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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을원이나 량반관료, 선비를 혼내주다
명철한 판결
봉이 김선달은 익살로 소문이 난데다가 꾀가 있고 사리가 밝아 량반나부랭이들은 물론 심지어 고을원까지 무슨 문제든지 막히는 일이 있으면 그를 찾아오군 하였다. 언제인가 평양근방 한 고을원이 그 무슨 일에서도 막히는데가 없는 봉이 김선달을 찾아와 자기가 다루다가 끝내 해결하지 못한 두 부자들의 돈거래사건을 풀어달라고 청하였다. 사건의 내용인즉 최씨성을 가진 한 부자가 홍씨성을 가진 부자에게 돈 백냥을 꿔주었는데 때가 되여 받으러 가니 그가(홍부자) 자기는 돈을 꾸지 않았다고 우기고 최부자는 또 최부자대로 돈을 꿔주었다고 한다는것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최부자가 증인이라고 하는 그의 처도 홍부자에게 돈을 내주는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는것이였다. 이렇게 되자 최부자는 자기 녀편네가 홍부자와 배꼽이 맞아 거짓말을 한다고 하였고 또 홍부자는 홍부자대로 최부자의 안해도 못 보았다고 하는데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라며 한탄을 한다는것이였다. 이런 형편에서 어느 편에 서서 판결을 해야 할지 난감하였던 고을원이 봉이 김선달에게 도움을 청했던것이다. 원으로부터 판결을 위임받은 선달은 우선 홍부자를 형틀에 매놓고 되게 치게 한 다음 돈을 안 꿔갔는가고 물었다. 홍부자는 자기는 죽어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숨넘어가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러자 선달은 이번에는 최부자를 형틀에 매놓고 되게 치게 한다음 돈을 꿔준게 사실인가고 물었다. 그러자 최부자 역시 금시 숨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안 꿔준것을 받겠다고 할 날도적이 어데 있겠습니까? 억울하나이다.》 하며 원통해하였다. 선달은 다음 최부자의 녀편네를 끌어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너의 남편이 홍부자에게 돈을 꾸어준것이 사실이냐?》 하고 물었다. 그러나 최부자의 녀편네는 자기는 제 남편이 홍부자에게 돈을 꾸어주는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것이였다. 김선달은 《녀인에겐 차마 형장을 댈수 없으니 여봐라- 여기 큰 궤짝을 하나 가져오너라!》 하고는 《당장 저년의 입을 막아 궤짝안에 처넣고 나오지 못하게 못을 박아라. 아마 저년이 궤짝맛을 보면 바른대로 토설하지 않고는 못 견딜것이다. 그리고 이 두놈이 한번씩 차례로 궤짝을 메고 앞산마루에까지 올라갔다 오게 하라.》 하고 호령하였다. 그리고는 두 부자들을 관청밖에 있는 우물가로 데리고 나가 얼굴의 피를 닦고 오게 하였다. 김선달의 지시대로 우물가에 나가 얼굴을 씻고 온 두 부자들중 먼저 최부자가 자기 안해가 들어있는 궤짝을 지고 산으로 올랐다. 그는 화가 치밀어 《네년이 홍부자와 눈이 맞아 돌아가는것을 알면서도 내가 모르는체 하니 이제는 돈꿔간것을 보고도 모른다고 해? 쌍년같은것, 궤짝안에서 뒈지기나 해!》 하고 욕지거리를 해대였다. 다음엔 홍부자가 궤짝을 받아메고 산으로 올랐다. 그는 헐떡거리면서도 《나때문에 고생시켜 안되였소. 이 고비만 넘기면 별일없을터이니 끝까지 모른다고 버티게나. 예전이나 다름없이 당신을 믿네!》 하고 위안해주었다. 홍부자가 지고 온 궤짝이 원이 서있는 대청마루앞에 당도하자 형리들이 그 뚜껑을 열어제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솜뭉치를 입에 문 최부자 녀편네가 나오리라고 생각했던 궤짝안에서는 새로 온 《재판관》인 봉이 김선달이가 불쑥 뛰쳐일어나는것이였다. 사실인즉은 두 부자가 우물에 나갔을 때 최가의 녀편네를 꺼내고 그대신 선달이자신이 들어가 앉아있었던것이다. 그러니 궤짝을 메고 산을 오르며 두 부자가 한 소리를 선달이가 다 들었으니 판결은 저절로 된셈이였다. 일이 이쯤되자 홍부자와 최부자 녀편네는 선달에게로 기여오며 《죽을죄를 지었으니 제발 형틀에만 매지 말아주십시오. 백냥금은 당장 갚을테니 이젠 못된짓도 하지 않겠소이다.》 하며 애걸복걸하였다. 이렇게 되여 봉이 김선달은 고을원도 풀지 못해 몇달을 미루어오던 송사를 단 몇시간동안에 명쾌하게 판결하였다고 한다.
