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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살군, 재담가의 이야기

 

 

민화는 일반적으로 사회의 넓은 생활령역에서 벌어지는 실제적인 사실과 사건을 모체로 하여 발설되고 구전화되는 과정에 보태여지고 세련되여 인민대중창작으로 완성된다.

하기에 많은 경우 사건의 체험자나 그 목격자에 의하여 발설되고 그것이 구전화되는 과정에 민족설화로 완성되는것이 보편적인 생리이다.

그런가 하면 항간에 있는 이야기군이나 재담가, 익살군에 의하여 실제있은 사실적인 이야기가 재담식으로 꾸며지거나 우스개소리인 소화로 다듬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근한 실례로 거짓말내기를 하는 민담에서 머슴군총각이 재상이나 량반, 부자를 속여넘기고 횡재하는 이야기가 적지 않은데 그것은 머슴군총각이 설화의 발설자이자 전파자이라는것을 말하여준다.

특히 풍자재담인 경우에 대방을 통쾌하게 골려주는 익살군이 나오는데 그들도 재담의 주인공인 동시에 꾀있고 기지있는 이야기군이나 재담가들인것이다.

력사적으로 놓고보더라도 왕궁에서 임금의 요구에 의하여 그 측근신하나 이야기군, 광대가 옛말을 들려주거나 또는 실제한 사실에 기초하여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 들려준것들이 적지 않다.

례하면 설총이 왕에게 교훈이 되게 우의적으로 꽃왕이야기를 들려준것이나 선도해가 《토끼와 거부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것이나 다 그런 설화부류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천하루밤이야기》도 이렇게 생겨난 설화류형이다.

우리 나라 력사기록을 보면 리조 14대 선조왕때 참판으로부터 병조판서, 나중에는 령의정에까지 오른 백사 리항복(1556-1618)은 해학과 희롱을 좋아하여 사람들을 웃기는 수많은 재담들을 남기였다. 큰 벼슬자리에 있는 재상도 이렇게 익살을 잘하였으니 항간에 있는 이야기군, 재담가, 익살군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봉건사회의 중기로부터 말기에 이르러 이야기군들은 항간을 돌아다니며 이야기주머니를 털어놓으며 설화를 전파시켰다. 이 과정에 일부 설화는 말과 창을 결합시켜 새로운 설창형식이 생겨났을뿐아니라 설화로부터 비약한 판소리가 형성되고 그 대본이 다듬어지고 완성되여 나중에는 국문소설에 이르게까지 되였다.

이런 설화창조의 사회적추향을 놓고볼 때 민간예술인 특히는 익살군이나 말재주군에 의한 기지있는 재담이나 우스개소리들이 민화령역에서 적지 않게 전파되고 재창조된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것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민화에는 봉이 김선달이야기나 정수동에 대한 이야기와 같이 풍자해학적인 이야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풍자해학적인 이야기에서는 위세를 뽐내며 인민들을 못살게 구는 지주와 량반관료배들이 어리석고 우둔한 존재로, 풍자해학적인 웃음의 대상으로 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력사적으로 이야기군, 재담가로 널리 알려져오는것은 봉이 김선달과 정수동, 정만서 그리고 리항복과 윤통을 들수 있다.

하기에 여기에서는 설화의 수량과 양상에서 다소의 큰 차이가 있더라도 사람별로 갈라서 지금까지 수집된 령역에서 대표적인것을 골라 취급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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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이 김선달이야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봉이 김선달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사람들을 웃기려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런 이야기라면 그렇게 강한 전파력을 가지고 인민들속에 널리 전해질수 없었을것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봉이 김선달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악과 불의를 고발하고 풍자해학한 기지있는 재담이나 소화인것으로 하여 당대 인민들속에서 널리 전해진 민화유산의 하나이다.

구전으로 전해오는 봉이 김선달의 인물상에 대해서는 평양지방(일명 선교구역)에서 나서자란 실재한 인물이라고는 하나 문헌상기록을 남겼거나 그 여지를 보여주는것은 없다. 같은 시기를 전후한 정수동은 그 이름과 함께 자와 별호, 출신 등이 밝혀져있지만 봉이 김선달은 이름과 별호, 직분도 밝혀져있지 않을뿐아니라 《봉이》라는 별호나 《선달》이라는 호칭도 다 구전설화화되여 붙여진것만큼 이 별호나 호칭이 붙기 전에는 익살군 김서방으로 불리워졌다고 볼수 있다.

