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지주와 부자들을 망신시키다

 

2

닭알값이 송아지값이 되다

 

봉이 김선달이 살던 앞집에 린색하고 공짜를 좋아하는 지주가 살고있었다.

그 지주는 물건과 돈으로만 사람을 사귀고 재산은 많으면서도 남의것을 긁어내기를 좋아하였다. 더우기 공짜라면 오금을 못 쓰는 린색하기 그지없는 도적놈같은 심보를 가진 놈이였다.

그의 뒤집에 살고있던 김선달이네도 그 지주의 피해를 면할수 없었다.

김선달의 집에는 재산이라고는 여윈 황소 한마리뿐이였는데 지주는 자기 집에 피둥피둥 살찐 암소가 있으면서도 부리기 아까워 밭을 갈 때나 짐을 실을 때면 늘 자기네 소는 암소여서 힘을 못쓴다는 핑게를 대고 김선달이네 여위고 휘청거리는 황소를 거리낌없이 가져다 쓰군 하였다.

김선달은 지주의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괘씸하게 생각하여왔지만 그의 땅을 부치는 처지이므로 내놓고 거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김선달은 이웃에 사는 지주의 그 고약한 버릇을 보고 참을수 없어 하루는 그를 골려줄 심산으로 한가지 꾀를 생각해내였다.

어느날 선달은 닭알꾸레미를 들고 지주집으로 찾아갔다.

《주인님 계십니까?》

선달이 찾는 소리에 지주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지주는 선달이가 들고 온 닭알꾸레미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어떻게 왔는가고 물었다.

《저, 이 닭알을 받으시우…》

선달이 미안쩍어하며 닭알꾸레미를 내밀었다.

지주가 이 닭알은 웬것인가고 물으니 선달은 우리 집에 수닭이 없는데 암닭이 알을 낳는것이 이상해서 어제 살펴보니 주인님의 수닭과 휩쓸려다니는것을 보았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그러고보면 이 닭알은 주인님의 수닭이 있어 낳은것이니 어찌 우리가 혼자 먹을수 있겠나요!》 하며 닭알꾸레미를 내놓는것이였다.

생각지도 않던 닭알이 꾸레미채로 들어오자 지주도 흥이 나서 《그렇지! 우리 집 수닭이 있길래 자네 집 암닭이 닭알도 많이 낳고 병아리도 많이 깨우는게 아닌가!》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선달은 《사람이 도리를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앞으로도 꼭꼭 닭알을 가져다드릴터이니 이웃간에 도리를 잊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지주는 입이 귀밑까지 째져 《그 도리를 잊을리 있나. 더구나 앞뒤집사이인데…》 하며 만족스러워하였다.

그후 한달이 지나서 지주네 암소가 송아지를 낳게 되였다.

선달이는 지주집에서 송아지를 낳았다는 소리를 듣고 이번에도 전번과 같이 닭알꾸레미를 들고 지주령감을 찾아갔다.

방문을 열고 나온 지주는 《자네가 우리 집 수닭신세를 잊지 않고 또 이렇게 닭알꾸레미를 들고 찾아왔구만! 도리를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주니 앞뒤집사이의 의리와 정도 한결 더 각별해지네그려.》 하면서 닭알꾸레미를 넙적 받아쥐였다.

선달은 지주가 좋아하는것을 보면서 《주인집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다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지주는 흐뭇해하며 《낳구말구. 실팍한 송아지를 낳았지. 그래 보겠나?》 하고는 외양간에 들어가 송아지를 안아내왔다.

선달은 송아지를 어루만지며 《이 송아지가 우리 집 황소를 꼭 닮았구만요. 하긴 우리 집 황소가 있었으니 이 송아지도 생긴것이지요!》 하고는 송아지를 안고 문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선달의 행동을 지켜보던 지주는 《선달이, 이 사람! 자네 왜 남의 송아지를 안고 가나?》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선달은 지주를 흘겨보며 《아직도 그 도리를 모르겠어요. 우리 집 황소가 아니였더라면 주인님네 암소가 송아지를 어떻게 낳을수 있었겠어요. 방금전에 닭알꾸레미를 받고서도 그러시우.》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지주령감은 더는 어쩔수 없어 아무 소리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다가 분통이 터졌던지 《아이쿠! 닭알값이 송아지값이 되였구나.》 하고 지금까지 공짜로 닭알을 받아먹은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결국 공짜를 좋아하던 욕심쟁이 지주는 봉이 김선달의 꾀에 넘어가 닭알 몇알에 송아지를 빼앗기고말았다.

 

 

3

논밭의 바위돌

 

봉이 김선달이 서울로 가던 길에 황해도의 논벌을 지나게 되였다.

화창한 봄날인지라 논벌에는 농사차비를 하느라고 농군들이 수많이 나와있었다.

김선달이 마을로 질러가려고 논뚝길로 들어서는데 마침 점심때라 모를 내던 한 농부가 논판 한가운데 있는 널직한 바위우에 올라앉아 점심밥을 먹고있었다.

선달은 다리쉼도 할겸 쉬여가려고 그 농군곁에 다가갔다. 가보니 농부가 맨보리밥덩어리를 목이 메게 먹고있는것이였다. 보매 생활이 무척 곤난한것 같았다.

선달이 그 농군의 곁에 앉으며 어째서 힘든 모내기를 하면서 맨밥만 드는가고 묻자 농군이 하는 말이 자기는 황지주의 품팔이군인데 이렇게 맨보리밥을 먹는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이 벌은 황지주의 소유인데 그놈은 많은 땅을 소작주고있지만 바위돌이 있는 이 논만은 옥토라고 소작도 주지 않고 모내기철이 되면 늘 소작인들을 이렇게 불러내여 공짜로 일을 시켜먹는다고 욕설을 퍼부어댔다.

선달은 바위돌이 큰데다 넙적하여 몇사람이 앉아서 점심을 먹을수 있을것 같아 발로 흔들어보았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농군이 하는 말이 황지주가 이 바위돌이 옥토의 한가운데 있어 들어내려고 수많은 작인들을 불러내여 역사질을 하였지만 끝내 들어내지 못하였다는것이다.

마침 이때 황지주가 농부들이 제대로 일하는가를 살피려고 저쪽에서 뚱기적거리며 오고있는것이 보였다. 한참동안이나 황지주를 욕하던 그 농부가 바로 저기 오는 작자가 황지주라고 선달에게 귀띔해주었다.

선달은 황지주가 다가오자 마치 그를 기다리기라도 했던것처럼 깍듯이 고개를 숙여보이며 《이 논이 어르신네 땅이라지요? 그런데 어째서 이런 기름진 논에 이같은 바위돌을 그대로 두었는가요?》 하고 불만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황지주가 《그대로 두지 않으면 어쩌겠나? 자네에게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나?》 하고 눈을 치뜨는것이였다.

