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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화에 대한 포괄적인 리해
우화의 개념과 특성
구전우화는 오랜 력사적기간 우리 인민들속에서 창조전승되여온 독특한 양식의 설화유산이다. 구전우화는 우리 인민들속에서 력사적으로 창조되여 내려온 설화유산으로서 발생에서 자기 고유의 특성을 가진다. 구전동화가 아이들에게 재미나는 옛말을 들려주는 과정에 환상을 즐기는 어린이들의 동심에 맞게 꾸며낸 이야기이라면 우화는 현실생활을 직접 취급하는것이 아니라 의인화된 동식물세계를 빌어 주로 부정적인 면을 비판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찾아볼수 있게 꾸며진 이야기이다. 따라서 발생당시는 아이들을 위하여 꾸며낸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비판하기 어려운 대상(왕이나 고관대작), 포악하고 우둔하며 미련하기 짝이 없는자들을 동식물세계에 비유하여 에둘러 비판하고 교훈을 찾아보게 하기 위하여 꾸며낸 이야기이다. 우리 나라에서 오랜 우화의 하나로 알려져있는 《화왕계(꽃왕이야기)》에서 그것을 여실히 찾아볼수 있다. 이 이야기는 궁중신하 설총이 신라 신문왕에게 들려준 이야기로서 《삼국사기》 권 제46에 실려 전하여온다. 신문왕은 신하 설총을 보고 《오늘은 오랜 장마비도 끊고 날이 개였으니 아무리 맛있는 음식과 듣기 좋은 음악이 있더라도 그것이 고상한 이야기나 재미있는 롱담을 듣는것만 못하다. 그러니 그대(설총)는 반드시 색다른 소문을 들었을터인데 어찌 나를 위하여 이야기하지 않는가.》고 하였다. 설총은 그제야 꽃세계에 비유하여 봉건군주인 왕이 사치와 방탕에 눈이 어두워 간신과 충신도 가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비판충고하는 꽃왕이야기를 하게 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봄이 되자 꽃동산에 꽃왕인 모란꽃이 활짝 피여났다. 그러자 주변의 여러 꽃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와 간청을 올린다. 아름다운 녀인인 장미꽃은 고운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꽃왕앞에서 아양을 떨며 향기로운 휘장속에서 대왕의 잠자리를 모시러 왔노라고 아뢰였다. 이때 어떤 남자가 베옷에 가죽띠를 띠고 백발이 성성한 몸으로 지팽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나타나서 자기는 할미꽃이라는 천한 늙은인데 요긴할 때가 있을터이니 써주지 않겠는가고 문안을 올리였다. 이때 옆의 신하가 《두명이 이렇게 왔는데 누구를 두고 누구를 보낼것이오이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꽃왕은 《소박하고 강직한 늙은이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저같이 어여쁜 장미꽃녀인은 얻기가 어려울것이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고 하였다. 꽃왕의 동태를 살피고있던 늙은 할미꽃은 《나는 대왕이 총명하여 의리를 알리라고 생각하였기때문에 왔던것인데 지금 와서보니 틀렸습니다. 대체 임금된 사람치고 간사한자를 가까이 하지 않으며 정직한자를 멀리하지 않은이가 드물다 하였거늘 하기에 어떤 성인은 불우한 신세로 일생을 마치였고 어떤 장부는 머리가 희도록 시시한 랑중벼슬에 그치였으니 낸들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하며 그길로 돌아서려 하였다. 그러자 꽃왕은 자기가 진정 잘못했노라고 서글프게 자책하였다고 한다. … 설총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신문왕은 《그대가 비유한 말은 진실로 의미심장하다. 이 말을 기록하여두어 임금된자들의 경계로 삼도록 하라.》 하고 설총을 발탁하여 높은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이상의 기록내용에서 보는바와 같이 설총이 신문왕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그가 지어낸것인지 아니면 왕이 한 말대로 《색다른 소문》을 듣고 한 구전우화인지는 알수 없으나 어쨌든 봉건군주인 왕의 그릇된 처사를 꽃세계에 비유하여 비판하고 교훈을 찾아보게 하자는데로부터 설화화된것이라고 볼수 있다. 