평양과 서울로 드나들면서 봉건관료나 량반선비들, 부자와 장사치들을 골려주고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동정하고 구원하여준 선의 체현자, 악을 골탕먹이고 풍자해학하는 익살군, 재담가로서의 그의 별호와 호칭에는 각각 독자적인 구전설화가 전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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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호, 호칭과 관련된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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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라는 별호에 깃든 원형설화

 

이 설화는 남을 속여먹고 등쳐먹는 악한들과 장사치들을 자기의 능란한 계책과 풍자해학적인 기질로 통쾌하게 골탕먹이는 김선달의 인물상을 생동하게 펼쳐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일뿐아니라 《봉이》라는 별호가 붙게 된 연원을 알수 있게 하는 설화이다.

설화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에 가서 이곳저곳을 돌아보던 김선달은 어느날 객주집에 들렸다가 거기서 장보러 왔던 농군들의 말을 듣게 된다.

그것인즉 서울장마당 닭장사군이 교묘한 방법으로 농군들에게서 돈을 긁어내는 악착한 놈이라고 분통을 터치는 소리였다.

그들의 말을 들은 선달은 다음날 허줄한 농부옷을 걸치고 닭장사군앞에 나타났다.

워낙 닭장사를 오래동안 해먹은 놈인지라 닭마다 모두 값을 다르게 정해놓고는 흥정군의 신상을 살펴가며 속여넘기느라고 요사를 부리고있었다. 한동안 그 모양을 살펴보던 선달은 닭우리에서 볏이 제일 유별나고 꼬리가 긴 수닭을 가리키며 깜짝 놀라는 기색으로 저게 무슨 새인가고 닭장사군에게 다급히 물었다.

닭장사군은 《이 새는 보기 드문 <봉이>(봉황새)일세!》 하고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하였다. 하긴 그럴만도 하였다. 웬 어리무던한 사람이 지금 수닭을 보고 희한해하며 무슨 새인가고 물어보고있지 않는가.

김선달은 장사군에게 더 바싹 다가서며 군침이 도는듯 《저 새가 봉이옵니까?》라고 감탄해하며 값이 대체 얼마나 되는가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닭장사군은 눅게 주어도 스무냥은 받아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장사군의 말에 선달은 《거참, 비싸다!》고 하면서도 흥정해보려는 눈치를 보였다.

이쯤되니 장사치는 한수 더 뜨며 《그래 <봉이>값과 닭값이 어떻게 같겠나. 이것도 눅은셈이지.》 하며 김서방을 슬슬 구슬리는것이였다.

김선달은 얼리우는척 하고 어데 가서 이런 《봉황새》를 사겠는가면서 꽁꽁 싼 엽전 스무냥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장사군에게 주었다.

서푼짜리 수닭을 장사군에게 《얼리워》 산 김선달은 왕이 종로로 행차한다는 소리를 듣고 즉시 장마당을 줄달음쳐나와 《봉이》를 안은채 달려갔다. 김선달이 얼마나 급작스레 들이닥쳤는지 호위군사들도 미처 어쩌는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여 왕의 행차는 잠시 멎어서게 되였다.

영문없이 일행이 멎어서자 왕은 함께 가던 신하에게 웬일인가고 물었다.

신하가 《웬 시골백성이 수닭을 안고 상감마마를 뵈옵겠다고 하옵니다.》라고 대답하니 왕은 곧 그를 데려오라고 하였다.

이윽고 수닭을 안은 김선달이 왕앞에 와 엎드렸다.

《너는 누구이기에 감히 임금의 행차를 막아섰느냐?》 하며 왕이 엄하게 묻자 선달은 주저없이 아뢰였다.

《소인은 시골에 사는 천한 백성이온데 상감님께서 행차하신다기에 구경을 나왔다가 마침 봉황새를 파는 사람이 있어 그것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성현이 날 때 봉이 난다.>는 말을 들은바 있사온데 상감마마의 은덕에 백성이 평온하오니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저 이 봉황을 사서 올리는바입니다.》

왕이 내려다보니 그것은 봉황이 아니라 흔히 볼수 있는 수닭이였다. 왕은 이 순박하고 어진 백성을 속여 닭을 봉이로 팔아먹은 장사치의 소행이 하도 괘씸하여 그놈을 당장 잡아들이라고 령을 내렸다.

이윽고 닭장사군이 잡혀와 왕앞에 꿇어앉았다.

왕이 자초지종을 물으니 닭장사군은 롱담으로 《봉이》라고 하였는데 스무냥을 내고 사니 받았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러자 김선달이 펄쩍 뛰며 《거짓말이올시다. 삼백냥을 주고 샀습니다. 스무냥이라고 하면 소인은 <봉이>로 속히우지도 않았겠사오이다.》라고 하였다.