선달이 《어쩔수 없다니요. 제꺽 지워내야지요.》라고 하자 황지주는 《자네가 이 돌을 꽤 지워낼수 있는가?》 하고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그거야 힘을 쓰기탓이지요.》

선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지주는 그럼 어서 이 돌을 지워내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먼길을 오다나니 피로하고 지쳐서 못할것 같수다. 단고기 한마리 먹고 한잠 푹 자고나면 되겠는데…》

선달의 말에 황지주는 크게 마음이 동하여 단고기와 술은 후히 대접하겠으니 제발 자기 집에서 하루밤 묵으면서 돌을 지워내주고 가라고 부탁하였다.

선달은 황지주의 부탁에 마지못해 응하는척 하면서 그날 밤은 지주집에서 단고기와 술을 실컷 대접받으며 하루밤을 묵었다.

다음날 지주는 소문을 퍼쳐 구경군들까지 데리고 선달이와 함께 바위돌이 있는 논밭으로 나왔다.

이윽고 논판의 바위곁에 들어선 선달이는 바위돌을 둘러보다가 맞춤한 곳에 서더니 팔을 걷어올리면서 《야!-》 하고 소리를 치며 바위를 업을듯이 그앞에 등을 돌려대고 허리를 굽히였다.

그리고는 황지주를 보고 《자, 이젠 돌을 지워주시우!》 하며 큰소리로 독촉하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황지주가 눈판에 자빠진 소처럼 눈만 데룩데룩 굴리고있는데 선달이 《제꺽 지워내드릴테니 빨리 돌을 등에 지워주시오!》 하고 다그어댔다. 그러자 황지주는 난감한듯 《내가 무슨 힘으로 이걸 지운단 말이냐?》 하면서 어처구니없어하였다.

그 말에 선달은 안타까운듯이 투덜대면서 《자, 여기 이걸 지워줄 사람이 없소?》 하고 모여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집채같은 바위를 지워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선달은 《지워줄 사람이 없으면 할수 없군!》 하면서 손을 털며 논밭에서 나왔다.

그러자 성이 독같이 오른 황지주는 개 한마리에 술 한동이를 먹고 바위돌을 들어내주겠다고 하고는 이제 와서 못하겠다니 이게 될 말인가고 따지고 들었다.

그제야 선달은 《내가 언제 들어내주겠다고 했소? 지워내겠다고 했지. 지워줄 사람을 구해오시오. 그러면 내가 제꺽 지워내드리지요.》 하면서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말문이 막힌 황지주는 얼굴이 뻘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였다.

모여선 사람들이 그 꼴을 보고 웃음보를 터뜨리자 황지주는 망신스러웠던지 황급히 달아나버리고말았다.

논밭에 모여섰던 농군들은 황지주가 달아나는 몰골을 보며 《농군들을 공짜로 데려다 일을 시켜먹더니 오늘은 그 못된 버릇이 뚝 떨어지게 됐군. 저렇게 기겁하여 달아나는걸 보니!》 하고 좋아라 큰소리로 웃어댔다.

그후로 황지주는 공짜로 농군들을 부려먹다가는 봉이 김선달이 다시 나타나 골탕을 먹일것 같아 함부로 못된 짓을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설화는 보는바와 같이 논판에 박힌 큰 바위돌을 들어내여 소출을 더 얻어보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도리여 큰 봉변을 당하는 황지주의 어리석은 망동을 통쾌하게 풍자단죄하고있다. 뿐만아니라 인민적대변자로서의 봉이 김선달의 인물상을 경쾌한 웃음에 담아 잘 보여주고있다.

 

 

4

《꿀강아지》

 

봉이 김선달이 어느 한 고을에 들렸다가 장마당을 구경하러 가보게 되였다.

그런데 한 로인이 돼지새끼를 사려고 하면서도 어느 돼지새끼를 사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며 서있는것이였다.

그래서 선달은 로인이 물계를 잘 모르는것 같아 도와드리고싶은 생각에 자기가 좋은것을 골라주겠노라고 하며 그 로인의 곁에 다가섰다.

그러자 로인은 《일없네. 내가 돼지를 한두해 길러보았다구 좋은 돼지를 모를가.》 하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도 웬일인지 로인은 주둥이가 길고 엉뎅이가 뾰족한것을 고르는것이였다.

로인의 행동을 의아쩍게 생각한 김선달은 좋은 새끼돼지는 주둥이가 뭉툭한데다 허리가 늘씬하고 엉뎅이가 넙적한것이라고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김선달의 성의가 고마웠던지 그제야 로인은 사연을 말하는것이였다.

그 로인의 말이 자기 마을에 허지주가 있는데 그놈은 욕심이 사나워서 자기네 짐승보다 나은것을 보면 기어이 빼앗아가며 다른 사람들이 제 물건보다 좋은것을 쓰거나 희귀한 물건을 가지고있는것을 보면 심술에 몸살을 앓는다는것이였다.

로인의 말을 다 들은 김선달은 허지주의 버릇을 단단히 떼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로인이 사는 마을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로인장에게서 허지주가 사는 마을을 알아낸 선달은 그놈을 골려줄 생각으로 장마당에서 작고 복스럽게 생긴 강아지 한마리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강아지의 배를 깨끗하게 하려고 이틀동안 맹물만 먹이고는 장마당에 나가 꿀 한단지를 사가지고 와서 강아지에게 먹이였다.

그래서 며칠동안 굶주렸던 강아지의 배에는 온통 꿀이 가득차게 되였다.

다음날 저녁녘에 선달은 허지주의 집을 찾아갔다.

마당가에 들어선 선달은 지나가는 길손인데 다리쉼이나 하자고 부탁하였다.

허지주는 길손의 아래우를 훑어보고나서 《우리 집은 주막집이 아니니 이웃마을 주막에나 찾아가보시오.》 하고 딱 잘라매였다.

인정사정없는 허지주의 말에 선달은 조금도 성을 내지 않고 《그렇게 하리다.》 하고는 강아지를 품속에서 꺼내면서 빈그릇이나 잠간 빌려달라고 청하였다.

지나가던 길손이 영문도 없이 빈그릇을 찾자 허지주는 빈그릇은 무엇에 쓰려는가고 캐여물었다. 꿀이나 받아 요기나 하자고 그런다고 대답하는 선달의 말에 허지주는 길손이 자기 집에서 꿀을 얻으려는줄 알고 없다고 딱 잘라매였다.

그러자 선달은 《이 강아지에게서 꿀을 받자구 그럽니다.》 하면서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는것이였다.

길손의 말에 허지주는 《뭐, 강아지에게서 꿀을 받는단 말이요?》 하고 신기해하면서 바싹 다가섰다. 그러면서도 혹시 이 길손이 자기를 놀리는것이 아닌가 살피는 눈치였다.

선달은 《어디 믿기 어려우면 잘 보십시오.》 하고는 빨리 빈 사발을 가져오라고 독촉하였다.

허지주는 강아지에게서 꿀이 나온다는 말에 그만 귀가 솔깃해져서 얼른 부엌에 들어가서 빈 사발을 가지고 나와 선달에게 주었다.