당시로서는 왕이나 고관대작의 그릇된 처사와 행실을 정면으로 비판하거나 훈계할수 없었던 조건에서 은유적인 수법, 비유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꾸며내여 비판을 실현하고 교훈을 찾아보게 하였다. 하기에 신문왕은 설총의 이야기(우화)를 듣고 《비유한 말은 진실로 의미심장하다.》고 하였으며 기록하여두었다가 《임금된자의 경계로 삼도록 하라.》고 엄명하였던것이다. 이것은 설총이 들려준 이야기가 동식물세계에 비유하여 그릇된 처사와 행동을 하는자들을 비판, 충고하여 교훈을 되찾아보게 하는 우화적내용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잘 말하여준다. 원래 우화가 독자적인 설화양식으로 분화된것도 악과 부정의 세계를 동식물세계에 비유하여 의인화하고 충고와 비판을 통하여 교훈적인 결론을 얻어내자는데로부터 탐구된것이다. 우화라는 말속에는 동식물세계에 의탁하여 비판과 교훈을 실현하는 우의(어떤 사물에 빗대여 비유적으로 뜻을 나타내는것)적인 이야기라는 뜻이 주어져있다. 다시말하여 인간생활의 부정적측면을 정면으로 직접 헤쳐보이는것이 아니라 우회적방법으로, 동식물세계를 빌어 비유적으로 비판하고 교훈을 실현하는 설화양식이다. 우화가 발생당시 다른 설화양식과 구별되여 자기의 체질을 뚜렷이 갖추고 나오게 된것은 우의적이야기라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였기때문이다. 하기에 그 양식의 명명도 우의적이야기인 《우화》로 고착되게 되였다. 말하자면 정면으로 풍자와 비판을 들이대는 풍자설화, 재담 등과는 달리 의인화된 동식물세계를 빌어 우의와 비유의 방법으로 비판과 충고를 주어 보다 효과적인 교훈과 자책을 찾아보게 하자는데로부터 생겨난 설화양식인것이다. 그것은 신문왕과 같이 한 나라의 임금의 그릇된 처사를 우의적이야기를 통하여 비판하고 깨우쳐주어 자책과 교훈을 찾아보게 하지 않고 정면으로 비판하거나 풍자를 실현한다면 큰 재난을 당할것은 말할것도 없고 그런 이야기를 꺼낼수도 없었을것이다. 여기로부터 비판과 교훈을 추구하는 설화령역에서 대상에 대한 고려로부터 우의적방법, 동식물세계에 의탁하여 이야기를 꾸며가는 우화양식이 탐구되여 하나의 설화양식을 이루게 되였다. 물론 이것은 우화의 발생당시 비판대상(왕이나 고관대작)을 고려하여 우의적인 방법, 의인화의 수법을 쓰지 않으면 비판과 교훈성을 원만히 실현할수 없었던 당시의 사정과도 관련된다. 우리 나라에서 발생초기의 우화들은 현재 문헌상 고착된것을 보면 대체로 이런 대상성을 고려하여 우의적이야기를 들려준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것은 앞에서 본 《화왕계(꽃왕이야기)》가 그러할뿐아니라 《삼국사기》 권 제41에 실려있는 구토설화(토끼와 거부기이야기)에서도 뚜렷이 찾아볼수 있다. 물론 앞에서 본 《꽃왕이야기》나 《토끼와 거부기》이야기가 그 당시(세나라시기)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전부터 전해온 구전우화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우나 어쨌든 기록상으로 보면 당시에 류포되고있은 《색다른 소문》(화왕계)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일찌기 거북과 토끼의 이야기를 들었는가?》(구토설화)고 한데서 짐작할수 있는바와 같이 전래한 이야기인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우화의 발생연원은 직선적으로 정면으로 비판과 훈계, 교훈을 추구할수 없었던 당시의 조건에서 우의적인 수법과 의인화의 방법으로 탐구된 설화양식이라고 할수 있다. 우화는 대상에 맞게 우의적수법을 탐구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비판과 교훈을 실현하고 그를 더욱 완성하여나가면서 그후에는 포악하고 우둔한자, 자기의 처지를 모르고 허영에 들뜬자들과 허례허식에 환장이 된자들을 우의적인 방법으로 비판하고 심각한 교훈을 찾아보게 하였던것이다. 따라서 발생후 자기의 고유한 특징을 유지하면서 독자적인 설화양식으로 오늘까지 발전하여왔다. 여기에서 문제로 제기될수 있는것은 이런 우의적수법을 언제부터 쓰게 되여 우화라는 설화양식이 나오게 되였는가 하는것이다. 