 가마군들이 넘어질것처럼 비틀거리는것을 보고 그만 화가 치밀어올라 《이 고을에선 길닦기도 하지 않고 산다더냐? 어서 관원을 불러오라!》 하고 호통질하였다. 이리하여 길닦기를 맡았던 정수동이 감사앞에 불리워가게 되였다. 《네가 길닦기를 맡아했느냐? 너는 맡은 일을 하지 않고 쌀만 축내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 정수동은 미안스러운듯 허리를 굽혀보이고는 《질책하는것은 알아들을만 하나 그럴만한 사연이 있어 길닦기를 하지 못하고있소이다.》 하고 말하였다. 감사는 변명하는 정수동에게 그럴만한 사연이란게 대체 무엇인가고 따져물었다. 그러자 정수동은 길 한가운데 솟아있는 돌에 깍듯이 허리굽혀 절을 하고는 감사앞에 다시 와서 말하였다. 《저는 처음부터 길에 박혀있는 돌뿌리도 뽑고 길도 번듯이 닦아놓으려 하였는데 저 돌이 자기를 뽑아서는 안된다고 반대하기에… 내 어찌 무작정 불손한짓을 하겠습니까?!》 성미가 급한 감사는 그 말의 뜻도 새겨보지 않고 《돌이 반대하다니, 너 누구앞에서 그런 거짓말을 꾸며대느냐?》 하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자 정수동은 바른 자세를 하면서 《저 돌이 말하기를 <나는 옛날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뿐아니라 임금님께서 사냥하러 가실 때에도 뽑아버리지 않았는데 도대체 감사가 뭐길래 나를 뽑아버리지 못해 그처럼 분별없이 노는가.> 하고 하소연하였소이다.》라고 말하였다. 그제야 감사는 정수동의 말에 마음이 섬찍하였다. 정수동의 말대로 임금은 드문히 이 길로 사냥하러 다니군 하였다. 그런데 임금이 지나갈 때에도 뽑지 않은 돌을 자기가 뽑으라고 하면 그것이 불경죄(임금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불손한 죄)에 걸려들수 있고 또 그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면 언제 목이 날아날지 알수도 없는 일이였다. 감사는 정수동과 맞다든것이 불쾌하여 욕이라도 퍼붓고싶었지만 임금의 행차를 거론하며 말하는 꼴이 수상하여 더는 말을 못하고 《길이 나쁘니 잘 살펴가자!》 하고는 황망히 달아나버리였다. 정수동은 사인교를 타고 달아나는 감사를 쳐다보며 저렇게 어리석은 량반이 시골길 타발까지 하니 백성들의 고혈은 얼마나 빨아냈겠는가 하는 생각에 그를 골려준것을 깨고소해하였다고 한다. 설화는 보는바와 같이 익살군으로서의 정수동의 재치있는 기질을 짧은 이야기속에 담으면서 어리석고 무지한 감사를 통쾌하게 골려준것을 실감있게 보여주고있다.
대감의 망건
정수동은 식견이 있고 풍자해학이 강하여 어느 량반관료나 지어 대감까지도 그와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였다. 그것은 정수동이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자기의 뒤생활과 죄상을 고발하거나 소문내여 더는 헤여날수 없게 망신을 시키기때문이였다. 대사집에서도 그가 사람들을 잘 웃기고 이야기도 구수하게 하기때문에 늘 귀빈으로 청하군 하였다. 어느 가을날 정수동이가 잘 아는 한 대감이 자기 아들잔치에 그를 청하여 례식과 손님접대 등을 맡아보도록 하였다. 원래 물계가 밝은데다가 푸접도 좋고 막히는데가 없는 정수동인지라 여러 대감과 고관들 그리고 아전들까지 자리를 정해주고 대접을 잘해주었다. 그러다나니 수고한다고 저저마다 부어주는 술을 한잔씩 다 받아마시고난 정수동은 만취되여 일찌감치 대감방에서 잠들고말았다. 정수동이 아침 일찌기 눈을 떠보니 대감방인지라 너무도 급해맞아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자기 망건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대감이 아직도 깨지 않았는데 괜히 망건을 찾느라고 부산을 피울수도 없어 가만히 생각하다가 옆에 벗어놓은 대감의 망건을 넙적 쥐여 머리우에 얹어놓았다. 