빈 사발을 받아쥔 선달이 강아지의 똥똥한 배를 슬쩍 누르자 정말 강아지에게서는 노랗고 걸죽한 꿀이 슬슬 흘러나오는것이였다.

이렇게 빈 사발에다 꿀을 가득 채워놓은 선달은 보따리에서 떡을 한개 꺼내여 척척 꿀에 찍어먹는것이였다.

꿀에다 떡을 발라 맛나게 먹는 선달을 바라보던 허지주는 그게 진짜 꿀이 맞는가고 의심스러워 슬쩍 손가락으로 찍어 그 맛을 보았다.

그런데 아니, 정말로 그것은 혀바닥이 말려들어갈 정도로 달콤하고 향기로운 진짜 꿀이였다.

너무도 신기한 광경인지라 허지주는 경탄을 금치 못해하며 어떻게 되여 강아지에게서 꿀이 나오는가고 선달에게 물어보았다.

선달은 《이 강아지는 <꿀강아지>요. 우리 조상때부터 길러오는 신기한 강아지인데 이렇게 길떠날 때 데리고 다니면서 늘 꿀을 받아먹군 하지요.》라고 하였다.

선달의 말에 지주는 대번에 마음이 동하여 바싹 다가서며 《여보게! 그 강아지를 나에게 팔지 않겠나?》 하고 흥정하려 들었다.

선달은 《아니요. <꿀강아지>를 팔다니요. 그것은 안되오이다.》 하고 딱 잘라매였다.

그러자 더욱 안달이 난 지주는 《자네네 집에 큰 강아지가 있다면서… 그것이 새끼를 낳으면 또 키우면 되지 않겠나?》 하면서 무던히도 졸라댔다.

이렇게 선달은 지주의 비위를 크게 돋구어놓고는 대체 몇냥이나 주려고 하는가고 넌지시 물었다.

허지주가 한 50냥 주면 안되겠는가고 하자 선달은 펄쩍 뛰며 《50냥이요? 안됩니다. 200냥이라면 또 몰라도… 어데서 이런 <꿀강아지>를 찾아보겠소. 에이, 그만합시다.》 하고 돌아서 떠나려고 하였다.

급해난 지주는 방안으로 뛰여들어가 얼른 돈궤에서 200냥을 꺼내 선달에게 쥐여주고는 《꿀강아지》를 덮치듯 빼앗아내였다.

이렇게 지주에게 《꿀강아지》를 판 선달은 지주집을 나서면서 이르기를 강아지에게 콩을 갈아 물에 풀어먹이면 꿀이 더 잘 나올것이라고 알려주고는 큰길에 나서 활개치며 고을을 떠났다.

그 이튿날 허지주는 신기한 《꿀강아지》를 산것을 자랑하고싶어 온 동네에 소문을 내였다.

그러자 온 동네의 늙은이들과 아낙네들 지어 어린이들까지 모여들어 정말 꿀이 나오는가 보자며 저저마다 독촉하였다.

허지주는 간밤에도 배를 눌러 꿀을 뽑아먹고 이어 콩물을 갈아 배가 똥똥하게 먹였는지라 크게 소문을 낼 작정으로 머슴에게 어서 작은 보시기를 여러개 가져오라고 일렀다.

처음 한 보시기를 받아 늙은이들부터 돌리였다. 그러자 저저마다 마을사람모두가 앞을 다투어 맛보았는데 웬일인지 모두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퉤퉤하며 개똥물이라고 소리치는것이였다.

지주는 《그게 무슨 소린가? 이것은 분명 <꿀강아지>요. … 어제 저녁에도 집안식구들이 다 맛보았는데… 어디 보자.》 하면서 한 보시기 받아삼키다가 그만 왈칵 토해버리고말았다.

그리고는 지나가던 길손에게 속히운것이 너무나도 분통이 터져 땅을 치며 한탄하였으나 이제는 다 쑤어놓은 죽이여서 어쩌는수가 없었다.

그러나 허지주는 자기를 골탕먹이고 떠난 그 길손이 인경을 치고도 무사했다는 그 유명짜한 봉이 김선달이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5

성미급한 《사위》

 

어느해말이였다.

서울에 갔던 김선달은 평양에서 가족들과 함께 설을 쇠려고 급히 돌아오고있었다.

설명절을 이틀 앞둔 날 김선달이 어느 한 주막집에 들렸는데 한 더벅머리총각이 제 혼자 밤이 깊도록 술을 마시며 한숨만 푹푹 내쉬고있었다.

선달은 총각의 정상을 그저 보고만 있을수 없어 무슨 일로 그렇게 한숨만 쉬는가고 물었다.

그러나 총각은 선달의 말을 들었는지 먹었는지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는것이였다.

김선달이 총각에게 사연을 거듭 물어서야 총각은 한숨을 푹 내쉬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 앞집에 강가성을 가진 부자가 살고있는데 그 집에 어여쁘게 생긴 외동딸이 있지요. 그 딸과 저는 어렸을 때부터 소꿉동무로 자라다나니 나이가 들면서 정이 깊어져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사이로 되였기에 몇해전에 우리 부모들이 그 부자집에 청혼을 하였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총각의 말을 다 듣고난 선달이 무슨 리유로 거절당했는가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총각이 하는 소리가 그 처녀의 아버지가 자기처럼 성미급한 사위를 맞겠다고 한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총각은 자기와 같이 용하고 일만 아는 총각에겐 딸을 줄수 없다고 하였다는것이였다.

총각은 《그래서 내 오늘 이렇게 화술을 마시고있는것이지요. 사랑하는 처녀가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기에 내 먼저 다른 처녀에게 장가들수 없어 이 한해를 또 보내는것도 가슴아프지만 사랑하는 처녀가 아버지덕에 또 늙은 처녀로 한해를 보내는것이 더 가슴아파 그럽니다.》라고 하면서 련속 술잔을 기울이는것이였다.

이러는 총각을 이윽히 바라보는 김선달은 그에게 쏠리는 동정을 금할수 없었다.

(내 비록 부모처자와 설명절을 쇠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총각의 딱한 사정을 풀어주어야겠다. 함께 설명절을 쇠지 못하는 서운함이 아무리 크다한들 이 총각과 처녀의 괴로움에 비길수 있으랴.)

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선달은 《여보게 젊은이, 너무 속쓰지 말게. 내 자네들을 돕겠네.》 하며 총각의 손을 잡았다.

김선달은 의아해하는 총각에게서 강부자의 집을 알아내고 이튿날 아침 일어나자 곧 강부자네 집으로 찾아갔다. 김선달이 강부자네 집근처에서 그 집 동정을 살피고있는데 마침 강부자가 나들이옷을 입고 대문을 나서는것이였다. 김선달은 좀 떨어져 그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쯤 따라가니 그들앞에는 그리 넓지 않은 개울이 나타났다.

때는 설날을 하루 앞둔 그믐날이라 개울에는 살얼음이 지고 날씨는 쌀쌀하였다.

개울에 다달은 강부자가 개울을 그냥 건늘수 없어 주변을 살피더니 언 돌을 발뒤축으로 툭툭 떼내여 징검다리를 놓고있었다.