현존하는 문헌상 고착된 우화를 놓고보면 세나라시기이거나 그전부터 전래한것이라고 가늠해볼수 있다. 이렇게 우화는 처음부터 동식물세계를 빌어 우의적인 방법으로 대상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교훈을 주는것을 주되는 과제로 추구하는 독특한 우의적이야기로 발생하였다. 따라서 대상을 의인화하여 보여주는 면에서는 의인화된 동화와 상통하지만 동심적지향성이 아니라 비판양식으로 교훈을 되찾아보게 하는데서는 양식상차이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하여 정면비판을 강렬하게 실현하는 풍자재담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는 우화가 대상에 맞게 우의적수법을 써서 비판과 함께 교훈을 되찾아볼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꾸밀수 있는 설화자의 예술적기량과 축적이 조건지어졌을 때 그 발생의 기초가 마련되게 된다는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놓고보면 우화는 전설이 활성화되고 민화도 일정한 수준에 올라 이야기군들에 의하여 여러가지 수법이 탐구되고 전개되던 시기에 발생한 양식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 현재 문헌상 고착된 앞에서 본 우화를 놓고보더라도 그 설화자는 다 궁중의 측근신하이며 왕을 즐겁게 하기 위해 설화적인것을 구술한 《이야기군》이다. 이야기군들이 대상에 맞게 동식물세계를 빌어 비판적이면서도 교훈적인 우의적이야기를 꾸며내려면 설화발전에서 일정한 예술적축적이 있어야 하며 그런 우의적수법을 탐구해낼수 있는 기량이 갖추어져있어야 한다. 비근한 실례로 궁중배우 귀돌(귀석)이 정평부사가 말안장을 공금으로 산 이야기를 왕앞에서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한것을 보아도 그것을 잘 알수 있다. 하기에 설화양식발전의 견지에서 보면 전설이 나오고 그후 민화가 자기의 양상을 가지고 발전하던 시기에 우화도 새로운 양식으로 출현하였다고 추측할수 있다. 이처럼 우화는 설화발전의 일정한 단계에 와서 예술적축적이 이루어지고 이야기를 꾸미는 여러가지 수법이 탐구되면서 주로 기지있는 이야기군들에 의하여 교훈을 추구하는 요구를 안고 출현한 우의적이야기라고 특징화할수 있다. 우화는 새로운 설화형식으로 출현한것만큼 다른 설화들과 구별되는 자기 고유의 양식상특성을 가지고있다. 우화는 첫째로 발생과정의 측면에서 볼 때 정면으로 할수 없는 이야기를 우의적방법으로 동식물세계를 빌어 의인화된 형상을 창조하고있다는데 그 양식상특성의 하나가 있다. 우화의 양식발전의 력사를 놓고보면 발생당시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비판적인 우의적이야기로 생겨났다면 그후에는 어른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주로 아이들을 위한 령역에로 넓혀지면서 아동문학의 한개 양식으로까지 이전되였다. 우화는 우의적수법을 씀으로써 의인화된 형상을 창조한다. 우의적수법은 그자체가 자연 및 동식물세계를 빌어 인간생활을 비유적으로 형상하는 창조수법이다. 따라서 이 수법에 의하여 의인화된 형상이 창조된다. 의인화된 형상은 인간생활에 비유하여 방불하게 창조된것으로서 정면으로 이야기를 펼쳐가는 민화와도 확연히 구별될뿐아니라 교훈을 추구하는데서도 가장 효과적인것으로 된다. 례하면 우화 《들쥐혼인》에서 보는바와 같이 허영에 뜬 어리석기 그지없는 들쥐가 자기 집안의 《높은 격》에 맞게 혼사를 정하려고 《명문거족》이라고 생각되는 하늘과 구름, 바람과 돌부처를 찾아가 청혼하다가 나중에야 들쥐자신이 《명문거족》이라는것을 깨닫고 제 무리끼리 혼사를 정하게 되는것을 방불하게 보여주고있다. 만약 이 우화에서처럼 들쥐의 세계를 빌어 의인화하여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런 이야기를 민화로서는 엮어낼수도 없거니와 그와 같은 어리석은자에 대한 비판과 교훈을 효과적으로 찾아보게 할수도 없었을것이다. 의인화된 형상을 창조하는것은 결국 우의적수법이 낳은 결실이며 우화양식의 기본징표의 하나로 된다. 그러하지만 의인화된 형상은 다름아닌 《우의적이야기》를 안고있어야 한다. 즉 동식물세계에 의탁한 이야기이지만 교훈적인 이야기로 되여야 한다. 