뜨물대접을 받은 원
어느 한때 벌방에서 지주로 있던 일자무식쟁이가 뢰물을 크게 바치고 산골 원자리를 따내게 되였다. 산간벽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을에 새로 부임한 원님이라고 그 산하 아전들은 물론이고 량반들과 지주나부랭이들도 련일 찾아들었다. 원래 그는 지주로 살 때부터 린색하기로 소문난자이지만 원으로 부임한 이후부터는 뢰물까지 받쳐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차마 그저 되돌려보낼수가 없어 그때마다 음식대접을 시켜보내군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한두번도 아닌지라 음식상을 차리는것이 난감하여 손님대접을 등급을 정하여 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통인(관청에서 도장을 관리하거나 그밖의 잔심부름을 하는 나어린 소년)과 약조하기를 가지고 오는 뢰물보따리를 보고 자기가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대면 상객인줄 알고 그에 맞게 음식상을 차려 들여오고 손으로 코등을 만지면 중객인줄 알고 그만큼 차리라 그리고 손으로 턱을 쓸어보이면 하객인줄 알고 음식을 간소하게 차려 들여보내라고 약속하였다. 그리고는 술량과 찬의 가지수까지 정해주었다고 한다. 어느날 서울을 다녀오던 김선달이 그 고을을 지나게 되였다. 김선달이 날이 저물어 어느 주막집에 들려 저녁을 먹고있는데 옆방의 손님들이 술을 나누며 하는 말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들이 하는 말이 이 고을에 새로 부임한 원이 뢰물을 꽤나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산청 같은 보약제를 특별히 좋아한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값비싼 뢰물을 들고 오는 량반들은 어김없이 상객대접을 받지만 변변치 못한 뢰물을 가지고 오는 손님들은 중객,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는 손님은 하객으로 대접한다는것이였다. 그들의 말을 들은 선달은 원에게서 대접도 후히 받고 또 이번 기회에 그를 골탕먹일 작정을 하였다. 그 이튿날이였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김선달은 옷을 차려입고 주막집을 나섰다. 아침일찍 주막집을 나서는 선달을 본 집주인이 그에게 조반도 안하고 어디로 가는가고 물었다. 선달이 《아침은 원한테 가서 들겠수다!》라고 하자 주막집주인은 어처구니없어하며 그렇게 맨손으로 갔다가는 랭수 한그릇도 못 얻어먹고 온다며 부득부득 말리였다. 그러나 선달은 주막집주인에게 《념려마시우. 예로부터 손님대접은 제 대접이라고 일러오지 않소. 대접을 받고 못 받고는 주인에게 달린게 아니라 손님에게 달려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우!》 하며 자신있게 원을 찾아 떠나는것이였다. 김선달이 주막집을 나서 관청에 이르자 통인이 그를 원에게로 안내하였다. 통인의 안내로 원앞에 이른 선달이 《사또님, 안녕하옵니까? 저는 이웃동네에서 사는 김선달이올시다!》 하고 자기소개를 하자 원은 선달에게 돈이 있겠는가 없겠는가가 관심이여서 그의 몸차림만 아래우로 깐깐히 훑어보았다. 선달이가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니 아닐세라 통인이 등뒤 멀찌감치 서서 원의 눈치를 보면서 대기하고있는것이였다. 이때라고 생각한 선달은 눈길을 돌려 원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놀라는듯 한 기색을 지으면서 조용히 《아 저런, 사또님 이마에 벼룩이 기여오릅니다!》 하고 말해주었다. 깜짝 놀란 원은 기겁해서 얼른 손으로 이마의 벼룩을 잡으려 했다. 이것을 본 통인은 상객이 왔다는 신호인줄 알고 부리나케 안채로 들어가 진수성찬을 차려가지고 나왔다. 벼룩을 찾느라고 방바닥을 한창 살피던 원은 뜻밖에도 진수성찬을 차려 들여오는 통인을 보자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 그를 쏘아보았다. 원의 내심을 알리 없는 통인아이는 그것이 자기보고 빨리 자리를 피하라는 신호인줄 알고 얼른 나가버리고말았다. 김선달이 황송해하는척 하며 지나가던 길손이 인사나 하자고 이렇게 찾아뵈웠는데 이런 대접을 해주니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자 원은 《허, 길손이건 친구건 나를 찾아온 손님인데야 뭐 가릴게 있나. 어서 많이 들게나.》 하면서 인사를 받는것이였다. 울며 겨자먹는다는 격으로 속은 타고 쓰리였지만 이제는 할수없는 일이였던것이다. 김선달은 원이 아니꼽게 보거나말거나 기생이 부어주는 술을 쭉쭉 들이키면서 상에 차려놓은 음식들을 맛나게 다 들고는 원에게 인사를 하고 유유히 주막집으로 돌아왔다. 김선달이가 돌아가자 원은 통인아이를 불러세워놓고 닥달질을 해대였다. 그러나 통인아이는 오히려 원에게 그때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마에 손을 짚지 않았는가고 말하는것이였다. 그제서야 원은 손님이 이마에 벼룩이 기여오른다고 한 말을 듣고 얼결에 손을 올려 이마를 쳤던것을 생각하고는 더 통인을 꾸짖지 못하고 쓴입만 다시다 안방으로 들어가고말았다. 한편 만취되여 주막으로 돌아온 김선달을 보자 주막집주인은 두눈이 휘둥그래져 머리를 기웃거렸다. 김선달은 그러는 주인에게 래일 또 원에게 가려고 하니 이번엔 《보약》을 넣을 단지나 하나 잘 준비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선달은 주막집주인이 준비해준 단지에 걸죽한 뜨물을 끓여서 보약처럼 만들어넣고 고운 비단보자기로 정히 싸가지고 아침 일찍 첫 손님으로 또다시 원을 찾아갔다. 통인아이에게서 어제 왔던 손님이 비단보자기에 싼 단지를 들고 왔다는 기별을 들은 원은 너무 기뻐 어서 들어오게 하라고 하였다. 원은 희색이 만면해서 선달을 맞이했다. 선달은 원에게 어제 정말 뜻밖에 큰 대접을 받았다고 인사를 하고난 다음 비단보자기에 싼 단지를 내놓으며 이것은 불로초를 달여만든 《장생불로약》인데 《하루에 세숟갈씩만 잡수시면 원기가 솟고 장생불로하리다!》라고 호기심이 동하게 말해주었다. 원은 이런 희한한 《장생불로약》은 난생처음 받아보는지라 감지덕지해하면서 통인아이에게 이마를 짚어보이며 또다시 선달을 상객으로 후히 대접시켰다. 이리하여 선달은 그날도 상객으로 진수성찬을 대접받고 후날에 《보약》을 가지고 또 오겠다고 약속하고 희색이 만면하여 돌아갔다. 선달이 집을 나선 다음 어리석은 원은 얼른 방에 들어가 《장생불로약》을 한숟갈 떠먹어보았으니 그것이 뜨물을 진하게 달여서 만든 《보약》인줄 어찌 알수 있었겠는가. 웬일인지 그 《보약》은 자기 병을 떼줄상 고약한 냄새가 역하기만 하였다. 원은 그후에 찾아오겠다던 김선달이 찾아오지 않자 아전을 파하여 이웃동네에 알아보게 하였으나 원에게 불로초약을 가져간 량반은 없다는것이였다. 그러던 그해 가을 선달이가 그 고을로 지나면서 《내가 이른봄에 원님에게 뜨물을 보약으로 먹이고 상객대접을 받았는데 지금은 어떠한지…》 하고 발설하는통에 그 내막이 밝혀져 이런 설화가 생겨나게 되였다고 한다.