바로 이때 김선달은 강부자의 곁을 지나며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 여보시오, 어느 세월에 돌다리를 놓고 건느겠소. 답답도 하신 량반이시구려. 자, 이렇게 건너갑시다.》

김선달은 보란듯이 짚신에 버선발그대로 내물에 들어서 덤벙덤벙 개울을 건너갔다.

그러는 김선달을 바라보는 강부자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여보게 젊은이, 조금만 수골하면 신발과 버선을 적시지 않을텐데 그것을 못 참아 뼈를 에이는 얼음물에 뛰여들다니… 원 성미도 몹시 급하군…》

《성미가 급한것보다 그런것을 하기가 답답해서 그럽니다. 젖은 신발과 버선은 말리면 될것이구 발이 시린거야 참으면 될게 아닌가요?》

선달의 말에 강부자는 대번에 그의 성미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장가를 들었는가부터 물어보았다.

선달이 아직 장가를 들지 않았다고 하자 강부자는 좋아라 무릎을 치며 덩실덩실 어깨춤까지 추었다. 아마 성미가 급한 사람중에 이렇게 급한 사람은 보다 처음이였던것이다.

강부자가 김선달을 안고 빙빙 돌며 《자넨 내 사위일세.》라고 하자 김선달은 《아, 이거 놓으시우. 사위라면 딸을 안겨주어야지 장인이 날 안구 돌면 어쩌자는거요.》 하며 야단을 쳤다.

강부자가 선달에게 부모들에게 승인을 받구 혼인을 하자고 하자 이번에도 선달은 부모님의 승인을 받아가지구 언제 혼인을 하겠는가고 하면서 당장 혼사날을 정하자고 하였다.

이리하여 강부자는 사위감을 만나 한두시간도 되기 전에 잔치를 벌리였다.

원래 재산이 많은 부자인데다 설명절준비로 갖추어놓았던 음식으로 푸짐한 잔치를 치르었는데 급히 벌린 혼례식이라 손님을 청하지 못한채 신랑신부를 신방에 들여 첫날밤을 지내게 하였다.

그 이튿날 아침이였다.

그날은 바로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초하루였다.

김선달은 신방에서 첫날밤을 자고난듯 꾸며가지고 새벽에 푸르딩딩한 얼굴로 강부자방으로 찾아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로 《병신인 딸을 나한테 맡기고 내 신셀 어쩌자는거요?》 하고 들이댔다.

강부자는 아닌밤중에 홍두깨라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있다가 《우리 딸이 병신이야? 어데가 병신이야?》 하며 걱정어린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선달은 《그것도 아직 모르고계시우? 우리가 결혼한 해가 어느해요?》 하고 따지고 들었다.

《어느해라니? 새해가 왔으니 작년이지.》

《그러니 올해가 결혼한지 두해째 되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데 두해가 되도록 아직 아이를 낳지 못하는 녀인하구 내가 어떻게 산단 말이요.》

김선달이 이렇게 말하자 강부자는 그만 방바닥을 두드리며 웃어댔다.

자기 딸이 진짜 병신인줄 알고 속이 뜨끔했던 강부자는 아무리 성미가 급하기로서니 어제 혼인을 하고 다음날에 아이를 찾는다고 선달을 나무랐다.

그러나 선달은 막무가내로 이태가 지나도 아이가 없는데 그래 구실이 있는가고 강부자에게 들이댔다.

강부자가 이해말에 가면 아이가 있을거라며 아무리 선달을 달래였으나 선달은 어떻게 또 열달을 기다리겠는가고 하면서 오늘중으로 따님이 아이를 낳을수 없다면 자기는 못살겠다고 하는것이였다.

그 말에 강부자도 저으기 성이 올라 네깐놈 갈테면 가라고 막 욕을 해댔다.

이렇게 성미급한 《사위》는 하루밤만 신부와 지내고는 훌 달아나버리고말았다.

강부자는 성미급한 사위를 맞겠다구 생각한 자기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것인가를 한탄하였으나 이제는 다 쑤어놓은 죽이였다.

강부자네 집은 초상난 집처럼 되여버렸다.

딸은 딸대로 신방에서 울고 그의 어머니는 령감의 괴벽한 성미가 딸의 신세를 망쳐놓았다고 강부자에게 눈물을 뿌리며 행악을 부리였으며 강부자는 강부자대로 귀한 외동딸의 앞일을 어찌하랴 가슴을 치고있었다.

이렇게 하루해가 기울어갈무렵에 한 로파가 찾아들었다.

이 로파는 김선달이 계책을 꾸미여 보낸것이였다.

로파는 강부자 딸의 생리별을 두고 동정하는척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이 그렇게 됐으니 이젠 어찌하겠소. 집의 딸이 시집갔다고 소문이 난데다 급히 한 혼례식이라 오지 못했던 멀고 가까운 친척들과 친구들이 신랑을 보자고 밀려올테니 그때 부끄러운 이 사실을 그대로 밝혀놓겠소? 하루밤사이에 치른 혼례였기에 아직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아는이 없으니 차라리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이미 서로 인연이 있던 뒤집 총각을 사위로 맞아놓고 오는 손님들에게 인사시킴이 어떠하겠소?》

로파의 말에 강부자는 아무리 생각을 굴리고 굴려보아도 자기 집안망신을 면하려면 그대로 할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강부자는 드디여 로파의 청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강부자는 딸의 의향이 어떨지 마음에 걸렸다. 다른 남자와 하루밤을 지낸 딸이 다시 재가를 하겠다고 하겠는지 또 그런 일을 뒤집 총각이 알게 되면 후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 되였다.

그리하여 강부자는 울고있는 딸을 찾아 자기가 잘못했노라고 달래면서 조용히 뒤집 총각과 혼인하는것이 어떻겠느냐고 의향을 물었다. 그러면서 그 병신녀석과 하루밤을 지냈다는 말을 입밖에 절대로 내지 말라고 하였다.

그제야 딸은 선달이가 어제 밤에 자기와 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는것과 이것은 아버님의 잘못된 고집을 고쳐드리기 위해 그분이 우정 꾸민것이라는것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그제야 강부자는 온갖 시름을 다 털어버린듯 한숨을 길게 내쉬고 딸을 바라보다가 《그러면 뒤집 총각과 혼례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것도 다 그 사람이 꾸민 일이란 말이냐?》 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딸의 대답에 강부자는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다가 그가 도대체 누구인가고 다시 물었다.

《평양성에서 사는 봉이 김선달이라 하옵니다.》

《평양의 봉이 김선달? …》

이리하여 강부자는 뒤집 총각을 사위로 삼게 되였으며 그 총각과 처녀는 가정을 이루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6

먹기내기에서 이기다

 

어느해 늦은봄, 먼길을 가던 봉이 김선달이 길량식이 떨어졌다. 그리하여 김선달은 길가의 집들에서 밥을 얻어먹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농부들의 집에는 차마 갈수가 없었다. 한창 농사일을 하여야 할 농부들에게서 풀죽이나마 축낼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김선달은 잘사는 집에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다.