여기에 의인화의 수법을 쓰는 의인화된 동화와 구별되는 양식상특성이 있게 된다. 우리가 알고있는바와 같이 동화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환상적이면서도 동심에 맞는 이야기로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풍자적인 동화, 꾀동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왔는가 하면 환상을 즐기는 아이들의 심리정서에 맞게 동식물세계를 의인화하여 보여주는 의인화된 동화가 나오게 되였다. 의인화된 동화는 의인화하는데서는 우화의 창조수법과 상통하다. 문제는 그 쓰임과 기능에서 두 양식의 차이를 찾아볼수 있다. 우화는 대상에 대한 정면비판을 할수 없는 조건에서 동식물세계에 의탁하는 우의적수법, 의인화의 수법을 썼으며 교훈을 추구하는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동화에서 의인화의 수법은 아이들이 잘 아는 동식물세계에 의탁하여 의인화된 형상을 창조하여 그들의 동심적지향과 환상을 실현시키며 선과 지혜를 찬양하는데 주되는 과제를 돌리고있다. 례하면 《구슬을 찾아온 개와 고양이》라든가 《꾀많은 토끼》 등의 의인화된 동화는 의인화되여있지만 아이들의 지향세계를 반영하고있으며 주로 선과 지혜를 찬양하는데 돌려져있다. 따라서 동화와 우화는 의인화의 수법을 쓰는 경우에도 각기 출발의 조건과 추구하는 목적이 달랐을뿐아니라 얻어지는 결론도 차이가 있다. 우화는 둘째로, 우의적수법을 통하여 어리석은 대상에 대한 비판을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에 교훈을 추구하는것을 주되는 과제로 한다는데 그 양식상특성의 다른 하나가 있다. 우화는 발생자체부터 비판과 교훈을 추구하는것을 목적으로 하여 생겨난 양식이다. 하기에 우화는 어리석고 미련한 갖가지 대상에 대한 비판의 양식으로 생겨났다. 그러되 그 비판이 정면으로 쏘아주는 비판이 아니라 우의적수법, 동식물세계에 의탁하여 비유적으로 실현하는 비판이라는데서 일반 풍자설화와 구별된다. 일반적으로 설화들에서는 선을 찬양하고 악을 징계하는것이 보편적인 론리로 된다. 따라서 악과 부정에 대한 비판과 징계가 동반된다. 그렇지만 민담을 비롯한 일반설화에 배여있는 비판은 우화에 체현되여있는 비판과 양상적으로 다를뿐아니라 양식상에서도 확연히 구별된다. 우화는 비판적양식이라는 점에서는 풍자설화와 한계렬상에 놓여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비판을 실현하는 방법과 수법, 추구하는 결론에서는 확연히 구별된다. 우화는 앞에서 본바와 같이 우의적수법, 의인화하는 방법으로 비판을 효과적으로 실현한다면 풍자설화는 정면으로 강렬한 비판과 통쾌한 풍자를 들이댄다. 결론적으로 온갖 부정과 악의 대상을 비판, 풍자, 징계할뿐아니라 멸망에로 이끌어간다. 그리하여 그 강렬한 풍자비판이 온갖 낡고 부정적인것을 쓸어버리는데로 지향된다. 우화는 이와는 달리 우의적수법, 우회적인 방법으로 비판을 효과적으로 실현하면서도 추구하는 주되는 과제는 교훈을 되찾아보게 하는데로 결론을 이끌어가는것이라고 볼수 있다. 여기에 우화가 비판양식이면서도 교훈을 되찾아보게 하는데로 이끌어가는 자기 특유의 양식상특성이 있는것이다. 례하면 우화 《청개구리의 슬픔》에서 그것을 찾아볼수 있다. 청개구리는 어머니를 여의게 되자 생전에 늙은 홀어머니를 괴롭히면서 말도 제대로 듣지 않고 행동도 반대로 한것을 후회하였다. 그래서 어머니의 유언대로 묘를 앞내가에 써주었다. 그러나 장마가 져서 비가 많이 내리면 묘가 물속에 잠기게 되여 청개구리는 더욱 슬픔을 금할수 없었다. 그래서 비가 내릴 때마다 내가에 나와 슬프게 울어대며 생전에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반대로만 행동한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울음을 터쳤다고 한다. 이처럼 우화는 청개구리를 불효자식으로 의인화하고 비판과 함께 교훈을 되찾아보게 이야기를 맺어준다. 우화는 셋째로, 의인화된 전형적인 생활국면과 성격적측면을 단도직입적으로 제기하고 명백한 교훈적결론을 얻어내는 독특한 이야기구성방식을 취하고있는데도 그 양식상특성의 다른 하나가 있다. 우화는 《우의적이야기》로서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간결하고 명백하게 끌고나갈뿐아니라 그 결속을 뚜렷이 맺어준다. 