목이 잘린 의주부윤
이 설화는 한때 백성들을 못살게 굴고 로략질로 소문이 난 탐관오리 의주부윤을 통쾌하게 속여넘겨 목이 잘리우게 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탐관오리로 소문난 의주부윤은 백성들의 재물을 마구 략탈하여 사복을 채우고는 그것을 《화적》의 행패라고 거짓소문을 돌리였다. 그러나 의주부윤의 도적놈같은 행실을 모를리 없는 백성들은 그놈을 귀신이 잡아가라고 빌기까지 하였다. 그러던차에 의주에 다녀온 친구로부터 그 소문을 들은 봉이 김선달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놈을 혼내여주려고 의주로 떠나갔다. 선달은 처음에 의주부윤이 돈을 물쓰듯 하며 다닌다는 기생집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술을 얼근하게 먹고난 선달은 절반 취한 목소리로 기생에게 여기에 백성들의 돈을 잘 빼앗아내는 못된 관리가 있다는데 너는 잘 알터이니 나에게 죄다 말해줄수 없겠는가고 위협조로 물었다. 그러자 기생은 놀라와하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신데 그런 말을 저에게 물으세요?》 선달이 《내 신분은 묻지 말아. 그러나 네가 잘 알려만 준다면 상은 후히 줄테다.》라고 하자 기생은 차림새를 보니 필경 《암행어사》가 틀림없다고 생각되는지라 《어르신께서는 암행어사가 아니시오이까?》 하고 말을 거는것이였다. 그러자 선달은 기생에게 이 사실을 감히 루설하면 네 목이 무사치 못할줄 알라고 욱박질렀다. 기생은 머리를 숙이며 《저는 한갖 천한 기생으로서 푼전이나 받아 살아가는 아녀자이니 세상일은 잘 모르옵니다.》라고 아양을 떨었다. 《하하하… 오늘은 이 <의적대장>이 암행어사대접을 다 받아보는군. 좋아, 있는 술과 좋은 음식들을 모두 내오너라! 오늘은 너에게서 후한 대접을 받고 가야겠구나.》 그제야 선달이가 나라에서 방을 놓아 그토록 찾는 《화적대장》인줄 안 기생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어르신님께서 성찬을 찾으시니 이제 곧 육고집에 다녀오겠사와요. 그러니 잠간만 기다려주시오이다.》 하고는 몇집 건너에 있는 자기 오빠네 집 심부름군아이에게 《화적대장》이 우리 집에 들렸으니 빨리 가서 의주부윤에게 알리라고 급한 소리를 하였다. 생각지도 않게 통인아이에게서 《화적대장》에 대한 통보를 받은 부윤은 이거야말로 저절로 굴러든 떡이라고 생각하며 급히 수십명의 라졸들을 끌고 기생집에 달려들었다. 한편 선달은 기생년이 급히 나가는것을 보고 짐작하고도 남은지라 태연하게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있다가 달려드는 라졸들에게 《네놈들이 나를 어떻게 〈의적대장〉인줄 알고 잡으러 왔느냐?》 하면서 반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잡히였다. 부윤이란자는 선달이를 묶어놓고는 《나라에서 걱정하는 <화적대장> 네놈이 내 손에 잡혔으니 임금에게 바쳐 목을 치게 할터이다!》 하면서 좋아하였다. 선달은 부윤이 노는 꼴이 우습기는 하였으나 내색을 하지 않고 《너, 의주부윤 듣거라! 내 재주로 말하면 네놈들을 당장 쳐죽일수 있다마는 임금이 나를 잡기를 바라고 네 또한 이름을 내여 상을 타고싶어하니 이번만은 순순히 잡혀가겠노라!》 하고는 껄껄 웃음보를 터뜨리였다. 그러자 의주부윤은 《네 이놈! 잡힌 주제에 무슨 잡말이냐!》 하며 승이 올라 선달이를 옥에 처넣게 하고는 즉시로 대궐에다 장계를 올리고 온 팔도에 소문을 냈다. 《화적대장》을 잡았다는 장계를 받은 임금은 의주부윤에게 급히 그를 압송해가지고 함께 올라오라는 지시를 내려보냈다. 급전을 받은 의주부윤은 《화적대장》을 잡은 공로로 이제 받을 상금과 높은 관직이 눈앞에 얼른거리여 구름우에 뜬 기분이였다. 이렇게 되여 의주부윤은 백마에 올라 배를 내밀고 거들먹거리면서 선달을 가두어넣은 가마를 끌고 서울로 떠났다. 《화적대장》을 잡아가지고 서울로 가는 의주부윤의 일행이 평양성안에 들어서자 성안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유명짜한 《화적대장》을 보려고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남녀로소 할것없이 줄을 지어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선달은 칼을 찬 자기 얼굴을 내보이면서 《모두들 안녕하시오. 잘 보십시오. 전 봉이 김선달이올시다!》 하고 웃어보이였다. 《화적대장》을 구경하러 모여왔던 평양성사람들은 난데없는 김선달이를 보고는 의주부윤이 돈에 눈이 어두워 애매한 사람을 잡아간다고 쉬쉬 말들을 하였다. 그리하여 이 소문은 일시에 평양성안에 퍼졌으며 나중엔 평양감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였다. 감사는 선달이가 《화적대장》으로 잡혀간다는 소리에 곧 사령을 파하여 추적케 하고 그의 행적도 알아보게 하였다. 사령이 일행을 뒤쫓아가보니 아닐세라 그 《화적대장》은 봉이 김선달이가 틀림없었고 그가 며칠전 의주방면으로 유람을 떠났다가 의주부윤에게 잡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래서 사령은 의주부윤더러 잡아가는 죄인은 《화적대장》이 아니라 평양에 사는 봉이 김선달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의주부윤은 평양감사가 자기 《공로》를 가로채려고 한다면서 말을 듣지 않고 그냥 선달을 끌고 가고말았다. 