그가 점심때에 마을의 어느 한 지주집에 찾아가니 지주는 마침 웬 량반손님과 바둑을 두고있었다.

김선달은 어떻게 하면 한끼 잘 얻어먹고 갈것인가 하는 생각을 굴리면서 그들의 놀음판을 한동안 보고있었다.

놀음판에서 주인인 지주가 이겼는지 그는 무릎을 치며 소리쳤다.

《자, 또 내가 이겼소. 윷놀이에서도 장기에서도 이겼으니 인제는 무슨 내기를 하자우?》

마주앉은 량반은 얼굴이 벌개 뒤덜미만 문다지였다.

가난한 농부들은 풀죽을 먹으면서도 뙤약볕에서 농사짓기에 여념이 없는데 지주량반들은 대낮에 할노릇이 없어 놀음놀이로 내기를 하는 꼴을 보니 김선달은 분통이 치밀어 되돌아서 나오고싶었다. 허나 우선 허기진 창자를 채워야겠기에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들의 놀음판에 끼여들며 말을 걸었다.

《허, 놀음놀이에서 대단한 솜씨를 가지고있는가보군요.》

그제야 김선달을 보았는지 지주는 선달의 아래우를 훑어보고나서 허세를 부리였다.

《이 마을에서 무슨 내기든지 나를 당할자는 없다네. 자네도 이자 보았겠지.》

그러자 김선달은 자기는 지나가던 길손인데 놀음놀이라면 오금을 못 쓰기에 그저 지날수 없어 구경하던 참이라고 말하였다.

선달이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지주는 《그래, 자네도 놀음놀이를 즐겨한단 말이지?》 하고 자기와 아무 놀이나 겨루어보자고 하는것이였다.

선달이가 《그럼 먹기내기를 한번 해봅시다.》라고 하자 지주는 처음 듣는 소리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자 곁에 있던 량반이 손벽을 치면서 《그것 참 재미있는 놀음이겠다. 하하하…》 하고 웃어대며 심판은 제가 서겠다고 나서는것이였다.

지주는 《허허, 물함지같은 배를 가진 나하구두 먹기내기를 해서 이길수 있단 말이지.》 하며 자신있게 팔을 걷어붙이였다.

《길고 짧은것은 대보아야지요.》

김선달이도 쉽게 양보할 기세가 아니였다.

그러자 지주는 벌써 먹기내기에서 다 이긴듯이 심판을 서는 량반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내기에 무엇을 걸어야 하겠는가고 묻는것이였다.

김선달이 자기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이니 승부에서 지면 보름동안 지주의 논밭일을 보수없이 해드리고 자기가 이기면 지주어른은 닭 다섯마리에 쌀 한말을 내라고 하였다.

이렇게 약조를 한 지주는 녀편네를 시켜 급히 밥을 한 양푼 지어 올려오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지주집 마루에서 밥먹기내기가 시작되였다.

허기졌던 김선달은 고기반찬에 김이 문문 나는 흰쌀밥을 밥바리에 한가득 담아서 찬물에 숟갈을 담그어가며 게눈 감추듯 맛나게 먹고 또 한그릇 퍼먹었다.

그리고 세번째로 또 한 밥바리 담아먹고있었으나 지주는 한그릇을 담아먹고 또 한그릇을 담아 절반도 먹지 못하고 배가 불러 씩씩거리다가 숟갈을 놓았다.

심판을 섰던 량반은 김선달이가 이겼다고 선포하였다.

먹기내기에서 진 지주는 꼼짝 못하고 김선달에게 닭 다섯마리와 쌀 한말을 내주었다.

《여보게, 하루밤만 묵어가게나.》

지주가 사정하는 어조로 선달에게 부탁하였다.

선달이 갈길이 바빠서 묵어갈 사이가 없다고 말하자 지주는 그럼 먹기내기에서 이기는 비결을 대주고 가라고 조르는것이였다.

그러자 선달은 한바탕 웃고나서 《비결은 간단하지요. 그 수는 다름이 아니라 먹기내기를 앞두고 두서너끼 굶어야 하는것이지요.》 하고 말해주었다.

지주와 량반이 어이없어하며 선달을 바라보자 선달은 그들에게 《굶주렸던 길손은 잘 얻어먹고 길량식까지 얻어가지고 갑니다.》라고 한마디 하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설화는 보는바와 같이 선달이가 로상에서 량식이 떨어져 지주집에 찾아들어가 《먹기경기》를 하여 지주를 골탕먹이고 길량식까지 푼푼히 얻어내는 통쾌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7

묘향산의 《지옥길》에서

 

어느해 봄날 봉이 김선달이 묘향산 산천구경을 갔을 때의 일이다.

선달이 상원암으로 올라가는 인호대에서 쉬고있는데 행색이 요란스러운 두 녀인이 웃고 떠들며 올라왔다.

보아하니 이들은 모두 집에서 놀고앉아 먹기가 싫증이 나서 묘향산구경도 하고 부처님에게 불공도 드릴겸 소일삼아 먼길을 떠나온 량반부자집 녀편네들이 분명했다.

김선달은 그년들의 꼴을 보면서 얄미운 생각이 문득 떠올라 한번 여기서 멋지게 거들먹거리는 저들을 골려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피뜩 묘향산의 《지옥길》이라고 불러오는 길목이 거의 가까이에 있다는것을 생각하였다.

선달은 《지옥길》에 먼저 올라가 그년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려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지옥길》은 바로 상원암으로 오르는 인호대의 가장 험한 벼랑길을 가리켜 전해오는 말이였다. 이 길을 잘못 걸었다가는 떨어져죽는다는 뜻으로 주의해 오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일러오는것이였다.

량반부자녀편네들이 가까이 올무렵에 그는 《지옥길》바위밑으로 내려가 꿇어앉아서 머리를 조아리며 무엇이라고 입속으로 외우며 중얼거렸다.

《지옥길》로 오르던 그년들은 뜻밖에 김선달의 행동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며 가까이로 와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선달은 심중한 낯색을 지으며 《가까이 오지 마시오. 나는 지금 참회를 하려고 준비하는중이요.》 하고 말하였다.

김선달이 참회를 한다는 소리에 그년들은 처음 듣는 소리라 수군거렸다.

그러자 김선달은 알려주지 않을수 없다는듯 일어나 그년들에게 다가갔다.

김선달은 그년들에게 상원암의 부처님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의 불공만 받기때문에 만약 죄를 진 사람이 상원암의 부처님을 찾아뵈려 한다면 이 《지옥길》에서 벌을 받고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져죽게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부자집년들은 저저마다 바위밑으로 밀려들어 빌려고하였다.

그러자 김선달은 두손으로 그들을 막으며 《이러지들 마시오. 여기서는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한사람씩 빌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빌고 올라간 다음에 한사람씩 내려와 빌도록 하시우.》 하고는 그년들이 내려다보는 바위앞에서 무릎을 꿇고 중얼거렸다.