이로부터 우화가 비판양식이면서도 문제제기와 그 결론을 뚜렷하게 안겨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로서의 독특한 구성미를 보여준다. 우화는 우선 의인화된 전형적인 생활을 선택하여 어리석고 미련한 부정적성격을 단도직입적으로 파헤친다. 의인화된 부정적성격의 어느 측면을 파헤쳐보여주는가 하는데 따라 전형적인 생활이 선택되게 되고 이야기를 간결하면서도 집중적으로 전개하며 뚜렷한 교훈적인 해답을 얻어낼수 있게 째여지게 된다. 례하면 우화 《토끼와 거부기》에서는 두 인물의 가장 본질적이며 전형적인 생활을 선택하여 그 성격의 측면을 단도직입적으로 파헤쳐보임으로써 주제적과제를 교훈성있게 풀어나가고있다. 토끼의 형상을 놓고보면 허영에 들떠서 놀아대다가 거부기의 감언리설에 속아 죽을 형편에 처하게 되는 측면과 기발하게 꾀를 써서 사경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령리한 측면을 다같이 집중적으로 파헤쳐보임으로써 교훈을 되찾아보게 한다. 거부기의 경우에도 허영에 뜬 토끼를 구슬려 룡궁으로 태우고 가다가 간을 해빛에 쪼이려고 빼놓고 왔다는 토끼의 거짓말을 곧이듣고 도로 뭍으로 나옴으로써 토끼의 놀림을 받게 되며 룡왕에게 빈손으로 돌아갈수 없어 얕은 바다가기슭에서 숨어살게 되는 미련하고 우직한 측면을 파헤쳐보임으로써 교훈성을 준다. 우화는 또한 인물설정에서 긍정인물과 부정인물이 대조되여 주어져있는가 하면 비판과 교훈의 대상인 부정인물만 나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긍부정인물이 몇이 나오는가 하는것은 우화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으로는 긍부정의 두 인물이 대조되는것이 상례로 된다. 우화 《토끼와 거부기》에서는 토끼에 대한 우의적이야기가 기본으로 되여있지만 거부기도 례외없이 우둔하고 미련한자의 행동을 비판과 교훈으로 보여주는 부정인물로 대조시키고있다. 우화 《함정에 빠진 호랑이》에서는 비판과 교훈을 찾아보게 하는 대상을 호랑이로 설정하고 《재판관》인 토끼는 령리한 긍정인물로 대조시키고있다. 우화 《똥진 너구리》는 일하기를 좋아하는 짐승과 놀고먹기를 좋아하는 두 짐승을 대조시켜 보여주면서 부정인물을 통하여 교훈을 찾아보게 한다. 우화는 또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이야기줄거리의 측면에서 보면 보편적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고 볼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반부분에서는 악하고 우둔한자, 허영과 망상에 사로잡힌자, 일하기 싫어하고 놀고먹기를 좋아하는자 등이 가지고있는 부정적인 면을 생활적으로 발가놓고 주제적과제를 풀어나가는 설화부분이 전개되여있다. 그 다음의 뒤부분엔 주제적과제를 교훈으로 맺어주는 결론부분이 놓이게 되며 설화의 마지막단락을 장식하게 된다. 우화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놓고보면 앞부분에서는 사냥군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죽게 된 호랑이가 그옆으로 지나가는 어진 사슴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잊지 않을테니 제발 살려달라고 애걸하기에 구원해주는 의로운 행동을 보여준다. 이것은 사건적으로는 발단에 불과하며 인물관계에서는 선과 악이 설정되여있으나 성격은 드러나지 않고 교훈적이야기의 사건적전제를 마련한데 불과하다. 다음부분에 와서 사건을 역전시켜 구원된 호랑이가 그간 굶주렸던것을 참지 못하여 자기의 은인인 사슴을 잡아먹으려 한다. 사슴은 너무도 억울하여 지나가는 령리한 토끼에게 재판을 해달라고 한다. 토끼는 좋은 말이나 도덕적리치로써는 포악한 호랑이를 납득시킬수 없다는것을 알고 사건의 전후사연이 어떻게 되였는가 그대로 해보라고 호랑이에게 이른다. 호랑이는 원래 성질이 포악하고 급한 놈인지라 말이 떨어지자 함정에 불쑥 뛰여들면서 처음에 이렇게 되여있었노라고 설명을 한다. 그러니 사건은 다시 역전되여 본래 자리로 돌아와 호랑이는 더는 누구도 구원해주지 않을 죽을 신세에 처하게 되는것이다. 우화는 이처럼 앞부분에서 교훈을 찾아보게 하는 사건을 생동하게 펼쳐주고는 마지막부분에서 교훈적인 결론으로 맺어준다. 