사령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들은 평양감사는 생각끝에 임금에게 이 문제를 상소하기로 하였다. 한편 의주부윤이 서울에 당도하자 대신들은 왕에게 의주부윤이 《화적대장》을 잡아가지고 왔다고 아뢰였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나라의 걱정거리를 덜어주었으니 그에게 천만금을 상으로 주고 이어 《화적대장》을 처형하라는 령을 내리였다. 다음날 선달이를 처형하려고 나온 형리들이 선달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는가고 물었다. 선달이 웃으며 이 몸은 이젠 죽은 몸이나 다름없으니 마지막으로 임금님을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래서 형리들은 《화적대장》의 마지막부탁을 왕에게 아뢰였다. 형리들에게서 선달의 마지막청을 전해들은 왕은 《화적대장》의 생김새도 볼겸 사형수의 마지막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잠시후 궁중대궐앞에 끌려나온 선달은 왕이 나오는것을 보고 허리굽혀 인사를 올리며 《임금님께 문안드리옵니다. 저는 평양에 사는 봉이 김선달이올시다.》라고 아뢰였다. 임금은 선달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네가 바로 그 인경을 친 봉이 김선달이란 말이냐?!》 하고 의심쩍어 물었다. 이때 마침 평양감사가 올려보낸 전달사가 왕앞에 꿇어앉으며 《저 사람은 <화적대장>이 아니라 평양성에 사는 봉이 김선달이올시다!》 하면서 임금에게 상소하는 장계문을 올리였다. 그제야 왕은 의주부윤에게 속은줄 알고 대노하여 《나라의 망신이로다. <화적대장>을 잡았다고 마음놓았더니 이게 무슨 변고인고! 당장 의주부윤을 잡아다 목을 쳐라!》고 령을 내렸다. 왕의 어명이 떨어지자 형리들은 말을 급히 달려 의주부윤을 잡아다 형틀에 매놓았다. 그리고는 《이 날도적같은 놈아, 네놈이 생사람을 죄인으로 몰고는 임금님을 속여 상까지 타먹었으니 죽어 마땅하다!》 하고는 그 자리에서 목을 베버리고말았다. 《의주부윤이란 놈은 원래 백성들의 재산을 로략질하여 그 원성이 하늘에 닿았으니 임금님을 속인 죄 아니고도 죽어 마땅한 놈입니다.》 왕궁에서 놓여나오면서 선달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는 대궐을 유유히 나섰다. 이리하여 출세와 탐욕에 미쳤던 의주부윤은 목이 잘리웠고 김선달은 무사히 놓여나오게 되였다. 설화는 보는바와 같이 봉이 김선달이가 의주부윤으로 하여금 자기를 《화적대장》으로 잘못 알게 하고는 천냥상금까지 받아먹으려던 그의 목을 쳐버리게 한 이야기를 째인 구성속에서 실감있게 보여주고있다.
과거보러 가는 길에서
어느 한 여름날 봉이 김선달은 서울로 가는 길에서 과거를 보러 가는 젊은 량반선비 세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선달이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는 맛에 그와 동행하는것을 다행스럽게 여기였다. 특히 그의 익살로 하여 웃음보를 터치며 재미나게 걸어보기는 난생처음인지라 힘든줄도 모르고 어느덧 산언덕길에 올라서게 되였다. 그래서 고개마루에서 바람도 쏘일겸 네사람은 잠간 쉬여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맞은편 산판에서 산나물을 캐는 처녀가 눈에 띄였다. 그것을 본 한 선비는 선달이의 재주와 묘술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싶었던지 《선달님, 저 처녀와 말을 걸어보지 않겠소?》 하고 청을 하는것이였다. 그들은 서울에 가서 인경을 치고도 무사히 넘긴것과 서울대감에게 개펄을 논으로 팔아먹고 홍참판에게 청류벽의 낭비둘기를 팔아넘긴 이름난 봉이 김선달의 솜씨를 이 기회에 직접 보고싶었던것이다. 선달은 《저 산골처녀와 무슨 말을 걸어본단 말인가.》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선비들은 산나물캐는 저 처녀와 입맞추고 오면 서울 가서 쓸 로자를 우리가 다 대줄터이니 한번 그 좋은 장끼를 우리에게 보여줄수 없는가고 졸라대는것이였다. 선달은 원래 평양과 서울로 오르내리거나 려행을 다닐 때 돈이나 음식보따리를 가지고 다닌적이 없는지라 이번 행차 역시 호주머니에 단돈 한푼없이 서울길에 올랐었다. 선달은 선비들의 청에 못이기는체 하며 《처녀와 재미를 보라고 하면 몰라도 입이나 맞추는거야 무얼 못하겠나?》 하고는 내가 입을 맞추고 올테니 나무밑에 숨어서 잘 보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산나물을 부지런히 캐고있는 처녀곁으로 다가가서 한손으로 눈을 싸쥐고는 우는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지나가는 길손인데 눈에 티가 들어 처녀에게로 왔으니 혀를 굴려 빼줄수 없겠소이까?》 처녀는 보매 지나가는 길손이 분명한데 그처럼 간절히 애원하는지라 사위를 둘러보고 보는 사람도 없어 선달의 눈에 혀를 대고 굴리였다. 그리고는 티가 빠졌는가고 물었다. 선달은 눈을 굴려보다가 아직 안 빠진것 같다고 하면서 다시한번 혀를 세게 굴려달라고 청하였다. 처녀는 바싹 다가서서 다시한번 혀를 굴려주었다. 한편 선비들이 보기에는 선달이가 그 처녀와 두번씩이나 입맞추는것으로 보였다. 선비들은 선달이가 돌아오자 과시 듣던바대로 재간이 여간 아니라면서 올려추어주고는 하는수없이 로자와 함께 음식그릇을 내놓으며 요기를 좀 하고 또 즐거운 려행을 하자고 하였다. 량반선비들은 자기들이 속히운것도 알지 못하고 희한한 장면을 본것을 좋아하며 선달에게 남자들을 꺼려하는 시골처녀와 대번에 입을 맞춘 그 묘술이 어데 있는가고 련속 물어댔다. 선달은 《자네들이 문무를 통달하여 과거를 보러 간다고는 하지만 이런 묘술은 백성만이 아는것일세. 아마 자네들이 처녀한테 입맞추러 갔다면 대번에 그 처녀가 달아나고말았을걸!》 하고 얼뜨기선비들을 또 한번 조롱하였다. 그러자 선비들은 백성은 무슨 백성, 선달이도 량반이니 아마 그 처녀가 그처럼 유명하다는 봉이 김선달인줄 알고 더 모면할 길이 없어 할수없이 입을 맞추어준것이겠지 하고 제나름대로 해석을 하였다. 그후 량반선비들이 자기들이 목격한 이 사실을 발설함으로써 봉이 김선달이 《처녀와 입맞추다》라는 해학적인 설화가 전해지게 되였다고 한다.