김선달이 《참회》를 다 끝내고 길우에 오르자 그년들은 앞을 다투어 한사람씩 바위앞으로 내려가 빌기 시작하였다.

김선달은 먼저 《지옥길》로 오르는척 하면서 그년들의 말이 잘 들리는 바위모퉁이에 숨어앉았다.

제일먼저 뚱뚱한 년이 내려와 빌었다. 그는 자기가 아무데 사는 아무 지주의 녀편네라고 하면서 어느해 봄에 가난한 이웃의 농부들에게 썩은 보리 한말씩을 장리쌀로 주고 가을에 가서 옥백미 두말씩을 받아 폭리를 보았으며 살길이 없어 떠돌아다니던 과부를 녀종으로 끌어들이였는데 그가 데려온 두 어린것들을 하루 한끼 죽 한숟가락씩 먹여 결국 굶어죽게 하고 소문은 열병을 앓다 죽었다고 했다며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김선달은 그년의 말을 자세히 익혀두고 그년이 사는 마을과 남편의 이름을 머리에 새겨넣었다.

그뒤를 이어 싸리대같이 마르고 호리호리한 년이 내려와 한동안 통곡하는척 하더니 빌기 시작하였다.

그년은 자기는 아무데 사는 아무 량반집 녀편네인데 한번은 빚값에 끌려온 녀종을 구박하면서 끄뎅이를 잡아흔들어 머리칼이 다 빠지게 하였고 또 한번은 한 녀종이 하도 곱게 생기여 제 남편을 홀리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얼굴을 인두로 지지여 흠집이 나게 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하였다. 그리고 늙어빠진 남편이 맥을 추지 못한다고 이웃에 사는 젊은 량반과 3년동안 간통을 해왔다고 하면서 사람답게 살지 못한 자기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김선달은 또 그년의 얼굴을 익히고 그가 사는 곳과 그의 남편이름을 새겨두었다.

이렇게 되여 두 녀편네는 여지껏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저들의 죄행을 다 털어놓고 마음이 편한듯 상원암으로 올랐다.

그후 한달쯤 지난 어느날 봉이 김선달은 《지옥길》의 바위앞에서 참회했던 량반부자들의 녀편네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였다.

제일먼저 뚱뚱보 지주녀편네 집으로 찾아갔다.

선달이 그 집을 찾아 대문가로 가는데 종을 구박하는 버릇을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매질하며 닥달질하는 지주녀편네의 소리가 들려나왔다.

김선달이 급히 들어서니 지주녀편네가 마당가에 쓰러진 늙은 녀종을 발로 차며 야단치고있었다. 지주녀편네들이 개심하였는가를 알아보려고 마을로 왔던 선달은 아직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녀종을 마구 때리는것을 보고 참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문으로 들어가자바람으로 《난 묘향산 상원암 부처님의 어명을 받고 왔다. 네년은 아직도 종을 학대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있는가? 이젠 <지옥길>의 바위앞에서 한 참회를 알리는수밖에 없구나!》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갑자기 난데없는 《지옥길》소리에 지주녀편네는 눈이 휘둥그래지며 깜짝 놀랐다. 이러다가는 자기의 죄행이 낱낱이 드러날수있었다.

김선달이 이렇게 말하며 나가려 하자 바빠맞은 지주녀편네는 기가 꺾이여 어찌할바를 몰라하면서 그를 방안으로 모시고 푸짐히 대접까지 하는것이였다.

선달은 그년에게 다시는 종들을 학대하지 않겠다는것을 부처님앞에 빌며 속죄금을 내고 서약서를 쓰라고 하였다.

그러니 죽는것보다 까무라치는것이 낫다고 지주녀편네는 제가 진 죄가 공개되고 또 부처님이 내릴 벌이 무서워 하는수없이 상당한 돈과 서약서를 써서 내놓았다.

선달은 집을 나오면서 그 돈을 늙은 녀종에게 모두 주었다.

그뒤 김선달은 싸리대같이 강마른 량반집 녀편네를 찾아갔다. 김선달은 이름난 점쟁이로 가장하고 그년을 만났다.

그는 그럴듯하게 점을 치는 흉내를 내면서 《지옥길》에서 내뱉은 그년의 죄목들을 하나하나 큰소리로 엮어내려갔다. 처음엔 그저 범상한 점쟁이겠거니 여기고 돈을 조금 내놓았던 그년은 떨리는 손으로 점치는 상우에 돈을 더 올려놓기 시작하였다.

선달이 이웃의 젊은 량반과 3년동안 간통해온 사실까지 까밝히자 그년은 기가 질려 말도 제대로 번지지 못하고 돈을 달라는대로 줄테니 제발 그만하라고 애걸복걸하였다.

그제야 김선달은 마지못하는척 하면서 점치기를 그만두고 그년에게서 많은 돈을 받아 그 집의 녀종들과 하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후부터 량반부자집 녀편네들은 자기 하인들과 녀종들을 감히 더 박대하지 못하였고 김선달이 요구하는것이라면 거절하지 못하고 다 들어주었다고 한다.

 

 

8

쉰 녹두죽

 

한때 성천부자가 땔나무를 큰 달구지에 싣고 평양에 와서 비싼 값으로 팔아 돈벌이를 하였다. 평양성 교외도 아닌 타관 부자가 나무장사를 크게 벌리니 나무지게군들이 나무를 팔지 못하여 야단이였다.

선달이 그 소문을 듣고 장마당에 가보니 성천부자가 심부름군들을 데리고 가쯘하게 묶은 나무단을 쌓아놓고 팔고있었다.

선달은 오직 돈밖에 모르는 성천부자의 소행이 괘씸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그를 골려줄수가 없겠는가 궁리하다가 점심때가 되였는지라 그곳에서 좀 떨어진 녹두죽집을 찾아들어가 한그릇 달라고 청하였다.

주인아주머니는 선달에게 거짓말을 할수가 없어 오늘 만든 죽은 다 팔고 어제 팔다 남은 쉰 녹두죽밖에 없으니 정말 미안하다고 하였다.

그 소리에 선달은 《쉰 죽이요? 그거 참 좋수다. 내가 팔아드릴테니 쉰 죽 두그릇을 식초와 함께 받쳐들고 나를 따라오게 하시오.》 하면서 오히려 반색을 하는것이였다.

그러자 주인아주머니는 《선달님, 쉰 죽을 누가 먹겠다 하오리까. 공연히 소문만 내게 하지 말고 그만두시오이다.》 하며 극성스레 말렸다.

선달은 《우리 평양사람이 아니라 성천에서 온 나무장사군 부자에게 대접시키려 하니 마음을 놓으시오다!》 하고는 심부름군 처녀애에게 쉰 죽그릇과 식초병을 쟁반에 담아 들게 하고 성천부자가 있는데로 갔다.

성천부자에게 간 선달은 깍듯이 인사를 하고 《점심전이겠는데 평양에서 소문난 녹두죽을 대접시키려고 왔소이다.》 하고 말을 건네였다.