그것은 《재판관》인 토끼를 통하여 사슴에게는 자기를 구원해준 은인도 모르는 포악한자를 동정해준것이 잘못이라는것을 되새겨보게 한다. 반대로 호랑이에게는 비판적선고로 결론을 안겨준다. 《저를 살려준 은인도 모르고 도리여 잡아먹겠다고 하니 그런놈은 영영 그 함정속에서 죽어 마땅하다.》 이야기구성상에서 우화는 앞에서 본바와 같이 교훈적이야기를 사건적으로 간결하게 엮어주는 설화부분이 있게 되고 그뒤로 이야기의 맺음과 함께 교훈을 추구하는 결론부분이 놓이게 된다. 물론 이것은 보편적인 례로 되지만 적지 않은 우화들은 이 두 부분이 뚜렷이 갈라져있지 않고 뒤부분에 포섭되여있기때문에 이야기전체에서 교훈적결론이 추출되기도 한다. 어쨌든 여기에서 명백한것은 우화가 제기한 비판적과제를 우의적인 사건과 이야기를 통하여 뚜렷한 교훈적결론에로 이끌어나가는 구성방식을 취하고있는 독특한 양상적특성을 가졌다는것이다.
우화의 독특한 색갈과 주제적과제
우화의 독특한 색갈을 밝혀내려면 그것이 우의적수법을 쓰게 된 요인과 그 효과에 대한 정확한 파악에 기초하여야 한다. 다시말하여 동식물세계에 의탁하여 인간생활의 부정적인 측면을 발가내고 비판과 함께 교훈적인 효과성을 얻어내게 되는 양식의 고유한 색갈측면을 판별해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화가 의인화된 동화들과도 구별되고 비판양식의 재담들과도 다른 양상의 독특한 양상적특성을 옳게 밝혀낼수 있는것이다. 우화의 양상적특성은 무엇보다 먼저 우의적수법을 써서 의인화된 상징적인 성격을 창조함으로써 인간생활을 직접 다루는 인물전설이나 민화와 달리 생활화폭에서 자기 고유의 정서적색갈을 가진다는데 있다. 우화는 의인화의 수법을 씀으로써 인간생활을 직접 다루는 설화양식과는 달리 우의적방법으로 형상의 독특한 색갈을 살려내여 생신하고 독특한 인상을 안겨주며 그 효과성을 크게 얻어내게 된다. 례하면 우화 《토끼와 거부기》에서 남의 감언리설에 귀가 커서 그대로 곧이듣고 허영에 들떠 죽는 길인줄도 모르고 룡궁으로 구경떠나는 토끼와 같은 색갈있는 형상을 창조할수 있은것은 우의적수법에 의거하였기때문이다. 만약 민담에서 토끼와 같이 귀가 커서 남의 말을 곧이듣고 허영에 들떠 돌아가는 어리석은자를 그려낸다고 하면 우직하고 미련한 측면을 비판할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동정이 가는 측면과 그후 기발한 꾀를 쓰는 령리한 측면을 다같이 살려 어리석으면서도 기발하고 재치있는것, 어둡다가 밝아지는 조화된 두 색갈의 측면을 인상깊게 살려내지 못하였을것이다. 의인화의 수법이 민담과 구별되는 우화의 정서적색갈을 특징짓는 기본요인으로 된다면 의인화된 동화에도 이 수법이 같은 작용력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가 나선다. 의인화된 동화에서 의인화의 수법은 어린이들에게 익혀진 동식물세계의 표상에 기초하여 그들의 환상과 지향성을 감명깊게 실현시켜주기 위한 요구에서 선택되여지고 효과적으로 씌여진것이다. 다시말하여 의인화된 동화에서 의인화의 수법은 생활무대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식물세계에 옮겨놓고 그 성격을 통하여 동심을 반영한데로부터 선택된것이다. 따라서 생활화폭의 정서적색갈도 그에 따라 조건지어지며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우화는 동화와 같이 의인화의 수법을 쓰면서도 그 출발적인 전제가 달리 설정된다. 그것은 의인화된 동화는 동심에 맞게 의인화의 방법을 직접 선택한것이라면 우화는 말그대로 우의적수법 즉 우회적방법으로 비판과 교훈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요구에서 선택된것이다. 따라서 우화 《토끼와 거부기》와 동화 《구슬을 찾아온 개와 고양이》, 《호랑이를 산채로 잡은 토끼》의 양상적인 차이가 대비적으로 엿보여지는것이다. 우화의 양상적특성은 다음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대상에 대한 비판적과제를 제기하고있지만 생활화폭의 전반을 통하여 자책과 교훈을 되찾아보게 하는 결론을 색갈있게 끄집어내고있다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우화는 우선 다른 설화들과는 달리 비판적과제를 내세우는것으로 하여 이 령역에서도 자기의 독특한 정서적색갈을 가진다. 그렇다고 하여 악에 대한 정면비판을 들이대는 풍자재담과는 다른 양상적으로 뚜렷한 차이를 가진다. 