잠시후에 대감도 일어났는데 머리맡에 벗어놓은 망건이 없어졌다면서 분주탕을 놓는 바람에 주인집 하인들이 올라와 덮고 자던 이불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때 한 상노아이가 《여기 있사와요.》 하며 이불짬에서 때가 끼고 퇴색한 망건을 하나 찾아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때에 절고 먼지가 오른것이 주인대감망건과는 전혀 딴판이였다. 상노아이가 《아니, 이게 누구 망건이야?》 하고 이상해하는데 정수동이 옆에 있다가 《어디 보자. 옳지, 내 망건이 여기 있었구나!》 하는것이였다. 그러자 상노아이가 《그럼 머리우에 쓰고계신건 누구 망건이예요?》 하고 물었다. 그제야 정수동은 《오, 이것말이냐? 이게 바로 너희 주인대감의 망건이다.》 하고 능청스럽게 대답하였다. 청지기가 은근히 화를 내며 《그래 저희가 그처럼 찾느라고 애쓰는걸 뻔히 보고계시면서도 모른체 한단 말씀이예요?》 하니 정수동은 웃으며 《내 망건이면 자네들이 그렇게 열이 나서 찾아주겠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설화는 보는바와 같이 간단한 세태생활의 일면을 펼쳐보여주면서 익살군으로서의 정수동의 인물상을 잘 보여주고있다.
옛말로 재상의 환심을 사려다가
어느해 봄날 황해도 시골지주가 벼슬자리를 탐내여 수천평의 땅을 팔아 돈 수백냥을 마련해가지고 이야기군으로 소문난 정수동이를 찾아왔다. 그것은 서울에 와 재상댁에 문턱이 닳게 드나들며 벼슬자리를 구하는데 원체 저같은 사람이 많은지라 좀처럼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것이다. 그래서 우선 주인대감의 환심부터 사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정수동을 끌고 술집으로 가서 술 한턱을 내는것이였다. 시골지주는 대감이 옛이야기를 썩 좋아하는데 자기에게 재미있는 얘기 한마디만 일러달라고 정수동에게 부탁하면서 그럼 자기가 대감앞에서 한번 해보고 그를 웃기면 한턱 단단히 내겠다고 하였다. 정수동은 시골지주가 옛말을 얻어듣고 재상을 찾아가 벼슬자리를 사보려고 하는것이 어리석게 여겨졌으나 지주의 술을 받아먹고 못한다고 할수는 없어 래일 저녁 재상집으로 함께 가되 내가 문밖에서 옛말이야기를 떼면 그대로 듣고 받아외우는것이 어떤가고 하였다. 지주는 정말 기발한 생각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하면 옛말로 재상의 환심을 살수 있을것 같다고 좋아하였다. 다음날 저녁 정수동은 시골지주와 함께 재상의 집으로 갔다. 시골지주가 재상방에 들어가 정수동이 일러준대로 웃간미닫이앞에 바짝 등을 대고 앉아있으니 미닫이밖에서 나지막하게 정수동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옳지 왔구나 하고 시골지주는 헛기침을 한번 한 다음 아래목에 앉아있는 주인대감을 건너다보며 《오늘은 제가 옛날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하고 말을 떼였다. 재상은 심심하던차에 이야기군이 찾아들었는지라 좋아하면서 어디 한번 해보라고 하였다. 정수동은 밖에서 그 말소리를 듣고 옛말을 엮어대기 시작하였다. 《옛날 어떤 마을에 한 선비가 있었습니다.》 시골지주가 정수동의 말을 그대로 받아 큰소리로 《옛날 어떤 마을에 한 선비가 있었습니다.》 하자 대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 하며 얘기를 재촉하였다. 《어느날 이 선비가 첩첩산중으로 들어갔더랍니다.》 《어느날 이 선비가 첩첩산중으로 들어갔더랍니다.》 