그러자 성천부자는 《마침 점심을 먹으려던 참인데 잘되였군!》 하며 어서 퍼서 가져오라고 하였다.

이미 선달에게서 말을 들은지라 쟁반을 들고있던 처녀애가 《그럼 식초를 쳐서 드려야지요.》 하고 선달에게 물어보는척 하였다.

그러자 선달은 우정 약을 올려주려고 큰소리로 식초를 친 녹두죽은 서울고관이나 평양감사 같은분들이 좋아하지 시골사람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니나다를가 성천부자는 시골량반을 업수이여기고 하는 소린줄 알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초를 치는것도 등급이 따로 있는가. 어서 초를 푹푹 치게!》 하고는 죽 두그릇을 청했다.

성천부자는 옆에 서있는 처녀애를 넘겨다보며 《네가 받쳐주는 녹두죽이니 맛이 괜찮을테지!》 하면서 한숟갈 떠먹다가 《어, 쉬다! 어, 쉬다!》 하며 연송 도리질을 하였다.

선달은 《내 뭐랍디까! 시골사람들은 초를 친 녹두죽의 진맛을 모른다고 하지 않습디까?》 하고 핀잔하며 더워하는것 같은데 부채질이나 해주라고 처녀애에게 일렀다.

성천부자는 진짜 시골놈이여서 그 진맛을 모른다는 핀잔을 또 다시 받을가봐 그리고 처녀애가 부채질까지 해주며 극성을 부리는통에 그만 그 쉰 죽 두그릇을 마음먹고 다 먹고말았다.

선달은 그릇을 낸 성천부자를 보고 《초를 친 평양녹두죽맛이 괜찮지요? 혹시 시골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맛들이면 련일 찾을겁니다. 그래서 평양녹두죽이 소문난거지요!》 하고는 돈을 받아 넣은 다음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성천부자는 멀리 사라지는 선달을 눈을 찡그리고 바라보면서 《저것들도 나같은 돈벌레가 틀림없어. 꼭 쉰 죽 같은데…》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였지만 다시 불러서 캐여물을수도 없는 일이였다.

그런데 아닐세라 한참후에 배가 끓기 시작하더니 뒤가 호물호물 해지기 시작하였다. 할수없이 성천부자는 변소도 없는데서 나무단으로 가리우고 변을 보는수밖에 없었다. 그 지독한 냄새에 옆에 앉았던 장사군들이 아우성을 쳤다.

이렇게 본의아니게 《죄》를 진 성천부자는 순라군들이 오면 경을 칠것 같아 자기가 팔던 나무단을 달구지에 황황히 싣고 뺑소니치고말았다.

그후 성천부자는 배앓이로 얼마나 혼쌀이 났던지 다시는 평양에 나무팔러 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후에 사람들속에서 봉이 김선달이가 쉰 녹두죽으로 성천부자를 혼내주었다는 소문이 돌아 이런 설화가 생겨났던것이다.

 

 

9

《형수님, 안녕하십니까?》

 

이 설화도 부자집 행세를 하며 허세를 부리는 뚱뚱보 녀편네를 통쾌하게 골려준 이야기의 하나이다.

봉이 김선달이 허줄한 량반행색을 하고 어느 한 네거리에 이르렀는데 부자집 녀편네가 누런 개의 몸에 비단옷을 입혀가지고 끌고 나오는것이 보였다.

개도 부자집 자식 못지 않게 치장하고 호사하는 모양에 밸이 꼴려 참을수 없는지라 대번에 골려줄 생각이 들었다.

선달은 사람들속을 헤치고 다가가서 개대가리에 이마가 닿도록 머리를 숙여 《형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였다.

그 우습강스러운 모양을 지켜보던 부자집 녀편네가 선달의 그 괴이한 행동에 그만 웃음을 터치고말았다.

《호호, 우리 <보꾸>보고 형님이라니. 호호…》

그러자 길가던 손님들도 웃음이 나서 크게 웃었고 부자집 녀편네도 개를 키우면서 처음 받아보는 인사인지라 그냥 좋아라 웃어댔다.

그런데 이번에는 깔깔 웃어대는 부자집 녀편네를 보고 선달이가 《형수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는것이였다. 그러자 부자집 녀편네는 의아해하면서 《형수님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넨 누구길래 나를 보고 형수님이라고 하는가?》 하고 발칵 성을 내였다.

선달은 태연하게 머리를 들고 《이 개를 <형님>이라고 부르는것을 보고 너무도 좋아하시기에 부인이 이 <형님>의 안해이신것 같아 <형수님>이라 하였수다!》라고 말하였다.

그 말에 부자집 녀편네는 대번에 얼굴이 새파래서 《뭐라구? 내가 개의 안해라구? 이 불한당같은 녀석, 누굴 함부로 욕보이려 드는거냐!》 하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선달이는 《아니, 왜 이리 노발대발하시우. 내가 개를 <형님>이라고 부를 때는 그리 좋아하시다가 <형수님>이라고 하니 왜 그렇게도 분해하십니까?》 하고 이상한듯 물었다.

그러자 부자집 녀편네는 자기가 웃은것은 선달이 개에게 《형님》이라고 하는 꼴이 우스워 웃은것인데 자기가 개의 안해라니 그게 될 말인가고 분통을 터치는것이였다.

《나는 늘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형으로 존대하고 례의를 지켜왔수다. 그런데 이 개를 보니 살도 나보다 지고 몸에도 내가 평생 걸쳐보지 못한 비단을 둘렀기에 나보다 나은것으로 생각하고 례의를 표해서 <형님>이라 했수다. 그런데 이게 뭐가 잘못되였소?》 하며 선달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부자집 녀편네는 이발을 사려물고 자기를 개의 안해라고 욕보인 그 심보를 대라고 하며 선달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개의 <동생>으로 욕보일 땐 좋아서 호호 웃다가 자기가 개의 <안해>라 욕보일 땐 성을 발칵 내며 고아대는건 또 무슨 심보요!》 하며 선달이 사리정연하게 말하자 부자집 녀편네는 자기가 이 사람에게 더 말을 걸어봐야 망신만 당할것 같은 생각에 개를 끌고 황황히 제 집으로 도망쳐버리고말았다.

이렇게 꽁지가 빳빳해서 도망쳐가는 부자집 녀편네의 꼴을 보며 선달은 《형수님, 잘 가시오! 그러나 <남편>만은 때리지 마시오!》 하고 놀려주었다고 한다.

 

 

10

리만서의 악습을 떼주다

 

옛날 서울 한복판에 리만서라는 작자가 살고있었다.

그놈의 족보를 살펴보면 증조부는 령의정을 지냈고 그의 부친은 형조판서를 했으며 큰형은 포도대장을 하였다.

그러니 이놈도 자기 집안의 권세로 남을 골려먹고 강탈하는 기질과 버릇을 가지게 되였다.

그는 남쪽지방의 지주나 부자들의 돈을 털어내고 이번에는 서쪽지방 특히 평양지방 부자들의 돈을 털어내기 시작하였다.

어느 하루 평양에서 이름난 부자 한중서가 리만서가 보낸 《소환장》을 받게 되였다.