다시말하여 에둘러 비판하는것으로 하여 풍자적웃음의 색갈도 정면비판하는것과는 다르게 여유있고 적절할뿐아니라 일반적으로는 연하다고 볼수 있다. 우화 《들쥐의 혼인》에서는 자기의 처지도 모르는 과대망상증에 물젖은 들쥐가 명문거족의 가문과 혼사를 정하려고 해와 구름, 바람과 돌부처 등을 찾아다니는 과정에 깨우침을 받고 나중에는 들쥐집안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저희끼리 혼사를 정한다. 여기에서 비판은 풍자재담과 같이 정면으로 되는 강렬한 비판과 해학이 아니라 해와 구름, 바람과 돌부처의 권고와 깨우침(비판)을 받고 자책(교훈)하는데로부터 향하여지는 풍유적인 비판이다. 따라서 이 우화에 배여있는 비판은 풍자해학과 달리 웃음의 색갈과 강도에서 연하고 교훈성과 결부된 풍유적인 색채를 띠고있다. 풍자재담과의 관계에서 우화가 풍유적인 색갈이 진하다면 비판양식의 다른 하나의 양식인 우스개인 소화와의 관계에서 보면 그것도 가벼운 웃음이지만 웃음의 농도에서는 더 해학적이고 개방적이다. 따라서 우화와 같이 우의적인 비판이나 풍유적인 웃음이 아닌것이다. 례하면 소화 《본안해와 두번째혼인》, 《소경 제 닭 잡아먹기》는 그런 어리석은짓을 하는 대상이 소경인것으로 하여 웃음이 진하게 해학적으로 나오지만 《들쥐의 혼인》에서 들쥐와 같이 과대망상증에 걸린 대상에 대해서는 그 비판과 교훈성의 색갈로 하여 풍유적인 웃음이 나오는것이다. 우화는 또한 비판적과제가 교훈적인 결론에로 이어지므로 비판의 우의적인 농도와 함께 깨우쳐주는 웃음으로서의 정서적색갈을 드러내보인다. 원래 우화는 우의적인 비판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교훈을 되찾아보게 하려는 목적밑에 새로운 설화양식으로 등장하였다. 따라서 우화에서 제기하는 비판적과제는 우의적이야기를 통하여 교훈적인 결론으로 맺어지게 된다. 생활화폭과 이야기거리에서 교훈적인 색채가 없거나 풍유적인 결론으로 맺어지지 못하는 그 모든것은 애당초 우화의 대상으로 되지 못할뿐아니라 이 설화양식의 고유한 양상으로 표현되지도 않는다. 우화가 비판양식임에도 불구하고 풍자재담이나 우스개인 소화 그리고 악에 대한 징계가 주어져있는 일부 설화들과 구별하여 자기의 독자성을 가지는것은 우의적인 비판과 함께 뚜렷한 자책과 교훈성을 추구하고있고 그것을 설화적인 결론으로 맺어주기때문이다. 이상의 사실에서 얻어지는 결론은 세가지 측면에서 우화의 양상, 정서적색갈이 조건지어진다는것을 말하여준다. 그것은 첫째로 우의적수법이다. 다시말하여 의인화된 형상을 창조함으로써 다른 설화양식과 구별되는 양상적특성이 조건지어지는것이다. 그것은 둘째로, 비판적과제를 정면으로가 아니라 우회적으로 굴절시켜 제기하고있는데서 그 양상적특성이 조건지어지는것이다. 그것은 셋째로, 비판적과제를 풀어 교훈적인 결론에로 이끌어가고 뚜렷하게 맺어준다는데서도 양상적특성이 조건지어진다고 볼수 있다. 물론 이상의 세가지 조건이 마련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줄거리속에 배여들고 융합되여 우의적인, 비판적인 과제를 교훈성있게 맺어주는 참다운 《우의적이야기》로 되지 못한다면 양상을 살려낼수 없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설화양식자체를 구별짓지도 못하게 된다. 특히 우화의 독특한 양상적특성인 우의적, 비판적, 교훈적체질과 색갈을 정확히 분별하지 못한다면 양식들의 교차와 분화, 변종에 의한 모호성으로 하여 양식간의 한계를 명백히 긋지 못하거나 다른 양식에로 이전시키는 우려도 없지 않다고 볼수 있다. 비근한 실례로 《혹 떼러 갔다고 혹 붙이고 온 이야기》를 어떤 분류자는 의인화된 동화부류에 소속시켰는가 하면 일반적으로는 민화부류에 소속시켜본 실례들이 적지 않다. 이것은 앞에서 본 세가지 측면을 통일적인 련관속에서 보고 그 양상적특성을 밝혀내지 못한것과 관련된다. 따라서 특히 우화에서는 그 양상적특성을 정확히 밝혀내는것이 중요한 과제로 나선다. 왜냐하면 우리의 민족설화에서 민화와 함께 동화, 우화들이 거의 모두가 권선징악적인 론리와 구성법에 의거하고있는것으로 하여 비판이 주어져있을뿐아니라 그에 따르는 교양과 교훈을 어데서나 찾아볼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되여있기때문이다. 따라서 양식상의 구분은 그 기본특성과 함께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정서적색갈의 차이를 정확히 가늠해낼 때에만 성공적으로 실현할수 있다고 볼수 있다. 