백중날의 단고기추렴
옛날 백중날(음력 칠월 보름)이 오면 평양근방 량반선비들이 대동강가에 모여앉아 단고기추렴을 하며 술도 마시고 시문도 읊으며 놀아댔다. 어느해 음력 칠월 보름날이였다. 김선달이 을밀대로 올라가니 서문거리 부자량반집의 젊은 패거리들이 넓은 소나무밭에 자리를 정하고 고기를 삶는다, 밥을 짓는다 하며 한창 복닥판을 벌리고있었다. 김선달이 《어허, 백중날을 푸짐히 쇠려나보군.》 하며 젊은 량반들에게로 다가가자 그들도 선달이가 우스개소리를 잘하는지라 놀음판의 기분을 돋구어보려는 심산에서 그를 불러세웠다. 선달은 갈길이 바쁘지만 단고기추렴에 한몫 끼워보자고 하면서 《삼복개장은 발등에 떨어져도 약이라 하였거늘 그저 지날수가 없구만!》 하면서 그들속에 앉았다. 마침 단고기가 다 익어 큰 함지박에 꺼내놓고 뜯으려던 참이였다.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던 선달이 갑자기 냄새가 이상하다면서 미심쩍어하였다. 그러자 고기를 뜯으려던 선비들이 《자네 개고기냄새도 가려보나?》 하고 면박을 주듯 물었다. 선달은 《개고기냄새뿐이겠나. 사람의 속도 다 꿰뚫어보지!》 하고는 뉘 집 개를 잡아왔는가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한 선비가 장마당에서 사온것이니 걱정말고 어서 먹기나 하라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런데도 선달은 웬일인지 도리질을 하더니 《이상한데, 혹시 미친개고기가 아닌가!》 하며 재차 묻는것이였다. 선달의 말에 선비들은 《뭐, 미친개고기? 그거야 장사군이나 알겠는지 우리들이야 어찌 알수 있겠나. 대주면 가서 물어라도 볼텐가?》 하면서 막 개고기를 뜯으려고 하였다. 그때 선달이가 《내가 이맘때 어느 마을에 갔던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미친개인줄 모르고 단고기추렴을 하다가 모두가 미쳐서 서로 물고뜯기를 하는것을 보아서 그러는거야!》 하고 시침을 뚝 떼고 말했다. 본래 소심한 선비들인지라 그 소리를 들은 다음에는 그 누구도 감히 고기함지에 다가서려고 하지 않았다. 선달은 긴장된 좌석을 눙쳐줄 심산으로 《그러면 좋아, 방법이 한가지 있기는 한데 누구든지 한사람이 먼저 먹고 한동안 기다렸다가 별일이 없으면 다들 모여 먹으면 될게 아닌가.》 하며 단고기를 꺼낸 선비더러 자네가 먼저 먹어보라고 권고까지 하였다. 그러자 그 선비는 선달이를 보며 《미친개고기라고 말을 낸 자네가 먼저 먹어보게나.》 하며 눈을 흘기는것이였다. 그 말에 선달은 웃으며 《내가 먼저 먹어보고 미친다? 하긴 나야 재산도 없는 가난뱅이신세인데 미쳐죽은들 불쌍할게 없지. 에익, 이 세상에 한번 났다가 죽는것은 정해진 리치이니 그럼 나부터 한번 먹어봅세!》 하면서 개다리를 훌쩍 집어들고 술 한사발을 량껏 들이마신 다음 고기를 넙적넙적 뜯어삼키였다. 그리고는 《하긴 죽을바에야 량껏 마시고 량껏 먹다가 죽어야지.》 하면서 술 한사발을 또 마신 다음 개다리를 조금 뜯다가 그대로 푹 꼬꾸라졌다. 잠시후 선달이 눈을 떴다감았다하며 입으로 《푸-푸-》 하더니 《이 개자식같은것들, 어서 물을 가져오라!》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 량반선비들은 선달이가 미친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그냥 앉아있다가는 살인혐의까지 쓸것 같아 모두 달아나버리고말았다. 얼마후 선달이 한참 풀밭에 누워자다가 눈을 떠보니 지게군 몇사람이 자기가 깨여나기를 지켜보고있는것이였다. 그들은 선달이의 신세를 몇번 진 사람들인지라 어떻게 된 일인가고 사연부터 물으며 걱정하였다. 《별일없네. 량반선비들의 놀음놀이를 혼내주려고 우정 꾀를 꾸민것이니 걱정할것 없네. 자, 모두 이 개고기에 술이나 실컷 마시면서 함께 즐겨보세나!》 선달은 이렇게 말하며 지게군들을 잡아끌었다. 그리하여 그 지게군들과 함께 선달은 밤늦게까지 단고기추렴을 하면서 한껏 즐기였다. 그 이튿날 저녁에야 선달이가 돌아다니는것을 본 한 량반이 달려와서 반갑게 맞으며 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아났는가고 물어보았다. 선달이는 《그런건 한의에게 가서 동침 한대 맞고 약 한첩 달여먹으면 이튿날로 별일없이 낫는 병이라네. 자네도 지랄병이 오면 정수리에 동침을 두석대 맞으면 다 떨어질거네.》 하고 말해주었다. 그후 선달이가 별일없이 그 이튿날도 무사했다는 소문을 들은 량반선비들은 처음엔 의아해하다가 나중에는 선달의 속임수에 걸려 복더위 단고기추렴도 제대로 하지 못한것을 분통해하였으나 그때는 이미 행차뒤 나발이였다. 보는바와 같이 설화는 량반선비들의 놀음터에 끼여들어 그들을 골탕먹이는 봉이 김선달의 해학적인 기지를 잘 엿보여준다.