이렇게 《소환장》을 받으면 어느 부자나 지주든 뭉치돈을 꾸려가지고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것은 《소환장》을 내여 불러올리는것자체가 돈을 빼앗기 위한 공식화된 수법이였기때문이다.

《소환장》을 받은 평양의 한중서는 억이 막혀 어찌할줄 몰라하다가 머슴을 시켜 빨리 가서 선교리에 사는 《재사》인 봉이 김선달을 데려오라 하였다.

며칠동안 집안에 붙박혀 조용히 있던 선달은 한씨부자가 갑자기 자기를 데려오라 하였다는 소리를 듣고 분명 무슨 곡절이 생긴것이라고 짐작하고 그를 찾아갔다.

아닐세라 한중서는 걱정끝에 자리에 누워있었다.

선달이 왔다는 소리에 한중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앉으며 서울의 악덕배인 리만서에게서 《소환장》이 왔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의논해보려고 이렇게 찾았다고 하는것이였다.

선달은 이미전부터 리만서가 부자들에게서 돈을 마구 빼앗아내고 제 기분을 잡치게 하면 언질을 걸어 욕보이거나 제놈의 형(포도대장)을 시켜 감옥귀신까지 만든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선달은 시침을 뚝 떼고 《그 어른이 부른다면 별수가 있나요. 돈을 한달구지 싣고 떠날수밖에… 잘못하다가는 이번 길에 목숨까지 잃을수 있으니 주의하시오!》 하고 다른 방책은 없다는듯이 말하였다.

이번 길에 목숨까지 잃을수 있다는 소리에 겁이 덜컥 난 한씨가 《이 사람, 내가 준비한 돈을 가지고 대신해서 자네가 가면 실수가 없을것 같은데 한번 수고해주지 않겠나. 사례금은 후하게 치를터이니 그렇게 좀 해달라구!》 하면서 손을 꼭 잡고 애걸하였다.

선달은 한씨가 거들먹거리던것을 생각하면 당장 뿌리치고싶었지만 한씨보다도 더 고약한 서울 리만서를 이번 기회에 한번 혼내주고싶은 생각이 부쩍 동하여 《그러면 좋수다. 내가 갈테니 달구지에 돈 만냥을 실으시우.》 하였다.

그러자 한씨는 《돈 만냥? 너무 많은 돈인데…》 하며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선달은 《만냥이 아니면 그 큰 입을 막을상싶소?》 하면서 자기가 직접 가지 않고 대리를 보낸것이 후일에 알려지면 무사하지 못할텐데 빨리 결심을 내리라고 하였다.

그제야 한씨는 순순히 돈 만냥을 내놓는것이였다.

다음날 선달은 돈 만냥을 두바리에 싣고 하인 3명을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

선달은 돈 만냥을 싣고 혹시 서울 리만서가 돈이 적다고 타발하면 10만냥짜리 돈표와 5만냥짜리 돈표를 내보이려고 돈표 두장까지 만들어가지고 떠났다.

서울에 이르러 리만서네 집대문을 찾아 하인에게 평양의 한중서가 만나러 왔으니 아뢰라고 하였다.

좀 있으니 리만서가 문을 열고 마당가로 나왔다. 관상을 보니 흉물스럽게 생긴데다 맺힌데가 없는 숙맥이였다.

리만서가 먼저 김선달을 보며 《오, 원로에 수고가 많으셨소!》 하며 인사를 보내자 선달은 《그러잖아도 서울에 들릴 때 한번 만나고싶었던차였는데 이번에 사람을 보내여 초청장까지 보내주니 대단히 감사합니다.》고 친구간에 인사말을 나누듯 례사롭게 말하였다.

김선달의 말에 리만서는 속이 뜨끔하였다. 다른 놈들 같으면 마당가에 들어서기 바쁘게 무서워 슬슬 기다싶이 하겠는데 이자는 오히려 자기를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하니 기가 찬 일이 아닐수 없었던것이다.

리만서가 보통솜씨로 다르면 안되겠다고 속으로 단단히 벼르고 있는데 또다시 선달이 큰소리로 《여보, 령감! 날 부른데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겠는데 우리 서로 눈치볼것이 없이 직통배기로 말합시다!》 하면서 도도하게 나오는것이였다.

한다하는 리만서였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상대가 거만스럽게 나오니 울화통이 터지는것은 물론이요, 오히려 압박감까지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봉이 김선달이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고 재차 묻는통에 대답하지 않을수 없게 된 리만서는 어물어물하며 《한 일만냥가량… 필요하구려.》 하고 말하였다.

리만서의 대답을 들은 선달은 일만냥이 오히려 적은듯이 《일만냥이라니? 아니, 그 몇푼때문에 평양서 서울로 날 오라고 소환장을 보냈단 말이요. 애초에 돈 일만냥을 실어보내라고 하면 내가 이토록 오지 않았을것을… 이 많은 돈을 어떻게 한다?》 하면서 호주머니에서 10만냥짜리 돈표까지 꺼내보였다. 그리고는 자기 하인들을 불러 1만냥의 돈을 이 방안에다 쏟아놓으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선달은 슬쩍 이 돈은 서울에 와서 려비로 쓰려고 가져온것인데 일만냥이 필요하다니 마침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온김에 령의정대감이나 한번 만나보고 가야겠다고 말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리만서는 분명 한중서(선달)가 령의정대감과 막역한 연줄을 가지고있을것이라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만약 한중서가 령의정대감에게 가면 필경 서울에 오게 된 동기부터 물어볼것인데 그렇게 되면 자연히 자기 죄과가 탄로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급해난 리만서는 서둘러 선달을 눌러앉히며 이렇게 서울에 왔던김에 제 집에서 며칠 더 묵어가라면서 아래방에 술상을 차리라고 분부하였다.

그러면서 리만서는 선달에게 자기는 지금까지 돈냥이나 있다는 놈들을 모조리 불러다놓고 다루어보았지만 그대와 같은 호걸은 처음 본다고 하면서 앞으로 친교를 더 두터이 하자고 간절히 부탁하였다.

선달은 자기도 처음엔 리만서어른이 돈만 아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속이 큰 인물이라며 슬슬 올려추어주었다. 그러자 리만서는 흐뭇해서 거듭거듭 감사하다고 사례하였다.

이리하여 김선달은 리만서를 보기 좋게 설복시켜놓았으며 떠날 때는 일만냥을 그대로 부득부득 가지고 가라는 리만서의 청에 못이기는척 하면서 돈전대를 다시 말에 싣고 평양으로 돌아왔다.

김선달의 재주에 크게 놀라고 감동된 평양의 한중서는 많은 사례금을 그에게 주었고 리만서도 그뒤로는 마음에 주눅이 들어 다시는 못된짓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설화는 실제한 사실에 기초하여 꾸며진것으로서 악한을 골탕먹이고 혼쌀나게 하는데서 봉이 김선달의 능숙하고 세련된 기지와 솜씨를 충분히 보여주는 풍자재담의 하나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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