우화는 일반적으로 양식의 공고성으로 하여 여러 류형으로 갈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의적이고 비판적이며 교훈적인 세 측면을 다 안고있어야 하므로 양식상에서 류형이 갈라져나올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다만 일부 우화에서 반의인화된것이 있지만 그것도 전통적인 우화에서는 극히 드물고 매우 적다. 따라서 하나의 독자적인 류형으로 취급할수 없을뿐아니라 다른 설화형태들과 대비해볼 때에도 그 류형이 뚜렷이 갈라져나오지 않는다. 다른 설화형태인 전설을 놓고보면 시조왕전설로부터 시작하여 인물전설과 지명지물전설, 자연풍물전설과 유물유적전설로 그 류형이 뚜렷이 갈라져나온다. 민화의 경우에도 민담과 풍자재담, 우스개인 소화 등으로 류형이 명백히 나뉘여지므로 갈라서 취급할수 있다. 이상의 사실에 비추어볼 때 우화는 류형으로 뚜렷이 갈라지지 않는 조건에서 의인화된 대상의 어느 측면을 비판적교훈으로 추구하고있는가 하는 주제적과제에 따라 크게 나누어진다. 례하면 우화 《토끼와 거부기》나 《들쥐의 혼인》은 자기과신과 허영에 들뜬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비판적과제를 안고 나온 우화계렬이라고 볼수 있다. 그런가 하면 우화 《똥진 너구리》는 일하기 싫어하고 놀고먹기를 좋아하는자들에게 교훈을 주는 우화계렬이라고 볼수 있다. 물론 매개 우화는 이야기거리와 소재가 서로 다르며 비판을 통하여 교훈을 추구하는 과제의 측면도 구체적이다. 그렇지만 인간생활의 어느 부정적인 측면을 비판적과제로 제기하고 교훈을 추구하고있는가 하는데서 주제적으로 묶어세워 고찰할수 있다. 우화가 류형별로 크게 갈라지지 않는 조건에서 주제적으로 묶어세워 고찰하는것은 보편적인 취급방법으로 된다. 특히 우화는 양식상으로 째여져있고 양상적으로도 뚜렷한 색갈을 가진 자기 고유의 체질로 하여 비판적과제를 우의적수법으로 교훈성있게 추구한 설화양식으로 등장하고 발전공고화되여왔던것이다. 그러므로 우의적수법에 따르는 비판적과제를 교훈성있게 제기하고 뚜렷이 맺어주는데 따라 여러 우화들을 갈라보고 묶어볼수 있는것이다. 이것은 우화가 비판적과제를 우의적으로 문제성있게 제기하는 독특한 체질로 하여 주제적으로 묶어세울수밖에 없다는것을 잘 말하여준다. 력사적으로 창조된 구전우화를 문제성의 견지에서 주제적으로 묶어세운다면 편의상 다음의 몇가지로 나누어볼수 있다. 우선 자기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과신과 허영에 들떠 어리석게 행동하다가 위급한 국면에 이르러서야 깨닫고 교훈을 되찾는 허황한자들과 그 류형의 어리석은자들을 비판적, 교훈적과제로 내세운 우화들을 들수 있다. 여기에서 전형적인 우화는 《토끼와 거부기》(구토설화)이다. 그외에 우화 《들쥐의 혼인》, 《청개구리의 슬픔》도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수 있다. 또한 포악하고 우둔하면서도 미련하기 그지없는자들이 자기 욕망을 채우려다가 끝내는 좌절되고 역경에 처하게 되는 패망상을 비판적과제로 내세운 우화들을 들수 있다. 여기에서 전형적인 우화는 《함정에 빠진 호랑이》이다. 또한 일하기 싫어하고 놀고먹기를 좋아하는 건달뱅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가를 비판적, 교훈적과제로 내세운 우화들을 들수 있다. 여기에서 이채를 띠는것은 속담화된 우화 《똥진 너구리》이다. 또한 허례허식과 제나름의 망상에 사로잡힌자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판적, 교훈적과제로 내세운 우화들을 들수 있다. 여기에서 이채로운 우화는 《사슴의 뿔자랑》이다. 우화는 이외에도 욕심사나운자, 제 자랑만 늘어놓는자, 옳은것과 그른것을 판별할줄 모르는 어리석은자들과 갖가지의 부정면을 단도직입적으로 제기하고 비판하여 교훈을 찾아보게 하는것들이 적지 않다. 우화는 력사적으로도 일찌기 자기의 고유한 양식상체모를 갖추고 발생하여 발전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유산들을 남기였지만 서사적으로 고착되지 못하여 류실된것이 많다. 따라서 우화작품을 수집발굴하는 사업은 오늘날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