시골량반녀편네를 골탕먹이다
봉이 김선달이 서울로 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여러 집을 다니다가 한 량반집에 와서 겨우 승낙받고 사랑채에 들게 되였다. 그 집은 시골량반치고는 돈개나 있는 집인데도 인심이 박하고 특히 그 집 녀편네는 보통길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지독한 린색한이였다. 선달은 특별히 행장을 풀어놓을것도 없어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량반집 녀주인이 그렇게도 몰상식하고 인정머리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한번 시험해보려고 사랑방에서 나와 《거, 랭수 한사발 줄수 없겠소?》 하고 건네여보았다. 한참후에야 대접에 물을 떠가지고 안주인이 나왔다. 선달이 가만히 량반녀편네를 살펴보니 상통이 둥글넙적한게 꽤 미련하고 몰상식해보이였다. 하지만 선달이가 자기를 《서울량반》이라고 소개해서인지 별로 허물없이 씨원스레 대해주는것만 같았다. 그런데 얼마후 저녁상을 차려들여온것을 보니 댕그런 밥사발에 조밥을 성글게 담고 고사리나물에 김치와 배추국이 전부였다. 그러나 먼길에 배가 고팠던 선달인지라 언제 밥찬을 투정할 겨를이 없었다. 저녁상을 물린 선달이 밖으로 바람쏘이러 나갔을 때였다. 마침 량반부부가 퇴마루에서 겸상을 하고 한창 밥을 맛나게 먹고있는 참이였다. 선달이 밥상을 넌지시 넘겨다보니 상우에는 갖가지 반찬에 닭다리까지 놓여있는것이였다. 정말 듣던바대로 린색하기 그지없는 집이였다. 그래서 선달은 이 린색하고 몰상식한 량반부부를 한바탕 골려주리라 마음먹었다. 식사후 주인량반은 안방에 들어가고 그 녀편네는 길쌈바구니를 옆에다 놓고 속옷을 깁고있었다. 선달이가 대문밖에 나가 한참 바람을 쏘이고 들어오니 여전히 량반녀편네는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루에 다가가 앉으며 《시골서 퍽 갑갑하겠습니다.》 하고 말을 건네여보았다. 그러자 량반녀편네는 《서울손님》이 다정스레 묻는지라 어려워하지 않고 《시골에서야 늘 이 모양, 이 꼴로 살지요.》 하고는 저도 호기심이 동했던지 서울서 사는 형편을 여러가지로 물어보았다. 선달은 서울은 사람이 많고 신분의 차이도 심하지만 인심은 후하고 문명하여 살기 불편한것이 별로 없다고 자랑하고나서 시골로 내려와보면 어떤 곳은 사람들이 트이지 못하고 문명이 뒤떨어져있을뿐아니라 례절도 바르지 못하고 인심이 박한것을 자주 보게 된다고 핀잔하였다. 선달의 말에 량반녀편네는 마음이 좋지 않았던지 우리 집 가장집물도 다 서울서 사온것이라면서 시골사람들도 사람나름이고 사는것도 제탓이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서울구경을 한번 떠난다 하면서도 가정잡사가 많아 끝내 가지 못하여 갑갑하기만 하다고 실토하였다. 선달은 아무리 시골량반이기로서니 한번도 서울에 다녀오지 못했다니 그게 될 말인가고 하면서 《정 소원이라면 내가 여기서 떠날 때 이 집 량주가 다같이 가는게 어떻겠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량반녀편네는 《그렇게만 되면 좋으련만 집은 어쩌고 량주가 다 떠난단 말이예요. 내 하나라면 또 몰라도…》 하면서 좋아하였다. 방안에서 《서울손님》과 자기 녀편네가 희희닥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는것을 듣고있던 바깥주인이 입이 쓰거웠던지 동네돌이를 나갔다. 그제야 남편의 기색을 살펴본 주인집 녀편네도 몸이 굳어지며 길쌈바구니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이때 김선달이가 주인마누라에게 말했다. 《바느질을 다 하셨나요? 그러면 나 그 속것을 좀 빌려주시오!》 선달이 이렇게 청하자 주인마누라가 펄쩍 뛰였다. 《뭐라구요. 속옷이라니? 서울량반들이 례절이 밝다더니 정말 흉측하기 그지없구만!》 하며 마뜩지 않아 돌아섰다. 그러자 선달은 또 선달대로 놀라와하며 그 길쌈바구니에 있는것을 좀 쓰려고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도 기분이 거슬리는가고 물었다. 