《그래서?》 《이때 숲속에서 난데없는 큰 범이 뛰여나왔습니다.》 《이때 숲속에서 난데없는 큰 범이 뛰여나왔습니다.》 《아, 그래서?》 하며 대감이 목을 길게 빼들고 재촉하는데 아차, 이거 큰일이 아닌가. 이제까지 미닫이틈으로 이야기를 대주던 정수동의 말이 뚝 끊어져 감감무소식이였던것이다. 그런데 대감은 또 대감대로 참지 못하고 《그래서 어떻게 되였단 말이냐.》 하며 계속 이야기를 재촉하는것이였다. 시골지주는 혹시나 정수동이 그동안을 참지 못하고 소피라도 보러 갔는가 하여 하여튼 동안이나 좀 끌어보자고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옛날 어느곳에 한 선비가 있었더랍니다.》 《뭣이.》 《어느날 이 사람이 첩첩산중으로 들어갔더랍니다.》 《이 사람아. 그건 아까 하지 않았나.》 《이때 숲속에서 난데없는 큰 범이 뛰여나왔습니다.》 대감은 했던 얘기를 계속 엮어대는 시골지주의 말에 참다못해 역증을 버럭 내며 《사람이 얘기를 하려거든 좀 똑똑히 하게. 그래 큰 범이 나와 어떻게 했단 말인가?》 하고 다그어댔다. 대감의 독촉에 시골지주는 그만 《저… 갔사와요.》 하고 대답해버리고말았다. 대감은 무슨 소리인지 통 알수가 없었던지라 《가다니… 큰 범이 나왔다가 도루 들어갔단 말이냐?》 하며 물었다. 이렇게 되니 지주도 더는 어쩌는수가 없었던지 울상을 해가지고 《저… 정수동이 달아났사와요.》라고 말하였다. 아닌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정수동의 이름이 나오는통에 잠간동안 어리둥절하였던 대감이 곧 그 속내를 짐작하고 으하하 웃음보를 터뜨리였다. 망신을 톡톡히 한 시골지주가 다음날 정수동을 붙잡고 원망을 하자 그는 《그렇게라도 안하면야 무슨 수로 대감을 한번 웃겨보시겠소!》라고 하였다고 한다. 설화는 보는바와 같이 매관매직에 눈이 어두운 시골지주의 어리석은 행동을 풍자해학적으로 보여주면서 당시 사회상의 일단을 생동하게 펼쳐보여준다.
정승대감의 시
어느해 가을이였다고 한다. 조정에서 높은 벼슬자리를 타고앉은 정승의 생일을 계기로 여러 대신들이 놀이를 벌리게 되였다. 주인집 정승령감은 아래방의 대감들이 저저마다 축시를 엮어대는지라 가만히 앉아있을수 없었던지 아니면 제 자랑을 하고싶었던지 좌중을 살펴보며 한마디 건네였다. 《참, 내 요즘 시 한수 지은것이 있는데 한번 들어들 보시려우?》 그러자 여러 량반관리들이 《네, 좋소이다.》 하고 대답을 하였다. 주인대감이 문갑우에서 시축(시를 적어놓은 책)을 꺼내들고 헛기침을 두어번 한 다음 막 시를 읊어내려가려는데 난데없이 방구석에서 정수동이 《거, 시를 참 잘 지었습니다.》 하고 소리내여 찬사하는것이였다. 아래방에 앉았던 고관대작들은 모두들 어리둥절하여 웃방을 올려다보니 청하지도 않은 익살군 정수동이가 말석에서 하는 말이였다. 시를 읊으려던 주인대감은 어이없기도 하거니와 또 불쾌하기도 하여 《또 취했구만. 시는 읊지도 않았는데 그게 무슨 당치않은 소리인가?!》 하고 나무람하였다. 그러자 정수동이 《아니올시다. 이제 대감께서 그 시를 읊고나시면 저기 앉으신 우상대감(봉건정부에서 세번째로 높은 벼슬)께서 우선 <거, 시를 참 잘 지으셨습니다.> 하실게고요, 다음엔 리판대감께서도 또 <거, 시를 참 잘 지으셨습니다.> 하실겁니다. 다음에는 또 병판대감, 참판령감, 승지령감하며 모든 대감님네들이 차례로 <거, 시를 참 잘 지으셨습니다.> 하실판이니 그 차례를 기다리고 앉아있다가는 제가 말씀드릴 겨를이 없을게 아니오이까? 그래 미리 말한것이올시다. 정말이지 거, 시 참 잘 지으셨습니다.》 정수동의 말에 주인대감은 호탕하게 웃고나서 《정수동이 익살이 없으면야 정수동이 아니지!》라고 하였다고 한다. 설화는 보는바와 같이 봉건관료들이 벼슬앞에서 아첨과 찬사를 하는 비굴성을 가벼우면서도 은유적으로 해부조소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