그 제소를 들은 왕은 더욱 노발대발하여 닭을 봉이로 팔아먹고도 자기앞에서까지 거짓말을 하는 닭장사치를 형틀에 매여 되게 치게 하고는 돈 삼백냥도 당장 되돌려주도록 하였다.

이렇게 되여 닭장사군은 형틀에서 반죽음이 돼서 풀려나왔으며 선달에게 삼백냥을 다 털어주고 영영 패가망신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수닭값을 봉황새값으로 받아낸 기지있는 익살군, 재담가라는 의미에서 그의 별호를 《봉이》라고 부르게 되였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악한들과 못된 장사치들을 골탕먹인 그의 소행을 널리 구전화하였다고 한다.

 

 

5

《선달》이라는 호칭은 어떻게 얻은것인가

 

원래 《선달》이란 봉건적인 과거제도하에서 무과에 급제한 사람들이 벼슬하기 전 또는 하지 못하였을 때 부르는 호칭의 하나이다.

봉이 김선달은 력사적으로는 이름도 똑똑히 알려져있지 않고 다만 익살을 잘 부리는 김서방으로 불리워져왔다. 그러다가 앞에서 본것처럼 《봉이》라는 별호가 붙게 되고 그후 과거담당관리들을 속여넘겨 《선달》호칭까지 얻게 되였다.

구전화되여 내려오는 그 연원설화는 다음과 같다.

한때 서당에서 글개나 읽어 사리에 밝은 평양태생 김서방이 과거를 볼 결심으로 서울로 가게 되였다.

김서방이 서울에 와보니 무엇이든 뢰물로 못하는짓이 없는지라 실지 벼슬을 하고싶어서가 아니라 고향으로 내려갈 때 마을사람들에게 벼슬감투를 쓰고 왔다는것을 보여주려는 심산으로 계교를 꾸미게 되였다. 그래서 그전부터 친교를 맺고 드나들던 친구의 집에 가서 정원에서 기르는 꿩 한마리를 빌려가지고 퇴직한 로재상의 집을 찾아갔다.

로재상은 서울에서 살아 푸드득거리는 꿩을 보게 된것이 무척 희한한지라 기뻐하며 김서방에게 무슨 일이 있어 이렇게 자기를 찾아왔는가고 물었다.

김서방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빈 머리로 고향으로 돌아가기가 거북하여 이렇게 선달첩지라도 얻었으면 해서 찾아왔다고 아뢰이자 로재상은 그거야 뭐 어려울게 있는가고 하면서 편지를 한통 써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이것을 가지고 가서 리조정랑에게 주면 그 문제는 인차 해결될것이라는것이였다.

김서방은 감지덕지해하며 그 편지를 받아가지고 가서 리조정랑에게 전달하였다.

며칠후 김선달은 로재상집에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러 온줄 알았던 김선달이 갑자기 왕청같은 소리를 하는것이 아닌가.

《아니, 난 그래도 대감님의 서신을 가지고 가면 리조정랑이 어려워서 설설 길줄 알았는데 날 소 닭보듯 하니 이거 내가 괜한 수고를 한것 같수다.》

그러면서 김서방은 전날에 주었던 꿩을 도로 찾아가는것이였다.

김서방은 이렇게 꿩을 도로 찾아다 주인에게 돌려주고는 다시 리조정랑을 찾아갔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리조정랑은 그새 보이지 않던 김서방이 나타나자 왜 이제야 왔는가고 하면서 로재상의 편지를 받고 인츰 선달첩지를 써놓았는데 빨리 가져가라고 하였다.

김서방이 《나같은 쌍놈이 그따위 첩지나 해선 무얼 하겠소?》 하며 거듭 사양하는척 했으나 정랑은 문밖에까지 따라나와 선달첩지를 김서방에게 꼭 쥐여주며 대감에게 잘 여쭈어달라고 당부까지 하는것이였다.

이리하여 김서방은 하루아침에 《선달》이가 되였으며 그후로 사람들속에서 《봉이 김선달》로 널리 불리워지게 되였다고 한다.

보는바와 같이 이 설화는 뢰물로 벼슬을 사는 봉건사회의 부패상을 보여줄뿐아니라 《선달》호칭을 따내는 그의 기질과 풍자재담가적인 성격을 방불하게 엿보여준다.

이렇게 김선달이가 된 그는 평양과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부정부패를 일삼는자들, 악한짓을 하는자들을 얼려넘기고 골탕먹여 크게 소문이 나게 되였다.

따라서 봉이 김선달의 설화에는 부정부패의 대상별에 따르는 다양하고 기지적이며 통쾌한 풍자재담과 우스개소리들이 수없이 많으며 그를 통하여 그의 인물상과 성격을 잘 알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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