선달은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어 어리둥절해하는 량반녀편네곁으로 다가가 길쌈바구니에 들어있는 가위를 가리키며 《이 속것을 빌려달라는거요.》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량반녀편네는 《네, 이것(가위)을 서울에서는 속옷이라고 해요? 말이 다르니 어디 알아듣겠어요.》 하면서 고깝게 생각한것이 미안하였던지 얼른 가위를 집어주었다. 선달은 가위를 받아들고는 그 녀편네보고 《서울서 살아보지 못하다나니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구만. 한번이라도 서울구경을 하긴 해야겠수다. 래일 아침에 돌려드릴테니 그리 아시오.》 하고 웃어보이고는 방에 들어갔다. 이어 선달은 얼른 자리를 펴고 깊은 잠에 들어버렸다. 이튿날 아침 선달은 식사를 마치고나서 마당가에 나와 안방에 대고 《잘 대접받고 나는 갑니다. 이제 또 한번 보고싶으면 들리겠수다.》 하고 대문을 나섰다. 그 소리를 들은 주인녀편네는 밥을 입에 문채 급히 달려나오면서 《아니, 내 속옷을 안 주고 가시려우?》 하고 소리쳤다. 선달은 뒤를 돌아보며 《그 속것 말이요. 우리가 자던 행랑채의 베개밑에 넣어두었어요.》 하고 큰소리로 말하고는 떠나가버렸다. 집안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듣고있던 하인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문을 열어제꼈다. 《저 주인녀편네가 간밤에 서울량반을 끼고 재미를 본 모양이군. 주인 몰래 속옷까지 벗어주고 찾는걸보니…》 그들은 서울바람을 쏘이고싶다더니 서울량반에게서 그 맛을 단단히 보았겠다고 입을 딱 벌리고 좋아라 웃어댔다. 그러자 바깥주인이 안방문을 열어제치고 얼굴이 수수떡같이 되여 대문으로 들어서는 제 녀편네에게 《네년이 간밤에 서울량반과 간통한 모양이구나!》 하며 다짜고짜로 집안에 끌고 들어가 엎어놓고 조겨댔다. 《이 쌍년, 속옷까지 벗어주고 하인들이 듣는데서 큰소리로 그 더러운것을 찾다니… 서울량반맛이 그리도 좋더냐?》 주인녀편네는 얻어맞으면서도 《그것은 속옷이 아니요!》 하고 통절히 호소하였으나 그것을 알아들을리 없는 량반주인은 《지금도 변명할테냐. 대처바람이 나도 분수가 있지 하루밤사이에 간통하는 화냥년이 또 어데 있겠느냐?》 하면서 분을 새길수 없어 씩씩거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하인들이 가만 놔두면 주인마누라가 매맞아 죽을것 같아 바깥주인을 말리였다. 《량반들이라는게 다 치사스러운것들인데 주인마님만 탓하지 마시오이다. 머슴처녀까지 데려다놓고 재미를 보자고 달라붙는 량반이 얼마이기에 헌 속옷을 한번 벗어바쳤다고 그렇게 두들겨패면 나중에는 살인죄까지 범하여 영영 그 재미를 보지 못할게 아니겠소!》 그러자 량반주인은 분을 새기느라고 헐떡거리며 《그 말에도 일리는 있으나 이년이 한짓은 너무하단 말이야!》 하면서 문을 차고 나가버렸다. 죽도록 얻어맞은 량반녀편네는 너무도 억울하여 대성통곡하였으나 그 사연을 알길없는 하인들은 돈개나 있다고 거들먹거리며 못사는 사람들을 천시하던 주인마누라가 이번에는 되게 혼이 났다고 좋아들 하였다. 그후로 그 량반녀편네는 다시 그같은 봉변을 당할가 두려워 더는 길손을 재우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때일이 이 집 머슴들속에서 발설되여 이런 설화가 생겨났는데 후날 봉이 김선달이 황해도의 지주녀편네를 통쾌하게 골려주고 바람같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광범히 퍼지게 되면서 사람들이 추측하기를 이번에 있은 소행도 틀림없이 봉이 김선달의 능란한 익살에서 생겨난것일거라고 말들을 하였다고 한다. 설화는 언어를 정황에 맞게 능숙하게 활용하여 어리석고 린색한 량반녀편네를 재치있게 골탕먹이는 봉이 김선달의 인민적인 기지와 그 대변자로서의 인물상을 생동하게 보여주는것으로 하여 유산적가치를 가진다.
《통빨래》
평양성에서는 이경(밤 10시부터 12시사이)만 되면 인경을 쳐서 통행금지시간을 알리였다. 인경소리가 울린 다음에는 누구도 나다닐수 없었으며 그것을 순라군(순시하는 라졸)들이 돌아다니며 감시하고 단속하여 잡아가두었다. 어느날 봉이 김선달은 저녁늦게야 친구 김서방의 집에 가서 이야기장단을 펼치며 놀다가 인경소리를 듣고서야 통행시간이 지난줄 알고 할수없이 자고 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에야 생각이 났던지 김서방은 오늘 밤이 큰아버지 제사날인데 놀음에 정신이 팔려 잊었으니 이젠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고 안절부절 못하는것이였다. 봉이 김선달은 자기가 와서 이야기장단을 펼치여 제사날까지 잊게 하고 통행금지시간에 이르렀으니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게 있나. 용단을 내려 제사보러 가야지.》 하고는 어서 차림새를 하고 떠나보자고 하였다. 봉이 김선달의 말에 김서방도 통행금지시간이 되였는데 일없겠는가고 하면서 망설이다가 그까짓거 순라군과 맞다들기야 하겠나 하며 집을 나섰다. 두사람이 이렇게 셈평좋게 길을 떠나 막 골목길에 들어서는데 일이 안될세라 순라군들이 륙모방치를 들고 마주오고있었다. 김선달은 일이 공교롭게 됐는지라 김서방을 보고 《자네는 이 골목으로 들어가 숨어있게. 내가 저놈들을 저쪽으로 끌고갈테니 그때 빨리 빠지게.》 하고는 오던 길로 되돌아서 소란스럽게 발자국소리를 내며 줄행랑을 놓았다. 그 소리에 놀란 순라군들도 도망치는 김선달을 정신없이 쫓아왔다. 김선달은 하도 급하여 왼쪽으로 꺾어서 내달리다가 길곁에 높이 솟아있는 어느 부자집담장으로 훌쩍 올라가서는 넙적 엎드렸다. 뒤쫓아오던 순라군들은 담장에 흰옷을 펼쳐놓은듯 사람이 누워있는것을 보고 《저놈이 아니냐? 이놈 빨리 내려오라!》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선달은 집안쪽에서 소리치듯 《이건 통빨래외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소리에 순라군은 《야, 이녀석아! 거짓말말아. 이런 고래등같은 기와집에 사는 사람이 갈아입을 옷이 없어 옷을 입은채로 빤단 말이냐?》 하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순라군들의 말에 김선달은 《여보시우, 내 이런 집에서 살면야 어찌 통빨래를 하겠소. 나는 저 가난한 백성들이 모여사는 토성랑에 있는 빈민이외다. 우리 집은 다 무너져가는 초가집이여서 지붕우에 엎디여있자 해도 뜬 이영에서 습기가 올라와 도리여 젖는 형편이니 어찌 말리울수 있겠소.》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듣고보니 선달의 말이 그럴듯도 하였지만 아무래도 의심쩍은 생각에 순라군은 그럼 아무데나 마른 곳에 엎딜것이지 하필이면 이렇게 먼곳까지 왔느냐고 따져물었다. 《여보시우, 여기 성안에서 한밤중에 그래도 뜨스하게 열을 내여 통빨래를 말릴만 한 곳이 이 기와장을 얹은 담장밖에 어디 또 있겠소?!》 봉이 김선달이 이렇게 말하자 순라군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가고말았다. 그후로 이 두 순라군들이 《통빨래》이야기를 옛말처럼 외워대는 바람에 이런 설화가 생겨나게 되였다고 한다. 설화는 순라군들을 신통히도 속여넘기는 봉이 김선달이의 독특한 기질을 해학적으로 잘 보여주고있다.
《황금새》
어느해인가 봉이 김선달이 서울시내 한복판을 거닐며 이곳저곳을 살피고있을 때 대여섯살 되나마나한 사내아이가 배를 끌어안고 다리를 꼬며 울상이 되여 한 녀인에게 끌려가는것을 보게되였다. 선달이 이상스러운 광경인지라 불길한 생각이 들어 급히 달려가 물어보니 녀인은 《아니, 얘가 뒤가 마렵다고 야단치니 이 대처바닥에서 어디 뒤를 보겠어요.》 하며 숨찬 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녀인의 말을 들은 선달은 오히려 그에게 별치도 않은것을 가지고 걱정한다고 하면서 《아이를 끌고만 가면 어떻게 하겠소. 뒤를 보게 해야지. 그러다간 병까지 만나겠수다!》 하고는 아이를 공지있는데로 끌고갔다. 그러자 녀인이 따라오면서 《순라군들이 돌아치는데 그들에게 걸려들어 매맞고 벌금을 물려고 그러시오?》 하며 그만두라고 말리려 하였다. 선달은 녀인에게 《내가 처리할테니 마음놓으시오!》 하고는 여기에서 뒤를 보라면서 자기 갓을 벗어 뒤를 가리워주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가 륙모방치를 손에 쥔 순라군이 저쪽에서 걸어오고있는것이 보였다. 선달은 아이에게 뒤를 다 보게 한 다음 아이를 어머니있는데로 가라 하고는 거기에다 갓을 씌워놓고는 그것을 가만히 잡고있었다. 선달이 갓을 꼭 누르고있는것이 이상하였던지 지나가는 순라군이 무슨 일인가고 물었다. 선달은 《황금새를 놓칠가봐 그럽니다. 모이를 주다가 놓친것을 여기 와서 겨우 잡았는데 초롱을 가져와야 하겠기에 그동안 이것을 잡고있을 사람을 찾고있는중입니다.》라고 미안쩍어하면서 도움을 바랐다. 순라군은 《황금새》라는 새이름을 처음 듣는지라 한마리 가질상싶어 이 새도 알을 낳아 새끼를 내여 번식시킬수 있는가고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선달은 《이 새가 바로 암컷인데 이제 며칠 있으면 알을 낳아 새끼를 받을수 있습니다. 한번 키워보시려우?》 하고 슬쩍 순라군의 심사를 건드려보았다. 그러자 순라군은 희귀한 새라면 키워볼 생각도 있다며 자기가 잡고있을테니 빨리 초롱을 가져오라면서 갓의 귀를 꼭 눌러잡았다. 선달은 순라군에게 《갓의 귀를 꼭 잡고있어야 합니다.》라고 다시한번 강조하고는 거리를 빠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순라군은 시간이 퍼그나 흘러도 《황금새》임자가 나타나지 않으니 대체 새가 어느만큼 큰것인가 호기심이 동하여 갓밑으로 손을 들이밀어 《새》를 덥석 움켜잡았다. 그런데 물컹한것이 손에 쥐여지는것이였다. 순라군이 황급히 갓을 열어제끼니 노란 아이의 대변이 손에 묻어나오는것이였다. 결국 움켜잡은것은 《황금새》가 아니라 아이의 역한 대변이였던것이다. 그제야 순라군은 《황금새》임자에게 속은줄 알고 잡아서 혼내주려고 하였지만 찾을 길이 없어 륙모방치로 제 머리만 두들겼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